군산발 급살병과 대시국 의통군
이훈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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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미래 예측 분야를 좋아하다 보니 덩달아 동서양과 한국 고유의 예언을 좋아하게 되고 다양한 예언이 담긴 경전류와 방송 등을 즐기게 되었는데 그러다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게 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증산도 계열 종파인 태을도에서 출간한 책으로 처음엔 증산도에서 출간한 책인 줄 알았다가 읽고 보니 태을도의 도서였다. 증산도는 본향이 대전이라는데 태을도는 교단은 서울에 있고 기원은 전라도 고부라고 한다. 하지만 기원을 따지자면 고인이신 증산 강일순 선생이 시원일 테니 증산도 계열 종파 전체가 기원은 전라도 지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서의 내용은 그들의 경전에서의 강일순 선생 말씀과 행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 강일순 선생의 생몰 연대라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1871111일에서 190989일을 살다가신 분으로 이 시기의 한반도 역사가 외세와 서학과 동학이 어우러진 혼세이다 보니 자신(증산 강일순)이 하나님이 인간으로 화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라는 등의 허황된 주장의 어불성설인 논리도 통용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본서의 내용을 압축 요약하자면, 한반도는 우주의 기운이 서리는 지구의 혈자리로 이곳에서 인류의 원과 한과 바람이 어우러져 펼쳐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용된 어휘는 다를 수 있지만 의미를 옮겨 담았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그들이 상제라 칭하는 하나님이신 강일순님이 태어나신 것이며 인류의 다음 세기가 펼쳐지는 여정인 군사적 질병적 재난들이 펼쳐지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곳 한반도 군산에서 급살병이라는 것이 서북으로 퍼져 올라가서는 49일간 전국을 휘젓고 전 세계로도 펼쳐져 3년을 간다고 하며 그 이전에 북한의 침공으로 남북간의 전쟁이 일지만, 그것도 급살병의 확산으로 중단된다고 한다. 이 한반도의 전쟁은 세계의 향방을 가르는 전쟁이 되는데 이로 인하여 세계가 일통 일가를 이룬다고 한다. 아마도 세계단일국가화될 거라는 미래상을 예언하고 계신 것 같다. 이 모두를 증상도에서는 해원(원한이 해소되는)의 여정으로 보는데 태을도에서는 인간의 독기와 살기가 불러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증산도 계열 종파들에서는 모두 이런 시대를 고대한 모양이다. 본서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강일순 선생께서 생존해 계실 당시에도 그날이 왜 빨리 오지 않느냐고 재촉하는 신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근래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야 이 종파들의 신앙이 밀물처럼 활성화되고 있는 듯하다. 증산도의 [이것이 개벽이다] 같은 책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유행하기도 해서 중학시절에도 재미나게 읽었고 몇 년 전에도 신간으로 재독하기도 했다. 증산도 계열에서는 본인들의 교리 그러니까 강일순님의 예언에 기존 동서양의 예언들을 보강해서 예언들을 종합해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는 [이것이 개벽이다] 시리즈와 [개벽 실제 상황]이라는 증산도 도서들이 훨씬 재미나게 서술되고 편집된 책들이다.

 

본서에서도 탄허 스님의 월출산 영봉에 물이 차고 그 수면에 달이 비치고 나면 30년 후에 여성지도자가 한반도에 등장하고 그로부터 삼사년 후에 남북이 통일된다는 예언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본서의 저자께서는 그걸 3~4년 후로 보고 자기 종파가 남북을 통일한 종파라고 주장하는데 그건 너무 억지 해석이다. 동양에서는 삼사년이라고 한문으로 기록했다고 하면 이는 3~4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12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팔 청춘은 16세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한단고기인가 삼국유사인가에서 웅녀가 환웅님께 참사람이 되기를 청하고 참사람이 되는 수행 기간으로 받은 기간이 삼칠일인데 이 또한 3~7일이 아니라 전통적인 해석대로 21일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탄허 스님께서 말씀하신 여성지도자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할 때 그녀의 취임 연도인 2013년에서 탄핵 연도인 2017년에 12년을 대입하면 2025년에서 2029년 사이 남북이 통일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모든 예언은 맞을 때도 틀릴 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할 때 이 시기까지 판단은 보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쨋건 증산 강일순 선생과 탄허 스님의 에언을 동시에 보면 2025년에서 2029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며, 이 전쟁은 세계의 향방을 가르는 전쟁으로 비화되는데 한반도 내에서는 군산에서 대감염병이 서울 경기지역까지 전파되는 과정에서 전세계로 확산되고 한반도 내에서는 49일로 팬데믹이 완화되지만 그즈음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은 중단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즈음부터 시작되어 세계단일 정부나 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세계기구의 출범이나 기존 UN의 권한 강화가 있을 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나로서는 예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퍼즐을 맞추듯 결합하며 재미를 느끼는 편이지만 이 시대답게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재해석 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한반도가 과연 우주의 기운이 서리는 풍수적인 대우주의 길지라는 해석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가를 보자. 만약 한반도의 풍수가 그런 고차원적인 길지였다면 중국이 유사 이래 한반도 내 국가들과 사신을 서로 왕래하면서 한반도의 풍수를 파악하지 못했을리 없다. 일본이 한반도의 풍수가 일본 풍수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자 한반도 각지의 명지에다 대못을 박아 넣은 사례들을 보더라도, 풍수를 신봉했던 동아시아 전체에서 왕중왕인 중국이, 우주 최고의 명당이 한반도였다면 한반도를 침공해 중국 역대 정권들의 수도로 삼았던가 우주의 기운이 한반도로 흘러가지 않도록 여러 방법들을 간구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의 흐름을 볼 때 한반도가 전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의 명당이라는 논리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강일순 선생이 하나님이라니 예수가 구약이라는 유대인들의 성경에서는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탈바꿈된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는 뻘소리가 아닌가 싶다. 예수는 자신이 죄인들을 위해서 왔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구약에서도 아담과 하와의 지혜의 열매를 먹은 죄를 원죄라며 그 죄가 인류 전체에게 계승되기에 그걸 대신 속죄하기 위해 예수가 처형당했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는 유대인들은 신봉하지 않는 주장이다. 유대인들은 아담과 하와의 죄가 계승된다고 믿지조차 않았다. 구약에서는 사람이 죄짓지 않고 사는 날이 없기에 죄인이라고 말했으며 유대인들에게 죄란 그렇게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과 같이 잠시 노선을 벗어나는 걸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 것을 예수의 제자들은 죄인의 개념을 극대화해 예수를 신격화하는 데 이용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신격화하기 위해 독생자 개념을 창조했고 다윗의 자손 중에 베들레햄에서 태어나는 이가 메시아가 된다는 유대인들 경전의 전승을 예수에게 덧쓰우려 예수와는 관련도 없는 예수의 양아버지의 계보를 다윗과 연결 지었다. 그게 억지인 것은 복음서들마다 예수 양아버지의 다윗 족보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또한 나사렛에서 출생한 예수를 메시아가 베들레햄에서 출생한다는 전승에 억지로 꿰어맞추려 예수 출생지를 베들레헴으로 조작했다는 것도 예수의 사촌 동생인 요한의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베들레햄 출생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자매인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 출생지를 잘 알겠나 전혀 남인 복음서 작성자들이 예수의 출생지를 더 잘 알았겠나는 이미 답이 나온 의문이지 않은가 말이다. 예수는 자신이 독생자라고 한 적이 없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며 다른 모든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다. 독생자이자 하나님과 동격이라고 자신을 호도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만약 예수가 그랬다면 그는 그냥 MAST(신의 광인)일 뿐이다. 미친놈이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도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으로 화현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도 그냥 MAST일 뿐이다.

 

강일순님이 하나님이라면 전지, 전능, 불멸, 편재해야 할 일인데 자신이 인간들을 죽이고자 대감염병과 대전쟁의 시대를 기획하고는 다시 그를 막겠다며 천지공사를 한다? 그게 전지하고 전능한 존재가 하는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이라면 애초에 완벽한 계획을 세웠어야 한다. 또 그걸 수정하는 과정이 제한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강일순 선생이 인류가 겪을 대재난의 수위를 낮추려 행한 과정을 천지공사라고 하는데 인류가 겪을 일을 축소했다고 주장하나 그것은 그의 주장일 뿐 증명할 수 없으며 증명된다고 해도 전능한 하나님이라면 무효로 만들면 되지 축소하는 정도 밖에 못하는 건 또 뭔가? 그리고 그는 죽었다. 불멸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속성 중 무엇 하나도 없었는데 하나님이라는 논리가 말이 되는가?

 

그리고 그는 인간이 대감염병을 겪는 이유와 전쟁을 겪는 이유를 인간의 독기와 살기 때문이며 이 모든 과정은 해원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견 맥락 지으며 스토리로서 원인과 조건과 결과를 찾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혹할 만한 논리다. 모든 것이 무작위라거나 우연일 뿐이라고 하는 말보다는 대중이 혹하고 솔깃한 해석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감염병도 대전란도 결국에는 치밀한 기획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5나도 하얀 신발도 몇몇 초극부층이 후원하던 중국의 실험실에서 발원하였거나 그들이 투자한 제약사들에서 하얀신발이 출시되었고 투자한 초극부층들은 팬데믹 시기 동안 천문학적인 부를 창출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AI와 로봇 기술이 대대적으로 실용화될 시점을 앞둔 초대량의 실업자들이 쏟아져나와 초극부층들의 세금으로 전세계 시민들 대다수를 복지 부담으로 부양해야 할 미래를 생각할 때 상당히 시기 적절한 팬데믹이었다. 대전쟁(세계대전)과 반복되는 팬데믹은 초극부층의 복지 부담을 절대적으로 감소시키며 새로운 사회구조와 경제체제를 불러오는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말이다. 이런 효율을 그럴 힘을 가진 이들이 시행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비합리적인 기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전란과 대감염병은 인간의 독기와 살기나 쌓인 원한이 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냉철한 이성과 살벌한 판단력이 불러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독기과 살기가 불러오는 것이 아니냐 쌓인 원한이 그런 인물들을 키워내 인재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전인수적인 해석이다. 강일순님은 이 상황을 인간들의 기획이나 계획의 실현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사태의 표면만 비전으로 볼 수 있었거나 기존의 예언들을 기반으로 예측했을 뿐 현상의 이면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예수는 성전에서 환전상을 공격했는데 나로서는 그가 환전상을 공격한 것을 성스러운 곳에서 이윤 추구만을 하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때로서는 먼 미래인 현재의 세계상을 비전으로 보고 금융가들을 주축으로 한 초극부층이 세계인들 다수를 죽이는 것을 예지하고는 그것이 화가 나 그들의 기원이랄 수 있는 환전상을 공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신도 숫자가 더 많다고 소수인 환전상과 그 경호원들을 짓밟으려 한 깡패 양아치일 뿐인 존재가 예수였단 말인데 나로서는 그리 보지 않는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인데 군 시절에 본 증산도 서적에서 강일순님이 미래에 벌어지는 판을 역변시키는 존재를 상씨름꾼이라며 그 판 밖에서 판의 흐름을 좌우해 버리는 상씨름꾼을 자신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고 있다. 나는 그가 상씨름꾼이라고 말한 그 인물이 메시아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그를 보혜사라고 칭했는데 어떤 호칭이었든 대환란의 시대에 대환란을 뒤바꾸는 존재가 예견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존재가 바로 메시아가 아니겠는가? 그보다 먼저 온 존재들이 그 미래를 보고 그를 자신이 보냈다거나 그는 자신의 일을 대신하는 보혜사라고 칭하는 것은 그들의 망상이 불러온 해석이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앞서와서 문제를 예견하는 자는 예견자일 뿐이지 문제를 진짜 해결하는 사람이 진짜 문제해결자인 것은 당연한 이치라 본다. 지가 독생자라는 사람도 지가 하나님이라는 사람도 문제의 시기에 오지 않았고 예견만 했을 뿐이지 않은가? 기출문제에 아마도 고난이도의 문제가 등장할 것이다라고 예측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이 문제해결자인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문제를 예견만 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기존의 예언을 혼합하고 예측되는 미래상까지 더해 예언을 해 보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예언 정보 마니아와 미래 예측 정보 마니아라면 누구라도 이전 예언자들 못지않게 그럴듯한 예언을 할 수 있다. 예수든 강일순이든 먼저 와서 미리 말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해당 시대에 살며 해당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문제해결자이고 메시아일 것이다.

 

본서에 대한 감상은 재미 삼아 볼 만은 한데 [이것은 개벽이다] 시리즈처럼 재미나지도 않고 분량도 조금 아쉽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벽이다]가 너무 월등한 클라스인 것이 사실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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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2 : 금권 천하 - 최신개정판 화폐전쟁 2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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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즈음에 4권까지 소장해 두었다가 1권은 읽었는데 2권은 이번에 읽게 되었다. [화폐 전쟁]에서 쑹훙빙 님의 논조는 다분히 음모론적이지만 그의 저작을 음모론서로 비방하는 이들이 적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방대한 근거 자료들 때문일 것이다. 공산국가의 저자의 눈에 자본주의 세력들이 음모를 모략한 것으로 역사의 흐름이 보일 수도 있겠구나라고만 단정 짓기에는 그의 주장은 근거와 논리가 명확한 것이 사실이다. 그가 참고한 자료들이 모두 공산국가의 편향된 해석한 자료들만도 아니고 말이다.

 

1권이 로스차일드가가 만들어온 역사 이야기였다면 2권에서는 보다 폭넓은 세력들이 협력과 경쟁을 통해 주도해온 역사를 담고 있으며 역사서들과 함께 자본주의 역사를 일궈온 가문들의 회고록에서 충분히 언급될 만한 자료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2권의 참고자료 목록만 해도 200개 내외이니 근거 없는 억측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근대와 현대의 역사에서 금융 가문과 금융가들이 세계의 역사를 주도해오고 좌우해온 걸 본서를 읽지 않았더라고 부정할 수 있을 이는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로케펠러 씨가 화폐 생산권만 우리에게 준다면 정치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시절부터도 이미 세계를 주도하는 것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명백히 알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음모론서가 아니더라도 다수의 저작을 통해 세계대전들에서 기업과 금융가들이 어떤 국가들을 어떻게 지원하느냐 함으로써 얼마나 전쟁의 향방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 수 있는 시대이다. 이제는 더더군다나 본서의 신빙성에 의문만 제기하는 이들이 넘치는 시대는 아닌 것이다. “어떤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든 우연은 없다. 모두 세심하게 계획된 것일 뿐이다.”라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전 대통령이 발언했었다는데 그것이 본서의 근간이 되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각국의 혁명과 개혁과 전쟁에서 금융가들과 엘리트들은 부의 창출을 기획했으며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이 역사의 드러나지 않은 동력이었다는 게 본서를 읽은 감상으로는 충분할 것 같다. 다만 저자가 말하듯 세계 단일 국가화나 세계 단일 화폐 또는 세계 주축 화폐라고 할 수 있을 화폐 제도 등은 많은 이들도 전망하고 있었을 사안이고 본서가 중국에서 출간된 2006년 이후 많은 학자 및 연구가들이 동일한 주장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실 부정을 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는 것이 참 답답하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미국 단일 패권의 단극체제에서 현재의 전쟁 양상이 더욱 더해지며 패권이 다원화되는 다극체제로의 이양은 결국 국가간 전쟁과 국제 정치적 불안정성을 키우는 결과를 불러와 다수의 국가들이 보다 강력한 전쟁억지력을 보이고 내정 간섭을 막는 국제단체의 출범이나 기존 UN의 권한 강화를 자발적으로 요구하게 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경제적으로는 각 권역별로 블록화되며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은 세계가 3대 주축 화폐로 묶이거나 세계 단일 화폐가 바로 출시되는 양상을 보이게 될 것도 자명한 이치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 이르기 전까지 그 과정으로 가는 거 같이 보이지 않는, 역류와도 같은 양상도 펼쳐지겠으나 이러한 관점에 대한 최종적인 단계에서는, 달리 귀결될 수 없는 상황으로 역사는 흘러가고 말 것이다. 전쟁과 경제의 위기는 결국에는 생동하면서도 기획에 따른 결론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뉴스에 밝은 분들은 이미 백X신에 관한 결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의 백X신 보급이 식용과 스프레이 등등으로 어떻게 계획되고 있는지까지를 보면서 또 WHO에게 방역 주권을 위임하는 문제에 대한 각국의 반응들을 보면서 참 가관인 시대였고 가관인 시대일 것이구나 느끼실 테지만 한국인 다수는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 같다. 몰라서 당하기도 하지만 알고서도 주저하지 않고 당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서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관성을 보이는 것이 초엘리트층과 같은 사람들에서도 그렇고 또 다른 측에서는 다수가 되는 대중과 같은 사람들도 그렇다. 사람은 참 일관적이구나 싶다.

 

이미 [로봇의 부상][인간은 필요없다]는 책들이 출간되면서부터 누구라도 예상했을 것이듯 아무리 기본소득 같은 이슈로 무마하려고 한다 해도 절대다수의 대중이 로봇과 AI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잉여 인간이 되는 수순인 것은 명백하다. 어줍짢은 이들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며 호도하려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해도 그 새 일자리에서 적응 기간이 얼마간 필요할 인간과 단 몇십 초에서 몇 분만에 숙련 근로자로 탈바꿈할 AI는 결코 경쟁상대가 될 수는 없다. 결국 초극부층들을 제외한 절대다수는 잉여 인간이 되고 기본소득만으로 연명해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그렇다면 초극부층이 절대 다수를 부양해야 하는 그 시대를 순순히 감당할까? 소수(초극부층)에게도 다수(전세계 시민들)에게도 적정 수준으로의 인구 감소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목표일 수밖에 없다. 팬데믹과 전쟁의 필요성은 그래서 대두되는 것이고 다수의 대중은 미지근한 물에서 뜨거운 물로 변하는 중에 인식도 못 하고 익어서 죽어버리는 개구리나 랍스터 같은 신세를 감당해야 할 것 같다.

 

[화폐 전쟁]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책이지 못할 것이고 사람은 애초에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을 통해 누구 손에 죽는지는 알고 죽을 수 있다는 것만이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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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 -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뇌과학자의 자기감 수업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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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을 치며 빠르게 읽은 후 밑줄 친 대목만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은 대목 중 리뷰해 나가기 좋은 부분만 서술해 나가려 한다. 본서를 읽게 된 계기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가운데 자존감이란 정확히 무얼까?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자존감이라면 어떻게 자존감을 다시 구축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심정에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인 저자분의 자존감에 대한 정의가 내가 예상한 것과는 많이 달라서 잘 읽은 책인가 하는 마음도 남게 되긴 했지만 자존감을 저자가 말하는 대로 해석하니 대응하고 대처하는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강 감이 잡히기도 하는 것 같다.

 

저자는 자기감은 생존을 위해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렸고, 자존감은 사회적 환경 곧 타인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다. 생존에 유리하게 외부 환경 중 자연과 그에 가까운 것들을 바꾸는 능력이 안정된 것이 자기감이고, 생존에 우호적으로 사람들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자존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존을 위해 우리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알로스테시스라고 정의하며 뇌가 이 기능을 제대로 할 때 안정적이며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작용은 내외적 불균형을 이룬 상태로 정의한다. 결국 자존감이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한 최적의 기능을 하는 생태에 있을 때 느끼는 심정으로 알로스테시스가 안정적일 때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타인이 안정적인 패턴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자기 스스로도 타인에게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이지만 이 과정에서 인정 중독 같이 남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역기능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인정 중독은 생존 우호적이거나 생존에 유리하기보다 내외적 불균형을 초래하기 쉽다. 이런 인정 중독을 끊기 위해 자기 인식이 필요한데 외부의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정보에 몰입하는 것은 인간 뇌의 기능적 진화와 발달을 역행하는 것으로 쉽지 않은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로만 향해서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즉 내외적 불균형을 갖게 되었을 때는 상당히 적절하고 유효한 것이 내면 정보로의 몰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민감하게 타고났으나 그에만 몰두하다 보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문제를 가질 수 있으니까 명상이나 선무도, 태극권, 기공, 요가, 자율훈련법, 자기 최면 등등이 주는 유익을 누릴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진정으로 자존감이라는 생존을 위한 순기능을 하도록 하는 팁이다라고 해석되는 내용의 저작이다.

 

뻔한 결론이기는 하지만 그 뻔한 답에 이르기까지 뇌과학을 바탕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인간과 자신의 뇌와 생리 기능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어떤 일상을 살아갈지 사려해 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본 리뷰에서의 요약은 최대한 핵심만 맥락을 짓기 위해 최소한으로 압축하고 가지를 쳐낸 요약이지 저자분은 인간과 인간의 의식과 그 기능에 관해 이보다는 상세하게 접근하고 있다.

 

뇌와 자신이 궁금하다는 분들께서는 한 번쯤 읽어보실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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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즈의 마법사 3 (한글+영문) 더클래식 세계문학 78
미르북컴퍼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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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에 읽기 시작한 오즈의 마법사라 시리즈 전체를 완독할 작정이다. 이번 편은 전작 1, 2와는 달리 페미니즘적 요소와 소수자에 대한 문제들과 그리고 차별에 대한 적대감 등이 다소 여려진 듯하다.

 

다만 약자에 대한 프랭크 바움의 인간적인 견해랄까가 묻어나는 작품이라는 감상이 일었다. 어린이인 오즈마 공주와 도로시는 합리적이며 주관이 뚜렷하고 정의롭게 그려지는 반면 이브 왕국의 랑귀데르 공주와 지하세계의 놈 왕은 나르시스트인데다가 비이성적인 인물이거나 야비하고 아전인수적인 인물들로 그려지고 있기도 한 면에서도 그렇다. 더욱이 가장 약한 존재(암탉 빌리나)와 그 존재의 가장 약한 것(빌리나가 낳은 달걀)이 문제해결자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약자에 대한 프랭크 바움의 견해가 드러나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에서는 개성이 명확한 캐릭터들이 시리즈마다 속속 등장하는데 랑귀데르 공주와 놈 왕 외에도 본서에서는 똑딱이로 번역된 태엽 로봇도 신선했다. 지하세계에 가기 전 관문에 등장하는 망치를 든 거인도 아이들을 사로잡을 모험 에피소드로 충분해 보였다. 마법 융단으로 전진하는 장면도 아이들이 혹할 만하다. 캐릭터나 설정 아이템 등도 그렇지만 이번 편은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빠른데도 불구하고 몰입감을 놓치지 않게 한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성인들도 가볍게 읽어볼 만한 이야기인데 10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무언지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동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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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다 읽는 경제 에스프레소 금융 - 29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 돈의 역사
김종승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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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직후부터 관심을 가진 책인데 이제야 기회가 닿아 만나게 되었다. 역사와 금융이 만났다고 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기존의 역사 속 경제를 소개하는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경제 전반만이 아니라 제목대로 특히나 금융에 깊이 파고들어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역사 경제 대중서들이나 다큐멘터리 등에서 금세공업자들이 금융업의 효시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가 본서에도 등장은 하지만 본서의 저자분은 금융의 시작을 그리스 신전에서 찾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유입되는 돈으로 대출을 해주고 이자를 받았던 것을 금융업의 첫 장면으로 그리고 있다. 유대인이 기독교인은 죄악시하는 금융업에 먼저 발을 들여놓게 된 것도 신명기 23장의 네 형제에게는 꾸어주고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대목을 적용해 형제가 아닌 다른 민족에게는 대출하고 이자를 받아도 된다며 금융업에 뛰어든 것이라고 한다. 본서는 이후 종교개혁이 일며 금융업에 개신교 창시자이자 주도자인 인물들이 성경 해석에 관대해져서 금융업이 확산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십자군 전쟁 이후 템플기사단이 뚜렷한 종교적 태도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활동하자 각지에서 후원금이 쏟아졌는데 막대한 자본이 쌓여 유럽 각지에 지사를 두고 금융업을 시작했다. 기독교 금융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사라진 이유는 전쟁 자금 등으로 유대 금융과 템플기사단 금융에 막대한 빚이 있던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유대인에게 진 빚은 유대인 재산을 빼앗고 국외 추방하는 선에서 끝냈지만 독실한 기독교인들인 템플기사단을 처리할 방법이 없자 템플기사단을 이단이자 악마 숭배자로 몰아 전원 고문하고 죽여 없애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만 3000명의 템플기사단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부분지급준비금에 대한 설명에서는 금세공업자가 금융가로 변신한 예가 등장하고, 뱅크런에 대한 설명에서는 존 로와 프랑스 최초 국립은행 방크루아얄의 예가 등장한다.

 

이렇게 역사와 금융에 관한 내용만 있다면 다른 저작과의 차별성이 없었겠지만 이런 대목은 [1부 은행의 탄생]이란 장에 주로 있고 [2부 금융투자의 시대][3부 위험관리의 기술]에서부터는 이젠 일반상식이기도 한 전문 금융 개념들을 역사와 현재의 실례들을 들어 설명해 준다. 여기서 등장하는 과거와 근대와 현대의 실례들이 금융 개념을 설명하는 과정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저자가 금융법 전문 변호사이자 해당 분야 교육자가 아니라 소설가는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자주 언급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저자 같은 분들이 빛을 발하는 시대라 그런 말이 생겨난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재밌고 지적 만족감도 들게 하는 반짝이는 책이 아닌가 싶다. 경제와 금융 책은 읽고 싶은데 손이 쉽게 가지 않는 분들이 들어서는 책으로 이만한 책은 다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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