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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발 급살병과 대시국 의통군
이훈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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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미래 예측 분야를 좋아하다 보니 덩달아 동서양과 한국 고유의 예언을 좋아하게 되고 다양한 예언이 담긴 경전류와 방송 등을 즐기게 되었는데 그러다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게 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증산도 계열 종파인 태을도에서 출간한 책으로 처음엔 증산도에서 출간한 책인 줄 알았다가 읽고 보니 태을도의 도서였다. 증산도는 본향이 대전이라는데 태을도는 교단은 서울에 있고 기원은 전라도 고부라고 한다. 하지만 기원을 따지자면 고인이신 증산 강일순 선생이 시원일 테니 증산도 계열 종파 전체가 기원은 전라도 지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서의 내용은 그들의 경전에서의 강일순 선생 말씀과 행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 강일순 선생의 생몰 연대라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1871111일에서 190989일을 살다가신 분으로 이 시기의 한반도 역사가 외세와 서학과 동학이 어우러진 혼세이다 보니 자신(증산 강일순)이 하나님이 인간으로 화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라는 등의 허황된 주장의 어불성설인 논리도 통용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본서의 내용을 압축 요약하자면, 한반도는 우주의 기운이 서리는 지구의 혈자리로 이곳에서 인류의 원과 한과 바람이 어우러져 펼쳐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용된 어휘는 다를 수 있지만 의미를 옮겨 담았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그들이 상제라 칭하는 하나님이신 강일순님이 태어나신 것이며 인류의 다음 세기가 펼쳐지는 여정인 군사적 질병적 재난들이 펼쳐지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곳 한반도 군산에서 급살병이라는 것이 서북으로 퍼져 올라가서는 49일간 전국을 휘젓고 전 세계로도 펼쳐져 3년을 간다고 하며 그 이전에 북한의 침공으로 남북간의 전쟁이 일지만, 그것도 급살병의 확산으로 중단된다고 한다. 이 한반도의 전쟁은 세계의 향방을 가르는 전쟁이 되는데 이로 인하여 세계가 일통 일가를 이룬다고 한다. 아마도 세계단일국가화될 거라는 미래상을 예언하고 계신 것 같다. 이 모두를 증상도에서는 해원(원한이 해소되는)의 여정으로 보는데 태을도에서는 인간의 독기와 살기가 불러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증산도 계열 종파들에서는 모두 이런 시대를 고대한 모양이다. 본서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강일순 선생께서 생존해 계실 당시에도 그날이 왜 빨리 오지 않느냐고 재촉하는 신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근래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야 이 종파들의 신앙이 밀물처럼 활성화되고 있는 듯하다. 증산도의 [이것이 개벽이다] 같은 책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유행하기도 해서 중학시절에도 재미나게 읽었고 몇 년 전에도 신간으로 재독하기도 했다. 증산도 계열에서는 본인들의 교리 그러니까 강일순님의 예언에 기존 동서양의 예언들을 보강해서 예언들을 종합해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는 [이것이 개벽이다] 시리즈와 [개벽 실제 상황]이라는 증산도 도서들이 훨씬 재미나게 서술되고 편집된 책들이다.

 

본서에서도 탄허 스님의 월출산 영봉에 물이 차고 그 수면에 달이 비치고 나면 30년 후에 여성지도자가 한반도에 등장하고 그로부터 삼사년 후에 남북이 통일된다는 예언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본서의 저자께서는 그걸 3~4년 후로 보고 자기 종파가 남북을 통일한 종파라고 주장하는데 그건 너무 억지 해석이다. 동양에서는 삼사년이라고 한문으로 기록했다고 하면 이는 3~4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12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팔 청춘은 16세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한단고기인가 삼국유사인가에서 웅녀가 환웅님께 참사람이 되기를 청하고 참사람이 되는 수행 기간으로 받은 기간이 삼칠일인데 이 또한 3~7일이 아니라 전통적인 해석대로 21일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탄허 스님께서 말씀하신 여성지도자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할 때 그녀의 취임 연도인 2013년에서 탄핵 연도인 2017년에 12년을 대입하면 2025년에서 2029년 사이 남북이 통일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모든 예언은 맞을 때도 틀릴 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할 때 이 시기까지 판단은 보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쨋건 증산 강일순 선생과 탄허 스님의 에언을 동시에 보면 2025년에서 2029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며, 이 전쟁은 세계의 향방을 가르는 전쟁으로 비화되는데 한반도 내에서는 군산에서 대감염병이 서울 경기지역까지 전파되는 과정에서 전세계로 확산되고 한반도 내에서는 49일로 팬데믹이 완화되지만 그즈음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은 중단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즈음부터 시작되어 세계단일 정부나 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세계기구의 출범이나 기존 UN의 권한 강화가 있을 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나로서는 예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퍼즐을 맞추듯 결합하며 재미를 느끼는 편이지만 이 시대답게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재해석 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한반도가 과연 우주의 기운이 서리는 풍수적인 대우주의 길지라는 해석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가를 보자. 만약 한반도의 풍수가 그런 고차원적인 길지였다면 중국이 유사 이래 한반도 내 국가들과 사신을 서로 왕래하면서 한반도의 풍수를 파악하지 못했을리 없다. 일본이 한반도의 풍수가 일본 풍수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자 한반도 각지의 명지에다 대못을 박아 넣은 사례들을 보더라도, 풍수를 신봉했던 동아시아 전체에서 왕중왕인 중국이, 우주 최고의 명당이 한반도였다면 한반도를 침공해 중국 역대 정권들의 수도로 삼았던가 우주의 기운이 한반도로 흘러가지 않도록 여러 방법들을 간구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의 흐름을 볼 때 한반도가 전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의 명당이라는 논리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강일순 선생이 하나님이라니 예수가 구약이라는 유대인들의 성경에서는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탈바꿈된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는 뻘소리가 아닌가 싶다. 예수는 자신이 죄인들을 위해서 왔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구약에서도 아담과 하와의 지혜의 열매를 먹은 죄를 원죄라며 그 죄가 인류 전체에게 계승되기에 그걸 대신 속죄하기 위해 예수가 처형당했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는 유대인들은 신봉하지 않는 주장이다. 유대인들은 아담과 하와의 죄가 계승된다고 믿지조차 않았다. 구약에서는 사람이 죄짓지 않고 사는 날이 없기에 죄인이라고 말했으며 유대인들에게 죄란 그렇게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과 같이 잠시 노선을 벗어나는 걸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 것을 예수의 제자들은 죄인의 개념을 극대화해 예수를 신격화하는 데 이용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신격화하기 위해 독생자 개념을 창조했고 다윗의 자손 중에 베들레햄에서 태어나는 이가 메시아가 된다는 유대인들 경전의 전승을 예수에게 덧쓰우려 예수와는 관련도 없는 예수의 양아버지의 계보를 다윗과 연결 지었다. 그게 억지인 것은 복음서들마다 예수 양아버지의 다윗 족보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또한 나사렛에서 출생한 예수를 메시아가 베들레햄에서 출생한다는 전승에 억지로 꿰어맞추려 예수 출생지를 베들레헴으로 조작했다는 것도 예수의 사촌 동생인 요한의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베들레햄 출생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자매인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 출생지를 잘 알겠나 전혀 남인 복음서 작성자들이 예수의 출생지를 더 잘 알았겠나는 이미 답이 나온 의문이지 않은가 말이다. 예수는 자신이 독생자라고 한 적이 없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며 다른 모든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다. 독생자이자 하나님과 동격이라고 자신을 호도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만약 예수가 그랬다면 그는 그냥 MAST(신의 광인)일 뿐이다. 미친놈이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도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으로 화현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도 그냥 MAST일 뿐이다.

 

강일순님이 하나님이라면 전지, 전능, 불멸, 편재해야 할 일인데 자신이 인간들을 죽이고자 대감염병과 대전쟁의 시대를 기획하고는 다시 그를 막겠다며 천지공사를 한다? 그게 전지하고 전능한 존재가 하는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이라면 애초에 완벽한 계획을 세웠어야 한다. 또 그걸 수정하는 과정이 제한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강일순 선생이 인류가 겪을 대재난의 수위를 낮추려 행한 과정을 천지공사라고 하는데 인류가 겪을 일을 축소했다고 주장하나 그것은 그의 주장일 뿐 증명할 수 없으며 증명된다고 해도 전능한 하나님이라면 무효로 만들면 되지 축소하는 정도 밖에 못하는 건 또 뭔가? 그리고 그는 죽었다. 불멸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속성 중 무엇 하나도 없었는데 하나님이라는 논리가 말이 되는가?

 

그리고 그는 인간이 대감염병을 겪는 이유와 전쟁을 겪는 이유를 인간의 독기와 살기 때문이며 이 모든 과정은 해원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견 맥락 지으며 스토리로서 원인과 조건과 결과를 찾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혹할 만한 논리다. 모든 것이 무작위라거나 우연일 뿐이라고 하는 말보다는 대중이 혹하고 솔깃한 해석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감염병도 대전란도 결국에는 치밀한 기획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5나도 하얀 신발도 몇몇 초극부층이 후원하던 중국의 실험실에서 발원하였거나 그들이 투자한 제약사들에서 하얀신발이 출시되었고 투자한 초극부층들은 팬데믹 시기 동안 천문학적인 부를 창출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AI와 로봇 기술이 대대적으로 실용화될 시점을 앞둔 초대량의 실업자들이 쏟아져나와 초극부층들의 세금으로 전세계 시민들 대다수를 복지 부담으로 부양해야 할 미래를 생각할 때 상당히 시기 적절한 팬데믹이었다. 대전쟁(세계대전)과 반복되는 팬데믹은 초극부층의 복지 부담을 절대적으로 감소시키며 새로운 사회구조와 경제체제를 불러오는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말이다. 이런 효율을 그럴 힘을 가진 이들이 시행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비합리적인 기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전란과 대감염병은 인간의 독기와 살기나 쌓인 원한이 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냉철한 이성과 살벌한 판단력이 불러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독기과 살기가 불러오는 것이 아니냐 쌓인 원한이 그런 인물들을 키워내 인재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전인수적인 해석이다. 강일순님은 이 상황을 인간들의 기획이나 계획의 실현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사태의 표면만 비전으로 볼 수 있었거나 기존의 예언들을 기반으로 예측했을 뿐 현상의 이면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예수는 성전에서 환전상을 공격했는데 나로서는 그가 환전상을 공격한 것을 성스러운 곳에서 이윤 추구만을 하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때로서는 먼 미래인 현재의 세계상을 비전으로 보고 금융가들을 주축으로 한 초극부층이 세계인들 다수를 죽이는 것을 예지하고는 그것이 화가 나 그들의 기원이랄 수 있는 환전상을 공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신도 숫자가 더 많다고 소수인 환전상과 그 경호원들을 짓밟으려 한 깡패 양아치일 뿐인 존재가 예수였단 말인데 나로서는 그리 보지 않는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인데 군 시절에 본 증산도 서적에서 강일순님이 미래에 벌어지는 판을 역변시키는 존재를 상씨름꾼이라며 그 판 밖에서 판의 흐름을 좌우해 버리는 상씨름꾼을 자신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고 있다. 나는 그가 상씨름꾼이라고 말한 그 인물이 메시아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그를 보혜사라고 칭했는데 어떤 호칭이었든 대환란의 시대에 대환란을 뒤바꾸는 존재가 예견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존재가 바로 메시아가 아니겠는가? 그보다 먼저 온 존재들이 그 미래를 보고 그를 자신이 보냈다거나 그는 자신의 일을 대신하는 보혜사라고 칭하는 것은 그들의 망상이 불러온 해석이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앞서와서 문제를 예견하는 자는 예견자일 뿐이지 문제를 진짜 해결하는 사람이 진짜 문제해결자인 것은 당연한 이치라 본다. 지가 독생자라는 사람도 지가 하나님이라는 사람도 문제의 시기에 오지 않았고 예견만 했을 뿐이지 않은가? 기출문제에 아마도 고난이도의 문제가 등장할 것이다라고 예측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이 문제해결자인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문제를 예견만 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기존의 예언을 혼합하고 예측되는 미래상까지 더해 예언을 해 보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예언 정보 마니아와 미래 예측 정보 마니아라면 누구라도 이전 예언자들 못지않게 그럴듯한 예언을 할 수 있다. 예수든 강일순이든 먼저 와서 미리 말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해당 시대에 살며 해당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문제해결자이고 메시아일 것이다.

 

본서에 대한 감상은 재미 삼아 볼 만은 한데 [이것은 개벽이다] 시리즈처럼 재미나지도 않고 분량도 조금 아쉽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벽이다]가 너무 월등한 클라스인 것이 사실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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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할 필요 없는 타로 웨이트 카드 세트 - 타로카드가 처음인 사람을 위한
미미코 지음, 김수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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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네요. 암기할 필요가 없다고 내세울 정도면 카드 간의 연결과 맥락을 스토리텔링으로 좀 더 이해가 용이하고 회상하기 쉬운 방식으로 풀어냈어야 할 텐데 그런 부분에서도 미흡하고 상징 해석도 간결을 너머 모자란 수준입니다. 그냥 다른 책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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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 우리가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맹성렬 지음 / 생능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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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물리학자들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대중은 물리학자로서가 아니라 UFO 전문가로 또 [UFO 신드롬]이란 저작의 저자로서 그를 기억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나로서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몇 가지 소개하는 정보 말고, 충실한 하나의 저작으로서 UFO에 대해 전달하는 책은 그의 [UFO 신드롬]이 처음이었다. 워낙에 넓게 다룬 내용이라 그의 책만 읽고도 20세기에는 해박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21세기 이후에도 몇 차례 개정판을 출간하기도 했다는 데 개정판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본서는 [UFO 신드롬]을 그저 UFO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새로운 종교의 양식이나 방식으로 접근한 책을 출간하려다 출판사의 편집으로 의도와는 다소 다른 책이 출간되었다는 내용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1995년의 한국의 UFO 사례와 현재 UAP로 바뀐 미국의 UFO에 대한 반응과 대응들 그리고 1947년의 로스웰 사건을 비롯한 그 당시 출몰한 UFO에 대한 미국에서의 목격 사례 그리고 1952년 미국 백악관 상공에서 시위하듯 위협하듯 집단으로 출현한 UFO 출현 사례 또 미 해군의 목격과 촬영 영상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오무아무아의 특이 비행 사례까지도 언급하고 있어 분량에 비해 상당히 폭넓게 다룬 저작이다.

 

사실 UFO는 미국 백악관만이 아니라 21세기 어느 정부 시기 청와대 상공에서도 목격되어 뉴스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도 이젠 UFO가 존재하느냐 마느냐가 논란이던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된다. 실제 목격 사례들도 즐비한 편인데 나로서도 2002년인가 2003년경 당시 교제 중이던 여친의 차 안에서 목격한 적이 한 번 있고 2023731일 거창에서 목격되었다는 시기 즈음에 목격했었다. 기존의 비행기와의 차이는 비행 속도에서 큰 격차를 보였다. 아마 눈을 깜빡이던 순간이었다면 목격을 못 했을 수도 있다.

 

20세기의 나는 UFO를 우주에서나 지구 공동설에서 말하는, 인류가 아닌 지구내 지적생명체들에 의한 현상으로 확신했다. 지금은 20세기 후반부터 목격된 UFO의 경우에는 인류가 개발한 신형비행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고대부터 기록되고 있는 비행체는 한국에서도 조선시대 목격 사례가 기록으로 남아있고, 일본 에도시대인가 일본 기록으로도 남아있는 UFO 목격(조선)이나 추락과 함께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생존자들(일본 에도시대)에 대한 기록 등은, 그 당시의 상상력만으로는 허위로 기록하기 쉽지 않게 구체적으로 기록이 남아있다 보니까 거짓이라고 판단하기 쉽지 않은 사례들이다. 사실 캐틀뮤티레이션(X-파일이란 미드에서도 등장하고 동아 출판사 리더스다이제스트 편집부의 [상식의 허실]이나 [세계 진문 기담]에서도 등장하는 사례)이라고 주로 소를 피 한 방울 안내고 구멍을 내어 특정 내장만 적출한 20세기 초의 사건들이, 본서를 보면 20세기 후반인 1990년대에도 같은 지역에서도 보고되고 있다고 하는데, 저자의 말로는 이것이 북미 원주민들의 전설로는 아주 먼 옛날부터 그 지역에서 목격되는 사례들이라고 한다. 이런 사례들과 르네상스까지의 유럽 미술에서 등장하던 그림 한 켠의 비행체 묘사나 남미의 벽화와 이집트 벽화에서 등장하는 비행체와 비행사 묘사 등은, 지구의 과학 발전사를 볼 때 인류의 상상력만이라거나 인류가 그런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근거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20세기 초기까지 목격된 UFO는 분명 외계이거나 지구 공동 내부에 사는 지적생명체들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조선의 기록으로도 솥뚜껑 같이 생긴 물체가 하늘 높은 곳에 머물다가 돌연 위로 치솟으며 사라졌다고 기록되어 있고 일본 에도시대 기록에도 상공에 떠 있던 원형의 물체가 바다 가운데로 떨어져 그 물체와 내부에 있던 파란색 피부의 남녀 아이를 구조했다는 기록이 구체적인 정황을 담아 남아있다.

 

UFO20세기 초 목격 사례를 보면 음속의 20배로 추정되거나 보통 음속의 7~9배의 속도로 보이는 비행 속도를 보였다고 하며, 나뭇잎이 떨어질 때처럼 지그재그로 하강하거나 상승하고 수직 상승과 하강이 자유롭고 직각으로 비행했다는데, 20세기 초로서는 이런 비행이 가능한 지구내 비행선이 전무했다. 음속을 돌파한 게 겨우 1952년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음속 돌파 후에도 한참을 이런 비행 궤적을 인류가 구현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이런 수준의 비행이 가능한 비행체를 만들자면 인간의 기술로는 원자력 에너지로 운행해야만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1953년인가 인류는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을 건조했고 이 역시도 비행체에 탑재할 수준으로 원자로를 초소형화하는 건 이 당시에는 불가능했다. 결국 20세기 초반과 중반까지 목격된 UFO는 인간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1947년 로스웰 사건 즈음부터 미국내에서 UFO들이 다수 목격된 것과 1952년 미국 상공과 백악관 상공까지 다수의 UFO가 편대를 이루며 위협하듯 출현(당시 미국 방송과 기사로는 미국이 대공포를 쏘아대며 UFO를 공격했지만 전혀 격추하지 못했다고 한다)한 것을 약간의 억측을 동원하자면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과학자이든 정치 경제적 인물이든 그들 문명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 중요 인물인 외계인을 (로스웰의 UFO 추락에서 외계인 생존자를) 미 정부가 나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외계문명이 그를 송환하도록 하기 위해 UFO 편대가 미국 상공에 떼로 출몰하고 미국 백악관 위협이 실재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미 수뇌부와 외계인 간의 협약이 있었기 때문에 외계 기술을 도입해 인류가 UFO와 같은 비행이 가능한 앞선 기술의 비행체를 빠르게 제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20세기 후반부터 현재 출몰하는 UFO는 인류가 건조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일반인으로서는 사실이 무엇이든 그 정보에 접근하기 힘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뿐이라 다양한 SF 소설과 드라마, 영화들이 풍성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참 고급진 재미와 위협이 가득한 세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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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목도 좋으시군요.

이하라 2024-04-21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부분에서 안목이 좋다는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전트 외 지음, 정미나 외 옮김 / 자음과모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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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본서를 읽기 전 본서에 관한 검색을 하고 예비지식이라고 배경 정보를 갖고 있었다. 방송작가와 PD가 미스터리를 추적하다가 예수가 죽지 않고 프랑스로 이주했으며 막달라 마리아와 2세를 낳아 지금까지 후손들이 이어졌고 카톨릭 교회에서도 이 비밀을 알고 있으며 그 후손들에게 지속적인 지원금을 후원해 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보는 일부 맥락은 맞지만 잘못된 정보였다. 저자들이 방송작가이거나 PD인 건 사실이 아니었고 로마 카톨릭에서도 예수의 후손들에게 후원금을 지급해왔다는 얘기는 낭설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며 죽지 않았고 프랑스로 이주했으며 막달라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아 대를 이어 지속되었다는 부분은 본서의 주장이 확실하다. 이게 본서의 핵심 주장이다. 이 주장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추적을 초반부터 보여주며 미스터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서술해 가고 있기도 하다.

 

본서의 주장이 추적으로 이어지는 과정 대로의 키워드를 보자면 렌르샤토, 소니에르, 카타리파, 성당기사단, 시온수도회, 장미십자회, 메로빙거 왕조, 로렌 공작, 성배, 성경, 외경, 바실리데스, 라자로, 막달라 마리아, 베다니아의 마리아, 십자가 처형 사기 등으로 흐름이 이어진다. 하지만 몇몇 대목은 특히나 성배에 관한 대목은 영화의 속임수인 맥거핀 급이라고 할 수 있을 지경이다. 성당기사단과 성배에 관한 내용으로 전개되며 시온수도회를 소개하는 것은 프랑스 왕조와 시온수도회를 연계 지으며 프랑스 왕조의 비밀과 진짜 성배인 왕조의 혈통에 대한 부분을 시온수도회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결론으로 이를 수 있기는 하지만 그에 부수적인 연결점들에 과도하게 주목하게 만드는 대목은 맥거핀과 다름없었다고 본다.

 

본서는 이 책을 117일에 출간하려다 그러지 못했다고 117일을 중요한 날짜인 양 주지시킨다. 렌르샤토에서 하나의 비밀을 알아내고 교황청과 프랑스 왕조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은 소니에르라는 인물에 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그도 117일에 사망했다. 이후 또 한 번의 117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도 그것으로 끝이다. 이 또한 맥거핀이다.

 

어찌되었든 소니에르는 렌르샤토의 성당에서 어떤 비밀에 접근하였기에 교황청과 프랑스 왕조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에서 저자들은 그것이 보물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유형의 보물이 아닌 비밀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 과정에 예수의 신성과 십자가형 죽음을 부인하는 고대 보밀파의 유파인 카타리파 이야기가 등장하고 이들과 성당기사단의 이야기가 전개되며 성배에 관한 궁금증을 증폭시켜나간다. 그리고 성당기사단의 기원을 시온수도회라고 보며 시온수도회의 성립에 프랑스 왕조가 개입하였으며 중요하지는 않지만 장미십자회 등 비밀단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여정에서 귀결되는 것은 성배라는 것의 진짜 의미는 해당 어휘를 풀어나가면 성스러운 왕족, 성스러운 혈통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메로빙거 왕조가 등장한다. 메로빙거의 선조인 종족의 상징은 곰이었고 이는 그들 왕조의 인물들에 우르수스라는 명칭이 이어졌다는 것, 그리고 곰이 웨일즈어로 arth인데 그로 인해 아서왕과도 연계된다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프랑크 왕조의 초기 왕조의 혈통은 이후 그들의 후예인 로렌 공작의 등장과 함께 다음 왕조와 로렌 가의 정략 결합으로 메로빙거의 혈통이 이후 프랑스 왕조로 대대로 이어져 왔다고 한다.

 

성배는 성스러운 혈통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성스러운 혈통은 결국 메로빙거 왕조의 혈통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혈통이 도대체 왜 성스럽다는 것일까?

 

이후 이야기는 성경과 외경들을 근거로 해서 전개되는 데 이전 이야기들이 아마도‘~일 수 있다’ , ‘~ 일 것이다등 가정형 화법과 억측과 비약과 단정이 이어졌던 것과 같이 가정과 억측과 비약과 단정이 어우러져 있다.

 

본서 후반부의 핵심 내용은 바실리데스(서기 120~130년의 저술가)의 주장이 [나그함마디 문서] 중 하나인 [위대한 셋에 관한 두 번째 논문] 사본에서도 발견되며 다른 외경인 [빌립보 복음]에도 등장하듯이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으며 키레네의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수 대신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말이다. 또 다른 외경인 [베드로 복음]에 의하면 예수가 사랑한 제자라는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라는 인물과 본디오 빌라도는 지인이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그를 근거로 빌라도가 예수와 짜고 그의 십자가형을 사기로 실행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경과 외경을 두루 보면 예수의 십자가형을 받은 처형장이 골고다 언덕이 아니며 무덤 하나가 있는 한적한 언덕이었다고 하며 그렇기에 사기를 치기에 적당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 이유는 예수가 당시 사회를 전복하려는 과격단체 열심당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만 해도 예수의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칼을 주러 왔다며 칼을 갖추라고 명령했고 칼이 없는 자는 칼을 사라고 종용했으며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제자들이 칼을 지닌 걸 보고는 흡족해했다는 내용들이 신약의 복음서들에도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자들도 도둑이 아니라 열심당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목이 마르다고 하자 해융(스펀지)에 신 포도주를 적셔주었는데 그건 의식을 잃을 때 의식을 차리게 하는 고문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경 기록대로면 그 의식이 깨어나게 한다는 신 포도주를 입에 적시고 예수는 오히려 사망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게 마취약으로 죽은 것처럼 만들어 처형된 것처럼 사기를 쳤던 것이라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형벌과 처형을 감당한 건 예수가 아니며 키레네의 시몬이었고 예수는 숨어서 그 과정을 훔쳐보기만 했다는 주장이다. 예수에 대한 기독교의 기본 주장과는 대치되지만 많은 기독교 고대 종파와 외경들에서 언급되는 내용이기에 무조건 배척할만한 내용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의 아내인 막달라 마리아와 프랑스로 이주해 대를 이어 프랑스 왕조로 자신들의 혈통을 이어나갔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라는 주장의 근거를 저자들은 예수의 물을 포도주로 바꾼 첫 이적에서도 찾는데 당시 예수가 만든 분량의 포도주는 600리터로 포도주 800병에 이르는 것으로 이만큼이면 큰 잔치에서 쓰이는 양이고 당시에 참석자들이 신랑을 불러 칭찬하는데 그 시대에는 결혼식 이후 잔치를 주관하는 것은 신랑으로 예수가 포도주를 대접했다면 바로 예수 자신의 결혼이라는 주장이다. 또 당시 예수는 랍비라고 불렸는데 유대교 율법서를 보면 결혼해야만 랍비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의 이동 경로가 굉장히 먼 거리인데도 성경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연이어 등장했다고 하는데 당시 남편과 동행하지 않고는 여성에게 이동의 자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부활시킨 라자로의 여동생인데 예수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고 예수가 당도했을 때 상복을 입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도착 후에도 나오지 않다가 예수가 불러서 나왔다고 한다. 그에 대해 저자들은 당시 관습으로는 상복 입은 여자는 밖에 나올 수 없고 오직 남편의 부름에 의해서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혼인한 상태였다는 것이 저자들 주장이다. 라자로의 여동생과 막달라 마리아와 향유로 예수의 발을 씻어준 베다니아의 마리아를 저자들은 모두 한 인물로 보고 있는데 그에 대한 근거가 명확한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예수가 자신은 독신주의자라고 언급한 적이 없으며 언제나 결혼에 대해서 중요하고 반드시 치러야 하는 중대사로 언급했으며 결혼한 사람만이 될 수 있는 랍비가 된 것만으로도 그가 결혼했다는 증거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예수에게 후손이 있었다는 건 빌립보 복음서라는 외경에서 인자의 아들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는 걸 근거 삼고 있다.

 

나로서는 예수가 살아남았다는 건 믿어지는데 그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것과 프랑스로 이주해 메로빙거 왕조의 선조가 되었다는 건 억측이라고 생각된다. 살아남았다는 것에 관해서는 예수 시기와 예수 사후로 일컬어지는 시기의 초기 기독교 분파들과 아포크리파들이 그의 십자가형 사망을 부정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예수의 신성마저 부정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예수의 사망과 부활을 믿지 않았거나 사실이 아닌 걸 알고 있던 대중이 많았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이런 판단에 사실적 배경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찬들이 본서를 욕하면서도 본서의 내용처럼 예수님께서 살아서 행복한 삶을 사셨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것 같다. 본서는 학술서나 연구서라기보다는 소설이라고 생각되지만 읽어보기에 나름 흥미진진하고 재미지다. 기독교인들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만한 소설 같은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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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 -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 미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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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JESUS MYSTERIES]이다. 예수는 신화일까 역사일까 미스테리다라는 의미와 그 당시 존재하던 이교의 가르침과 의례들을 미스테리아로 칭하면서 논하는 서이기에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제목이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한국어 제목 자체가 도발적이기에 이후 [예수는 역사다][예수 신화? 예수 실화!] 등에 제목의 저작이 잇따라 출간되기도 한 모양이다. 나로서는 본서가 있다는 사실을 안 시일이 얼마 되지 않아 그런 내용을 알지 못하다가 본서를 검색하다 보니 여러 유사 제목의 책들이 출간되어있는 걸 알게 되었다.

 

본서는 예수 이전 시대부터 예수의 수태와 탄생과 생애, 죽음과 부활, 그 가르침까지 예수라는 존재의 전부가 예수 탄생 이전부터 존재하던 이교의 신적 존재의 역사와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예수는 실화가 아닌 신화였다는 내용이 근간을 이루는 책이다. 본서를 보면 예수라는 존재의 전승 하나하나의 원본 텍스트를 제시하고 있고 본문에서는 매끄러운 서술을 하기 위해 빠르게 전개하고 있지만 (본문만 390쪽에) 120쪽에 이르는 후주가 존재하는 책으로 그 하나하나의 근거가 무언지 깊이 천착하며 공부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내용이다.

 

이미 [성서의뿌리 구약편][성서의 뿌리 신약편], [법화경과 신약성서] 등을 통해 예수를 믿는 종교가 그 이전부터 오랜 역사를 통해 존재해온 다른 종교의 내용과 가르침을 표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과거에도 [2의 성서 아포크리파],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이것이 영지주의다], [유다복음서, 진실 혹은 거짓?] 등의 책과 방송을 통해 영지주의와 그 원류가 되는 가르침에 대해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이토록 예수는 표절이며 신화일 뿐이다라는 논지를 전개하는 책이 참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긴 세월을 예수는 실존했고 그의 생은 역사이며 실제라고 믿어왔었기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본서는 예수를 믿는 종교의 전제인 예수 자체가 신화의 짜깁기이지 실체가 없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초기에서부터 신약성서가 갖춰지며 교세가 안정되기까지의 역사도 서술하고 있다. 예수의 생존 당시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시대의 문장가들, 학자들은 누구 하나 예수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주장하는 예수의 실존 증거라며 내세우는 기록들은 모두 그리스도교의 교세가 확장된 이후 로마의 학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어 남긴 것뿐이라고 한다. 이는 실제로는 총독이었던 적이 없고 로마에서는 그저 사령관이었던 본디오 빌라도를 그리스도교가 로마에서 확산한 이후 그리스도교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총독으로 기록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예수 사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나 본디오 빌라도가 사령관이 아니라 총독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이다. 예수에 대한 기록도 당시 이적을 보이며 이스라엘 지역에서 선동을 하던 사람들 중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로마 기록에는 그들 중 십자가형을 받은 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처녀 수태, 생존시에 보여주는 이적,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등은 예수 이전 몇백 년 전부터 존재하던 타종교들에 신적 존재들의 내용을 그리스도교가 그대로 표절했으며, 그 가르침의 내용 역시 타종교 텍스트에서는 미스테리아로 옮기는 영지주의의 원류가 되는 이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표절한 것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를테면 원래 복음서 중 하나에서 예수의 부활에 대해 동굴에서 시신이 없어진 것을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성들이 목격했다고 부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예수가 부활하고 제자들이 확인하는 과정이 추가되었고 다른 복음서들도 그 복음서를 텍스트로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본서의 저자들은 예수를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다른 신화의 내용을 표절하며 창조된 인물로 영지주의자들이 그를 동물적 자아의 죽음과 함께 신적 자아의 각성을 은유하는 존재로 상징하려 한 것과는 다르게 문자주의자들(현재의 기독교를 전승하게 한 초기의 예수는 역사다주의자들)이 그를 무리하게 역사적 인물로 확정하려 갖은 모략을 써서 현재의 기독교가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베드로의 편지 등의 기록 등에서도 예수의 생애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그의 죽음만이 회자되고 있다는 것도 저자들이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리고 본서의 제목마따나 미스테리아라는 예수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영지주의의 원류가 영지주의로 계승된 후 문자주의자들과의 격돌이 있었고, 이 둘은 무수한 종파로 나뉘었는데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 반강제적으로 이들 전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교 주교의 기록으로는 내 안에 있는 상대의 교리를 찢어발겼으며 상대 안에 있는 나의 교리를 찢어발겼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교리상 합의될 수 있는 내용조차도 종교회의라는 그 격돌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괴되고 난자되고 만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남아있는 그리스도교는 살과 피와 신경을 모조리 해체당하고 뼈대만이 남아있는 앙상한 종교라는 말이 된다.

 

기독교도도 인정하는 내용 중 하나는 바울이 초기 그리스도교가 성립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와 그의 후대에도 이단을 징죄하며 그리스도교의 본체를 확립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말이다. 문제는 바울이 상당히 영지주의를 중시했으며 바울이 남겼다는 영지주의 문서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CE 160~220년 생존했던 테르툴리아누스라는 문자주의자의 이단을 비판하는 기록은 후대에도 줄곧 인용되리만치 명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적극적인 문자주의자이며 이단비판자였고 여성차별주의자여서, 당시에 주교와 예식 주도자와 일반교인의 역할을 집회할 때마다 제비뽑아 결정하며 여성과 남성의 무차별까지 모든 방면에서 전혀 차별없이 진행되는 종교모임을 갖던 영지주의자들을, 주교의 권위와 남성우월주의를 유지하는데 적대적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문자주의자들과 테르툴리아누스는 영지주의자들 전체를 적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논란이 될만한 것은 그도 그의 생애 후반기에는 영지주의자로 전향했다는 것이다.

 

본서는 예수가 실제했느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성립과정과 예수라는 인물이 설정되는 과정까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정치적 목적으로 그리스도교가 강제적으로 통합되는 과정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지주의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 영지주의가 그 당시까지 존속했던 타민족의 미스테리아를 표절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저자들의 표현으로는 차용하고 수용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문자주의자들은 이후 자신들 이전에 예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이적과 똑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그 미스테리아와 예수 이전 시대의 전승을 모두 악마의 모방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수가 태어나서 어떻게 살고 죽을지 알고 있던 악마들이 그 이전에 그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이적을 모방해 예수의 이미지를 깎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악마들이 성스러운 대상을 전도시키려던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 문자주의자들의 주장을 이 시대에 대입하자면 500년 전 곡을 그대로 모방한 작곡가가 (예전의 아름다운 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다고 말하면 될 것을) “내가 이 곡을 작곡하려는 걸 500년 전에 미리 안 악마가 나를 표절한 것이다라고 앙탈과 억지를 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수준의 억지라면 도둑이 따로 없어 보이고 이걸 믿는 것도 바보가 따로 없는 것 같다.

 

본서는 한국어 제목을 주지하고 읽으면 예수는 실제했는가 그리스도교는 신앙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종교인가라는 데 주의하며 독서하게 되고, 영문 제목에 관심이 꽂히면 미스테리아란 무엇인가 영지주의란 무엇인가에 주의하며 읽게 된다. 나그함마디 문서에 대한 이해와 고대 이교의 종교들에 대한 연구에 비교종교학적 견해가 더해져 집필된 저작이라 크리스찬이 읽게 되면 영지주의에 대한 관심까지 확장될 테고 비신앙인과 무신론자들이 읽는다면 그리스도교의 실상을 알게 된 것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카톨릭과 개신교 역시 그 역사 속 불법과 범죄들과 함께 신앙인들에게 준 마음의 평화 또한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본서에서 그리스도교 초기에 영지주의자는 구약성서는 신이 인간에게 저지른 범죄를 나열한 목록서라고 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문제 많은 신이 문제 많은 인간을 창조했고 그렇기에 인간 세계가 문제투성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 문제들을 양산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류 문명이 발전해 온 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나도 한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단순한 주지만 시키고 인간을 세계로 내보낸 것은 바이러스나 암처럼 증식만 하라는 것과 무엇이 달랐나 싶었지만, 인간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취하고 의미를 찾으라고 했다고 한다 해도 그 모든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재 자체에서 만끽하는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생육하고 번성하는 과정(살아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살아있음을 만끽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생각이 이르니 일자()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문제 많은 신이라는 관점도 인간이 자신의 문제 많음을 신에게 투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자들의 주장으로는 구약과 신약의 연결고리를 지은 것은 그리스도교 초기의 문자주의자들이 예수의 존재함의 가치를 신앙인들이 수긍하게 하기 위해 구약을 이용할 필요와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문제 많은 시대에 문제 많아 보이던 신의 이미지가 이용되었던 것이 구약이라면 그 신을 빛이자 사랑으로 진화시킨 것이 미스테리아와 영지주의와 예수라는 상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본서는 예수가 실제했느냐 신화였느냐에 관한 의문에 대답을 얻기 위해 읽기보다는 무엇이 인간과 일자()를 이어주어 왔고 이어줄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며 읽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예수의 실존을 믿는다고 바보라기 보다는 예수라는 상징이 이미 바보였던 인간들을 지혜의 길로 인도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신앙인에게도 신앙이 강화되건 무화되건 간에 읽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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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12-05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 🎉
한 해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이하라 2023-12-05 00: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
저도 북플마니아와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연말 되세요.^^

서니데이 2023-12-05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이하라 2023-12-05 21: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평화로운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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