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은 여느해와 같이 찾아 오건만 올해는 애타는 농부들 마음도 잊어 버렸는지 하늘님은 불볕 더위만 내리고 계시네요.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서울 종로 신영동의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습니다.

500년 전 일이라고 생각하니 대략 서기 1,500년대 초의 일이 아닐까 싶네요.당시는 연산군의 폭정과 그의 폐위 사건이 일어나는 등 조선왕조는 어수선한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 꼴이죠.

 

1,500년초 이 느티나무는 누구에 의해 심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신영동,구기동,평창동 일대가 산세가 수려하고 공기가 청정했기에 멋진 산자락 한 귀퉁이에서 성장하면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었을 것이고 나이드신 분들이 부채를 부쳐가며 곰방대에 궐연을 넣어 '뻐금뻐금'담배를 피워 물었으리라 생각되네요.

 

 

 

느티나무 아래쪽에 자리잡은 느티나무 표지판입니다.

 

 

 

 

이곳은 산허리에 자리잡고 있는데 개발전(1996년 이전)에는 복숭아밭 대표적인 산간 지역으로 촌부들으 숨결이 전해져 오고 있는거 같습니다.무심하고 장구한 세월 속에 느티나무는 세찬 풍상에 허리가 잘려나가고 마치몸에 '깁스'를 하고 있는 꼴입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인지 아무도 찾아 주는 이없는 외롭게 긴 세월을 버텨주고 인근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을 느티나무를 생각하니 수많은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말없이 지켜주고 떠나보내며 다가올 시간과 세월을 어떻게 해야 할지 체념이라고 한듯 쓸쓸해 보이기만 합니다.

 

 

 

 

 

장수목 느티나무를 벗어나 언덕길을 오르다 바라본 북한산 자락입니다.도시개발과 주민들의 이해관계로 산허리는 거개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낮은 산자락은 어김없이 개발업자들에 의해 훼손되고 빌라 및 주택이 들어서고 옛모습은 찾을 수가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듣기로는 구기,평창동은 예로부터 문인(文人)들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산세 좋고 공기 맑은 곳에서 여생을 자연과 벗하며 간서치가 되도록 많은 책을 읽어가며 그 속에서 시와 그림이 발양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 든든하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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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곡물과 야채,과일 등을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해야 하는 요즘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집 베란다에서 야채,화초 등을 가꿀 수가 있어 유기농이라 건강도 챙기고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얼마 전에 상추를 쌈장과 함께 개눈 감추듯 맛있게 먹으니 집사람이 처가 앞뜰에 자라나고 있는 상추 몇 포기를 직접 뽑아오고,나는 스티로폼과 흙을 준비해서 그림과 같이 심어 봤습니다.상추를 심는 것이 첫 경험이라 상추와 상추의 간격도 조밀하고 성장하는데 물을 몇 일 간격으로 주어야 하는지를 몰라 상추 재배 사이트를 들어가 찾아 보기도 하는 등 조그만한 생활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몇 번 뜯어 먹다 보니 상추대가 보이고 식물이 성장하는 과정이 새삼 신비롭게만 느껴지네요.

 

시골에선 어느집에나 지천으로 널려 있고 자라나던 상추를 도회지 생활 속에서 잊고 지낸지가 오래된 탓인지 그 느낌이 신선하게만 다가옵니다.올해 상추 재배의 경험을 살려 내년엔 쑥갓,방울 토마토,오이 등도 심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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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고향 전주는 늘 어머니 품마냥 따스하고 정겨우며 그리운 곳이다.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사당도 경기전에 있으며 교동의 한옥마을의 예스러움,전동 성당,오목대,전주 남문(재래)시장,다가공원,

완산칠봉은 전주를 대표한다.또한 한지도 널리 알려져 종이로 만든 다양한 전통 공예가 한옥마을 박물관에 잘 보존되어 있다.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계신 전주 본가는 어머니 혼자서 집을 지키고 고독하게 살아가신다.

곁에 남동생이 자주 안부전화하고 먹을 것도 사다드리고 심심하지 않게 가까운 곳에도 여행을

보내신다.처녀와 같은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칠십후반에 이르렀다니 세월이 책장 넘기듯

빠르게 흘러감을 실감한다.이번 철도 자유이용권은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다니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는 된장찌개,갓김치,명란젖갈이 생각이 나고 단 며칠이라도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가스레인지에 올려 놓은게 있어 멀리 못나간고 대문 앞에서 "잘 가라"고 인사하신다.

 

 

 

 

 이제 고향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무궁화호가 전주역에 도착하는 순간이다.어머님이 싸주신 묵은김치,마늘,찐계란을 들고 일상을 준비해야만 하는 시간이다.천성이 다정다감함을 겉으로 표현할 줄 모르는 어머니이지만 "줄 것은 이것밖에 없다,행복하게 잘 살고 내 걱정은 하지 말아라"라고 하신다.그것만으로도 부모지간의 따뜻한 혈육의 정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여독이 풀리고 눈을 뜨니 한적한 시골마을의 봄의 정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멀리로는 나즈막하게

겹겹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어 중앙엔 몇 백년된 느티나무가 동네의 역사를 굽어보며 '생로병사'했던

사람들을 기억이라도 하는냥 또렷하고 듬직하게 서있다.마을을 끼고 흐르는 작은 내는 어린시절 물장구와 잘잘한 민물고기를 잡았던 시절로 되돌아가게 한다.여수 엑스포가 있어서인지 행락객들로 기차안은

인산인해이고 질퍽한 얘기와 무심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로 가득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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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샘 추위도 시들어지고 화사함을 더해가는 봄날엔 본가 초가집 근처에는 논두럭을 따라 가다 보면 감나무와 복숭아 나무가 잎사귀와 꽃을 앞다투어 피기 시작한다.감꽃은 잎이 넓적하게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복숭아꽃은 감나무꽃보다 먼저 봄기운을 사위에 전하고 복숭아꽃(복사꽃)은 수줍은 처녀와 숙맥인 총각이 달빛 아래 자리를 깔고 소곤소곤 사랑을 엮어 가다 보면 그 향기에 취하고 사람 냄새에 밤새우는 줄을 모른다.

 

복사꽃은 벚꽃과는 달리 피고 지는 시간이 길지만 지루하지 않다.꽃이 지고 잎이 푸릇푸릇 여름을 향해 달려 가면 잎사귀들 틈속에서 아기 복숭아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껍질에는 사춘기의 남녀마냥 털이 조밀하게 묻어 나고 농부는 생산성과 수익을 위해 불필요한 아기 열매를 솎아내면서 봉지 씌우기 작업에 들어가면서 종자에 따라 초여름부터 늦여름에 이르기까지 복숭아는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

 

어린 시절의 복사꽃이 필 무렵 바닥에 떨어진 사춘기의 열매를 따서 시냇물에 털을 씻겨 내고 '우적우적'씹으며 놀던 복숭아는 지금도 꽃이 피고 사랑을 나누고 정겨움마저 안겨주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아니면 너무 늙어서 베어지고 다른 과목(果木)으로 변했을지 눈에 삼삼하게 떠오른다.

 

 

 돌나물 역시 봄이 되면 돌머리,돌틈 사이로 쑥,냉이,씀바귀들과 함께 흐드러지게 자생한다.가재를 잡으러 가는 길목엔 회색빛의 돌들이 돌나물을 껴안고 입맛없고 반찬거리 궁한 아낙네들의 칼집이 바쁘게 아가고 저녁거리엔 돌나물에 갖은 양념을 섞어 무쳐 찬밥에 쓱싹 비벼 행복하고 든든한 한끼의 시간도 도회지로 올라와 사는 나에겐 잊을래야 잊을 수없는 봄날의 기억이다.어머니가 식구들에게 함지박만한 양푼에 찬밥과 돌나물을 비비고 있으면 새콤하게 퍼지는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바둑이의 출출한 운도 그 눈빛에 역력하게 쓰여져 있었다.먹고 생존하는게 인간의 본능이기에 돌나물밥은 꿀맛보다도 더 달콤하고 먼저 먹는 사람이 한 숟가락이라도 빼앗아갈까봐 '개눈 감추듯'식성이 좋았던 사춘기 시절의 돌나물밥도 이제는 돈 주고 사먹어야 하니 산골 벽지에서 나고 자란 내게 봄날의 정겹고 풍요롭고 인심이 좋았던 시절은 눈을 감아야 떠오르는 오랜되어 헐겁게 변한 흑백사진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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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자유이용권의 행운 | 기본 카테고리 2012-04-25 14:29
http://blog.yes24.com/document/6346902 복사 트위터 보내기 Facebook 보내기 Yozm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me2day 보내기

 

 모(某)출판사에서 행사한 이벤트에 철도 자유이용권의 행운을 안게 되었다.일종의 '프리패스'인데 내게 자유롭게 열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모처럼 마음의 휴식을 삼는 계기가 될거 같다.입석기준으로 3일간 전국 어디라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데 4/27일은 업무라서 토.일을 이용해 마음가는데로 어디론가 갔다 왔으면 한다.

 

 

 

 

 

 발권을 마치고 서울역 광장을 바라보니 구역사와 신역사가 예스러움과 조각처럼 반듯하게 그어놓은 것이 무척 대조적으로 다가온다.일본인에 의해 1925년 르네상스식에 가깝게 돌과 벽돌로 축조된 서울역은 대한민국 철도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웅대하던 구역사는 주인없는 빈집마냥 스산하기만 하다.반면 신역사는 민자역사로 바뀌면서 2004년 개장을 하게 되었는데 온갖 음식점,마트,갤러리 등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해소하는 공간으로 탈바뀜하고 매일 서울역을 이용하는 인구는 어림잡아 백 만명을 넘지 않을까 싶다.늘 바글바글하고 혼잡하며 정신을 놓으면 '코라도 베어갈듯한 분위기'가 서울역 앞이다.

 

 

 

 

 

 구역사 오른쪽엔 독립 열사 강우규 동상이 우뚝 서 있고 왼쪽으로는 노숙자 및 행려들이 정처없이 서성이고 흉한 몰골로 누워 있는 노숙자의 모습에서 서울역 앞은 인간의 존재와 삶이라는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또한 한 교인들이 나와서 마이크를 대고 인간의 죄의식이란 무엇인지 설교하며 여성 교인은 그에 걸맞는 찬송가로 행인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내가 대학졸업 무렵엔 서울역 앞의 대우빌딩이 그렇게도 높고 선망의 건물로 보였건만 대우가 무너지면서 어딘지 모르게 조락(凋落)하고 영원함은 없다는 무상감마저 들었다.화창하고 초여름의 날씨 때문인지 행인들의 복장이 훨 가벼워지고 반소매 차림이 많아졌다.업무관계로 더 이상은 서울역 앞을 서성거릴 수가 없어 총총걸음으로 일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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