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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정상필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냉전세대가 무너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란 세대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할 때는 이미 베트남 전쟁과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가 훨씬 전에 끝났지만, 초등학교 내내 방공교육을 통해 베트남전쟁의 비극 등을 귀에 못이 밖히도록 들었다. 특히 킬링필드는 하루 수업을 빼먹고라도 전교생이 봐야 하는 방공영화의 명작?이었다. 그 후 자라면서 뉴스를 통해 동유럽이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독일 통일이 되고, 고르바초프와 옐친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소련이 붕괴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과 옐친 시대의 러시아의 군부 구테타 과정을 거의 생중계에 가깝께 텔레비젼으로 시청한 것이다. 특히 열친에 대한 소련 군부 세력의 쿠데타 시도는 고등학생의 시기임에도 매우 관심있게 보았다. 뉴스를 통해 소련의 구데타 과정을 보면서 다시금 냉전체제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구테타가 진압되는 과정을 뉴스를 통해 그대로 보면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 나이에 세계 정세에 이처럼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지금의 나도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이런 세계정치의 관심으로 인해 이번에 레디세고 출판사에서 출간한 [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파스칼 보니파스'라는 프랑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 소장이 1945년부터 지금까지 현대세계의 변화 과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냉전과 데탕트, 양극화 이후의 세계라는 3부로 구성되어 있고,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어떻게 냉전체제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붕괴되었는지를 통해 현대 세계의 형성 과정을 심도있게 묘사하고 있다.
먼저 1부 냉전에서는 독일의 패전처리 과정을 통해 어떻게 세계질서가 형성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이고, 제대로 힘을 구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소련뿐이었다. 물론 미국은 당시 핵무기를 통해 소련보다 훨씬 우위의 과정에 있었다. 그러나 얄타회담과 포츠담회담을 통해 미국은 소련에게 많은 부분을 양보했고, 이것은 소련이 전후 동유럽과 아시아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저자는 이 과정을 스탈린의 날카로운 판단과 루스벨트의 안일한 판단의 결과로 본다.
전쟁이 끝나기 전, 독일의 진군에 충격을 받은 스탈린은 소련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위성국을 이용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스탈린은 유고슬로비아의 지도자 티토와 그의 보좌관 질라스에게 "이 전쟁은 과거의 전쟁과 양상이 다르다. 영토를 가진 세력이 그들 고유의 사회적 시스템을 강요하게 된다. 각 세력은 군대가 앞으로 나아간 거리만큼 자신들의 체제를 심을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는 안 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중략- 그러나 루스벨트는 스탈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한 교섭 상대자가 소비에트의 지도자를 독재자로 묘사하자, 루스벨트를 이렇게 반박했다. "나는 스탈린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미고 있소,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만약 내가 그에게 대가 없이 어떤 것을 준다면 그는 어떤 영토이든 합병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이 오도록 나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오." - P 20-1
루스벨트의 이런 안일한 판단의 결과는 동유럽의 대부분, 더 나아가 그리스와 터키까지 소련의 영향을 미치게 했고, 그 후 프라하의 봄 사태와 같이 동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학살과 철권 통치를 경험하게 되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쳐 남북이 북단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혼란기에는 누가 더 냉철하게 현실을 판단하고, 과감하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후에 이어지는 체제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전후 소련이 막강한 힘을 발휘했지만, 미국은 핵무기를 통해 한동안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곧 핵무기를 개발하고, 영국과 프랑스까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세계는 핵전쟁의 공포에 빠지게 된다. 결국 냉전체제는 핵전쟁의 공포 속에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대 세력이 서로를 견제했던 시기이다.
2부 데탕트에서는 이런 냉전체제가 부드럽게 변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데탕트는 냉전체제의 붕괴가 아니다. 저자는 데탕트가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다른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로 인한 핵확산의 방지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이해가 같아지면 가지게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후 미국과 소련은 서로 대화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 과거의 극단적인 대립이 누그러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데탕트 시기에도 위기는 발생햇다. 대표적인 것이 쿠바의 미사일 위기이다. 원래 민족주의자였던 쿠바의 카스트로는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에 대항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다. 그리고 미국의 위협에 맞서 소련을 끌어들이고,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소련은 쿠바에 핵 미사일 설치한다. 원래 미국은 유럽에 핵무기를 배치함으로서 소련에 직접적인 핵 위협을 가할 수 있었던데 반해 소련은 당시 기술로 소련 본토에서 미국에 직접적인 핵무기 위협을 가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쿠바 사태로 인해 역전이 된 것이다. 결국 케네디의 결단으로 이 위기가 타계된다.
비록 쿠바 위기에서 미국이 소련의 양보를 받아냈지만, 그 후 데탕트 시대에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서 여러 전쟁과 대립에서 계속해서 손해를 보게 된다. 반면 소련은 인도차이나반도나 남미, 아프리카, 중앙 아시아 등에서 자신의 세력을 펼치게 되고,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강한 미국을 다시금 주장하게 된다. 그 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로이카 정책으로 소련이 붕괴되면서 사실상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3부 양극화 이후의 세계에서는 소련의 붕괴 이후에 평화로운 세계질서의 가능성이 걸프 전쟁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걸프전쟁은 이란과의 전쟁에서 경제적 위기를 맞은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발생했다. 레이건 이후 강한 미국을 주장하고, 소련 붕괴 이후 세계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며 걸프전쟁이 발발한다. 이 전쟁이 결국 911테러까지 이어지고, 세계는 아직도 혼란 가운데 있다. 특히 이런 지정학적인 전쟁 위협과 함께, 2000년대에 이르러 금융위기까지 발생하면서 세계정세는 한층 더 불안해졌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다시금 민족주의자인 푸틴이 정권을 잡으며 세계평화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 상황이다. 저자는 은연 중에 고르바초프의 양보가 서방, 특히 미국의 경제적인 보상을 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러시아가 다시금 옛소련의 향수 속으로 들어갔음을 이야기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고르바초프를 도울 준비가 돼 있었다. 두 나라는 고르바초프를 동서 대립의 종말을 가져온 결정적 인물로 인정했고, 파트너로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평가받는 보리스 옐친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두 인물의 판단에 있어 정반대의 정서를 갖고 있었다. 미국은 전략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상상 가능한 모든 이익을 챙겼다. 고르바초프이건 소련이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정이 이런데 굳이 공산주의 체제 유지를 도울 이유가 없었다. 무엇을 더 억을 게 있다는 말인가? 미국은 대립이 끝났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경쟁관계는 여전하다고 봤다. 소련이 공산주의 국가이건 아니건 영토의 규모나 그들의 소유하고 있는 부수적인 것들을 봤을 때 경쟁자로 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 소련에 왜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는 말인가? - P 247-8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정까지는 아직 다루고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 과정에서 전개되어 갈 가능성이 크며, 우리나라는 또 다시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눈치를 봐야 되는 상횡이 될 수 있고 생각한다. 남중국해 문제나 사드 문제가 이런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요한 방향을 가르는 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은 1945년에서부터 현대까지 지정학적 관점에서의 냉전체제의 형성과 붕괴 과정을 매우 쉽게 표현하고 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세계정치의 흐름을 지도와 저자의 명쾌한 설명으로 흥미롭게 이어가고 있다. 현대 세계사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