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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3 (양장)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해외뉴스를 통해 시리아나 아프카니스탄 같은 혼란한 국가의 상황을 보게 된다. 사방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주변에서는 폭탄테러가 일어나 수백명씩 죽는 일이 발생한다. 놀라운 건 이런아수라장 같은 곳에서도 시장이 열리고 장사를 하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부모와 자식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남은 사람들은 또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간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만큼 삶은 끈질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학살하던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갔을까? 모진 삶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살아나갔다. 그게 바로 삶의 특성일 것이다.
태백산맥 3권은 1,2권에 비해 속도감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좌우익의 학살이 한차례식 지나간 후 3권에서는 표면적으론 큰 사건 없는 시간이 계속된다. 연순 반란 사건을 일으켰던 김지회와 14연대는 지리산 속으로 숨어들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벌교 총책인 염상진을 주축으로 한 좌익들은 지리산 자락인 조계산에 숨어 반격을 준비한다. 벌교에는 경찰 토벌대를 이끌고 온 임만수 외에, 200여 명의 중대 병력을 이끌고 계엄군 사령관으로 온 심재모 중위가 등장한다. 심재모는 우익들의 지나친 복수를 금지시키고, 벌교를 안정시키며, 염상진 일당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지리산에 입산한 좌익들의 가족들의 힘겨운 삶이 그려진다. 빨갱이의 가족이나 자식이라는 비난 속에 매를 맞기도 하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면서도 그들은 살아남는다. 대부분 가족들은 공산주의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남편이, 아버지가, 아들이 그 사상을 가졌기에 고초를 당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남편을, 아버지를, 아들을 끝까지 외면하지 못한다. 그것이 가장 눈물겹다.
2권에서 염상진이 마을로 잡입한 사건 이후, 다시 좌익들을 가족들은 잡혀가 몰매를 맞는다. 남편이나 아들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알 수도 대답할 수도 없는 그들은 그냥 매 타작을 당할 뿐이다. 겨우 풀려난 가족들은 굶주림과 주변의 냉대를 당한다.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눈물겹게 그려진다. 염상진의 아내인 죽산댁은 아들 광조와 힘겹게 살아가고, 하대치의 아내인 들몰댁은 두 아들과 살아가기 위해 처갓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외서댁은 여전히 염상구에게 몸을 빼앗긴다.
이들 중에 가장 안타까운 사연은 과수원 댁의 불리는 배성오의 어머니이다. 큰아들은 공무원이고, 작은 아들은 공산당이다. 아들이 집에 들어오자 그를 숨겨 준다. 헛간에 굴을 파고 작은 아들에게 음식을 날려 주면서도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닭을 삶아 아들을 먹이는 장면에서는 너무나 애처롭다. 그런데 결국 형이 이 사실을 알고 동생을 밀고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둘째 아들이 총을 맞아 죽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본다. 그리고 결국 그 어머니도 목을 맨다. 당시 이런 사연을 가진 가정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3권에서는 기독교 사상가인 서민영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그를 통해 백범 김구의 사상을 우남 이승만과 대조하여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승만을 기회주의자로 김구를 민족주의자로 묘사한다.
"두 사람의 차이는 신탁통치 반대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났네. 백범의 반탁은 또 다른 형태의 식민지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우남의 반탁은 자신의 집권 욕구를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려 함이 아니었나. 여기서부터 백범은 역사적 대의명분의 길을 택했고, 우남은 반역사적 소아 이익의 길을 택했다. 좌익 진영의 찬탁과 우익진영의 반탁이 엇갈리는 소란 속에서 이승만 중심의 남한 정부 단독 수립이 싱가포르 통신을 통해 들어온 것이 1946년 4월이었고, 우남은 마침내 6월 3일에 남조선만이라도 즉시 자율적 정부를 수립해야 ㅎ나다는 그 유명한 '정금 발언'을 한 것이 아닌가. 백범의 입장에서 보면 그 발언은 곧 민족분단의 획책이었지. 같은 민족이 서로 상대되는 주의를 앞세워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민족분단을 야기한다, 그건 백범으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대사건이었지, 식민지 시대에도 민족의 분단은 없었으니까. 그때부터 백범과 우남은 서로 등을 돌리 수밖에 없었느니까. (P 306)"
개인적으로 백범과 우남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저자의 시각에 전부 동조하지는 않지만, 소설을 통해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좀 더 알아가게 되었다.
3권에서도 염상구의 악행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염상구라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여전히 외서댁을 통해 자신의 욕정을 채우고, 외서댁이 임신하자 그 사실을 소문을 낸다. 결국 외서댁을 자살을 시도한다. 또 안창민을 숨겨줬다는 죄목으로 이지숙을 고문하고, 정하섭을 숨겨줬다는 죄목으로 소화를 고문한다. 그리고 소화를 고문하는 과정에서는 임신을 한 그녀를 낙태를 시킨 것도 모자라, 그것을 통해 정하섭의 어머니와 협상을 해 돈을 챙긴다.
염상구란 인물과 벌교의 지주들의 만행을 보면 작가의 시선이 너무 좌익 쪽으로 기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백산맥은 저자가 민족주의자이면 중도주의자인 김범우라는 인물을 통해 해방과 6.25로 이어지는 격동의 역사를 균형 있게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점점 우익의 만행과 친일 주의자인 지주와 경찰 간부 등을 등장시키며 균형이 무너지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상황의 균형을 맞춰주는 인물이 계엄군 사령관인 심재모이다. 그는 일제시대 때 학병으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고, 귀국 후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하는 상황을 안타까워 군에 입대한다. 그는 공산주의자들과 싸우지만, 한편으로는 친일파들도 증오한다. 저자는 심재모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우익이 모두 친일 주의자만은 아니며, 그중에서도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인물이 있음을 상기시 켜려는 의도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