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아빠가 힘든 몸을 가까스로 버티며 글 한 조각 끄적인다. 아이는 옆에서 같이 놀아 달라며 무릎을 밟고 타며 갖은 칭얼칭얼을 다 부린다. 이러다가 아빠가 쓰는 글을 망가뜨린다. 아빠는 버럭 성을 부린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논다. 그러다가 거울을 집어 놀며 아빠도 보라며 비추어 준다. 너무 가까이 대었기에 좀 떨어뜨려야 보이지요 하니까 살살 떨어뜨려 준다. 아빠 얼굴을 비춰 주다가는 이제 제 얼굴도 보이는지 제 얼굴만 들여다본다. 이때 아빠 얼굴이 살짝 스치는데, 아이한테 성을 내며 찌푸른 이맛살 골이 그대로 파여 있다. 그래, 힘들면 그냥 쉬자. 아이도 쉬고 아빠도 쉬자. 함께 그림책 보며 잠자리에 벌렁 드러눕자. (4343.10.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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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살림


 집살림이란 티가 나지 않는 일. 그런데 티나지 않는 이 일을 하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어머니들은 다리 쉬며 방바닥에 드러누울 겨를은커녕 살짝 쪼그려앉을 틈이 없네. (4343.10.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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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우리 집 깃든 멧기슭이 며칠째 구름에 폭 싸인다. 방앗간에 가려고 읍내로 자전거를 타고 나올 무렵 비로소 햇볕을 구경한다. 아침 열 시가 넘고 열한 시가 되도록 우리 집 둘레 구름이 걷히지 않는다. 빨래 말리기는 젬병이다. 참말 우리 살림집은 멧집이구나. 그런데 읍내에 나와 보니 읍내사람조차 우리 멧집을 잘 헤아릴 수 없겠다고 느낀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더더욱 시골 멧집을 헤아릴 길이 없을 테지만, 읍내사람 또한 읍내에 구름이 내려앉아 폭 감싸일 일이 없으니까 한낮이 가깝도록 구름을 품으며 지내는 나날을 알 수 없겠지. 우리 딸아이가 며칠 앞서까지만 해도 품에 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으로 가리킨 뒤 “구·름!” 하고 말하면 “기·윰!”이나 “기·륨!” 하고 따라했는데 오늘은 “구·륨!” 하고 말한다. 아이가 커서 나중에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는지 모른다만, 이렇게 품에 안고 흰구름을 가리키며 함께 올려다볼 수 있어 좋다. (4343.10.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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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가락을 따라 무언가를 들여다본다. 

이내 스스로 책을 읽는다. 

엄마랑 아빠랑 옆에서 함께 안 놀아 주고 

책만 읽으니 

아이도 이냥저냥 엉기고 어리광을 부리다가 

스스로 놀다가 책을 펼친다. 

아이가 스스로 씩씩하게 놀아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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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표 다섯 장


 시골버스를 탈 때에 내는 표를 미리 스무 장 끊어 놓았다. 그런데 막상 스무 장을 끊은 뒤로 보름 동안 이 시골버스를 탈 일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 읍내로 나갈 때에는 음성읍으로 가고, 면내로 갈 때에는 생극면으로 가는데, 생극면으로 갈 때에는 맞돈으로 1200원을 내고 음성읍으로 갈 때에는 표로 1050원짜리를 낸다.

 오늘 보름 만에 읍내로 다녀오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며 표를 끊고 헤아리니 아까 나오는 버스를 탈 때에 그만 표를 석 장을 넣었더라. 낱낱으로 세어 두 장을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손님이 간수하는 표’를 살피니 다섯 장이다.

 교통카드로 찍는다면 이런 일은 없겠지.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교통카드로는 이곳 시골에서는 안 찍힌다. 아마 교통카드를 새로 받아야 비로소 시골버스에서도 찍히리라. 아니면 시골버스에서 찍히는 교통카드를 새로 만들든지.

 아이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곯아떨어졌고, 시골길을 걸어 들어오는 동안 잠에서 깨지 않는다. 이제 아이한테 기저귀를 채우고 엄마에 이어 아빠가 씻으면 오늘 하루는 즐겁게 마무리를 짓는다. 어느덧 모레면 한가위를 맞이하는구나. 올 한가위에는 지난주에 새로 나온 내 책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책을 들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인사를 하겠네. 아버지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다치지 않으면 좋겠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 아님을 헤아려 주시리라 믿는다. (4343.9.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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