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뻐?


 네 살 아이를 씻길 때에, 아버지는 네 살 아이를 무릎에 누이고 머리를 감긴다. 네 살 아이는 이제 꽤 무겁다. 무릎에 누이고 머리를 감기면 팔과 무릎이 꽤 뻑적지근하다. 그렇지만 아이는 선 채로 머리를 숙여 머리감기를 하고픈 마음이 없다. 아이가 스스로 머리를 숙여 머리감기를 하겠다고 할 때까지는 이렇게 무릎에 누여 머리를 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녁에 곯아떨어져 잠자리에 드러누울 때에 이불을 여미며 바라보면 키가 제법 컸다고 느낀다. 마당에서 달리기를 할 때에 가만히 바라보면 발과 다리와 손과 팔과 허리와 등과 몸을 곧게 잘 편다. 예쁘고 아름답다.

 아버지 무릎에 누운 채 머리를 맡긴 아이가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면서 묻는다. “아버지, 벼리 예뻐?” 아버지는 두 가지로 이야기한다. 첫째, “벼리 예쁘지. 벼리 착하지. 벼리 예쁘고 착하지.” 다음으로, “예쁜 벼리인데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예쁜 벼리 맞는지 모르겠네.”

 오늘 저녁 아이를 씻길 때에 아이는 어김없이 묻는다. “아버지, 벼리 예뻐?” 아버지는 둘째 이야기를 한다. 아이는 가만히 생각하다가는 “말 잘 들어야 해?” 하고 거듭 묻는다. “말 잘 들어 주셔요. 너무 힘들어요.” 하고 이야기를 한다.

 첫째 아이를 다 씻기고, 할머니와 함께 둘째를 씻긴다. 첫째 아이는 둘째를 씻길 때에 옆에서 요모조모 거들려 한다. 그러나 아직 무척 어린 네 살이기 때문에 제대로 못 거들곤 한다. 보드라운 말씨로 예쁘게 타이르지 못한다. 그렇지만 첫째 아이는 씩씩하고 다부지게 일손을 거들려고 애쓴다. 다 씻기고 씻는통을 내갈 때에, 둘째가 입던 배냇저고리로 바닥을 훔치는 몫을 첫째한테 맡긴다. 첫째는 신나게 바닥 물기를 훔쳐 아버지한테 건넨다.

 아이가 “나 예뻐?” 하고 묻기 앞서, 아이한테 “예쁘구나.” 하고 자주 이야기하면서 오래오래 꼬옥 안으며 지내지 못한다면, 시골집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뜻이 없다.

 아이는 꾹 참고 기다린다. 아이는 요사이 새벽마다 코피를 쏟으면서 야무지게 견디며 기다린다. 아이는 제 아버지를 닮아 새벽잠이 없고, 졸려도 애써 참으며 더 개구지게 놀려고 용을 쓴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그야말로 예쁘게 보듬지 못한다면, 아픈 옆지기 몫까지 도맡아서 집일과 집살림을 건사하는 어버이 구실을 하나도 못하는 셈이다. 아이도 옆지기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예쁘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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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아이 동생이 생겨 좋은 일


 첫째가 입던 배냇저고리를 둘째가 입는다. 거의 세 해 만에 배냇저고리를 입혀 보자니 낯설지만, 몇 초 만에 금세 익숙하게 손을 놀린다. 갓난쟁이를 가슴에 안는 일도 처음 몇 초 동안은 서툴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이내 익숙하게 보듬어 본다.

 첫째를 낳은 어버이가 둘째를 낳을 때라면 누구나 나이를 더 먹기 마련이다.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몸으로 쓰는 힘은 줄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첫째보다 둘째가 수월하더라는 말마따나 나이를 더 먹은 뒤 낳는 둘째 돌보기는 첫째 때와 견주어 조금은 수월하다고 살짝 느낀다.

 그러나, 애 아버지하고 애 어머니는 다르다. 몸으로 젖을 먹일 뿐 아니라, 벌어진 엉덩이뼈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뿐더러, 아기방 또한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어머니가 아니니, 이렇게 말한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기저귀를 갈아 본 사람이 기저귀를 안 갈아 본 사람보다 더 잘 갈기 마련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다스려 본 사람이 아이들을 안 다스려 본 사람보다 더 잘 다스리기 마련이다. 몸으로 해 본 사람이 무엇이든 처음에는 익숙하게 잘 하겠지.

 하던 그대로 해야 하는 삶이라면, 언제나 처음부터 오래오래 하던 사람 혼자서 할 노릇이다. 함께 즐기거나 누리며 아름다울 삶이라면, 처음 하는 낯선 사람이든 아직 겪지 못하거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든, 서로서로 허물없이 웃고 울면서 천천히 하면 좋을 삶이다.

 아이 기저귀를 온누리에서 첫손가락 꼽도록 가장 잘 갈아야 하지 않는다. 아이 기저귀 빨래를 온누리에서 가장 알뜰히 잘 빨아야 하지 않는다. 아기한테 젖을 가장 잘 먹여야 하지 않는다. 아기를 가장 잘 안아야 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한테 가장 값있고 훌륭하다는 옷을 입혀야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할 아이요 사랑받을 아이일 뿐인 한편, 그예 사랑할 어버이요 사랑받을 어버이라고 느낀다.

 첫째 아이한테 동생이 생겼기에 첫째한테, “자 보렴. 동생이 누나 옷을 물려입는구나.” 하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째는 어린 나날부터 제 옷을 물려입힐 뿐 아니라, 제 옷도 물려입는 줄 천천히 깨달으며 배우겠지. 첫째는 둘째한테 제 삶을 종알종알 이야기하면서 서로서로 사이좋게 싸우기도 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가겠지.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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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2011년 5월 21일 아침 7시 40분, 산들보라가 태어났다. 사내아이. 4.02킬로그램. 옆지기 배가 부른 모습으로 보아 계집아이는 아닌 듯했고 사내아기가 아닐까 싶었다. 몸이 아프고 힘들어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옆지기 몸에서 아이가 무척 크게 자랐고, 옆지기는 힘을 알뜰히 내지 못해 몹시 힘겹게 아이를 낳았다. 옆지기도 아이도 고맙게 목숨을 건졌다. 어찌 되었든 둘 다 살았고, 하루하루 몸을 추스르며 네 식구 예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아기와 옆지기한테 걱정어린 전화를 걸어 주신 그림 할머니 박정희 님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날은 날마다 새로운 기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첫째 사름벼리부터 날마다 새로운 기적이고, 둘째 산들보라 또한 날마다 새로운 기적인데다가, 아이 어머니도 날마다 새로운 기적이다. (4344.5.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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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5-21 21:40   좋아요 0 | URL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군요. 축하드립니다. 산들보라, 이름도 어찌 그리 예쁘게 지으셨는지. 사진으로 얼굴은 익숙한데 첫째 이름도 오늘 처음 알았네요, 사름벼리 ^^

숲노래 2011-05-21 23:02   좋아요 0 | URL
에고고 새벽부터 애쓴 아이는 겨우 잠들락 말락 하네요...
@.@

카스피 2011-05-22 21:57   좋아요 0 | URL
아기가 태어나셨군요.정말 축하드립니다^^

숲노래 2011-05-23 17:43   좋아요 0 | URL
아이는 즐겁게 태어났으나 병원에서 너무 애를 먹었답니다 ㅠㅜ

분꽃 2011-05-23 19:54   좋아요 0 | URL
병원들이 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아이(딸,어느새 대학2학년)를 하나만 낳았잖아요..ㅎㅎㅎ 엄마랑 아가들, 그리고 종규님 모두 축하해요~~

숲노래 2011-05-24 02:43   좋아요 0 | URL
집에서 아기 낳아 보셨으면 달라지셨으리라 생각해요.
우리 옆지기는 워낙 아프고 여린 사람이라 또 실패했지만,
다른 분들은 잘 살피고 배우면
얼마든지 슬기롭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
 



 밥풀 머리카락


 밥을 먹던 아이가 어느 만큼 배가 부른지 놀려고 한다. 놀려고 하면서 아버지 등을 올라탄다. 밥먹는 사람 등에 올라타면 안 된다고 옆지기가 나무라지만 아이는 싱긋빙긋 웃으면서 아이 머리까지 붙잡고 더 기어오른다. 몇 차례 더 나무라는 소리를 듣고는 내려온다. 밥을 다 먹고 밥상을 치운다.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는데 옆지기가 뒤에서 내 머리카락에 밥풀이 잔뜩 붙었다고 말한다. 나는 머리카락이 어떤지 저떤지 돌아볼 겨를이 없다. 얼른 설거지를 마치고 기저귀삶이를 해야 한다. 오늘은 텃밭에 골을 내어 씨앗을 심어야 한다. 아침에 아이가 일어난 때부터 밥물 안치고 쑥 뜯고 국 끓여 밥 차리고 하면서, 이렇게 보내느라 쉴 겨를뿐 아니라 뭐 다른 일을 할 틈이 없다. 날마다 집안을 쓸고 닦아야 먼지가 적은 줄은 알지만, 좀처럼 날마다 쓸고 닦지를 못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이것저것 집일을 더 하다가 머리카락을 묶어야겠다 싶어 왼손으로 추스르다가 비로소 끈적한 뭔가가 뭉친 줄을 깨닫는다. 머리카락에 물을 묻혀 비비다가 그냥 머리카락을 북 잡아뜯는다. 언제 하나씩 물을 묻혀 떼어내겠나. 머리카락을 잘라서 떼어야지. 아이가 등을 타고 놀며 날마다 얼마나 많은 머리카락이 뜯기는지 모른다. 아이는 알까? 알 수 없겠지. 내가 아이였을 때는 어떠했을까.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 머리카락을 얼마나 뜯어먹으며 컸을까. (4344.4.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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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업고 곰취 뜯기


 지난 목요일에 숲에 들어가 뜯은 곰취를 거의 다 먹었기에 오늘 새로 뜯으려고 아이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한낮이 될 무렵부터 졸립다 했으나 세 시까지 안 자고 버텼다. 몹시 졸립지만 숲으로 간다니 좋다며 따라나선다. 그러나 조금 걷지 않았어도 힘들다며 안아 달라 한다. 아이를 안고 숲길 오르막을 오른 다음, 내리막과 판판한 길에서는 내린다. 여느 때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하겠지만, 퍽 졸리니까 조금만 좋아한다. 그래도 잘 뛰고 잘 걷는다.

 아버지가 곰취와 쑥을 뜯느라 바쁘니 자꾸자꾸 안아 달라 한다. 하는 수 없이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으라 한 다음 쑥이랑 곰취를 뜯는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숲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흥얼흥얼 노래를 하면서, 아이가 해바라기를 해 주기를 바란다. 쑥을 뜯든 곰취를 뜯든 온갖 풀내음을 잔뜩 느낀다. 내가 아는 풀내음이 있을 테지만 내가 모를 풀내음이 훨씬 많겠지. 아이도 아버지도 온갖 풀내음과 바람소리를 맞아들이면서 낮나절을 보낸다.

 아직 나물을 얼마 못 뜯었는데 아이는 졸립다며 그예 안아 달라는 말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스럽다. 어차피 나물을 뜯느라 쭈그려앉았으니 아버지 등에 엎어지라고 말한다. 아이는 등판에 찰싹 달라붙는다. 한동안 이러고 나물을 뜯다가 아이를 업는다. 업은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나물을 더 뜯는다. 쑥은 오늘 저녁 먹을 만큼도 못 뜯었고 곰취도 이틀쯤 먹을까 말까 싶을 만큼밖에 못 뜯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등허리가 결린다. 아침부터 아이하고 복닥이는 하루이니까, 낮나절 십 분 남짓 아이를 업고 나물을 뜯어도 등허리가 버겁다. 포대기가 있어 아이를 꽉 업을 수 있으면 좀 오래 나물을 뜯을 수 있겠지. 이제 아이가 많이 크기는 했지만, 포대기이든 깔개이든 챙길 수 있는 어버이 노릇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이래서야 집살림 맡은 사람이라 말하기 부끄럽기만 하다.

 졸린 아이는 등에 업혔으나 잘 생각은 않는다. 나물 뜯는 모습을 등판에서 내려다보기만 한다. 누런 빛깔, 흙빛 멧개구리가 폴짝 나온다. 아이는 올들어 처음 보는 개구리이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개구리를 보았던가? 모르겠다. “여기 개구리 있네.” “개구리?” “응, 개구리. 자 봐. 여기 있지?” “어, 개구리야.”

 더 나물을 뜯다가는 아이도 힘들고 아버지도 힘들겠다고 느껴 숲에서 나오기로 한다. 멧길을 걸어 집으로 내려온다. 숲에서 빠져나오니 아이는 걷겠다고 한다. 집까지는 내리막이니 콩콩콩 달리고 싶은가 보다.

 아이는 집에 닿으면서 어머니를 부르고, 집으로 들어가서 이내 어머니 곁에 눕는다. 아버지는 아이 낯과 손과 발을 씻기고 새 옷을 입힌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는 다시 눕는다. 그러고는 곧바로 곯아떨어진다. 두 시간쯤 낮잠을 자 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꾼다. 다음달에 둘째를 낳을 어머니는 힘들어 자리에 눕고, 아버지는 첫째 아이 오줌기저귀를 삶고, 빨래 몇 점을 한다. 첫째 아이 오줌기저귀를 다 삶은 다음 둘째 아이한테 쓸 새 기저귀를 삶는다. 이 사이에 저녁으로 먹을 쌀을 씻어 불린다. 뜯은 나물은 저녁밥을 안칠 때에 흙을 씻기로 한다. 아이가 실컷 자고 일어나면, 마을 어귀 큰길가에 있는 보리밥집(이자 마을 구멍가게)으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서 보리술 두 병쯤 사올까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어설프지만 이모저모 애쓴 나한테 주는 선물로.

 아이는 저녁나절에 자전거에 붙인 수레에 태워 준다고 하면 신나서 함박웃음을 짓겠지.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자전거수레를 오래오래 즐길 수 있도록 나 스스로 더 몸을 다스리며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버지가 몸이 오래오래 튼튼해야 아픈 옆지기 몸을 틈틈이 주무를 수 있다. (4344.4.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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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4-19 19:37   좋아요 0 | URL
ㅎㅎ 시골에 사시니 이런 정취도 있네요.그나저나 개구리는 참 오랫만에 보는것 같군요^^

숲노래 2011-04-20 07:06   좋아요 0 | URL
요사이는 시골에서도 개구리가 많이 사라지거든요... 약을 많이 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