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5.25.

아무튼, 내멋대로 3 손글씨책



  책에 지은이 손글씨나 손그림을 받을 수 있는 줄 푸름이(청소년)에 이르도록 몰랐다. 인천 골목마을에서 나고자라며 조용히 배움수렁(입시지옥)에 파묻힌 수수한 푸름이가 ‘손글씨책’을 알 턱이 있을까. 다만 우리 아버지는 노래꽃(동시)을 쓰셨고, 중앙일보 새봄글(신춘문예)에 뽑힌 적이 있기도 하고, 인천에서 우리 아버지하고 글벗이자 술벗인 김구연 아저씨가 있기에, 김구연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한테 손글씨를 담아서 건넨 노래책(동시집)은 여럿 보기는 했다. 1992년 8월 28일부터 비로소 눈뜬 헌책집을 푸른배움터(고등학교) 두걸음(2학년) 때부터 이레마다 하루씩 몰래 혼배움(자율학습)·덧배움(보충수업)을 빼먹고 달아나서 찾아갔다. 흙날(토요일)하고 해날(일요일) 가운데 하루는 꼭 헌책집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틀어박혀서 책읽기로 살았다. 이때에 ‘헌책집 헌책’ 가운데에는 손글씨책이 꽤 흔한 줄 느꼈다. 스무 살 무렵 서울 용산 헌책집 〈뿌리서점〉에서 손글씨책을 만난 뒤에 책집지기 아저씨한테 “사장님, 어떻게 이 책을 받은 분은 책을 버릴 수 있을까요? 너무한걸요.” 하고 여쭈었다. “허허, 최 선생이 아직 모르시는구만. 물론, 작가한테서 사인 받은 책을 그냥 폐품하고 섞어서 버리는 사람도 있지. 그러나 일부러 헌책방에 내놓아 주는 분이 있어.” “네?” “모르겠나? 최 선생 같은 책벌레가 헌책방에 와서 책을 읽다가 우연히 ‘작가 사인’이 들어간 책을 만나면 어떻겠나?” “아!” “가난해서 책을 많이 사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작가를 만나기도 힘들겠지?” “네.” “이렇게 헌책방이라는 곳에서 최 선생 같은 책벌레들이 작가 손길도 느껴 보라는 뜻으로 내놓아 주는 분들이 있어. 그러니 작가 사인본을 만난다고 해서 독자들이 책을 함부로 버린다고는 여기지 말게.” 2004년에 내 첫 책인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내놓고 나서 둘레에 ‘숲노래 손글씨책’을 많이 나누고 건네었다. 마땅한 노릇인데, 내가 어느 분한테 손글씨를 남긴 책이 이따금 헌책집에 들어오고, 그 책을 문득 내가 만나기도 한다. 빙그레 웃으면서 ‘잘 보이는 데’에 일부러 놓는다. 스무 살 나처럼 어느 가난한 책벌레 젊은이가 숲노래 씨 책으로도 ‘글바치 손빛’을 느낄 반가운 숨결로 만날 수 있다면 즐거운 일이리라 느낀다. 어제(2022.5.24.) 인천 이설야 노래님(시인)한테서 손글씨책을 받았다. 언제나 즐겨읽는 노래님이 손글씨를 남긴 책을 받고서 기쁘게 품었다. 고이고이 건사하리라. 우리 집안 보람(보물)로 삼으리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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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5.23.

아무튼, 내멋대로 2 눈 깔어



  숲노래 씨는 2001년부터 출판사 일꾼(편집장)으로서 ‘국어사전’을 엮는 일을 맡았고, 이 일은 스무 해가 지난 2022년에도 하지만, 1995년에는 그저 앳된 스무 살일 뿐이었다. 인천에서 나고자랐되, 어머니 옛집인 충남 당진에 곧잘 갈 적에 “아, 내 뿌리는 이곳(충청남도)에 있구나” 하고 생각했고, 어머니 말씀으로는 할아버지가 황해도에서 나고자랐다고 해서 “난 충청도하고 황해도가 섞였구나” 하고 생각했더니 “그런데 너희 할아버지도, 또 너희 아버지하고 어머니도 인천에서 살림을 꾸렸어.” 하셔서 “그럼 난 충청도에 황해도에 인천에 섞인 몸이네.” 하고 여겼다. 여기에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일찌감치 깃든 작은아버지가 있어 “너무 낯설고 깍쟁이다운 서울말씨”를 들으며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동생들이 서울 대치동에서 사니, 내 뿌리 가운데 어느 만큼은 서울에도 있으려나?” 하고 여겼다. 이러던 스무 살에 강원도 양구 멧골짝으로 끌려갔다. 싸울아비(군인)가 되었다. 난 틀림없이 남녘 싸울아비이지만, 길그림(지도)을 보면 우리 싸움터(군대)는 북녘에 있다고 할 만했다. 이등병 때 하도 아리송해 어느 날 ‘얻어맞아도 좋다’고 생각하며 윗내기(고참)한테 여쭈었더니, 이 물음에는 안 때리고 “응, 너 이제 알았니? 여기는 알고 보면 남한 아닌 북한이야.” 하더라. 움찔했지만 백예순여섯 사람(우리 중대원인 육군 보병)이 여기에 있으니 “다 같은 삶”이리라 여겼다. 그런데 어릴 적에도 늘 겪었지만, 싸울아비(군인)로 살며 날마다 들은 말은 “야 이 ××야, 눈 깔어!”이다. 날마다 얻어맞고 밟히고 막말을 듣다 보니, “야 이 ××야, 눈 깔어!”란 말 다음에 저절로 고개를 숙일 뿐 아니라, 눈을 밑으로 본다. 싸움터에서 내 눈길은 윗내기(고참) 가슴팍을 보아야 했다. 턱 즈음을 보려고 하다가는 아구창이 날아간다. 얼마나 얼얼하던지. 윗내기가 하는 말을 들을 적에는 늘 가슴팍을 쳐다보며 고개를 숙여야 했는데, 스무 살 싸울아비이던 무렵에는 이럭저럭 날마다 얻어터지면서 버티었지만, 나중에 삶터(사회)로 돌아오고서 한 해 두 해 열 해 스무 해 지나고 보니 “오래 길든 이 눈길”이 자칫 응큼질(성추행)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 “야 이 ××야, 눈 깔어!” 하는 말을 스물여섯 달 동안 날마다 숱하게 듣고 살다가 바깥으로 나오고서, 누구를 만나건 으레 저절로 “고개를 살짝 숙이거나 눈을 까는 버릇”이 나오는데, 내가 돌이(남자)랑 마주하면 걱정없지만, 순이(여자)랑 마주하면, 아차차 “눈을 까는 높이”는 그만 순이 가슴팍을 쳐다보는 눈높이가 되더라.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 있나. 1997년 12월 31일에 드디어 싸움터(군대)를 마쳤으니까 2022년이면 스물 몇 해가 지난 일인데, 어쩜 아직 그때 그 몸짓을 다 털지 못했을까? 아니 그때 날마다 숱하게 얻어터지고 막말을 들으며 살던 버릇을 미처 씻어내지 못한 터라, 그만 저절로 고개를 숙이다가 “내가 앞사람하고 마주하는 눈높이가 그만 어처구니없는 곳을 보는 눈길”로 꽤 굳었다고 느꼈다. 곁님이 그러더라. “여보, 당신은 왜 나하고 얘기를 할 적에 자꾸 고개를 숙여? 왜 눈을 안 마주쳐?” 나도 잘 몰랐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열아홉 살 무렵까지는 늘 고개를 들고서 마주보았고, 부끄러울 적에는 살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뿐, 밑으로 깐 적은 없다. 그런데 싸움터에서 날마다 끝없이 얻어맞고 밟히다 보니 어느새 고개를 옆이 아닌 밑으로 까는 버릇이 배었더라. 오늘(2022.5.23.) 서울에 바깥일이 있어서 ‘이야기(좌담)’를 하는 자리에 왔는데, 함께 이야기하는 분이 “최종규 씨는 욕 안 하셔요?” 하고 물을 적에 살짝 눈앞에 캄캄했다. 난 싸움터(군대)에서 들은 욕, 그리고 상병 8호봉부터 병장 6호봉 사이에서 둘레 막말질에 물들어 쓴 욕이 내 삶에서 쓴 모든 욕인걸. ‘막말(욕)’이란,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그때 일이 갑자기 떠올라 저절로 “싸움터에서 고개 숙이던 버릇”이 나왔고, 스스로 더더욱 끔찍했다. 그러나 이 일을 낱낱이 되새기면서 내 아픈 발자국을 더듬었으니, 이제부터는 “눈을 밑으로 까는 버릇”은 털어내려고 생각한다. 난 막말(욕)을 쓰고 싶지도 않고, 이웃이며 동무를 힘으로 억누를 뜻도 없고, 언제나 풀꽃나무랑 어깨동무하고 싶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참말로 군대란

사내가 갈 곳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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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5.23.

아무튼, 내멋대로 1 오만 원



  집이 아닌 데에서 자며 돈을 낸 적은 1994년이 처음이다. 그때 나는 길손집에 돈을 치르고 자느니 새벽 네 다섯 시 언저리까지 버텨서 첫 버스나 전철로 집(인천 또는 서울 이문동에 있는 신문사지국)에 들어가려 했다. 길에서 잔다든지 전철나루 걸상에 누워서 자기도 했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건너가는 그무렵에는 참말 살림돈이 없었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돌아갈 전철삯 650원이 없어서 두어 시간을 전철길을 따라 걸어가곤 했다. 대학교 1학년이던 그무렵 1500원을 받는 ‘대학교 학생식당 식권’이 비싸 수돗물로 배를 채웠고, 이따금 900원 즈음 하는 싸구려 짜장국수가 나오면 먹곤 했다. 보다 못한 윗내기(선배)가 밥종이(식권)을 사주어 끼니를 때운 날이 꽤 있는데, 그때 나는 “밥을 사먹을 돈이 있으면 헌책집에서 책 한 자락을 더 산다”는 생각이었다. 밥종이를 사주는 윗내기는 늘 고마웠는데, “선배님, 식권 사주실 돈으로 책값에 보태주시면 더 고마울 텐데요.” 하고 말하다가 뒷통수를 숱하게 맞았다. 1994∼95년에는 500원에 책 한 자락을 살 수 있었고, 때로는 300원에 살 수 있는 책이 있었다. 서울 어느 헌책집에서는 150원에도 책 한 자락을 샀다. 더 눅게 파는 헌책집을 찾아 한두 시간쯤 가볍게 걸어서 찾아갔고, 헌책집에서 책 열 자락을 읽고서야 한 자락을 겨우 샀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살 적에는 ‘지내는 곳’인 ‘신문사지국’으로 돌아갈 길삯이 없어서 한밤에 두 시간쯤 가볍게 걸었는데, 한밤에 신문사지국으로 걸어가는 길에 거리등(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1995년 11월 6일에 군대로 끌려갔는데 그때까지 참 자주 들은 말이 “너 미쳤니?”이다. 난 “왜요?” 하고 대꾸했고, 또래나 윗내기는 “야, 그냥 전철 타고 집(신문사지국)에 가면 되지. 왜 걸어?” 하고 묻는다. 나는 “500원이면 책 하나 살 수 있고, 650원이면 150원을 석 벌 모아서 책을 한 자락 더 살 수 있어.” 하고 말하니 “이놈 참말 미쳤네.” 하고 말하더라. 윗내기(선배)가 술을 마시자며 부르면 늘 “선배님, 술은 안 사주셔도 되고, 책을 사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날마다 물었다. “뭐? 이런 미친놈을 봤나. 그냥 술 처먹어.” 윗내기는 소주를 두 병 비울 때까지 안 놓아주었다. “선배님, 이제 (소주) 두 병 마셨으니 돈 좀 보태 주세요.” “무슨 돈? 내일 점심 사먹게? 아니면 당구 치게?” “아뇨. 헌책집에 가서 책 좀 사읽게요.” “뭐? 이놈이 안 취했네. 더 마셔!” 2020년대로 접어든 책집은 저녁 아홉 시이면 다 닫는다. 그러나 1994∼95년에는 밤 12시에도 아직 안 닫은 헌책집이 꽤 있었다. 나는 20∼21시 무렵이면 술집에서 살며시 달아나 헌책집에 갔고, 한 시간 남짓 책을 보고 서너 자락 사서 슬그머니 술집으로 돌아왔다. 책은 옷자락에 숨겼지. 윗내기는 “야! 너 어디 갔다 왔어? 화장실에서 빠져죽은 줄 알았잖아!” “잘못했습니다.” 윗내기한테 붙잡혀 새벽 한두 시까지 술집에 엉겨붙어야 하면 집에는 마땅히 못 돌아간다. 곯아떨어진 윗내기를 마주보다가 슬그머니 책을 꺼낸다. 아까 몰래 빠져나가 헌책집에서 사온 책이다. 술집이 닫을 때까지 조용히 책을 읽었다. 이제 술집이 닫는다고 하면, 곯아떨어진 윗내기를 업거나 어깨동무하고서 그이네 집(자취집)이나 동아리방이나 과방에 데려다준다. 이 결에 나도 그곳에 깃드는데, 술에 절어 곯아떨어진 윗내기 버선(양말)을 벗겨 주고, 살살 이불을 덮어 준다. 이러고서 나도 발을 씻고 낯을 씻은 다음, 아까 읽다가 덮은 책을 마저 읽는다. 동이 틀 즈음 머리를 감고서 윗내기네 집(자취집)에서 나온다. 동아리방이나 과방이라면 밖에 나가서 나무 곁 걸상에 앉았다. 아무튼 윗내기네 집에 간 날은 조용히 동아리방이나 과방에 새벽 여섯 시 무렵에 가서 ‘어제 산 책’을 마저 다 읽고서 살며시 눈을 붙인다. 이윽고 아침 여덟 시 삼십 분 즈음이면 동아리방이나 과방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이때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서 하루를 새로 맞이한다. 이런 나날을 보낸 1994년 어느 여름날 ‘여인숙’이란 데를 처음 갔고, 그날 쓴 5000원이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른다. 길잠(노숙)을 잔 적이 없다는 또래가 길에서 어떻게 자느냐며 바득바득 길손집에 가자고 해서 피같은 돈을 쓴 날이었다. 헌책집에서 적어도 열 자락을 사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속이 한참 쓰렸다. 이런 젊은 날을 보낸 주제에 2022년 여름을 앞둔 5월 끝자락에, 서울 명동 길손집에서 5만 원을 치르고 묵는다. 얼추 서른 해쯤 앞서라면 어림도 없을 길손집인데, 서울 명동 길손집은 책상이 훌륭하다. 하룻밤에 25000∼35000원에 묵을 길손집이 신촌에 있는 줄 알지만, 이제는 ‘책상 없는 길손집’에 묵기 싫다. ‘책상이 크고 튼튼한 길손집’에서 밤새 느긋하면서 즐겁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싶다. 책을 몇 자락 덜 사더라도, ‘읽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 ‘쓰기를 함께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자니, 또 ‘아이를 이끌고 길손집에 묵을 날’을 헤아려 ‘아이들이 느긋이 머물 만한 길손집인가 아닌가’를 돌아보면서 하룻밤 잠값을 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숲노래 씨는

늘 착한말로 착한글만 쓴다고 말씀하는 분이 많아

참말로 착하게 살았나 모르겠어서

“아무튼 내멋대로”란 이름으로

아무튼 내멋대로 살아온 나날을

갈무리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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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음읽기

글수다 2021.12.8.물.


넌 어디로 가? 넌 그곳에 왜 가? 네가 가는 곳에는 네 걸음에 따라 네 자취가 남지. 넌 스스로 어떤 걸음이 되어 어떤 자취를 남길 생각이니? 너는 그곳에 네 기운을 어떻게 남기고 싶어? 살짝 머물기도 싫은 데를 지나가니? 지나치기 아쉬운 곳을 지나가니? 네 마음·눈길·생각은 네 걸음이 묻은 자리에 스며서 퍼져. 싫다고 느끼는 곳에는 싫다는 마음을, 좋다고 느끼는 곳에는 좋다는 마음을 심는단다. 네가 바다에 돌을 던지면 바닷속에 돌이 생기지. 네가 들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비닐을 날리면 들에는 쓰레기나 깡통이 굴러. 네가 숲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숲에 사랑빛 한 줄기가 퍼져. 네가 숲이 무섭다고 여기면 무서운 기운이 으스스 한 톨 생겨나고. 그런데 있잖아, 바다도 들도 숲도 하늘도 너희가 남기는 찌끄레기를 아랑곳하지 않는단다. 며칠·몇 달·몇 해가 걸리든 다 씻고 털어내. 바다·들·숲·하늘은 너희가 버린 쓰레기를 그린 적이 없거든. 바다·들·숲·하늘은 너희처럼 짜증·미움·싫음을 그린 적도 없어. 다만, 너희가 잔뜩잔뜩 모여서 궂은 기운을 끝없이 퍼부으면 바다·들·숲·하늘이 미쳐버리지. 무엇보다 너희는 ‘바깥(다른 곳·남)’에만 쓰레기를 버리며 더럽히지 않아.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너한테 그 쓰레기가 고스란히 돌아가. 네가 읊는 미움·짜증·싫음은 몽땅 너희가 스스로 마음·몸에 심는 씨앗이지. 자, 너는 어디에 가니? 왜 가니? 무엇을 보거나 하려고 가니? 너희 뜻은 뭐야? 너희는 어디로 가든 이곳(집)으로 돌아온단다. “간 만큼” 돌아와. “오는 만큼” 내려가. 쌓은 만큼 무너지고, 무너진 만큼 쌓아. 그러니 생각하렴. ‘무엇’을 어떻게 왜 어디로 가서 하려는가 하고 그리렴. 너한테 고스란히 돌아갈 네 하루·길을 네 눈으로 보렴.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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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음읽기

글수다 2021.12.7.불.


무엇은 왜 날까? 무엇은 왜 돋아? 무엇은 왜 솟니? 네가 안 심어도 싹은 나. 네가 안 보아도 새로 돋지. 네가 못 느껴도 일은 솟아(생겨). 너희가 살아가는 곳에는 너희만 있지 않거든. ‘너’ 같은 숱한 다른 ‘나(이웃 숨결)’가 있어. ‘네’ 곁에 ‘또다른 너’가 있다고 하겠지. ‘또다른 너’는 ‘나’를 느끼거나 보기도 하지만, 생각조차 못 하기도 해. 너희는 ‘우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거든. 너희가 쓰는 ‘우리(울)’는 ‘안은·감싼·품은’을 가리키는 울(울타리)이라고 하겠지. ‘나’로 있을 적에는 그저 움직임이 없지만, ‘나’를 스스로 제대로 다시 보기에 ‘너’가 태어나고, 나하고 다르지만 (바탕은) 같은 너를 느끼면서, 서로 묶는, 그러니까 ‘아우르’는 ‘우리’이더구나. 서로 안거나 감싸거나 품으면서 ‘어울리’지. 너희가 말하는 ‘우리 = 아우르다 + 어우르다’인데, ‘아버지 + 어머니’야. ‘알 + 얼’이고, ‘알다 + 얼다’이기도 한데, 너희는 서로 ‘우리’라는 길을 가며 새롭게 ‘하나’로 빛나지. 이때 ‘하나 + 울’이 되어 ‘한·울 = 하늘’이더구나. ‘나’만 있거나 ‘너’만 가르면 ‘하늘인 우리’로 가지 못해. 나로서 나인 줄 알고, 너로서 너를 얼울 적에 ‘우리’라는 ‘새빛’이 되어 온누리를 밝히는 ‘해’란다. 너희가 ‘나 + 너 = 우리’로 가기에 스스로 새빛이 되었기에 ‘알 + 얼’인 ‘아기(아이)’를 낳잖아? 이런 ‘우리’란 아름답지. 얼씨구절씨구 기쁘고. ‘우리’란 무리지은 굴레가 아니야. 그러나 너희가 ‘알(아버지·알다)’과 ‘얼(어머니·얼다)’을 잊으면 ‘우리’가 아닌 ‘무리’가 되고 말아 허튼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고서 ‘알지 못하고, 얼우지(어르지) 않는’ 바보(얼간이·얼뜨기·얼치기)로 가. 사랑이 없으면 ‘가두는 우리(짐승우리)인 무리짓(떼짓)’이야. 사랑이기에 웃고 울며 우러르는(높이는) 해님이야. 무리짓을 하니 떼쓰면서 더 바보스레 나뒹군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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