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7] 물



  시외버스를 타고 멀리 마실을 갑니다. 시외버스는 두 시간 남짓 달리다가 쉼터에서 섭니다. 쉼터에서 아이들 쉬를 누입니다. 물병을 채우려고 쉼터에 있는 밥집으로 갑니다. 물이 있는 곳을 살핍니다. 저기에 있구나 하고 물을 받으려는데, 물을 받는 곳에 ‘음용수’라는 푯말이 붙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실물’도 ‘먹는물’도 아닌 ‘음용수’로군요. 이곳에서 물을 받아서 마시는 아이들은 저 글을 읽으려 하겠지요. ‘믈’을 마시려고 이곳에 와서 ‘믈’은 못 마시겠지요. 4347.4.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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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6] 모래가람

 


  하동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조문환 님이 쓴 책을 읽다가 ‘섬진강’을 가리키는 옛이름 하나를 듣는다. 먼먼 옛날에는 ‘모래가람’이라 했단다. 고운 모래가 많이 모래가람이라 했고, 어느 곳에서는 ‘모래내’라고 했단다. 그러고 보면 ‘모래내’라는 이름을 쓰는 데가 이 나라 곳곳에 있다. 그렇구나. 모래가 고운 냇가에서는 으레 모래내였구나. 물줄기가 굵거나 크면 모래가람이라 했구나. 바닷가와 냇가와 가람가에는 모래밭이 있지. 그런데 왜 모래가람이라는 이름이 잊히거나 밀리면서 섬진강이라는 이름만 쓸까. 이 나라 모든 고장과 마을이 한자로 이름이 바뀌면서 모래가람도 제 이름을 빼앗기거나 잃은 셈일까. 4347.4.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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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5] 마늘빵

 


  마늘을 넣어 밥을 지으면 마늘밥이 됩니다. 고구마를 넣어 밥을 지으면 고구마밥이 됩니다. 쑥을 넣으면 쑥밥이요, 팥을 넣으면 팥밭이며, 콩을 넣으면 콩밥입니다. 보리로 지으면 보리밥이고, 쌀로 지으면 쌀밥이에요. 이리하여, 마늘을 써서 빵을 구으면 마늘빵이 될 테지요. 한국사람도 오늘날에는 빵을 널리 먹으니, 마늘로 얼마든지 빵을 구울 만합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마늘’이 아닌 ‘갈릭(garlic)’이라는 낱말을 쓸 테니 ‘갈릭 브레드’라 해요. 한국에서도 ‘마늘빵’과 ‘갈릭 브레드’라는 낱말을 함께 쓰는데, 서양사람으로서는 마땅히 ‘갈릭 브레드’일 테지만, 한국에서는 어떤 이름을 써야 할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빵’ 아닌 ‘브레드’라고 말해야 할까요. 서양사람은 ‘밥’과 ‘라이스(rice)’ 사이에서 어떤 낱말을 써야 할까요. 4347.4.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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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 물볶음밥

 


  나는 볶음밥을 으레 물로 합니다. 언제부터 물볶음밥을 했는 지 잘 안 떠오르지만,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몽땅 기름투성이가 아닌가 하고 느낀 날부터, 볶음밥을 할 적에 기름을 안 쓰고 물을 썼어요. 따로 누구한테서 배운 물볶음밥은 아닙니다. 찌개를 끓이건 떡볶이를 끓이건 물로 하는데, 볶음밥도 물을 자작자작 맞추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볶음밥이라면 언제나 기름을 두른다고만 여기니 물로 볶을 적에는 ‘물볶음밥’처럼 이름을 새롭게 써야겠지요. 물볶음밥이라 말하지 않으면 기름으로 볶았겠거니 여길 테니까요.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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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3] 뻘빛 바다

 


  파랗게 눈부신 바다를 가리켜 ‘쪽빛 바다’라고 합니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빛깔은 파란 하늘빛을 담아 파랗디파랗게 밝습니다. 갯벌이 너른 서쪽과 남쪽에서는 으레 ‘뻘빛 바다’를 만납니다. 뻘빛은 잿빛을 닮았다고도 할 만합니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얕은 갯벌 둘레에서는 ‘잿빛 바다’를 보겠지요. 속이 비치는 물잔에 바닷물이나 냇물을 담으면, 이때에는 해맑은 물빛을 마주합니다. 물빛은 물빛입니다. 물빛은 물이 흐르는 곳에 따라 다 다릅니다. 도랑에서 내에서 가람에서 바다에서 모두 빛깔이 달라요. 바다빛을 으레 파랑으로 떠올린다면, 아무래도 드넓은 바다가 드넓은 하늘과 마주하기 때문이지 싶어요. 뻘내음 물씬한 곳에서는 뻘빛입니다. 끝없이 파란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는 파랑입니다. 바닷말이 바닷속에서 한창 자랄 적에는 풀빛입니다. 고운 모래밭으로 밀려드는 바다는 속이 환하게 비치는 해맑은 빛입니다. 4347.4.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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