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끼나와 이야기 - 또 하나의 일본
아라사끼 모리테루 / 역사비평사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64 ― 소리도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고향
 : 아라사끼 모리테루, 《오끼나와 이야기》



- 책이름 : 또 하나의 일본, 오끼나와 이야기
- 글 : 아라사끼 모리테루
- 옮긴이 : 김경자
- 펴낸곳 : 역사비평사 (1998.8.31.)



 (1) 우리 삶과 사회


 농사짓고 살아가는 사람은 서로 겨루지 않습니다. 제 땅에서 제가 부쳐서 거둔 만큼 제 살림을 꾸려 나가면 될 뿐입니다. 농사짓지 않고 장사를 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서로 겨루게 됩니다. 다른 가게와 견주어 좀더 나은 물건을 나은 값으로 팔아야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저절로 서로 겨루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골 농사꾼도 서로 겨루면서 살도록 내몰립니다. 시골 문화가 하루가 다르게 잡아먹히다 못해 이제는 뿌리가 뽑히면서 사라진 자리에 도시 문화가 깃들었는데, 도시 문화는 자꾸자꾸 새로운 돈을 벌어서 자꾸자꾸 쓰고 벌고 쓰고 벌고 해야만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개국 전인 1844년과 1846년, 류큐 근해에 프랑스 군함이 접근해 와서 오만한 태도로 화친ㆍ통상ㆍ기독교 포교 3가지를 요구하였다. 영국이 청나라에 아편전쟁을 건 직후의 일이다. 이 사건은 류큐뿐 아니라 사츠마번과 막부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막부는 “류큐는 일본 구역 밖에 있으므로 기독교 포교는 허용할 수 없어도 무역은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방침을 정하였다. 막부는 류큐를 일본에서 잘라내어 거기서 구미열강의 진출을 저지시키려는 고식적인 방법을 취하였던 것이다 ..  (51쪽)


 도시라는 곳은 워낙 돈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도록 되어 있기에, 도시에서 살자면 서로 겨루지 않고는 버틸 수 없습니다. 나 하나는 겨루기를 안 한다고 하여도, 내가 얻거나 누리는 모든 물질은 누군가 끝없이 겨루기를 한 끝에 나오게 됩니다. 그렇지만 도시라는 곳에서도 겨루지 않고 오순도순 살아갈 길이 있지 않느냐 생각하면서 길찾기를 해 봅니다. 덜 쓰고 덜 먹고 덜 누리면서, 아니 우리가 쓸 만큼만 쓰고 우리가 먹을 만큼만 먹으며 우리가 누릴 만큼만 누리는 가운데.

 문득문득 우리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서로 겨루면서 살도록 되었는가 헤아려 보곤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밥그릇만큼 스스로 땀흘려서 거두어 살아가는 틀거리를 왜 버렸는가 돌아보곤 합니다. 학교를 다니는 뜻이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을까요. 좋다고 하는 일자리를 얻는 까닭은 이웃하고 등을 돌려도 제 배만 불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저 혼자만 큰집 얻으면 되고, 저 혼자만 큰차 싱싱 굴리면 되고, 저 혼자만 마음껏 일회용품을 쓰고 버려도 되는 세상일까 궁금합니다. 아니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내 이웃하고 가까이 이어져 있는지, 내 살아가는 매무새가 내 둘레에 깊이 영향을 끼친다고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 일본을 반공의 방패로 삼는 미 군부의 정책에는 세 기둥이 있다. 첫째,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것, 둘째, 일본 전 지역을 군사기지로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 셋째, 일본에서 오끼나와를 분리하여 세계전략의 거점으로서 지배하는 것이 그것이다 ..  (77쪽)


 전쟁이 일어나는 까닭은, 정치권력을 움켜쥔 이가 제 정치권력을 더욱 단단히 틀어쥐는 가운데 더 큰 잇속을 챙기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쥔 사람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고 싶다 해서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쟁터에 나와서 치고받고 싸우는 이는 권력자가 아닌 권력자한테 휘둘리는 우리들, 여느 사람이거든요. 권력자는 전쟁을 일으키기 앞서 우리들, 여느 사람을 길들여야 합니다. 권력자가 바라는 전쟁을 바로 우리들도 바라는 전쟁인 듯 여기도록. 권력자가 꿈꾸는 잇속이 마치 우리들한테 도움이 되기라도 하는 듯 생각하도록.

 이리하여 국민교육이 태어납니다. 국가보안법이 생겨납니다. 국민개병제가 기지개를 켭니다. 온갖 의무가 지워지는 한편, 조그마한 마을 공동체조차 마을사람 스스로 꾸리지 못하도록 갖가지 개발이 넘쳐납니다. 갖가지 법으로 우리 삶을 옥죄지만, 권력자들은 어떠한 법에도 매이지 않으면서 저희 잇속을 더 크게 챙기거나 뽑아냅니다.


 (2) 부산에서 생각한 인천


 지난 한 주, 부산 나들이를 하다가, 얼마 앞서까지 제 고향 인천에서 이웃으로 살던 아주머니를 부산 골목길에서 우연하게 만났습니다. 꼭 한 달 앞서 부산으로 살림집을 옮기셨다는 아주머니는, ‘인천처럼 온갖 곳을 개발해서 뒤집어엎어 사람이 살 수 없는 데에서 지역운동 한다고 해 봐야 될 수 없고, 부산(에 당신이 깃든 동네)처럼 개발바람이 불지 않아서 오래오래 뿌리내리며 살아갈 수 있는 데에서 지역운동을 해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당신 집이 얼마나 살기 좋으냐고, 아침에 하늘 보고 저녁에 별 보며 하루하루 즐겁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주머니를 따라 언덕배기 집에 찾아가 봅니다. 문을 열어 놓으면 시원한 바람과 파란 하늘이 한눈에 잡힐 듯 들어옵니다. 아마 이 언덕배기에 깃든 어느 집이건 이런 좋은 모습을 즐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저녁 대접을 받고 아침 대접을 받다가 생각합니다. ‘우리 동네가 끝내 인천시장이 밀어붙이는 개발정책에 따라서 사라지게 되면, 우리 살림집을 부산 언덕배기 골목집으로 옮길까?’ 하고.


.. 섬 밖으로 나간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낯선 타향에서 먹고살기 위해 출신 지역별로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면서 밑바닥 노동에 종사하였다. 타향에서 한데 모여살며 삼선(三線)을 퉁기면서 향수를 달래던 사람들의 모습이, 오끼나와 역사와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얘기를 나누는 이민족 집단으로 비치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일종의 민족차별 같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 ..  (58쪽)


 무궁화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부산에서 인천으로 돌아올 때에도 무궁화 열차를 탔습니다. 웬만하면 주말에 타고 싶지 않았으나, 돌아올 때에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기와 옆지기 때문에 서두르느라 토요일 차편을 끊었습니다. 갈 때에는 온통 빈자리라 널널했으나, 올 때에는 밀양부터 선자리까지 꽉 차서 뒷간 갈 틈을 만들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제 옆에 앉은 젊은 분은 손전화로 수없이 누군가와 전화하면서 ‘내 모르고 탔다 아이가, 무궁화 이거 억수로 괴롭네. 다시는 안 탄다.’ 하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케이티엑스면 세 시간 반이면 될 길을 무궁화로 다섯 시간 반이나 달리니 얼마나 좀이 쑤셨을까 싶군요. 참 안됐습니다.

 우리 나라 어디가 안 그러겠느냐만, 전국 어디에 있든 ‘서울로 가는 차’는 아주 많습니다. 네 해 가까이 지낸 충북 충주 산골짜기에서도,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는 삼십 분이나 한 시간에 한 대씩 있었는데(면에 따라 달라서), 이웃 면으로 가는 시골버스는 서너 시간에 한 대 겨우 있거나 하루에 두 대 있기 일쑤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 나들이를 할 때에 시골 버스역에 들러 보면, 어느 시골 면이나 읍에 가든,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서울 가는 차’는 있는데, 이웃마을로 가는 버스는 짧아도 두어 시간에 한 대 있으면 잘 있는 셈이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인천에서도 바로 이웃해 있는 부천이나 수원이나 안산이나 안양이나 과천이나 광명이나 고양이나 파주나 강화 가는 버스는 좀처럼 잡아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서울 가는 버스는 많습니다. 그리고 빠릅니다. 값도 눅습니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끊어지고 나서 다시 뚫릴 낌새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인천과 서울을 급행으로 달리는 복복선은 금세 뚫립니다. 수원에서 서울 가는 차편과 수원에서 인천 오는 차편을 견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인에서 서울 가는 차편과 용인에서 인천 오는 차편을 대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서울로만, 무엇이든 서울로만, 그예 서울로만 몰리도록 합니다. 중앙일간지라는 신문에서 다루는 기사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짜고, 지역일간지조차 지역 기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합니다. 서울에 매일 뿐 아니라 서울에 죽고사는 우리 나라라고 할까요. 서울이 살면 나라가 살고, 서울이 죽으면 나라가 죽는다고 여긴달까요. 지역주의가 아닌 고향사랑을 하고 싶고, 지역 이기주의가 아닌 내 마을 사랑을 하고 싶은데, 세상 흐름은 고향이건 아니건 오로지 서울을 닮아서 돈을 많이 벌면 그만인 듯 여깁니다. 서울을 따라가야 하는 듯 생각하고, 서울 흐름을 좇으려고 합니다.


.. 만약 이때 오끼나와를 희생시켜 본토 결전을 모면한 역사와 오끼나와를 미군기지 아래에 내버려두고 독립한 역사를 돌이켜봄으로써, 오끼나와 복귀운동에 부응한 전국민적 반환운동이 일어났더라면, 패전 후 일본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미국의 군사정책에 협력하여 경제번영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라, 좀 가난하더라도 인근 아시아 여러 지역 민중과 연대하여 평화를 추구하는 다른 길을 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84쪽)


 서울에 있는 대학교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일 뿐입니다. 서울에 있는 회사는 서울에 있는 회사일 뿐입니다. 학교나 일터를 서울에 두고 있다고 하여 더 훌륭하거나 높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 고향 인천만 생각해 보아도, 이곳 인천이라는 데가 도시가 된 까닭은 서울로 물자를 올려보내는 ‘공급 공장지대 도시’로 삼으려는 셈속 때문이었고, 서울에서 밑바닥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값싼 잠자리를 얻어서 지내는 구실을 하는 데 있었던 터라, 인천이라는 곳 스스로 우뚝 설 기틀이 없었습니다. 서울바라기를 하지 않고서는 인천이라는 데가 설 수 없도록 모든 얼거리가 짜여 있습니다. 이런 판이니 시에서는 자꾸만 개발사업을 일으켜 아파트 재개발을 하여 세금을 늘리려 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레 쏟아지는 아파트 공급이 제대로 팔리겠습니까. 아시안 경기를 치른다고 골목집을 다 없애고 높직한 빌딩을 새로 올려세워야 21세기 도시다운 모습이 될는지요.

 참 까마득하구나 싶으면서도, 참 살기 팍팍하구나 싶으면서도, 섣불리 부산이든 옥천이든 제주든 남원이든 옮길 마음을 품지 못합니다. 아직까지 부산 보수동 언덕배기 골목에는 재개발바람이 안 불어서, 참말 동네 어디에도 부동산 집이 없기는 합니다만, 어느 날 뚝딱뚝딱 바뀔지는 어느 누구도 모를 일이거든요. 사람 사는 즐거움이 아니라 돈 많이 버는 재미에 푹 빠져 버린 이 나라에서 어디를 가든 지금 있는 데하고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느끼거든요.


 (3) 작은 책, 작은 이야기


 《머나먼 갑자원》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습니다. 《사랑의 집》(고침판은 《도토리의 집》으로 나옴)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습니다. 이 만화책을 읽으면, 일본 ‘본토’가, 일본에서 ‘본토가 아닌 섬’을 어떻게 푸대접하면서 괴롭혔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읽을 수 있습니다.


.. 일본은 밖으로는 오직 전쟁 확대의 길로 치달았으며, 안으로는 천황 신격화를 추진하여 천황제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상과 운동을 심하게 탄압하였다. 이런 사상과 운동을 단속하기 위해 1925년에는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이 제정되었다 ..  (65쪽)


 틀림없이 일본은 우리 나라 한국과 견주어 책 문화가 크게 발돋움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좋은 작품 가운데 일본말로 옮겨지지 않은 책은 없다고 할 만큼 놀랍습니다. 이리하여 일본에서 내로라 하는 학자나 지성인들 생각과 삶은, 우리들이 고개숙여 배울 만큼 대단합니다. 거룩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거룩하다고 할 만한 일본 지성이 있는 한편, 참 얄딱구리하다고 할 만한 일본 얼간이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일본도 미국힘에 못 이겨서 이라크 파병을 하고 자위대를 키우며 동북아시아 평화를 흔드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꾀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저희들이 일으킨 끔찍한 전쟁을 뉘우치거나 갚음하려는 매무새를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 미군 지배 아래서 이익을 얻는 계층은 오끼나와 사회 내부의 지배자의 입장에 서서 주민의 권리와 요구를 봉쇄하고 떡고물을 조금 나누어 주는 형식으로 민중의 불만을 돌려놓는 역할을 맡았다 … 분업체제의 구조와 기능이 강화되어 일본 본토 안에서는 적어도 평화주의와 경제적 번영이 달성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미군기지가 집중된 오끼나와와 한국의 존재는 일본 사회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패전 후 일본은 침략전쟁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반성을 하지 않은 채 미국 지배에 종속되어, 천황의 전쟁 책임도 묻지 않고 A급 전범 용의자인 기시 신스케를 수상 자리에 앉히는 그런 지배체제를 만들어 내었다. 이런 체제를 확립한 것은 1952년의 강화조약과 미ㆍ일 안보조약이었고, 배후에서 이를 지탱하는 역할을 담당한 것은 이 조약에 따라 일본에서 분리되어 미군 요새로서 남게 된 오끼나와였다 ..  (133∼135쪽)


 일본에서도 잊히고 있는 ‘류우큐우 푸대접’입니다. 일본 ‘본토 지성들도 잘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지역차별 이야기가 담긴 《또 하나의 일본, 오끼나와 이야기》입니다. 일본사람 스스로도 그다지 눈길을 안 두고 있는 이야기책인데, 이 책이 한국말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애써 옮겨진 지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조용히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졌습니다. 소리도 없이 소문도 없이 판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저는 2003년 겨울에 서울 성균관대 앞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서 일찌감치 이 책을 사 두었기에(털어놓고 말하자면, 그때 그곳에서 살 때부터도 판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시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책이 된 이 녀석을 즐겁게 읽고 느끼고 곰삭일 수 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여러 달 동안 그저 쓸쓸한 마음으로 책을 쓰다듬었습니다. 지금 한국사람들은 자기들 먹고살기에도 바쁘다고 하는데, 일본 사회 이야기, 더구나 일본 사회에서도 파묻혀 버린 ‘류우큐우(오키나와) 푸대접’ 발자취를 다룬 이 책 이야기에 눈길을 둘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싶어서. 한국땅에서 푸대접받는 지역 이야기조차도 한국사람 스스로 돌아보는 일이 없는데, 푸대접받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도 제 고향마을이 푸대접받건 말건, 그저 서울바라기만 하면서 고향 뜰 생각만 하고 있는데, 이런 책 하나가 이 땅 이 나라에서 무슨 값을 하고 무슨 뜻이 있을까 하고.


.. 오끼나와 민중에게 전후 50여 년은 미군기지와 싸워 온 역사였다고 하겠습니다. 그 투쟁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와 같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  (5쪽)


 미군기지는 평택에도 있었고, 서울에도 있으며, 인천에도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 구석구석 미군 탱크와 헬기와 전투기와 미사일과 핵무기가 깃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미군기지를, 미군을, 아니 한국 군대도 아닌 미국 군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미국군이고 한국군을 떠나서, 우리한테 군대란 얼마나 값이 있고 무게가 있습니까. 우리가 수만 수십만 수백만 군대를 거느리면서 지켜야 할 평화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 나라에는 어떤 평화가, 누가 누리는 평화가, 어떻게 지켜지는 평화가 있습니까.

 전경버스 새로 꾸미는 데에는 수 억 수십 억을 쓰지만, 일자리와 집을 잃고 한데에서 떨꺼둥이로 지내야 하는 이들한테는 얇은 담요 한 장조차 내주지 않는 한국 사회입니다. 가을바람이 제법 찹니다. (4341.10.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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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서갑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 책에 담긴 참된 속마음을 읽어 주기는 너무 힘들까


- 책이름 :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 글쓴이 : 서갑숙
- 펴낸곳 : 중앙 M&B (1999.10.15.)



 우리 집에서 딸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옆지기 어머님이 찾아왔습니다. 아기가 궁금하고 당신 딸아이가 딸을 낳은 모습이 대견스러워서 몸풀이를 거들어 주려고 오셨습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우리 집에 함께 머무는 동안, 낮 나절에 곧잘 책을 펼치시곤 했는데, 제 책꽂이에 꽂힌 책 가운데 서갑숙 님 책 《추파》를 읽으셨습니다.


.. 그래, 나약한 나의 젊은은 이렇게 간다. 이렇게 중얼거리는 내 곁에서 친구들도 각자의 삶에 절망한 듯 고개를 꺾고 앉아 있었다. 담배 연기가 새어나갔는지, 친구의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렸다. “쯧쯧쯧, 벌써부터 이러면 되니?” 너저분해진 방을 보고 친구의 어머니는 혀를 찼다. 대학은 떨어졌고, 나는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국문학과를 지망했지만,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바꿨다. 어차피 짧게 살 목숨이라면, 연극을 통해 다양한 인생이나 경험해 보고 죽자는 생각이었다 ..  (29쪽)


 벌써 퍽 여러 해가 된 일입니다. 책마을 선배한테 이끌려서 서울 인사동에 있는 ㅍ이라는 술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 그곳에는 여러 손님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여러 손님들이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술잔도 주거니 받거니 했습니다.

 서로 이름도 모르면서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 나중에 술값은 어찌할까 걱정스럽지만, 이런 걱정은 저 혼자뿐, 모두들 웃고 떠들며 어울립니다. 한참 술잔을 부딪히다가, 책마을 선배가 제 옆에 앉은 분이 서갑숙 씨라고 소개해 줍니다. 처음에 따로 소개를 안 한 까닭은 최종규 씨라면 으레 알겠거니 싶어서. 그러나 텔레비전 안 보는 제가 서갑숙 씨를 어찌 알아보겠습니까. 원더걸스도 모르고 채연도 모르고 하는데.


.. 어쨌든 그런 폭력적인 경험들을 겪으며, 역시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한 사랑이라는 생각을 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진심어린 사랑이 없는 한, 그 어떤 섹스나 스킨십도 폭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45쪽)


 이름을 알게 되며 조금 더 찬찬히 이야기를 주고받게 됩니다. 그분이 저를 어찌 속깊이 알겠으며, 저 또한 그분을 어찌 속깊이 알랴마는, 그날 그 자리에서는 허물없이 술과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그렇게 만난 뒤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라는 책을 하나 찾아봅니다. 어느 헌책방에 가 보아도 여러 권씩 꽂혀 있는 이 책을, 꽂히기는 많이 꽂혀도 애써 끄집어내어 읽는 이 없는 이 책을.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빨간 띠가 둘러져 있는 이 책을 찬찬히 넘겨봅니다(책을 읽어 보면, 이 책이 이런 빨간 딱지를 받아야 할 까닭은 조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이름을 출판사에서 이렇게 붙여 버렸으니…….). 그날 그 술집에서 보고 느낀 서갑숙 씨 외로움과 고단함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보면서 사귀고 싶어하고, 사람을 사람 그대로 느끼면서 어우러지고 싶어하던 그 눈매를 곱씹어 봅니다. 사람 많은 세상이고, 사람 넘치는 서울이며, 사람 복닥이는 이 땅인데, 왜 서갑숙 씨 여린 가슴에 사랑과 믿음이 고이 내려앉아 열매를 맺도록 어깨동무를 하려는 손길이 보이지 않을까 뒤돌아봅니다.


.. “얼마나 남았어요? 아직 멀었나요?” 그러다 진통이 잦아지고 심해지자, 나도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이리 좀 와 봐요! 제발 어떻게 좀 해 주세요!” 그런 내 곁을 냉랭한 태도로 지나치는 간호사가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몰랐다 … 간간이 잠이 깨어 눈을 떠 보면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엄마, 고마워요.”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  (85∼86쪽)


 비 퍼붓던 어제 아침, 인천으로 볼일 보러 가려고 부지런히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저는 2000번 빨간버스가 씨잉 빠르게 지나가며 거님길 안쪽 깊이까지 튀겨 주는 물보라를 흠씬 뒤집어씁니다. 저녁나절 일산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건널목 신호가 바뀌어 건너는데 아랑곳않고 제 앞으로 휭 지나가는 까만 자동차를 몰며 한손으로 손전화로 수다를 떠는 아줌마를 봅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탈 때에는 마구 밀치기까지는 안 하지만 먼저 타려고 안달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버스에서는 둘레 사람이 시끄러워하거나 말거나 작지 않은 목소리로 “존나 씨발 짜증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내뱉으면서 자기 남자친구가 지저분하네 뭐네 하고 수다를 떠는 아가씨를 봅니다. 전철로 갈아탄 자리에서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있다가 내릴 때가 되어 가방을 영차 하며 메는데 내 뒤쪽으로 갑자기 지나가면서 가방을 툭 쳐서 미는 아저씨를 봅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꼭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이분들 마음결이 이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이대로 살아도 당신들 먹고사는 데에는 아무 걱정이 없을지 모르겠는데, 이대로 살아가는 당신들 모습은 아름다움하고는 자꾸만 멀어지는구나 싶어 안타깝습니다.


..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동안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고통을 한탄하며 자기를 학대하고 비하해 왔기 때문이다. 나의 노화는 세월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노화에서 온 것이 틀림없다 … 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섹스에 대해 무지했던 것일까? 그저 상대방이 이끄는 대로 섬세한 교감 없이 치러내는 섹스, 소극적인 섹스만 나누다 보니 진정한 육체적 사랑이 찾아왔을 때 적응을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  (169쪽)


 헌책방 책시렁에서 찬대접을 받는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한 권 장만해서 읽은 뒤, 헌책방 나들이를 할 때마다 이 책이 보이면 한 권씩 더 사 두게 됩니다. 가방에 한 권씩 넣고 다니면서, 만나는 이들한테 이 책을 아느냐고 물어 본 다음, 아직 안 읽었다고 하면 선물로 내밉니다.

 이 책을 고맙게 받아들고 읽어 줄는지, 귀찮게 뭔 책이냐 할는지, 썩 재미도 없어 보이는 책을 왜 주느냐고 할는지, 얄딱구리한 책을 자기한테 선물하는 꿍꿍이가 뭐냐고 할는지 모릅니다만, 조용히 내밀고 조용히 서갑숙 씨 이야기를 들려주고 조용히 우리가 걸어가는 삶과 가꾸는 삶을 짚어 보자고 말합니다.


.. 내가 그렇게 흥분했다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야. 다만, 한 개인의 삶이 구겨지든 찢어지든 상관않고 멋대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정말 싫었어. 돌아서서는 금세 잊어버릴 말들을, 남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까지 내뱉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  (212쪽)


 《추파》를 읽은 옆지기 어머님은 어떤 느낌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옆지기 어머님한테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선물해 드리면 즐겁게 읽으실지, 그냥저냥 받아들이실지 궁금합니다.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즐겁게 읽어 주신 분이 있으면 《추파》도 선물해 주고 싶은데, 여태껏 스무 권 가까이 선물해 오는 동안, ‘읽은느낌’을 들려주는 분이 없습니다. 책이름만 보고 덮었을지, 머리말 몇 줄 읽다가 덮었을지, 책 몸글 몇 쪽이나마 읽다가 덮었을지, 아예 들여다보지 않고 덮었을지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내 한몸 먹고살기에도 바쁘고 빠듯한데, 서갑숙이든 누구든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껴안고 있는지 돌아볼 틈이 어디 있어?’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드시 서갑숙 씨를 알라고 이 책을 건네지 않았습니다만. 구태여 서갑숙 씨 삶이나 생각을 알라고 이 책을 내밀지 않았습니다만. 딱히 서갑숙 씨 길을 돌아보라고 이 책을 드리지 않았습니다만. (4341.9.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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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 어느 경제학자의 미 대륙 탐방기
마이클 D. 예이츠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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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61 ― ‘싸구려 민주주의’조차 없는 미국이 좋니?
 : 마이클 예이츠,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 책이름 :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 글 : 마이클 예이츠
- 옮긴이 : 추선영
- 펴낸곳 : 이후 (2008.6.5.)
- 책값 : 16000원


 

 (1) 아이와 책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옆지기와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이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될까?” “아마, 그렇겠지요.” “우리 아이가 쓰잘데기없는 책에 마음을 빼앗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로 두어야 할까?” “그대로 둬야지요.” “하긴. 나도 누가 나한테 책을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으니. 믿어야지.”


.. 나는 학생들의 반지성주의를 주로 학생 개인의 탓으로 돌렸지만, 학생들 사이에 이런 태도가 만연하게 된 데는 이런 태도를 용인하는 사회의 탓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햑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대학은, 이윤을 지향하는 일종의 회사로 변모되었다 … 기업형 학교에 저항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소수에 그쳤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아무 의문을 갖지 않았다. 돈을 벌되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일 뿐 아니라, 나아가 칭송 받는 세계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  (40∼41쪽)


 곰곰이 돌아봅니다. 저한테 책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서 책방을 찾아다녔고, 혼자서 책을 읽었고, 혼자서 곱씹으면서, 혼자서 생각을 갈무리했습니다. 읽을 책 하나를 일러 주거나, 읽은 책 하나를 되새기도록 돕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자기가 살아가는 모습으로 스승이 되어 준 분들은 많습니다. 말씀보다는 몸으로, 이야기보다는 움직임으로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길을 내밀어 준 분들은 많습니다.

 이분들 가운데에는 책을 거의 안 읽거나 못 읽은 사람이 많고, 책을 제법 읽은 분도 있으며, 그럭저럭 책을 가까이한 분도 있습니다. 때때로 책을 추천해 주거나 선물해 주는 분이 있었으나, 선물받은 책은 썩 내키지 않아서 뒤로 밀어 놓았습니다. 진작에 읽은 책은 읽었기에 다른 이한테 줍니다. 그동안 책방을 다니며 살펴볼 때 영 달갑지 않아서 도로 꽂아 놓은 책은, 선물받은 책이었어도 헌책방에 내놓습니다.

 책을 무척 많이 읽고 갖춘 분 집이나 일터를 찾아가게 되면, 이분이 어떤 책을 살펴 오셨는가를 차근차근 훑은 다음, 이분이 들여다본 책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읽곤 했습니다.


.. 기자들이 시간을 내서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경험했으면 좋겠다. 살펴볼 의지만 있다면 불평등은 쉽게 감지되기 때문이다. 내가 옛날에 가르쳤던 학생들처럼 의도적으로 외면하지 않는 한, 불평등의 현실을 피할 수는 없다 ..  (48쪽)


 늘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으나, 조금이나마 번 돈이 있으면 책값으로 바치며 살아옵니다. 빌리거나 얻어서 읽은 책에는 ‘밑줄 긋고 생각 적바림하며’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책 하나를 여러 달 동안 들고 다니면서 읽다 보면 책이 너덜너덜해지기도 하는데, 제 돈으로 장만해서 제 물건으로 삼지 않는 책이라면, 이렇게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글쓴이와 출판사를 헤아리면서 책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내 물건으로 가지고 있어야, 내 마음대로 책 구석구석에 온갖 생각을 끄적이면서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읽을 책은 내 돈으로 산다’는 생각을 굳게 지키며 살아옵니다.

 옆지기하고 책방 나들이를 할 때면, 옆지기는 제가 일찌감치 읽은 책을 고르기도 합니다. 이때, 제가 낙서 거의 없이 깔끔하게 본 책으로 있다면 ‘그 책은 집에 있어요’ 하고 말합니다. 제가 낙서도 많이 하고 밑줄과 별과 온갖 끄적임을 한 책으로 집에 있다면 아무 말 하지 않고 겹으로 사도록 내버려 둡니다. 아무래도, 자기 마음이 와닿는 대목을 자기 스스로 찾고 느끼며 읽어야 할 텐데, 낙서가 가득한 책을 읽게 되면, 자기 생각을 추스르기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집에 갖추어 놓은 적지않은 책들은 제가 온갖 낙서를 잔뜩 해 놓았는데, 먼 뒷날 우리 아이가 자라서 스스로 책을 찾아서 읽을 나이가 된다고 하면, 지 아비가 끄적인 자국 때문에 책읽기를 꺼릴는지 모릅니다. 뒷날에도 판이 끊어지지 않아서 새로 장만할 수 있는 책이라면 괜찮지만, 판이 끊어져 이 하나만 겨우 간수하고 있는 책이라면 참 미안한 노릇입니다.


.. 이 부유한 1퍼센트 가구가 차지한 몫은, 가장 가난한 20퍼센트의 가구를 구성하는 2225만 5600가구가 차지한 몫의 48배였다. 오늘날의 전반적인 소득 분배 상황은 1920년대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불평등하다 … 고층 건물 건축 바람이 불고, 더 많은 도로가 건설된다. 상류층을 상대로 한 상점과 식당이,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상점과 식당을 대체한다. 주택 가격은 치솟는다. 더 부유한 사람들에게 봉사할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든다. 정치권력도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  (99쪽)


 우리 집 두 식구는 책을 가까이하고 있으니, 우리 아이도 어느 만큼은 책을 가까이하며 지내리라 봅니다. 우리 집에는 그 흔한 텔레비전이 없고, 다른 놀이감도 없으니 책하고 놀며 지낼지 모릅니다.

 책은, 우리가 세상을 알아가거나 느끼거나 배우는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이 책 하나를 가까이하며 자기 눈을 넓히고 마음을 틔울 수 있으면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아이한테 억지로 책을 손에 쥐어 줄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 두 사람은 우리 두 사람대로 즐길 책을 읽으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책을 읽어서 좋은 생각을 얻었으면, 이 생각을 우리 스스로 몸으로 옮기며 살아가면 됩니다. 책을 읽다가 어딘가 얄궂다고 느낀 대목이 있으면, 얄궂은 대목을 콕콕 집어내어 걸러낸 다음, 우리 깜냥껏 받아들이면 됩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틈틈이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소리내어 읽어 주면 됩니다. 아이가 글을 깨친 뒤에도 세 식구가 번갈아 가며 책을 소리내어 읽으면 됩니다. 동생을 낳는다면, 세 식구가 돌아가며 책을 읽어 줄 수 있고, 동생이 자라면 네 식구가 돌아가며 읽을 수 있을 테지요.

 어느 한편으로 보면, 어버이가 아이와 소리내어 책을 읽어 주면서 아이한테 말을 가르쳐 줍니다. 낱말을 읽는 법, 낱말과 낱말이 이어졌을 때 어떻게 소리내는가, 낱말 높낮이와 길이는 어떠한가, 어느 자리에서 힘을 주고, 어느 대목에서 끊는가를 시나브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요즈음 책치고 올바르고 알맞는 말씨로 이야기를 엮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책을 펼쳐서 읽는 동안, ‘그 자리에서 곧바로 걸러내어 읽어야’ 합니다. 옆지기와 동화책을 번갈아 읽을 때에도, 틈틈이 ‘잘못 쓴 글’을 고쳐서 읽었습니다. 이를테면, “소란스런 학교로군. 이래서야 집중해서 공부가 되겠나” 같은 글월은 “시끄러운 학교로군. 이래서야 마음을 모아 공부할 수 있겠나”로 고쳐서 읽습니다. “피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같은 글월은 “피어는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졌습니다”로 고쳐서 읽습니다.


.. 보통,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라는 우울한 과학에서만 사용하는 특수한 언어를 독자들이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글을 쓴다. 하지만 경제학 용어에 익숙한 독자는 거의 없다. 나는 글을 쓴 사람부터가 자신이 쓴 글의 의미를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명확한 용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  (133쪽)


 골목길을 다니며 사진을 찍을 때면, 또 꼭 사진을 안 찍더라도 골목마실을 하노라면, 동네 어린이를 마주치기 어렵습니다. 마주친다고 해도 한둘이나 서넛일 뿐, 무리지어 노는 어린이를 볼 수 없습니다. 시골에도 어린이가 없다지만, 도시에도 어린이는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도시로 떠나니 어린이가 없고, 도시에서는 학원에 가랴 집에 붙잡혀 공부를 하랴, 또는 컴퓨터에 빠지거나 텔레비전 보느라 바빠서 골목으로 나와서 놀지 못합니다.

 웬만한 어버이들은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고, 아파트에는 코딱지만한 놀이터가 아주 조그맣게 붙어 있습니다. 그나마 놀이터와 아파트 사이에는 주차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아파트로 들어서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줄이지 않습니다. 아파트가 모여 있는 곳 바깥으로는,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자동차가 넘실거리는 한편으로 시끄러운 노래를 틀어놓는 가게가 줄지어 있습니다.

 동무를 사귀기 어려운 어린이요, 동무를 사귄들 이마에 땀이 송알송알 맺히도록 뛰어놀 빈터가 없는 어린이입니다. 우리 아이라고 해서 남다를 수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도심지요, 그나마 우리 집은 아직 골목길이라 해도, 이 골목길이 앞으로 언제까지 ‘재개발로 안 쓸려 없어질’는지 모릅니다.


.. 우리는 인디언에게서 토지를 훔쳐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관개농업을 도입했고, 물을 오염시키고 식생을 파괴하는 소를 방목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이 땅을 ‘개선’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초대형 고속도로가 사막을 가로지른다. 광산은 산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리며, 댐은 협곡에 홍수를 일으킨다. 군대 주둔지나 피닉스ㆍ라스베이거스ㆍ로스앤젤레스 같은 거대 도시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더럽힌다 …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이러한 도시들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계속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253∼254쪽)


 아이한테는, 제가 어릴 때 겪어 보기로도, 무릎이 깨지든 머리통에 혹이 나든, 신나게 뛰어놀 곳이 있어야 합니다. 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놀다가 다치기도 하고, 놀다가 울기도 하면서 스스로 크고 동무들하고 함께 자라야 합니다.

 혼자서가 아닌, 두서넛이 아닌, 열 스물 무리지어서 놀아야 합니다. 망까기를 하든 금긋기 놀이를 하든 고무줄을 하든 술래잡기를 하든 저희끼리 가르치고 배우고 규칙을 세워서 놀아야 합니다. 놀고 나서는 집에 와서 씻고 자기 옷가지는 자기가 빨고 몇 가지 심부름을 한 뒤, 저녁나절에는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옛이야기를 듣다가 꾸벅꾸벅 졸면서 잠들어야지 싶습니다.

 신나게 뛰어놀 곳은 땅이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아닌 흙과 풀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축구장에만 잔디를 깔 일이 아니라, 우리 삶터 어디나 시멘트가 아닌 흙이 있도록 간직하면서 풀꽃과 나무가 자라도록 돌보아야 합니다.


.. 어느 날 우리는 거리에서 만난 열 명 남짓한 주민들을 붙들고 그 커다란 나무의 이름을 물어 보았다. 나무 이름을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인근에 위치한 식물원의 전문가 역시 그 나무의 이름을 몰랐다 … 자연재해는 정치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 즉 귀찮은 가난한 사람들을 주요 도시에서 제거하고 시장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을, 우리 대신 처리해 줄 것이다 ..  (312, 366쪽)


 그렇지만, 놀이동무도 또래동무도 만나기 힘든 도시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간다 하여 학교에서 홀가분하게 놀 수 있으려나요. 학교 공부를 마친 뒤에는 즐겁게 놀 수 있으려나요. 초등학생 때뿐 아니라 중학생 때와 고등학생 때에도 놀아야 할 텐데, 중학교 아이들은 무엇을 하며 놀 수 있고, 고등학교 아이들은 무엇을 하며 놀 수 있는가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스스로 놀고 동무와 노는 법을 몸으로 얻어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한테, 책이란 교과서란 지식이란 졸업장이란 회사란 무슨 쓸모나 값어치가 있을까요. 동무와 사귀는 법, 아니 동무와 사귀면서 세상을 즐기는 삶을 꾸리지 못하는 아이가, 제아무리 학교 공부를 잘하고 시험점수가 높게 나온다고 하여 우리 두 사람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저와 옆지기는 우리 아이가 똑똑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똑똑하게 자랄 수도 있으나, 슬기로운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슬기롭지는 못하더라도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가는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씩씩하지는 못하더라도 착하게 어울리는 삶을 가꿀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착함이 첫째고, 씩씩함과 튼튼함이 둘째며, 슬기로움이나 올바름이 셋째입니다. 똑똑함은 있어도 좋으나, 없다고 나쁘지 않습니다.





 (2) 삶터, 겨레, 나라, 이웃, 마을


 앞으로도 집에 텔레비전은 들여놓지 않을 테지만, 비디오테이프를 볼 수 있는 장비는 들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브이디로 나오지 않는 예전 영화, 극장에서 좀처럼 볼 수 없으며, 틀어 주는 사람마저 없는 예전 영화는 우리 스스로 비디오테이프를 장만해서 보아야 합니다.

 엊그제, 영화 〈로빙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동네에 거의 하나만 남은 퍽 오래된 비디오집에 타르코프스키 테이프도 있고 키아로스타미 테이프도 있다고 하니, 우리 집에 장비만 있으면 빌려서 볼 수 있습니다. 이웃집 사람을 불러서 함께 보아도 됩니다. 비디오집이 문닫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틈틈이 그 영화를 아주 싼값으로 빌려서 볼 수 있습니다.


.. 일상적인 일의 대부분은 브라질, 멕시코, 네팔, 벨로루시 출신 이민자들의 몫이다. 이민을 왔건 이곳 출신이건 상관없이, 이곳의 모든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도 표준 정도의 집에서 살아갈 비용을 대기가 어렵다 … 값비싼 집들이 새로운 개발 부지에 건설되고 있고 건설할 예정인 집도 많다. 이로써 일자리가 필요한 노동자들에게 건설 관련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한편으로는 경관을 해칠 것이다 … 이주 노동자들은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최고로 가난한 사람인데도, 이들에 대한 적개심이 만연하다는 사실은 생각해 볼 문제다 … 하지만 이 사람들은 사회 보장세를 포함한 세금을 내며, 고용주들에게 이윤을 안겨 준다 ..  (21∼22, 247쪽)


 우리 두 사람한테 걱정이 있다면, 살붙이들과 이웃사람들과 동무들까지 거의 모두 ‘제도권 학교와 학원을 꼬박꼬박 다녀서 큰 회사에 들어가 펜대 굴리며 높은 연봉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아이가 크기를 바라는 데에 있습니다. 두 사람이 따스한 울타리가 되어 아이를 지켜 줄 수 있을 터이나, 아이가 우리 울타리를 바라지 않으면 뛰쳐나가겠지요. 아이 스스로 돈을 더 바란다면 스스로 다른 살 길을 찾아갈 테지요.

 아이 밴 어머니가 산부인과에 안 가면 미친사람으로 여기는 눈총을 받습니다. 우리는 집에서 아이 낳을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는데, ‘예전에 집에서 아이를 낳으셨던 이웃 할머니’조차 병원에 가라고 채근입니다. ‘세이레(삼칠일)’라는 말은 낡아빠진 말로만 남았을 뿐, 어느 어르신도(딱 두 분만 빼고) ‘세이레’를 왜 지키고, 세이레를 어떻게 지키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와 낳은 뒤, 아기 어머니가 어떻게 몸풀이를 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고 있는 어르신이 몹시 드뭅니다. 의사라는 사람도, 보건소 직원도 ‘초음파 검사’니 ‘양수 검사’니 하는 지식은 갖추고 있으나, 아기가 어머니 몸에서 자라는 흐름과 어머니 몸 바깥으로 나오는 흐름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 오히려 손님들은 우월감을 느꼈다. 명찰을 패용한 사람은 시중드는 사람임을 의미했다. 손님들은 무례했고, 생색내는 오만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 하지만 수많은 손님들이 나를 감정이 있는 실제 인물로 취급하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다 … 그들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돈을 썼으므로, 그들의 유일한 의무는 지불한 돈에 걸맞은 여가를 즐기는 것뿐이다 … 사람들은 호텔 밖에서, 그들이 다시는 보지 못할지 모르는 경이로운 일이 벌어질 때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호텔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  (74∼76쪽)


 가만히 생각합니다. 담배도 우리 몸에 나쁘지만 자동차 배기가스는 우리 몸에 훨씬 나쁩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은 더욱 나쁩니다. 그렇지만 우리 둘레 어느 누구도 자동차를 덜 타거나 안 탈 생각이 없고, 공장에서 새 물건을 끊임없이 ‘안 만들어도 되는 물건 씀씀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쓰레기봉투를 사서 길에 내놓는다고 쓰레기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 어느 매립터로 옮겨 갈’ 뿐입니다. 헌책방에서는, 또 골목집에서는 ‘이마트 끈’을 책 묶는 데에도 쓰고, 꽃그릇 버팀나무 세우는 데에도 씁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쓰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안 만드는 사람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요.

 출판사에서는 책에 비닐을 씌울 뿐더러 책날개를 두 겹 세 겹으로 씌우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겉보기 좋으라고 상자를 여러 겹 만드는 백화점 물건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장보러 다닐 때 장바구니나 손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은 몇 퍼센트나 될는지요. ‘큰 하나(거대 담론)’는 할 줄 안다고 해도 ‘작은 하나(생활 실천)’를 죄다 놓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올바르거나 아름다운 쪽으로 고쳐나갈 수 없다고 느낍니다. 진보나 개혁을 꿈꾸든 경제성장이나 고소득을 바라든, 우리 스스로 우리가 늘 부대끼는 ‘작은 삶’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느끼지 못한다면, 입 큰 청개구리 꼴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 나는 아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쌓아 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두고 경쟁하는 현실 속에서는 노동자 사이의 연대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 영구적인 불평등은 포틀랜드뿐 아니라 우리 나라(미국)의 모든 도시를 괴롭힌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이다. 미국에서 실업률이 높은 축에 속하는 도시, 거리마다 노숙하는 아이들로 넘쳐나는 도시, 고속도로 진출입로마다 거지들이 구걸하는 도시에서 저녁 식사 손님은 레스토랑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비싼 식사를 했다 ..  (198∼199, 214쪽)


 유럽나라 책마을을 이야기할 수는 있으나, 부산 책방골목은 이야기하지 못하는 한국사람입니다. 미국 헐리우드를 읊을 수는 있으나, 대구 골목길은 살피지 못하는 한국사람입니다. 인도와 티벳과 몽골을 나들이하지만, 정작 우리 삶터 구석구석 두 다리로 밟아 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나라밖에 나가 보면 눈이 트이고 생각이 열린다고 하는데, 나라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눈이 트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사는 좁은 울타리’, 그러니까 ‘아파트숲’과 ‘시멘트 도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비로소 눈이 트였을 뿐입니다.

 머나먼 나라까지 비싼 비행기삯을 들이지 않고, 자전거 한 대에 몸을 싣고, 아파트숲과 시멘트 도시를 벗어나서 동해에서 서해로, 강화에서 제주로 죽 달려 본다면, 해남에서 통영으로, 고성에서 홍성으로 달려 본다면, 얼마든지 생각이 열립니다. 제주섬만 한 바퀴 자전거로 돌아도 마음문이 활짝 열립니다.





 (3) 여행이야기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늘그막에 걱정없이 놀고먹을 수 있던 경제학과 교수 부부가 굳이 ‘교수 자리’를 그만두고 ‘국립공원 비정규 노동자 자리’로 옮아가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를 읽습니다. 경제학 교수인 만큼, 자료와 숫자에는 눈이 밝았을 텐데, 자료와 숫자는 종이에 적힌 글자입니다. 몸으로 부대끼면서 살갗으로 받아들이는 앎이 아닙니다. 비정규 노동자를 아무리 많이 만나 본들, 스스로 비정규 노동자로 살아 보지 않고서야, 비정규 노동자들 아픔과 슬픔과 눈물을 ‘자기 나름대로 삭일’ 수 없습니다.


.. 고용주는 가능하면 숙련 노동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싸기 때문이다 … 근대의 작업장은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자신의 시간을 회사에 제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 가끔 고객의 요구 사항이 없을 때가 생기면 새로운 과업이 배정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럼으로써 온종일 꾸준히 업무에 임하도록 강제되었다 … 우리는 전체 작업 구조에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대신, 일을 회피하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앙심을 품는다 … 날이 저물면 나는 자유로웠지만,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7시 무렵의 이른저녁부터 잠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책을 읽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  (86∼89쪽)


 글쓴이 ‘마이클 예이츠’ 님은, 여러 해에 걸쳐서 넓디넓은 미국땅을 동서로 가로지르면서 ‘싸구려 모텔’ 방을 얻어서 지냅니다. 모텔 방을 얻은 다음 하는 일은, 드넓은 미국땅 자연이 어떠하고, 이 자연을 둘러싸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기.

 미국땅에서 미국사람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미국사람다운지 살펴봅니다. 미국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미국사람인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자유와 민주와 평화라는 이름은 얼마나 허울좋게 사람들 삶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지켜봅니다.


.. 서부에 머물 때는, 피츠버그나 존스타운에 살때 왜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답은 간단했다. 동부의 하늘은 쳐다볼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 마지막으로 나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맨해튼의 무관심한 정서였다. 도시가 너무 크고 비인격적이어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  (115, 156쪽)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나라라고 합니다. 언제나 “자유라는 이름”과 “민주라는 이름”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선거도 경제도 정치도 문화도 예술도 교육도 과학도. 우리와 한겨레인 북녘도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입니다. 늘 ‘민주’가 앞세워지고 ‘인민’이 우러름받으며 ‘공화국’으로 살림을 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어떤 사람한테 어떤 자유를 어떤 모습으로 지켜 주고 있는가요. 우리 사는 남녘땅에서 자유는 어떤 사람한테 어떠한 모습으로 누릴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요. 대통령이 말하는 민주와 국회의원이 말하는 민주와 신문기자가 말하는 민주와 대학교수가 말하는 민주와 동네 아저씨가 말하는 민주와 학원강사가 말하는 민주는 서로 얼마나 가까운가요. 또는 먼가요.

 싸구려 민주만 나돌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싸구려조차 안 되는 민주가, 거짓 민주가 껍데기 민주가 겉치레 민주가 눈속임 민주가 사탕발림 민주가, 그러니까 돈이 되면 어떻게 하든 다 좋다는 민주만 판치고 있지 않습니까. (4341.8.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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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문답 - 개혁을 꿈꾼 과학사상가 홍대용의 고뇌
홍대용 원저, 김영호.이숙경 지음 / 꿈이있는세상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촘스키’를 읽는 당신, ‘홍대용’도 함께 읽으셔야지요
 [잠깐 읽기 9] 홍대용, 《의산문답》



- 책이름 : 의산문답, 개혁을 꿈꾼 과학사상가 홍대용의 고뇌
- 글 : 홍대용
- 옮긴이 : 이숙경, 김영호
- 펴낸곳 : 꿈이있는세상 (2006.4.15.)
- 책값 : 9000원



 (1) 책읽기와 취향


 여러 매체에서,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별 다섯 만점’을 잣대로 비평을 하곤 합니다. 얼마 앞서 ㅈ이라는 사람이 펴낸 책을 놓고 ‘인터넷 서평단’은 하나같이 별 넷이나 다섯을 주었지만(서평단 글쓰기를 하는 분들은 거의 이렇게 점수를 붙여 주더군요), 이 책을 자기 돈을 치러서 사서 읽은 여러 사람들이 별 하나만 주었습니다. 별 0개를 주도록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별 하나를 붙였구나 싶은데, 이렇게 별 하나를 준 사람들 글은 여느 독자들한테 크게 공감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전문 서평꾼 한 사람이 ‘나는 내 돈 주고 사서 읽었어도 아주 좋았기에 별 다섯을 준다. 내가 별 다섯을 준다고 나를 똑같은 서평단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글을 남깁니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그 전문 서평꾼은 ‘취향이 다른 문제’라고 자기 생각을 앞세우면서 별 다섯을 주었는데, 자기가 내세우는 이야기대로라 해도 ‘별 하나 주기도 아깝다’고 하는 사람 또한 취향 문제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취향 문제를 넘어서는 더 큰 문제가 있어요. ㅈ이라는 분이 낸 책이, 얼마나 짜임새가 있고 알맹이가 야무지고 따로 그런 책을 낼 만한 뜻이나 이야기가 무르익었느냐는 대목.

 사람을 죽이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살결빛이나 옷차림이나 일자리에 따라서 푸대접하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높은 아파트 창턱에서 고양이를 집어던지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쓰레기물을 끝없이 내뿜는 공장이 우리 동네에 있는데 모르는 척하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골목길에서 빵빵거리며 우악스럽게 내달리는 자동차를 보며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대통령이나 교육감이 누가 뽑히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취향이라 한다면, 너는 참이슬을 마시지만 나는 처음처럼을 마신다든지, 너는 한라산물맑은소주가 맛있다 하지만, 나는 시원소주가 맛있다든지, 너는 이과두주를 좋아한다지만, 나는 고량주가 좋다든지 할 때가 취향입니다.


.. “무릇 짐승과 초목이 아는 것과 깨달음이 없다고 했지만, 아는 것이 없는 까닭에 거짓이 없고, 깨달음이 없는 까닭에 몹쓸 짓도 하지 않는다.” ..  (48쪽)


 어느 책 하나를 놓고 잘 되었느냐 잘못 되었느냐를 가리는 일은 취향을 넘어서야 한다고 느낍니다. 날카롭고도 차분하게, 깊고도 치우침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큰일이라고 느낍니다. 책 하나가 나오기까지 어마어마한 나무가 베어지고, 나무를 베려고 적잖은 물과 기름을 써야 할 뿐더러, 나무를 베어내는 곳까지 길을 닦고 제재소를 짓고, 이 나무를 다듬어서 짐차에 실은 뒤 배로 옮겨 싣습니다. 그런 다음 기름으로 움직이는 배가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다니며 종이공장에 부려놓고, 종이공장에서는 또 물과 기름을 써서 종이로 만듭니다. 이렇게 종이가 된 다음, 짐차에 실려 인쇄공장에 가서 기름과 물을 먹고 책으로 찍힙니다. 책으로 찍힌 다음 다시 짐차에 실려서 배본소로 들어가고, 배본소에서는 또다시 작은 짐차로 옮겨 담긴 채 전국 곳곳에 있는 책방으로 실어 옮깁니다. 책방에서는 전기불 환하게 켜 놓은 책꽂이 한쪽에 이 책을 꽂아 놓습니다. 책을 사는 우리들이 몸소 책방으로 간다고 해도 자원이 듭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집에서 받아보아도 택배기사가 자원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읽는 책은, 얼핏 보면 ‘돈 몇 푼 치러서 재미있게 읽으면 그만인 개인 테두리’로 느껴질 터이나, 찬찬히 헤아리면, ‘돈을 넘어서는 사람 삶터 이음고리가 고스란히 담긴 테두리’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지금 너는 과거에 들었던 것에 집착하고 남을 이기려는 마음에 빠져서 입을 함부로 놀리면서 남의 바른 말을 막으려고 하니, 네가 도를 구하고자 함에 있어서 잘못됨이 있는 것이 아니냐? … 네가 진정으로 도를 들으려거든 네가 옛날에 들었던 것을 씻어버리고, 또한 너의 이기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네가 마음을 비우고, 네가 입을 조심한다면 내 어찌 숨김이 있겠느냐?” ..  (63∼64쪽)


 모든 책은 헌책이고, 모든 책은 새책인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낡아도 책이고 깨끗해도 책인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래되어도 책이고 갓 나와도 책인 까닭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김치국물이 튀겼다고 해서 책에 담긴 줄거리를 못 읽을 일이 없습니다. 빳빳하고 종이 냄새 물씬 풍기는 새책이라고 해서 책에 담긴 줄거리를 곱으로 받아들일 일이 없습니다. 책은 그저 책입니다.

 지식으로 머리에 담아내는 물건이 아닌 책입니다. 마음으로 새겨 읽는 마음밥인 책입니다. 곡식을 먹어 몸을 살찌우듯, 책을 읽어 마음을 살찌웁니다. 밥을 먹으며 일할 힘을 얻듯, 책을 읽어 가슴이 따뜻하거나 넉넉한 사람이 될 사랑과 믿음을 추스를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어영부영 ‘유명인사’ 내세워서 팔아치우는 책은 겉만 번지르르한 도둑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얼레벌레 ‘진보인 척’ 우쭐거리며 팔아먹는 책은 시커먼 꿍꿍이속을 감춘 몹쓸 깡패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 “그렇지만 베, 비단과 옷, 이불은 살아 계실 때에 봉양하는 기구이고, 관곽이나 정삽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장사 지낼 때에 남 보기에 좋게 하는 장식이다. 이것들은 모두 흙에 들어가면 썩어서 유해를 더럽힐 뿐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움만 신경을 쓰고 마침내 유해가 더럽혀지는 것은 생각지 않으니, 이렇게 하는 것을 효도라 하고 또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느냐?” ..  (138∼139쪽)


 지난날 이 땅 어른들, 또 우리가 책으로 만나며 높이 받드는 북중미 토박이들 삶, 그리고 티벳이나 몽골 높은산에서 살아가는 토박이들 삶, 그리고 아프리카나 호주 토박이 삶은 ‘종이로 찍힌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던 삶이었습니다. 이들한테는 책이라는 물건이 따로 없어도 되었습니다. ‘책으로 적어 놓을’ 이야기를 늘 몸으로 익혔고 마음에 새겼으며, 이 이야기를 한결같이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주고받으면서 곱씹고 되뇌었어요.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던 이 겨레 수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서, 그윽하며 훌륭한 슬기를 엿보거나 배울 수 있던 까닭은, 당신들 몸과 마음에는 ‘굳이 종이에 담아 놓지 않아도 될 흔들림 없는 사랑과 믿음’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로 학교를 다니거나 책을 읽지 않아도, 당신들 꾸려가는 삶이 바로 ‘책읽기’와 다름이 없었고, 당신들 부대끼는 삶을 언제나 깊이 되새기고 돌아보고 받아들이면서 몸뚱이뿐 아니라 가슴으로 사람을 만났습니다.


.. “그러나 만약 공자가 바다에 떠다니다 오랑캐 족이 사는 곳에 들어와 살았다면, 중국의 법을 써서 오랑캐의 풍속을 변화시키고, 주나라 도를 국외에 일으켰을 것이다. 따라서 안과 밖이라는 구분과, 높이고 물리치는 의리에 있어서도 자연히 중국이 아니라 마땅히 국외에 춘추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성인 된 까닭이다.” ..  (165쪽)


 사람한테는 책 한 권으로 넉넉할 수 있습니다. 책 한 권 없어도 넉넉할 수 있습니다. 책 만 권이 아닌 십만 권이나 백만 권이 있어도 턱없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에 수백만 권이 이르는 책이 있다고 하여, 그 하버드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책에 담긴 알짜’를 잘 삭여서 펼치면서 살아가고 있던가요. 미국이나 일본 대학교하고 견주면 너무 우스운 숫자이지만, 그래도 나라안 으뜸가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수많은 책이 있다고 하여, 이 서울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책이 말하는 슬기와 깨달음’을 고이 곱새기고 받아먹으면서 이웃하고 즐겁게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는가요.

 이웃사랑을 하는 똑똑이는 몇이나 되는지요. 이웃나눔을 하는 부자는 얼마나 되는지요. 이웃믿음으로 어깨동무하는 권력자는 이 땅에 한 사람이라도 있어 본 적이 있는지요.





 (2) 옛책 《의산문답》과 오늘날 책


.. 기존의 성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다른 만물보다 더 지혜로운 존재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엄연한 서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과 동식물의 본성이 같다고 본 낙론의 입장에 선 학자들은 사람만이 귀한 것이 아니므로, 자연히 동식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아가 자연과학 분야에도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 … 즉,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명분이나 내세우며 글이나 읽는 당시 양반들을 비판하고, 신분에 따라 직업을 한정한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능력 위주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었다 ..  (52, 55쪽-붙임말)


 옛책 《의산문답》이 지난 2006년에 새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무척 보기 좋은 판짜임에, 알맞는 글자크기에, 우리 역사나 문화를 거의 돌아보지 않는 오늘날 흐름을 살피면서 꼼꼼하게 넣은 붙임말과 풀이말까지 해서, 아주 야무지고 단단하게 엮어냈습니다. 우리 옛책이 이만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튼튼하고 쏠쏠하게 묶어냈습니다.

 꼭 ‘양장’으로 묶어내어야 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판을 크게 키우고 글자도 더 키우고 해야 ‘옛 어른 뜻을 높이는 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적어도 《의산문답》을 펴낸 출판사 분들은, 홍대용 님이 이 책을 펴낸 그 옛날, 무슨 생각과 마음과 얼과 넋이었는가를 깊이깊이 곱씹고 되새겼음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나라에도 이만한 책이 있습니다’ 하고 떳떳하게 내보일 수 있구나 싶어서 반갑습니다. 조선시대 실학자를 들먹일 때 늘 정약용과 박지원만 울궈먹고 있던 우리 문화 눈높이를 돌아보아도(정약용 님과 박지원 님 책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똑같은 알맹이를 놓고 아무런 ‘새 풀이’ 없이 되풀이하는 모습은 자원낭비라는 소리입니다), 드디어 홍대용 님 삶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살피고 껴안을 수 있도록 선물 하나 내어주었으니 그지없이 고맙습니다.


.. 그러나 비록 당대에 그의 뜻을 실현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세상을 깨우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고, 박지원ㆍ이덕무ㆍ유득공ㆍ박제가 등의 실학자들과 뜻을 함께 나누며 자신의 생각을 알렸던 것이다 ..  (78쪽-붙임말)


 그런데 홍대용 님 이 책은 얼마나 사랑을 받거나 눈길을 받으면서 읽힐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너도 나도 ‘우리 출판사 목록에 정약용이나 박지원 책 하나 집어넣으면 잘 팔릴 테지!’ 하는 마음이 가득한 이 나라에서, ‘열하일기 하나 붙잡고 늘어져도 책장사 잘 되는’ 이 나라에서, 《의산문답》이 1700년대에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를 곱씹고 2000년대에 새로 읽을 만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짚어낼 손길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 그런데 조선의 정치상황을 보면, 정부의 기득권층은 진실로 민생을 위한 현실 개혁정책보다는 자신들의 이권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를 보는 홍대용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  (113쪽-붙임말)


 우리 세상이 돈이 아닌 삶을 볼 줄 안다면야, 《열하일기》도 읽히고 《의산문답》도 읽히리라 봅니다. 《의산문답》뿐 아니라 《을병연행록》도 읽힐 수 있으리라 봅니다. 박지원과 홍대용에 그치지 않고, 역사책에 이름 석 자로만 남은 숱한 옛 어른들 발자취를 돌아보고 되새기면서, 우리가 서로를 아름답게 받아들이며 믿고 돕고 사는 길을 스스로 찾아나설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하워드 진도 훌륭하지만 박지원도 훌륭합니다. 노암 촘스키도 훌륭하지만 홍대용도 훌륭합니다. 며칠 앞서, 우리 나라 국방부에서 ‘불온도서 스물세 가지­’를 몸소 뽑아서 밝혔는데, 이 스물세 가지에는 ‘노암 촘스키’ 책이 둘이나 끼워져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국방부 관계자께서 홍대용 님 책을 읽어 보셨다면, “아니 1700년대 이때부터 ‘반정부 사상’을 외치고 있었다니!” 하면서, ‘반정부 불온도서’로 이 《의산문답》 하나를 끼워 놓고 촘스키 님 책 하나는 덜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341.8.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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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원폭 2세 환우 김형률 평전
전진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54 ― ‘원폭피해 2세 환우’한테 인권은 없었네
 : 전진성 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김형률 평전)


- 책이름 :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글 : 전진성
- 사진 : 윤정은
- 펴낸곳 : 휴머니스트(2008.5.19.)
- 책값 : 12000원



 (1) 사라지는 책


 지난주에 바람 좀 쐬려고 서울로 헌책방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때 서울 노고산동에 있는 ㅅ헌책방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할머니 작품집》이라는 두툼한 그림책 하나를 보았습니다. “문화관광부 복권기금 지원사업”으로 나왔다고 책겉에 글씨를 박아 놓고 있던데, 2004년에 비매품으로 나왔습니다.

 2004년이면, 몇 해 안 되었기에, 그때 이런 책이 나온 줄 왜 몰랐을까 생각하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를 합니다. 이 책과 얽혀서 아무런 기사가 뜨지 않습니다. 비매품으로만 찍고 기자한테도 돌리지 않았을까요. 기자한테 보내어 주기는 했으나 기사로 다루지 않았을까요. 광주 퇴촌면에 자리한 〈나눔의 집〉에 가야만 구경할 수 있을까요.

 문과관광부에서 책 내는 돈을 도와주었다면, 출판사 한 곳에서 일을 맡아서 꾸며낸 다음, 새책방에도 집어넣어서 사람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찾아보고 읽으면서 하나하나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았을는지 궁금합니다.


.. 합천에서 많은 사람들이 히로시마로 건너갔던 것은 분명히 일제와 그 하수인들의 수탈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합천사람들의 고통은 그들을 히로시마로 내몰고 귀향 후 무책임하게 방치해 온 역사적 전말과 관련지어 규명되어야 하며, 국가 차원에서 응분의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 분명히 역사의 피해자들인데도 이들의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무책임한 사회라면 우리는 과연 이런 곳을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자발적인 소속감을 가질 수 있을까? ..  (148쪽)


 지난 2002년, 송건호 님 전집이 스무 권으로 나오면서, 그나마 몇 가지 시중에 있던 ‘낱권으로 된 송건호 님 책’은 모두 판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40만 원에 이르는 전집을 사든지, 아예 읽지 말든지 하라는 노릇입니다. 그래도 헌책방을 찾아가 보면 송건호 님 책은 어렵잖이 만날 수 있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아직 절판이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재판을 찍을 일이 없어 보이는 ‘송건호 전집’이 절판이 되어 버리면, 이제는 영영 송건호 님 책을 시중 새책방에서는 구경해 볼 수 없게 되고 말는지요. 송건호 님 책을 낱권으로 만날 길은, 또는 값싸고 가벼운 판으로 송건호 님 책을 읽을 수 있는 길은, 앞으로도 없을까 모르겠습니다.


.. 일본의 원폭피해자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한국인들이 겪은 식민지 지배와 전후 방치의 고통만큼은 알지 못했다 …… 형률 씨는 자국의 역사적 과오를 덮으려 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정당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 소재를 일본 정부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책임은 미국 정부에게도, 그리고 한국 정부에게도, 또한 한국의 시민사회에도 있다. 심지어는 한국 원폭피해자들 자신에게도 있다 ..  (89∼90쪽)


 지난 2006년, ‘리영희 저작집’ 열두 권이 나올 때, 리영희 님 책도 주루루 절판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걱정과 달리 다른 책이 절판되지는 않았습니다. 안타까이 품절을 걷다가 절판까지 이어지고 만 《스핑크스의 코》라는 책도 있지만, ‘리영희 저작집’ 말고도 몇 가지 책은 시중 새책방에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리영희 저작집’ 열두 권이 먼저 품절이 되어버렸습니다.

 말로만 품절인지, 속내로는 절판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다만, 송건호 전집과 마찬가지로 ‘리영희 저작집’도 앞으로는 홀가분하게 만날 수 없겠다는 생각은 뭉게뭉게 듭니다.


.. 그는 여기서 문제 해결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선지원 후규명’이라는 해법이었다. 날로 악화되는 환우들의 건강은 면밀한 조사와 법적 공방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순수한 인권 차원에서 정부 차원의 의료 원호 사업이 실시되어야 한다 …… 그러나 인권위는 ‘정책권고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원폭 2세에 대한 어떠한 실태 조사도 실시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  (211쪽)


 지난 1999년, ‘문익환 목사 전집’ 열두 권이 삼십만 원이라는 값을 달고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이 책은 품절은 안 된 듯 싶습니다. 그러나 1999년 값으로 열두 권 삼십만 원이란 엄두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어느덧 열 해 가까이 지난 2008년에 와서 헤아리면 열두 권에 삼십만 원은 그다지 안 비싼(?) 값입니다만, 주머니를 열기가 벅차기는 매한가지입니다.

 1997년에 나온 ‘예용해 전집’ 여섯 권을 생각해 봅니다. 1997년 값으로 여섯 권에 십이만 원이었습니다. 예용해 선생이 살아온 발자취를 곱씹어 본다면, 당신이 펼친 이야기처럼 당신 책도 수수한 아름다움과 멋을 듬뿍 풍기면 좋으련만, 글쎄요.

 한국땅에서 한국 얼과 넋을 빛낸 분들 책을 한 자리에 묶어내는 일은, 오히려 무덤을 파는 일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는지. 몸뚱이는 흙으로 돌아갔어도 그분들 넋을 고이 이어받아서 우리 삶을 가꾸도록 하려는 몸짓으로 전집을 묶었을 텐데, 이 전집들이 받는 대접은 하나같이 겉치레와 껍데기일 뿐, 이 전집들에 담긴 이야기가 알알이 소담스럽고 조촐하게 우리 삶에 스며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르신을 기리고자 야무진 양장에 비싸구려 종이에다가 단단한 종이상자를 씌워 주는 일은 반갑기는 하지만, 무덤에 금을 바르기보다는 살아서 굶주리는 사람들 앞에 밥그릇 하나 골고루 놓아 주는 일이 한결 반가웁지 않으랴 싶습니다.


.. 형률 씨는 원폭 2세 환우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사안이다. 현률 씨는 단지 사회복지 차원에서 구호를 호소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부채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였다 ..  (233쪽)


 ‘원자폭탄 피해자 2세 환우’ 김형률 님 이야기를 담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를 읽고 나서, 그러면 ‘김형률 개인을 넘어서 원자폭탄 문제란 무엇이고, 원자폭탄 피해자 이야기는 얼마나 우리가 찾아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자료를 뒤져 보았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이쪽 일에 눈길을 두면서 자료를 챙겨 놓았기 때문에,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살핍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책이 있으니, 더 읽어 보면 좋습니다’ 하고 소개해 보려고 인터넷 새책방 목록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만화책 《맨발의 겐》을 빼놓고는 절판이나 품절입니다. 죽은 김형률 씨가 그토록 아끼고 되읽었던 《한국의 히로시마》라는 책마저 2003년에 처음 나왔음에도 벌써 절판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진작 절판이 되었는데, 이참에 비로소 알게 된 일인지 모릅니다만.




 (2) 사라지는 역사


 나이를 거슬러서, 고등학교 적을 떠올려 봅니다. 1991년부터 1993년. 이 세 해 동안 찾아서 읽은 책을 헤아려 봅니다. 고1이 된 1991년 2월께, 방송 소식으로 ‘1993학년도 대입시험은 학력고사에서 수능과 논술로 바꾼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등학교 과목을 배우던 그해부터 교과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덕분(?)에 같은 학교를 마친 우리 형이 쓰던 교과서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물려받을 수 없었고, 모두 새로 사야 했습니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시험으로 바뀌기만 하지 않고, 교과서에서 쓰던 말도 한꺼번에 바뀌었습니다. ‘타제석기’와 ‘마제석기’는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뗀석기’와 ‘간석기’가 쓰였고, ‘지석묘’ 또한 사라지면서 ‘고인돌’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함께, 교과서 지식만으로는 수능시험을 치를 수 없으니, 교과서 아닌 교양서적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주문이 내려왔습니다.

 교과서가 바뀐 탓에 살림돈이 많이 나가 우리를 괴롭히기는 했지만, 이 소식은 ‘교과서 아닌 책을 학교로 마음껏 가지고 가서 읽어도 되는구나’ 하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역사 시간에 박지원을 가르쳐 주면, 책이름을 잘 새겨 놓았다가 박지원이 쓴 글과 책을 책방을 뒤져서 찾아 읽었습니다. 교과서에는 안 나오는 이름이었지만, 박영문고에는 ‘박지원ㆍ이옥’ 소설이 함께 묶여 있었기에, 또다른 옛 선비 글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교과서 지식으로는 ‘박지원 = 열하일기’였지만, 저는 구태여 《열하일기》라는 책을 손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정약용 = 목민심서’로 외우기 싫어서 《목민심서》를 읽고 《흠흠신서》를 읽었습니다. 마침 한문 공부를 꽤 깊이 하였던 터라, 박지홍 님이 쓴 《한문입문》까지 읽으면서 《목민심서》를 아예 원본을 놓고 새기기도 했습니다.


.. (박정희) 군사정권은 국내 원폭피해자들의 존재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왜? 민주적 정통성이 결여된 군사정권은 주변국의 지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우두머리 박정희는 일제강점기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만주관동군에 충실히 복무했던 둘도 없는 친일파가 아니었던가 ..  (83쪽)


 현대역사를 가르치며 ‘박은식’이 나오면 《독립운동지혈사》를 찾아 읽었고, ‘신채호’가 나오면 《조선상고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책은 시중 새책방에 없었습니다. 박은식 님 책은 박영문고와 서문문고로 있었으나, 헌책방에서 겨우 찾았고, 신채호 님 책도 삼성문화재단문고로 나온 판을 헌책방에서 가까스로 찾아서 읽었습니다. 김동인이든 김유정이든 이효석이든 나도향이든 안수길이든, ‘이름 = 작품’이 아닌 ‘이름 → 책’으로 바꾸어서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 놓은 다음, 반드시 찾아서 읽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틈틈이 소지품 검사를 하면서 ‘교과서 아닌 책’을 잔뜩 꺼내는 제 책을 압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수능시험을 치르려면 교과서 아닌 책을 읽어야 한다면서요?’ 하고 대꾸를 하면서 국어 교사나 역사 교사 손을 거쳐서 모두 돌려받았습니다.


.. 원폭 이전 히로시마는 일본에서 제일 가는 군사도시였다. 1894년 청일전쟁 때 일본군은 히로시마에서 승선했고, 메이지 천황은 히로시마를 7개월 간 임시수도로 삼고 육해군을 통솔하는 최고 사령부인 대본영을 히로시마성에 설치했다 …… 이후 반세기에 걸쳐 히로시마는 아시아 침략의 거점으로 크게 번창했다 ..  (115쪽)


 나중에 우리가 꿈꾸던 대학교를 속으로 읊으면서 ‘그 학교 그 학과에 아무개 교수가 있다더라. 우리가 그곳에 가려면 그 교수가 쓴 책은 읽어야 하지 않겠니?’ 하면서, 강만길 님이 쓴 《한국현대사》를 읽고, 《한국의 역사인식》 상하권을 줄줄 외면서, 수업을 듣다 말고 선생님한테 여쭙곤 했습니다. 교과서에는 안 나오지만 수능과 본고사 보기글로는 나오는 고은, 염무웅, 최원식, 백낙청, 김윤식, 김현 같은 사람들 책도 읽어나가면서 이들이 비평하고 소개하는 사람들 책도 가지치기가 되어서 저절로 따라 읽게 됩니다.

 이러는 동안 이오덕, 권정생, 이원수를 알게 됩니다. 성내운, 고정희, 최현배, 박완서, 홍명희, 황석영, 김정한, 천승세를 읽게 됩니다.

 교과서 역사에는 왜 ‘현대 역사가 이리도 짧게 나올까’ 갸웃갸웃하고, 두루뭉술하게 스쳐 지나가는 친일부역자와 독재정권 문제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중간시험과 기말시험, 또는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거나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하더라도 ‘역사를 안다’고 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점수에서는 조금 낮은 점수, 때로는 많이 낮은 점수를 받더라도, 내 땅에서 내가 살아가는데 내 삶터 발자취를 내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 원폭이 차세대에 끼치는 영향을 인정하는 것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은 일본 정부로 하여금 미국의 핵무기에 대해 비판하도록 촉구하는 운동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일본 피폭 2세들은 이 정도 모험을 감수할 만큼 사명감이 투철하지 못하다. 다만, 자신들의 권익에 민감할 뿐이다 ..  (137쪽)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시험이라는 굴레에서 홀가분하게 풀려납니다. 이때부터는 거리낌없이 갖가지 책을 더 깊이 찾아나섭니다. 이토 다카시라는 일본사람이 쓴 《사할린 아리랑》과 《종군 위안부》라는 책을 만나면서, 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이분들, 사할린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들이나 한국땅에서 제 모습을 숨긴 채 울어야 하는 분들 삶과 아픔을 한 줄로도 적바림하지 않을 수 있는지 짜증이 일었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일본사람이 쓴 《미나마따의 아픔》이나 《촬영금지》나 《보도사진가》라는 책을 만나면서, 왜 한국에서 기자나 사진작가라고 하는 놈들은 우리 근현대사를 이렇게 멀찌감치 에둘러가면서 겉멋만 잡고 있는가 하면서 주먹을 파르르 떨었습니다.

 이러는 동안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라는 책을 만납니다. 한국외대 구내서점에서 일할 적에는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라는 따끈따끈한 책이 나온 모습을 보며 덥썩 껴안습니다. 《심심해서 그랬어》 같은 그림책은 아이들이 볼 그림책이라기보다 어른이 함께 보아야 할 그림책이라고 처음 느낍니다. 《몽실 언니》나 《하느님의 눈물》이야말로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보다 훨씬 더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까이할 책임을 느낍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대로 학교교육에 파묻히다가는, 책이 아닌 교과서 달달 외우며 살다가는, 교과서가 마치 책이라도 되는 듯 잘못 아는 삶을 고치지 않다가는, 이대로 시험점수에 노예처럼 휘둘리면서 ‘성적표 숫자가 자기 자신을 말하기라도 하는 듯’ 엉터리로 알고 있다가는, 사람도 망가지고 삶터도 망가지고 이 나라도 망가지겠다고 느낍니다.


.. (형률 씨가) 무심코 들춰본 진료기록부에서 그는 한 편의 의학 논문을 발견했다. 〈면역글로불린M의 증가가 동반된 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병을 다룬 논문이 아닌가! 환자인 자신도, 그리고 보호자인 부모님도 알지 못한 채 발표된 의학 논문이었다. 1995년 당시 자신에게 병명을 알려주었던 주치의가 형률 씨의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한 결과를, 더구나 보호자가 낸 검사비로 이루어진 것인데도, 아무런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었다. 형률 씨는 엄청난 소외감을 느꼈다. 한낱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 자신의 몸! ..  (54쪽)


 그렇게 ‘누군가 없애거나 지우려고 애쓰는’ 참된(?) 우리 발자취를 찾아나가던 어느 날, 서울 홍제동 ㄷ헌책방에서 《핵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만납니다. ‘한국 원폭피해자 2세’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돌아본 조그마한 책입니다. 《핵의 아이들》을 써낸 박수복 님은 1975년에도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라는 책을 펴내어 ‘한국 원폭피해자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핵의 아이들》은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에서 소개한 원폭피해자들이, 그 뒤 열 해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가를 다시 찾아가서 만난 이야기로 묶었습니다.

 그렇지만 때가 때였던 만큼, 원폭피해자는 ‘여느 장애인보다 더 고달프고 아픈(?)’ 굴레에서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왜 아픈지, 무엇 때문에 아픈지 알 길이 없었고, 아파도 병을 다스릴 약값을 댈 수 없었으며, 바로 코앞에 떨어진 밥과 집 문제마저 풀기 어려웠습니다. 1975년에 낸 책에 붙인 이름처럼, ‘소리도 없’고 ‘이름도 없’는 삶이라고 할까요. ‘소리를 내도 들어 주는 사람 없’고, ‘이름이 없으니 알아주려는 사람도 없’는 삶이라고 할까요.

 박수복 님은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라는 책에서, 원폭피해자들 입을 갈음하면서 “한국피폭자들의 현존이야말로 현대의 전쟁이 무엇이며, 과학무기가 무엇인가를 그들이 온 생애를 통한 고통과 그들의 목숨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30년을 버텨 온 것처럼 앞으로도 버텨 갈 것이다. 그리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을 것이다. 장구한 미래까지도 결코 마멸되지 않는 흔적으로 그 고통은 메아리칠 것이다(25쪽)” 하고 외칩니다.

 취재를 하면서 울고, 글을 갈무리하면서 울던 그 마음이, 시중에서 사라지고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서 조용히 먼지를 먹고 있던 책을 우연히 알아보고 읽은 한 사람 마음으로도 이어져서, 서른 몇 해가 흐른 지금까지도 쩌렁쩌렁 울립니다.




 (3)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책


..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유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원폭 2세 환우들과 원폭피해자 가족들을 더 이상 방치한다는 것은 국가권력의 폭력이며 인권유린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  (김형률/288쪽)


 ‘한국 원폭피해자 2세 환우’ 김형률 님은 1970년 7월 28일에 태어나 2005년 5월 29일에 숨을 거둡니다. 서른여섯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피해자인 몸으로 태어나서 아픔 한 번 달래 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하다가 죽고 만, 원폭피해자 2세 환우 가운데 하나인 김형률 님입니다.

 형률 님 형제가 모두 아픔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 다른 원폭피해자 2세들 가운데에도 몸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형률 님은 ‘원폭피해자 2세 환우’라고 해서 ‘환우’라는 말을 뒤에 꼭 붙였습니다. “저와 같은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 2세 환우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면 건강한 원폭 2세들도 유무형의 사회적인 편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김형률/38쪽)”한다고 말한 김형률 님. 그렇지만, 문제는 ‘튼튼하게 잘 살아가는 원폭 피해자 2세’를 뱀눈으로 바라보는 사회에 있습니다. 더욱이, ‘아파서 힘겹게 겨우 살아가는 원폭 피해자 2세’를 아예 ‘없는 사람’인 듯 구석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야말로 문제입니다.


.. 생계 지원이나 박물관 건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환우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장치와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정치 공세나 학술적인 호기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  (254쪽)


 하루하루 더 골이 깊어가는 사회 푸대접을 바라보고 있자면,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처럼 어렵다는 말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부자가 가난한 이 삶을 돌아보기 어려웁듯, ‘몸이 안 아픈’ 사람이 몸 아픈 사람 삶을 돌아보기도 어려울까요.

 피해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아 시름시름 앓거나 괴로워하는 사람 삶을 헤아리기는 꿈일 뿐일까요. 지식으로는 알고, 소식으로는 들어도, 그저 머나먼 딴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질 뿐인가요.


.. 아프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운동을 하는 이유였다. 아픔을 종식시키는 것은 그 운동의 목표였다. 그는 자신의 운동을 ‘인권회복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  (222쪽)


 모자라나마 이런 책이 나왔고, 아쉬우나마 원폭피해자 2세 환우 이야기를 다루며, 늦게나마 이 책 하나로 우리 스스로 우리 눈길에 담아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제 첫발입니다. 첫걸음입니다. 김형률 님이 세운 ‘한국원폭 2세 환우회’는 어떻게 보면 첫발도 아닌지 모르거든요. 애써 첫발을 떼려고 했지만, 첫 발걸음을 떼려는 김형률 님과 이웃 아픔이들을 밀어서 넘어뜨린 사람이 숱하게 많았어요. 2004년 여름날,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에서 ‘원폭피해자 담당 사무관’하고 만났을 때, 담당 공무원은 “현재 한국 원폭2세 환우회에 가입한 회원수가 적어 조직을 인정할 수 없으며, 그저 김형률이라는 개인의 민원으로 접수하겠다고 못박았(169쪽)”답니다. 그리고, “박 사무관은 원폭 2세 환우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199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 원폭피해자 실태 조사〉에서 원폭 후유증 자녀수를 2300여 명이라고 밝혔던 사실에 대해 그는 ‘모르는 사실’이라고 일축했(170쪽)”고요.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알아보고도 눈을 감았습니다. 알고 난 다음에는 팔짱을 끼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입니다. 공무원부터 여느 시민까지 한결같습니다. (4341.6.20.쇠.ㅎㄲㅅㄱ)

   
 
 [더 찾아볼 만한 책]

㉠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 조사자료
박수복,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창원사,1975)
박수복, 《핵의 아이들》(한국기독교가정생활사,1986)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인 원폭피해자(실태조사보고서)》(한국교회여성연합회,1984)
한국교회여성연합회ㆍ사회사진연구소, 《그날 이후》(한국교회여성연합회,1989)

㉡ 원자폭탄 피해자 수기ㆍ증언
존 허시/이부영 옮김, 《히로시마의 증인들》(분도출판사,1986)
오꾸다 사다꼬/조형균 옮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생각사,1982)
표문태 엮음, 《버림받은 사람들》(중원,1987)
오사다 아라다 엮음/박준희ㆍ홍현길 옮김, 《원폭의 어린이》(학문사,1996)

㉢ 원자폭탄과 평화ㆍ환경 문제
칼 야스퍼스/김종호ㆍ최동희 옮김, 《원자탄과 인류의 미래》(사상계사,1963) 상하 권
간샤 다에꼬/조형균 옮김, 《아직도 늦지 않다면》(백재문화사,1991)
박해전 옮김, 《반핵과 제3세계》(시인사,1986)
히로세 다카시/김원식 옮김, 《위험한 이야기》(푸른산,1990)
리영희ㆍ임재경 엮음, 《반핵, 핵위기의 구조와 한반도》(창작과비평사,1988)
고승우ㆍ윤범모, 《반핵과 미술》(춘추사,1989)
표문태 엮음, 《아시아를 비핵지대로》(일월서각,1987)
윌프레드 버체트/표완수 옮김, 《히로시마의 그늘》(창작과비평사,1995)
이안 부루마/정용환 옮김,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한겨레출판,2002)
이치바 준코/이제수 옮김, 《한국의 히로시마》(역사비평사,2003)

㉣ 원자폭탄과 얽힌 문학ㆍ예술 작품
신기활, 《핵충이 나타났다》(친구,1989)
앨런 니들/박정은 옮김, 《핵시대의 우화》(현암사,1994)
김원일, 《히로시마의 불꽃》(문학과지성사,2000)
구드룬 파우제방/함미라 옮김,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보물창고,2005)
나카자와 게이지/김송이ㆍ이종욱 옮김, 《맨발의 겐》(아름드리미디어,2000) 10권

㉤ 원자력발전소 폐기장 문제와 얽힌 나라안 문제
전재진, 《핵, 그리고 안면도 항쟁》(충남저널,1993)
박영복, 《굴업도》(학민사,1995)

㉥ 일본은 아무 잘못 없으며, 원자폭탄 피해자이기만 하다고 외치는 모순덩어리
나스 마사모토ㆍ니시무라 시게오, 《히로시마》(사계절,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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