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
제러미 시프먼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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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노래이나, 아름다운 삶은 아닌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8] 제러미 시프먼,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제가 1980년대에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는 다달이 한 번쯤 학교에서 밥을 해먹었습니다. 사내아이라 해서 실과 수업을 빠진다든지 덜 해도 되는 법이란 없었습니다. 사내아이이든 계집아이이든 똑같이 실과 수업을 하면서 밥하기와 찌개 끓이기와 바느질하기와 톱질하기 들을 배웠고, 이처럼 배우는 살림일을 몸소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쯤 밥하기를 하니까, 이날은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도 됩니다. 따로 학교에서 밥하기를 배우지 않더라도 또래 동무들은 거의 모두 집에서 ‘혼자 밥하기’를 하고 있습니다. 계집아이이든 사내아이이든 2∼3학년쯤이면 쌀을 일고 물을 맞추어 솥밥이나 냄비밥을 지을 줄 알았습니다. 웬만큼 집살림을 거드는 아이들은 김치찌개이든 된장찌개이든 제법 끓일 줄 알았습니다. 밥물을 맞출 줄 모른다든지 조리를 쓸 줄 모른다든지 밥불을 놓을 줄 모른다든지 하는 동무는 핀잔을 듣거나 나무람을 듣기 마련이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집살림이 넉넉한 동무는 거의 없었습니다. 동무들은 하나같이 고만고만하게 가난한 집살림이었고, 가난한 집살림에서 동무네 어버이들은 하나같이 바깥일을 하느라 바쁘고 고된 만큼 동무들은 집에서 집안일을 많이 거들어야 했습니다. 여자라서 일찌감치 집안일을 배워 거든다거나 남자라서 집안일을 안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 모차르트에게 스승이라고는 오로지 아버지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아이들을 학교 문전에도 데려가지 않고, 또래와의 우정을 거의 박탈한 채로 키웠다 … 모차르트는 세상을 뜰 때까지 버드, 프레스코발디, 몬테베르디 같은 이름들을 전혀 몰랐을 것임이 거의 틀림없다. 믿기 어렵지만 그가 바흐나 헨텔의 작품들을 발견한 것도 최전성기를 누리던 1780년대의 일이다 … 마지막 교향곡 세 곡은 놀랍게도 고작 6주 사이에, 그것도 경제적인 궁핍이 극에 달했을 때에 작곡되었다. 모차르트가 그 작품들이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들이 될 것을 알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그때 겨우 32살이었고, 그 뒤로 세 해를 더 살았다 ..  (29, 37, 130쪽)


 입시지옥에 매인 중학교 1학년부터는 텔레비전하고 등을 돌렸습니다. 텔레비전하고 가까이 붙어 지낸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 보던 텔레비전 영화 가운데 무술 영화를 떠올리면 예전 무술 영화에서 무술을 배우는 사람들은 으레 ‘스승이 사는 집으로 찾아가서 여러 해 동안 밥하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같은 집안일을 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제자 되는 사람은 여러 해 동안 ‘무술은 하나도 안 가르쳐 주고 집안일만 시키며 부려먹는다’며 골을 부립니다. 스승은 빙그레 웃으면서 ‘넌 아직 멀었다’고 하면서 ‘집안일을 더 시키’는데, 제자 된 사람은 ‘무술을 하는 솜씨’를 아직 몸에 익히지 않았으나 ‘무술을 할 때에 함께 해야 하는 몸 만들기’는 어느새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승은 제자가 ‘재주꾼이 되기’ 앞서 ‘옹글고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몸 만들기’를 ‘집안일하기’로 시켜 주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아주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집안일을 하는 사람치고 뚱뚱하거나 군살 많은 사람이란 없습니다. 몸이 나빠서 붓는다든지 아이를 낳고 몸풀이를 제대로 못해서 뼈가 어긋나며 퉁퉁 부은 아줌마들이 있습니다만, 집안일을 하노라면 그야말로 온몸에서 군살이 붙을 겨를이 없습니다. 내 옷가지만이 아닌 집식구 옷가지를 모조리 손빨래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몸소 한 달쯤 집식구 옷가지를 손빨래를 해 보셔요. 헬스클럽 몇 달 다닐 때보다 한결 억센 팔뚝이 되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불을 빨고 바느질을 해 보셔요. 팔굽혀펴기나 턱걸이를 할 때 못지 않게 손아귀 힘이 장난이 아니도록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아기를 업고 저잣거리 마실을 하여 먹을거리를 장만한 다음 밥하기를 하고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를 해 보셔요. 다리통과 등허리가 얼마나 야물딱지게 단단해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오늘날은 집살림을 덜어 준다는 갖가지 기계가 잘 나와 있습니다. 빨래나 청소나 설거지나 밥하기에서 우리 손이 덜 가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우리는 손을 덜 써도 되며, 택배라고 하는 제도는 굳이 마실을 나가서 낑낑거리며 들고 오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냉장고라고 하는 녀석은 먹을거리가 썩지 않도록 건사해 주는 곳간 노릇을 합니다. 여러 날 먹을거리를 한 번에 장만해 놓아도 됩니다.


.. 그는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어떤 불안감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는 연주든 작곡이든 뭔가 이루어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주입시켜 놓았음이 분명하다 … 이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를 갈망했다. 아무리 음악의 천재로 살아왔다지만 그는 또래 아이들처럼 자신의 두 날개를 활짝 펴야 할 10대 후반의 소년이었다 … 많은 신동들이 그러하듯이 모차르트도 어린 시절을 거의 도둑맞고 살았던 것이다 … 1777년에 21살이 된 모차르트는 그때까지 자신이 작곡한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위대하고 독창적인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  (56, 79쪽)


 우리 삶자락에서 우리 손길을 타는 자리가 많이 줄었습니다. 아니, 오늘날 우리 둘레에는 우리 손길을 타는 자리란 가뭇없이 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 눈길을 받고 우리 손길을 타며 우리 마음길이 녹아들 만한 자리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손과 손이 만나는 자리는 잊혀지고, 눈과 눈이 마주치는 자리는 밀려나며, 마음과 마음이 어울리는 자리는 스러집니다. 사람이 깃들 자리란 얼마 없습니다. 사람이 머물 자리란 몇 군데 없습니다. 사람이 쉴 자리란 자꾸자꾸 밀려납니다. 사람이 부리는 기계이지만 사람이 부리는 기계한테 사람이 쫓겨납니다. 서로서로 살을 부비며 아끼고 사랑하며 돕던 삶결을 어린 날부터 곱게 받아들이면서 맑고 싱그러운 한 사람으로 오롯이 서는 일이란 드뭅니다. 다 함께 어깨동무하고 믿으며 따숩게 얼크러지는 삶자락을 젊은 날에도 고이 이어가면서 튼튼하고 넉넉한 한 사람으로 당차게 서는 일이란 좀처럼 없습니다. 나란히 손을 맞잡으면서 씩씩하고 슬기롭게 빛나는 삶무늬를 늙은 날에도 어여삐 뿌리내리면서 아름답고 멋스러운 한 사람으로 우뚝 서는 일이란 꿈 같은 노릇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해맑은 어린이로 살아가며 풋풋한 젊은이로 꿈을 키우고 슬기로운 늙은이로 삶을 마무리하는 삶고리를 알뜰살뜰 꾸릴 수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 모차르트는 어떤 면에서는 과장을 극도로 혐오했다. 더 나아가, 극도로 단순하고 명징한 모차르트 피아노 음악의 짜임새는 연주자에게 숨을 구석을 전혀 허락하지 않는다 … 모차르트는 헨델 이래로 후원자라는 족쇄 대신에 자유를 선택한 첫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를 함께 해방시켜 그들이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게 만든 첫 작곡가로 불려 마땅하다 … 모차르트는 협주곡을 변모시켰다 … 무엇보다도 그는 정복자도 정복당한 자도 없는 유토피아적인 세계, ‘평등 공화국’을 구현해 냈다 … 이후 몇 해에 걸쳐 모차르트가 내놓은 걸작은, 그 수만으로도 경이롭다. 게다가 가르치고 연주하는 의무적 일과, 남편 노릇과 아버지 노릇, 활발한 사교 생활이 기본이고, 작곡은 가욋일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 작업량은 거의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다가 17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의 음악은 그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크게 성격이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연주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져서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사기를 꺾었다. 음악의 성격은 음울하고 강력해졌으며 화성적으로는 새로운 과감성을 보여주었다 … 그들(청중)은 슬픔을 맛보려고 콘서트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  (91, 134, 140∼141, 170쪽)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고작 서른다섯 해를 살다가 떠난 모차르트라는 사람이 남긴 노래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짚어 보는 이야기책입니다. ‘노래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아주 어린 나이에 가락을 쓰고 악기를 타던 모차르트가 어떠한 사람과 부대끼며 어떠한 삶을 꾸렸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마주하는 모차르트 삶을 옆지기한테 들려줍니다. 옆지기는 지아비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더니, 모차르트한테 피아노 치기가 재미있었을까 하고 궁금해 합니다. 모차르트는 노래를 짓고 악기를 타는 데에만 너무 바쁘고 매여서 정작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고 할 줄 모르며 할 겨를이 없지 않느냐고 이야기합니다.

 모차르트는 고급스러운 옷을 사들여 입고, 집안을 온통 고급 물건으로 꾸미는 데에 빠져 있었다는데(이 때문에 죽은 뒤에도 빚이 무척 많이 남았답니다), 정작 스스로 바느질을 하여 옷을 지어 입을 줄을 모릅니다. 알아보지 않아도 뻔할 터인데, 모차르트는 손수 밥을 해서 먹은 적이 없겠지요. 언제나 ‘돈을 주고 일을 부리는’ 일꾼들이 밥을 차려 주고 치워 주고 했겠지요. 노래를 지어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삶을 꾸리던 천재요 신동인 모차르트입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숱한 운동선수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운동경기 한 가지를 기계처럼 더 꼼꼼하고 뛰어나게 해내는 데에만 눈길을 맞추기 때문에 운동선수한테는 ‘내 삶’이란 없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운동경기 솜씨를 갈고닦는 데에 바쳐야 합니다. 하루라도 운동을 빠지거나 거르면 ‘다른 선수한테 뒤처지기’ 때문에, 운동경기 아닌 일은 생각하지도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아마 연예인도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예쁘장하고 멋스레 보일는지 모르는데, 예쁘장함이란 무엇이고 멋스러움이란 무엇일까요. ‘화면발이 좋으’면 예쁘장한 삶일까요. 연속극이나 영화에 ‘뭔가 있어 보이도록’ 나오면 멋스러운 삶일는지요.

 어쩌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로서는 공부는 잘하여 시험성적은 좋습니다. 그런데 시험성적 잘 나오는 일이 참말 ‘공부 잘하는’ 일이 될까요? 공부란 시험성적 잘 나오도록 하는 일일까요?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 점수는 잘 받을 줄 알지만, 걸레 빨기 하나 못하고 걸레질 하나 할 줄 모른다면, 이 아이한테는 무슨 삶이 있다고 할까요.

 커다랗고 까만 자가용을 굴리는 삶이 아름답거나 훌륭한 삶일까 궁금합니다. 커다랗고 비싸며 서울 강아랫마을에 있는 아파트에서 꾸리는 삶이 좋거나 신나는 삶일까 궁금합니다. ㅅㄱㅇ이라는 대학교 졸업장을 따거나 미국이나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에서 받은 학위를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삶이 거룩하거나 알찬 삶일까 궁금합니다.


.. “제가 이제까지 아버지께 눈곱만큼의 애정도 보여준 일이 없었으니 이제야말로 애정을 보여줄 순간이라고 주장하시다니, 어처구니없군요. 이게 진짜 아버지 본모습입니까? 제가 아버지를 위해서 제 쾌락을 희생할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구요? 제가 여기에서 어떤 쾌락을 누린다는 말씀이세요? 진정 제가 쾌락과 재미에 빠져 흥청망청 지낸다고 믿으시나요? … 제가 뭣 때문에? 돈 때문에요? 저는 부자 아내도 결코 원하지 않고요. (아무튼 베버 씨 가정은 결코 부자도 아닙니다) 설령 결혼을 통해 한 재산을 챙길 수 있다 해도 저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제 마음은 다른 문제로 꽉 차 있으니까요. 하느님이 제게 재능을 주셨는데 마누라에 매여 이 황금과 같은 세월을 게으르게 낭비하라고요? 저는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한 참이라고요! ..  (149∼150쪽)


 모차르트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차르트한테는 뜻이 맞는 동무가 없었다고 합니다. 꼭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일이 아니요, 반드시 뜻맞는 또래 동무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차르트한테는 ‘천재’요 ‘신동’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준 대단한 솜씨를 부려 노래를 짓는 데에만 온삶을 바치도록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모로 보았을 때 모차르트라고 하는 분은 서른다섯 짧은 해에 걸쳐 어마어마한 노래를 무척 많이 지었습니다. 서른다섯 해로 삶을 마감했으나 코흘리개일 때부터 노래를 지었으니 얼추 서른 해를 ‘노래꾼 삶’으로 보낸 셈입니다.

 역사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워 할 수 있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만, 모차르트가 코흘리개일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쓰고 하지 않으면서 좋은 동무를 사귀고 좋은 자연을 숨쉬면서 살아갔으면 나중에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코흘리개부터 서른다섯 살까지 서른 해 ‘노래꾼 삶’으로 보낸 모차르트가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좋은 동무들과 아름다운 너른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고 부대끼고 어울리다가, ‘서른 살부터 예순 살까지’ 서른 해를 노래꾼 삶으로 보냈다면 어떤 노래를 지을 수 있었을까요.

 하늘이 모차르트한테 내려준 선물이란 ‘노래짓기’ 하나뿐이었을까요. 모차르트한테 뜻있고 좋은 일거리와 놀잇감이란 오로지 ‘노래짓기’ 하나만이었을까요. 아름다운 노래를 아름다운 삶을 꾸리면서 아름다운 넋으로 일굴 수 있었다면, 모차르트 서른 해 노래꾼 삶이란 어떤 모양새로 뿌리내렸을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천재성이 담긴 노래와 아름다움이 깃든 노래는 우리 삶을 어떻게 보듬거나 어루만져 줄는지를 가만히 곱씹어 봅니다.

 우리 아이한테 무슨무슨 천재성이 엿보인다 할지라도 우리 아이한테는 스스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살림 꾸리는 매무새를 익히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조금 더 힘을 쏟을 수 있다면 스스로 먹을 밥은 스스로 농사지어 먹는 삶을 다문 며칠이라도 함께 꾸리고 싶습니다. (4343.3.21.해.ㅎㄲㅅㄱ)


 ┌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포토넷 펴냄,2010)
 ├ 글 : 제러미 시프먼
 ├ 옮긴이 : 임선근
 └ 책값 : 2만 원 (노래 시디 두 장 함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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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에 맞서다 - 누구나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위해
유아사 마코토 지음, 이성재 옮김 / 검둥소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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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4] 유아사 마코토, 《빈곤에 맞서다》



 우리 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꿈을 꾸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아니, 가난한 사람들이 꿈을 꾸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가난이란 나쁨이 아니요 못남이 아니요 멍청함이 아니요 바보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가난을 두고 나쁨이요 못남이요 멍청함이요 바보라고 일컫습니다. 가난을 가리켜 게으름이요 어리석음이요 모자람이요 불쌍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 얼굴이나 몸매를 놓고 잘생겼다든지 잘 빠졌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돈을 놓고도 잘났다든지 못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라고 다 똑같은 자동차가 아니라 돈값에 따라 좋고 나쁜 자동차를 가른다고 한다면, 자동차란 권력이나 계급을 나누는 잣대가 되고 맙니다. 가난을 바라볼 때에 좋고 나쁨을 가른다든지 잘하고 못하고를 나눈다 한다면, 우리는 사람들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있는가를 살피며 권력과 계급을 따지는 셈입니다. 돈이 넉넉한 사람은 사귈 만하고, 돈이 적은 사람은 사귈 만하지 않다고 여기는 셈입니다.


.. 히사시가 기억하는 것은 괴로웠던 때에 세상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였다. 잘 곳이 없어 교회에 뛰어들었던 적도 있다. 목사는 “여기는 모두가 쓰는 장소라서 잠을 자게 할 수는 없고, 그 대신 기도를 해 줄게”라고 말하면서 쫓아냈다. 경찰과 상담을 한 적도 있지만 “이코마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 날이 밝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상대해 주지 않았다. 말했던 본인은 그렇게 잊을 수 있겠지만, 히사시는 평생 이 일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 50여 일을 보낸 넷카페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머물리 시작한 지 2주가 되자 점원의 태도가 급격하게 무례해진 점이었다 … 누구도 그들에게 “죽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에서 받는 메시지는 그렇다는 것이다 ..  (22, 29, 80쪽)


 돈이 있어 좋다면 얼마나 있어 좋을는지 궁금합니다. 돈이 없어 나쁘다면 얼마나 없어 나쁠는지 궁금합니다. 한 달 벌이 얼마쯤 되어야 마음이 넉넉하거나 흐뭇하다고 보고 있습니까. 한 달 씀씀이 얼마쯤 되어야 내 삶을 신나거나 즐겁게 꾸린다고 보고 있습니까.

 누군가는 전세 칠천만 원짜리 집에 삽니다. 누군가는 전세 구천만 원짜리 집에 삽니다. 누군가는 전세 삼천오백만 원짜리 집에 삽니다. 전세 구천만 원이라 할지라도 ‘내 집’이 아니니 가난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세 삼천오백만 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며, 전세 천만 원짜리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 또한 있습니다.

 전세 천만 원은커녕 전세 오백만 원조차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한테는 보증금 삼백만 원마저 없어 겨우겨우 이리 빌리고 저리 얻고 하면서 맞추어 달삯집을 찾았습니다. 달삯집에 들어가 지내는 사람들로서는 다달이 달삯을 치르기 때문에 보증금을 모으기란 꿈 같은 노릇이며 전세집을 얻을 나날을 손꼽을 수 없습니다. 돌고 돌고 다시 도는 달삯집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달삯집에서 살아가면서도 딱히 어려움이나 힘겨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한 해에 천만 원이나 오백만 원쯤을 푼푼이 모아 전세나 보증금을 조금씩 올리며 ‘한결 나은 집’을 찾는 일이 우리 식구한테 한결 나은 삶이 될는지는 모를 노릇입니다. 돈벌이를 더 하는 데에 힘을 쏟는 일이 참으로 우리한테 기쁨이거나 보람일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돈벌이는 적게 하거나 아예 못하더라도 우리 삶을 곱고 알차게 일굴 수 있으면 되는 노릇은 아니랴 싶습니다.


.. 돈이 없는 가운데 값싼 주거를 찾았지만 싸고도 안심할 수 있는 주거는 결국 없었다 … 피고인 k가 범한 ‘새전 도둑질’ 피해액은 150엔이라고 한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사회에 복귀하려고 노력했으나 그 일이 여의치 않아 먹고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지른, 아주 적은 금액 150엔 때문에 기소당한 것이다. 검찰은 그러한 그에게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 현실적으로 “담 바깥에서는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즉 빈곤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면 교도소 신설보다도 효과적인 치안 유지책이 있을 것이다 … 진심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쁜 짓을 했으므로 처벌한다”는 충동적인 응보주의나 엄벌주의가 아니라 “피해를 없애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  (32, 56, 58, 66쪽)


 우리 아이는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습니다.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는 0세 반도 있고 한 살 반이나 두 살 반도 있다는데,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고 부부가 돈벌이를 한다는 분한테 말씀을 여쭈니, 보육원 달삯으로 37만 원을 낸다고 합니다. 지난해부터 유치원에 넣는 고향동무는 유치원 달삯으로 50만 원을 낸다고 합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면, 이분들한테는 달삯 37∼50만 원만 들지 않습니다. 이 돈과 맞먹는 이런저런 돈이 퍽 많이 나갑니다. 모두들 자동차를 굴리고 있으니 자동차 보험삯이며 유지비며 기름값이며 꽤나 큽니다. 앞으로 아이가 더 크면 학원도 보내고 뭣도 하고 아이 옷값도 만만하지 않고 …… 더 벌고 또 벌고 다시 벌어도 빠듯합니다. 나중에 아이가 대학교를 간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할 테고(벌써부터 해마다 대학 등록금만 한 돈이 아이 키우는 값으로 나가고 있으니까요), 시집장가를 가겠다 한다면 등허리가 휠 테지요. 이분들한테는 한 달 벌이 이백이나 삼백으로는 아찔합니다. 사백이나 오백쯤 되어도 아슬아슬하게 살림을 맞출 수 있을 뿐입니다.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홀로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를 엄마 아빠 된 사람이 집에서 돌보고 함께 놀고 먹이고 재우고 옷은 모두 얻어서 입힙니다. 천 값이나 실 값이 만만하지 않게 들었지만, 애 엄마가 손뜨개와 바느질로 아이 인형을 여러 날에 걸쳐서 하나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 며칠 동안 장갑 뜨기를 한다고 했으나 장갑 뜨기는 그르쳤습니다. 여러 날을 버린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잘못 뜬 장갑은 양말처럼 신으며 놀 수 있는 놀이감이 됩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이런 대로 좋고, 저렇게 바라보면 저런 대로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집삯이니 이런저런 삯이나 돈이니 하면서 여러모로 살림이 빠듯한 나날이 이어집니다. 살림이 빠듯한 나날이 이어지니까, 퍽 많은 사람들로서는 책 한 권 느긋하게 읽을 겨를은 내지 못합니다. 책읽기란 마음을 아주 모아서 파고들지 않고서는 줄거리 헤아리기뿐 아니라 속알맹이 꿰뚫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요즈음 우리 나라에서 차분하고 속깊은 책이 잘 안 팔리고 가볍고 말랑말랑한 처세경영과 자기계발 책이 수없이 팔리고 읽히는 까닭이란, 모두들 몹시 빠듯하고 힘에 겨운 살림을 꾸리는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벌이에 매여야 하고, 가계부 숫자를 보며 시름에 겹고, 하루하루 크는 아이한테 바칠 교육비가 어마어마하기에 등골이 휘는 터라, 내 삶을 오롯이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돌보는 데에는 그만 두 손 두 발을 들어 버린 탓이 아니랴 싶습니다.


.. 결국 일본은 “돈이 없으면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즉 “부모가 돈을 벌지 못하면 아이가 노력해도 학력을 얻을 수 없는” 사회이다 … 빈곤이라는 것은 선택 사항을 빼앗겨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 … 경제적으로 상위에 있는 사람의 눈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비치지 않는다 … 모든 사람이 똑같이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필요하다 ..  (73, 90, 101, 106쪽)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우리 말은 ‘가난’이고 한자말은 ‘貧困’입니다만, 가난이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또한 가난한 살림은 어느 한 사람이 잘못해서 짊어지는 짐덩이가 아닙니다. 나라에서 돌보아야 하며, 이웃이 거들어 주어야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내 삶을 즐길 수 있는 이 땅 이 터전 이 나라 이 겨레여야 아름답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는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 옷을 모두 둘레에서 얻어 입힙니다. 저하고 옆지기 옷 또한 이웃한테서 얻습니다. 무슨무슨 행사할 때에 만든 옷이라든지, 이웃들이 이제는 안 입는 옷이라든지, 이웃들로서도 선물을 받았는데 당신들 취향에 안 맞는다든지 하는 옷을 스스럼없이 물려받습니다. 우리 식구는 옷차림을 따지지 않을 뿐더러, 이런저런 옷은 이런저런 옷대로 재미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고맙게 물려받습니다.

 다만, 책값을 쓸 때에는 좀 많이 쓰고 있어 걱정이 됩니다. 책값 때문에 살림이 기우뚱하지 않을까 근심이 됩니다. 옆지기는 바늘 값하고 실 값으로 제법 많은 돈을 쓰니, 이 때문에 아찔아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한테는 자동차가 없고 냉장고나 세탁기가 없는걸요. 다른 돈 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앞으로 어찌 될는지 모르나 아이를 키우며 어디에 맡긴다든지 무슨 학원을 보낸다든지 무슨 교재를 쓴다든지 하는 일이 없습니다. 엄마 아빠 된 사람들이 즐겁게 보는 책을 아이하고 함께 봅니다. 아이 낳은 어버이이기 앞서부터 어린이책을 좋아했고, 훌륭한 그림책은 아이한테만 읽히는 책이 아니라 어른부터 기쁘게 보면서 마음밭을 일구는 줄 알았기 때문에, 어버이 된 두 사람이 보는 책은 우리 아이가 보는 책하고 같습니다.


.. 소개받은 일을 거부하는 선택 사항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실업과 하루 고용도, 교통비 지출과 저임금도, 서비스 잔업까지도 고맙게 여기며 어떠한 현장이라도 기쁘게 달려가는 편리한 상품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언제 일이 주어질 지 알 수 없다 … 일용 파견 노동자는 인간적인 제 권리를 주장하면 일을 얻을 수 없다 … 일본의 경우 최저임금은 이전부터 노동자 가계(생계비)를 지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상정하고 있는 것은 주부 파트타임 노동이나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버는, 말하자면 ‘용돈’이다 ..  (169, 196쪽)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으로 돌아와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일본 정부가 ‘가난 없애기’라는 일에 얼마나 팔짱을 끼고 있는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을 뿐더러,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굴레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사회 얼개를 찬찬히 밝혀냅니다. 이리하여, 이 책을 쓴 유아사 마코토 님은 ‘반빈곤 선언’을 하고 ‘반빈곤 운동’을 합니다. 가난을 반대한다는 외침말을 내놓고, 가난을 몰아내겠다는 일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을 읽을 때에도 느끼지만,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가난한 사람 살림 돕기’에는 마음을 쏟지 않습니다. 무상급식이니 무상의료이니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급식이나 의료를 나라에서 하는 일이 어려울 대목이란 없습니다. 급식이나 의료를 나라돈으로 못하는 까닭이란 우리 정부가 개발과 건설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는데다가 국방비에 훨씬 엄청난 돈을 쏟아붓기 때문입니다. 우리한테 고속철도가 더 큰일일까요, 이 나라에 살림에 쪼들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일이 더 큰일일까요. 아직 경부운하나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만, 이러한 개발계획을 내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돈이 용역비와 공무원 달삯으로 쓰였겠습니까. 이 돈만 갖고도 초중고등학교 급식비는 모두 댈 만큼 되지 않을까요? 보육원이나 어린이집 교육비는 이만한 돈으로 넉넉하게 댈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남녘이든 북녘이든 통일보다는 전쟁과 대치를 바라는 까닭이, 서로서로 평화통일 아닌 국방대치를 해야 국방비에 무척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서 남녘과 북녘 모두 복지와 문화와 평화와 서민 삶에는 ‘돈을 안 들이’면서 기득권과 권력자가 모든 돈과 권리를 움켜쥘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요?


.. 결과만을 보고 서둘러 결론지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자기 책임론’이 숨어 있다. 이것은 “현재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책임은 본인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람 개개인의 ‘삶’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안다’는 것 또는 ‘판단한다’는 것에는 좀더 주의 깊고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 본인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 새롭게 빈곤 상태에 떨어지고 있다 ..  (20, 33쪽)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 하나는 가난한 사람이 가난하지 않도록 돕는 훌륭한 정책은 틀림없이 있고, 이러한 정책을 제대로 펼친다고 해서 한 나라 살림에 조금도 어려울 대목이 없을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제대로 돕는다면 한 나라 살림은 오히려 더 나아지면서 아름답고 알찰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돈있는 사람이 돈없는 사람을 돕는 ‘빈곤 정책’이 아니라, 돈없는 사람 주머니에서 똑같이 걷힌 세금을 다름아닌 돈없는 사람 복지와 문화에도 함께 쓰고, 이렇게 ‘돈없는 사람 복지와 문화에 쓰는 돈’이란 ‘돈있는 사람 복지와 문화’에 함께 이바지하는 노릇임을 알려줍니다.

 승강기와 자동계단이란 ‘장애인 복지 시설’입니다. 비장애인으로서는 계단을 타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승강기와 자동계단을 오늘날 누가 타고 있습니까. 모든 비장애인은 장애인 복지 시설인 승강기와 자동계단 혜택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헤아리는 널찍한 버스는 비장애인한테도 좋은 시설입니다. 전철칸이나 기차칸에 마련하는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한테뿐 아니라 비장애인한테도 고마운 시설입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만, 가난한 사람이든 어려운 사람이든 아픈 사람이든, 우리 둘레 이웃을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는 정책을 펼치면 ‘가난한 사람뿐 아니라 부자인 사람’ 모두 고마움을 즐겁게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란, 서로서로 흐뭇하고 기쁘게 살아갈 길입니다. 치고받고 다투면서 1등만 찾는 길이란, 1등이 되는 사람한테도 고단합니다. 1등이 되느라 옆이나 뒤는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봄날 예쁘장하게 피어나는 아리따운 노란꽃 분홍꽃은 못 보고 있잖아요. 오늘날 도시에서 개나리와 진달래와 이팝나무와 매화나무와 목련나무와 벚꽃나무를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요. 도시에서 어떠한 봄을 느끼고 어떠한 여름을 만나며 어떠한 가을과 겨울을 느낄 수 있는지요.

 정책은 정책대로 올바르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리고, 정책이 따로 없을지라도 우리는 우리 삶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정책이 있건 말건 우리는 우리 슬기를 뽐내며 오순도순 맑고 밝게 살아가면 됩니다. 학교가 있건 없건, 시설이 있건 없건, 문화나 의식이 있건 없건, 우리 스스로 싱그럽고 따뜻하며 넉넉한 사람으로 오롯이 서면서 내가 디딘 이 땅 이 마을 이 살림집에서 알차고 빛나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다고 느낍니다.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은 ‘복지 정책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깨우치도록 하는 고마운 책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으면, 구태여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이 책에서 다루는 줄거리를 모두 삶으로 부대끼며 깨우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 스스로 가난하지 않기에, 따로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고, 가난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으며, 가난이고 아니고를 떠나 즐거울 수 있는 삶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바로 이 ‘즐거움’을 놓치고 있다고 새삼 느낍니다. 《빈곤에 맞서다》를 읽고 주먹을 부르르 떨 분들께서는, 아무쪼록 가난한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굽어살피면서 어떻게 ‘어깨동무’를 해 주면 서로한테 기쁠까를 곱씹어 주면 고맙겠습니다. (4343.3.14.해.ㅎㄲㅅㄱ)


 ┌ 《빈곤에 맞서다》(검둥소 펴냄,2009)
 ├ 글 : 유아사 마코토
 ├ 옮긴이 : 이성재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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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의 요람
유미리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39 ― 아픈 삶, 아픈 사람, 아픈 집
 : 유미리, 《물가의 요람》


- 책이름 : 물가의 요람
- 글 : 유미리
- 옮긴이 : 김난주
- 펴낸곳 : 고려원 (1998.4.10.)
- 판이 끊어져 헌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음.



 (1) 아프면서 꾸리는 삶이란


 엊그제 낮, 헌책방에서 《戶部けいこ-光とともに》(秋田書店)라는 만화책 5권(2004년 나옴)을 만났습니다. 책 겉에 ‘자폐증 아이’라는 말이 적혀 있어 덥석 집어들었습니다. 책에 담긴 그림결은 순정만화인데 저로서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 투입니다. 그러나 장애 있는 아이를 다룬 만화책은 모조리 사들이고 있는 터라 이 만화책도 함께 셈을 했습니다. 줄거리를 읽을 수는 없으나 그림만 넘겨 보면서도 ‘일본은 우리와 견주어 문화며 사회 얼거리이며 몹시 앞서 있지만, 사람들 하나하나를 놓고 들여다보면 우리하고 매한가지로 엉터리인 사람도 많음’을 새삼 느낍니다. 이는 일본이 아닌 미국이나 독일이나 프랑스라고 할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이날 저녁, 터덜터덜 홍대 앞 만화가게에 들렀을 때에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자음과모음) 1권(2003년에 옮김)을 장만합니다. 이날은 다른 볼일 때문에 서울 마실을 했습니다만 이모저모 일이 틀리면서 하루가 어긋나 버렸습니다. 굳이 서울로 나오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모두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를 부른 분이 당신 형편만 헤아리느라 저로서는 온 하루를 잃었는데 그분은 당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릅니다. 씁쓸하고 허전하여 만화가게에 들렀는데, 뜻밖에도 《光とともに》가 우리 말로 나와 있음을 알았습니다. 게다가 2003년에 나와 있었군요.

 집으로 돌아와 두 가지 책을 쓰다듬으면서 너털웃음을 웃습니다. 이날 얄궂게 약속을 잡은 그분이 아니었다면 시간죽이기를 하느라 헌책방 나들이를 하지 않았을 터이고, 저녁에 다시 만화가게를 찾지 않았겠지요. 아이와 함께 씨름할 하루를 빼앗아 준 그분이 아니었다면 씁쓸하거나 허전한 마음이 아니었을 터이며, 씁쓸하거나 허전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일부러 만화가게 구석구석을 살피며 아쉬움을 달래지 않았을 터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제 삶을 고단하게 하는 매무새를 고치지 않는다면 그분하고 어울리거나 엮일 일은 만들지 않을 생각인데, 앞날이 어찌 되든 저로서는 제 삶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고 새삼 깨닫습니다.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1권 246쪽을 보면, ‘장애 아이를 따뜻하게 반기며 슬기롭고 사랑스레 잘 가르치는 일반 초등학교 여자 교장 선생님’이 ‘자폐 아이를 어느 초등학교로 보내야 할지를 놓고 몹시 걱정하고 힘들어 하는 주인공 엄마’한테 기운을 북돋워 주면서 ‘아이 엄마 당신을 괴롭히는 몹쓸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까지 설득을 해서 당신 아이를 이 학교로 넣을 수 있도록 정식 서류를 받아내도록 하십시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 아이가 제 옆에서 아빠 따라 책을 보고 있는 동안 아빠는 만화책을 보며 이 대목에서 눈물이 글썽했습니다. 이 대목 하나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숨결을 느끼면서, 아픈 삶은 아픈 삶대로 아름다울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아프기 때문에 더는 아프지 않으려고 용을 쓰고, 아프기 때문에 생채기를 어루만질 수 있으며, 아프기 때문에 내 생채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 생채기를 느끼고 돌아보고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성경이든 불경이든 가난만큼 우리한테 좋은 벗님이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가난만큼 우리를 일으키거나 일깨우는 고마운 스승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숱한 예배당과 목회자들은 가난하고 동떨어져 있기 일쑤입니다. 좋은 벗님인 가난을 곁에 두지 못합니다. 고마운 스승인 가난을 옆에서 섬기지 못합니다.

 가난뿐 아니라 아픔을 벗님으로 사귀거나 스승으로 모시지도 못합니다. 돌아가신 권정생 할아버지나 이오덕 할아버지는 가난이든 아픔이든 힘겨움이든 고단함이든 모두 좋은 벗님으로 사귀었고 고마운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권정생 할아버지는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 누구한테나 “제발 내 대신 아파해 달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만, 이 말마디를 옳게 받아들이거나 삭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할배가 나이들고 많이 아프니까 투정부리듯 되뇌는 말이라 여기며 한귀로 흘리기 일쑤였어요. 당신은 온삶을 가난과 아픔을 곁에 두면서, 아니 온몸으로 살아내면서 참으로 버겁고 힘들었지만 이렇게 버겁고 힘든 까닭에 좋은 사람도 알게 되고 글쪼가리도 끄적이며 아이들하고도 가까이 지낼 수 있었으며 좋은 곳도 구경하고 맛난 밥도 먹어 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굳이 먼 나라로 찾아가야만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삶이 아니요, 애써 나라밖 이야기를 찾아 읽어야만 아름다운 마음씨를 기를 수 있는 삶이 아닌데, 우리들이 머리나 눈이나 손을 모두 바깥으로만 돌리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부터 제 삶을 살찌우는 이야기를 먼 데에서 찾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하루하루 걸어가는 이 길만큼 저한테 아름다울 길이 없다고 느낍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픈 옆지기를 만나 아웅다웅 툭탁툭탁 지내면서 날마다 새롭게 배우며 깨닫습니다. 집삯과 도서관삯으로 달삯을 다달이 칠십만 원 내야 하는 팍팍한 살림을 꾸리며 한 달 벌이가 백만 원이 채 되지 않으니 모이는 돈은커녕 나가는 돈 맞추기에 힘들지만, 이러면서 하루하루 골치아픈 모든 삶자락이 꽤나 재미있고 보람찹니다. 아이가 나중에 무럭무럭 크고 난 다음에는 우리들(저와 옆지기)하고는 안 놀고 다른 좋은 동무나 세상을 찾아 떠나겠습니다만, 아직까지는(앞으로 열 살 때까지는) 엄마나 아빠 곁에 찰싹 붙어 함께 놀고 싶고 안기고 싶으며 노래를 부르거나 장난질을 하거나 책을 읽고 싶어합니다. 아이하고 함께 지내는 동안 그야말로 아무 짓도 못합니다. 지금은 옆지기가 바느질을 하면서 노래를 불러 주니 아이가 엄마 곁에서 옹알옹알거리면서 놀아 주기에, 저는 고마운 말미를 얻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그렇지만 이렇게 놀기는 잠깐, 아이는 아빠 둘레에서 안기고 뛰고 어지르며 놀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따가 손빨래를 하면서 아이하고 함께 물놀이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감기면서 옆지기가 느긋하게 쉴 말미를 마련해 주어야지요. 딱히 서로 일을 나누거나 시간을 쪼개어 아이를 보기로 하지 않고, 늘 복닥이면서 알맞게 맞추어 줍니다. 집에서 아이를 함께 돌보지 않는 수많은 아빠들은 잘 몰라서 그렇지, 집에서 하루 내내 아이하고 복닥이고 씨름하며 얼크러지는 나날이란 우리한테 더없는 아름다움이며 기쁨이 됩니다. 아이하고 복닥이며 아무 일을 못하지만, 아무 일을 못하도록 할 만큼 아이는 쉴새없이 나댈 뿐 아니라 귀엽습니다. 아이하고 씨름하며 팔다리 쑤시고 결리고 저리지만, 쑤시고 결리고 저리는 만큼 아이와 어버이는 살갗과 살갗을 거쳐 따스함을 몸에 새기며 사랑을 나눕니다. 아이하고 얼크러지며 이제까지 이루어 온 모든 삶고리가 흐트러지지만, 이렇게 이제까지 이루어 온 모든 삶고리가 흐트러지면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깊이 들여다보며 널리 헤아리는 눈썰미를 얻습니다. 아이하고 지내는 만큼 책방마실이든 골목마실이든 덜 할 수밖에 없는데, 바깥마실을 덜 하면서 그동안 장만하여 읽던 책이란 지식조각만 담긴 책이 많았음을 새롭게 알아채고, 굳이 더 많은 사진을 찍지 않아도 내 보금자리가 깃든 골목동네가 얼마나 고운가를 보여줄 수 있음을 익힙니다.

 누군가는 아이를 두고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가리켜 세상에 둘도 없는 보배라고 합니다. 아이키우기만큼 나를 키우는 일이 더 없다 할 터이고, 아이키우기를 하는 집만큼 나를 가르치는 배움터가 더 없다 할 터입니다. 세상 숱한 어머니들은 아이키우기를 거의 도맡으면서 ‘책을 못 읽’고 ‘학교도 못 다니’며 ‘일터도 못 나간’달지라도 아이키우기를 조그마한 집에서 하는 동안 누구보다 크고 깊고 거룩한 사랑과 앎과 슬기와 믿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하겠습니다. 세상 숱한 아버지들은 아이키우기를 어머니한테만 맡기고 바깥으로 나돌면서 이름을 얻고 돈을 벌고 힘을 키운다지만, 정작 한 사람으로서 나를 북돋우며 옳고 바르고 맑고 싱그럽게 이끌어 가는 참다운 길은 만나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제아무리 수많은 책을 읽으면 무엇하겠습니까. 바로 우리 식구한테 쏟을 사랑이 어디에서 어떻게 샘솟는지를 모르는데요. 제아무리 크나큰 돈을 벌면 무엇하겠습니까. 내 식구와 이웃 식구를 두루 껴안고 아끼는 씀씀이를 기르며 주머니를 기쁘게 열어젖히는 나눔을 펼치지 못하는데요. 제아무리 팔뚝힘이 세고 두루두루 안 다닌 곳이 없다 할 만큼 골골샅샅 누벼 보았다 한들 무엇하겠습니까. 정작 우리 식구들 뿌리내리고 있는 동네가 어떠한 곳인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데요.

 누구나 죽는 삶이요, 누구나 새로 얻은 삶입니다. 누구나 흙으로 돌아가는 삶이요, 누구나 흙에서 목숨을 얻는 삶입니다. 다른 목숨을 먹으며 내 목숨을 지키고, 내 목숨을 다른 목숨한테 내어주면서 세상은 차근차근 돌아갑니다. 아프면서 크고, 크면서 아프며, 아프면서 손을 잡고, 손을 잡으며 아픕니다. 아픈 가난이면서 가난한 아픔이요, 아픈 가난이기에 하루하루 더 살뜰히 붙잡으며 보듬고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2) 아픈 사람 유미리


 유미리 님 산문을 모은 책 《물가의 요람》을 읽었습니다. 재일조선인으로 글을 쓰는 손꼽히는 한 사람인 유미리 님인데, 이분이 쓴 책은 여태껏 한 권도 읽지 않았습니다. 이름 널리 난 글쟁이 작품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일본에서 무슨 문학상을 받았다는 이름값을 겉에 큼직하게 내세우는 작품 또한 그리 좋아하지 않는 탓입니다. 그런데 《물가의 요람》은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닌 수필이었기에 눈길이 갔고, 이제는 저 멀리 사라지고 만 출판사 고려원에서 일찌감치 옮긴 작품이기에 손길이 갔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유미리 님이 들어간 연극단을 맡고 있던 분은 유미리 님한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가족, 지금까지 있었던 일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이너스적 요소라고 생각하겠지만 연극을 하게 되면 그 모든 것이 플러스 요인으로 뒤바뀔 겁니다. 그것을 당신의 재능이요, 자랑으로 여기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199쪽).”

 문득 궁금해서 유미리 님과 얽힌 이야기를 찾아보니, 요즈음은 우리 나라에 옮겨지는 책이 거의 없으며 그다지 읽히지 않습니다. 여러 해 앞서 유미리 님 이야기를 다룬 취재 기사 하나가 뜨기에 주욱 읽어 보니, 유미리 님은 당신한테 새 삶을 보여준 연극단장 히가시 씨를 곁에서 돌보며 죽는 날까지 지키 주었고, 애 있는 남자와 사귀어 아이를 낳아 고양이 열한 마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답니다. 취재 기사에서 “아기를 낳고 그랬지요. 그때까지는 ‘관념’이었지요. 10대 때 자살을 시도하고,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막다른 길을 걸어갈 때, 삶과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기분은 들었지만 관념적이었지요. 하지만 히가시씨를 죽음으로 보내고, 젖먹이를 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을 땐 관념이 아니었지요.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결국 글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다케하루를 낳지 않고 히가시가 죽지 않았다면.”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취재 기사를 읽으며 고개를 절로 끄덕였습니다. 제 몸으로 아이를 낳지 않았으나, 옆지기가 아이를 낳는 날부터 내내 함께 지내 오고 있는 동안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까지는 오로지 생각’이었고 ‘아이를 낳아 함께 돌보며 살아가는 오늘은 바로 삶’이라고 느낍니다.

 일본에서 당신 작품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실제 한 사람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해서 재판을 받았고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유미리 님입니다. 세상 어느 작품이 ‘누군가 살아온 이야기를 안 다루’고 있겠습니까마는, 유미리 님은 사랑 잃은 법으로 생채기를 받았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밟고 상처를 입히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요. 곱고 예쁜 일은 아니지요. 쓴다는 것은 ‘쓰는 사람’과 ‘쓰여지는 사람’이 모두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상처를 입는다고 할까,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 쓸 수 없고, 밟지 않으면 쓸 수 없어요. 자신을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쓰고 싶다는 원망(願望)이 아니라 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을 때, 그땐 쓸 수밖에 없지요. 누구를 상처 입히든….”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물가의 요람》이라는 책을 읽었을 당신 아버지나 어머니나 동생들이나 예전 초중고등학교 적 동무나 교사 들이나 유미리 님을 성폭행했던 이웃집 아저씨는 어떤 얼굴이요 마음일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한 사람 삶에 생채기를 남긴 이들은 당신들 삶 발자국이 책 하나에 고스란히 담기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궁금합니다.

 《물가의 요람》이라는 책에서 유미리 님이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쓴 대목을 옆지기한테 소리내어 읽어 줍니다. 어떻게 유미리 님 아버지나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이 없이 살아가며 아이한테 생채기를 줄 수 있을까 하고 물었더니, 옆지기는 유미리 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외롭고 아픈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유미리 님이 아닌 유미리 님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외로운 사람? 아픈 사람?

 옆지기하고 곰곰이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합니다. 유미리 님뿐 아니라 유미리 님을 둘러싸고 당신을 괴롭히고 따돌린 숱한 또래 동무나 이웃이나 집식구 모두 ‘마음을 살뜰히 터놓으며 어우러지지 못하는 굴레’에 갇혀 있구나 싶습니다. 이네들 모두 마음 한 자락에 생채기가 있는데 이 생채기를 살가이 어루만져 주는 벗님이 없습니다. 아니, 스스로 제 생채기를 보듬을 수 있으며 처음부터 생채기가 나지 않게끔 삶을 다스릴 수 있었으나, 이와 같은 길을 걷지 않습니다. 걷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요. 좋은 벗님 가난을 내치기만 할 뿐이요 고마운 스승 아픔을 손사래치기만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길은 나한테 있는데 엉뚱한 데만 찾고 있습니다. 나를 아끼는 길은 나한테 있으나 얄궂은 곳만 쑤석이고 있습니다.

 유미리 님은 아프디아프면서 ‘아프다’ 하고 말하며 당신 삶을 보듬으며 사랑하는 길을 차근차근 찾아나서는데, 유미리 님 둘레에서 시끌벅적 왁자지껄인 사람들은 당신들 스스로를 사랑하고 보듬으며 아끼는 ‘내 길’을 잃거나 잊고 있습니다.


 (3) 아픈 이야기 되새겨 읽기


 판이 끊어졌고 다시 나올 낌새가 없는 《물가의 요람》을 차근차근 되읽어 봅니다. 스스로 겪어 온 아픔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적바림했다고 볼 수 있지만, 유미리 님이 당신 삶을 글로 옮겨낼 때에 틀림없이 무척 아팠겠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아픔을 숨기거나 감추거나 지우려 하지 않고 꾸밈없이 적바림했기에 아픈 글이요 아픈 삶이요 아픈 발자국이지만, 아프면서 아름답고 아프면서 맑으며 아프면서 싱그럽다고 느낍니다.

 아픔을 아픔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 삶을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픔이 가득한 집에서 살고 있는 유미리 님 다른 한손에는, 사랑이 한 가득 놓여 있습니다. (4343.2.23.불.ㅎㄲㅅㄱ)


[12쪽]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일본 이름처럼 유미리라는 이름을 얻어, 재일 한국인이 겪어야 하는 곤란한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를 받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내가 김○○처럼 한국인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이름이었다면, 내 의식의 흐름은 지금과 아주 달랐을 것이다.

[38∼39, 55∼56, 69, 179쪽] 실수를 하면 선생님은 옆구리를 꼬집었다. 점차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이 고통스러워져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 어느 날 뒤꿈치를 들고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데 선생님이 학원 앞에 팔짱을 끼고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선생님이 싫으니?” 나는 할 수 없이 학원으로 들어가 가방에서 바이엘을 꺼내 들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선생님은 혹 꾸중을 듣지 않을까 쭈뼛거리며 피아노를 치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 고즈에한테 선생님이 아기 낳으면 그 아기가 불쌍하다고 그랬다면서?” … 선생님은 내 옆구리를 힘껏 꼬집었다. 여느 때보다 두 배는 세게 … “또 미리구나!” 선생님은 고양이 새끼 잡듯 내 목덜미를 잡고 단상 앞으로 데리고 나갔다. 2학년과 3학년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얘가 그 1학년 3반의 미리야?” “네, 그 문제아예요.” …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 독후감을 형편없는 감상문의 전형으로 모두들 앞에서 읽었는데, 오노 선생님은 내 국어 실력을 ‘아주 좋음’이라 평가해 주었고, 빨간 펜으로 ‘독해력과 문장력이 뛰어남’이라고 덧붙여 쓰기까지 했다 … 아버지는 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교장은 한참이나 어이없다는 듯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아버님의 심정은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따님은 다른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상자 속에 썩은 사과가 하나 있으면 상하지 않은 다른 사과까지 썩기 시작하죠.”

[42쪽] 그(친구 고즈에네 아버지)는 자기 무릎 위로 나를 안아올렸다. 위 속에서 시큼한 예감이 끓어올라, 나는 사탕을 우물거리던 입놀림을 멈췄다. 여자 손처럼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가락, 그 손가락이 내 치마를 걷어올리고 팬티 위로 음부를 더듬었다. 그러고 다른 손으로는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편평한 가슴을 간지럽혔다 … “저기에 눕자.” 그가 가리킨 곳에는 카펫처럼 풀이 돋아 있었다. 나는 새로 판 무덤 같은 흙 냄새를, 물기를 머금은 풀잎 냄새를 맡았다. “지금부터 아저씨가 하는 거, 엄마나 아빠한테 말하면 절대 안 돼. 아저씨하고 미리하고만의 비밀이다. 약속할 수 있지?” 나는 보지 않으려 애썼던 그의 눈을 직시했다. 검은 눈동자에 내가 조그맣게 비춰 있었다.

[48, 49, 97∼98쪽] 딱 한 명 혼자 남아 있는 비참한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하여 국어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억지로 페이지를 넘겼지만, 아직 배우지 않은 〈꼬마 여우, 곤〉을 읽는 사이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책을 읽으면 현실 세계에서 도피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경험이었다 … 다른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강렬했고 그런 마음이 간절하면 할수록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누군가 말을 걸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책을 읽었던 것이다 … 내 탓에 우리 반은 꼴찌가 되었다. 자살을 생각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죽어서는 기짱과 반 아이들한테 복수를 할 수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기짱과 그 패거리들의 짓거리를 극명하게 기록했다. 내 공책은 친구들의 괴롭힘 때문에 자살하는 아이들의 유서와도 달랐고, 일기도 아니었다. 내 ‘이야기’였다. 조심하지 않으면 현실로부터 버림받고 세계와 어긋나고 만다. 그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쓰는 길밖에 없었다.

[103, 110쪽] 엄마는 내 일기장을 읽은 일이 없다. 내가 얼마나 아버지를 증오했는지……. 나는 내가 밖에서 놀고 있는 동안 엄마가 일기장을 훔쳐 읽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러길 애타게 바랐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내게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내가 숨기고 있는 마음을, 내 일기를 읽고 소중하게 엄마의 가슴에 간직해 두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내 피비린내 나는 마음의 아픔 따위는 눈꼽만큼도 염두에 었었다 … ‘부모’라는 자신의 역할에 전혀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여 뭘 어찌해야 좋은지 몰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자식을 학대하는 부분은 필경 그의 아버지를 모델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어렸을 적에는 할아버지한테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하고, 용서받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148∼249쪽] 나는 어째서 자전 비슷한 에세이를 이리도 빨리 쓴 것일까. 물론 과거를 매장하고 싶다는 동기도 있었다. 내가 쓴 희곡의 주제는 ‘가족’이었으며, 그 후에 쓰기 시작한 소설도 역시 ‘가족’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이 에세이를 씀으로써, 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이렇게 긴 에세이를 쓴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과거에 비석을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지나치게 이르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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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사기사와 메구무 / 자유포럼 / 199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38 ― 고운 꽃, 고운 사람, 고운 책
 : 사기사와 메구무,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 책이름 :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 글 : 사기사와 메구무
- 옮긴이 : 최원호
- 펴낸곳 : 자유포럼 (1998.1.20.)
- 책값 : 6500원 (판 끊어짐)


 (1) 딸을 바란 마음


 지난 2008년 8월 16일, 우리 집 아이가 딸로 태어나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이 엄마와 저는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기에 태어나는 날까지 아이가 딸일는지 아들일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집에서 낳으려고 여러모로 마련하고 애썼지만, 한여름이었음에도 간밤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붙이는 바람에 옆지기가 배앓이를 하고 아이를 낳으려 할 때에는 집안 온도가 뚝 떨어졌고, 힘이 빠진 옆지기는 거의 쓰러졌습니다. 어쩌는 수 없이 구급차를 불러 산부인과로 가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빠 된 사람으로서 좀더 제대로 알아보고 살펴보고 다스렸으면 집에서 낳을 수 있었을 텐데, 더없이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딸로 태어난 지 어느새 스무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헤아립니다. 아이를 낳을 무렵이든 아이를 낳아서 함께 키우는 요즈음이든, 내가 아빠 된 사람으로서 얼마나 집살림을 알뜰히 가꾸고 있는가 하고.

 딱 어디에서 어디까지 금을 그어 놓고 일을 하지 않는 터라 집에서 들여다보는 책들이 여기에 쌓이고 저기에 쌓여 있습니다. 어느 만큼 일하고 어느 만큼 쉬며 어느 만큼 어느 때에 집일을 하는지도 틀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아빠 된 사람으로서는 오늘 해야 할 만큼 일을 하지 못했다고 느끼기 마련이고, 엄마 된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어디에서 어디까지 손을 잡아야 하는가를 느끼기 힘들기 일쑤입니다. 아빠는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집살림 흐름은 아빠한테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판에 아이가 아들이었으면 더 아빠 흐름으로 쏠리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아빠 된 사람은 제 삶이나 식구들 삶을 알맞고 따스하게 추스르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고 슬기롭지 못합니다. 세상 모든 아빠들이 익숙하지 못하거나 슬기롭지 못하지 않을 테지요. 알뜰한 어버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몸에 아름다움을 깃들인 아들이었다면, 이들이 아빠가 된 다음에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집살림을 꾸리리라 봅니다. 아름다움을 모르거나 사랑스러움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온 터전이었다면, 이러한 느낌이 옆지기와 아이한테 고스란히 이어간다고 봅니다.

 옆지기가 묻습니다. 제 이빨이 언제부터 안 좋았느냐고. 저는 망설이지 않고 말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망가졌다고. 왜 그때에 망가졌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그때 군대에서 이를 닦을 수 없어 망가졌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참 뒤, 틀림없이 군대에서 이빨이 망가졌으나 군대를 마친 다음 내 망가진 이빨을 알뜰히 되살리고자 애쓴 적이 있는가 돌아봅니다. 이태 남짓 망가진 이빨이라 할지라도 차근차근 되살리려 애썼다면 더 망가지지 않거나 조금이나마 살아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너무 손쉽게 군대 탓으로 돌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더 헤아려 보니, 군대라는 곳에 있을 때에도 더 애썼다면 이빨이 그예 망가지지 않도록 다스릴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스로 더 부딪히지 않았으면서, 몸소 더 힘쓰지 않았으면서 무슨무슨 탓이라고 핑계를 늘어놓지 않느냐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가 아들이 아니고 딸이기를 바란 데에는 아들이면 ‘학교를 아예 안 가야 군대도 안 간다’는 까닭 때문입니다. 아이를 군대에는 도무지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군대에 있는 동안 몇 가지 군대 말투를 일본제국주의 군대 말투가 아닌 우리 말투로 돌려놓는 데에 살짝 이바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고작 이런 일만 깨작거렸습니다. 더 밑바탕에 있는 고름을 짜지 못했고, 더 밑바닥에 있는 생채기를 건드리거나 감싸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가 앞사람한테 얻어맞거나 욕을 먹었어도 내 뒷사람한테는 주먹질이나 욕질을 안 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상병 6호봉 때에 이 다짐이 무너졌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고, 내 마음밭을 내가 더 알차고 사랑스레 지킬 길이 있었으나 고스란히 무너지는 길을 걸었습니다.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었건, 강릉에 잠수함이 넘어왔대서 다시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한 달 반쯤 다시 살아야 했건, 훈련을 뛴다며 허구헌날 바깥에서 맴돌았건, 나한테는 내 삶을 돌아볼 겨를이 없이 뺑이를 쳐야 했건, 하루에 1분을 못 쓸 노릇이었을까 하고 곰곰이 되씹어 보면, ‘하루에 1분이 없어 하루에 꼭 한 번이라도 이빨을 못 닦을 일은 없었겠지’입니다. 아마, 아이가 아들로 태어나고 군대로 끌려간다 할지라도 어버이 된 저와 아이 된 아들내미가 제 마음을 튼튼하고 맑게 건사한다면 외려 군대라는 곳을 거친 삶이 더욱 튼튼하고 한결 해맑을 수 있습니다. 가난이란 하느님이 내려준 선물이거든요. 가시밭길이란 우리한테 주어진 고마운 지름길이고요.

 우리 아이가 딸로 태어나 주기를 빌던 아빠 마음은, 아빠 스스로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다른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조금 더 알맞고 싱그럽고 튼튼하고 믿음직한 곳으로 이끌고자 하지 않고, 그저 이대로 내멋대로 살아가겠다는 어리석은 배짱이었다고 느낍니다. 함께 식구를 이루는 고운 사람을 앞으로도 곱게 목숨줄 잇도록 한손을 따숩게 내미는 일은 굳이 안 하겠다는 등돌림이었다고 느낍니다.


 (2) 글쟁이를 바란 삶


 1993년에 우리 나라에 처음 옮겨진 《진짜 여름》(작가정신)부터 《거리로 나가자 키스를 하자》(문학사상사,1994), 《레토르트 러브》(문학사상사,1994),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문학사상사,1995),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자유포럼,1999), 《뷰티풀 네임》(북폴리오,2006), 《웰컴 홈》(북폴리오,2006) 모두 새책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기사와 메구무 님 작품입니다. 1998년에 우리 나라에 옮겨진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또한 새책방에는 없고 헌책방에만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헌책방이라고 이 책을 늘 갖추어 놓고 있지 않습니다. 새책으로 팔린 만큼 남아 있으며, 새책으로 팔린 책 가운데 책임자가 기꺼이 헌책방에 내놓은 만큼 만날 수 있습니다. 책을 더 안 찍은 지 제법 되었고 아예 판이 끊어진 지 한참 된 만큼, 이 책들을 우리가 헌책방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한다면 대단히 고마운 노릇이요 몹시 반가운 일입니다.

 저는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을 2004년 12월에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무렵에 처음 만나 1/3쯤 읽다가 덮어 놓았는데, 요즈음 유미리 님 판끊어진 산문모음을 찾아 읽으며 새삼 떠올라 이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사기사와 메구무 님 발자취를 더듬어 보니, 2004년 4월 11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났더군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남자와 여자’라는 나눔과 ‘조선사람(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라는 나눔이 없는 세상을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1968년에 태어나 2004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고작 서른 몇 해를 보낸 삶입니다. 고등학생 2학년인 1987년에 글쟁이 문턱에 들어섰으니 당신 삶 반나절은 글쓰기로 보냈다 할 수 있습니다. 짧다면 그지없이 짧은 삶이요 길다면 제법 긴 삶일 텐데,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에 우리한테는 작품으로 오래오래 남아 언제까지나 숱한 이야기를 아로새겨 주겠지요.

 모르는 노릇이지만,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당신 할머니가 평안도 사람임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신 아버지한테는 한쪽에 한국사람 피가 흐르고 있었는 줄 생각할 수 없었으며, 당신한테 한국사람 피가 1/4 섞여 있음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글을 안 쓰고 살았다면 서른다섯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일이 없었다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안 쓴다고 세상을 덜 생각하는 삶은 아니요 글을 쓰는 삶이라 하여 세상을 더 생각하는 삶은 아니나,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 쓰는 글 매무새로 볼 때에는 날마다 마음앓이가 깊은 삶이었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이런 매무새로 글을 안 쓰는 ‘수수하다는 삶’을 꾸렸을 때에도 어지럽고 어수선한 세상이 슬프고 괴로워 새삼스레 스스로 목숨을 놓았을 수 있겠지요.


.. “재미있잖아요?” 혜자의 말이다. 모처럼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희생까지 치르고 한국에 와서 생긴 것이 고작 원형탈모란다면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야 당신은 지문날인을 하지 않아도 되고, 외국인등록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며, 결혼과 취직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니 바보처럼 그 따위를 따져서 무엇에 쓰겠어? 나는 당신의 친구니까 당신이 하는 말이나 괴로운 심정도 알아줄 수 있지만, 아마도 앞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야 되고 온갖 소리를 다 들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그 따위야 우리 교포들 모두가 겪어 온 ‘가슴앓이’라고 제쳐두면 그뿐이야. 지금에 와서야 우리 역시 그렇게 힘겨웠다고 여기지도 않아. 그러므로 그때 ‘그만둬 버릴걸’ 하는 마음을 먹었더라도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잖아? 뭐니뭐니 해도 당신은 작가니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내버려 둬! ..  (175쪽)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은 뜻하지 않게 당신 뿌리를 알고 만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 남녘땅 연세어학당에서 여섯 달 동안 한국말을 배우면서 살던 이야기를 갈무리한 글모음입니다. 당신 할머니는 ‘국적을 밝히지’ 않았고 당신 아버지는 ‘국적을 몰랐’으며 당신은 ‘국적을 따지지’ 않아도 좋을 나날을 보냈습니다. 뿌리를 알고 난 다음에도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일본사람으로 살아가’지 조선사람으로든 한국사람으로든 바뀔 몸이 아닙니다. 한국말을 배우고 한겨레 문화를 익힌다 할지라도 ‘살아가는 곳’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외국인등록증을 따로 만들어 재일조선인을 푸대접하고 따돌리거든요.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외국인등록증이 따로 없습니다만, 이주노동자가 받는 대접은 아주 모집니다. 이주노동자한테는 당신들 땀방울을 바칠 의무만 있을 뿐, 땀을 바치는 동안 누릴 권리란 없습니다. 게다가 이주노동자가 아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나누며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들한테도 사람다운 대접을 누릴 권리가 많이 억눌려 있습니다. 이 나라 학교는 사람이 사람답도록 가르치는 터전이 아닌 시험점수 높이는 입시지옥입니다. 이 나라 일터는 사람이 사람다이 어울리며 일하는 보람을 맛보는 터전이 아니라 그저 더 많은 돈을 벌도록 내몰리는 사육장입니다.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마음앓이를 견디지 못해, 아니 마음앓이를 풀어낼 길을 찾고자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당신으로서는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무언가를 밝히고 따지고 말하고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말할 수 있는 사람’이요 ‘남길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여느 회사원이 목매달아 죽는다고 이이가 남긴 쪽글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읽힐까요? 여느 농사꾼이 농약 마시고 죽는다고 이이가 남긴 외침이 세상에 두루 퍼지거나 들릴까요?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기 때문에 당신이 목매달아 죽으며 남긴 외마디소리가 여러 해 지난 오늘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자리이지만, 당신이 몸부림을 치면서 종이에 아로새긴 이야기는 우리 가슴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가고 난 빈 자리이지만, 당신이 발버둥을 치면서 종이장에 꾹꾹 눌러 적은 글줄이 우리 마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떠나는 사람은 남아야 할 사람한테 짐만 잔뜩 안긴다고 하는데, 남아서 살아가는 사람이란 늘 짐을 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짐이 없이 살고자 한다면 떠나야 할 노릇입니다. 살아가면서 내 몸에 얹힌 짐이 너무 고달프고 무거우면 떠날밖에 없습니다. 떠나는 길은 여럿이라, 깊은밤에 보따리 싸들고 몸뚱이만 내빼는 떠남이 있습니다. 모든 연락을 끊고 조용히 고속버스나 기차에 몸을 싣고 멀리멀리 돌아다니는 떠남이 있습니다. 나라밖으로 떠날 수 있고, 내 목숨줄을 놓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떠나고 말면 떠난 사람 자리에 누군가 들어와서 먼지를 털고 흐트러진 물건을 갈무리하면서 이이가 남겨 놓은 짐을 짊어집니다.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

 그런데 이래저래 떠난 길은 다시 돌아올 길이 있다지만, 목숨줄을 내려놓는 떠남은 다시 돌아올 길이 없습니다. 그리워도 이쪽에서 찾아가서 만날 수 없고, 애닲아 울어도 내 울음소리를 들어 줄 수 없습니다. 그저 책 몇 권 종이 몇 장 더듬으면서 손자국을 헤아려 봅니다. 그나마 글쟁이였기에 작품 여럿 남아 있어 이 작품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면서 말없이 말하고 말있이 말한 이야기를 짚을 뿐입니다.


 (3) 아껴 읽는 글


 돌아가신 권정생 할아버지 책을 다 갖고 있습니다. 맨 처음 낸 《강아지똥》부터 맨 마지막으로 나온 《랑랑별 때때롱》까지 갖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랑랑별 때때롱》만 아직 안 읽었습니다. 이제 권정생 할아버지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이 하나를 펼치면 모두 읽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끼고 아끼면서 읽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원수 님 문학을 읽을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저로서는 문익환 님 시와 편지를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이고, 묵은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창기 님 글을 찾아 읽을 때에도 비슷합니다. 세상일은 모르는 터라, 제가 앞으로 얼마나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니, 읽을 수 있을 때에 읽어야 하는데, 그래도 아쉬워서 좀처럼 더 손을 대지 못합니다.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을 금세 읽어치우면서 가슴이 짠했습니다. 다시금 넘겨 읽으면서 서운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 일본판 《ケナリも花, サクラも花》(新潮文庫,1994)를 서울 동묘앞에 있는 헌책방에서 보았습니다. 일본글은 읽을 줄 모르지만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하고 맞대어 놓고 한 줄씩 새겨 보곤 합니다. 그러다가 한글판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에는 군데군데 ‘한 줄씩 번역을 안 하고 빠뜨린 대목’이 있음을 알아챕니다. 책을 읽으며 때때로 어딘가 아귀가 안 맞는다거나 끝맺음이 아리송하다고 느끼곤 했는데, 군데군데 번역을 빼먹은 데가 있는 탓이었습니다. 다시 올 수 없는 사람이요 다시 나오기 힘든 책인데, 애써 묶였던 책 하나를 일군 번역이 이러하다니 ……. 우리 나라에서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 스스로 바깥말을 익혀서 아예 처음부터 번역책이 아닌 외국책으로 읽어야 하는가요? 쓴 입맛을 다시며 책을 덮습니다. (4343.2.21.해.ㅎㄲㅅㄱ)


[26∼27, 29쪽] 일본인은 지독한 외국어 콤플렉스를 가진 인종이다. 패전 후 모두가 녹초가 되어서 의지할 곳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나도 강하게 보인 ‘미국’의 환상을 아직도 좇고 있는 것이다. 먹을것이 없어 굶주리던 당시의 일본인에게 미국은 너무나도 멋지고 강력한 존재로 보였다. 그래서 일본인이 영어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도 멋지고 강대한 미국의 부속물과 같았다. 이것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일관된 관점이므로 일본에서는 영어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국제인의 면허를 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 너도나도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미국인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영어를 해야 한다는 매우 오만한 의식을 품고 있으므로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역무원’에 대해서 안달한다. 이런 광경을 보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는 일본이야. 누구나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돼!” 하는 분노를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많은 일본인이 그 ‘어휴,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몸짓을 도리어 부럽게 여기지나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 ‘외국에 나가면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을 미국인은 깨닫지 못했지만, 앞으로 점점 확실하게 형성될 ‘세계의 아시아’ 속에서 일본인이 그것을 답습하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미국의 미니어처’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빈다.

[48쪽] “서교동!” “서울역!” “이대 후문!” 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는 길가로 튀어나와 모두 목청껏 외쳐댄다. 나도 외친다. 게다가 손님이 타지 않은 빈 차도 행선지에 따라 승차거부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차에 올라타기 전에 반드시 행선지를 말해야만 된다. 그래서 거리가 언제나 소란스럽다 … 재일동포인 혜자와 같은 사람들은 오사카에 돌아가서 택시를 타려고 할 때 무심코 조수석 문을 자신이 직접 열고서 “통천각!” 하고 외친다고 한다. 게다가 이어서 나오는 말이 “안 가요?”라니.

[56, 58∼59쪽] 얼토당토않은 이상한 영어로 인터뷰를 시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만약 내가 거기에 응했을 경우, 도대체 그들은 어떤 식으로 기사를 쓸 셈인지, 그것이 나에게는 수수께끼였다 … 단지 내 감각으로는 그 여기자가 내가 3개월 만에 돌아가려고 한다는 점, 일본은 나의 조국이 아니고 바로 여기가 나의 조국이라고 당당히 말하지 않는 점에 ‘불만’을 느꼈으리라는 기분이 들 뿐이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재일동포 3세를 주인공으로 쓴 《진짜 여름》이라는 내 소설에 대해서 언급했다.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십시오.” 그녀는 아무런 의문이나 주저함 없이 분명하게 이렇게 물었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내용’을 알려 달라는 질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놀랐다(더구나 그녀는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60∼61, 64쪽] 그들(한국사람)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사정은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말로 한다면 끝도 한도 없으며, 또 누구인들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이해해 주려고 들지는 않는 법이다 … ‘민족’, ‘조국’이라는 대단히 크고 추상적인 말과 연관지어 판단하기 전에, 우선 인간은 매일매일을 살아가야 되는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 남의 ‘아픔’, 남의 ‘사정’을 상상하는 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힐 수 있다 … “아, 알았다. 메구무 씨의 이야기가 어쩐지 생소하지 않더니, 우리가 일본에 있으면 일본인과 다르고, 한국에 있으면 한국인과 다르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 아닌가요?”

[70, 82쪽] 그러나 그 순간, 행인지 불행인지 대경 씨의 귀는 형들의 입에서 나온 ‘쪽발이’라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알잖아? 교포들이 그런 말에 민감하다는 사실 말이야.” 그래서 울컥 치밀어오른 대경 씨는 형들에게 대들게 되었는데, 그때 대경 씨가 한 말이 걸작이다. “이 멍청한 자식들아! 교포에게 함부로 싸움을 걸어도 되는 거야? 재일 대한민국 거류민단에서 가만 있지 않을 거라구!” ‘뭐라고……? 그래, 아마 가만히 있을 거야.’ 역시 어딘지 모르게 장난감 로봇을 닮은 동작으로 어젯밤의 일을 재현해 보이는 대경 씨의 그 말을 들으며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 “그렇지만 좀 알아 달라고 매달릴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 알아 달라고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대목이 필시 꽤 오래 전부터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 원인의 하나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거친 말을 받아서 대경 씨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조로 말했다. “그래, 알아 달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 주었으면 좋겠네요.”

[97쪽] “한국에서는 말이야, 모두가 잘났어.”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이런 말씀을 어렴풋이 기억해 내곤 한다.

[115쪽] 한국은 스스로의 ‘사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다. 도대체 흘러가 버린 시간의 저 너머에 고통스런 추억과 슬픈 과거, 그렇지 않으면 수치와 잘못을 저지른 수많은 ‘마이너스’의 역사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143쪽] 하지만 역시 일반적인 일본인은 재일 한국인이라는 문제에 흥미가 없다. 상대에게 흥미가 없는 이야기를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미묘한 ‘아아, 역시 알아주지 않는군.’ 하는 느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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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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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단한 사람한테 빛줄기 선사하는 책이 되려면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3] 김규항, 《예수전》


 이삿짐 나르기를 거들려고 인천에서 일산까지 다녀왔습니다. 아침 아홉 시에 집을 나섰고, 밤 열두 시 반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옆지기는 아침부터 밤까지 홀로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지냈습니다. 요즈음은 바느질로 인형 만들기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혼자 아이를 보자면 바느질하기란 만만하지 않으며 밥 차리기에다가 밥 먹이기가 무척 버겁습니다. 둘이 함께 아이를 보아도 버겁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 앞서도 언제나 집일을 많이 맡아서 하기는 했으나, 아이를 키우면서 맡는 집일이란 더없이 고단합니다.

 다만,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가 오로지 고단하지만은 않습니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무거워도 아이 볼따구를 쓰다듬고 궁둥이를 어루만지며 “우리 돼지야, 우리 돼지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즐겁습니다. 아이한테서 새 얼굴을 보고 아이와 함께 새 모습을 느낍니다. 고단하게 아이를 보기 때문에 얻는 보람은 아니나, 아이는 아이대로 늘 맑고 웃는 얼굴이 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한편, 어른들이 잃기 쉬운 웃음과 느긋함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길동무가 아니랴 싶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른이 된다는 말이란, 아이를 낳는 경험이 몹시 크기 때문에 하는 말이기도 할 터이나, 이보다는 우리 스스로 더욱 고단한 새삶을 열면서 더욱 고단하기에 더욱 기쁘며 새삼스러울 수 있는 새길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크고 아름다운 우리들 목숨이기에, 이 목숨값이 얼마나 크며 거룩하고 아름다운가를 깨닫는 일은, 나 스스로 어버이가 되는 데에 있을 테니까요. 나를 낳은 어버이를 생각하고, 나 스스로 어버이가 된 뒤, 내 아이 또한 어버이가 될 앞날을 헤아리면서, 우리들은 저마다 우리 목숨이 얼마나 곱고 거룩하며 놀라운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 ‘민주화 정권’ 1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온전한 부자들의 천국이 되었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참혹한 풍경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우리의 영혼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 중세 교회는 실제로는 매우 타락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돈과 물질적인 부를 영혼을 더럽히는 짓이라고 여겨 경계하고 죄악시했다. 그러나 개신교는 그런 종래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 ‘돈과 물질도 하느님의 축복’이라 주장했다 ..  (9, 160쪽)


 하루하루 쉬지 못하고 보내는 나날인 채 일요일 아침부터 이삿짐을 나른다며 먼길을 나선 다음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전철길에서 도무지 눈을 뜨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3호선 첫역 대화역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으니 눈이라도 감기는 감았으나, 인천으로 돌아가자면 종로3가에서 갈아타야 하니 느긋하게 눈을 붙이지도 못합니다. 무릎에는 책 하나 올려놓고 잠깐 잠들었다 깼다를 되풀이합니다. 안국역에서 가까스로 깨어나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종로3가에서 인천 가는 전철을 겨우 잡아탑니다. 막차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전철을 올라탑니다. 빈자리가 있으나 앉지 않습니다. 자칫 동인천역에서 못 내리고 인천역까지 가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눈두덩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졸음을 멀리하면서 책을 붙잡습니다. 어떻게든 한 시간 이십 분을 책읽기로 버티어 보자고 다짐합니다. 마침 오늘 들고 나온 책은 ‘읽다가 잠들기 좋은 지루한’ 책입니다. 그나마 마음에 쏙쏙 스며드는 이야기책이었다면 잠이 확 깰 수 있으련만, 더 고됩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무거운 몸으로 동인천역까지 잘 버티어 냅니다. 드디어 전철표를 끊고 밖으로 나옵니다. 자정을 훌쩍 넘고 한 시로 달려가는 때이니 술집을 빼놓고 문을 연 가게가 없습니다. 술 얹힌 사람들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 하며 고요한 골목을 걷습니다. 우리 집이며 이웃집이며 모두 불이 꺼져 있습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벗습니다. 먼지 잔뜩 묻은 옷은 모두 벗어 담가 놓습니다.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는데 옆지기가 깼습니다. 오늘 있던 일을 짤막하게 들려주고 옆지기 다리를 조금 주무릅니다. 곧바로 곯아떨어져야 하지만, 오늘 하루치만큼 밀린 일이 있어서 셈틀을 켭니다. 한 시간 반쯤 다시금 졸린 눈을 비비며 일을 하고 나서야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제 깜냥으로는 곯아떨어진다고 곯아떨어지지만, 간밤에 아이가 오줌을 누어서 잠을 깰 때에 함께 깨고, 새벽 다섯 시에 아이가 똥을 눌 때에도 함께 깹니다. 어제도 새벽에 똥을 누더니 오늘도 새벽에 똥을 누는군요.

 아침 여덟 시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부시시 일어나서 조금 일손을 붙잡자니, 아이는 어느새 따라서 깨어 납니다. 함께 놀자며 엄마한테 붙고 아빠한테 붙습니다. 거의 아무런 일손을 붙잡지 못한 끝에 아침 열한 시 넘어갈 때에 아침밥을 마련합니다. 어제 새벽에 해 놓은 밥에다가 떡과 당근과 고구마를 썰어 넣은 볶음밥을 합니다. 아이는 어제처럼 밥은 안 먹겠다고 도리질을 하고, 두부만 낼름낼름 집어먹습니다. 죽을 줘도 밥을 줘도 왜 이렇게 안 먹는다고 떼를 부리는지 힘겹습니다. 그래도 용케 콩은 아주 좋아하고 두부나 묵은 신나게 잘 먹습니다.


.. 예수에게 하느님은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다정한 엄마와 같은 존재다 … 우리가 예수를 따르거나 예수에게서 배우는 일 역시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을 갖는 일에서 출발한다 … 예수는 특이하게도 바느질, 술 담그기 등 여성이 전담한 노동의 매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여성 노동을 부각함으로써, 그리고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들에게 집중하는가를 좀더 분명히 드러낸다 … 예수는 마음의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 진리를 받아들이고 삶에 새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 힘을 가진 소수가 지나치게 많이 갖고 많이 먹기 때문에 힘없는 다수가 모자라고 배고픈 것이다. 그래서 무소유의 추구, 자발적 가난의 추구는 하느님 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다 ..  (32, 39, 52, 77, 98쪽)


 머리가 지끈지끈하다고 느끼며 낮나절에 다시금 일손을 붙잡습니다. 이웃 누리집 마실을 하다가 김규항 님 누리집에서 “《예수전》 읽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정중히 부탁합니다. 천천히 한 번 더 읽어 주시길.”이라는 짤막한 글월이 며칠 앞서 올라와 있습니다. 피식 웃고는 책상맡에서 노란 책 《예수전》을 다시금 들춥니다. 책을 읽으며 제 나름대로 밑줄을 그은 대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훑습니다. 이 책을 한 번 다 읽었던 지난 11월 25일에 적바림한 한 줄이 맨 마지막 쪽에 남아 있습니다. ‘시간 남아돌면 딱 한 번 슥 읽어 줘도 되는 책이란. 참 얕다.’

 김규항 님이 쓴 《예수전》을 놓고 섣불리 ‘얕다’느니 ‘깊다’느니 하고 따지는 일은 알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예수전》을 다 읽고 나서, 이 부피 자그마한 책을 이렇게 엮어내어 만삼천 원이나 붙여야 했는가 싶어 몹시 슬펐습니다. 글부피도 적은데 굳이 양장으로 꾸며야 했느냐 싶습니다. 이 책을 이렇게 엮거나 꾸민 뜻은 알겠으나, 더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믿음을 나눌 수 있어야 “그 교회들이 이미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가장한 상점 혹은 기업이라면, 그것은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부인의 대상일 뿐이다(180쪽).”라는 꾸지람을 꾸지람 그대로 나눌 만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책을 한결 보기 좋게 꾸미거나 엮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하느님을 돌아보는 책이라고 하여 반드시 수수하거나 풋풋하거나 단출하게만 엮거나 꾸며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이야기하거나 하느님을 돌아보는 책이라 할 때에 좀더 수수하거나 한결 풋풋하거나 더욱 단출하게 엮거나 꾸밀 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어제 아침에 일산으로 가는 길에 다 읽은 《양희은-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우석,1993)이라는 책에서, 양희은 님은 “왜 성당들은 번쩍이는 장식,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하는 걸까? 엄청나게 꾸며진 성당에 들어가면 사람이 새끼손가락만 하게 찌부러져서 초라해만진다. 그 엄청난 장식들이 사람과 창조주 사이에 오히려 두터운 벽을 쌓고 있는 것 같다. 예수께서 많은 이들과 같이 계셨던 곳은 들판이나 언덕 위였을 텐데. 들꽃 내음이나 밀 내음이 은총처럼 퍼지는 야외였다는데(26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양희은 님은 “비싼 장식으로 화려한 교회를 지을 그 돈이면 많은 가난한 이웃들을 도울 수도 있건마는(264쪽).” 하고 말을 잇습니다.

 저 또한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책 하나 만들거나 내놓을 때에 늘 ‘책 하나에 드는 돈’과 ‘이 책 하나에 붙이는 값’을 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책값 500원이나 1000원을 더 붙이면 저한테 떨어지는 고물은 조금 더 커집니다. 반양장이 아닌 양장을 하고, 겉종이에 코팅을 입히거나 금박을 넣거나 누름글자를 넣으면 그만큼 인쇄ㆍ제작ㆍ편집ㆍ디자인에 돈이 더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값을 조금 더 올려붙여도 사람들은 덜 투정’합니다. 뭔가 ‘고급스러움’을 느끼고 ‘책꽂이에 꽂았을 때에 품위가 느껴진다’고 하니까요.

 책 줄거리를 놓고 따지는 말이 아니라, 책 만듦새를 놓고 따지는 말이란 부질없을 수 있습니다. 아니, 부질없습니다. 그리고 다양성이나 개성을 건드린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 줄거리가 괜찮은 책이라 할 때에는 책 만듦새 또한 안 살필 수 없습니다. 더 너른 사람한테 더 낮은 삶자락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책이 껍데기를 더 들쓰고 있다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지요? 더 속깊은 사람한테 좀더 너른 마음씀을 바라는 이야기를 펼치려 하는 책이 겉치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요? 《예수전》 같은 글부피라면 만삼천 원짜리 책이 아닌 만 원짜리 책이나 팔천 원짜리 책으로 얼마든지 꾸밀 수 있습니다. 책 줄거리에 앞서 책 만듦새를 돌아볼 때에, 이 책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느꼈습니다.


..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면서도 미처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태도이지, 앙상한 교리와 신학을 내세워 자신이 하느님의 권한을 완전히 위임받은 양 구는 태도가 아니다 …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그 말을 이해하고 느끼는 건 물론이려니와, 삶에 새겨 실천하는 것이다 …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 껍데기를 벗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 마음의 귀를 닫아 놓은 사람에게 매달려 내내 시간만 보내는 건 현명하지 않다 ..  (69, 73, 96, 103쪽)


 옆지기와 함께 《예수전》을 읽었습니다. 나 혼자 외곬로 바라보는 눈길이 될까 걱정하면서 옆지기 이야기를 묻고, 내 생각을 들려주면서 우리 세상에서 예수님과 하느님을 어떤 매무새와 눈길로 헤아리며 받아들이고 곰삭이는 삶이어야 좋을까를 돌아보았습니다. 옆지기는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주 마땅한 이야기를 아주 마땅하게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책을 쓰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책을 애써 써냈어도 제대로 읽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옆지기와 책 이야기를 나누며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는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상은 참다운 길보다는 유행이라고 하는 물결에 쉽게 휩쓸립니다. 김규항 님은 ‘사람들이 성경읽기를 너무 못한다’고 느끼며 《예수전》을 썼는데, 김규항 님이든 미우라 아야코 님이든 우찌무라 간조 님이든 김교신 님이든 하는 사람들이 풀이한 ‘성경읽기 책’을 읽지 않고 ‘우리 스스로 성경을 옳게 읽으’면 되는 노릇입니다. 성경에는 온갖 빗대는 말로 ‘맑고 밝은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만, 한결 쉽게 알려주고자 빗대는 말로 ‘맑고 밝은 목소리’를 다루지, 무슨 꿍꿍이가 있다거나 무슨 속셈이 있어서 빗대는 말로 ‘맑고 밝은 목소리’를 펼치지 않습니다. 누구나 제가 살아가는 결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성경말씀을 꾸밈없이 헤아리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가슴이 따끔하도록 건드리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따끔하다고 느끼고, 눈물겨운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웃음이 터지는 대목에서는 웃으면 됩니다. 내 잘못을 뉘우쳐야겠다 싶은 대목에서는 내 잘못을 뉘우치면 됩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일이나 제대로 못 느끼고 있었다면 ‘자랑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으로서 내가 잘하는 일을 흐뭇하게 섬기면 되며, 앞으로도 꾸준히 잘해 나가면 됩니다.

 성경뿐 아니라 교과서도 매한가지입니다. 교과서에 이런저런 말썽거리가 있습니다만, 말썽거리가 있는 책이라 한달지라도 이 교과서를 다루는 사람이 슬기롭게 다루면서 올바르게 가르치는 도움이로 삼으면 됩니다. 우리한테는 빈틈과 모자람 하나 없이 옹근 책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빈틈없이 훌륭하거나 거룩한 길을 모르거나 지나치거나 등돌리지 않으니까요. 책을 책 그대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경은 성경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람은 사람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하는 일이 있으면 잘한다고 북돋우면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잘못한다고 나무라면 됩니다. 잘한다고 북돋우되 눈먼 채 뒤따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한다고 나무라되 그이 마음밭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려서는 안 됩니다. 이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마주할 때에도 마찬가지이고, 한겨레신문 홍세화 님을 마주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더 섬겨야 하지 않고, 누구를 마냥 깎아내려야 하지 않습니다. 왼날개이든 오른날개이든, 옳고 바르고 아름답게 잘한다면 손뼉칠 일이요, 그릇되고 엉터리에다가 어줍잖게 하고 있으면 따끔하게 꾸짖으며 바르게 접어들도록 도와줄 노릇입니다.


.. 하느님 앞에선 누구든 귀하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든 어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힘없는 사람이든 권력자든 차별 없이 귀하다. 하느님 앞에서 빈부 격차는 그 자체로 악이다. 그런데 빈부 격차란 왜 생기는가? 고루 나눠 갖지 않기 때문에, 남들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 때문에 생긴다 … 부자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할 때 이미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말을 하는 셈이다. 그런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난은 단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으로 겪는 불편함에 더해 인간적으로 무시당하고 차별받아야 하는 것이다 … 그러나 돈과 물질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수록 이상하게도 정작 자유는 점점 멀어져 간다 … 사람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부는 생각보다 적다. 그걸 넘어서는 부는 실은 사람에게서 자유와 평화를 앗아 간다 ..  (162∼165쪽)


 김규항 님은 《예수전》이라는 책을 비롯해 강연자리나 다른 책에서 빠짐없이 ‘우리 마음속에 깃든 이명박(또는 대운하)’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저어기 노옾으신 자리에 궁뎅이 붙이고 있는 양반 한 사람한테 손가락질을 한다고 풀리는 우리 삶터 말썽거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옳게 가꾸며 아름답게 일구어야만 풀리는 우리 밝은 앞날이라고 힘주어 거듭 말합니다. 이는 권정생 님이 쓴 《우리들의 하느님》을 비롯한 모든 책에 어김없이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권정생 님뿐 아니라 이오덕 님이나 이원수 님도 늘 펼치던 이야기요, 송건호 님 글이나 리영희 님 글이나 성내운 님 글에서도 한결같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게을러서 가난뱅이가 되었’으니 ‘내가 부지런해야 부자가 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가난이든 넉넉한 살림이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으면 좋은 삶’이라는 소리이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몫을 다 하면서 아름다움을 이웃들과 꽃피우면 좋다’는 소리입니다.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어 낸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루하루 꾸리는 삶을 늘 즐겁고 아름다이 붙잡는 바탕이 먼저 튼튼하게 서 있은 다음에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든 백 해나 즈믄 해에 걸쳐 세상을 바꾸든 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옳은 삶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다음 혁명을 외치든 개혁을 말하든 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맑은 길을 찾고 밝은 꿈을 품으며 고운 넋을 건사하면서 정치를 하든 학문을 하든 운동을 하든 문학을 하든 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 구원은 가진 게 없는 사람, 가진 것을 스스로 모두 비운 사람들만의 것일 수밖에 없다 ..  (114쪽)


 《예수전》을 다시 덮으며 생각해 봅니다. 김규항 님은 사람들한테 당신 책을 다시금 천천히 읽어 주기를 바라지만, 천천히 다시 읽어 주기를 바라기보다는 ‘두 번째 예수전’과 ‘세 번째 예수전’을 더욱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면 되지 않을까 하고. ‘네 번째 예수전’과 ‘다섯 번째 예수전’을 더더욱 낮은 매무새로 조곤조곤 들려주면 넉넉할 테고, ‘여섯 번째 예수전’과 ‘일곱 번째 예수전’은 훨씬 더 다소곳하면서 쉽고 부드러운 우리 말글을 한껏 빛내면서 수수하고 풋풋하게 나누는 길을 찾으면 되리라 봅니다. (4343.2.8.달.ㅎㄲㅅㄱ)


 ┌ 《예수전》(돌베개 펴냄)
 ├ 글 : 김규항
 └ 책값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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