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류승범, 윤소이, 안성기, 정두홍 주연, 2004

[대결 장면] 끝에서

흑운 : (비장하나 약간 체념한 듯이)  이것 하나는 기억해 두시오. 道가 사람을 떠난 것이 아니라 사람이 道를 떠난 것이오!

자운 : (여유있으나 단호하게) 길(道)이 있으면 언제나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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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나무 2004-05-0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에 남는 대사입니다. 류승완 류승범 다운 작품이더군요. 애니메이션 같은 아이디어가 돋보였습니다. 주연이 류승범이 아니었으면 재미가 없었을 듯...

느티나무 2004-05-09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류승완 감독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감독 어릴 때부터 이소룡을 그렇게 좋아했다지요? ㅋ) 발상도 재미있었고... 암튼 유쾌한 영화였습니다. 금요일엔 '효자동 이발사'도 보고, 어제는 '아라한-장풍대작전'! ㅋ 참, 금요일에는 오붓한 저녁이셨지요? 부럽습니다 ^^

nrim 2004-05-0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담주 금요일에 보러 갈려구요.. 무척 기대중. ^^
 

팔리 모왓, (이한중 옮김), 돌베개, 2003

   그날 밤 나는 늑대주스로 오랫동안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알코올이 주는 치유 효과 때문에 심적인 상처에 대한 고통이 덜해지자, 지난 며칠 간의 사건들을 되짚어 볼 여유가 생겼다. 수백 년 묵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늑대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은 명명백백히 거짓말이라는 깨달음이 내 마음 밭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나는 모두 세 번씩이나 이 '포악한 킬러'들의 손에 완전히 내맡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려 하기는커녕 나에게 모욕에 가까운 절제력을 보여주었다. 내가 자기 집을 공격하고 어린 새끼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보였을 텐데도 말이다.

   이 정도면 충분했지만, 그래도 그런 신화를 그냥 하수구에 흘려 보내기를 주저하는 희한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주저하는 마음이 든 이유 중 하나는 늑대의 본성에 대한 통념을 폐기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반역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또 진실을 알아차림으로써, 위험과 모험이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분위기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주저한 이유가, 같은 사람이 아닌 한낱 미물이 보기에도 형편없는 얼간이처럼 되어버린 나 자신을 인정하기 꺼려서였던 것만은 전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통념을 버리지는 않기로 했다.

   늑대주스와 함께 한 시간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이 되자 내 몸은 더 지쳐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말끔히 씻긴 기분이었다. 나는 내 안의 악마와 싸워서 이긴 것이다. 나는 이 시간부터는 열린 마음으로 늑대의 세계로 들어가서 늑대를 보고 아는 법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러려니 하고 예측하는 게 아니라 실제 그대로를 말이다.

79-80쪽

 

   나 역시도 통념의 덩어리이다.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럴 것이다. 통념을 거부하는 것이 과학에 대한 반역죄를 짓는 것 같다는 말에 무척 공감이 간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실제 그 대로의 모습을 관찰하겠다는 다짐하는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에게는 글쓴이의 '늑대'가 '아이들'로 치환되어 읽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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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4-05-0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의 일상은 언제나 교육자로서의 인식이 밑바탕에 깊이 박힌것 같습니다. '늑대'가 '아이들'로 치환되어 읽히다니.... 참 존경스럽네요..

느티나무 2004-05-09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전 별로 그런 거 못 느끼는데... 그냥 내 주변에 아이들이 있으니까... 아마도 제 인식의 폭이 좁아서 그렇겠지요. 심상이 최고야님도 아이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은 최고잖아요? ㅋ
 

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는 보편적(普遍的)이고 편당적(偏黨的)이 아니다. 소인(小人)은 편당적이고 보편적이 아니다.

=> 이 한 구절을 놓고 오랫동안 토론이 이어졌다. 군자는 사람을 사귈 때 파당(派黨)을 지어 사귀지 않고 두루 교우한다. 三人行이면 必油我師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할 때 그 사람과 좋은 낯으로 지내기 위해서(=갈등 없이 지내기 위해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지내는 것)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은 이 말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에 대체적인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자꾸 멀어져 가는 마음과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당위 사이의 갈등이 심하다고 다들 고민을 하고 있다.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종잡을 데가 없어지고(=어두워지고), 생각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롭다. 

 

=> 이 구절을 읽자 며칠 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깨달음(=思)이 없는 지식(=學)은 허망하다. 행동이 없은 깨달음은 기만이다."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由)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 안다는 것은 별 게 아닌 것이다. 안다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 이 말을 소크라테스는 "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철저한 자기 인식이야 말로 앎의 출발이다. 하기야 나를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修身이 되어야 治國平天下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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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우리 학교 시청각실

   청어는 가시가 많습니다. 왜 가시가 많을까요? 그것은 청어가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 먹힐 때 아주 불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그 그 청어는 잡아 먹히고 난 후일텐데 왜 그럴까요? 그건, 그래도 다른 청어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봅시다. 큰 나무가 우뚝 버티고 자란다면 그 옆의 나무는 햇볕을 받지 못해 시들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숲 전체를 위해 바람직한 일일까요? 큰 나무가 옆의 나무를 가린다면 가지도 치고, 큰 나무 혼자만 자라지 않게 다른 나무들의 성장도 돕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숲 전체가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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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지음/ 안대회 옮김, 돌베개, 2003

   이 책에서는 뼈아픈 자기 비판, 자기 부정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거니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이 땅에 사는 지성인들에게 건강한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판단한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태한 정신을 일깨우는 고전이다. 박제가는 한 편의 길에서 " 아아! 압록강의 동쪽에서 책을 덤덤하게 보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말을 신뢰하는 자가 없음이 당연하구나"라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은 분노와 열정의 저서다. '북학의'를 읽고서 덤덤한 느낌이 든 독자라면 지난 역사에 대한 덤덤함이 아니라 그가 처한 현실에 대한 무감각증을 의심해 볼 일이다.

-책머리에, 역자

 

   처음에 장인(匠人)이 거칠게 물건을 만들어 놓자 그에 습관이 된 백성들이 거칠게 일하고, 그릇이 한 번 거칠게 만들어지자 백성들이 그에 익숙해져 마음이 거칠어진다. 그런 자세가 이리저리  확산되어 습관으로 형성된 것이다. 자기 하나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자 나라의 온갖 일들이 모두 그 그릇을 본받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물건 하나라도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여 소홀히 만들 수 없다. 마땅히 토공(土工)을 단속하여 법식에 맞지 않게 만든 그릇은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였다.

   "자, 여기 어떤 사람이 있어 자기 굽는 기술을 배워 가지고 정성과 힘을 다하여 그릇을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나라에서 그 그릇을 사 주기는커녕 도리어 세금을 후하게 매기니 기술 배운 것을 후회하고 버리지 않을 기술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일본의 풍속은 온갖 기예(技藝)에서 천하 제일이라는 호칭을 얻은 사람이 있으면 비록 그의 기술이 자기보다 꼭 낫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를 찾아가서 스승으로 모신다. 그리고 그가 평하는 좋다 나쁘다는 말 한마디를 가지고 자기 기술의 경중(輕重)을 판단한다.이것이 기예를 권장하고 백성들을 한 가지 기예에 집중하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자기, 63-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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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2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자세가 이리저리 확산되어 습관으로 형성된 것이다..거친 자세, 거친 마음. 알겄슴돠. 허리 펴고, 가슴 펴고, 눈 부릅뜨고, 읽고 있슴돠! 근데..에고고.. 힘들어요, 히히..도로 둔너야지..철퍼덕..아- 모두 한가한 일요일을 즐기고들 계시는군요. 지금 창문 열었는데 푸른 보리밭에 바람이 불어오네요. 으(기지개!)나른한 계절입니다. 느티나무님도 오널 좋은 주말 보내세요..기럼, 지두 책 펴고 얼굴 위로 가까이, 좀 더 가까이..음냐.. 쿨쿨..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