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좋은 어린이 책 <보름달 뜨는 밤에>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김영욱(동화 작가, 번역가)
‘이야기는 끝이 있지만, 그 여운은 진정한 우정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거야’
덥석덥석 골짜기에 사는 늑대 가부와 살랑살랑 고개에 사는 염소 메이는 폭풍우 치는 어느 밤, 깜깜한 오두막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나, 늑대와 염소가 친구라니! 그래요. 말도 안 되지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게 동화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는 <폭풍우 치는 밤에>에서 시작된 우정 이야기는 이제 일곱 번째 에피소드를 담은 <보름달 뜨는 밤에>에 이르러 긴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납니다.
늑대를 조심해야 하는 메이, 염소만 보면 잡아먹고 싶은 가부는 어떻게 우정을 지켜 왔을까요? 앞선 여섯 번째 이야기 <안녕, 가부>에서 이 둘은 자신들의 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족을 피해 함께 강 건너로 달아납니다. 쫓기는 신세가 된 둘은 어느덧 흰 눈 쌓인 산꼭대기를 넘어갑니다. 눈보라는 그칠 줄 모르고, 몸은 점점 얼어붙습니다. 특히 염소 메이는 더 이상 몸을 가눌 수조차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런 친구를 살리기 위해 늑대 가부는 애를 쓰지만, 메이는 자신이 희생한다면 친구라도 살아서 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전체 이야기의 피날레에 해당하는 일곱 번째 이야기 <보름달 뜨는 밤에>를 살펴봅시다. 홀로된 메이는 살고자 하는 의욕마저 잃습니다. 가부를 그리워하는 메이는 마치 가부가 옆에 있기라도 한듯, 말도 붙입니다. “가부, 오늘 밤 달은 꼭 손에 닿을 것 같지?”라고 말이죠. 여기에서 독자들은 왜 일곱 번째 이야기 책 제목이 <보름달 뜨는 밤에>가 되어야 하는지 설핏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가슴 저미는 주옥같은 구절들에 오래 눈길이 머물 것입니다. 이를테면, “설령, 사위어 가는 작은 희망일지라도 있기만 하다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역시 좋은 일입니다.” 같은 구절 말이죠. 흔히들 누구든 자신을 진정으로 아껴 주고 생각해 주는 친구가 있다면, 살아갈 힘을 잃지 않는다고 하지요. 메이의 경우가 바로 그 경우입니다. 가부 없는 하루하루를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메이지만, 숲 속 동물들로부터 들은 소문 하나에 벌떡 일어나 쉬지 않고 달립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부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 하나는 그만큼 힘이 셉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다음 장면에서 마주치게 된 가부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겠습니다. ‘비밀 친구’의 우정이 결국 반쪽이 되어 버릴 것만 같으니까요. 하지만 곧 이어진 반전은 가부와 메이의 첫 번째 이야기 <폭풍우 치는 밤에>에서 느낀 독서의 희열을 다시 느끼게 해 줍니다. 다른 방식으로 말이지요. 모든 기억을 잃고 오로지 염소만 떠올리는 배고픈 늑대가 본능의 끝자락에서 우정을 회복하는 대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개 방식이 참으로 절묘하기만 합니다. 긴장감이 지연되고 고조되었던 만큼, 가부가 메이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독자들도 커다란 위안(카타르시스)을 얻게 됩니다. 창피하지만, 저는 이 대목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책의 압권은 애초에 가부와 메이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된 깜깜한 바로 그 ‘굴속’에서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로 다시 만나 팽팽하게 대치하게 된 상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정말이지 이 부분에서는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더군요. 위기의 순간 가부가 메이를 알아보게 된 결정적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발설하지는 않겠습니다. 아, 마침내 ‘보름달 뜨는 밤’에 늑대 가부는 염소 메이를 똑바로 바라봅니다. 어떤 눈빛으로요? 어느새 쑥 떠오른 보름달에 둘의 그림자가 겹쳤다고 하는데, 해피엔딩이냐고요?
사람들은 이기심에 우정을 이용하기도 하고, 친구를 배신하기도 합니다.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어서일까요? 책장을 덮으며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눈이 시큰거립니다. 옆에 있는 조카가 훌쩍입니다. “슬퍼?” 제가 물었습니다. “응.” 조카가 대답합니다. 그래요. 아이들이란 동물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지켜보면서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순수한 존재이지요. 그렇다면 어른이 된 우리들 마음속으로 어느새 들어와 버린 늑대를 길들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글 작가 키무라 유이치와 그림 작가 아베 히로시는 꽤 오랜 공동 창작 작업을 통해, 우정을 지켜 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것은 또한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지를 멋지게 전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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