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좋은 어린이 책 <소나무 씨 뭐 하세요?>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한아름(파주자유학교 선생님)
소나무 씨가 살고 있는 마을의 사람들은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좋아하는 색깔도 모두 다르다. 그런데 소나무 씨의 집이 있는 포도나무 길에는 뾰족한 지붕에 굴뚝과 창문, 문의 위치까지 똑같은 하얀 집 50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똑같이 생긴 집에 사는 서로 다른 사람들.
그러던 어느 날 소나무 씨는 어느 집이 우리 집인지 모르겠다며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자기 집을 꾸미기로 마음먹고 즉시 마당에 소나무를 심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한 둘 모이더니 마당에 심은 나무가 멋지다고 하나같이 칭찬한다. 다음 날, 소나무 씨는 마당에 소나무 한 그루씩 심어진 똑같은 하얀 집 50채를 보게 된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나무 씨 뭐하세요?>는 읽는 내내 흥미롭다. 과연 소나무 씨는 소나무 씨가 하는 것이라면 똑같이 따라하는 이웃을 두고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자기 집을 꾸미는데 성공할 것인가. 집을 꾸미기 위해 꼼꼼하게 준비하고 차근차근 실천하는 소나무 씨에게 생기는 또 다른 소동들은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궁금증을 더해가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나면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울법한 이야기가 매우 생생하게 다가오며 오히려 현실성 있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왜 그럴까? 왜 이 길지 않은 저학년 동화가 이렇게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올까? 아마도 그 이유가 이 책의 강점이고 특징일 테다. 그래서 여기서 정리해본다.
일단 <소나무 씨 뭐 하세요?> 책은 쉬운 낱말과 길지 않은 문장으로 읽기 쉽다. 또 문장이 반복구조로 잘 짜여 있어 전개되는 이야기의 인물, 상황이 달라지더라도 어떤 표현이 반복해서 나올지 예측 가능하다. 그리고 반복되는 표현은 운율이 있어 입에 쉽게 붙는다. 바로 글말이 입말이 되어 노래처럼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측 가능한 장면과 이야기는 단조롭기보다 안정감을 주며 운율이 있는 표현은 계속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두 번째 이 책의 강점은 단순한 선과 발랄한 표정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그래서 그림은 친근하고 아이들로 하여금 ‘나도 이 정도는 그릴 수 있어. 나도 그려볼래.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또 <소나무 씨 뭐 하세요?> 그림책에서 사용한 색은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한 검은 색과 각 그림의 한 면만 채우는 보라색이 전부다. 텅텅 비어 있는 공간이 많을수록 통통 튀는 표현의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글자와 그림이 묘하게 한 데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글자도 그림 같고, 그림도 글자 같다.
그런 매력만으로도 참 괜찮은 책이지만 내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는 것은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여러 가지 궁금증이 떠오르며 지속된다는 것이다. 가령 왜 소나무 씨는 갑자기 문득, 자기 집이 다른 집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텅텅 비어 있는 포도나무 길에 소나무 씨가 처음 이사를 와 집을 지었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소나무 씨를 따라 똑같이 집을 지은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왜 나이도 성별도 생김새도 좋아하는 색깔도 다른데 소나무 씨가 하는 집 꾸미기 행동은 그대로 따라하는 것일까? 남과 다르고 싶지만 남과 다르면 정작 불안했던 건 아닐까? 그렇게 계속 따라하던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하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각각의 색깔로 집을 꾸며보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을까? 자기 개성대로 자기 집을 꾸며도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소나무 씨를 통해 알게 된 걸까? 마을 사람들이 각자 자기 집을 페인트 칠 하려고 페인트 가게를 갔을 때 마을에서 유일하게 자기 생각을 줄기차게 말하는 페인트 가게 들이대 씨는 여전히 자기 생각을 열심히 말했을까? 그리고 똑같이 큰 통으로 아홉 통의 페인트를 주었을까? 저마다 자기 집에 페인트칠을 하겠다고 마을 전체가 북적거릴 때 그냥 가만히 하얀 집 그대로 놔 둔 사람은 누렁 씨 말고 얼마나 될까? 그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 우당탕 넘어지고 자빠지는 소동을 겪었는데도 불평하지 않고 화내지 않는 소나무 씨는 어떤 사람일까? 포도나무 길의 똑같은 하얀 집 50채가 각각 색깔을 입고 변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까? 바로 이런 생각들이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의 이야기를 자기 개성대로 풍부하게 읽을 수 있게 하는 힘이며 그 힘은 글과 그림과 이야기의‘비어 있음’이 아닌가 싶다.
책 서평을 부탁받고 아이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궁금하여 초등학교 0학년(7세), 1학년(8세), 2학년(9세)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들은 내가 읽은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복되는 표현을 노래처럼 앞 다퉈 말하고 다음 장면을 궁금해 하였으며 소나무 씨가 겪는 소동을 보며 깔깔 웃었다. 이윽고 소나무 씨가 그토록 원하던 집 꾸미기의 성공을 기뻐하였으며 책장을 덮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끼리 읽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책을 보며 따라 그려보는 아이, 종이를 한 데 묶어 <○○ 씨 뭐 하세요?>라고 제목을 쓰고는 슥삭슥삭 그림책을 만드는 아이, 같이 식사 할 때 책에 대한 뒷이야기를 묻는 아이 등 다양하다.
이렇게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고, 빈둥거릴 때 문득 ‘나의 집을 꾸민다면? 등의 생각을 궁리하게 하고, 왜? 왜? 왜 그랬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책은 언제나 반갑다. 여러 영감을 떠오르게 하고, 수많은 정보, 넘쳐나는 글자와 말, 지나치게 많은 색깔에 지친 나에게 단순하고 쉬운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깨워 준 소나무 씨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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