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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 철학 논고 비트겐슈타인 선집 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영철 옮김 / 책세상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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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철학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말 아주 사고하고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그것인데 철학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답을 얻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유의 실마리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개인의 존재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그리고 그 논의들 속에서 나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산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발딛고 살고 있는 현실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영원할 것이다. 철학책을 읽는다고 해서 철학적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고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사유의 단초들을 발견하고 고민하고 또 다른 시선과 관점들을 익혀가는 과정일 뿐.

우선 모든 인간에게 우선되는 조건은 언어이다. 언어가 존재에 우선한다. 서양철학에서 언급하는 ‘존재’라는 용어에 대한 회의와 불가해함에 대한 논의도 많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실존적 인간에 대해 부여된 의미를 개인의 존재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든 한 개인의 존재는 언어로 표상된다.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인간은 그 자신의 언어의 한계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이것이 두렵다. 내 존재의 한계는 언어라는 사실이.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한 개인의 존재는 언어로 규정된다. 사르트르의 말대로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철학이 걸어왔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류의 사유의 역사 속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또 하나의 철학자일 뿐일 수도 있다. 그의 독특한 이력과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논문들이 그의 의미를 과대 포장하거나 그의 인식의 틀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나같은 문외한에게 그는 더욱 그러한 존재다. <비트겐슈타인은 왜?>라는 책을 통해 캠브리지 대학교수시절 칼 포퍼와의 ‘부지깽이 스캔들’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대가들의 논쟁이 아니라 비트겐슈타인의 인간적인 측면과 그의 삶을 처음 접했던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20세기 언어 분석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책세상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선집이 출판되고 1권 <논리-철학 논고>를 여러번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았다. 이해할 수 없는 책에 대한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심정이었다. 쓸데없이 대가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거나 경외감을 느낄만큼 감정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책값은 아까울 수 있는 법이다. 본문은 겨우 10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이 책을 집어 들고 한 줄 한 줄 조금씩 읽어 나갔다. 언어의 한계에 부딪혔지만 사유의 단초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5, 6절의 논리 관계와 함수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지만 사물과 세계에 대한 분석과 언어와의 관계에 대한 선언들은 오래오래 그리고 천천히 생각해 볼만한 부스러기들을 건졌다.

한 사람의 철학자의 대표적인 논문 한 편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후에도 그의 책들을 몇 권 더 읽어 보고 싶은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그가 머리말에서 “도대체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 그리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들은 침묵해야 한다.(P. 15)”고 말한 명제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와 동의를 보낼 수는 없다. 나중에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논리를 수정했고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1918년 완성된 초고가 러셀의 서문을 달고 1921에 출판되기까지 비트겐슈타인의 논문은 인정받지 못한다. 그가 스스로 러셀의 서문을 읽고 동의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러셀에게 출판에 관한 일을 일임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출판된 논문은 독일어로 쓰였다. 역자 이영철은 독일어의 모호한 의미나 어휘의 번역이 독자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부분에 대해 적절한 역주를 달아놓았다. 적절한 곳에 적당한 설명이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분명한 것은 이 책을 돋보이게 한다.

<철학적 탐구>나 <문화와 가치>를 더 읽어 보아야겠지만 이렇게 짧은 문장과 명확한 논리로 자신의 철학적 주제들을 밝혀내는 일은 결코 쉽게 판단할 수는 없어 보인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분석과 탐구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비트겐슈타인이 시도한 방법은 냉정한 이성의 칼 끝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1절부터 마지막 7절까지 하위 분류 체계에 의해 명확한 논리와 정확한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들에 대한 분류를 철학적 범주로 나누어 놓은 철학자들의 분류법이 어떠하든 한 편의 글이 지니는 파괴력과 현대 사상에 끼친 영향은 놀라울 뿐이다.

  7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장이다. 어찌보면 이렇게당연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성과 감성의 혼합체인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과 세상에 대한 해답을 동시에 내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무수한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선언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면 말할 수 있는 것들의 한계가 내 존재의 한계란 말인지 아직도 확실치 않다.


06090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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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과 철학 강의 2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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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도 우리가 쉽게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은 실용적인 학문이어야 한다.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생각해 보는 관념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질문들에 대해 안내자와 길잡이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부단한 훈련과 노력은 개인의 몫으로 돌리더라도 생각하는 방식과 세상과 삶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어렵지도 않고 비현실적이도 않은 철학은 불가능한가?

김용옥의 <논술과 철학강의 2>는 1권 논술편에 이어 ‘철학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발에는 오른발과 왼발이 있지만 신발에는 없다. 왜 오른쪽과 왼쪽 신을 구분해서 신어야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올의 어린 시절은 암담했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것들에 대한 관찰과 생각으로부터 철학은 시작된다. 철학은 보편을 지향하지만 절대를 말하지는 않는다. 상식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된 철학의 길은 정치와 종교에 대한 당연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철학으로 가는 길은 쉽고 간단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복잡해서 현실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도올은 말한다.

철학은 서양언어에서 비롯된 ‘지혜의 사랑’도 아니고 일본식 한자어인 ‘밝은 배움’도 아니다. 철학은 정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철학을 정의하는 사람의 관심의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지식도 아닌 철학을 우리는 왜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들려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중고생을 위한 논술과 철학을 위한 강의록이라는 명분으로 쓰여졌지만 누구나 한번쯤 스스로 ‘돌대가리’라고 선언하는 도올의 철학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만하다. 근엄한 제목과 들어본적도 없는 용어들 사이에서 좌절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철학의 길을 제시해 준다. 우리의 삶이 텍스트이고 세상이 콘텍스트일 때 철학은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모든 가능성을 전제로 한 무전제의 전제가 철학이라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우상과 편견들을 깨뜨리는 일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내 마음의 우상을 깨뜨리고 개방적인 시선과 비판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 철학은 시작된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연하고도 다양한 전제 중의 하나이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한 화이트 헤드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실과 이상을 분리해서 인식할 때 철학은 우주 밖으로 멀어진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데아’에 대한 탐구와 믿음은 현실과 유리된 철학을 낳았다. 동양의 장자가 이야기한 우물한 개구리는 소견이 좁을 뿐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 큰 흐름속에 작은 흐름을 포함시켜 관견管見을 이야기할 뿐이다.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개구리도 결국 현실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올의 관점과 방식이 정답일 순 없다. 그가 이미 밝히고 있듯이 철학에는 절대가 없으므로.

이 책은 동서양의 철학의 차이를 통해 동양 철학의 우월성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책은 아니다. ‘철학은 문화사’라고 말할 정도로 문화적 토양과 삶의 방식에 뿌리를 둔 철학을 맹목적으로 따를 이유가 없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언어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를 낳고 결국 철학적 사유를 결정 짓는다. 우리가 발붙히고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필요한 철학은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 해야 한다. 철학은 인간학이 되어야 한다는 도올의 말이 철학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식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도올이 보여준 삶의 이력들과 그가 말해온 많은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읽는다면 도올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편견없이 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는 일은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도올을 지우고 그의 주장만을 놓고 보더라도 크게 실망할 만한 책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을 ‘대학 입시를 위한 논술과 철학강의’로 읽는다면 조금 거리가 멀다. 실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할 논술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뚜렷한 자신의 목소리와 나름의 독특한 해석으로 철학과 세상을 읽어내는 도올의 목소리는 내게 신선한 울림을 준다. 서양 철학자 하나를 붙잡고 목숨거는 철학 교수보다 그를 비교 우위에 두는 이유는 교수가 아니라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이 책에서 보여주는 생각 때문이다. 도올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떠나 그의 주장이 언제나 비판과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도 지나친 확신과 소신에서 비롯된 뚜렷한 신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독선이나 아집과는 거리가 멀다. 철학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방법들 중의 하나로 도올의 말에 귀기울여 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0609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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