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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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인 서버 또는 네트워크의 이름인 욘더라는 공간은 일반적인 네트워크 사용 방법으로 접근 할 수 없다.

만일 욘더에 접속 하려면 그곳에서 사용 할 수 있는 컴퓨터 언어를 사용 해야 한다.

사이버 스페이스 세상에서 욘더는 인간 세상의 그곳, 천국 같은 곳으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모든 만족이 구현 되어 있어서 진정한 쾌락과 행복을 추구 할 수 있는 곳이다.

욘더에서 사용 하는 컴퓨터 언어를 익혔다고 욘더에 접속 할 수 없다.

오로지 욘더가 허락을 할 시간에만 가능하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유체 이탈과 같은 초 현상적인 영혼들만 갈 수 있다거나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브레인 다운로드'를 통해 가상 체험까지 가능하다는 설이 있다.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연쇄 자살 사건의 배후로 욘더가 지적 되고 있다.

자살자들은 자신들의 육체를 지구에 버리고 사이버 세상의 천국 욘더로 이주 했을지 모른다는 추측 설이 끊임없이 제기 되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라도 가고 싶은 곳 <욘더>

현재의 삶이 사라지더라도 그곳에서는 영원 불멸 한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그곳이 본격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 한건 바로 최첨단 과학 기술로 완성한 <브레인다운로드>가 가능해진 세상이 도래 하고 부터다.

현실에서 시도 할 수 없는 것들을 가상의 천국 <욘더>에서는 시도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상 공간에 살게 되는 순간 물질적 집착이나 식욕도 사라지고 질병에 걸려 앓다 죽는 일도 없기에 누구나 꿈꾸는 천국이 되었다.

하지만 가상 공간의 천국에 가고 싶은 이들이 줄줄이 자신의 목숨을 끊어 버리는 사건들이 발생 하자 엔지니어들과 과학자들이 이 기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기 시작 했다.

2050년의 세상에서 인간이 발전 시킨 과학 기술 그리고 의학은 각종 시뮬레이션 분야와 로보틱스 분야를 인간이 사고 할 수 있는 그 이상까지 끌어 올렸지만 이 기술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 할 수 있다는 걸 어떤 전문가들도 확신 하지 못했다.

'나는 죽음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면 좋겠어.'


브로핀 헬멧을 쓰고 침대에 누운 이후는 이렇게 중얼 거렸다.

'희미한 영혼이라도 남아 있으면...그게 당신을 그리워 할까 봐.'

브로핀에 깊이 빠져들면서 이후는 더 많은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정신이 둥실 둥실 떠다니고 심장 박동을 탐지하는 장치가 부지런히 신호를 전달 하고 있다.

이후는 브로핀 헬멧을 통해 무엇을 보고 있을까?

화면 정지를 알리는 형형색색의 파노라마 일까?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보냈던 순간을 보고 있을까?

브로핀 헬멧은 이후가 선호하는 것들, 취향, 즐겨 찾았던 사이트, 지인들과 주고 받았던 메세지들을 빠른 속도로 분석해서 이미지로 보여 주고 있다.

이후는 지금 가상 현실 속에 살면서 육체의 고통을 힘겹게 견디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성을 지키며 임종을 좀 더 쾌적하게 맞이하도록 돕는다.'

'브로핀 페인 디스트랙션 프로그램'은 마지막 치료로도 회복하기 힘든 환자들의 고통을 줄여 주기 위해 이런 가상 현실 속에서 행복함을 느끼게 만든 프로그램이다.

마지막 숨을 내쉰 이후는 가슴 위 파르르 작은 요동을 일으키면서 영원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아내 이후의 마지막 순간, 고통을 줄여주는 브로핀 헬멧을 쓴 채 숨을 거둔 모습을 지켜본 남편 홀은 병원 측에서 제시하는 장례 절차 사항에 무의식적으로 1번을 터치 했다.

화면은 다음 메뉴로 넘어갔고 남편 홀은 다시 1번을 터치했다.

1번-시 市가 권장하는 방법에 따라 재再 처리 합니다.

시신을 재로 만들어 처리 한다는 것은 시신을 화학적인 원소로 환원 시켜 세상으로 돌려 보낸다는 의미로 홀의 아내 이후의 육신은 세상 곳곳으로 흩어져 버릴 것이다.

남편 홀은 아내의 육신이 작은 분자로 쪼개져서 어떤 사물과 만나 어떤 형태로 든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 동안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였다. 남편 홀은 오랜 시간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아내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어느 날 남편 '홀'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아바타 얼굴이 뜬 메일들이 주르륵 도착한다.


'나 여기 있어. 다른 데 가지 않았어. 벌써 시간이 많이 되었네? 내가 보고 싶지 않아? 나를 만나러 오려면....'


아내 이후가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기억을 모아 사이버 공간에 저장해두었다는 걸 알게 된 남편 홀은 아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장소 ‘욘더’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육신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거기 가려면 일단 죽어야 하죠. 일종의 짧은 환각적인 여행이 될 거예요.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만 당신 뇌가 지나친 충격에 노출되어 여기도 아니고 거기도 아닌 곳으로 완전히 가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거죠. 안에는 알약도 들어 있어요. 주사기를 싫어하실 것 같아 대신 놓었죠. 당신을 죽이기 위한 약이 아니라 업로드가 안전하게 끝날 때까지 몸의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용도에요. 최고도로 훈련된 명상가들이 심박수나 호흡을 최대한 느리게 하는 뭐 그런 체험을 하게 될 거예요.'


'욘더'라는 곳은 현실 어디에도 존재 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현실에서 경험한 인간의 기억에 담긴 이미지를 감각 회로를 이용해서 방대하게 자료를 수집한 곳이다.

고도로 진화한 브레인 다운로드 기술로 만든 가상 현실 속에서 인간은 지난 시절의 경험을 '욘더'라는 곳에서 무한 반복 재생 시킬 수 있다.

행복한 순간만 원한다면 '욘더'는 '행복'이미지로만 편집된 공간을 보여 줄 것이다.

그곳에는 수 만개의 명령어들만 입력 되고 있다.

'이곳에 거리를 만들어라.' 이곳에 이런 모양의 집을 지어라.' '이곳에 이런 음식만 맛볼 수 있게 해라.'

인간의 뇌 속에 저장된 기억의 이미지들은 촘촘한 통신망을 거쳐 하나의 거대한 가상 천국을 건설한다.

각각의 명령의 지시어가 떨어지는 즉시 각자의 기억들이 원하는 가상 천국에서는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것들만 보고 느낄 수 있다.

2050년 세상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도시 곳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욘더' 접속량은 무서운 속도로 증가 하며 수 만개의 아바타들이 가상의 천국의 문을 두드렸다.

정부는 직접 나서서 사이트 폐쇄를 시도 하고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은 일제히 '욘더'를 공격 하며 사이트를 운영하는 배후 세력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육신을 버리고 오로지 사이버 공간 속 천국에서 영원 불멸 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

사랑하는 아내 이후가 있는 그곳에 가고 싶어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는 남편 홀

'알파는 베타를 사랑해서 수 많은 아바타를 만들어 놓고 욘더로 들어가기 위해 땅으로 돌아갔다.'

죽어 버린 영혼은 정말로 사이버 공간에서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아바타가 되었을까?

아내 이후는 남편이 자신이 죽음의 길을 따라 오길 바랬을까?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땐 정말 어리둥절했지. 내가 생각했던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누군가 당신을 다시 볼 수 있다고 말했을 땐 진짜 기뻤어. 하지만 그건 내가 당신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건 당신이 죽어야 한다는 뜻이었지. 그렇게는 할 수 없었어. 다만 언젠가 당신을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나를 지탱해주었지. 그런데 당신이 실제로 왔고, 더 바랄 것은 없었어. 정말 행복했고...]


브로핀 헬멧을 뒤집어 쓴 채 침대에 눈을 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본 아내 이후...

지난 시절 행복한 순간의 기억만 무한 재생 되는 그곳 '욘더'는 꿈의 낙원, 영원불멸 한 삶을 원하는 이들의 천국일까?


'내가 저 세상에서 당신을 만나 사랑한 것은 당신에게 넘치던 삶의 활기 떄문이었지.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살아 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당신은 이미 죽었어. 더 죽을 필요는 없지.'


인간의 뇌는 숙면을 취하는 동안 각양 각색의 이미지들이 나오는 꿈을 꾼다. 꿈 속에서 지난 시절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절대로 현실에서 갈 수 없는 그곳에 갈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가족들이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뇌를 다운로드 받아 사는 죽은 자들의 도시, 사이버 천국 '욘더'에서 인간은 꿈을 꿀 수 없다.

오로지 저장되고 편집 된 '기억'의 이미지들이 요동치는 곳에서 지시어와 명령어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가상 공간이 만들어낸 불멸의 천국이 무엇을 만들고 건설하고 창조 해나가도 인간의 따스한 온기와 감정을 되살려 내지 못할 것이다.

이미 죽어 버린 인간이 남긴 기억들은 오로지 살아 있는 이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겨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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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0-27 2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최근에 정주행한 드라마입니다! 글차나두 원작이 있다고 크레디트에 나오길래 궁금했는데 정리해주신 내용 잘볼게요~

scott 2022-10-27 23:28   좋아요 3 | URL
남주 신하균이 원작 이미지와 별로 맞지 않습니다 ㅎㅎㅎ

서곡님 원작 좋아 하실 것 같아요.

10년전 작품인데
세련된 기술들이 등장 합니다 ㅎㅎㅎ

서곡 2022-10-27 2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굿닥터가 수출되었듯이 외국에서 리메이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드라마였습니다~원작은 모르지만 신하균이 적역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ㅋㅋ 다른 ott에서 스타트업 경영자인가로 나오는 코미디에서만큼 찰떡연기가 아니었어요

scott 2022-10-27 23:35   좋아요 3 | URL
눈빛이 넘 쾡해서
요즘 활동하는 남주들과 달리 넘 늙 ㅋㅋㅋㅋ

한국 드라마 화면 영상 편집 모두 뛰어나서
해외 시장에서 잘 팔릴지 몰라도

남주
넘 아쉬워요 ㅎㅎㅎㅎ

서곡 2022-10-27 23: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흠 딴얘긴데 종이의집 한국판에서 교수역을 신하균이 했다면 그래도 괜찮았을 거 같습니다 갑자기 든 생각입니다 ㅎ

scott 2022-10-27 23:41   좋아요 4 | URL
오😄 서곡님 캐스팅 안목👍👍👍
제가 신배우 눈빛을 커다란 화면으로 보면 좀 무서워 합니다
얼굴 근육 심줄 나온것 까지 보이기도🙈

서곡 2022-10-27 23: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눈이 퀭 포인트에서 아이디어가 ㅎ 네 특유의 광기가 있죠

scott 2022-10-27 23:47   좋아요 4 | URL
주변에서 시술을 권하고 있는데

배우는 얼굴로 연기하며 늙는다고
거부 하고 있데요 ㅎㅎㅎ

눈꺼풀 접혀지는 건
원래 청춘 때 부터 그래서
시술로도 힘든 ㅎㅎㅎ

희선 2022-10-28 00: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원작 소설이군요 본래 2010년 쓰인 거였네요 이런 소설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았을 것 같습니다 SF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것만 있는 게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살면서 힘든 일 큰 일 없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 가고 싶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scott 2022-10-28 11:20   좋아요 4 | URL
네 작가님이 뉴질랜드로 이민 가고 나서 작품을 쓰셨다고 합니다
가상현실에 관한 한국 소설중에 매우 우수한 작품이고
워낙 원작이 탄탄해서 드라마로 제작 된 것 같습니다.

SF류이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통속 소설이 시대에 맞지 않아서
읽기 어려울때가 ㅎㅎㅎ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가상 세계 sns에서 각기 다른 아바타 아이디를 달고 살고 있죠^^

페넬로페 2022-10-28 00: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영상에서 신하균배우가 말했듯 저도 욘더가 뭐지? 라는 질문부터 먼저 했어요. 가상의 공간에 대한 이해가 워낙 느려 이 책 이해하기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티빙은 구독하지 않아 이 드라마는 못볼것 같네요.
원작으로 읽어야겠어요^^

scott 2022-10-28 11:21   좋아요 5 | URL

가상의 공간
sns시대 자신이 기록한 이미지 동영상 가장 행복한 순간만 올리고 편집 할 수 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님 ^^

거리의화가 2022-10-28 10: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도 있다는 건 몰랐네요. 저는 주인공 아내의 이름이 ‘이후‘고 남편의 이름이 ‘홀‘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scott 2022-10-28 11:23   좋아요 5 | URL
남편 이름 김 홀!
아내는 이후 (아마도 성이 이씨 인것 같습니다 ㅎㅎ)


드라마 영상 대사 연기 모두 좋은데


원작과 달리 남주가 넘 찌들린 모습이여서 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10-28 12: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드라마 재밌겠는데요?
전 신하균이라고 읽고, 설경구 얼굴을 떠올린 거에요!! 한지민이랑 너무 나이 차가 나지 않나? sf라 뭔가 시간적 차이가 있나 보다? 그러면서 화면을 보면서 설경구가 왜 이렇게 젊어졌지??? 응??? 그러면서 한참 있다가....아!! 신하균!!!! ㅜㅜ
전 한 번씩 이 두 사람 이름도, 얼굴도 비슷해 보여 헷갈리더라구요? 아, 박해일도 신하균이랑 헷갈리고, 송새벽도 살짝 그렇고??
분명히 다른 이미지인데 왜 비슷해 보이는지??ㅋㅋㅋ
설경구 배우랑 혼동한 건 좀 치명적이네요? 한지민 배우에게....ㅋㅋㅋ
일억 원 원고료,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이라니?? 기대되네요.

새파랑 2022-10-28 12: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과연 2050년이 올까요?🤔 욘더는 비욘드 요런 뜻인가요? ㅋ

일억 원고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

scott 2022-10-28 17:09   좋아요 5 | URL
2050년 지구 곳곳은 바다 수면아래로 가라앉아 버릴것 같습니다
서둘러서 우리 모두 욘더로 😄

모나리자 2022-10-28 14: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벌써 영화로도 만들어졌나봐요. 과연 4차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SF소설 같아요.
가상의 천국 <욘더>에서 펼쳐지는 사후의 삶의 모습이 작가의 상상력과 함께 탄생한 거군요.
‘이후‘라는 아내의 이름도 의미심장하네요.ㅎ 삶 이후 죽음의 세계 그 이후.ㅎ
여러 생각거리를 안겨줄 듯한 내용입니다.
오늘도 화이팅 하세요~스콧님~^^!

scott 2022-10-28 17:12   좋아요 4 | URL
티빙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습니다
작가님 출판계 외서 담당하시다가 번역도 하셨고
뉴질랜드로 이주 하신후
소설 완성
1억 상금 그리고 영상으로도
모나리자님 주말 행복하게 😄

어쩌다냥장판 2022-10-29 09: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앗 이거 재밌겠어요 이런류의 책들 사랑하는데 이건 담달 바로 읽어야겠어요
스캇님 덕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도 알아서 한권씩 앍고 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이건 완전 생활속이야기들이여서 더 좋았어요

scott 2022-10-29 10:30   좋아요 3 | URL
이책 재밌습니다 욘더 라는 설정에 기억과 사랑 인간의 망각에 관해 매끄러운 구성과 세련된 문체로 간만에 재밌게 읽었습니다
스트라우트 작품 좋죠
따스함이 느껴지는 스토리로 읽고 나면 따숩😊
냥이님 주말 멋진 가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

mini74 2022-10-30 1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욘더 란 세상 너무 무서운데요. 아픔앖이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만이 있는 공간이 정말 행복할까 싶습니디. 드라마로 나왔군요. ~

scott 2022-10-30 15:32   좋아요 2 | URL
욘더 이런 가상 공간 지금도 있죠(각종 게임)
페북 주윈장이
메타버스 하며
3d안경쓰고 쇼를 하고 있듯

이제 세상 떠나면 욘더 같은 가상 세계에서 영혼들의 새로운 마이홈이 꾸려질 것 같습니다.


드라마

좀더 젊은 남주가 나왔어야 ㅎㅎㅎ

서곡 2022-11-02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참 티빙 욘더 이준익 감독이더군요 무난한 연출이었는데 뜻밖의 네임드랄까 의외였어요

scott 2022-11-02 11:59   좋아요 2 | URL
저도! ㅎㅎ
영화 시나리오로 검토 했다가
티빙에서 여러 촬영 조건등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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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에나 똑같이 흘러 가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없고 흘러 가는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

그러기에 과거에 발생 했던 일들 겪었던 경험들을 현재의 시간에 떠올 릴 수 있지만 앞으로 미래에 발생 할 어떤 일 '그 무엇'에 대해 알지 못한다.


여기, 서로 공유 하는 시간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


'1972년 10월을 우리는 시간의 끝이라 불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 되는 소설을 집필했던 작가 지영현이 깨달은 시간의 종말은 세상의 종말이 아닌 연인과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였다.

그녀는 자신이 쓴 첫 문장의 그 날 인 1972년 10월 미래가 없다고 비관하며 연인과 동반 자살을 시도 하려는 순간 두 연인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두 연인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들의 인생이 쭉 펼쳐지는 것을 보며 동반 자살을 하는 그날이 자신들의 새로운 인생의 첫날이 되고 그리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그 전날이 되돌아 왔다.

첫 만남의 순간, 시간은 다시 정 방향으로 흐르고 이들은 세 번째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좋은 순간(서로를 처음 만난 순간)이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 놓는지 알게 된다.

[사람들은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 값은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의 바다다. 이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습이 가려진다.

파도는 바다에서 비롯되지만 바다가 아니며, 결국에는 바다를 가린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현실에서 비롯되지만 현실이 아니며, 결국에는 현실을 가린다.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말하는 그 순간 부터 불안이 시작되는 경험을 한 번 쯤 해봤으리라.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왜 불안해지는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 중에서


인간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이유, 의미가 달라진다.

스스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순간, '행복'은 단순한 언어가 아닌 자신의 현재의 상황,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다.

따라서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태는 어제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과 다르다.


'자신이 겪은 일이라 과거는 충분히 상상 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 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중에서


1972년 10월 <재와 먼지>라는 소설을 남겨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던 딸 지민은 엄마를 죽게 내버려둔 아빠까지 용서 하지 못한다.

1999년 여름 2학년 1학기 종강 파티가 끝난 후 지민은 같은 과 동급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이 끝나 버렸으니 곧 죽을 것이고 말한다.

지민의 엄마는 자신이 선택한 죽음으로 인해 먼 미래의 딸이 자신처럼 스스로 죽음을 선택 할 것이라고 예측 했을까?

지민의 엄마는 자신이 쓴 소설 <재와 먼지>에서 두 연인의 세 번째 삶도 맨 첫 번째 삶과 같은 방향으로 시간이 흐르는 데로 이들의 거듭된 삶 역시 앞선 시간과 같은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두 사람 모두 세번 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자신이 곧 죽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지민의 말을 들은 그 동급생은 지민의 삶에 다가올 운명, 그녀의 미래를 어떻게 떠올리게 될까?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 라는 것을....'

하지만 자신의 미래가 도저히 평범하지 않은 미래가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된다면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꽉 막힌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제게 그 말씀들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제가 쓴 일기며 낙서를 꼼꼼하게 읽으셨다니, 제가 집에 불을 지른 일과 우리를 기억할까 말까 싶은 이웃들이 한 말들을 토대로 아빠와 제가 보낸 육년의 삶을, 아니, 그 이전의 모든 인생을 손 금 들여다보듯이 하나의 이야기로 꿰뚫어보시다니,,,,,,]

-'진주의 결말' 중에서

방송사 탐사 프로그램 <사건의 결말>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살던 딸이 어느 날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 의심 받는 딸 유진주의 행적을 추적하는 방송을 제작한다. 하지만 방영하기 직전 용의자가 딸의 아버지가 사망한 장소이자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종적을 감추자 프로그램 담당자들은 방송을 보류 하고 보충 취재를 하기 위해 한 심리학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심리학자는 화재가 난 집에 남겨진 물품을 압수한 경찰로 부터 노트와 일기장 메모,시, 저장된 동영상 등을 건네 받는다.

방송 되기 사흘 전 심리학자는 증거물을 읽고 난 후 프로그램 담당 피디에게 방송을 연기 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한다.

심리학자는 아버지를 죽이고 그 현장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른 것으로 의심 받고 있는 딸의 심리를 이렇게 분석 했다.


'유진주는 매우 수동적인 희생자로서 살아가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아버지를 공격 한 것 같아요. 방화는 그 일을 지우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 같고요.'


방송은 딸 유진주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하고 방화마저 저지른 패륜아인 능동적인 범죄자로 묘사했다.

하지만 심리학자는 분명 방송 관계자들에게 어떤 사실도 확신할 수 없지만 오랫동안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채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유진주가 아버지가 자신의 연애를 반대하고 죽은 어머니와 같은 배우자 역할을 강요 했을지 모른다며 증거물로 보여준 영상과 일기, 메모를 통해 추측 할 뿐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뒤 제 머릿속에는 낯선 생각들이 불쑥불쑥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길을 걷다가 도, 또 밥을 먹다가 도,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두렵고 끔찍한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생각들을 공책에 받아 적기 시작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그 말들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에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아빠는 제가 쓴 문장들에 줄을 그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어. 하지만 이건 네가 아니야. 너는 이 생각들에 줄을 긋는 사람이야. 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겁먹지 말고 가만히 지켜봐. 그다음에 너는 그 생각에 줄을 그어 지울 수 있어. 지금은 공책에 써서 지우지만 나중에는 머릿 속에서부터 지울 수 있어. 어떤 생각을 지우고 어떤 생각을 남길지는 네가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그게 너의 미래가 될 거야. 마음껏 생각하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생각을 선택하면 되는 거야."

-'진주의 결말' 중에서


유진주는 자신의 어떤 생각을 지우고 어떤 생각을 남겨서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꿈꾸고 있었을까?

'여기 이웃들에게는 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남다른 딸로 알려진 삼십 대 후반의 독신 여성이 있습니다. 방 두 개 짜리 좁은 빌라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도 그녀의 표정에서는 조금도 힘든 기색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니, 아버지의 병세가 더 심해질수록 오히려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밝아졌다고 이웃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점점 더 밝아 질 수 있었던 것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더 힘을 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곧 있을 파국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탐사 프로그램 <사건의 결말>에서 유진주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죽이고 공동 주택에 불을 지른 악녀가 되었다.

유진주는 재판에서 오랫동안 간병했던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잃은 충격으로 심신 미약 상태에서 저지른 존속상해치사 죄는 무혐의 처분을 받고 현주건조물방화죄는추가 되어 징역 일 년 육 개월에 집행유예 이 년을 선고 받는다.

유진주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결말이 있기를 바랬다. 그 삶의 결말은 아버지가 죽어야만 끝나는 것으로 죽은 아내를 대신해서 딸에게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던 아버지는 연애도 결혼도 반대 했다.

결국 치매에 걸려서 현재의 시간을 알지 못한 채 딸의 모습에서 과거의 아내를 떠올린다.

아버지는 바람이 몹시 불었던 그 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보냈던 그 날 밤, 그 시간 만큼은 절대로 잊어 버리지 않았다. 그에게 아내와의 시간은 줄을 그어버리면 지워지는 생각이나 기억이 아니였다.

인간은 거세게 불어 오는 방향의 바람을 거슬러서 걸어 갈 수 있고 바람이 부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


딸 유진주는 치매에 걸려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나 기억을 지워 버리기로 결심한다.

'마치 치매에 걸린 것처럼 사전 경고도 없이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는 신의 마음을 이해한 사람처럼 살아보기로 한 거예요. 그래서 불을 질렀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어요. 이해만 있었죠. 소방관들이 우리 집의 유리창을 깨는 걸 보고 제 속이 얼마나 시원했게요. 가슴이 얼마나 벅차 올랐게요. 저는 비로소 자유를 얻었거든요. 그 순간 전 모든 이야기로 부터 자유로워진 거예요.'

유진주는 불을 지르는 순간 자신의 현재의 시간을 종결 시켜 버렸다. 그렇게 스스로의 시간에서 자유로워진 그녀는 모든 것이 끝나 버린 순간 자신 앞에 펼쳐진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온 제게 돌아갈 곳은 없어요. 저는 이제 온전히 자유로워요.'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 한다고 생각 했을 때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 했을까?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 했던 것일까?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진주의 결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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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10-07 1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언어는 현실에서 비롯되지만 현실이 아니며, 결국에는 현실을 가린다.‘이 말과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 한다고 생각 했을 때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 했을까?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 했던 것일까?‘이 말에 밑줄쫙^^*

2022-10-07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2-10-07 13: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편집은 약간 맘 잡고 읽어야 하는데 그래도 한국 소설은 지금 우리 시대를 얘기하고 있어 좋아요.
모국어를 읽고 바로 이해하는 기쁨도 있고요. 주변에서 겪고 있는 소재가 있어 좋을 것 같아요^^

scott 2022-10-07 14:52   좋아요 3 | URL
10월 작정 하고 한국 소설 독파 하고 있습니다 (단편 위주) ㅎㅎ
자꾸 한국어 잊고 있는 것 같아서
솔직히 한국어 소설 읽으면서
몇몇 단어 사전 찾기도 ㅎㅎㅎ

스파피필름 2022-10-07 14: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작가 책은 내용 볼 것도 없이 바로 주문하는 작가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저녁에 도착!! ㅋㅋ

scott 2022-10-07 14:52   좋아요 2 | URL
낼 *보문고 정문에서 사인회 열리는데

사진 찍지 말래요 ㅎㅎ

그래도 팬들이 부탁 하면
다해주는 연수옹 ^^

blanca 2022-10-07 15: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잘 읽었어요. 이런 느낌이군요. 안그래도 사인회 열린다 해서 관심 가졌다는데 사진 찍지 말라고 해서 왜 그럴까, 그러다 내가 작가라면 나도 사진 찍히는 건 싫겠다, ㅋㅋ 이런 상상까지 해봤네요. 연예인도 아니고요.

2022-10-07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10-07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김연수 작가 문장 좋네요.
이 책은 지금 제게 달려오는 중입니다. ^^

scott 2022-10-08 00:08   좋아요 0 | URL
연수옹 신작!
바람돌이님 리뷰 고대 합니다 ^^

mini74 2022-10-07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장들이 정말 좋은데요. 어떻게
이런 문장들을 만들어내고 감동을 주는걸까요. 진주의 결말도 그저 무미건조하게 신문에 작게 실릴 사고같은 이야기가 작가의 손에선 이렇게 절절하게 펼쳐지는군요. ㅠㅠ스콧님 리뷰만 읽으면 보관함에 책이 ㅎㅎㅎ 이 리뷰도 넘 좋아요 ❤️

2022-10-08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2-10-09 0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앞날 좋을 것 같습니다 큰 일 없이...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겠네요 소설에 나온 사람은 그리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설이 되는 거겠지만...


희선

scott 2022-10-10 10:43   좋아요 2 | URL
평탄한 삶이 최고의 삶!
우리 모두 앞에
평범한 미래,
평탄한 삶이길 ...

그레이스 2022-10-12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작가!
다들 좋아하시나봐요
집에 여러권 있는데 저는 한권도 못읽었다는! 읽어봐야겠네요!

scott 2022-10-12 23:50   좋아요 1 | URL
아뇽 ㅋㅋㅋㅋ

그레이스님 서재에 역쉬! 👍👍👍

 
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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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아키시나의 웅장한 산속에는 한 낮에도 밤의 조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차는 급커브를 돌며 언덕 길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차창 너머 흔들리는 나무들의 가지를 온통 뒤덮은 터질 것 처럼 부풀어 오른 잎사귀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새카만 어둠이 자리하고 있다. 우주와 같은 빛깔을 한 그 검은 빛에 늘 손을 뻗고 싶었다.]


급커브를 반복하며 산속 언덕 길을 올라가는 차 안에서 초등 학교 5학년 생 나쓰키는 멀미가 나지 않기 위해 차창 밖 너머 하늘, 우주의 조각을 바라보고 있다.

나쓰키는 초등 학교 2학년 때 이 방법을 알고 나서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토록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은 어린 나쓰키에게 우주와 가까운 곳이라고 느껴졌다.

나쓰키 배낭 속에는 색종이로 만든 요술봉과 변신 콤팩트가 들어 있고 이 변신 도구를 준 파트너 퓨트가 말 없이 조용히 지켜 보고 있다.

가족들이 모르는 사실 중 하나는 바로 나쓰키가 마법 소녀라는 사실이다.

초등학교에 입학 했던 해, 나쓰키는 역 앞 슈퍼에 진열대 구석에 버려진 인형 퓨트를 처음 만났다.

나쓰키는 세벳 돈을 탈탈 털어서 버려진 인형 퓨트를 집에 데리고 왔다.

이날 부터 퓨트는 나쓰키에게 변신 도구를 건네며 이런 주문을 알려 주었다.


-포하피핀포보피아,포하피핀포보피아.


포하피핀포보피아별 출신의 퓨트는 마법 경찰로 위기가 닥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찾아 왔다.

퓨트의 변신 도구로 마법 소녀가 된 나쓰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사촌 유우 뿐이다.

매년 여름이면 찾아 오는 백중 날에 만나는 사촌 유우, 나츠키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백중 기간에 이곳에 올 때 마다 우주선을 찾는 나쓰키, 언젠가 퓨트가 지구를 떠나는 날, 나쓰키도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난다는 말을 믿는 유우는 서로의 손가락을 걸고 맹세했다.

-내가 마법 소녀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유우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여름방학이 끝나도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백중절에는 반드시 나가노에서 만난다.

[유우와 나눈 약속의 감촉이 손가락에 남아 있었다. 달아오르는 뺨을 숨긴 채 종종 거리며 현관으로 갔다. 유우도 같은 마음인지 고개를 숙인 채 성큼 성큼 걷고 있었다. 그때 부터 나와 유우는 연인이 됐다. 마법 소녀인 나는 유우가 고향 별로 돌아갈 때까지 외계인의 연인 이었다.]


마법 소녀 나쓰키에게 가족이라는 존재는 지구 상에 생존하고 있는 외계인들이다.

어머니에게 나쓰키는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분노와 화풀이 상대일 뿐이다 . 아내가 아이를 학대해도 감정의 기복이 없는 아버지는 그저 지켜 보고만 있다.

아버지 눈에는 오로지 자신의 첫 딸, 나쓰키의 언니만 보인다.

마법 소녀 나쓰키를 제외 하고 세 식구는 오순도순 살고 있다.

퓨트에게 '사라지기'라는 마법을 배운 나쓰키는 가족을 위해 가끔 이 마법을 쓰고 있다.

더 이상 가족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로 다짐한 나쓰키는 사촌 유우와 부부로 혼인 서약을 하고 마법을 걸고 기도 한다.

[언젠가 우주선을 찾으면 나도 포하피핀포보피아별에 데려가 달라고 해야지. 우리는 부부니까. 내가 유우의 고향 별로 시집 가는 것이다.

나는 사랑과 마법 안에 있었다. 그 안에 있는 한 나는 안전했다. 아무도 나와 유우의 행복을 깨뜨릴 수 없었다.]

백중의 끝나면 나츠키와 유우는 각자의 삶의 자리, 가족에게 돌아 간다.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인 나츠키는 학원 선생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순간에도 가족에게 느껴 본 적 없는 따스한 눈길과 손길에 가슴이 뜨거워져서 눈물을 흘린다.

가족들이 퍼붓는 짜증과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츠키는 주먹을 꼭 쥐며 마법 주문을 외운다.

엄지손가락을 꽉 쥔 주먹 틈 속에 보이는 어둠의 구멍, 나츠키는 자신의 손 안의 어둠을 언젠가 돌아가게 될 우주의 빛, 입구로 바라보고 있다.

나츠키는 가족들 사이에서 살아 남기 위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어머니가 머리를 때릴 때, 분노의 빰을 날릴 때면 나츠키의 입에서는 헛소리 처럼, 주문처럼 비참하게 애원하는 말을 내뱉는다.


-네, 알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날 버리지 마세요. 말도 잘 듣고 뭐든 할 테니까. 제발 버리지 마세요. 어른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죽어요. 그러니까 날 죽이지 마세요.

흥분을 가라 앉힐 때까지 손에 잡히는 데로 딸을 구타 하는 어머니, 나츠키는 구타 당하는 동안 감정의 스위치를 꺼버렸다.

나츠키는 결혼을 맹세한 사촌 유우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른에게 대들면 날 죽일 거다. 어른에게 버림받으면 우리는 죽는다.'

백중이 시작 되기 일주일 전, 마법 소녀 나츠키의 온 몸을 옭아매고 있던 끔찍한 저주를 스스로 풀어 버린다.



-혼인 서약서

다른 사람과 손을 잡지 않을 것

잘 때는 반지를 끼고 잘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남을 것

-위 사항을 맹세 합니다.

사사모토 나쓰키

사사모토 유우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신들의 성욕 해소 도구로 이용 하며 순종을 강요 하며 아이에게 어떤 짓을 해도 전혀 기억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살고 있다.

마법 소녀 나쓰키 눈에 어른들은 어떤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보였다.

서른 한 살이 된 나츠키는 결혼과 동시에 부모님의 집을 나왔다. 그녀의 남편은 도쿄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근무 하고 있다. 두 사람은 '탈출 닷컴'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만났다.

나츠키는 자신의 프로필에 '성행위 없음, 아이 없음, 혼인신고 있음'을 적어 놓고 가족에게 벗어나기 위해 상대를 찾았다.

'서른 살 남자, 도쿄 거주, 가족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 상대 긴급 모집 중, 가사 완전 분담, 통장 각자 관리, 각방 쓰는 건조한 결혼 생활 희망, 악수 상의 스킨십 원치 않음, 공용 공간에서 신체 노출도 삼가줄 분 원함.'

이성애자인 나츠키의 남편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목욕을 해서 항상 여성의 몸을 불편하게 생각 하고 있다. 완전히  성적 욕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매체 영상을 통해 보는 걸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두 사람은 구청에 혼인신고를 마쳤고 양가 가족들은 섬뜩하리 만치 두 사람의 결혼을 기뻐했다.

혼인신고를 마치고 법적으로 부부가 된 두 사람은 각자 방을 알아서 관리하고 공용 공간을 사용하면 스물 네 시간 이내에 원 상태로 복구 시키며 화장실은 주말에 교대로 청소 하며 서로 정적인 접촉 없이 살아간다.

남편의 가족 시댁 식구들은 정기적으로 두 사람을 병원에 보내 새 생명을 잉태 할 수 있는지 건강 상태를 체크 하고 있다.


[나의 자궁과 남편의 정소는 공장에 조용히 감시 당하고 있다. 새 생명을 제조하지 않는 인간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은근한 압력을 받게 된다. 새 인간을 '제조'하지 않는 부부는 노동을 함으로써 공장에 공헌하는 모습을 어필해야만 했다.]


서른 네 살에 접어든 나츠키는 여전히 아이를 잉태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유지 하고 있다. 결혼 서약을 맹세 했던 사촌 유우와는 이십 삼 년 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직장에서 해고 되고 사촌 유우가 살고 있는 그 곳을 향한다.

유우는 학교 졸업 후 남성복 도매 회사에 취직해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지난 어린 시절 푸른 초원이었던 그곳은 나츠키 부부가 찾아 갔던 날 산 곳곳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연인 유우와 만나게 된 나츠키, 그녀 옆에 서있는 남편은 돌연 유우에게 이런 말을 내뱉는다.

'아내를 딱히 사랑하지는 않지만 공장의 눈을 피하기 위해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육체로 이어진 부품들이 끝없이 아이를 만들어 유전자를 미래로 운반해야 하는 운명, 어릴 적 부터 어렴풋이 공포를 느꼈는데 아내를 만나고 나서 똑똑히, 이건 기묘한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구 별 아래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외계인의 눈을 갖고 있는 세 사람은 아키시나 산 속에서 기묘한 공동 생활을 시작한다.

세 사람은 각자의 개인 구역에서 잠을 자며 '인간 공장'이 되기를 거부 하고 '포하피핀포보피아성인'으로 자신들을 규정하며 세상의 규칙, 도덕의 규범에서 탈선하는 행동을 저지른다.

[눈 앞에 파란 덩어리가 있었다. 창고에서 꺼내온, 옛날에 아빠가 아키시나에서 가져온 낫을 몇 번이고 그 파란 덩어리를 향해 휘둘렀다.]

어른들에게 극악한 폭언과 폭력을 당하며 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살았던 나츠키, 어느 순간 부터 유체 이탈 마법을 쓰게 되고 눈 앞에 보이는 악마, 마녀를 죽여 버린다.

'마녀가 부화하기 전에 죽여버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그것 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가족에게 학대를 당하며 학원과 학교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사회에서 인간 공장의 도구로 살아가야 한다는 운명을 거부한 나츠키

세상은 억지로 나츠키에게 사랑을 하라고 강요 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랑을 못하는 사람, 새 생명을 잉태하는 걸 거부하는 이들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지 못하게 될까?

'사랑을 해서 아이를 낳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야 돼' 라고 말하는 가족들

나츠키는 무의식적으로 귀를 막아버린다.

'당신 만은 공장의 손아귀에 붙잡히지 말고 도망쳐. 나는 공장의 노예가 될 거야. 죽은 거나 다름없는 인생이지. 하지만 당신 만큼은 살아남아줘. 당신이 포하피핀포보피아 성인으로 살아 가준다면 나도 분명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어린 시절 부터 어른들에게 학대를 받았던 나츠키는 소리치고 분노 하는 어른들의 눈빛에 복종 하며 숨소리를 내지 않고 살았다.

살아 남기 위해, 가족들에게 벗어 나기 위해 외웠던 주문'포하피핀포보피아,포하피핀포보피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주변의 어른들, 회사의 목소리에 복종하며 살았던 나츠키의 연인 사촌 유우, 가족이 바라는 데로 홀로 독립해서 회사가 바라는 형태로 퇴직하는 날 부터 유우를 옭아매었던 절대 복종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어디에도 돌아갈 곳이 없는 나츠키와 유우, 법적으로 혼인한 남편이 운전한 차를 타고 어린 시절 ,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던 그곳을 향한다.

세 사람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이전과 다른 세상이 아니다. 그저 주변을 둘러 싸고 있던 절대 복종의 목소리와 고함이 사라졌을 뿐이다.

[완벽한 밤이었다. 나는 눈을 뜨면 포하피핀포보피아성인이 이 마을을 뒤덮고 있기를 바라며 잠들었다. 꿈에서 언니도 부모님도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모두 포하피핀포보피아성인이 됐다. 꿈속 파티는 끝없이 계속됐다. 남편과 유우의 새근 거리는 숨소리와 진동이 꿈과 현실의 경계까지 밀어닥쳐 꿈에서 웃고 있는 내 바로 곁까지 그 체온이 가까워졌다.]



요술봉과 변신 콤팩트, 고슴도치 인형 속에 숨겨진 슬픈 현실 고통이 극심할수록 주인공 나츠키 눈에는 파란 덩어리의 인간, 금빛 액체로 된 피, 핑크 색 세상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뿐이다.


[우리 세 마리의 포하피핀포보피아성인은 조용히 팔다리를 덩굴처럼 이으며 일어났다. '밝은 시간'의 빛과 흰 눈에 반사된 빛이 외부 세계에서 우리의 우주선으로 부드럽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손을 맞잡고 어깨를 나란히 한 우리는 지구 성인이 사는 별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빛에 휩싸인 우리에게 호응하듯, 지구 성인들의 울음소리가 별의 아득한 곳까지 메아리치더니 숲을 뒤흔들며 퍼져 나갔다.]


영국 BBC 선정 ‘2020년 최고의 책’, 미국 <뉴욕타임스> 선정 ‘2020년 주목 받는 100권’에 올라간 무라타 사야카의 <지구별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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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09-19 0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표지만 봤을 땐 반짝반짝 예뻐보였는데 scott님 리뷰를 읽고 다시 보니 그림이 섬뜩하네요... 주인공 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scott 2022-09-19 16:46   좋아요 3 | URL
파이버님 생각처럼 제가 표지만 보고 덥석 ㅎㅎㅎ

이 표지 속에 엄청난 충격의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

희선 2022-09-19 02: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라타 사야카 책은 아직 한권도 못 봤군요 SF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 현실과 다르지 않네요 현실을 벗어나려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 있겠습니다 그 세계에서나마 편하면 좋을 텐데, 그것도 오래 이어가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scott 2022-09-19 16:47   좋아요 2 | URL
<편의점 인간> 이라는 작품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거머쥐었던 작가 학생 때 부터 편의점 알바생으로 살면서 틈틈히 글을 써서 지금은 세계적인 작가!^^

학대를 가하는 가족 이것을 방치하고 방관하는 사회와 국가,,,,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ㅜ.ㅜ

moonnight 2022-09-19 0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표지 보고 어린이 대상 책인 줄ㅠㅠ; 너무 슬프네요ㅠㅠ;;;;

scott 2022-09-19 16:49   좋아요 3 | URL
저도 유즈키 아사코 작품 처럼 달콤 쌉쌀한 이야기 인 줄 알았습니다

반전을 거듭 하며
마지막 충격의 결말,,,,

작가는 분명 주변의 모든 인간(학대 받는 아동들) 찬찬히 지켜 보았던 게 틀림 없습니다 ㅜ.ㅜ

2022-09-19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9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9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9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9-19 14: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법소녀란 말이 슬프게 와닿아요. 깊은 주제를 담고 있네요. 아이를 만드는 공장, 거부하는 사럼들 , 말장난같은 포하피핀포보피아란 주문 ㅠㅠ 스콧님덕에 정말 다양한 책들을 만나게 되는 거 같아요 ~~

scott 2022-09-19 16:52   좋아요 2 | URL
포하피핀포보피아~
이런 주문 외우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였으면 좋겠습니다

미니님의 오늘 주문은 <행복한 오후 > (*Ü*)ﻌﻌﻌ♥

어쩌다냥장판 2022-09-21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을 왜 이제야 했나 하는 안타까운 맘과 넘쳐나는 읽고 싶어지는 책들의 소개덕에 행복한 비명이 절로 나오는데요~~
이미 더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책장의 여유없음에 e북으로 우회해서 선택해야함이 아쉽긴 하지만요 책은 자고로 새책의 냄새와 넘기는 손의 촉감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던 걸 포기했어요.
나무도 지키고 좋은거지로 위안하며 이책역시 e북으로 찜해둬야겠습니다.
소개해주신 책들은 하나같이 다 너무 재밌을것 같아서 하루하루 기대되네요
낼은 무슨책일지 벎써부터 기대되요

scott 2022-09-21 21:54   좋아요 0 | URL
냥이님! 캄솨!

이 책 작가 <편의점 인간> 읽고 충격을 받았는데 사건 인물 전개가 엄청 뛰어 납니다
짧은 문장으로 섬세한 묘사를 담아 내는 능력까지

이 작품 정말로 충격적이고
아주 많이 슬픕니다

어린나쓰키 소녀 안아 주고 위로 해주고 싶었어요 ^^

저는 일단 관심 가는 책들 이북으로 읽고 소장 하고 싶은 책은 종이로 구매 하고 있습니다

손의 촉감으로 느끼는 활자의 매력 ^^
 
한경아르떼 프리즈 서울 2022 -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에서 만나다
한경arte 특별취재팀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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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영국 런던에서 아트 매거진 <프리즈Frieze>가 창간 되었다.


데미언 허스트가 골드 스미스 대학 시절 친구들과 기획 했던 전시 이름에서 차용된 잡지 <프리즈>는 4년 후 1995년 뉴욕과 베를린에 아트페어 개최를 시작으로 지난 30여년 세월 동안 현대 미술계의 광범위하면서도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아트페어 개최를 비롯해 출판물,비디오, 팟캐스트, 웹사이트 등을 통해 전 세계 예술가와 컬렉터를 연결 하는 세계적인 아트 ,컬쳐 멀티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리즈>는 본격적으로 전세계 예술 작품을 한 곳에 전시 하는 아트 페어를 2003년 런던에서 개최 하면서 예술과 문화가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 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2년 랜들스 아일랜드 에서 개최한 <뉴욕 페어>와 런던 <프리즈 마스터 페어>를 시작으로 영상과 작품을 다양한 매체로 적극 소개 하며 단순히 미술품을 구매 해서 전시 하는 것 뿐 만 아니라 문화와 패션, 음식,영화와 연결 시키며 전 세계 예술의 교두보로 우뚝 성장했다.

반면 1966년 독일 쾰른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아트 페어가 열린 이후 줄곧 아시아 지역은 일본과 홍콩을 제외하고 예술계 변방으로 한국은 몇몇 소수의 작가들 작품을 제외하고 해외 거물 급 갤러리 소장품으로 등록 되지 못했다.

1980년대 까지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은 일본으로 막강한 엔화 자금력을 동원해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모네의 '수련'작품 같은 최고의 명작을 긁어 모아서 세계 미술계 시장을 움직이는 한 축으로 우뚝 성장했다.

1990년 버블 경제로 일본 경제가 기나긴 침체에 빠져 버리자 싱가포르가 아시아 미술 시장 자리를 차지 했지만 2007년 싱가포르 정부가 미술품에 7퍼센트 부가 가치를 부과 하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르면서 세계 주요 경매 회사들이 세금이 없는 홍콩으로 건너 갔다.

외국의 메이저 급 화랑들이 홍콩 미술 시장 곳곳에 문을 열며 아시아 문화 예술 중심지가 되었지만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불안한 사회 경제 상황과 중국 공안의 극심한 검열로 정치적 불안이 요동 치던 중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 되면서 유럽 명문 갤러리들이 서울에 사무실을 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본과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에 밀려서 아시아 예술계의 변방이였던 서울이 2022년 9월 드디어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를 개최 하게 되었다.


2022년 9월 2일 부터 5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렸던 <프리즈>에는 국내 화랑 12곳을 포함해 20여 국의 110개 갤러리가 작품들을 전시하며 '서울'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지로 급 부상 하게 되었다.

아트 페어 <프리즈>는 단순히 그림을 사는 곳이 아니라 행사 기간 동안 프리즈 작품에 관한 영상 전시,소더비 인스티튜트의 프리미엄 컬렉션 코스, 토크 프로그램 그리고 야간 행사를 통해 작가와 작품, 컬렉터와 수집가를 연결 시키며 미술계의 중요한 화두와 의제에 관해 소통하는 거대한 '아트 테마 파크'다.


20022년 9월 서울 프리즈에서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들이 빼곡하게 전시 되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루이즈 부르주아, 애니시 커푸어, 트레이시 에민, 에곤 실레, 조지 콘도, 세실리 브라운, 스털링 루비의 작품과 함께 현대 미술계를 이끌고 있는 동시대 중견 작가와 신인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 되었다.

2022년 9월 서울 프리즈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 <Red Portrait Composition>2022


조지 콘도의 작품으로 붉은 색을 배경으로 조각 조각 나 버린 얼굴 혹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세계를 큐비즘 작품으로 형상화 시켰다.

모던 아트 섹션 하이라이트 코너에 전시 되었던 루이즈 부르주아의 <Gray Fountain>1970-71


각기 다른 각도와 높이로 기울여 절단된 기둥들이 미묘하게 기울어진 경사로 배열되어 멀리서 바라 보면 마치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미국 현대 미술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 필립 거스턴의 <Untitled (Outsider)>


커피 머그잔과 작가가 '후드'라고 부른 가면을 쓴 두 인물이 고도 성장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지극히 개인적이며 일상적인 자화상을 보여 준다.


치하루 시오타 < State of being(ship)> 2022

주변의 일상적인 용품이나 물건 신발, 열쇠, 침대, 의자, 드레스 같은 오브제로 개인적인 경험이나 감정을 삶과 죽음 관계로 확장 시켜서 기억과 의식의 개념을 새로운 관점으로 새겼다.

프리즈 서울에서 최초로 소개 된 작가 타바레스 스트라찬 <Legacy>2021


지금 까지 한 번도 전시 된 적 없는 작품들이 아시아 최초로 소개 되었다.


바하마에서 성장한 타바레스는 어린 시절 밤 하늘을 보며 우주 탐험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그는 북극을 탐험하며 얼음 조각을 운송해서 전시에 사용 하며 자신의 조각품을 우주로 쏘아 보내기도 했다.

우주에서 유영하는 수 많은 별들의 탄생과 죽음을 통해 지구의 생명체의 운명까지 확장 시키며 삶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작품을 통해 펼쳐 보였다.


<타버린 청색과 다색>1990

한국 현대 회화 단색화 1세대인 故윤형근 화백은 서구적인 추상과 한국적인 질감을 독창적으로 결합 시키며 혼합 안료로 가공하지 않은 한국의 마포, 면포, 한지 속에 세파를 견뎌 낸 고목의 색감과 한반도의 땅을 지탱하는 흙의 향기를 회화 작품에 재현 시켰다.


예술 작품 속에는 시대의 모습이 반영 되어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뿐 만 아니라 사회를 들끓게 만드는 사건 사고, 그리고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 잠재 되어 있는 미지의 세계 까지 예술은 또 다른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 준다.


20세기 비디오 아트를 창시한 현대 미술의 거장 '백남준'은 2006년 마이애미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개척해 나갔다.

전염병의 대 유행, 전쟁 발발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연달아 겪었던 백남준은 자신의 동료의 죽음과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전 세계 인류의 모성,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사랑으로 확장 시켰다.


<로봇 라디오 맨, 요제프 보이스>1987

2022년 9월 서울 프리즈, 전염병과 전쟁, 세계적인 경제 불안 속에서 2022년 9월 서울 프리즈가 지핀 예술의 혼은 전세계 곳곳에서 활활 타오를 것이다.


<어머니 I 열아홉살>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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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9-16 1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지콘도의 작품 인상적이긴 하네요. 오리? ㅎㅎ 세계적아 작가 이름을 보니 에곤 실레 빼곤 다 첨들어보네요 😅 역시 미술은 심오한 세계~!

scott 2022-09-18 23:11   좋아요 2 | URL
역쉬! 새파랑님은 프리즈 행사 기간 중에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작품을 알아보시는 군요! 👍👍👍👍👍

하지만 새파랑님이 알고 계신 에곤! 작품이 가장 비싸 가격이 붙어 있어서

안팔렸다고 합니다 ^^

미미 2022-09-16 11: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매거진 <프리즈Frieze>표지들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한국에도 선보였음 좋겠네요
검색해보니 정말 다양한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였었군요!! 사람들이 많이 몰렸을것 같아요. 스콧님 즐거우셨겠어요!!*^^*

scott 2022-09-18 23:13   좋아요 2 | URL
요 매거진은 이전에 인터넷이 활성화 되지 않았을 때 발행 했고 요즘은 큰 손들에게만 배포하는 것 같습니다 (선구매 하라고 부축이는 ㅎㅎㅎ)


사람들이 넘 많아서 전시 작품이 위태로울 정도 였고 작품 구경 보다 사람 머리를 더 많이 봤던 ㅎㅎㅎ


mini74 2022-09-16 13: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본하면 가셰박사의 초상부터 떠오르더라고요. 프리즈가 데미언 허스트에서 나왔군요 ~ 소개해주시는 그림이며 내용 넘 좋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우주로 쏘아올린 타바레스 스트라찬 그림 예쁩니다. 👍❤️

scott 2022-09-18 23:14   좋아요 2 | URL
타바레스 작품 실제로 보면 정말 멋집니다

내방 천장에 복사품 잔 뜩 붙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

페넬로페 2022-09-16 13: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울 프리즈는 일반 입장료부터 비싸더라고요. 사람들이 유명한 작품에 많이 몰렸다고도 하고요.
어느 순간 예술도 결국 자본의 움직임으로 좋다, 나쁘다가 결정되는 것 같아요.
저 같이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은 작품의 가격이 비싸면 또 좀 좋게 보이기도 하고요 ㅋㅋ

scott 2022-09-18 23:19   좋아요 3 | URL
3박 4일 기준으로 7만원( 아랫층 키아프 입장권을 포함해서) 인데 실제 런던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대략 만 오천원정도 였습니다(엄청난 작품 숫자가 많을 때는 삼만원정도 받음)

그런데 느닷없이 서울에서 십오만원 받겠다고 하니 난리 쳐서 그나마 칠만원으로 가격을 내렸 ㅎㅎㅎㅎ

넘 비싸지만 정말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서 갔는데,,,

칠만원의 가격을 잊어 버릴 만큼 무수히 좋은 작품들이 전시 되어서 ㅎㅎㅎ

결국 자본 시장의 모든 거래들은 큰 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술을 하는데 돈이 정말 많이 들어 갑니다

페넬로페님 말씀처럼 비싼 가격의 작품에 사람들이 몰렸고
실제로 보니 정말로 빛났습니다 ^^


서니데이 2022-09-16 22: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니까 보러 가시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도판과 설명을 미리 한 번 보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전시된 예술품이 많으면 자세히 보기 어렵고, 빨리 보고 오면 기억에 남는 것도 적었어요.
잘읽었습니다. scott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scott 2022-09-18 23:20   좋아요 3 | URL
코엑스 전시장에 발을 딛여 놓는 순간 부터
목적지를 향하기 힘들 만큼 인파가 ㅎㅎㅎㅎ

서니데이님 만큼 작품 수가 많을 때는 미리 예습을!

그냥 한 적한 공간에서 나만 홀로 작품을 보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

hnine 2022-09-18 14: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백남준 작품 위의 사진은 에곤 쉴레 그림이지요?
진즉에 알았더라면 가보았을걸, 좋은 기회를 놓쳤네요. 책이라도 구입해서 봐야겠어요. 아마 한동안은 잘때 스마트폰 대신 이 책을 끼고 잠들지 모르겠어요.

scott님, 생일 지났지만 (이것도 지금 알았어요 요즘 알라딘에 잘 안들어오다보니), 축하드려요. 즐겁게 잘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scott 2022-09-18 23:23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나인님
이번 서울 프리즈 미친 표값(런던에서 대략 만 오천원 가격, 물가 비싼 스위스 바젤에선 삼만원)을 할 정도로 엄청난 작품들을 한 꺼번에 전시 해 놔서 인파에 깔려 죽을 뻔 ㅎㅎㅎ

런던 테이트 모던과 뉴욕 모마의 하이라이트 작품들을 모아 놓은 것 처럼 좋았습니다

이 도록은 작품 구입을 할 것 처럼 달려 들어서 받았는데 ㅎㅎㅎ

정말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실려 있지 않았습니다(아마도 작가가 원하지 않았거나 엄청난 가격 때문에)

나인님 제 생일을 기억해 주셔서 감솨!

나인님 건강 잘 챙기세요 ^^

어쩌다냥장판 2022-09-17 2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럴때는 지역에 사는게 아쉽네요 볼줄 아는 눈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전시회 가보는걸 좋아해서 자주 접할수 있는 서울이 부럽습니다~~ ㅎㅎ 그래도 글로라도 접할수 있어 좋으내요

scott 2022-09-18 23:25   좋아요 2 | URL
그냥 좋아하는 작품 곁에 두고 자주 보고 (책이나 도록) 기회가 될 때 전시회 둘러 보면서 보는 눈이 키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림과 예술 작품 앞에서 눈과 귀가 멀어 버려서,,,,
일단 열리면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ㅎㅎㅎㅎ

냥이님 주말밤 평안하게 ^^
 
청춘 - 코펜하겐 삼부작 제2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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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30분, 열 네 살 토베는 이모가 만들어 준 옷, 단 하나 밖에 없는 원피스를 입고 책가방을 매고 학교가 아닌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 집으로 출근 한다.

고용주 집에 도착한 토베는 책 가방에서 앞치마를 꺼내 입고 차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고용주가 시키는 데로 움직이고 있다.


[나는 여덟 시간 동안 어머니를 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나는 그들이 매일 일정한 보수를 주고 일정한 시간 동안 신체적 노동력을 구매한 사람이었다.]


차를 끓여 본 적도 없고 마셔 본 적도 없었던 토베는 차 주전자에 찻잎을 얼마나 깔아야 하는지 몰라 허둥지둥 거리고 있을 때 고용주의 아들이 달려와 토베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내가 시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해야지. 안 그러면 쏴 버릴 거예요.'

고용주는 토베가 자신의 집안에서 하루 종일 해야 할 일들을 시간대 별로 작성한 목록을 내밀었다.

청소기를 사용 해 본 적도 없고 카페트를 청소 해 본 적 도 없었던 열 네 살 토베는 기기 작동을 시도 하다가 뚜껑이 열려서 먼지 덩어리가 통째로 튀어 나와 버렸고 마루 바닥 솔질 방향을 잘 못해서 수 백 군데를 긁혀 놓았다.

오후 다섯 시 고용주가 집으로 돌아 오기 한 시간 전,토베는 해고 당하고 앞치마를 집어 넣은 책가방을 매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토베는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은 하숙집 부엌을 청소 하고 있다.

아침 8시 부터 12시간 동안 온 몸에 그을음과 기름으로 범벅이가 되어 퇴근 후 집으로 돌아 오자 마자 단 한 줄의 시를 쓰지 못한 채 침대 위로 고꾸라졌다.

검은 원피스에 하얀 앞치마를 입고 난로 불이 꺼지지 않는지 지키며 하숙집 방과 욕실, 부엌을 청소 하면서 받는 급료는 30크로네

토베는 동료 선배들에게 저속하고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지난 시절,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던 시간, 마음껏 책 속에 파묻혔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어린 시절에 내가 두려워했던 것을 하나 떠올린다. 착실한 숙련공. 나는 숙련공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도 없지만, 미래의 모든 밝은 꿈을 가로 막는 건 '착실한'이라는 단어다. 그 단어는 비 내리는 하늘 처럼 밝은 햇빛을 느낄 만한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토베 인생의 밝은 빛을 가려 버리는 사람들은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

토베의 아버지는 여전히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열 네 살 짜리 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 했고 어머니는 딸이 받아 온 일당으로 새 라디오를 사서 하루 종일 틀어 놓고 있다.

잠자는 소녀야, 널 위해 찬가 한 곡 불러 줄게

어떤 광경도 이토록 진실한 기쁨을 준 적은 없었어.

움직임 없이 사랑스럽게 누워 있는 너 만큼은

꿈속에서 웃고 있구나, 하얀 시트로

네 젊은 가슴을 간신히 덮고서

아, 내게 그 모습은 얼마나 신성했는지.

너는 알지 못했지만.

항상 심각한 표정과 희망이 없는 말 만 내뱉는 부모님과 친척들이 이제 열 다섯 살이 된 토베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토베는 매일 매일 하숙집에 더러운 부엌과 화장실을 청소 하고 퇴근 후에 하루 종일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시어들을 끄집어낸다.

토베가 텔레비전만 응시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설거지와 청소가 싫고 어떤 종류의 집안 일도 다 싫어요. 차라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타자 치는 걸 배우고 싶어요.'

'아직은 안 돼. 우선 집을 제대로 관리하고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요리 해 주는 법을 배워야지. 넌 금방 배울 거야.'

결국 토베 엄마는 남편이 겨우 열 다섯 살이 된 딸에게 이런 말을 내뱉자 하숙집에서 누군가에게 추행을 당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남편을 설득 시켜버렸다.

하숙집 일을 그만 둔 토베는 사무직 구인 광고에 여러 번 지원 하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다.

면접 날 아버지의 직업을 물은 인사 담당자들은 열 다섯 살 짜리가 집안을 먹여 살리고 있는데 자신들이 주는 봉급으로는 힘들지 않겠냐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두 번 다시 고용주의 하인으로 살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토베는 여러 군데를 도전 한 끝에 노동 조합에 가입 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답 끝에 마침내 어느 간호 용품 회사의 재고 관리 사무원으로 취직한다.

열 다섯 살 토베는 오빠 에드빈이 입었던 코트를 수선해서 입고 새 일터로 향했다.

세상은 온통 겨울이다.

히틀러가 독일을 집권 했고 네덜란드를 침공했다.

전쟁의 기운은 서서히 덴마크로 흘러 들어 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죽어 가고 있었고 멀리 전선으로 떠난 이들은 영영 집으로 돌아 오지 못했다.

토베는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세상은 변하고 있었지만,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사무실로 출근해서 구석 구석을 청소 하고 간호 물품들이 도착하면 물건들의 용도에 맞춰 분류 작업을 시작하는데 열중 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토베의 눈 앞엔 언제나 똑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거실에는 퇴근 하고 돌아 온 아버지가 쇼파에 누워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 하고 있고 어머니는 딸이 받아 온 일당으로 구입한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은 채 커피를 끓이며 뜨개질을 하고 있다.

문득 토베는 오빠 에드빈 처럼 열 여덟살이 되기 전에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으면 영원히 벗어 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사는 한, 나는 외롭고 이름 없는 삶을 살아갈 운명에 처해 있다.

세계는 내 어떤 부분도 인정해 주지 않고, 내가 모서리 하나를 겨우 붙잡을 때마다 내 손아귀를 슬쩍 빠져나간다. 사람들은 죽고, 그들 머리 위의 건물들은 헐려 나간다.]

토베는 물품 보관소에서 약품들을 하나 씩 만지면서 이전과 다른 시어들이 가슴 속에서 일렁 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어둠 속에 초 하나가 타고 있어.

나 만을 위해 타는 초

내가 입김을 불면

그것은 활활 올라

나 만을 위해 올라

하지만 부드럽게 숨을 내쉴 때

초는 깜빡 밝음을 넘어서고

내 가슴 깊은 곳에서 타올라

그저 너를 비추게 되네.

토베는 늦은 저녁 남자 친구와 영화관에도 가고 연애도 하며 노동 조합에 가입을 한다.

직장에서 해고 당해도 당황하거나 좌절 하지 않는다.

아마추어 극단에서 배우를 찾는 광고 단지를 보고 덜컥 지원하고 갈색 정장을 입은 채 일흔 한 살 짜리 할머니 역할에 합격한다.

열 일곱 살 토베는 커피를 마시며 대사를 외우고 노래 연습을 한다.

극단 대표는 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어 준다.


'토베 디틀레프센이라는 아주 어린 소냐가 아그네스 아줌마 역할로 대단히 성공적인 연기를 선보 였다.


토베 디틀레우센, 디틀레프센, 이름의 철자가 틀린 채 인쇄되었지만 토베는 아마추어가 아닌 배우로 인정 받은 것이다.

아마추어가 아닌 배우 토베 디틀레우센은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연기 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갈 것이고 그리고 사랑에 빠질 것이다.

연극 배우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토베, 부모는 딸에게 덜컥 커다란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통보 한다.

'방이 세 갠 데 아주 커. 거의 무도회 장 수준이더라. 이 프로레타리아 동네에서 벗어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거야.'

새로 이사 간 집에 처음으로 자기 방이 생긴 토베 는 쇼파에서 잠을 자고 있다.

토베가 일어나 출근 하고 나면 그곳은 곧장 응접실이 되고 다이닝 룸이 된다.

한 달에 60크로네를 받는 토베는 외상으로 새 코트를 사 입고 새 책을 구입한다.

단 2주 동안 만난 악셀이라는 이름의 청년과 약혼 하지만 어떤 직장에서도 한 달을 버티지 못하면서 꾸준히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파혼 해버린다.

토베는 이별에 대한 미련도 없고 슬퍼 하지 않는다.

내일 출근 할 직장이 있고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집으로 돌아가면 살 날이 몇 일 남아 있지 않는 이모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 하며 집 안 가득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토베는 살 날이 몇 일 안 남아 있는 이모의 비참한 상태 보다 자신이 잘 곳이 없고 시를 쓸 공간 조차 없이 평온한 저녁 시간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에만 신경 쓸 뿐이다.

마지막 주사를 맞은 이모의 숨소리가 사라지고 곁에서 지켜 보고 있던 어머니는 '끝났다'는 말을 내뱉고 토베는 그저 잔인할 정도로 추악하고 역겨운 죽음의 악취를 집안에서 내보내기 위해 창문을 전부 열어 젖혀 버린다.

[나는 두 팔로 내 몸을 감싸 안은 채 내가 젊고 건강하다는 사실을 만끽하며 기쁨에 젖는다. 그렇지 않다면 내 청춘은 당장이라도 없애 버리고 싶은 하나의 결함이자 방해물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생일을 단 2주 앞두고 사무실에서 해고 된 토베는 곧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 놓고 서둘러 집을 나갈 준비를 마쳤다.

'우리가 이사를 온 건 모두 널 위해서 였는데. 너한테 글을 쓸 방을 갖게 해주려고 그랬지. 네 아버지는 다시 실업자가 됐어. 네가 집에 갖다 주는 돈 없이는 지낼 수가 없는데 .'

환전소에서 한달에 100크로네를 받게 된 토베는 타자 용지 100장을 사고 자신만의 방으로 간다.

그 방에는 꽃 무늬 커버가 씌워진 소파 하나, 안락의자 하나, 테이블 하나 그리고 낡은 수납장이 있다.

토베는 방 안 가득 뒤덮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코트를 입은 채 타자를 치고 있다.

내일 당장 히틀러가 군대를 이끌고 쳐 들어 올지 모르지만 마음 속 가득 담겨 있는 단어들을 타자로 치고 있는 토베는 두렵지 않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어도,타자기를 치는 동안 배고픔을 잊어버린다.

열 여덟 살, 마침내 가족으로 부터 도망친 토베는 환전소에서 일하고 시를 쓰고 가끔 씩 젊은 남자들과 춤을 춘다.

시를 쓰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젊은 남자는 토베에게 잡지 <밀알>의 편집자 비고 F 묄레르에게 보내라고 조언해준다.

그가 자신에게 장난 쳤을지 모른다고 살짝 의심하면서도 토베는 <밀알> 편집자에게 세 편의 시를 동봉해서 보낸다.

매서운 추위 조차 느끼지 못하는 토베는 이름 하나, 주소 한 줄을 입으로 되뇌이며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편집자 비고 F 묄레르는 몇 살 일까?

F는 무슨 약자 일까?

아니, 어쩌면 죽은 사람이 아닐까?

친애하는 토베 디틀레우센 양에게. 귀하의 시 두 편은 ,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탁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시 <내 죽은 아이에게>는 사용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을 담아, 비고 F 묄레르

토베는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산 잡지 <밀알>을 손에 쥐고 있다.

잡지를 펼치면 이런 시가 적혀 있다.

네 작은 목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어

네 창백한 입술은 내게 미소 지은 적도 없지

그리고 네 작은 두 발의 발길질

그건 내가 영영 볼 수 없는 일

드디어 잡지 <밀알>에 토베 디틀레우센 이름이 새겨진 시 <내 죽은 아이에게>가 실렸다.

여자는 절대로 시인이 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은 진실이 아니였다.

시를 읽지 않은 사람들은 그녀의 시가 <밀알>이라는 농업 잡지에 실렸다고 생각했다.

토베는 마치 사랑에 빠진 것 처럼 두근 거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 시키며 자신의 시를 실어준 편집자 얼굴을 이제서야 또렷이 바라본다.

편집자는 토베에게 시집을 출간 할 생각이 있는지 묻는다.

토베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나는 눈부신 빛 속을 걸었고, 유명인들이 발하는 빛을 거울처럼 내던져 졌다. 내가 그들의 이미지를 비춰 보여 주자 그들은 자기들 눈에 보이는 그 이미지를 마음에 들어 했다. 우쭐해진 그들은 내게 미소를 지으며 칭찬을 퍼부었다.]


<소녀의 마음>을 품고 잠든 토베는 더 이상 지난 시절에 읽었던 수많은 책들을 떠올리지 않는다.

수 많은 나날 동안 입가에서 맴돌았던 말들, 지난 날의 삶의 흔적들이 담겨 있는 <소녀의 마음>

가족들이 토베가 <밀알> 편집자와 당장이라도 결혼 할 것 처럼 들썩이는 동안 영국은 독일에 선전 포고를 했다.

유럽 전역이 전쟁의 화마에 휩싸여도 토베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시집 <소녀의 마음>을 읽고 있다.

[나는 책 한 권을 펼쳐 몇 줄을 읽어 본다. 인쇄된 형태로 보는 시들은 묘하게 멀고 낯설어 보인다. 나는 다른 한 권도 펼쳐 본다. 이 모든 책에 똑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다.]

토베는 <소녀의 마음>이라는 시집을 읽다가 잠이 들 것이고 다음 날 아침 집세를 벌기 위해 일하러 나가면서 자신의 시집을 품 속에 숨겨 둘 것이다.


단 한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행복, 토베 디틀레우센 <소녀의 마음>

이제 그녀는 돌이 킬 수 없는 운명, 시인의 길을 걸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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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9-08 11: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다 읽고 소름돋았어요. 토베의 상황도 나치에 의한 전 세계적 위기의 배경도 숨가쁘게 전개되는 느낌이군요. 그녀가 쓴 시도 훨씬 더 성숙한 분위기! 저도 2권을 시작하렵니다.*^^*

scott 2022-09-08 11:56   좋아요 4 | URL
이 얇은 책
반세기 전에 살다간 시인, 소설가 동화 작가의 삶을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ㅎㅎ

미미님의 <청춘>리뷰 고대 합니다.

(ᐡ-ܫ•ᐡ)

유부만두 2022-09-08 1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첫 직장에서 피아노 해먹고 그집 애 데리고 엄마한테 간 장면까지 읽었어요. 근데 덮어두고 시간이 지나니 다시 손에 들지 않게 되네요.... 일단 명절 연휴를 살아남아야 책을 더 ...

scott 2022-09-08 14:28   좋아요 2 | URL
전 일년만에 재독중 인데
이번에 펭귄에서 출간된 장편 얼굴 기대 하고 있습니다
3권 마지막 읽으니 토베의 재능 안타까움이 가득😿

책읽는나무 2022-09-08 14: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읽을 책을 자꾸 써서 올려 주시니....
흑흑~~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ㅜㅜ
펭귄북스 모으려고 시작 중인데...펭귄 나오면 그걸로~ㅋㅋㅋ
스콧님도 명절 연휴 잘 보내시어요^^

scott 2022-09-08 14:42   좋아요 4 | URL
이책 펭권판은 원서
한국어판은
을유 암실문고😊
나무님 명절 푹 쉬게
가족들 각자도생 살귀 😄

책읽는나무 2022-09-08 14:51   좋아요 4 | URL
아...펭귄북스는 원서였나요?
이 책으로 사면 되는 거네요~ㅋㅋㅋ

scott 2022-09-09 12:10   좋아요 2 | URL
😅

페넬로페 2022-09-08 14: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이라도 다들 똑같게 되는건 아니잖아요.
본인의 의지와 능력도 무시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scott 2022-09-08 14:44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타고난 능력
재능 숨기기 힘들지만
어린시절 부모에게 상처 받은 트라우마는 영원히 지우기 힘든것 같습니다😶

2022-09-08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8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9-08 18: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배경을 잘 모르지만, 코펜하겐이 있는 걸 보면 덴마크겠지, 합니다.
북유럽 이름들은 낯설어서 잘 모르겠어요.
2차 대전 시기라면 가벼운 분위기 일 것 같지는 않네요.
잘읽었습니다.
scott님,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scott 2022-09-08 23:34   좋아요 4 | URL
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ㅎㅎ
전쟁에 휩싸였으니
정말로 한 치 앞도 내다 보기 힘들었던 시대 였죠.

서니데이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 세요 ^^

서곡 2022-09-08 2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 프사에 댓글 남겨봅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잘 어울립니다

scott 2022-09-08 23:35   좋아요 3 | URL
요즘 날씨 정말 좋은!
서곡님
추석 연휴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희선 2022-09-09 02: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베라는 이름이어서 토베 얀손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름밖에 모르지만... 토베 얀손은 핀란드 사람이군요 토베 디틀레우센 사는 게 쉽지 않았네요 힘들었다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해서 다행이고 그걸 알아본 사람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희선

scott 2022-09-09 12:11   좋아요 3 | URL
토베 얀손!
휘바!휘바 !
핀란드인 ㅎㅎㅎ
저도 첨에 토베 얀손인 줄 알았습니다!

열네살 학교에 가지 않고
부잣집 청소 하러 갈 수밖에 없었던 ㅠ.ㅠ

그럼에도 시쓰기를 포기 하지 않아서 다행이죠 ^^

mini74 2022-09-09 13: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베 너무 짠하네요. 어려운 환경에도 당차고 똑똑하고 ㅠㅠ 진짜 몰입해서 읽었어요. 18살의 토베가 시를 쓰고 잡지에 실리는 장면에선 왜 제가 뿌듯하죠 ㅎㅎㅎㅎ 스콧님 프사 환하고 좋아요 *^^* 이런 설레는 맘으로 오전에 이어 오후엔 전 부치기 ㅎㅎㅎ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스콧님 *^^*

scott 2022-09-09 23:23   좋아요 2 | URL
열 네살 토베!
책가방에 앞치마 메고 출근 ㅠ.ㅠ

미니님 오늘 오전 오후
전 부치기!
추석 지나면
가족들 미니님
호텔 추석 바캉스 일박 이일 보내 돨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