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누구나의 인생 - 상처받고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뜨거운 조언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홍선영 옮김 / 부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저는 어렸을 때 라디오 듣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라디오를 듣는 시간입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늦은 밤을 좋아합니다. 지금은 밤에도 환해서 예전만큼 조용한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아직 낮보다 밤에 훨씬 조용합니다. 늦은 밤에 책을 읽으면 더 집중할 수 있을 텐데. 아니, 책은 낮이든 밤이든 이야기에 빠져들면 집중할 수 있기는 합니다. 이상한 게 하나 있는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다른 소리들은 거의 들리지 않지만 음악소리만은 들린다는 겁니다. 모든 소리가 다 지워지면 좋을 텐데 잘 안 되는군요. 제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좋아한 것은 이런저런 게 있는데, 가장 첫번째는 음악(우리나라 노래)이기는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노래 나오는 방송은 거의 안 듣는군요. MBC FM에서 하는 ‘음악캠프’를 듣습니다. 그저 틀어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랫말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들을 수 있거든요. 가끔 재미있거나 들어두면 좋겠다 하는 말이 나오면 잠시 책 읽기를 쉽니다. 그리고 ebs도 잘 듣습니다. 지금은 ebs에서 거의 책을 읽어줘서, 제가 책을 읽을 때는 듣지 않습니다. 책을 읽지 않을 때 틈틈이 듣고, 듣고 싶은 게 하면 책을 안 보는 거죠.

 

라디오 방송에서 제가 잘 들으려고 했던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괴로워서 속태우는 일을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 보낸 것을 진행자가 읽고, 그것에 대해 도움말을 해줄 때입니다. 이런 것은 여전히 있을 겁니다. ebs에서는 늦은 밤 12시에서 새벽 2시까지 <경청>이라고 하는 상담방송을 합니다. 다른 방송에서는 아주 잠깐 하는 것을 여기에서는 두 시간 동안 하는 거죠. 먼저 인터넷 게시판에 자기 이야기를 쓰겠죠. 방송에서는 전화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방송은 몇 번밖에 안 들어봤는데 괜찮은 듯합니다. 진행하는 사람은 날마다 다릅니다. 제목이 한자말 ‘경청(傾廳)’이라는 게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청소년과 청년들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으로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안녕, 누구나의 인생》은 괴로워서 속태우는 일이 있는 사람이 슈거한테 보낸 전자편지와 슈거가 그에 대해 도움말을 써준 것을 묶은 겁니다. 저뿐 아니라 사람들이 라디오 방송이나 이런 책으로 다른 사람이 괴로워서 속태우는 이야기를 듣고 읽어보는 것은 왜일까요. 누구한테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고 아파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기와 비슷한 일은 없을까 찾아보기도 하겠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해도 이런 글을 보면 마음이 괜찮아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군요. 그냥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힘을 받는 것은 아닌지.

 

전자편지를 받고 답장을 써주는 슈거는 작가인 셰릴 스트레이드입니다. 4000킬로미터를 걸었던 일을 적은 《와일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읽지 않았지만. 셰릴 스트레이드는 작가지 전문가가 아닙니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심리치료사나 정신과 의사는 다른 사람 말을 들어주기만 해야 하는데, 그 사람들 마음은 누가 낫게 해줄까 하는. 어쩌면 전문가가 되어가면서 벌써 나았는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는 일어날 텐데. 전문가는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관보다는 한발짝 떨어져서 봐야 합니다. 모두가 다 그러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한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보다는 바로 옆에서 말을 들어주고 함께 느껴주기를 더 바랄 겁니다. 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군요.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렵군요. 둘 다 필요하겠죠. 셰릴 스트레이드가 하는 슈거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자기 이야기까지 하면서 도움말을 해줍니다. 전자편지를 보낸 사람도 도움을 받았겠지만, 슈거도 도움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려고 했으니까요. 이야기를 읽다 보니,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괴로워서 속태우는 일이 있다 해도 글로 쓰지 못하기도 하거든요. 자기 문제를 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은 해결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슈거는 사람들이 좀 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답은 자기 안에 있으니까요.

 

우리나라와는 문화가 다르지만, 사람은 모두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누구든 자기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편지를 쓰고 슈거한테 도움말을 듣는다고 해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애써야 합니다. 뒷이야기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두 이 편지를 썼을 때보다 더 잘 살아가고 있다면 좋겠군요.

 

 

 

희선

 

 

 

 

☆―

 

무엇이 맞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시간이 말해주겠죠. 자존심 버리고 친구들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세요. 친구들에게 비친 당신 모습이 어떤지 바라보세요. 도움이 될 거예요. 사실을 안 뒤에 열을 받을 수도 있어요. 이참에 그때 받은 쓰라린 상처를 이겨낼 수도 있고요. 우정이 복잡한 것은, 아무리 친한 친구들도 가끔 우리를 아주 잘못 보거나 반대로 누구보다 정확히 보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76쪽)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한테 충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한때 존중했던 여성이 당신한테 무례를 범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그 둘의 행동에 깊은 상처를 받았음을, 이번 일로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음을 받아들이세요. 슬픔과 갈등도 즐거운 삶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세요. 가슴속 화를 내려놓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받아들이세요. 지금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하는 아픔이 언젠가 분명 사그라질 것임을 받아들이세요.  (125쪽)

 

 

…… 이상하고도 가슴 아픈 사실은 제가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기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

.

.

 

당신한테도 슬픔이 가르침을 줬습니다. 당신한테 아들은 살아서도 가장 위대한 선물이었고, 죽은 뒤에도 가장 위대한 선물이에요. 이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죽은 아들이 당신한테 가장 큰 경이로움으로 남을 수 있게 하세요. 아들을 잃은 자리에 무언가를 만들어 내세요.  (292쪽)

 

 

우리는 살고, 경험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잃습니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우리 삶에 들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걸어 들어오죠. 이런 삶에서 우리가 할 일은 신념을 지키는 일이에요. 상자에 넣고 기다리는 거죠. 언젠가 뜻을 알게 되리라 굳게 믿고, 그 평범한 기적이 우리 앞에 드러났을 때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예쁜 드레스를 입은 아기 앞에 서서 작은 일에 고마워하는 거예요.  (339쪽)

 

 

 

 

 ☆경청 홈페이지

 

*시간이 흘러서 이제 이 방송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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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06-1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타루가 나오네요,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희선 2013-06-20 01:00   좋아요 0 | URL
생방송으로 못 들어도 들을 수 있어요 다시듣기가 있으니까요 ebs에 가입하면 거의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다시듣기로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무엇인가를 설치해야 해서, 제가 그런 것을 싫어해요 하드디스크 때문에, 어쩌면 그렇지 크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보다는 라디오 방송은 라디오로 그때 듣는 게 더 좋아요) 아니면 월요일만 들어보세요 타루는 예전에 스위트피 노래 <떠나가지마>를 같이 해서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ebs 다른 방송에 나왔을 때도 한번 들어본 것 같은데 어땠는지 생각은 잘 안 나는군요 노래 말하니까 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들었습니다)

어제 새벽 1시까지 책을 보려 했는데(요새 게으르게 책을 읽고 있어서, 요새만 그런 게 아니군요) 12시 넘으니까 라디오 방송 생각났습니다(예전에는 책 읽고 나서 그것에 대해 쓰다보니 12시가 넘어서 듣게 되었던 겁니다 쓸 때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들리면 집중이 안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책을 읽을 때보다는 나아요 가끔 다른 방송 끝나고 나온 광고를 듣기도 했군요 라디오 많이 듣는 것 같은데 틈틈이입니다)
그래서 라디오 틀어서 들었더니, 책에서나 읽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나라도 정말 심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가봐요 괴롭힘 당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듣지 않아서 어떤 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대학생이고,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나봐요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이 다 낫지는 않았겠죠 그래서 그렇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방송 자주 듣지도 않는데, 어쩌다 한번 듣고서 이렇게 말했네요
청소년이 들으면 좋을 듯해요(본래 새벽 방송은 그렇던가) 아무한테도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 사람은 용기를 내서 거기에 말해보는 것도 괜찮겠죠 바로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테니까요


희선
 

 

 

 

내가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줄게. 어쩌면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는 아닌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처음에 생각한 것은 그쪽이 아니었거든. 조금 생각하다보니 마음이 바뀌었다고 할까. 사실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그렇게 잘하지 못해. 아니 무서운 이야기만 못하는 것은 아니군. 이야기를 잘 못해도 아주 가끔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 응, 지금 말하고 싶어. 들어줄거야.

 

여자는 집에서 혼자 살고 있어. 어떤 집으로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공간이 나뉘어 있는 곳보다는 트여 있는 곳인 게 낫겠다 싶었어. 그래, 여자는 원룸에서 살고 있어. 자세하게 그려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냥 상상해. 늦은 밤 아마 새벽 12시쯤 되었을 거야. 여자가 잠을 자고 있는 집 안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어. 처음에 여자는 조금 뒤척이기만 하다 다시 잠들었어. 조금 뒤 다시 전화벨 소리가 울렸어. 그때는 여자가 전화벨 소리를 들었는지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어.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다시 여자가 “여보세요.” 말하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어. “엄마.” 여자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어. “얘, 너 어디에 전화한 거야. 난 네 엄마가 아니야.” 다시 수화기에서 들리는 말은 여전히 “엄마.”였어. 여자는 아이가 조금 불쌍했지만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생각하고 끊었어. 그리고 다시 잠들었지.

 

여기까지 말해도 그렇게 무섭지 않군. 어떻게 하면 무서운 이야기가 될까.

 

다음날 밤 또 여자가 잠들고 새벽 12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어. 그리고 그 일은 며칠이나 이어졌어. 여자는 새벽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 늘 피곤했어. 그러고 보니 여자가 낮에 무엇을 하는지는 말 안했군. 나도 잘 모르겠어. 어딘가에 나갔다 오는 것 같기는 한데, 대체 무엇을 하고 오는 걸까. 혼자 먹고 살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있겠지.

 

여자가 전화를 받으면 아이는 언제나 “엄마.”만 찾았어. 여자가 가끔 무슨 말을 물어봐도 아이는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거야. 여자는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 ‘이 아이는 대체 왜 나한테 날마다 전화를 하는 걸까’ 했지. 정말 아이는 왜 여자한테 전화를 하는 걸까. 아니 이 아이는 정말 사람일까. 혹시 전화기 속에 사는 귀신 같은 것은 아닐까. 이 말을 하니까 갑자기 내가 다 무서워지네.

 

미안해. 이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어.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여자한테 더는 전화가 걸려 오지 않았어. 아니 그것보다 여자가 더는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됐어. 그 방에서 여자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거든. 여자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어. 아무도 모르게 그 집에서 떠났다, 와 어떤 힘 때문에 여자는 전화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지금은 전화선을 타고 다니고 있다, 야. 혹시 다른 생각이 있다면 나한테 말해줘도 괜찮아.

 

본래 생각했던 것하고는 다른 쪽으로 흘렀지만, 아주 조금 무섭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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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8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0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차, 영~차!"

 

지난 가을 어디선가 날아온 봉숭아 씨앗이 싹을 틔우려 하고 있어요. 작은 씨앗이라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오랜 겨울잠에서 깨선, 봄엔 계속 물과 흙에 있는 영양분을 먹었어요. 여름이 가까이 온 걸 알았는지 힘을 쓰고 있네요.

 

"봉숭아 씨앗아, 힘들지?"

 

"어! 누구세요?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도 저를 알아보다니……."

 

"니가 날아오기 전부터 난 이곳에 뿌리 내리고 있었어. 난 앵두나무야."

 

"네, 반가워요."

 

그렇게 며칠 '영~차, 영~차' 하더니 봉숭아 씨앗은 작은 싹을 틔웠어요.

 

"앵두나무 님, 이렇게 밝은 곳에서 만나보게 되니 더 기뻐요."

 

"이젠 봉숭아 씨앗이 아니구나. 봉숭아라고 할게. 나도 반가워."

 

"땅속보다 이곳이 훨씬 좋은데요. 앵두나무 님은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나요?"

 

꽃이 지고 열매도 사람들이 거둬간 뒤에 봉숭아가 나를 봤으니 그런 걸 물어볼 만도 했어요.

 

"봉숭아야, 지금은 초록잎만 있지만 봄엔 꽃을 피우고 조금 뒤엔 빨간 앵두를 만들어 내. 내 좋은 시절은 봄이야. 봉숭아 너의 좋은 시절은 여름이란다."

 

내 말을 들은 봉숭아는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어요. 잎을 크게 만들려고…. 사실 봉숭아는 자신의 좋은 모습이 어떤지 잘 몰라요. 한번밖에 볼 수 없거든요.

 

여름이 되어갈수록 봉숭아 잎이 많아지고 키도 컸어요. 그러고는 꽃봉오리가 생겼어요. 어느새 봉숭아꽃이 피려고 해요.

 

"봉숭아야, 너 꽃을 피우려고 하는구나?"

 

"네, 제가 꽃을 피우다니 정말 마음이 벅차요."

 

봉숭아는 그렇게 꽃을 많이 피웠어요.

 

어느 날 아침 마당에 나온 희진이가 꽃이 핀 봉숭아를 봤어요.

 

"엄마, 봉숭아꽃이 많이 피었어. 나 손톱에 물들여줘."

 

"그래, 오늘밤에 들이자. 꽃하고 잎 따와."

 

"응. 아이 좋아라."

 

이 말을 들은 봉숭아는 놀라서 밤이 될 때까지 울었어요. 그리고 저녁에 희진이가 꽃과 잎을 따가자, 그 아픔에 자꾸 울었어요.

 

"봉숭아야, 그만울어.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니란다. 네 몸을 잘 살펴봐. 희진이가 꽃을 다 따가지는 않았어."

 

"그러면 뭐해요? 저의 좋은 시절도 이젠 끝이어요. 흑~ 흑……."

 

"본래 좋은 시절은 짧은 거란다. 내가 이 얘길 해주면 너도 기쁠 거야. 사람들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까닭은 꿈을 이루고 싶어서야. 첫눈이 오는 날까지 손톱 끝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그러니까 넌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풀이야."

 

"정말인가요?"

 

"그래. 이제 울지 않을거지?"

 

"네."

 

아침에 희진이가 마당에 나오더니 봉숭아에게 말을 했어요.

 

"봉숭아야, 내 손톱 봐. 예쁘지? 고마워. 이게 첫눈이 올 때까지 있으면 좋겠어."

 

봉숭아는 희진이의 손톱에 들여진 것이 오래 가기를 바랐어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봉숭아는 씨앗주머니를 만들었어요. 곧 지금 봉숭아와는 헤어져야 해요.

 

"봉숭아야, 우리 이제 곧 헤어지겠구나. 난 네 자손들과 만나겠지?"

 

"저에게 해준 것처럼 제 자손들한테도 따듯하게 대해주세요."

 

"그래. 꼭 그럴게."

 

봉숭아 씨앗은 여물대로 여물었어요. 그것을 희진이가 조심조심 받았어요. 잘못하면 봉숭아 씨앗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거든요. 그렇게 날아온 봉숭아였는데 내년엔 자손을 만날 수 있겠네요.

 

 

 

첫눈이 올 때까지 희진이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을까요?

 

 

 

 

 

 

 몇해 전에 담은 봉숭아

 

 

 

우연히 다시 읽어봤는데, 조금 재미있어서

그리고 봉숭아가 자란 것을 보기도 했다

앵두나무 바로 옆은 아니지만,

예전에 앵두나무 옆에 봉숭아가 있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한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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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06-1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숭아 진짜 오랜만에 보네요. 희선님께서도 손톱에 물들이시나요??ㅎㅎㅎ

희선 2013-06-20 00:3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물들인 적도 있는데, 이제는 안 해요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만 했습니다


희선
 
독이 서린 말 사계절 1318 문고 82
마이테 카란사 지음, 권미선 옮김 / 사계절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네해 전 열다섯 살이었던 바르바라 몰리나는 ‘나 떠나요. 찾지 마세요. 바르바라.’ 라는 말을 쓴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엄마 누리아 솔리스한테 바르바라가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바르바라가 집으로 전화를 건 공중전화 박스에는 바르바라가 누군가한테 맞은 흔적과 가방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바르바라가 누군가한테 끌려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네해가 지나도록 바르바라를 찾지 못했습니다. 용의자는 있었지만 풀려났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바르바라가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사건을 맡은 형사 살바도르 로사노는 이제 정년 퇴임을 하루 앞두고 있었습니다. 엄마인 누리아 솔리스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에 빠져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다른 때는 약을 먹으며 괴로움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르바라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 에바 카라스코는 자신이 바르바라를 배신했다는 것 때문에 열아홉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로사노, 누리아, 에바 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바르바라 자신이 말하는 형식입니다. 바르바라라니 하겠군요. 네, 바르바라는 실종되고 네해가 지났지만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어느새 열아홉 살이 되었죠. 바르바라는 어딘가에 네해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바르바라를 가둔 사람은 누구인지, 바르바라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군요. 어떤 책이든 뒤로 갈수록 범인이나 사건의 참모습이 드러나죠.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기도 하군요. 저는 책 앞부분을 보다가 옮긴이 말을 조금 봐서 어느 정도 짐작했습니다. 그것을 안 보고 읽었다면 더 많이 놀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바르바라가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 알면, 누구나 놀랄 것입니다.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까닭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서 다루는 게 그게 아니기 때문에 없는 거겠죠.

 

누구보다 많이 달라진 사람은 누리아입니다. 아니, 자신의 본모습을 찾은 겁니다. 딸 바르바라를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형사 로사노와 에바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누리아는 결혼하기 전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는 남편 페페한테 기대게 되었습니다. 바르바라가 사라지고는 페페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죠. 사실 누리아가 그렇게 된 것은 남편인 페페 때문이기도 합니다. 페페는 권위주의에 사람을 지배하려 했거든요. 오랫동안 누리아의 자존감을 빼앗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누리아를 보고 바르바라는 자신한테 일어난 일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누리아가 도와줄 수 없을 거다 여긴거죠. 사실 누리아는 보고도 못 본 척하기도 했습니다. 바르바라는 친한 친구 에바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누리아는 에바가 바르바라한테서 전화가 오고, 바르바라가 쓴 휴대전화가 누구 것인지 알고는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맞서기로 한 거죠. 무엇보다 죽었다고 여긴 바르바라가 살아있다는 게 기뻤을 겁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는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닐 겁니다.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폭력에도 마음이 움츠러들지만, 말로 하는 폭력에는 마음이 꺾입니다. 행동보다 말로 하는 폭력이 더 사람을 힘 빠지게 만들지 않을까 싶군요(앞에 쓴 말과 비슷한 말).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그만둘 수도 있을 겁니다. 잘못된 말인데 그 말을 듣다보면 그 말이 맞나보다 하는 거죠. 하지만 말로 하는 폭력에 마음이 꺾이면 안 됩니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누리아가 바르바라를 구하러 가서 다행입니다. 책은 거기에서 끝나지만 바르바라한테는 앞으로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누리아가 있기에 바르바라가 그 일을 잘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리아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힘을 내는 엄마니까요.

 

이 이야기는 나타샤 캄푸쉬가 억지로 끌려가서 8년 여섯 달 동안 갇혀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더군요. 여기에 나온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딘가에 가두어두지는 않더라도. 다른 책을 말하면 어떤 일인지 알아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 일 하나만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쓰겠습니다. 《영원의 아이》(텐도 아라타)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크레이그 실비) 《살인의 역사》(케이트 앳킨스). 바로 떠오른 책은 앞에 쓴 두 권인데, 더 없으려나 하니 세번째 책이 떠올랐습니다. 앞에 쓴 세권과 이 책이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엄마입니다. 아무리 괴롭고 믿을 수 없다 해도 누리아는 참된 것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엄마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제가 쓴 것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카롤린 필립스) 나중에 이 책도 생각났습니다.  사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크레이그 실비)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독이 서린 말'에 나온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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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 무척 어지러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잠을 자기 전에 갑자기 어지러웠는데, 자고 나면 괜찮겠지 했다. 이튿날 여전히 어지러워서 하루 내내 누워 있었다. 겨우 하루 그렇게 누워 있어도 허리 아프고, 어디에 가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나온 맬컴 에드는 20년 이상으로 7483일째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맬컴은 몸무게가 엄청 늘어서 혼자 움직이지도 못했다. 630킬로그램이 넘었다. 몸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한데, 맬컴은 어땠을까.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게 정말 좋았을까. 맬컴 마음은 확실하게 알기가 어렵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맬컴이 아니고 동생인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맬컴뿐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맬컴을 사랑하는 루에 대해서도 말한다. ‘나’는 루를 사랑했다.

 

‘나’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우리가 관심을 더 갖게 되는 것은 맬컴이다. 이것은 언제나 ‘나’한테 있는 일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보다는 형인 맬컴을 중심으로 살았고, 다른 사람은 ‘나’를 ‘맬컴 에드의 동생’이라 했다. 맬컴은 좀 남달랐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처음 해 보고 싶어했다.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해도 나이를 먹으며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맬컴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여자 친구 루를 사귀기도 했지만, 그대로 일을 하고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길을 가지 않았다. 맬컴은 스물다섯 살이 된 날부터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 시간을 살아가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와 루. 맬컴이 침대에서 지내는 날이 늘어갈수록 맬컴 몸무게는 늘어갔다. 어머니는 맬컴을 돌보았다. 루는 맬컴을 사랑했지만, 자기 아버지도 사랑했기에 자기 안에 갇히려고 하는 아버지를 도왔다. 맬컴한테 해줄 수 없는 것을 아버지한테 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맬컴한테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침대에서만 살면 재미없지 않을까. 맬컴은 스스로 자신을 가둔 것은 아닐까. 평범하게 사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인데. 하긴 맬컴은 그렇게 애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했다. 그렇게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는 사람은 흔해 빠졌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나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보통 사람이 봤을 때 맬컴이 살아가는 방식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나도 재미없게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하지만 맬컴은 나름대로 재미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자기가 살고 싶은대로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어머니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좋아했다. 맬컴이 잠시 집을 떠나 있었을 때 실망스러워했다. 아버지한테는 오래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락방에서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달라졌다. ‘나’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다. 마지막에 가서야 ‘나’도 괜찮아졌다. 이런 식으로밖에 쓰지 못하다니.

 

맬컴이 침대에서 지낼 때 마음이 알고 싶었는데 그것은 끝내 알기 어렵겠다. 맬컴이 왜 침대에서 지내기로 했는지는 7483일째에야 알 수 있었다. 남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던 것도 있는데, 식구들을 사랑해서이기도 했다. 그런 맬컴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세상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는 하구나. 어쨌든 맬컴은 대단하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밀고 나갔으니 말이다. 그렇게 사는 거 쉽지 않다. 침대에서만 살지 않고도 자기 생각대로 살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랑이 우리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말 맞다. 어머니는 맬컴을 사랑해서 음식을 해주고 돌보았지만, 맬컴 몸무게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먹을 것을 조금만 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범하게 산다고 해서 진 것은 아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군한테 지는 것인가. 살아가는 것에 지고 이기는 것은 없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맬컴은 맬컴으로 살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부러운 것인지도.

 

 

 

희선

 

 

 

 

☆―

 

“지금 이 순간, 네가 남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할래? 네가 나중에 아무것도 남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너를 기억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너를 기억할 만한 무엇인가를 가진 사람도 없다면? 네가 그저 지난날에 있던 누군가와 하나도 구별되지 않는, 흔해 빠진 사람일 뿐이라면?”  (182쪽)

 

 

“나는 뒤로 물러나 앉아 현실의 삶에 안주할 수 없었어. 저축을 하고, 이런저런 청구서에 돈을 내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 이런 건 진짜 삶이 아니야.”

 

나는 형의 절박한 속삭임을 듣는다.

 

“그럼 이런 게 진짜 삶이야? 우리 가운데 누구도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지 않아. 형은 엄마를 노예로 만들었고, 아버지를 은둔자로 말들었어. 루는 내가 바란 모든 것이었어. 그런데 형 때문에 영원히 못 가질 뻔했지.”  (367쪽)

 

 

“형이 우리 가족을 망가뜨렸어.”

 

“아니야, 내가 구원한 거야.”

.

.

.

 

“나는 엄마한테 누군가를 스무해 동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렸어. 내가 엄마를 살아 있게 한 거야.”

 

“그럼 아버지는?”

 

“네가 봐.”

 

나는 기중기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아버지를 올려다본다. 아버지 얼굴에는 큰 기쁨이 넘친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아버지한테는 새로운 사진을 드렸군.”

 

“그리고 너한테는 루를 줬어.”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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