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는 '신간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독서 지도'.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이야기하다가 영화 <300>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영화 <300>부터 이야기한다. 아니 영화 <300>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교양의 기본인 고전 읽기가 그만큼 대중들의 독서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거리가 상당하다는 반증이다. 영화 <300>2도 예외는 아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 그리스 5인 로마 5인, 천병희 선생이 가려뽑은 10인의 그리스로마 영웅 가운데 테미스토클레스가 있는데,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영화 <300>2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정한 거리가 너무 멀어 늘 '안타까운'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간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를 읽는 중인데, 생각을 정리하려고 인근의 카페를 찾았다. 처음 가본 곳, 30대 중반의 듬직한 몸을 가진 청년이 주인이다. 마침 월요일이라 인근 기념관들이 휴관이기에 한가하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이어서 쓸 글감을 기획하는 동안 나는 도서관에서 열공하는 학생처럼 책들을 늘어놓고 글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카페 주인 총각과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마침 어렵게 구한 오늘자 <한겨례> 천병희 선생님 플라톤전집 출간 인터뷰 기사(탁자에 놓았는데)가 계기였다. 발뒷꿈치를 가리키며 '아킬레스 건'에 대한 이야기로 『일리아스』 얘기를 했다. 프로이트가 정립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론하는 것으로 소포클레스의 유명한 비극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를 시작했다. 늘 이런 식이다. 왜 늘 이래야만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킬레스 건'에서 시작하는 『일리아스』 얘기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저자 최혜영 교수도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 정리하자면 (한국인의) 그리스 비극 읽기에 새로운 길을 낸 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명에 포함된 단어 '깊이'는 이 책을 통독하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언질을 한다. 천병희 선생은 이번 플라톤전집 완간 이전에 그리스 3대 비극작가들의 현존하는 작품들을 완역한 세 권의 전집을 출간했다. 『아이스퀼로스비극전집』(2008년 10월), 『소포클레스비극전집』(2008년 10월), 『에우리피데스비극전집』1.2(2009년 5월)이 그것이다. 33편의 3대 그리스 비극작가의 현존 작품들을 완역한 해가 2009년인데, ‘원전번역 그리스비극전집세트’(전4권) 가격은 100,800원(알라딘 10%할인)이다. 이어서 천병희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현존 비극들을 완역한 『아리스토파네스희극전집』(전2권, 2010년 11월)도 펴냈다.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 한 걸음 더 들어간 '깊이'

이 가운데 '아리스토파네스희극'은 예외로 하더라도, 최혜영의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를 탐독하기 위한 사전독서는 험난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포개면 베개로 쓰기에도 너무 높은 네 권의 하드커버(양장본) 비극전집을 섭렵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극은 <페르시아인들>(아이스퀄로스 지음)로, 드물게 인간의 역사(페르시아 전쟁)를 다루고 있지만, 그리스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 공부는 필수다. 그런데, 그리스신화는 '그리스신화'를 다룬 저작이 명확하게 나와 있는 것이 아니고(엄밀하게는), 당시에는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나 『신들의 계보』 그리고, 비극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신화 소재들을 집대성하는 것을 통해, 그리스 신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현재도 예외는 아니다.

 

'오리무중' 그리스 신화, 작품을 통해 만나야 하는 황홀함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데, 작품 그 자체(텍스트)에 집중하는 데에 필요한 사전 독서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역사적)이고 어디서부터가 인간의 역사인지?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처럼 그리스 비극을 읽는 '그동안' 신화와 비극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앞서 거론한 <페르시아인들>(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극이 하필 이 작품, 인간의 역사를 대놓고 다룬 작품이라는 것이 역설이며 시사점이 있다)은 작품 자체의 '존재 증명'이랄까, 예사롭지 않은 숙제를 이미 던지고 있었다. 최혜영은 그리스 비극을 제대로 읽으려면('깊이') 당대의 역사와 정치사를 고려하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인데, (적어도 한국의) 그리스 비극 읽기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고 있는 것.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본이고, 투퀴디데스가 안내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정독해야 그리스 비극을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그런 길을 제시한다.

 

『역사』는 기본,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정독해야

사실, 그동안 우리의 그리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아테나이를 중심으로 하고, 곁가지로 스파르테가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정도였다는(정리하자면) 필자의 견해에 적극 공감한다. 1970년대 순수-참여 논쟁에 이어, 1980년대에는 당시의 민주화투쟁과 맞물려서 민중문학이나 노동문학이 화두었다. 한 편의 시보다 교문 앞에서 전경들과 대치할 때 던지는 짱돌 하나, 화염병 하나가 절실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문학도가 '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하여(미국의 신비평) 읽고 논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문학과 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학생이 그러했고, 1980년대 대표시인으로 분류되는 현역 시인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극심한 고뇌의 세월을 보낸 그런 시기였다. 작품을 그것이 집필된 시기의 역사적·정치적 환경 관계에서 살피는 것이 화두였고 당연시되었음에도, 그리스 비극은 관심 밖의 영역에 있었고, 문득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생산된 배경과 관련하여 살피는 최혜영 교수의 저작을 만나, 만감이 교차한다고나 할까?

 

한 편의 시와 짱돌 하나와 작품 그 자체 80년대

그리스비극을 '작품 그 자체'에 집중하여 분석하고 그 장르의 위대함을 역설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시학>)이고, <시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수사학> 천병희 번역 『수사학/시학』은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 거의 당대의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번역가 천병희 선생의 몇 안 되는 저서 중 하나는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 2002년 3월)다. 그가 독문학자이며 어느 영역보다 그리스비극이 '전문 분야'임을 확인할 수 있는 저작이다. 그리스 비극을 한국적인 정서에 입각하여 새롭게 해석한 책(연구) 하나를 꼽는다면 김상봉 교수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한길사, 2003년 1월)다.

 

교수 천병희는 독문학자, 그리스 비극은 전문 분야

『일리아스』처럼 단도직입으로 시작하면 좋으련만, 이러한 (한국의 고전 읽기) 상황 때문에 최혜영의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는 쉽지 않은 책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산물이다. 내용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관련된 비극 작품이나 역사와 신화 배경에 대해 본문에서 다뤄야 하므로, 비극 전집을 정독한 독자에게도 '새로운' 혹은 '생소한' 책이 되는 것, 관련하여 '깊이' 읽은 독자에게는 군더더기가 되는 이야기들도 포함해야 하는 의무가 얼마나 걸렸을까, 그러나 이러한 '작업' 또한 시대의 반영이다.

 

최혜영의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 사실은 개론서

이 글은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라는 훌륭한 책을 '깊이' 읽기 위해 전제된 사전독서의 지도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리스 비극 덕분에 인연을 맺은, 전남대 철학과의 김상봉 선생을 비롯, 사학과의 최혜영 교수까지 전남대학교는 드물게도 그리스 비극의 전문가 (최소한) 두 사람을 보유한 지방의 국립대학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전 번역가인 천병희(80) 단국대 명예교수. 천교수는 최근 플라톤의 전집(전 7권·숲)을 완역(完譯)했다. 2012년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향연' '파이돈' 등을 묶어 첫 권을 펴낸 후 7년 만의 결실이다. 100세 시대, 나이를 묻는 것은 숙녀에게만 실례되는 일이 아닌 시대, 그럼에도 굳이 선생의 나이를 밝히는 것은 전집이 완간된 날은 천병희 선생이 팔십 세가 되는 생신 날이었기 때문,

천병희 선생의 모든 책은 도서출판 숲으로 모여 출간되었습니다. 출판사가 80세를 맞이하시는 선생에 대한 예우로 특별한 잔치 아닌 전집 출간으로 기념한 것으로 보임, 플라톤은 80세에 생을 마감합니다. 28세에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정치 입문의 뜻을 접고 철학의 길로 들어서지요. 천병희 선생은 만 28세에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고 10년간 자격정지, 인생 일대 최대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번역은 생계를 위한 하나의 길이기도 했지요.
플라톤은 이후 50년 동안 34편 가량의 대화편을 집필합니다. 이것들 모두와 위작논란까지 있는 작품들까지, 플라톤 전집을 천병희 선생이 완역했습니다. 사건이지요. 교수 생활을 병행하지만 정년퇴임 이후 박차를 가해 이번 전집만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번역하신 세월이 50년, 전집 출간 의미를 담은 최근 인터뷰 세 꼭지를 소개합니다.(보도順)


 

"스무살에 처음 읽은 플라톤, 여든에도 여전히 그는 내 스승"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

입력 2019.05.11 03:01
http://news.chosun.com/…/html…/2019/05/11/2019051100082.html

 

 

 

 

 

 

 

 

 

 

 

 

플라톤 완역 천병희 교수 "고전 보면 시야가 넓어집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송고시간 | 2019-05-12 12:50 
https://www.yna.co.kr/view/AKR20190512022600005?input=1179m

 

 

 

 

 

 

 

 

 

 

 

"끝까지 읽도록 쉽게 번역하는데 공을 많이 들였죠”
 [한겨레]강성만 선임기자

등록 :2019-05-12 18:19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93596.html#csidxc403d9416cc63278ece39f4ca1d46c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쓰려는 이야기 제목은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두 여자 이야기'. 『일리아스』 속 크뤼세이스와 브리세이스, 처지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 두 여인에 대한 이야기. 역사만이 아니라 모든 글은 과거, 기원전 13세기(또는 12세기)에 있었다는 전쟁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례라고 하더라도 2019년 현재를, 그것도 우리나라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기획한 두 여자 이야기의 현대판은 당분간 숙성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 이야기를 하자.

 

'두 여자 이야기'는 당분간 숙성이 필요할 것
두 여인은 포로로 잡힌 상태로 한 사람은 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다른 한 사람은 맹장 아킬레우스에게 배정된 '트로피 여인'인데, 유일한 공통점이다. 하지만 두 여인의 운명은 엇갈렸다. 크뤼세이스의 아버지 크뤼세스 노인은 아폴론 신을 섬기는 사제였고, 그리스연합군을 전멸 위기까지 몰아붙이면서 딸을 구출한다. 『일리아스』 는 이처럼 극적인 순간에서 '문득' 시작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 '때문에' 피해를 보는 쪽은 자신의 트로피 여인 브리세이스를 내주어야 하는 아킬레우스이다. 어쩌다 그리스연합군 내분의 도화선이 된 브리세이스의 입장에서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자,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크뤼세이스와 브리세이스, 서사시 『일리아스』 에서 두 여인의 다른 점은 간명하다. 크뤼세이스에게는 배정된 대사가 한마디도 없다. 반면, 브리세이스는 대사가 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 왕의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현장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었을 뿐 한마디의 대사가 없다. 이처럼 『일리아스』 에서 크뤼세이스는 그냥 거기 있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브리세이스는 다르다. 『일리아스』 19권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아킬레우스는 복수를 위해 아가멤논의 화해를 받아들이고, 앞서 협상이 결렬될 때(9권) 제시한 선물이 아킬레우스의 막사에 도착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브리세이스가 있다(마치 물건처럼 취급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돌아온 브리세이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마주하고는 통곡하는데, 거의 스무 번 가까이 『일리아스』 를 읽었지만, 그때마다 '이거 뭐지?'하고 물음표를 표기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브리세이스의 발언이다.

 

"파트로클로스여, 가련한 내 마음에 누구보다도 소중하던
분이여! 내가 이 막사를 떠날 때는 그대가 살아 있었건만
이제 다시 돌아와 보니, 백성들의 지배자여! 그대는 이미
죽어 있구려. 이렇듯 내게는 불행에 불행이 겹치는군요.
나는 아버지와 존경스런 어머니께서 내게 주신 남편이
우리 도시 앞에서 날카로운 청동에 찢기는 것을 보았고,
같은 어머니께서 낳아주신 사랑하는 세 오라비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도 모두 파멸의 날을 맞았지요.
하지만 그대는 날랜 아킬레우스가 내 남편을 죽이고
신과 같은 뮈네스의 도시를 함락했을 때 나를 울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나를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의 결혼한 아내로
만들고 또 나를 그대들의 함선들에 싣고 프티아로 데려가서
뮈르미도네스족 사이에서 결혼식을 올려주겠노라고 약속했지요.
그대가 늘 친절했기에 나는 그대의 죽음이 한없이 슬퍼요."

-『일리아스』19권 287~300행(천병희, 숲, 2015년 6월, 개정판)

 

슬프다, 그대의 발언이, 그 상황이. 그리스연합군의 보급투쟁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아킬레우스였다. 아무리 당시의 해적행위가 보급투쟁이고 경제활동으로 인정되는 때라고 하더라도 브리세이스에게는 철천지 원수인 아킬레우스다. 그런데, 파트로클로스가 브리세이스에게 그의 아내가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더욱 심각한 것은 사건 당시 브리세이스는 이미 결혼한 여자였다. 그리고 세 오라비도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했고, 아킬레우스의 '경제활동'으로 가계 전체가 무너진 상태다. 더구나 아킬레우스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들이 있으며, 이 친구가 트로이아 전쟁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결혼식' 얘기까지 나온다. 공약(公約)이었을까, 공약(空約)이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희망을 준 파트로클로스의 부재를 브리세이스는 많이 슬퍼한다. 순수한 의미의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애도가 없지 않지만 자신의 희망이 물거품이 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두드러진다. 사실, 살아 있는 사람은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망자가 다른 차원의 세계(하늘나라)로 간다고 보기에, 당면한 자기 소망을 해결해주기를 장례 과정에서 '기도하듯' 바란다(이상하지만, 이것은 수 차례의 조문 과정에서 관찰한 결과에 따른 의견이다). 이러한 과정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브리세이스의 심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것은 나의 오랜 숙제였다.

 

『일리아스』 를 읽을 때마다 찍는 물음표 '이거 뭐지?'

작가 양귀자의 유명한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개정판(쓰다, 2019-04-20, 초판출간 1992년)이 출간되었다. 젊은 여성이 인기 남자배우를 납치해서 감금하고 조종하는 이 소설은 발간 직후부터 독자와 평단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양귀자의 이 장편소설은 1992년에 초판이 나오자마자 페미니즘 논란과 함께 화제가 되었고,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을 고스란히 뒤집어 학대당하고 조련당하는 남성을 보여주는, 앞선 페미니즘 소설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공격적인 방법이 화제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처음부터 소설의 흡인력은 최대치로 고조되었다. 문제는 스티븐 킹의 소설 『미저리』에서처럼 처음부터는 아니나, 여주인공 강민주가 인질로 삼은 백승하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 이 소설은 1994년에 영화로 제작·개봉되어 '선전'을 했다. 27세의 강민주는 최진실이 당대의 톱스타이자 여성들의 우상인 백승하는 임성민이 연기했다. 두 분다 고인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쨌든 전세계적인 흐름인 미투현상를 계기로 우리의 페미니즘 논의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상태인데, 이 소설은 이른바 스톡홀름 증후군을 엿볼 수 있는 상황을 포함하고 있어, 다시 읽게 된다.

 

우리의 페미니즘 논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상태

1973년 스웨덴의 스톡홀름, 가장 큰 은행에서 전과자 두 명이 여자 세 명과 남자 한 명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발생한다. 인질범은 인질의 목숨을 위협하는 동시에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긴 인질극이 진행되는 동안 인질은 인질범과 교김하고 감정적 유대감을 쌓는다. 급기야 인질은 자신을 구하려는 경찰을 적으로 돌리고, 인질범을 안정감을 주는 친구라고 느낀다. 이렇게 인질과 인질범이 서로 유대감을 느끼는 이상한 현상은 다른 사례에서도 관찰되었고,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브리세이스의 상태를 어떻게 봐야 하나, 오랜 고민을 '스톡홀름 신드롬'과 연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상은 최근에 출간된 한 번역서의 출판사제공 책 소개를 다듬은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신드롬) 이론으로 남성 지배 사회와 여자의 인질심리를 파헤치는 책, 『여자는 인질이다』(디 그레이엄,에드나 롤링스,로버타 릭스비 지음/ 유혜담 옮김/ 열다북스, 2019-03-15) 얘기다.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고대 그리스 고전 중에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만한 단골 소재는 없을 것이다. 페니미즘 시각에서 비극 한 편에 대한 재해석이 열렬히 이루어졌고, 상당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으며,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여자는 인질이다』 출간, '스톡홀름 신드롬'의 최초 사례는?
그런데 앞서 인용한 브리세이스의 발언(태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것을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봐야 하는가, 그렇다면 참 안타깝고 화가 난다. 기원후 2019년에 말이다. '트로피 아내'란 말(몇 년 전 드라마에 등장하기도 했다) 자체도 문제적이지만 아직도 이러한 성의 불평등과 불균형이 전제되어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문한 두 권의 책,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개정판과 『여자는 인질이다』를 주문하고 기다리다가 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9-05-06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에 열심히 읽고 있는 에드워드 기번의 책에서도 이 글과 관련이 깊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어서 흥미롭더군요.

포로가 된 여자들은 미인을 소유하는 것은 용맹에 대한 보상이라는 전쟁의 법칙을 감수해야 했다. 영웅들의 시대에도 이에 대한 본보기가 있었던 만큼 그리스인들로서는 불만을 드러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119쪽)
- 『로마 제국 쇠망사_제3권』

* 기번의 주석
호메로스는 자신들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죽인 자들의 구애를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마음까지 주었던 여자 포로들의 모범적인 인내심을 끊임없이 묘사한다. 이런 열정(아킬레스에 대한 에리필레의 감정)을 라신은 경탄할 만한 섬세함으로 다루었다.

timeroad 2019-05-07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기대합니다. ‘여자 포로들의 모범적인 인내심‘이라~ 흥미롭네요. 소급해서 적용한다는 것이 무리가 있을 듯하지만, 당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해요. <안티고네>를 두고 숱한 페미니즘 시각에서의 논쟁이나 연구 성과들이 그러하듯이요. 감사합니다.

ransky 2019-05-11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남자가 인질 아닌가여?
여자가 이미 인질이면 남자는 인질의 인질!

timeroad 2019-05-12 00:36   좋아요 0 | URL
일종의 죄책감도 좋은 해소는 아닌 듯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주창하면 샘 말이 맞을지도.
 

"끝으로, 무엇보다도 말한 것을 후회한 적은 있어도 침묵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는 시인 시모니데스의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23장으로 「수다에 관하여」를 마무리하면서, 앞서 수다를 줄이는 방법까지 처방했음에도 거듭 당부한다. 차라리 침묵하라는 것, 침묵 자체는 자신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법이며 경청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소통이 너무 쉬워진 요즘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이 말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로 자초한 것으로 '보인다'.


SNS시대, 정치인도 네티즌도 말 때문에 고통, 자초한 것

21장에서는 대답을 해야 한다면 간략하게 하라며, "소크라테스는 집에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수다쟁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대답을 하는지 실례를 든다. "질문에는 세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필요한 대답, 공손한 대답, 쓸데없는 대답이다."고 결론부터 제시하고서 위 질문에 대한 다른 대답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
"소크라테스는 집에 있습니까?"
첫째 간결한 대답은 '집에 없소'(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 마지못해)다. 혹은 '없소'(과묵한 라코니케인들[스파르테인들]처럼 대답하려면 '집에'도 빼라는 것. 라코니케인들은 필립보스[마케도니아의]가 서찰을 보내 도시가 자기를 받아들이겠느냐 물었을 때 큼지막하게 '아니오'라고 쓴 서철을 보냈다고 한다)다. 두 번째 공손한 대답은, "집에는 없고, 환전소에 가 있어요."라고 대답하거나 좀 덧붙이고 싶으면 "그곳에서 이방인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어요."정도다,

 

 

"소크라테스는 집에 있습니까?" 당신의 대답은?

세 번째 쓸데없는 대답은 바야흐로 수다쟁이의 몫이다.

"집에는 없고, 환전소에 가서 이오니아 출신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들을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추천했는데, 알키비아데스는 전에는 라케다이몬인들(스파르테인들)을 편들었지만 지금은 알키비아데스의 중재로 아테나이인들의 편이 된, 대왕의 태수 툇사페르네스와 함께 밀레토스 시 근처에 체류하고 있어요. 툇사페르네스가 마음을 바꾸도록 알키비아데스가 주선한 것은 추방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서죠"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폭소를 터뜨릴 지점이다. 거기 소개된 알키비아데스의 행적인데, 플루타르코스는 수다쟁이가 투퀴디데스를 읽지 않았기를 소망한다. 만약 읽었다면 책의 전8권(베개로 써도 충문한 분량의)을 단숨에 읊어 묻는 사람을 말의 홍수에 빠뜨릴 것이라고. "그러면 그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밀레토스가 함락되어 알키비아데스는 두 번째로 추방당할 것"이라고.

 

침묵이 힘들면, 간결하게 요점만 간단히, 그것이 가능하다면

「수다에 관하여」는 플루타르코스의 6편의 철학에세이가 실린 『수다에 관하여』에 또한  『그리스로마 에세이』에도 수록되어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수다의 근원이 되는 혀에 관해 '해부학적' 지식을 동원한 경구를 남기고 있다. 인체 가운데 자연이 혀만큼  울타리로 둘러친 부위는 없다는 것. "자연은 혀를 지키기 위해 그 앞에 이(齒)를 배치"(3장) 했다. 그래서 내부의 이성이 침묵의 고삐를 당기는데도 혀가 복종하지 않거나 자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피를 흘릴 때까지 혀를 깨불어 그 불복종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 '이빨을 깐다'는 말이 역설로 다가와 당황스러웠다. 또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이 어른거린다. 혀를 깨물기 전에 위아래 입술을 다물면 침묵이기에 하는 말이다. 어쨌든 '세 치 혀'라고 하는데, 각종 민원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잘못 사용하면 그 자신을 가장 먼저 그리고 치명적으로 망가뜨리는 것이 바로 혀다.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데, 세 치밖에 안 되는 짧은 혀라도 잘못 놀리면 사람이 죽게 되는 수가 있다는 뜻이다. 계량법에 따르면 한 치는 1.1930inch, 3.0303cm로(백과사전) 세 치 혀란, 10cm쯤 길이의 혀라는 뜻이다.

 

플루타르코스,  "자연은 혀를 지키기 위해 그 앞에 이(齒)를 배치"

최근에 발간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발견하고 구매했다. '돈, 사람, 기회를 끌어당기는 최강의 말습관'이란 부제를 단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3마디로 말한다』(오수향, 위즈덤하우스, 2019-04-19)이다. '3마디'라는 말이 좀 불편하다. 이 책에서 심리대화 전문가인 저자는 '세 마디'로 말하라고 주장한다. '세 마디'를 의식해서 필요 없는 말의 잔가지를 없애고, 핵심만 쏙쏙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비지니스와 연관해서 얘기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하고는 있지만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데뷔작이자 대표작 『장미의 이름』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권(희극편)이 간직한 비밀 만큼이나 '3'에는 뭔가가 있다. 어쨌든 다양한 예시와 노하우를 담은 친절한 책이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군더더기일 듯하다. 다만, '수다에 관하여'와 관련하여 이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어느 선사가 한 말이란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있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한 치도 안 되는 칼 하나만 있어도 문득 사람을 죽일 수 있지요." (13면)

여기서 살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한마디 정도의 짧은 말로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있다는 의미란다. '깨달음에는 수천 권의 책 속에 들어 있는 막대한 단어가 다 부질없다. 짧은 말 하나면 족하다.'고 부연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했으면 좋겠다.
 

말의 잔가지를 없애고, 핵심만 쏙쏙  '세 마디'로 말하시라

어쨌든 세  치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극과 극으로 다른 결과를 맞이한다. 암튼 '세 마디'와 '세 치 혀'는 뭔가 관련성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3마디'의 필자는 위 인용문이 속한 꼭지의 글 서두에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유명한 카이사르의 말을 인용하고 그 배경을 설명한다. 자기계발서의 한계는 생산자는 그렇다치고 소비자들이 늘 뭔가에 기대지 않으면 불안하게 한다는 것. 생산자인 필자가 이런 나약한 독자들의 심리를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의 마음처럼 '어여삐' 여겨주면 좋은련만. 사실 알고 보면 서양발(發) 모든 자기계발서의 원조이면서 고전 중의 고전은 『그리스로마 에세이』에 수록되어 있다. 기왕이면 고전을 읽는 동안 내 인생을 바꾸어놓을 한마디를 발견하기를. 더불어 교양도 쌓으면 좋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서양발(發) 자기계발서의 원조이자 고전, 『그리스로마 에세이』

카이사르의 유면한 세 마디도 기왕이면 『카이사르의 내전기』(김한영, 사이, 2005)나 『갈리아 전쟁기』(천병희, 숲, 2012) 등 그의 저작을 읽는 동안 발견할 수 있기를. 이것도 힘들면 그에 앞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천병희, 숲, 2010)이나('카이사르 전') 고 이윤기 선생이 기획하고 따님 이다희 씨가 번역한 『플루타르코스영웅전세트(전10권, 휴먼앤북스, 2015) 중 를 '카이사르'를 다룬 책을 찾아 읽어도 좋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3마디로 말한다』를 읽는 독자라면 어쩌면 이 책의 기획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다음 책, '명쾌하게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초간단 훈련법'이란 부제의 『3의 마법』(노구치 요시아키, 김윤수 옮김, 다산라이프, 2009)도 살피시기를.

 

문득 『3국유사』꼭지들의 마무리가 생각나서 시 한 편으로 마무리.

그제 쓴 시는
어제 지웠지요
어제 쓴 시는
오늘 지워요
오늘 쓴 시는
내일 지우겠지요
버드나무는 일 년에 한번 꽃 피워요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지워요
나도 고요히 꽃 필 때가 올까요?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가
스스로 지며 좋아서 혼자 웃겠지요.

-곽재구 신작시집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에 실린 시 「버드나무」전체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imeroad 2019-04-2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올리고 보니 『3의 마법』의 절판 확인일이 2019-04-24이라고 뜨네요.
 

 

"스퀴타이족의 왕 스킬쿠로스는 아들 80명을 남기고 죽으면서 막대기 묶음을 가져오게 했다. 처음에 그는 아들들에게 막대기를 묶인 채로 꺾어보라고 했다. 아들들이 꺽지 못하자, 그는 막대기를 하나씩 집더니 남김없이 다 꺾어버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아들들이 화합하고 뭉치면 강하고 불패이지만, 분열하면 약하고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플루타르코스(46~120년)의 에세이 「수다에 관하여」의 한 대목(17장, 46면)이다. 국내 독자들에게 그는 <영웅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천병희는 <윤리론집>에서 엄선한 에세이 6편을 번역 소개함으로써(플루타르코스 윤리론집 『수다에 관하여』), <영웅전>에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역사적 한담과 일화, 도덕적 이야기 등 빛나는 문장들이 어떻게 가능하였는지, 플루타르코스의 내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앞서 수다의 증세를 진단한 다음, 16장부터는 이를 치료하기 위한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데, 침묵에 대한 찬사에 이어 간결한 가르침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 예시하시 위해 스퀴타이족(흑해 북쪽에 살던 기마유목민족)의 강력한 통치자 스킬쿠로스(기원전 2세기 말)의 유언을 소개한다. 「수다에 관하여」에 실린 6편의 에세이는 『그리스로마 에세이』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주석을 곧바로 확인하며 읽으려면 이 책으로 읽기를 권한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우화가 있어서 『이솝우화』를 펼친다. 역시 천병희의 번역(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이솝우화』)인데, 358편 중 86번째 우화, 「농부의 자식들이 반목하다」이다.

 

 

“농부의 자식들이 반목했다. 농부가 아무리 타일러도 말로는 자식들이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농부는 행동으로 설득하기로 결심하고 자식들에게 막대기를 한 묶음 가져오라고 했다. 자식들이 시키는 대로 하자 농부는 먼저 자식들에게 막대기들을 다발로 주며 꺾어보라고 했다. 자식들은 있는 힘을 다해도 꺾을 수 없었다. 농부는 이번에는 다발을 풀고 자식들에게 막대기를 하나씩 주었다. 자식들이 막대기를 쉽게 꺾자 농부가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도 뭉치면 적들에게 지지 않겠지만 반목하면 쉽게 꺾일 것이다.”

 

이 우화의 공식 교훈을 소개하자면, "화합이 더 우세한 동안에는 불화는 쉽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란다. 필자는 이 우화를 떠올릴 때마다 한자어 '협동(協同)'을 떠올리곤 한다. 특히, '협(協)'은 열십(十) 부수에 힘 력(力) 셋이 합해진 힘 합할 협(劦)이 결합된 문자로, '셋'이란 숫자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많은 힘을 뜻하는데 3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협동의 동(同)도 심오한 뜻이 담겨 있지만 협의(協議), 협력(協力), 협조(協調) 등에도 공히 협이 쓰이고 있다. 또한 협(協)의 동자(同字)가 부수가 심방변(忄)인 협(恊)이다.

 

 

'협(協)'은 열십(十) 부수에 힘 력(力) 셋이 합해진 힘 합할 협(劦)이 결합된 문자
그런가 하면 『이솝우화』에서는 또 한 사람의 특별한 농부를 만날 수 있다. 83번 우화 「농부와 아들들」인데, 이 농부의 자식교육은 앞서의 두 사례보다 더 과묵하며 동기부여에도 훌륭하다.  

 

어떤 농부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아들들이 농사일에 경험을 쌓기를 원했다. 그래서 농부는 아들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얘들아, 내가 세상을 떠나거든 너희들은 내가 포도밭에다 감추어둔 것들을 남김없이 찾아내도록 해라.” 아들들은 포도밭 어딘가에 보물이 묻혀 있는 줄 알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포도밭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아들들은 보물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잘 갈아놓은 포도밭은 몇 배나 많은 결실을 맺었다.

 

오늘은 갑자기 작고한 H그룹의 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셋째날인 모양이다. 누가 문상을 왔다 갔다느니 그런 기사가 떠 있다. 고인이 유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모처럼 「수다에 관하여」를 읽다가 떠올랐다. 어느 집안에나 복잡한 사연은 있기 마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