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루션 SOULUTION - 정신질환 치유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다
노영범.김지영 지음 / 미다스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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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눈이 안 좋아졌다. 눈이 왜 안 좋아졌을까? 아마도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잠들 때까지 눈은 쉴 틈이 없다. 특히 컴퓨터, 운전, 독서와 같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눈은 혹사당하기 일쑤이다. 안과를 다니며 눈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건강한 생활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사람은 건강할 때는 건강의 가치를 잘 모르고, 비로소 병이 들어봐야 건강의 가치를 깨닫는다.

부천에 있는 노영범한의원의 노영범 한의사와 김지영 한의사가 공동 집필한 '소울루션'은 한의학에서 잘 다루지 않는 심리학에 관한 내용을 대거 수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의원이라 그러면 침, 뜸 그리고 부황 정도를 많이 생각한다. 일반 한의원이 정신건강에 도움을 줄 것이라 일반인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울루션'의 저자들은 인간의 몸과 영혼을 골고루 살피는 것이 영육강건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길이며, 일반 정신과에서는 이러한 총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노 한의사가 '소울루션'이란 치유법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아주 오랜 시간 '상한론'이라는 고서적을 깊이 탐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상한론'에 대해 잘 모르지만, 노 한의사는 '상한론'에서 현대인이 흔하게 걸리는 우울증, 공황장애, 조현병 등의 해결책을 발견했다고 하니 조금 놀랍게 여겨진다. 마치 종교개혁 당시에 개혁가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Ad fontes(물 근원으로)'를 외쳤던 것처럼, 노 한의사는 '소울루션'에서 '상한론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치는 것 같다.

"상한론은 약 1,800년 전인 중국 후한 시대에 기록되었습니다. 의학의 성인으로 알려진 장중경, 그리고 그의 임상 기록을 존중했던 동시대, 그리 멀지 않은 시간대 의술인들의 종합 임상 기록서입니다. 대중에게는 생소하겠지만 한의학계에서 상한론은 동의보감에 필적하는 중요한 서적입니다. 한의학의 시원으로, 한중일 의학의 뿌리입니다." (63쪽)

이 책을 읽으며, 최근에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는 지인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지인이 공황장애라는 병이 발생하기까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을 텐데, 왠지 이 책이라면 그 원인과 해결책을 정확하게 찾는 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병은 빙산의 일각이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빙산 밑의 부분까지도 때때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질병의 온전한 치유를 위해서 말이다.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는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노영범 #김지영 #소울루션 #정신질환 #미다스북스 #노영범한의원 #씨즈온 #공황장애 #우울증 #정신병 #카이노스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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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원서 전면개정판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3
퀜틴 스키너 지음, 임동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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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세계는 냉혹하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지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지난주 있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박영선 후보를 꺾고 이겼다. 결과가 발표되고 선거 직전까지 시끄러웠던 오 후보의 내곡동 의혹이 한주 사이에 쏙 들어갔다. 승리를 장담한 박 후보는 서울 시내에 '부족했습니다 감사합니다'란 현수막만 남기고 사라졌다. 앞으로 뉴스에서는 매일 오 서울시장에 관한 소식은 보도되겠지만, 박 후보의 소식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선거의 결과는 냉혹하다. 그래서 모든 정치인이 선거철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려고 하나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와 관련되어서 종종 언급되는 역사적 인물이다. 이는 그가 쓴 '군주론'이란 책 때문이다. 나 역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마키아벨리가 어떤 사람이고, '군주론'이 어떤 내용인지 그동안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는 최근에 교유서가에서 출판된 '마키아벨리'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영국의 역사학자 퀜틴 스키너가 집필한 옥스퍼드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에 속하는 책이다. 한국에서 이 책은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의 43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퀜틴 스키너는 이 책을 총 4장으로 구성했고, 1장은 '외교관', 2장은 '군주의 조언자', 3장은 '자유의 이론가', 4장은 '피렌체의 역사가'란 이름을 각각 붙였다.

마키아벨리가 사실 외교관이었던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이란 책을 쓴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정권이 바뀌면서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는데, 공직에서 아무런 자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실업자가 된 마키아벨리는 할 수 있는 게 책 읽기와 책 쓰기밖에 없었다.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인생은 참으로 단테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단테는 마키아벨리처럼 피렌체 출신의 공무원이었으며, 단테 역시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일종의 나그네 혹은 방랑객이 되었을 때 비로소 '신곡'을 집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주론'과 '신곡'이라는 서양 고전은 마키아벨리와 단테의 실직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탄생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마키아벨리가 실직 상태에서 쓴 '군주론'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퀜틴 스키너는 마키아벨리가 냉혹한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군주론'을 집필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만났던 통치자들과 정치가들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기록으로 남길 무렵 마키아벨리는 그들 모두가 한 가지,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교훈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공통적인 결점은 변화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깨닫지 못했던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성격이라는 틀에 시대를 끼워 맞추려 노력하는 대신에 자신의 성격을 시대의 상황에 맞게 적응시켰더라면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두었으리라는 점이다." (43쪽)

아마도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무조건 선하고 의로운 정책만을 펼쳐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군주가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더러운 술수마저도 기꺼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군주는 그 왕권을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생각한 것처럼, 자신의 성격에 시대를 끼워 맞추려 하기보다 시대의 상황에 자신의 성격을 적응 시키려고 하는 노력은 군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유연하지 못한 나무는 부서지지만, 유연하게 바람에 대응하는 풀들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 일단 이 책으로 마키아벨리에 대해 입문했으니, 앞으로 그의 '군주론'을 읽으며 그의 사상을 더욱더 깊이 알아보고 싶다.

#교유서가 #마키아벨리 #사회과학 #군주론 #퀜틴스키너 #정치 #옥스퍼드 #Machiavelli #카이노스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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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몽환도 스마트소설 한국작가선 1
주수자 지음 / 문학나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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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서, 스마트소설인가? 주수자 작가의 '빗소리 몽환도'는 스마트소설이라는 장르로 분류된다. 실제로 읽어보면 일반 소설보다는 가볍고, 웹소설보다는 무거운 일반 소설과 웹소설 사이에 스마트소설이 위치하는 것 같다.

'빗소리 몽환도'에는 총 열일곱 편의 스마트소설이 실려있다. 이 책의 맨 처음에 실린 '부담 주는 줄리엣'과 맨 마지막에 실린 '빗소리 몽환도'는 내용은 서로 겹치지 않지만, 소설의 주제의식은 이어진다. 두 소설 모두 소설 속 등장인물이 현실을 넘나들어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이것이 현실인지, 소설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상황 속에서 소설의 내용이 전개된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스마트소설을 다 읽으면 안개비가 내리는 어느 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보이긴 하지만 무엇인가 희미하고, 그 희미함 속에서도 어렴풋이 무엇인가 보려고 하는데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다. 이 책에 실린 스마트소설의 분량은 제각각이다. 어느 소설은 단편소설만큼의 분량이 되기도 하지만, 두 쪽으로 끝나는 초 단편소설도 있다. 이렇게 짧은 소설은 소설보다는 시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이 책의 말미에 수록된 금은돌 시인의 해설을 살펴보면 이 책의 문학적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21세기는 손안에서 변화하는 시대이다. 손 위에서 매일매일 글을 읽는 시대. 그런 시대에 시이면서 소설 같은, 시가 아니면서 소설 같지 않은, 미니픽션이라는 장르가 서서히 퍼져나가는 문학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적극적으로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실험되어야 한다. 도전받아야 하고, 더 실패해야 한다. 이러한 실험이 운동성을 얻을 때, 독자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66쪽)

이 책을 다 읽고, 이토록 짧은 소설이라면 나도 한번 나중에 스마트소설 집필을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도전하는 것이라면, 스마트폰의 액정을 직접 터치하며 스마트소설을 한번 써봐야겠다. 과연 내가 스마트소설을 쓰게 된다면 어떤 내용의 소설이 만들어질지 나조차 궁금하다.

#스마트소설 #주수자 #빗소리몽환도 #금은돌 #단편소설 #미니픽션 #소설가 #한국문학 #카이노스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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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 어슬렁어슬렁 누비고 다닌 미술 여행기
류동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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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유럽에서는 '그랜드투어'라는 여행이 부잣집 자제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만약 '그랜드투어'를 떠나게 되면, 부잣집 자녀와 가정교사가 여행 내내 함께하고,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문화와 예절을 배웠는데 그 기간이 수년에 이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그랜드투어'의 최종 목적지는 이탈리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랜드투어'의 최종 목적지로 그들이 이탈리아를 가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 인류 역사 최고의 문화유산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에 사는 우리로서는 유럽은 어딜 가나 유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당시 유럽인은 이탈리아야말로 유럽의 유럽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태어난 부잣집 자녀는 이탈리아로 '그랜드투어'를 떠나는 게 그들에게 최고의 자랑이자 최고의 배움이었을 것이다.

미술 저널리스트 류동현 작가의 '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라는 책은 그의 이탈리아 그랜드투어 답사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6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와 같은 유명 도시를 거점으로 주변 도시까지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의아한 건,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 로마와 관련된 분량이 책에서 가장 적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미 한국 출판계에 로마를 소개하는 책이 많이 출간되었기에 저자가 일부러 로마와 관련된 내용은 최소한으로 소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미술 저널리스트로서, 이탈리아의 각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에 있는 미술작품이나 혹은 그 도시와 연결된 미술작품을 이 책에서 자세하게 소개한다. 놀라운 점은 그가 단순히 미술에만 해박한 게 아니라 영화와 음악과 관련돼서도 상당히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 들어보는 이탈리아 도시 이름인데, 저자는 이 도시에서 어떤 영화가 촬영되었고, 도시의 어떤 건물이 영화에서 나왔다는 식으로 도시를 소개한다. 아마도 저자는 미술광일 뿐 아니라, 영화광이 아닌가 싶다.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방랑이 아닌 다음에야 여행의 장소를 정할 때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다양한 경험 등이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책, 영화, 음악 등이 여행의 행선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영화를 본 후 여행지에 대한 동경이 생기곤 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보고 사막의 별을 보겠다고 이틀간 밴을 타고 가는 고생을 하고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요르단의 페트라를 찾은 것은 모두 영화가 나에게 준 여행의 '동인'이었다." (218쪽)

저자의 말처럼 일상에서 여행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음악을 듣는 것일 수 있다. 내가 접한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이 내가 나중에 떠날 여행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당분간 이탈리아로 여행을 갈 계획은 없다. 원래 작년에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었는데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되어서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나는 이스라엘로 가장 먼저 가고 싶다. 혹시라도 내가 나중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게 될 일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이 책과 예전에 읽은 '내 손안의 로마'라는 책을 다시 살펴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나도 이탈리아로 그랜드투어를 떠나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가져보고 싶다.

#류동현 #어쩌다이탈리아미술과걷다 #교유서가 #교유당 #Italy #피렌체 #그랜드투어 #미술 #로마 #미술관 #rome #카이노스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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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태의 세계 - 의지와 책임의 고고학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박성관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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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가을에 SBS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청춘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드라마 제목에 브람스라는 음악가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청춘 음악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에 자극적인 내용이 별로 없어서인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다. 음악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고민과 갈등이 다분히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우연찮게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가 쓴 '중동태의 세계'를 읽게 되었다. '중동태의 세계'가 쉬운 철학 책은 아니었지만, '중동태의 세계'를 통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등장인물을 능동태와 수동태 그리고 중동태라는 새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박준영, 이정경, 채송아를 '종동태의 세계'로 바라보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피아니스트 박준영: 드라마에서 그는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 2위를 차지한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정경, 채송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재능과 명성을 가진 인물이다. 일견 그는 능동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에게 피아노는 그저 생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계시지만 항상 가난에 쪼들렸던 그는 일종의 소년 가장으로서 가정의 생계를 어깨에 짊어지고 피아노를 쳤다. 쇼팽콩쿠르에서 2등을 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피아노 공연을 한 이유도 돈 때문이었다. 무수한 피아노 공연에 지쳐 국내에 귀국해서 잠시 안식년을 가져보지만 이곳도 그에게 쉼을 주지 못한다.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위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도전했지만 지도 교수와의 불화로 콩쿠르 도전이 쉽지 않아졌다. 그는 과연 능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바이올리니스트 이정경: 드라마에서 그녀는 경후문화재단 이사장의 손녀로 등장한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부지처럼 보이는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지고 싶어 한다. 박준영과는 학창 시절부터 동문으로서 사랑과 우정의 경계에서 살아갔다. 경후문화재단이 박준영 본인뿐 아니라, 그 가정의 금전문제를 종종 해결해 주었기에 그녀와 박준영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얽혀있기도 하다. 그녀는 유무형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기에 그것을 넘어서는 삶을 살지 못한다. 재단 이사장인 할머니는 자신의 뒤를 이어 재단 일을 하라고 하지만, 그녀는 바이올린을 계속 연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녀의 커리어는 이미 꺾인지 오래다. 그녀는 과연 능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바이올리니스트 채송아: 그녀는 드라마에서 박준영과 이정경과 비교했을 때 가장 늦게 음악의 길로 접어든 인물이다. 그녀는 서령대(아마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뒤늦게 4수 끝에 서령대 음대에 들어갔다. 재능에서는 박준영과 이정경과 비교했을 때 많이 뒤처지지만, 음악 자체를 사랑하는 열정만큼은 이들을 압도한다. 문제는 그녀가 서령대 4학년으로서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진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정작 졸업 이후에 그녀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설자리가 전혀 없다. 지도 교수와의 친분으로 대학원 진학을 꿈꾸었지만, 갑작스럽게 교수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대학원 입학도 어려워졌다. 그녀는 '바생바사'의 '바순이'지만, 그녀는 아직 아마추어에서 프로의 단계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과연 능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실상 드라마에 등장하는 박준영, 이정경, 채송아 그 누구도 완전히 능동적이거나, 완전히 수동적으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 그들은 때때로 능동적이며, 때때로 수동적이다. 이는 그들이 사는 세계가 바로 중동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완전히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항상 주변 환경에 끌려다니는 것도 아니다. 중동태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능동에 더 가까운 삶을 살기도, 수동에 더 가까운 삶을 살기도 한다. 중동태는 영혼의 중력과 같다.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은 곧 완전히 강제된 상태로 추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동태의 세계를 살아간다 함은 아마도 그러한 것이리라. 우리는 중동태를 살아가면서 때로는 자유에 가까워지고 대로는 강제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 자신을 사유할 때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갱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유 방식을 갱신하는 것은 용이하지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는 중동태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조금씩 그 세계를 알아갈 수가 있다. 그리하여 조금씩이긴 하지만 자유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다. 이것이 중동태의 세계를 앎으로써 얻어지는 미미한 희망이다." (350쪽)

나처럼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 '중동태의 세계'를 끝까지 읽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했지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혀 모르고 중동태라는 문법을 처음 배우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 책을 읽다가 초반에 포기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은 초반의 여러 난해함과 복잡함을 뚫고 끝까지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중동태라는 개념을 통해 나의 문제와 남의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적용해 아내와의 갈등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중동태라는 개념에서 나의 한계와 아내의 한계를 직시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갈등은 때때로 명확한 한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한계 그리고 타인의 한계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한계를 아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아는 것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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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태 2021-07-24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진 비평 잘 읽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350쪽의 인용의 첫 대목이 꽤나 중요한 대목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