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 왕자 ㅣ 문지아이들
이경혜 지음, 민혜숙,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8월
평점 :
나는 <어린 왕자>를 두 번인가 읽었다.
읽을 때마다 뭔지 끌리고 신비로웠지만, 이상하고도 어려웠다.
그래서 '문학과 지성사'에서 그림 대신 자수를 넣은 <어린 왕자>가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내용보다 책의 외모에 더 마음이 끌렸다.
책을 읽기 전에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북트레일러를 먼저 보았는데, 번역본이 아니라 어린이도 읽을 수 있게 원본을 토대로 새로 쓰인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를 쓰신 이경혜 작가님이 글을 쓰고 민혜숙 작가님이 자수 작업을 하셨는데 두 분은 여고 동창이라고 한다.
특히 민혜숙 작가님은 의뢰를 받고 작업을 시작하신 게 아니라 본인이 좋아서 어린 왕자 그림으로 자수를 놓기 시작하셨고 완성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 자수 그림책 <어린 왕자>는 페이지마다 한 땀 한 땀 놓인 자수만으로도 벅찬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읽어감에 따라 목덜미가 찌릿하고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전율이 느껴졌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 한 비행사 앞에 나타난 작고 이상한 아이.
그 아이는 모두가 모자로만 봤던 비행사의 보아뱀 그림을 한 번에 알아본다.
홀로 살던 작은 별에 장미 한 송이를 남겨두고 떠나왔다는 어린 왕자는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 바오밥나무가 마구 자라서 별을 뒤덮지 못하도록 양이 어린 바오밥나무를 먹을 수 있게.
해 지는 걸 좋아하는 어린 왕자는 사실 많이 슬펐던 거였다.
왕자의 조그만 별에서는 의자만 옮기면 언제든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흔네 번이나 본 적도 있었어.
슬플 때는 해 지는 게 보고 싶어지니까......"
"그날 넌 그렇게 많이 슬펐던 거야?"
늘 그랬듯이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p. 15)
어린 왕자가 만난 이상한 어른들은 이 세계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길들이는 것을 알려주는 여우의 말이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저길 봐!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안 먹으니까 밀밭을 봐도 아무것도 안 떠올라. 하지만 넌 금발이니까 네가 날 길들이면 금빛 밀밭만 봐도 네 생각이 나겠지.
그러면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만 들어도 좋을 거야. (p. 45)
시간을 정해 놓고 오는 게 더 좋아.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다가 4시가 되면 안절부절못할 거야.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난 몇 시에 마음을 준비할지 모르게 되잖아?
의식이 필요한데 말이야. (p.46)
어린 왕자를 별로 보내준다는 뱀의 말은 믿어도 될까?
어린 왕자는 무사히 별로 돌아갔겠지?
하릴없이 피어오르는 걱정과 슬픔이 몸과 마음을 온통 감싼다.
어린 왕자는 여러 번 말한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
그래. 이상하지? 하지만 난 이제서야 네가 만나고 싶은걸.
어른들이 다 똑같은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나를 만나러 와줘.
한껏 긴장하고 몰입하게 만들어 준 것은 이경혜 작가님의 문장의 힘인 듯하다.
어린이도 읽을 수 있게 만들었지만 어른들도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분명 인생 그림책을 만나게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