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까 했더니 아직 1라운드 - 미래가 두려운 십대에게 챔피언이 건네는 격한 응원 십대를 위한 자존감 수업 2
김남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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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대를 위한 자존감 수업 시리즈의 두번째 책이다. 진짜 십대들에게 이야기하듯, 강연하듯한 문체로 써있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투로 말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이가 된 입장에서는 어색했다. 어, 뭐야. 대뜸 말부터 편하게 하는데 꼰대아닌가. 요즘은 초면에 반말하면 노인에게도 무례하다고 하던데 설정 잘못 잡은거 아닌가, 싶었다. 텔레비전 채널이 세 개 밖에 없었다는 말로 시작하는 내용도 그랬다. 라떼는 말이야, 하고 시작하는 얘기가 얼마나 십대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싶기도하고 그래도 이비에스 포함 다섯개는 있었던 것 같은데 싶은 의문도 들었다. 무슨 얘기를 할까? 이 얘기들이 십대들의 자존감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뜯어보듯 책을 읽었다.


 어떤 핵심어가 유행을 하기 시작하면 조금 지겨워진다. 요즘 유행하는 MBTI도 좀 질렸다. 이 역시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시간이 더 지나고나면 혈액형이나 별자리같은 것처럼 맹신할만한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퍼스널 컬러에 대한 자료가 쏟아지던 때가 지나고 퍼스널 컬러에 의존하지말고 입고 싶은, 쓰고 싶은 색을 자유롭게 쓰면서 살자는 말이 나온 것처럼. 자존감이라는 말도 사실 그렇다. 특히 자존감을 좀 과하게 해석해서 적용하는 경우를 몇 번 보고나니 갑자기 유행한 자존감이란 말이 오히려 그걸 의식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쪼아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졌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자존감이 부족하다, 자존심을 자존감으로 착각한다, 같은 평가를 하기도 하고.


 다행히 저자의 얘기는 재밌다.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같은 말을 분위기잡고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살아보니 이렇더라.는 말을 최대한 진솔하고 경쾌한 어조로 전한다. 게다가 범상치않은 삶을 살아온 탓에 흔한 자기자랑으로 들릴 법한 과거사도 꽤 흥미롭다. 저자가 소년원, 이제는 00정보통신학교로 불리는 청소년 교화기관의 강사로 많이 강연하러 간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한껏 거친 청소년들의 외모에 밀릴 것 같지 않은 체격과 외모도 장점이 될 테고, 프로레슬링 선수라는 직업도 관심을 끌만한 요소일 것이다. 게다가 잠재적 고객들을 향한 확실한 서비스 마인드까지 갖춘, 시원시원한 솔직함이 읽으면서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동쪽으로 달리고, 언박싱을 좋아하고, 프로레슬링 경기를 하는 것을 행복으로 꼽는 40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솔직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주책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스파링을 하다 십대에게 얻어맞고, 상대를 얕잡아봤다가 창피만 남은 일들은 주변의 누군가에게 있었다면 그런 위험한 일 그만하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가 드러내는 이 자기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십대들에게는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졌다. 처음 이 사람 꼰대아닌가 싶었던 의심이 옅어지면서 점점 더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가드 올리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가라고만 할 것 같다가도 청소, 요리,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꼼꼼함에 감탄했다.


 저자의 이력만큼이나 독특한 분위기의 책이었다.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검색해봤더니, 확실히 강렬한 인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강조했던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말빨과 문장력에 대한 언급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가 갔다. 프로레슬러로 챔피언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는 취미를 즐기는 거친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20년 동안 방송일을 할 정도로 말을 잘하고, 책도 쓸만큼 글도 잘 쓰는 것을 직접 보니 신기했다. 이런 사람들은 뭐라도 했을 법한,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인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네가 원하고 도전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증인처럼도 보였다. 특히 남자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고 재밌게 읽을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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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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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했다. 생각해본 적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 반가웠다. 아는 것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도 좋아하지만, 시선을 완전히 바꿔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나면 마음이 들썩인다. 작가 이름을 다시 잘 살펴봤다. 언제고 이 이름으로 다른 책이 나왔을때 놓치지 않고 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를 때는 막연히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인물이 나오겠거니 했는데, 그동안 봐왔던 심리와는 결이 달랐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타인에게 참 무례하구나, 삶이 계속된다는 것에 대해 한번도 이해한 적이 없었구나 싶었다. 누구에게라도 말해주고 싶었다.

 

 책을 읽는 내내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 책속의 원이를 보면 그 생각을 풀어내는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십팔년 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너. 그때의 너를 떠올린다. 원이를 읽으면서 너를 겹쳐보는 일이 멈춰지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버텼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이렇게 또 너를 떠올려도 괜찮을까, 너 뿐만 아니라 모든 불운한 사고를 겪어낸 사람들은 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걸까. 그런데 그때는 나도 어렸고, 이런걸 몰랐었다. 알았더라면 어쩌면 너에게 '마스터 키'를 건네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제고 끌어올려진다는 것, 인터넷에 박제된 얼굴로 남아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들은 인터넷 안의 기록물로 남아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게 참 끔찍하게 여겨진다. 때때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그날을 품고, 너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이제는 이런 생각조차 다시는 떠올리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유원'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보다, 어쩌면 그게 가장 예의바른 태도일지 모른다는. 사진 속에 남은 익숙한 얼굴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 책을 전해주고 싶다. 기억하니. 우리 잊자, 하고.

 

 내가 떠올리는 과거의 일과는 별개로 소설 속 원이가 겪은 화재는 몇년 전 의정부에서 발생한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다른 사건들도 많았을텐데, 왜일까 읽다가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그러다 문득 작가는 어떻게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까. 왜, 무엇이 계기가 되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다 읽고 난 뒤에도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은 이야기는 오랜만이다. 언제고 이 질문들의 답을 들을 수 있는 작가의 말을 읽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 기왕이면 창비의 계간지에서 백온유의 인터뷰를 보게 된다면 좋겠다. 

 

 종종 청소년 소설을 찾아읽고는 하는데, 청소년 소설을 읽을때면 다른 소설들을 읽었을 때보다 더 자주 감동을 받는다. 정신연령이 청소년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아니면 청소년 소설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같은 것- 계몽소설같은 의미전달이 취향을 저격하는 걸까, 그 애틋한 한뼘이 성장하는 순간들이 마음을 울린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뒷면에 쓰인 '위저드 베이커리, 완득이, 아몬드'를 잇는 소설이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몬드'만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유원'이 이들을 잇는 소설이라면 기꺼이 '아몬드'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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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1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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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냥의 이름을 보며 까만 털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라서, 깜냥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덧붙인 설명이 있지만 깜냥의 행동을 보면 '깜냥'이라는 말이 어째서 붙었는지 깨닫게 된다. 잘은 쓰지 않아도 그런 말이 있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린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짧은 이야기들이 여러 편 이어져 있기 때문에 동화로 읽기에도 좋지만, 깜냥의 이야기를 만화로 보게 된다면 또 좋을 것 같다. 가제본을 미리 받아 읽으면서 다양한 색채가 들어간 삽화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정식 출간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번에 읽은 내용은 깜냥이 어떻게 아파트 '고양이 경비원'이 되었는지에 대한 도입부 정도 되는 것 같다. 앞으로 보여줄 활약상이 더 기대되는 좋은 시작이었다. 아주 오랫만에 동화책을 읽은 것 같다. 다만 경비 아저씨가 고단한 생활을 하셨던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이야기 곳곳에서 밥 한끼 제대로 드실 수 없을만큼 바쁘고,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모습을 보인다. 깜냥이 귀엽고 또 기특한만큼 동화를 읽은 아이들이, 읽어주는 어른들이 주변의 이웃들에게 배려있는 모습을 가져야 함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아파트에는 워낙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깜냥이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궁금해진다. 세상에,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라니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우리 아파트의 현관과 엘리베이터에 잔뜩 붙은 안내문들을 떠올린다. 물론 대부분의 날들이 별일없이 지나가지만, 안내문마다 붙은 공고와 협조사항들의 내용은 평화롭지 않다. 담배를 피지 마세요, 층간소음을 조심해주세요, 심지어 새와 고양이들의 먹이를 주지 마세요. 라는 내용도 있다. 깜냥이 본다면 얼마나 상처받을까 싶은 내용아닌가.

 

 창비의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인 '고양이 해결사 깜냥'이 많은 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내용도, 생각도 넓혀줄만한 좋은 동화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길고양이들에 대한 시선도 개선시켜줄만한 내용도 담았으면 한다. 나아가서는 더 고양이다운 캐릭터로, 더 고양이다운 묘사가 더해진다면 펭수를 잇는 좋은 캐릭터가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이어질 깜냥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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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마음 시툰 : 안녕, 해태 1 청소년 마음 시툰 : 안녕, 해태 1
싱고(신미나) 지음 / 창비교육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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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와의 이별이 '손을 놓친 것 같'다는 표현을 본 순간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던 책장을 덮었다. 어쩌면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마음 시툰'인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울리는걸까. 잔디가 예지와 처음 나란히 앉은 학교 운동장 벤치에 등나무가 얽혀 있는 모습에 나의 고교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등나무가 있는 쉼터가 있었다. 친구들과 무슨 일만 생기면 그 자리에 모여 놀았던 기억이 난다. 등꽃이 예쁜 줄, 좋은 향기가 나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도 등나무를 보면 항상 반갑고 친근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때의 기억 덕분이다. '안녕, 해태'가 더욱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가는 인물들이 많았다. '문학 덕후일 뿐 뭐가 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는 잔디는 꽤 공감가는 친구다. 금사빠 기질은 나와 전혀 다르지만, 소녀의 마음은 그럴 수도 있는 법이니. '수학 8점 받은' 잔디의 아빠는, 내 점수가 결단코 더 높지만, 나와 영혼의 쌍둥이 같은 인물이기도 했다. 잔디는 20년 후 자신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했지만, 나는 이제 더이상 궁금하지 않다. 물론 20년 전의 내가 생각했던 그런 모습은 전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수학과는 사이가 별로인 문학 덕후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에게는 미래가 두렵고 궁금하겠지만, 어떻든 자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조금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이 건네는 위로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나이를 먹으면 친구 사이의 일은 하나도 어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렵다. 매일 만날 수 있을 때는 오늘 마음이 상해도 내일 풀릴 수 있는 '다음'이 당연하게 있었다. 서로 상처도 주지만 힘든 일도 가감없이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순수함도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의 세계가 굳어지면서 친구를 대하는 일도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일이 맍아졌다. 쪽지를 적어 보내고, 공통점 한두개를 찾아, '우리 친구할래?' 하는 말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도 어려워졌다. 망원동 고양이들과의 첫만남에서 해태가 힘들어했듯이, 나와 다른 사람과 굳이 맞춰가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지는 일이 많아졌다. 신경림 시인의 '동해 바다-후포에서' 시를 읽으며 잠시 마음을 다듬었다. 책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시들이 참 좋았다.

 

 시와 함께하는 책이라 그런지 윤동주 문학관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멋진 장소니 한번쯤 그곳에 발걸음을 해보길 추천한다. 책을 읽을때는 어쩐지 도드라지는 흐름인 것처럼 보이지만 굳이 소개되어야 할만큼 의미있는 공간이다. 시를 감상하는 것이 어쩐지 어렵게 느껴져 시를 일부러 읽는 일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할텐데, '안녕, 해태'는 만화를 보며 시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아직 1권만 읽어보았는데, 앞으로 잔디가 겪게 될 일들이 어떨지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게 끝났다. 예지는 과연 어떤 아이일까! 언뜻 보이는 예지의 과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잔디는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나갈까. 해태는 무사히 어른 해태가 될 수 있을까? 이어질 2권과 3권의 내용이 기대된다. 연령을 떠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무해한 만화를 만나게 된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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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냄새
박윤선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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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에 여름이면 수영장에 갔다. 가서 수영을 배운 것은 아니고 그저 물을 휘다니며 놀았을 뿐이라, 아직도 수영은 커녕 잠수도 못한다. 수영을 배우러 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수영장엘 자주 갔냐하면, 그때는 그랬다. 동네 아이들끼리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노올자'하고선 오늘은 앞산으로 오늘은 수영장엘 오늘은 골목에서 이리저리 어울려 놀았다. '수영장의 냄새'를 보고선 그때의 물의 일렁임, 수영장에서 놀고 나면 꼭 먹었던 컵라면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수영장의 냄새'에 그런 유년의 반짝임이 담겨있는걸까 생각했는데, 들여다 본 물속은 생각보다 깊고 어두웠다. 그때의 자신을 '국민학교 이학년'으로 소개한 것으로 보아 어린시절이 나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때였던 것 같았는데 민선의 세계는 성숙했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 나는 어떤 집에서 사는지 신경이나 썼던가, 싶었다. 분식집 가서 밥도 혼자 잘 사먹고 학원엘 가는 모습이며, 꽤 조숙한 관계망을 보며 민선이는 혹시 서울에서 살았던걸까 싶어졌다. 서울 출신들에 대한 편견이 조금 있나보다.

 

 아홉살 무렵에 있던 일을 떠올려보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일학년 때까지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학교를 가느라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은데, 이학년은 그런 기억도 없다. 다만 시험을 잘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다. 일학년 때는 학교를 다닌다는 것에 적응하느라 시험같은 것을 봤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데, 그 무렵에 남들보다 잘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실망감의 기억이 난다. 민선이 수영장엘 가기 싫어하는 이유가 공감됐다. 지금은 그럴수도 있지, 하지만 그때는 그런게 창피하고 싫었다.

 

 흔히 어린시절에 겪은 일들은 금방 잊거나, 잘 이해하지 못해 상처가 덜할거라 생각하는데 때로 어떤 상처들은 온 시간을 들여 깊게 자리잡는다. 민선이는 신발을 버린 일, 친구들과 병원 놀이를 한 일들도 상처로 남아있겠지만, 시간이 흘러 인경이가 전학 간 이유에 대해 이해하게 됐을 때 그때도 상처를 받게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저질렀던 잘못들을 떠올려본다. 정말 잘못이 잘못인줄 모르고 행동했을까, 그때도 사실 아주 조금은 하면 안되는 행동에 대한 구분이 있었던 건 아닐까.

 

 뉴스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볼 때 저렇게 어린애들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생각을 했을까 싶은 사건들이 나온다. 아이라서 어른과 같은 생각을 기준으로 행동을 판단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타인에게 자신이 겪고 싶지 않을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정말 잘잘못을 몰라서 장난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생각이 미친다. 그 아이들이 모방하는 세계가 더욱 나빠지지 않기만을 소망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을까, 같은 비관적 생각을 하게 된다. 매일 들려오는 점점 더 나쁜 소식들에 지칠 때면.

 

 아직도 수영장에서는 소독약 냄새 같은 것이 날까? 얼마 전 수원을 갔다 길을 걷던 중 작은 수영장이 있는 센터를 들렀다. 센터 안에 수영장이 있는 줄은 몰랐지만 어디선가 물비린내 같은 것이 나서 인공폭포 같은 것이 있나, 목욕탕이 있나 싶어 둘러보니 레인이 몇 개 안되는 수영장이 있었다. 최근에는 호텔의 수영장 같은 곳 말고는 가본 적이 없어 관념 속의 수영장 다운 수영장을 본것이 오랫만이었었다. 여전히 그곳에는 수영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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