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에게 신이라도 내렸던가 싶었다. 코로나 19와 유사한 배경의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쓸 생각을 했을까. 40년만의 잭팟이 터지다니. 그리고 중국의 어느 미친 과학자가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우한에서 바이러스를... 하는 음모론도 떠올렸다. 세상에 그렇지 않고서야 지역까지 콕 찝어 우한일 수가 있단 말인가. 책에서는 염력도 나오고 그러니 나의 음모론도 영 허무맹랑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막상 책을 손에 들고 나니 묵직한 두께감에 이걸 언제 다 읽나 걱정이 됐다. 하루이틀 덮어둔 책을 쏘다보다가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니, 순식간이었다. 술술 읽혀서 1/4 정도 읽었을 때까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읽었다. 많아보였던 분량이 아무것도 아니게 생각됐다. 무엇보다 재밌었다. 단지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예견한 내용이 있다는 점만으로 역주행을 할 수 있었던 책은 아니었다.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 위한 머리싸움이 필요없이 몰입해서 읽으면 될 뿐이었다.

 

 초반에 깔리는 으스스한 내용이 공포물인가 싶을 정도로 긴장감을 주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막힌 구석 하나 없는 빠른 사건 전개를 시원시원하게 따라가면서 오는 기분 좋은 스릴만 남는다. 계속 무서우면 밤에 불을 켜고 자려고 했는데 다행이었다. 크리스티나가 악몽을 꾸는 부분들은 먼 옛날 즐겨읽었던 '퇴마록'의 한 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심약한 이를 마음 졸이게 했던 그 유명한 책의 국내편에 '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 * 의 내용이었다. 아마 추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다소 허무맹랑한 설정이라 여길만한 부분들은 있지만, 그래도 매력이 더 많은 책이다. 강점 중 하나는 인물이었다. 책 속의 인물들이 복잡하거나 이중적인 면 없이 선악이 잘 드러났다는 점이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저 단순하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준다. 각 인물들에 맞는 결말을 갖게하는 권선징악적 구조도 좋았다. 세상이 험한데 소설 속에서라도 나쁜놈은 죗값을 치뤄야 제 맛. 주인공인 크리스티나가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점도 40년이 지나서도 수동적이지 않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  

 

 다만 꽤 마음에 들었던 시원시원한 전개는 장점이면서도 약점이었다. 안그래도 어려운 상황에 누구 한명이 말도 안되는 방해꾼 역을 해서 일을 꼬거나 하면 답답해서 하차하고 싶은 성질머리를 가졌는데, 이를테면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상황에서 안전한 쉘터에 잘 피해있는데 밖에서 누가 문 열어달랜다고 문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도대체 왜 문을 열어주는가, 문 열어주면 꼭 감염자 한명이 딸려 들어와서 다 죽던데 영화도 안보나 싶은 울화가 치밀어서 그만보고 싶어지는데- 그런 전개가 없다. 다른 작품들도 이렇게 시원시원하다면 찾아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너무 시원시원하게 단 4일만에 거대비밀기관의 프로젝트를 다 파헤쳐버리는 과정이 아쉽기도 했다. 대니 없었으면 어쩔 뻔 봤는가. 모든 시작과 끝이 대니에서 대니에게로였다. 크리스티나와 엘리엇은 이용당했다!가 학계의 정설. 그리고 빠른 전개와 마무리가 어떤지 아쉬운 뒷맛을 남겼다. 이왕 분량이 400쪽을 훌쩍 넘길 것이면 500쪽이 넘든 600쪽이 돼서 두권이 되든 확실한 마무리를 보여줬어도 될텐데. 뒷심이 부족하다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궁금함이었던 우한 폐렴에 대한 내용이야 큰 비중이 없이 흘러가듯 언급됐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로빈 쿡의 '돌연변이'라는 책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 책도 책장이 어찌 넘어가는지 모를만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니 '어둠의 눈'을 재밌게 읽었다면 구해서 읽어봐도 좋겠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읽었는데 기대 이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동안 읽어 볼 교양서로 추천해본다.

 

*바흐 칸타타1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를 많이 했다. 띠지에 써 있는 문구가 심상찮아 보였기 때문에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었다. 막상 읽어보니 나름대로 재미있기는 한데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과잉됐다 해야할까, 아 조금 아쉽구나 싶었다. 세계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이라고 되어 있어서 19년도에 어떤 책이 대상을 받았는지 찾아봤는데, 10편의 후보작들 중에서 침입자들이라는 제목을 찾을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참이다. 원래 제목은 달랐던가. 300쪽 조금 넘는 분량인데 금방 읽힌다. 평소에 책을 잘 안 읽는 편이라도 쉽게 읽을 것 같다. 장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2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을 정도고 장르소설 느낌이 좀 난다. 자발적 격리에 들어간 책임감있는 성인들이 한가할 때 읽기에 좋겠다.

 

 책에서 아재느낌이 물씬 났다. 영화 '이퀄라이저'를 감명깊게 본 아저씨가 꿈궈볼만한 내용이랄까. 읽기 전에는 평범한 택배 기사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를 배정 받아 택배를 배달하며 벌어지는 의도치 않은 사건들이란 느낌의 평범한 코믹스릴러나 드라마를 생각했는데, 택배 기사가 너무 능력치 몰빵 작가의 최애캐라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읽고보니 "택배가 도착하는 순간,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는 띠지의 문구가 좀 불만스러웠다. 행운동 사람들 인생은 택배 오기 전에도 뒤틀려 있었던 거 같은데, 낚인거 아닌가. '이미 뒤틀린 인생, 택배가 끼얹어졌다'고 해도 될만하다.

 

 작가가 사랑한 주인공을 나도 사랑하지는 못했다. 약간 촌스러운 감성이라고 해얄까, C*감성영화 느낌이랄까, 소설이 당년정 배경음악과 함께 석양으로 사라지는 사나이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주인공 일명 행운동 내지는 K는 말도 없고 웬만한 일에는 별 내색하지 않고 무심한 듯한데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의문의 사나이로 그려진다. 아는 것도 많고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묵묵한, 그러나 할말은 할 줄 알고 필요하다면 주먹도 쓸 수 있으나 자제할 줄 아는 미덕을 가졌다. 보고 있자면 마치 '택배기사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이나 '전생했더니 행운동 택배기사였던 건에 대하여*'같은 제목을 달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먼치킨 주인공이 등장하는 웹소설같아 오히려 아쉬웠다. 멋지라고 만들어 놓은 주인공인데 안 멋져서.

 

 가장 큰 장점인 핑퐁처럼 오가는 대화도 가끔 웃기긴하지만 천재 경제학 교수보다 더 젠체하는 듯한 어조가 부담스러웠다. 바쁘다며 '양 떼(146)'어쩌고 하는 핑계를 대는 것도 현실에서 시전하면 마이클처럼 보일 것이다. 행운동 사람들이 죄 수상했기에 칼잽이 K씨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마음에 들어한 것이지 실제로 누가 저런 식의 화법을 구사한다면 '아 왜 저래'싶을 느낌이었다. 소설인 것을 감안해도 말투가 지나치게 극적이라 항마력 채워가며 읽었다. "양갱을 잘못 먹은 탓이에요(181)" 하고 대답하는 부분에서 절정을 이뤘다.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고 침입자들 재밌게 읽었다면, 유머는 조금 부족하겠지만 이퀄라이저 꼭 보길 추천한다. 주인공 설정이 같다. 침입자들은 뭐랄까, 한국판 이퀄라이저 같다.

 

 결핍에 대해 나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하필 책을 읽은 날 낮에 천변을 좀 걸어지났다. 우한폐렴 탓에 초등학교 개학이 미뤄진 덕분에 한 5학년 쯤 됐을까싶은 남자애들 다섯이 천변에서 놀고 있었다. 그중 넷은 자전거를 탔는데 하나만 킥보드를 탔다. 정작 애들은 별 생각없이 놀았을지 몰라도,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려 보기 곤혹스러웠었다. 자전거 탄 네 명의 속도가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그애들과 함께 이동하기 위해 킥보드 소년이 아닌 척 더 열심히 한쪽 발을 굴러야만 하는 모습이 그랬다. 나도 자전거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텐데, 친구들이 속도를 맞춰주는 배려가 때로는 미안했을텐데, 속도를 더 내보려고 발 구르는 것이 힘들텐데 하는 어두운 생각만 밀려왔다. 그 모습을 보며 같이 걷던 동행에게 불쑥 십대시절 내가 별스럽지 않게 겪었던 결핍에 대해 얘길 꺼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던 것이다.  

 

 큰 줄기를 잇고 있는 사람들말고 단편적으로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오히려 그런 에피소드들로만 내용을 연결한다면 연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게꾼 아버지 이야기나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택배 기사 같은 내용은 어디서 본 듯해도 소재로 삼았구나 싶은데, '코카인'이나 대기업, 경찰서로 연결된 내용들은 너무 간 설정처럼 느껴졌었다. 어쨌든, 고독한 아저씨 히어로물을 원한다면 만족스럽게 읽을 것 같다. 히어로라고 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소소한 구원도 구원이겠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동안 마음이 아파서 고단했다. 100년 전이라는 배경과 구수한 사투리가 초반의 몰입을 조금 방해했다. 한동안 가벼운 것들만 읽으려 고집했던 탓이다. 언제는 깊고 어두운 이야기라면 골라서 읽고 싶었는데, 사는게 복잡하고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가볍고 밝은 것만 찾게 되었다. 금방 그만둘 수 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어렵지 않은 글들을 소비했다. 핑계가 좋았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는게 더딘 것도 일제강점기에 홀어머니가 삼남매를 바듯이 먹여 살리는 형편, 그중에서도 맏딸에게 지워진 의무와 책임같은 것들이 오롯이 느껴지는 시작이 답답해서 였다. 한 며칠, 초반의 몇장을 읽다가 밀어두었다가 다시 집어들기만 했다.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12시가 넘어서 문득 잠이 깬 밤이었다. 다시 잠은 오지 않고 책을 읽다 잠들어야지, 하고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손에 들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놀라운 흡입력이었다. 어깨가 아파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책의 절반쯤 읽었고, 그 뒤로는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어버렸다. 버들, 홍주, 송화의 삶이 마음 아프면서도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사진만 보고 외국에 있는 신랑과 결혼을 하러 가는 '사진 신부'들의 여정을 순진하게도 같은 마음으로 바라봤다. "삼 년 절은 오이지맨키로 쪼글쪼글한(78)" 신랑이 기다리고 있는 포와는 농장에서 일하다 채찍으로 맞은 상처 흉터가 남은 이주노동자들의 팍팍한 터전이었다. 그제서야 나무에 옷과 신발이 걸려있고 돈을 쓸어담는다는 부산 아지매의 말이 거짓말이었지, 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버들뿐 아니라 홍주, 송화가 마음먹고 떠나온만큼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었다.

 

 여자의 삶에서 남자는 무엇일까. 세 소녀가 시집가겠다며 하와이로 떠나 겪은 일들을 보며 더 잘살고 싶어서 떠나왔는데도 마음처럼 살아지지 않는 현실이 갑갑하고, 남편의 존재가 그녀들에게 짐만 더 얹어주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울며 결혼을 거부하고 싶어하는 손녀뻘의 소녀들을 데려다 결국 아들 낳은 첩으로 삼으려는 홍주의 남편과 술마시고 폭력을 휘두른 송화의 남편은 끔찍했고,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집안은 돌보지 않고 떠나버린 버들의 남편은 뭐라 비난하기 어려워 괴로웠다. 남편이 부재할 때 뭉친 세 사람의 삶은 오히려 남편이 있을 때보다 더 나았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열심히도 살았는데, 한편으로는 남편의 빈자리가 그들에게 계속해서 상처로 남아있는 것이 쓸쓸했다. 상처받고 괴로우면서도 사람에게 정을 주고, 사람에게 의지하며, 사람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니.

 

 순순히 소녀에서 엄마로 성숙해져가는 세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진주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옳은 결말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아름답기만한 끝맺음은 아니었어서 마지막까지 쌉싸름하게 읽었다. 결국은 그렇게 되었구나, 좀 더 좋은날이 많았어도 좋았을텐데 싶었다. 400쪽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전개된 내용에 비해 너무 갑자기 결말이 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송화의 이야기가 버들이나 홍주에 비해 적어서 아쉽기도 했다. 송화라는 인물이 가진 사연도 깊어 그녀에게 대한 이야기가 더 나왔어야 덜 채워진 채 서둘러 끝맺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진주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헛헛한 마음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3시간을 넘게 읽었으면서도 마지막에 더 읽을 내용이 없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다니, 좋은 책이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멕시코의 유카탄을 배경으로 한 김영하의 '검은꽃'이 떠올랐다. 에네켄 선인장 농장으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었다. 그리고 일년 정도 지나지 않아 유카탄 반도의 무지개학교를 방문했다. 검은꽃을 읽을 때에는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스콜이 쏟아지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뚫고 찾아간 무지개학교는 한산했다. 먼길을 온 우리 일행에 대한 환영은 따뜻했고, 아직도 남아있는 지난 세월의 흔적이 마음에 걸려 나는 위로도 응원도 변변한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채 기약없을 다음을 나누고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난다. 그게 십년도 지난 일이다. 여유롭고 느긋한 곳답게 아마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겠지. 문득 언젠가 하와이도 가보게 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검은꽃을 읽고 생각지못하게 유카탄에 갔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인상깊은 것은 검은꽃이지만,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더 재밌게 읽었다. 둘 중 하나만 읽어봤다면 꼭 다른 한 책도 읽어보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사악한 자를 위한 휴식은 없다. 그래서 오늘 밤 우리 둘 다 잠을 자지 않았다. (384) "

 

 이 문장을 읽을 때 쯤, 시간은 새벽을 지나 5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사악해졌다. 사실 순식간이라기 보다는 책을 읽는 내내 그랬다. '순수운동' 아래에서 순수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여자는 손에 꼽으리라. 어떤 내용인지 대략적으로는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초반에는 읽기 어려웠다. 웬만한 고어물들도 아무렇지 않게 보는데, 단지 문장이 주는 스트레스가 그보다 더 참기 힘들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가족- 남편과 아들마저도 견디기 힘든 존재가 되는 진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그만 읽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는 영화 '스텝포드 와이프'를 연상시킨다. 오히려 '스텝포드 와이프'가 좀 더 세련된 방식이랄까, 칩을 이식하고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영화에서는 짖음방지기를 찬 사람이 전기자극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으니. '스텝포드 와이프'와 강아지 짖음방지기의 조화로 탄생한 소설같다. 하루에 정해진 단어만큼만 말할 수 있고, 그 이상 말을 하면 카운터를 통해 전기 자극을 받게 된다. 단어 개수가 늘어날수록 자극의 강도도 커진다.는 카운터의 기능은 말을 빼앗는다는 것과 사람을 동물과 같이 취급한다는 -심지어 동물에게도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말을 한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벌과 고릴라의 언어(412)에 대해, 12년 동안 언어없이 자라난 소녀에 대한 다큐멘터리(451) 등을 꺼낸다. 언어가 인간에게 얼마나 필수적인지, 언어가 있다는 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 영장류들과도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그리고 원래 가졌던 것을 빼앗긴 세대와 빼앗긴 채로 자라나는 세대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패트릭과 진의 딸 소니아는 인지 언어학자인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아 하루에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놀라운 성과를 보인다.(145) 어린 소니아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상으로 가르쳐온 진의 교육도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언어와 인간존엄의 상실을 꾸준히 연관시킨다.  

 

 로렌조의 등장은 그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이자 그녀의 권리였던 투표를 포기하던, 무슨 일이 벌어지던 손을 놓고 있던 진이 행동하기 위한 계기가 만들어지는 요소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남성들의 '순수운동'으로 억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과 아들마저 증오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던 진이 그만은 특별히 다르게 여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던 것 같다. 그가 외국인이고, 순응하는 패트릭과는 달리 용기있어 보인다는 점들도 진이 " 목소리보다 잃을 게 훨씬 많(196) "음에도 불륜을 저지른 것에 이해가 갈만한 부분은 없었다. 게다가 그 난감한 상황에서 네명의 아이들과 새 생명을 함께 아우르기 위한 패트릭의 결말은, 음. 책의 최대 약점이 아닐까싶다.   

 

 세상이 워낙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다보니,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의 내용도 허무맹랑하다고만 여겨지지 않았다. 책 속의 '현대 기독교 철학 입문'의 내용을 말 그대로 반길 사람들이 현실에도 존재할 것이고, 그 내용을 반대로 바꿔서 남성에게 거는 제약으로 만든다면 그 또한 반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세상이 불안정한 때를 틈타 느닷없이 돌출되는 인간의 광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휴지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이유로 사재기를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그러니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일을, 권리의 행사를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 책이 "82년생 김지영"처럼 화제가 되고 도마에 오르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때의 분위기로 봐서는 이 책은 그보다 더할텐데.

 

 초반의 내용들 중에서 스티븐의 언행처럼 읽기에 거북한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물 흐르듯이 쭉 읽혔다. 그래서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가 궁금해서 계속 뒷장으로 넘어갈수밖에 없었다. 설정이 과격했던 것에 비해 후반부의 내용은 생각보다 인도적이고 미온적으로 마무리지어져서 의외였다. 뒷심이 약하다고 해야할까, 저자가 언어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독재정권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건가 싶어졌다. 이 정도 반항은 몇 나라의 독재정권이 그러하듯 지역을 봉쇄하고 탱크 끌고가서 군부대로 제압해버리면 진압될 일인데. 그랬다면 영원히 고통받는 독자가 되었겠지만, 어쨌든 마무리와 몇몇 부분은 좀 아쉬웠다. 색다른 정신적 고통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신선한 설정이었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통제가 핵심이겠지만 한국 독자들은 일제강점기의 민족말살정책이 떠올라 우리말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지지 않는 여름 2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다만 내 부모님이었을 뿐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는 거예요. 리디아의 말대로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부모님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이해하게 됐어요. 하지만 부모님을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싶었음에도 나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도 날 몰랐던 것 같아요. 내가 두 분의 딸이라는 것 외에는. 아마 두 분이 살아계실 때 난 아직 내가 되기 전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도 완전히 나 자신이 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내가 마침내 내가 된다면, 그땐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건가요? (284) "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총 2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을 읽을 때와 2권을 읽을 때의 생각이 좀 달라져서 속으로 여러번 자문하면서 읽었다. 1권은 단순히 어떤 내용인지, 영화로도 만들어진 원작의 내용이 궁금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1권을 읽고나서 2권이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맥락으로 묶여있는 '트렌스젠더' 이슈들이 생겼다.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mtf 트렌스젠더의 여군과 여대 소속 허용 문제들이 그것이다. 나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도 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읽는 동안 신경이 날카로웠다. 동성애에 대해 이해한다고 하면서 트렌스젠더에 대해서는 머뭇거리는 이유가 뭔가, 이성애자인 내가 정말로 동성애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입장인 것은 맞나 생각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그 속도가 너무나 달라 무너지는 사회의 균형을 느끼면서도 손 쓸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했다. mtf의 경우를 예로 들어 남성으로 태어난 자신을 '여성으로 느끼기/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진짜로 그렇게 태어났으나 불행히도 잘못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여성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법적으로 여성으로 인정해주어야 하는가. 페미니즘이 뜨거운 화두에 오르면서 여성 스스로는 여성에게 주어진 여성성에 국한되지 않으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런데 mtf이 자신이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에는 자신이 그 통념적인 여성성을 가졌고, 동경했고, 느끼기 때문에 여성이며, 여성이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미묘한 어긋남을 느꼈다. 자신에 대해 느끼는대로 스스로를 규정짓는다 해서 트렌스백인, 같은 것이 인정받을 수 없는 것처럼.

 

 한참 젠더와 동성애 이슈가 시작될 무렵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소수의 혹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느끼고 규정한다면 그 생각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도심에서 진행되는 레인보우 퍼레이드의 자유분방한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여자보다 더 예쁜 트렌스젠더를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개인이 느끼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사회가 무조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왜 갑자기 더 배타적이 된 것일까, 아주 평범하고 양산적인 나의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느껴서? 젠더와 성향 문제에서만큼은 나는 다수의 기득권층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시혜적인 이해와 허락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라고 여겨서? 나 역시 캐머런을 구경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어서?

 

 이런 생각들이 트렌스젠더 이슈 때문에 발현된 것이긴 하지만, 트렌스젠더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과는 별개로 동성애에 대해서는 취향의 한 갈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동성애자 특히 여성 동성애자들이 여성의 인권과 영역에 대한 큰 이슈를 몰고오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가 나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겼다는 것이다. 남성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차치하고서라도. 하지만 요즘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사회적 합의가 준비되거나 그렇지 못했건 상관없이, 결국은 올 미래이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일까 싶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치료소에 보내지는 것이 캐머런이었던 시대에 비해 너무나 멀리 온 것 같아졌다. 앞으로는 나같은 사람을 위한 치료소가 생길지도 모른다.

 

 1권을 다 읽고 난 뒤에 2권을 기다리면서 캐머런이 지나온 시간보다 훨씬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예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뒤엎을만큼 캐머런은 잘 지냈고, 사건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터져나왔다. 이래서 기독교가,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장 가까운 타인에게 주는 영향은 너무나도 크고 위험하구나 싶어졌다. 한번쯤 모두와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동성애자, 트렌스젠더, 종교인. 직접 이야기해보면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게 되면 아마 더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이 다른 수단을 거쳐서 대화를 나누는 것과는 다르다고 믿고 있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때문에 캐머런이 매번 리디아와 일대일 면담을 가져야 했던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았다. 이래서 금연이나 금주자 모임같은 것이 있나보다. 1권을 읽었을때는 동성애에 눈 뜬 캐머런에 집중해서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사람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다. 그래서 맨 처음에 적은 문장이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리뷰를 쓰기까지 내 낡은 타블렛이랑 얼마나 씨름했는지 모른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꽤 괜찮았다. 캐머런이 언제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하러 퍼레이드를 나서는지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은, 희망찬 결말의 전형을 보이지 않는 내용이라서 좋았다. 요즘 '다양성'이라는 것에 너무나 피로를 느끼고 있는 탓인지 이전에는 오히려 유하게 받아들였을 동성애에 대한 내용도 나도 모르게 트렌스'애정' 같은 것은 아닌지 검열하게 됐었다. '다양성'과 '소수'에 대한 피로라니, '약자'와 '억압'에 대해 피로하게 느끼는 성차별주의자의 모습이 나에게서도 보이는걸까. 정말 그게 맞다면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세상과 더불어 내 의식이 변해야 지금했던 생각들을 부정하고 싶어질까 생각했다. 우선은 검열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지. 요즘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던 이슈들과 함께 시의적절하게 읽은 것 같아 좋았다. 눈물의 가족대화합같은 잔치마당이 벌어지지 않아서,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캐머런을 영화로도 보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