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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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가 출연하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 애청자이고, 김중혁 작가의 강연이나 북 콘서트 등에 참석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자연스럽게 그의 창작 비결과 글쓰기 철학 등을 주워들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구들링'이라는 세 글자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 검색창을 열고 '구글링(googling)'하듯이, 그는 글 쓸 거리가 있으면 무작정 책상 앞에 앉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구들 위를 뒹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고 했다. 


김중혁 작가의 창작의 비결을 담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도 실은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잘 생각하는 법'에 관한 책인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애용하는 '창작의 도구'부터 소개한다. 노트, 메모지, A4용지 쓰는 법부터 연필, 펜, 스마트 펜, 컴퓨터까지, 저자가 애용하는 도구가 제법 많다. 저자는 '무엇을 쓸까' 만큼이나 '무엇으로 쓸까',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다. 새로운 것, 기발한 것, 그중에서도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을 찾아가는 태도는 저자의 작품 세계와도 많이 닮았다. 


이어지는 '창작의 시작'은 글을 쓸 때 저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개한다. 글을 쓸 때 어떤 식으로 자기 검열을 경계하는지, 글을 쓰다가 막혔을 때는 어떤 식으로 극복하는지 등이 나와 있다. 잘 쓰기 보다 자주 쓰고 많이 쓰려고 마음먹는 편이 완벽주의를 막고 창작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준다는 조언에 깊이 공감했다. '실전 글쓰기', '실전 그림 그리기', '대화 완전정복' 등은 저자의 창의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코너다. 이 중에서 '대화 완전정복'은 채널예스에 연재된 칼럼을 엮은 것으로, 저자 특유의 유머가 빵빵 터진다(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 편이 취향 저격이었다). 


어차피 글 쓰는 법, 글 잘 쓰는 법에 관한 책은 널렸다. 하늘 아래 이미 개발된 것보다 새로운 창작의 기술은 없다. 그렇다면 그냥 내가 글 쓰는 법에 관해 서로 이야기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글쓰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김중혁이라는 작가가 무엇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관해서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독자로 하여금 그걸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이 선사하는 최고의 효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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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전쟁 1 - 풍계리 수소폭탄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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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신작 <미중 전쟁>은 2017년 말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실제 국제 정세에 기반을 두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실제보다 허구에 가깝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육사 출신으로 워싱턴 세계은행 본부에서 특별 조사요원으로 일하는 변호사 김인철. 인철은 세계은행의 공적자금 관련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비밀리에 비엔나로 급파되지만, 인철을 돕기로 한 스타 펀드매니저가 시체로 발견되고 인철 또한 괴한의 습격을 받으며 미궁에 빠진다. 


수상한 냄새를 맡은 인철은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카리브해의 케이맨 제도로 날아가고, 그곳에서 트럼프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FBI 요원 아이린을 만난다. 출발지는 다르지만 목적지가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 그러나 얼마 후 아이린이 괴한에게 납치되고, 아이린을 찾기 위해 인철은 러시아로 급히 날아간다. 러시아에 도착한 인철은 자신이 쫓고 있는 사건이 실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열강과 대한민국이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야기 자체는 흥미진진하다. 인철이 오스트리아, 미국, 러시아 등지를 오가며 사건의 전모를 추적하는 과정은 긴장감 넘치고,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나 단체도 그럴 법하다는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북핵 위기가 현존하는 한반도 상황을 잘 담아냈고, 문재인, 트럼프, 아베, 푸틴 등 실존 인물을 줄줄이 등장시켜 소설의 사실성을 높였다(외국 정치인은 모르겠는데 한국 정치인이 등장하는 대목은 왜인지 오글오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내내 현실 같지 않고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듯했다. 장면 하나하나는 근사한데 연결이 엉성하다. 북핵 위기가 미중 전쟁의 소산이라는 메시지는 잘 전달되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빈약하다. 애초에 두 권짜리 소설에 담기에는 이야기의 스케일이 너무 컸다. 여기에 인철이 최이지, 아이린과 썸 타는 이야기를 더해지며 소설이 꽉 차다 못해 흘러넘쳤다. 분량을 늘리거나 스케일을 줄였다면 이야기가 훨씬 촘촘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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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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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듣는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썰>의 최근 에피소드 제목이 '돈에 얽힌 마음'이었다. 에피소드의 테마를 제공한 청취자 사연에 따르면, 어릴 때는 고만고만한 배경의 고만고만한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가난하다는 인식을 못했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출발선 자체가 다른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상대적 빈곤감을 느낀다고 했다. 나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사연을 보낸 청취자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부러진 사다리>를 쓴 미국의 심리학자 키스 페인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페인은 학창 시절 무상 급식 대상자였다. 페인은 자신이 무상 급식 대상자임을 인식한 순간부터 보는 풍경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급식비를 내는 아이들이 더 잘 차려입은 것처럼 보였다. 머리 모양도 예쁘고 신발도 좋아 보였다. 말투도 무상 급식을 받는 아이들은 느리고 어설프고, 급식비를 내는 아이들은 뉴스 앵커 같았다. 


심리학자가 된 페인은 가난하다는 인식이 인간의 감정과 선택,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평등한 상태일 때보다 불평등한 상태일 때 불안감을 느끼고 난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비행기 내에서 난동이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한 실험에서 일등석이 있는 항공편은 그렇지 않은 항공편보다 기내 난동이 발생할 확률이 4배 이상 높았다. 탑승이 비행기 앞쪽에서 이루어져서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일등석 승객들 옆을 지나가야 하는 경우, 탑승이 비행기 뒤쪽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기내 난동이 일어날 확률이 2배 이상 높았다. 


고전적인 경제학에서는 노동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특정 가격에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한다. 그리하여 이런 관점에서 몇 가지 빤해 보이는 예측을 한다. 사람들은 더 적은 시간 동안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받을 때 더 만족할 것이라고. 하지만 클라크와 오즈월드가 소득과 만족도의 관계를 분석해봤더니, 이상하게도 소득 상위 2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하위 20퍼센트보다 만족도가 약간 낮았고, 근무 시간은 만족도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결과였다. (63쪽) 


저자는 불평등 자체도 문제이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불평등한 요인을 찾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악순환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연구에 따르면, 절대 소득이 낮은 사람보다 준거 집단과 비교한 소득, 즉 상대 소득이 낮은 사람이 빈곤감을 더 많이 느끼고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클라크와 오즈월드의 연구에 의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삶의 만족도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사회적 비교도 변한다. "가난뱅이는 백만장자를 질투하지 않는다. 더 잘 나가는 다른 가난뱅이를 질투한다." 


불평등이 미치는 악영향은 업무 성취도와 임금 만족도에도 해당된다. 연구에 따르면, 조직 내 위계질서가 명확할수록 직원들이 승진하고 싶어서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믿음과 달리, 조직 내 위계질서가 명확할수록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업무 성취도도 낮았다. 임금에 격차가 있으면 직원들의 근로 의욕이 높아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임금 격차로 인한 동기 부여 효과보다 분노 유발 효과가 더 컸다. 


시장 경제에서는 경쟁의 결과로 어느 정도의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이런 시스템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중략) 소득 불평등이 심할수록 오히려 신분 상승의 기회는 줄어든다. 이런 관계를 '개츠비 곡선'이라고 한다.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불평등이 심한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경제적 미래는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부모의 재산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가 된다. (248쪽) 


저자는 시장 경제에서 불평등을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대신 심리학을 이용해 불평등한 상황에서 덜 불행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에 따라) 비교를 하되,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제때에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다.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상향 비교는 학력을 높이거나 전문 분야에서 확실한 지위를 다지고 싶을 때 활용하면 좋다. 단, 마이클 조던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 열등감만 느낄 수 있다. 


자기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는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하향 비교는 자신감이 없거나 주눅이 들 때 활용하면 좋다. 이때 비교 대상은 남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이다.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비교하면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동시에 할 수 있어서 좋다. 하향 비교의 이점("적어도 이제 그 얼빠진 십 대는 아니잖아!")를 취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상승 궤도를 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세상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또 하나의 팁은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와 동기를 써보세요"라고 했을 때 돈이나 명예라고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행동의 장점은 타인의 시선을 덜 신경 쓰게 되고(남과 비교를 덜 하게 되고), 순간적인 쾌락보다 미래의 보상을 중시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흔한 조언이지만 결국 이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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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창의 밖은 밤 1
야마시타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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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부터 정주행합니다. 오컬트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bl 이 어우러진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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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창의 밖은 밤 4
야마시타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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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야마시타 토모코의 <화이트 노트 패드>를 재미있게 봤고, 최근에는 야마시타 토모코의 다른 만화 <삼각 창의 밖은 밤>에 푹 빠져 있다. <삼각 창의 밖은 밤>은 영능력자 미카도(일본어로 '삼각三角'이라고 쓴다)와 제령사 히야카와가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오컬트 물로, 대놓고 BL은 아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BL의 색채가 강하다(이런 은근한 BL, 좋아합니다 ^^). 


서점에서 일하는 미카도는 예전부터 기분 나쁜 것들이 잘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히야카와라는 남자가 미카도에게 다가와 자신과 함께 악령을 쫓는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미카도는 강력하게 저항하지만 히야카와가 상사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미카도는 뜻하지 않게 부업을 하게 되고, 전보다 기분 나쁜 것들을 더 많이 보게 되어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왜인지 그만두지는 못한다. 





주인공이 하는 일이 악령 퇴치이다 보니 이 만화에는 무서운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것도 대놓고 무서운 장면이 아니라 은근히 무서운 장면이다. 심령사진처럼, 딱 봐선 모를 수도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사람 중 한 사람의 얼굴만 일그러져 있다거나, 중간이 텅 비어 있다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휙 지나간다거나.


히야카와도 무섭다. 히야카와는 외모가 근사하고 두뇌도 명석하지만, 인간관계에 필요한 능력이 결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만큼 성격이 냉정하고 구사하는 언어도 이상하다. 미카도 역시 그런 점들을 눈치채지만, 히야카와의 속박과 (일종의) 저주에 매여 언제부터인가 자기 뜻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듯 보인다. 과연 히야카와의 정체는 무엇일까. 





최근 출간된 4권에서 미카도는 처음으로 히야카와와 크게 대립한다. 미카도와 히야카와는 이제까지 악령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을 구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 히야카와가 사람들에게 일부러 저주를 걸고 그걸 푸는 제령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태연히 말했다. 미카도는 히야카와의 말이 거슬리다 못해 섬뜩했다. 히야카와에게 제령이란 뭘까, 악령이란 뭘까, 나라면 그런 의문이 들었을 것 같다.


<삼각 창의 밖은 밤>의 또 다른 장점은 이야기 전개를 질질 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4권에서는 미카도가 히야카와가 아닌 무카에와 함께 제령 작업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미카도의 부모와 관련된 비밀이 드러난다. 저주술사 히우라 에리카, 제령사를 찾아도 영은 믿지 않는 형사 한자와 히로키의 사연도 나온다. 히야카와가 성격이 이상해지게 된 사연도 나오는데 구체적인 사연은 5권에야 나올 듯. 어서 5권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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