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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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인 이민자 부모 밑에서 자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미국인 남성이다. 원래 직업은 '파리 리뷰'라는 문예지 편집자로, 청교도 전통을 지닌 백인 중산층 가정 출신이다. 그런 그가 엉겁결에 장모와 함께 델리를 경영하게 된다. 델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동네마다 한두개쯤 있는 슈퍼마켓(그나마도 요즘은 편의점과 대형마트, 대기업 체인 마트에 밀려나 보기가 힘들다) 비슷한 것인데, 생필품, 식료품은 물론 간단한 요깃거리나 커피 같은 음료도 판다. 초기자본이 얼마 들지 않고 기술도 필요 없다보니 외국인 이민자가 주로 운영하고, 그 중에서도 생활력 강하고 성실하기로 유명한 한인들이 많이 운영한다고 한다.  

 

몇 달 전에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 예상한 반응은 "안 돼, 벤! 그동안 받은 교육과 자란 환경을 생각해야지. 제발 부탁이다!" 같은 거였는데, 막상 부모님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야. 도시 하층계급의 삶에 대한 민속지랄까, 참여연구가 되는 거지. 조지 오웰도 접시닦이로 일한 적이 있잖니. 조지프 콘래드 역시 젊은 시절 배를 타고 해외를 떠돌았고." (pp.61-2)

저자는 그때까지 백인 중산층 가정 출신답게 변화를 싫어하고 다른 인종이나 민족, 계급과 어울려 살아본 경험도 별로 없었다. 정신적인 가치만을 숭배하며, 맹목적으로 돈만 추구하는 것은 속물스럽다고 생각했다. 델리에서 일하는 것을 '재미있는 경험'으로 치부하는 그의 아버지의 말만 보아도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지 상상이 된다. (반면 한국인 장모는 딸이 취직이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은 많이 준대니?") 그러니 책 읽고 생각하는 일이 천직인 '글쟁이' 저자에게 델리 일은 고통 그 자체였다. 육체노동은 처음인데다가, 갑자기 다양한 배경을 가진 낯선 사람들을 상대하게 되었으니 당연하다. 게다가 투잡을 뛴다는 것이 알려져 본업인 편집자 일도 간당간당하게 되었다. 처음해보는 장사도 신통치 않은데, 델리 때문에 회사에서 쫓겨나면 어쩌나 하는 고민에 시달리는 날도 있었다.     

거기에 한국인 가정에서 생활하는 고통까지 더해졌다. 델리를 시작하면서 저자는 재정적인 문제로 아내와 처가에 얹혀살게 되는데, 일찍이 청소년기부터 독립해서 살았던 그에게 이는 엄청난 변화였다. 한국 가정이 대개 그렇듯이 가족들이 노크 없이 벌컥벌컥 문 열고, 옷은 물론 속옷까지 같이 입고, 친척들이 자주 드나들고... 미국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프라이버시'라는 것을 도무지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특히 저자를 괴롭히 것은 바로 한국음식. 한국인들이 '매 끼니를 방금 단식이라도 끝낸 것처럼 먹는'다는 문장을 읽고, 금방 과식에 가까운 식사를 끝낸 스스로를 반성했다. 하지만 한국인인 내 눈에는 미국인들이 머핀 한 개, 샌드위치 한 개로 식사를 때우는 게 신기해 보인다는 걸 알까? (내 눈에 그것들은 그저 '간식'일 뿐인데 ㅎㅎ)     

  

도서전 같은 일을 통해 조지는 편집자들이 '문학'처럼 천성적으로 고귀한 것은 내버려두어도 성공하리라는 당위만 품고 관성적으로 일하는 대신, 판매 일도 해보도록 구슬렸다. 도서전으로 내몰아 판매를 구걸하도록 만들어, 자아를 파는 것 같은 행위에도 굴욕감보다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pp.258-9)  

하지만 델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그에게 점점 변화가 찾아온다. 그 변화가 극적으로 보여진 부분이 바로 회사 업무차 가게 된 도서전. 예전같으면 팔짱 끼고 부스를 지키고 있었을 그가 목청 높여 구독자를 유치하며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델리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어떻게 팔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죽어있는 문예지를 사람들 손에서 살아나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것이다. 

생각해보면 소비 행위가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판매 행위도 그럴 것이다. 우리말로 '물건을 사다'라고 할 때 '사다(buy)'라는 말과 '삶을 살다'라고 할 때 '살다(live)'라는 말이 비슷한 것은 우연일까? '사는' 행위가 '살아있는' 기쁨을 준다면, 파는 행위도 그만큼 즐겁고 보람된 일일 것이다. 남에게 살아있다는 경험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로 무엇을 팔 때 받는 것은 동전 몇 푼, 지폐 몇 장뿐만이 아니라, 누군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기쁨, 보람, 그 짜릿함도 있다. 그러니 맥주를 팔고 담배를 파는 것처럼, 편집자로서 좋다고 생각하는 글을 남들에게 파는 것은 결코 속물적인 일이 아니라고 저자는 확신하게 되었다.    

처음 이 책 소개를 읽었을 때에는 미국인 사위가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한 남자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개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가족과 지역사회로 시각을 넓히는, 제법 깊이  있는 성장기(저자 나이가 서른이 넘었으니 성숙기라고 해야 하나?) 였다.  

나에게는 언제 어떤 곳이 귀중한 삶의 체험의 장소ㅡ 즉, '마이 코리안 델리'였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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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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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마침 최근에 읽은,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미셸 우엘벡의 최신작 <지도와 영토>에도 스티브 잡스의 이름이 나왔다. 주인공 제드가 그린 <IT 산업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라는 작품이 바로 그것인데, 여기에 묘사된 잡스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병마와 싸우느라 여윈 스티브 잡스는 고통스럽고 수심에 찬 표정을 지으며 수염이 듬성듬성 난 꺼칠한 턱을 오른손으로 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자리를 드문드문 채운 무심한 청중 앞에서 아마 두번째 설교를 토해내야 하는 순간 난데없이 의혹에 사로잡힌 순회목사를 연상시켰다. 그럼에도 게임의 주인은 오히려 지고 있는데다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쇠잔한 스티브 잡스인 듯한 분위기였다. ... 주의 깊게 살펴보면 잡스가 반드시 지는 게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퀸을 희생시키는 대신 세 수 만에 비숍-나이트 체크메이트를 만들 경우 승산이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라면 신제품에 대한 전광석화와 같은 직감으로 시장에 돌연 새로운 규범을 제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pp.228-9) 

이 책은 제드라는 예술가의 일생에 대한 소설이다. 그는 미슐랭 지도를 테마로 사진을 찍어서 예술계에 화려하게 데뷔했고, 그 후로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직업인들을 테마로 그림을 그려서 또 한 번 큰 주목을 받은, 드물게 성공한 예술가다. 이쯤 되면 그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다거나 누구와 어떤 갈등을 가지고 있느냐가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제드에게는 몇 가지 문제가 있고 삶을 살면서 몇 차례 위기를 겪기는 하지만, 그것을 이 책의 중심내용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아쉽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묻는 건 직업이죠. 서구사회에서 인간을 규정짓는 것은 생식의 소임이 아닌, 무엇보다도 생산과정 속에서 점하는 위치니까요. (p.189) 

우리 역시 상품이오...... 문화상품. 우리도 곧 한물간 신세가 될 거요. 공산품들과 똑같은 절파를 거쳐서 말이오. 하지만 우리에겐 딱히 이렇다 할 기술 발전이나 기능 개선이 적용되진 않을 거요.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요구할 뿐이지. (p.205)

그보다는 제드의 삶의 배경을 형성하는 사회구조, 즉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예술의 위치에 관한 소설로 보인다. 지겹다 싶을만큼 세세하게 나열된 상품과 기업, 방송국, 유명 인사들의 이름, 이름들... 이 수많은 '상품명'을 읽다 보면 내가 지금 상업 잡지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오늘날 예술의 위치라는 것은, 그 옛날 왕정 시대에 권력자들이 그렇게 사용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주역'인 기업들을 위해 기능하는 수단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제드의 초기 사진 역시 미슐랭에 근무하는 올가의 눈에 띄어 화려하게 데뷔 했을뿐이고, 화가로서 새롭게 경력을 시작했을 때도 사람들은 그림이 아닌, 그림 속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유명인사들에 눈길을 주었다. 그의 작품에서 그의 예술 세계를 본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팔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만 주목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전보다 더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여느 생산수단, 생산물과 마찬가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내가 소비자로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공산품이 세 가지 있소. 파라부트 신발과 캐논 리브리스 노트북 프린터, 카멜 레전드 파카가 그것들이오. 이 제품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나는 이것들이 자연히 해지거나 낡으면 어김없이 똑같은 제품들을 재구입해서, 함께 인생을 보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요. 나를 행복한 소비자로 만드는, 완벽하고 충실한 하나의 관계가 정립된 거지. ... 그런데 이제는 이 단순한 즐거움마저 빼앗겨버렸소. 내가 좋아하는 상품들이 몇 년 만에 진열대에서 사라졌거든. 이유는 너무 간단한데, 글쎄 생산이 중단됐다는 거야. ... 하다못해 하찮은 동물도 멸종하기까지 수천, 수백만 년이 걸리는데, 공산품은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법도 없이 며칠 내로 단칼에 지구 상에서 제거되니 말이야. 이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을 생산라인 결정권자의 파쇼적이고 무책임한 횡포요. (pp.203-4)    

슬프게도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물은 그 마저도 짧은 교체주기로 인해 오래 향유하기가 어렵다. 상품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상품화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연예인조차 점점 더 빨리 뜨고 빨리 잊혀진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충분히 사랑하고 잊을 시간조차 가질 수가 없다. 제드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이자 그 자신이 성공적인 문화상품으로서 같은 경험을 한다. 그것도 사랑하는 아버지, 연인, 친구에게, 제 때에 제대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못했다. 사랑을 느낄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빨리 그들이 떠나버린 것일까. 어느 쪽이든 비극은 비극이다.

다시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업인이자 발명가,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과 미학을 제시한 '예술가'인 그의 사망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전자기기를 몇 달에 한 번씩 갈아치우듯 추모 열기가 빨리 식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게다가 이 기세를 타고 여기저기서 '스티브 잡스 마케팅'을 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일생과 업적이 상품처럼 판매되고 소비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비록 잡스 역시 상품을 파는 기업인이었고, 나아가 그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사람이지만 말이다.  

과연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에 슬퍼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의 훌륭한 프레젠테이션과 신제품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에 슬퍼하고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자문해볼 일이다. (만약 후자라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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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펜스 하우스 - 책 마을에서 길을 잃다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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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신간을 보다가 표지 질감이 따뜻해보여서 이끌리듯 꺼내보니 책 제목이 <식스펜스 하우스>, 부제는 '책 마을에서 길을 잃다'. 책을 좋아하지만, 읽을수록 책을 읽는 목적이나 방법의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드는 때가 많은데, 부제가 그런 내 마음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 읽기로 했다. 

내용은 이렇다. 첫 책을 출간하려는 미국인 작가가 어느날 불현듯 영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책마을로 유명한 영국 헤이온와이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헤이온와이의 왕' 리처드 부스를 만나기도 하고, '그곳에서만' 번성하는 서점가와 쇠퇴하는 가게, 식당, 술집을 들르면서 영국의 문화와 책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춘기 때부터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홀로 보낸 무수히 많은 저녁 시간이 떠올랐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똑같은 앨범을 듣고
또 들으며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집 밖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나도 나가서 뭔가를 하려고 해도 망설임으로 온몸이 마비되어 버릴 테고 나중에 후회만 남으리라는 생각, 결혼한 뒤에는 잊고 지낸 우울한 감정이었다. 크리스토퍼 몰리도 서서히 몸에 퍼지는 이런 독을 조금씩 삼켰고 <존 미슬토>라는 책에서 잘 표현했다. "밤은 약간 씁쓸한 맛을 지녔음을 알게 되었다. 이루지 못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p.263) 

이 책은 (국어시간에 배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소설은 아니다. 그보다는 주인공에게 떠오른 생각과 느낌을 중심으로 책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유머를 섞어 풀어서 쓴, 에세이 같은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전에 읽은 데이비드 세리다스의 단편집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마침 이 책에도 그의 이름이 언급된다. 두 작가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볼 뿐이다. 

폴 콜린스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나만 몰랐는지, 이미 국내에 소개된 책만 해도 <네모난 못>, <밴버드의 어리석음>,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등 여럿 된다. 이 중 <밴버드의 어리석음>은 운좋게도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 있어서 바로 내일 빌려볼 생각이고, 가장 읽고 싶은 <토머스 페인>은 어떻게 읽을지 고민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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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 당신이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김원 글.사진.그림 / 링거스그룹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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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마땅히 놀거리도 없는 베드타운에 사는 청소년으로서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일탈(!)은 조금 번화한 지역에 있는 음반점에서 아이돌 가수의 음반을 사거나 서점에서 문제집 사고 남은 돈을 모아 월간지 <PAPER>를 사는 정도였다. (소심해서 이 정도로 만족한 것이지, 나중에 들으니 다른 친구들은 더 큰 도시로 나가서 남자친구도 만나고 옷도 사입으며 놀았다고 한다. 그 친구들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졸업 후 대학을 다니며 '종이'위의 청춘을 몸소 겪게 되면서 경험이 청춘에 대한 환상을 대체하게 되었고, 슬프게도 청춘은 잡지 속의 글과 사진만큼 아름답지도, 찬란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PAPER>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에 들춰보게 되는 것은 왜일까.  

각설하고, 그러고보니 요 근래 <PAPER>를 이끄는 두 분, 김원 님과 황경신 님의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먼저 김원 님과 쉐인 선생님이 함께 쓴 <은밀한 영어책>을 읽었고, 그 다음에는 황경신 님의 <위로의 레시피>를 읽었다. (제목이 헷갈린다. '은밀한 레시피', '위로의 영어책'은 아니었겠지...?)  

이번에 출간된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는 글, 그림, 사진 모두 김원 님이 담당한 책이다. 편집장으로서, 누구와 함께 내는 책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내는 책이기 때문인지 한장 한장이 예쁘고 정성이 많이 느껴진다. 이따금씩 내용 때문이든, 디자인이나 편집 때문이든 간에 '이런 책을 내고 저자나 편집자는 잠이 올까' 싶은 책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 책은 정반대다. 내가 작가라면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 

글도 한편 한편 얼마나 예쁜지. 꿈, 만남, 사랑, 친구, 취미, 일상 등등... 하나하나 아름다운 소재들이 글로 살아나 이 책을 가득 채운다. 읽다보니 절로 나에게는 어떤 꿈이 있고 인연이 있는지 떠올랐다.

 하지만 요상하게도, 가장 마음에 남는 글은 아름다운 글과 사진이 쭉 펼쳐지고 맨 끝에 나오는 에필로그다.

인간이 어떻게 '즐기기 위해서'만 살 수가 있는가? 그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매우 부도덕한 자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늘... 희생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이 '가장 숭고한 가치를 지닌 삶'이라는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집에서도 그랬고, 학교에서도 그랬고, 사회에서도 그랬다. 어딜 가나 늘 그랬다. '대한민국'이라는 조직사회는 늘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해왔다. 그런데 유럽은 달랐다. 미친 듯이 즐겁게 살기 위해서 산다. 물론,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의 지향점이 '그쪽 방향'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p.283) 

좋은 것에 대해 논하다가 갑자기 대한민국 어쩌고 하는 글을 보니 어색했다. 그러나 이 글이야말로 저자의 가장 깊은 진심 같다. 이제까지 김원 님에 대해 그저 미술을 오랫동안 해오신, 월간지의 편집장 정도로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글과 사진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랫동안 추하고 못난 것들을 보아 왔고 남들보다 더 절절하게 느꼈기 때문에 사소한 것도 귀하게 볼 줄 알고,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모아 아름답게 이어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꿈꾸던 청춘과 다른 청춘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PAPER>를 들추고 있는 것 또한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정신 못차리고 지나보낸 청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그리운 것 같다. 마치 못 이룬 첫사랑처럼, 고백하기 전보다 아프게 헤어진 후에 상대를 더 아름답게 기억하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내 안의 모든 것이 바뀌어도, 스치고 지나간 것들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제목이 기억 속에 있는 한은 떠나 보낸 청춘에 대한 미련과 함께 오랫동안 마음에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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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2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삶의 지향점이 '그쪽 방향'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며 살고 싶어요. 책이 예쁘고 아기자기해요. 좀 더 어렸다면 이 책은 정말 딱 제 스타일인데 이제는 아니라서 아마 geenu님 리뷰가 전부가 되겠지만, 나를 아름다운 삶으로 이끌어가는 일이 퍽 대단한 일인 것 같긴 해요. 예쁜 리뷰 잘 봤어요.^^

키치 2011-08-21 09:59   좋아요 0 | URL
저자 에필로그를 읽고 전체 감상이 바뀐 책이에요. 사실 그 전까지는 약간 허세같았는데, 짤막하게나마 살아온 얘기를 읽으면서 낭만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좌절하고 시련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바뀌었어요. 덧글 고맙습니다. 인적이 뜸한 서재라서 덧글 한 줄이 귀하고 더 감사해요...^^

2011-08-2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가는 리뷰네요. 그리고 청춘은 늘 정신 못 차리고 그냥 지내 보내기 마련인가 봐요.
김원씨의 이 책을 보면 geenu님의 리뷰가 겹쳐질 듯 합니다.^^

키치 2011-08-31 01:3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김원님, 좋아하게 된 분이라서 제 리뷰가 겹쳐진다면 조금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너한테 꽃은 나 하나로 족하지 않아? - 데이비드 세다리스 코믹 에세이
데이비드 세다리스 지음, 조동섭 옮김 / 학고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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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너무 심각한척 하는 수사물이나 법정물, 세상을 한없이 낙관적으로 보는 로맨틱 코미디 같은 장르는 안 보게 되었다. 그보다는 헙수룩한 주인공이 자질구레한 역경을 이겨내며(?) 꾸역꾸역 살아나간다거나, 저 혼자 잘난줄 알다가 큰 코 다치는 내용의 코미디가 좋다. 허세나 환상 이런 걸 다 버렸다는 게 아니라, 조금씩 삶의 단맛보다는 쓴맛을 볼 일이 늘면서 산다는 건 그래봤자 전자 아니면 후자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너한테 꽃은 나 하나로 족하지 않아?>의 저자 데이비드 세다리스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잎새에 이는 바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욕쟁이 이웃 할머니, 성적인 농담으로 딴지거는 택시 기사, 기내에서 불쾌하게 만드는 옆자리 승객 등등 살면서 부딪치는 아주 사소한 문제 하나에도 그는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는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그저 소심하게 십자말풀이에 'bitch' 다섯 글자를 쓸 뿐이고, 자기를 속상하게 만드는 연인한테 크게 화 한 번 못 내고 그가 꺾어온 꽃을 병에서 뽑아 던지는 것으로 대신하고, 행여 홧김에(또는 용기를 내어) 언짢은 말 한 마디 했더라도 밤새 죄책감에 가슴이 두근대는 이 사람, 참 나 같다. (근데 난 왜 이 사람처럼 안 귀엽지?)  

그렇다고 더 큰 일에 '분노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기한테 주어진 정도에 만족하며, 그러나 일상을 너무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건 닭살 돋고, 그냥 한바탕 웃음으로 털털하게 넘기는 ㅡ 이 책이 딱 그런 느낌이다. 주인공도 찌질하고, 에피소드도 찌질하고, 등장 인물도 찌질한데 읽고 있으면 웃기다. 찌질한 나의, 찌질한 일상도 누가 보기에는 이렇게 우습고 재밌겠지?

낯선 이름인데 이미 미국에서는 큰 상도 타고 '현존 미국 최고의 유머 작가'라고 불릴만큼 명성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한다. 어쩐지 제법 두꺼운 책인데 낄낄대며 웃다보니 금방 다 읽겠더라. 이 사람 책이 국내에 또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그것도 조동섭 님의 번역으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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