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 - 생을 요리하는 작가 18인과 함께 하는 영혼의 식사
유승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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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직업을 두고 흔히들 '밥벌이 하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행여 아이가 글쟁이, 소설쟁이가 될까 '이야기 좋아하면 굶어 죽는다'며 위협하던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생각도 난다. 헌데 밥벌이 하기 어려운 직업, 심취하면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 어디 글 쓰기 뿐이랴.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때로는 야근을 불사하며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일도 어렵고, 일년 꼬박 들여 농사 짓는 일도 어렵고, 하루에 백 몇 십여 집을 찾아다니는 택배기사의 일도,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선생님의 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적어도 글 쓰는 사람은, 그렇게 밥벌이 하느라 고단해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즐겁게 해줄 수 있으니, 글 쓰는 일로 밥벌이 한다는 건 제법 행복하고 보람된 일이 아닐까. 글 쓰는 일을 동경하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은 한국 식문화와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출판인 유승준이 김훈, 박범신, 황석영, 백영옥, 편혜영, 안도현 등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 18인을 직접 인터뷰하여 만든 책이다. 인터뷰의 대상이 된 작가들은 하나같이 작품 속에 음식을 등장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글로 밥먹는 사람들이 밥에 대한 글을 썼다'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음식이 나오는 책만 해도 이렇게 흥미롭고 매력적인 책이 많다면 한국 문학 전체는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음식이라는 주제는 같지만 작품 스타일도 천차만별이고 주제나 소재도 각각 달라서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은 전부 읽어볼 생각이다. 또한 작품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작가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마침 요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가와 교감하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작가들이 한명 한명 참으로 매력적이어서 앞으로 작가를, 소설을, 글을, 책 읽기를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이 책은 문학작품 속에 담긴 따뜻한 밥을 독자들과 함께 나눠 먹는 시간이자, 밥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삶 속에서 발견해낸 문학적 성취를 작가와 독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확인하는 공간이다. 바다에서 밥상을 건져 올리는 한창훈을 만나면 바다가 달리 보일 것이다. 지금은 온데간데없어진 잃어버린 시절의 추억을 되찾고 싶으면 황석영을 만나 꿀꿀이 꽃섬탕 한 그릇을 먹어보길 권한다. 편혜영을 읽으면 패스트푸드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새로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리와 사랑이 만들어내는 단 한 번이라도 좋을 호사를 누리고 싶다면 손미나를 만날 일이다. (p.9 작가의 말 중에서)

 

먹는 일과 사는 일은 닮은 점이 많다. 첫째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이다. 부자라고 해서 하루에 다섯끼, 열끼를 먹을 수 없고, 가난하다고 해서 맛을 모르고 포만감을 모르지 않는다. 둘째는 욕심을 부리는 만큼 몸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식욕 때문에 몸을 망치고, 건강해지고 장수하려는 욕심 때문에 되레 몸이 망가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탐하게 된다는 것이다. 먹으면 언젠가 배가 꺼지고 허기가 돌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생의 끝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은 음식을, 삶을 탐한다. 삶을 성찰하기 위한 수단인 문학 작품 중에 음식에 대한 글이 유난히 많은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속이 헛헛한 사람이 요깃거리를 찾듯이 삶이 허기진 사람이 문학을 찾는 것일까. 하늘은 높고 식욕은 그보다 더 높아진다는 배고픈 계절 가을. 음식에 관한 글을 읽으며 헛헛한 마음, 허기진 인생을 달래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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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0-0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꽤 활발한 활동을 꾸준히 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신 남자화백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요,
그 분 말씀이 딸이면 몰라도 아들은 절대 화가 하겠다면 말리라네요. 밥벌이로는 적절하지 않다고요.ㅎㅎ
글쟁이는 환쟁이나 예술은 배고픈 작업 같아요. 그래야 예술이 되는 건지도...
이 책 좋아보이던데 역시 별 다섯이군요.^^

키치 2012-10-10 16:54   좋아요 0 | URL
뭐든 전업으로 한다는 건 어렵고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작가분들 중에도 아직 전업으로 하지 못한 분, 전업하기까지 숱한 고생을 하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나온만큼 글이 더 귀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덧글 고맙습니다 ^^
 
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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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 읽은 소설을 좋아하게 된 경우는 많다. 어릴 때 우연히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소설 몇 권이 내 인생의 행로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몇 해 전에 읽은 책 중에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와 비카스 스와루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 샤오루 궈의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도 아주 좋았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도 빼놓을 수 없다. 터키의 민족색이 짙게 묻어나는 내용이라서 이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내용은 사랑과 배신, 질투와 절망 같은 보편적인 감성에 대한 것이라서 읽는 내내 깊이 공감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소설을 읽고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비서구 작가라서 그런지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에 그의 소설은 여러 권 번역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민음사에서 나온 <소설과 소설가>를 읽으면서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스물두 살 때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친구와 아는 사람들에게 "화가가 되지 않겠어요. 소설가가 되겠어요!"라고 말하고 진지하게 첫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어쩌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끔찍한 미래로부터 모두들 나를 보호하려 했습니다.(독자층이 한정된 나라에서 소설 창작에 인생을 바치겠다니!) "오르한, 사람은 스물두 살 때 인생을 알 수 없단다. 나이를 좀 먹고 인생을, 사람들을, 세상을 경험해 봐. 그런 다음에 소설을 써!"(그들은 내가 단지 소설 한 권만을 쓰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말에 크게 분개했고,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우리가 인생을, 사람을 알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니에요. 다른 소설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써 보고 싶기 때문에 쓰는 거라고요!" (pp.177-8) 

  

이 책은 오르한 파묵이 하버드 대에서 유서 깊은 '찰스 엘리엇 강의'를 맡은 후 그 강연록을 묶은 책이다. '강연록' 답게 소설과 소설 읽기, 소설 쓰기에 관한 개론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현업 작가'인 파묵의 관점과 견해가 더해져 있어서 나 같은 오르한 파묵 팬 뿐만 아니라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 소설 쓰기를 갈망하는 소설가 지망생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파묵은 책에서 소설은 무엇인가 - 완전한 허구인가, 소설가의 경험이 재현된 것인가 - 에 대한 얘기를 한다. 독자로서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 내용에 심취한 나머지 소설가를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나 화자가 소설가 본인인 양. 사랑하게 되는 건 그래도 낫지만, 작중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으로 소설가를 지레 짐작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면 곤란하다. 파묵은 종종 독자들로부터 '파묵 씨, 당신은 이런 것들을 정말로 경험했나요?' 같은 질문을 받기도 하고, '전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요' 라는 둥의 말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소설은 허구인가, 재현인가. 소설가로서는 작품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꼭 물어야 하는 질문인 것 같다. 독자 또한 소설을 읽을 때 소설과 소설가의 거리, 소설과 독자와의 거리를 적절히 지킬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파묵은 이력으로 보나 작품으로 보나 원숙한 작가이면서 동시에 소설과 소설가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매우 진지한 분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 이름은 빨강> 이후로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 이참에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 마침 그의 소설은 이 가을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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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소녀 로스쿨 가다 - 가수 이소은 뉴욕 로펌을 사로잡다
이소은 지음 / 삼성출판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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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잘 하기 어려운데 여러 가지 일을 쓱쓱 해내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이소은이 그런 사람이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하여 '작별', '서방님' '기적', '키친'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고,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공부까지 잘해 고려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 일찍부터 '가요계 대표 엄친딸'로 유명했던 그녀. 그런 그녀가 몇 년 전 돌연 미국 명문 노스웨스턴 로스쿨에 진학했다는 소문이 들렸고, 국제대회에서 큰 상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렸고, 얼마 전에는 뉴욕 소재의 로펌에 취업하여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가수 되기, 공부 잘 하기, 변호사 되기 -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아닌데, 그녀는 이제 겨우 서른 살을 넘긴 나이에 이 모든 일을,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 정도면 '엄친딸 중의 엄친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

 

<딴따라 소녀 로스쿨 가다>는 가수 이소은이 로스쿨에 진학하기까지의 과정과 치열했던 3년 간의 학교 생활, 로펌 취업 과정, 예비 변호사로서 앞으로의 포부 등이 담긴 자전적 에세이다. 어린 시절부터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그 때까지 생각만 했던 꿈을 실제로 이뤄보겠다는 마음으로 로스쿨 진학을 결정했다. 그런데 로스쿨 진학에 필요한 LSAT 공부를 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어도 잘하고 명석한 그녀에게도 법은 무척 어렵고 생소한 분야였다. 시험 점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 실망한 적도 많았고, 겨우 입학원서를 내고도 여러번 고배를 마셨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여러 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 그녀는 고민 끝에 노스웨스턴을 선택했다. LSAT라는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 시험인지 감이 오지 않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180점 만점에 170점 이상은 되어야 유명한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다고 한다. 학부에서 법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원어민도 아니고, 로스쿨 진학에 유리한 사회 경험도 없었는데, 그 높은 커트라인을 뚫고 로스쿨에 들어갔다니 놀라웠다.

 

어렵게 들어갔건만, 로스쿨 생활에 비하면 입학하기까지의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날고 기는 천재들만 모인 로스쿨에서의 경쟁은 한국에서의 경쟁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루에 두세시간 밖에 못 자면서 두꺼운 리딩 자료를 겨우 읽고 수업에 들어가도 강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토플 만점을 받을 만큼 영어를 잘 하지만 단어를 알아듣지 못해 동문서답을 하는 날도 있었고, 과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엉뚱한 '소설'을 써서 내기도 했다. 급기야 첫 중간고사에서 받은 등수는 전체 꼴찌. 학창시절 늘 우수한 학생이었던 그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들에게 흔하지 않은 장점 하나가 있었다. 바로 '질문하기'.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교수님에게든 친구에게든 끈질기게 질문하고 끊임없이 답을 구하면서 서서히 학업을 따라잡을 수 있었고 성적도 상승, 마침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LSAT를 준비하고 로스쿨에서 공부한 몇 년 동안 그녀는 '법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음 공부', '인생 공부'도 한 것 같다. 사회에서의 공부는 학교 다닐 때 단순히 성적을 받기 위해 하는 공부와는 다르다. 학생 때는 또래 친구들도 공부를 하고, 배우는 것도 비슷하지만, 사회로 나온 다음에 하는 공부는 남들이 돈을 버는 동안 내 인생을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지만, 공부가 힘이 들고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 '내가 헛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좌절감도 더 크다. 그녀 또한 로스쿨을 선택하기 위해 버려야 했던 것들이 너무나 많았을 것이다. 가수로서의 커리어, 20대 후반 여성으로서의 삶, 서울에서의 안락한 생활 등... 하지만 자기가 가장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 '마음 공부', '인생 공부'를 그녀는 로스쿨에서 한 것 같다.

 

로스쿨 3년 동안 그녀는 학교 안에서 공부만 하지는 않았다. 방학을 이용해 로펌에서 인턴십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하며 변호사가 되기 위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졸업 학년인 3학년 때는 국제 중재 대회라는 큰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기도 했다. 로스쿨에 입학하면 주어진 공부만 하면서 졸업하고 취업할 생각만 하는 사람도 많다는데, 그녀는 로스쿨에서의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여 새로운 경험을 쌓는 시간으로 삼았다. 미국 명문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는 이력은 그 자체로도 굉장한 것이지만, 나는 그보다 그녀의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저 시간을 '때운다'는 생각으로 대충하는 법이 없고,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시간을 '활용하는' 모습, 나도 배우고 싶다.

 

책 첫부분에 그녀가 언니로부터 온 이메일에 첨부된 스티브 잡스의 동영상 - 그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 -을 보면서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가 한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은 'stay hungry, stay foolish'지만, 나는 'Connecting the dots'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언뜻 제각각인 듯 보이는 인생의 점들을 연결하여 무한한 재능을 발휘하라는 뜻인데, 그녀의 인생 궤적 역시 스티브 잡스의 이 말을 충실히 따른다.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에 그녀의 아버지가 4년 간의 긴 법정 소송을 겪었던 것, 대사를 줄줄 외울 만큼 법정 영화를 좋아했던 것, 가수 활동 당시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하여 어려운 이웃들을 만났던 것 - 이런 점들이 연결되어 그녀를 로스쿨로 이끈 것인지도 모른다. 가수로서의 경력은 변호사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오랫동안 무대에 섰던 경험과 생방송을 하며 키운 순발력과 재치, 풍부한 연기력은 변론과 연설, 모의 재판 등 로스쿨 생활 곳곳에서 그녀가 남들과 차별화되는 능력을 뽐낼 수 있게 도왔다. '가수가 로스쿨엔 왜 왔나'라는 질문을 많은 사람들이 했고, 그녀 자신도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물었지만, 그녀이기에 할 수 있는 일, 그녀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능력이 분명 있었다.

 

+

 

사실 전부터 '가수 이소은'을 좋아했던 나는 그녀가 가수로서 오래오래 팬들 곁에 남아 노래를 불러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가수가 아닌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왜 굳이 가수로서의 좋은 커리어를 그만두고 로스쿨에 진학한 것일까. 그것도 늘 궁금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그녀는 오래 전부터 변호사가 되어 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했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며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천성이었다. '가수 이소은'은 그녀가 가진 여러 얼굴 중 하나일뿐, 그녀가 더 많은 얼굴을 가진 능력자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가수로서, 학생으로서, 인간으로서 늘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그녀 이소은. 앞으로는 '변호사 이소은'의 활약을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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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2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좋은가봐요. 별다섯^^
국제변호사나 외교관을 꿈꾸고 있는 작은 딸에게 사줘야겠어요. 땡스투유~

키치 2012-09-29 09:47   좋아요 0 | URL
이소은 씨도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쓰셨더라구요.
작은 따님께 이 책이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습니다~ 덧글 고맙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2-10-02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소은 씨는 입담이 좋아서 몇 년 전에는 라디오 가요프로그램에 자주 나왔어요.얼마 전 변호사가 되었다고 하더군요.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일어난 이야기도 라디오에 나와서 들려주던데 아주 재밌더군요.말투가 명랑해서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키치 2012-10-02 09:31   좋아요 0 | URL
책에서도 이소은씨가 평소 명랑하고 긍정적인 성격이시라는 게 팍팍 느껴지더라구요 ^^ 얼마 전에 이소은씨가 출연했다는 그 라디오 방송도 꼭 찾아서 들어봐야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우리가 좋아했던 것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2
미야모토 테루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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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도서관에 갔을 때 일본소설 코너를 보다가 이동진 평론가님이 미야모토 테루를 좋아한다고 하신 게 기억나서 딱 한 권 있던 <우리가 좋아했던 것>을 빌렸다. 미야모토 테루가 썼다는 것 말고는 책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몰라서 이 책이 연애소설인지, 가족소설인지, 스릴러인지 감도 못 잡고 '어떻게 끝이 날까' 궁금해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 요시가 친구 당나귀, 그리코 우연히 바에서 만난 여성 아이코와 요코 - 이렇게 넷이서 뜻하지 않은 공동생활을 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의 남녀 넷이 한 집에 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상상대로(!) 금세 두 쌍의 커플이 생겨났고, 동거라고 부르기는 부족하고 그냥 공동생활이라고 부르기는 또 아쉬운 관계로 발전한다. 디자이너인 요시는 자기 회사를 차리는 것이 꿈이고, 카메라맨인 당나귀는 지구상에 얼마 없다는 나비를 사진에 담는 것이 꿈이다. 아이코는 회사원이고 요코는 독립을 앞둔 실력있는 미용사다. 모두들 자기 일이 있고 삶이 있는 어엿한 성인이지만,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비밀과 오래된 상처가 드러난다. 이 때 이들은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얼마 없는 돈을 모으고 합심하며 서로를 돕는다. 그들마저 '우리는 왜 남이 곤란에 빠진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일까' 자문하게 될 만큼 큰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네 사람은 겉만 자란 어른아이에서 속까지 여문 어른으로 '진짜 성장'을 한다.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겠다 싶은 설정이고 매력적인 에피소드도 많아서 읽는 내내 즐거웠고 책장을 덮을 때는 가슴뭉클했다. 훗날 나는 무엇을 좋아'했다'고 말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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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이상하게도 우리 네 사람은 하나같이 남을 위해 살아가려고 한 것이다. 자각하지 못한 채, 같은 경향을 가진 네 사람이 우연히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데 가치나 행복을 느끼는 자신의 성향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인연인지 우리는 한 자리에 모였다. 남을 위해 살아가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러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남이 곤란에 빠진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p.245)

 

시간도 우연도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네 말은 옳아. 그렇지만 생명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지키려면 돈이 필요해. 돈이란 놈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놈을 위해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거야. (p.156)

 

우리는 마음에 너무 민감하면 사회적인 방해꾼으로 취급받는 시대에 살고 있어. 마음의 느낌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이 사회의 둔감증을 견딜 수 없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히고 말아. 그러지 않고서는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됐어.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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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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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님 책은 <김탁환의 쉐이크> 이후로 두번째다. <김탁환의 쉐이크>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니까 소설로서는 <노서아가비>가 처음인 셈. <김탁환의 쉐이크>에는 저자가 어떻게 책을 구상하고 글을 쓰는지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철저히 준비하고 매일 매일 노동하듯 글을 쓰는 것. 그 미련한 방법으로 저자는 지난 10년 간 40여 권의 소설이라는 엄청난 양의 저작을 남겼고, 그 중 여러 작품이 드라마, 영화화 되며 대중으로부터도 큰 사랑을 받았다.


'러시안 커피'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소설 <노서아가비>는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겼다는 역사적 사실과 왕이 마시는 노서아 가비에 치사량의 아편을 넣은 사내가 있다는 <매천야록>의 기록에 기반한 '팩션(팩트+픽션)'이다. 이전에 쓴 <리심>도 개화기가 배경이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맺은 것이 저자는 다시 한번 개화기를 배경으로 <노서아가비>를 집필했다고 한다.


저자는 <노서아가비>를 '개화기 유쾌 사기극'으로 만들고 싶었다는데 바람대로 잘 된 것 같다.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도망치듯 조선땅을 떠난 소녀가 청나라와 러시아를 누비며 멋지게 사기를 치는 희대의 사기꾼 '안나'로 변신해가는 모습은 같은 여자로서 보기에 즐겁고 유쾌했다. 비록 그녀는 역사속 위인도 아니고, 실존 인물은 더더욱 아니지만, 어쩌면 이런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가정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신분도 다르고 입장도 다른 인물들이 러시안 커피라는 매개체로 이어지며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달면서 쓴, 쓰면서 단 커피의 맛처럼 - 조선말 개화기의 쓰디쓴 역사가 소설이라는 달콤한 코팅이 입혀져서 매력적이게 그려진 점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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