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인문학 서재
크리스토퍼 베하 지음, 이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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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요란한 줄 알았다. '간판'이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서양의 잘 알려진 고전이나 문학 작품을 대강 골라놓고 '하버드'라는 이름으로 독자를 끌려고 한, 허울만 좋고 실속은 없는 책일 줄 알았다. 게다가 요즘 이런 '책에 대한 책', '책을 위한 책'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책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서 더욱 끌리지 않았다. 고전이면 또 얼마나 어려울까... 그런데 이 모든 게 착각이었다. 한장 두장 읽다보니 어느덧 저자를 따라 고전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책을 다 읽은지 며칠, 아니 몇 주가 지났는데도 계속 이 책 생각이 나네...

 

 

책은 저자가 외갓집 서재에서 '하버드 클래식'을 발견하는 부분에서 시작한다. '하버드 클래식'은 하버드대의 초기 총장이 대학 교육의 수혜를 받기 힘든 일반 대중들이 적어도 이 책들을 읽으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교양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엄선하여 제작한 고전 시리즈로, 방대한 분량 때문에 3m(5m인가?) 전집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하버드 클래식을 구입한 것은 다름아닌 저자의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대학은커녕 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분이지만 배움에 뜻이 있어 하버드 클래식을 구입했고, 평생에 걸쳐 읽었다. 저자는 이 얘기를 듣고 감명받아 1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오로지 이 책들만 집중적으로 읽어보기로 한다.

 

 

하버드 클래식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클래식'인만큼 여기 포함된 책들 대부분이 잘 알려져있는 책들이다. 가장 유명한 책은 역시 '성경'. 그리스 고전부터 중세 고전, 돈키호테, 셰익스피어, 그리고 17,18세기 사상서까지 시대, 장르도 다양하다. 동양의 고전 '논어'도 포함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중 몇 권은 읽어본 책이기도 한데, 저자의 속도를 따라, 저자의 설명을 들으며 반추해보니 색달랐다. 특히 바로 얼마 전에 읽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하버드 인문학 서재>를 먼저 읽고나서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언어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언어 의미를 따라갈 수 있게 해준 사실들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책이 인생에 대해 가르쳐주듯이 인생도 책에 대해 가르침을 준다. 인생을 살아온 시간이야말로 다윈과 키케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 길고 장황한 설명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p.100)

 

 

학창시절에 읽은 <돈키호테>도 저자의 설명과 감상을 더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키케로의 말처럼 인생이 책에 대해 가르침을 주는 것인지, 어릴 때는 그저 돈키호테가 이상하고 미친 사람 같았는데, 지금 보니 참 용기 있고 지조가 있는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다시 읽어 볼 엄두는 안 나는군...

 

 

돈키호테의 이 말에는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다. '없는 것보다는 뭐라도 있는 게 더 낫다네.' 돈키호테는 무지몽매한 세상을 한순간에 간파한다. 그러고 나면 독자에게 이 책의 의미는 달라지고 만다. 마법 투구와 같은 세상에 살고 싶은데, 대야를 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설 2부의 마지막 부분에서, 돈키호테는 편력 기사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접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자신을 어리석게 만든 책들도 모두 팔아치운다. 이 지점에 이르면 <돈키호테>는 더 이상 풍자와 희극의 세계에 그치지 않는다. 이 세계를 인정할 수 없는 자의 비극으로 비칠 수 있다. 상상 속에서 자기가 만들어낸 세상에 살려는 돈키호테의 노력은 코미디가 아니라 용기다. 그런 의미에서 세르반테스의 소설은 일종의 서사시가 된다. (pp.118-9)

 

 

아무래도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보다는 '최신작'인 17, 18세기 사상서에 관한 부분이 이해하기 쉽고 읽는 재미도 있었다. 중세 암흑기를 지나 르네상스를 건너 산업사회로 들어가기 직전, 혹은 초입에, 그 당시 소위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이런 게 참 재미있다. 모든 게 신으로, 종교로 귀결되던 시대로부터 벗어나 이른바 '내면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던 시대. 인간이란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인간이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등등, 지금으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물음들이 그 때만 해도 파격적이고, 어쩌면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겠지? 그리고 그렇게 본다면 지금 학자들이 안고 있는 물음들도 역사가 고작 2, 300년 밖에 안 된 새로운 질문이다. 답을 쉽게 찾지 못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인생의 모든 목표를 실현했다고 생각해보자. 기대하던 모든 제도와 견해의 변화가 지금 이 순간 완전히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이것이 나(존 스튜어트 밀)에게 커다란 기쁨이고 행복이겠는가?" 억누를 수 없는 자의식은 분명히 답했다. "그렇지 않다!"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위에 내 인생을 쌓아올렸던 모든 기반이 무너졌다. 내 모든 행복은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 속에 있었다. 그 목표가 매력을 잃는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서 어떻게 다시 흥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살아가야 할 목표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p.190)

 

그는 여전히 공리주의적인 선에서 행복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지 않아야만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접어놓고 "자신의 행복이 아닌 다른 목표, 타인의 행복, 인류의 진보, 혹은 예술이나 기타 취미를 도구가 아닌 이상적인 목표로 삼아 마음을 쏟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행복이 아닌 다른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p.193)

 

 

 

책에 대한 설명 중간중간에 나오는 저자의 기록과 고백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재미 중 하나다. 1년에 걸쳐 하버드 클래식을 읽는 동안, 저자는 도중에 어머니와 다름 없는 애정으로 저자를 보살펴 주었던 미미 이모를 잃기도 하고, 책에만 빠져 세상으로부터 격리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며 정신적으로도 많은 번민을 했다. 책 앞부분에도 나오듯이 결국 책을 읽고 배우면서 알게 되는 건 '모른다'는 것뿐이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는 것이고, 인생에 대한 답, 세상에서 더 잘 살기 위한 답은 책 속에 없다. 알수록 모르게 되는 이 모순이 저자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나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과연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일지' 의심부터 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었고, 사랑하게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세상에 읽을 책은 많고, 한 번 읽은 책은 여러번 읽어도 좋고, 그렇게 평생 이 책들과 같이 살아가려면 무엇을 희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니까.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과, 그 책들에 대한 기록이 사람들의 손을 타고 계속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몇 세기 전, 큰 뜻을 품고 하버드 총장이 만든 하버드 클래식이 어느 여인과 그 여인의 외손자한테까지 전해지고, 그 외손자가 쓴 글이 한국에 있는 여인에게 전해지는 기적. 이건 책이라서 가능한 기적이 아닐까.

 

아, 좋아하는 게 책이라서 참 좋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책에 대해 '깨달았다'는 게 이상해 보일 지도 모른다. ... 대중문화를 잠시 끊고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펼쳐보지도 않을 책을 읽는다는 것과, 친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정표에 의지하여 여행하며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평생 이 책들과 같이 살아가려면, 나는 이 책들의 운명에 더 많은 것을 걸어야 한다.(pp. 2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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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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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가격은 반이지만 만족은 두 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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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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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보기에도 좋은 동화책. 환경, 이웃, 전통 등 여러가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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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의 추리 책방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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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북로거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분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 분이 알라딘서재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던 물만두 님인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알라딘 서재에 드나드는 것이 습관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물만두 님의 서재에는 이제 물만두 님의 동생 분께서 쓰신 글이 꾸준히 등록되며

고인을 그리워하는 분들과의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뒤늦게 서재 생활을 시작한 나로서는 물만두 님보다도 동생 분이 쓰신 글을 읽은 적이 더 많은데,

이 동생 분의 글이 언제나 나를 울린다.

언니와 여동생의 애틋한 마음, 자매애란 나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누구보다도 아파하고 날 그리워할 사람이 내 여동생일 것이다.

훗날 반쪽을 만나 가정을 꾸려 새로운 가족이 생겨도 그들은 나의 어린시절과 청춘은 모른다.

그 시간들까지도 모두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추억을 공유한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내 동생뿐. 그러니 그만큼 슬픔의 무게도 크지 않을까?

그렇기에 물만두 님의 여동생이 쓴 글을 볼 때마다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동생이 안게 될 슬픔과 외로움의 무게를 재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었더라면 <물만두의 추리책방>을 읽고 

그저 어느 북로거의 전문서평집을 읽었다는 감상 밖에 못 얻었을지 모른다.

나는 추리소설을 그리 즐겨 읽는 편도 아니고, 서평을 굳이 찾아 읽을 정도는 더더욱 아니라서

이 책에 실린 서평들이 어느 수준인지도 내 얄팍한 지식으로는 잘 모르겠다.

(물론 전문 서평가 분들의 평에 따르면 훌륭한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병상에서도 추리소설과 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언니,

동생의 마음 속에 언제나 살아있는 언니의 존재의 조각 하나가 이 책으로 남았다는 생각을 하니

한 구절 한 구절이 절절하게 다가오고, 그 어떤 문학작품 속 문장보다도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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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잇태리
박찬일 지음 / 난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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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알라딘에서 보고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태리라는 말이 주는 구수한 울림(아무리 이탈리아라는 말이 더 많이 쓰여도 '이탈리아 타올'이 아니라 '이태리 타올'이라고 해야 더 정겹고 친근하게 느껴지듯이 ㅎㅎ), 거기에 '이'자를 살짝 변형하여 '잇(eat)'이라고 표기함으로써 음식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리는 재치까지! 어찌 읽어보지 않을쏘냐.

 

읽어보니, 우왕~ 정말 재밌다. 저자 박찬일 님은 잡지 기자 출신으로 현재는 홍대 앞 <라꼼마>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셰프 오너라는 멋진 이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래서인지 잡지 기자 특유의 눈에 쏙쏙 들어오는 재치 넘치는 글솜씨와, 셰프로서의 예리하고도 애정 넘치는 관찰력이 어우러져 글과 내용 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탈리아에 그저 관광차 몇 번 드나든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오래 체류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담겨 있어서 어느 여행서보다도 내용에 깊이가 있고 알찼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나 맛깔스러운지. 이탈리아 요리는 국내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본고장에서 먹는 요리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요리 많이 먹지만, 실제로 중국의 가정집에서 매일 짜장면, 짬뽕을 먹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네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 한국식으로 변형된 파스타, 피자도 이렇게 맛있는데 ㅠㅠ

 

사실 이제까지 나는 이탈리아를 영화나 책을 통해서 자주 접해서 다른 나라보다는 많이 알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가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매체에 나오는, 관광지로 유명한 이탈리아가 아닌, 역사와 생활이 공존하는 이탈리아의 실제 모습을 직접 발로 걷고 피부로 느끼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그 소중한 여행길에서 무엇을 먹어야할까? <어쨌든, 잇태리> 이 책 한 권이면 고민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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