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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 - 생을 요리하는 작가 18인과 함께 하는 영혼의 식사
유승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9월
평점 :
글 쓰는 직업을 두고 흔히들 '밥벌이 하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행여 아이가 글쟁이, 소설쟁이가 될까 '이야기 좋아하면 굶어 죽는다'며 위협하던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생각도 난다. 헌데 밥벌이 하기 어려운 직업, 심취하면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 어디 글 쓰기 뿐이랴.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때로는 야근을 불사하며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일도 어렵고, 일년 꼬박 들여 농사 짓는 일도 어렵고, 하루에 백 몇 십여 집을 찾아다니는 택배기사의 일도,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선생님의 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적어도 글 쓰는 사람은, 그렇게 밥벌이 하느라 고단해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즐겁게 해줄 수 있으니, 글 쓰는 일로 밥벌이 한다는 건 제법 행복하고 보람된 일이 아닐까. 글 쓰는 일을 동경하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은 한국 식문화와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출판인 유승준이 김훈, 박범신, 황석영, 백영옥, 편혜영, 안도현 등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 18인을 직접 인터뷰하여 만든 책이다. 인터뷰의 대상이 된 작가들은 하나같이 작품 속에 음식을 등장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글로 밥먹는 사람들이 밥에 대한 글을 썼다'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음식이 나오는 책만 해도 이렇게 흥미롭고 매력적인 책이 많다면 한국 문학 전체는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음식이라는 주제는 같지만 작품 스타일도 천차만별이고 주제나 소재도 각각 달라서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은 전부 읽어볼 생각이다. 또한 작품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작가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마침 요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가와 교감하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작가들이 한명 한명 참으로 매력적이어서 앞으로 작가를, 소설을, 글을, 책 읽기를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이 책은 문학작품 속에 담긴 따뜻한 밥을 독자들과 함께 나눠 먹는 시간이자, 밥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삶 속에서 발견해낸 문학적 성취를 작가와 독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확인하는 공간이다. 바다에서 밥상을 건져 올리는 한창훈을 만나면 바다가 달리 보일 것이다. 지금은 온데간데없어진 잃어버린 시절의 추억을 되찾고 싶으면 황석영을 만나 꿀꿀이 꽃섬탕 한 그릇을 먹어보길 권한다. 편혜영을 읽으면 패스트푸드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새로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리와 사랑이 만들어내는 단 한 번이라도 좋을 호사를 누리고 싶다면 손미나를 만날 일이다. (p.9 작가의 말 중에서)
먹는 일과 사는 일은 닮은 점이 많다. 첫째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이다. 부자라고 해서 하루에 다섯끼, 열끼를 먹을 수 없고, 가난하다고 해서 맛을 모르고 포만감을 모르지 않는다. 둘째는 욕심을 부리는 만큼 몸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식욕 때문에 몸을 망치고, 건강해지고 장수하려는 욕심 때문에 되레 몸이 망가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탐하게 된다는 것이다. 먹으면 언젠가 배가 꺼지고 허기가 돌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생의 끝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은 음식을, 삶을 탐한다. 삶을 성찰하기 위한 수단인 문학 작품 중에 음식에 대한 글이 유난히 많은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속이 헛헛한 사람이 요깃거리를 찾듯이 삶이 허기진 사람이 문학을 찾는 것일까. 하늘은 높고 식욕은 그보다 더 높아진다는 배고픈 계절 가을. 음식에 관한 글을 읽으며 헛헛한 마음, 허기진 인생을 달래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