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일상, 시 교육 내일을 여는 지식 어문 22
강주현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 시들을 읽어야 한다. 내 삶에서 먼 시들이 아닌, 내 삶에서 가까운 시들을. 

그 시들을 읽었을 때 나는 더 쉽게 감동을 받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시들을 구해서 읽으려는 노력도 하고, 이런 노력들이 쌓이다보면 자연스레 나에게서 먼 시들도 읽으려 한다. 

이 단계까지 나아가야 시교육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시들을 멀게 하지 않았던가. 

먼 조선시대, 고려시대, 신라시대 시들부터 일제시대 시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국어교육에서 우리는 시 하면 어려운 것, 내 삶과는 동떨어진 그 무엇으로 인식하게끔 배워오지 않았던가. 

시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동원되던 엄청난 배경지식들... 그 지식들에 대한 이해도 힘든데, 그것을 바탕으로 시를 이해해야 했으니, 시를 배우는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극소수의 학생들은 시 배우기를 즐거워했겠지만. 

내 삶과 멀어질수록 이해하기는 더욱 힘들어지니, 시를 내 삶과 관계있는 것부터 배운다면 시도 참 재미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단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는 도시화가 80%이상 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엄청난 개발 등으로 거의 모든 마을이 도시로 바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도시의 삶을 다룬 시들이 교과서에 실려야 하고, 또 아이들에게 교육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마음에 와 닿는다. 

도시의 삶을 다룬 시들을 읽고, 그 시에 나타난 삶, 생각들을 자신의 삶, 생각들과 비교한다면 시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바로 내 삶을 구성하는 일부분임을 학생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역시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예로 든,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김기택의 '벽'이나 '사무원' 같은 시는 학생들도 쉽게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런 시들을 많이 발견해내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교사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수업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시를 더 가깝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잘 드러낸 책이고, 저자의 석사논문을 책으로 엮어 냈다는 만큼 체계가 잘 잡혀 있는 책이다. 다만 이런 책들은 독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교육에 종사하는, 또는 시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낯설게 보는, 다양한 방법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이런 시는 단지 재미없다고,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시를 배워야만 한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계에서 시라는 많이도 느린 작품을 읽고 배우는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창의성도 나오고,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다.  

이렇게 시로 가는 길에 우선 쉬운 포장을 해주는 작품들, 자신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들에 대한 교육으로부터 더 깊고 넓은 시교육으로 갈 수 있다. 이 책은 그걸 말해주고 있다.

===  덧말 ===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전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많은 석사, 박사 학위논문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그냥 교수들의 연구실에, 또 대학도서관 서가에만 있을까? 얼마나 읽힐까? 정말로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읽히지 않지 않을까? 이 책만 해도 시에 대한 교육을 다룬 논문임에도 도서관에만 있었다면 얼마나 알려졌을까? 

그런데 석사, 박사 논문을 이렇게 책으로만 내야 하나? 책으로 낸다는 것은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과연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읽으라는 의미일텐데, 이미 전공분야를 공부하는 대학생, 대학원생이라면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보며 될테고, 그렇담 독자는 겨우 이 분야의 교사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학위논문들을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으로 보내주지 않는가? 학위 논문 쓰는 사람이 이 비용까지 부담하는 것이 힘들다면(당연히 힘들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교과부, 교육청에서 논문 보조 수당이라는 예산을 확보해서 각급 학교 도서관에 보내주면 학위를 쓰는 사람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현직 교사들은 최근에 나온 관련분야 논문들을 참조해서 교육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지 않나. 

이렇게 되면 학위논문을 쓴 사람도 좋고, 현직 교사들도 좋고, 이런 공부를 한 교사들에게 배우는 학생들도 좋고, 여러가지로 다 좋지 않은가. 엉뚱한데 쓰이는 돈들을 이런 데에 쓰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산타령,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몰아대는 지금 현실에서 꿈같은 소리이겠지만...... 무엇이 꼭 필요한 일이고, 무엇이 포퓰리즘인지 구분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뇌, 생각의 출현 -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뇌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 

인간을 움직이는 기관이 뇌라는 생각, 우리 생각을 이끌어가는 기관이 뇌라는 생각이. 

그리고 뇌에 따라서 다른 생각, 다른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우리가 뇌의 어떤 부분이 고장이 나면 다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뇌가 변하면 자신도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생각에 뇌에 대한 궁금증은 컸는데... 

이 책은 단지 뇌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우주의 발생에서부터 생명체의 진화, 그리고 뇌까지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의 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만 공부해서는 안되고,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에 문외한인 내게는 이 책은 너무 어렵다. 우선 용어들이 생소하다. 그리고 뇌의 부분에 대한 설명들이, 도표와 그림으로 아주 친절히 설명이 되어 있음에도 낯설고,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듯이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등 온갖 과학 지식들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이해하기 쉬우므로, 나에게는 이해한다는 수준보다는 그냥 읽고, 대충 감을 잡는다는 쪽에서 의미를 찾았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어짜피 한 번에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차근차근 공부를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건 이 책에 학습주도형 인간이 되라는 말에서, 그런 인간이 되려면 1. 지식의 수준을 높여야 하고, 2. 질문을 품어서 성장시켜야 하며, 3. 학문에 미쳐야 하고, 4. 학습의 균형을 잡아야 하고 5. 목표량을 잘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타당하고, 또 우리 삶에서 지켜야 할 학문적 태도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은 뇌에 관한 대장정을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고, 한 번에 주욱 읽고 말 책이 아니라, 여러 번 이해될 때까지 계속 읽어야 하는 책이다.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도표와 그림, 사진들이 이해를 돕고 있고, 객관적인 자료들이 많이 제시되어 있으며, 다양한 학설 역시 제시되어 있어서 한 번에 끝낼 수는 없는 책이다.

아마도 과학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쉽게 읽힐 수도 있으리라. 이미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 있다면 그 지식들이 상호연계되어 더 나은 지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뇌, 결국 우리가 생각을 하는 것은 이 뇌 덕분인데, 이 뇌를 더욱 잘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인식하고 생활한다면 인간의 삶이 더욱 풍요로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럿이 한 호흡 - 천재 안무가가 말하는 성공하는 조직의 첫 번째 습관
트와일라 타프 지음, 한세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80년대 유행했던 서정윤의 홀로서기란 시의 첫부분이다. 이 부분이 맘에 걸렸었는데, 나는 늘 둘이 만나서 더 잘 설 수 있다고, 한자의 사람 인(人)은 결국 둘이 만나서 섰을 때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짐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시의 첫 구절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홀로 선 둘이란, 이미 뭔가를 이룬 자신의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니면서 남과 협력을 할 때 사람은 더욱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남과 만날 때 그 때는 서지 못하고, 오히려 남에게 흡수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 책을 쓴 사람은 자신의 분야에서 홀로 선 사람이, 이미 홀로 선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경쟁, 경쟁, 남을 짓밟고 올라설 때 성공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남과 함께 할 때 얼마나 행복하고, 또 성공할 수 있는지를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각 장의 제목들만 읽어도 좋다. 그 제목들을 이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도 훌륭한 읽기가 된다. 물론 각 장의 제목만 읽지 않고 내용을 읽으면 더 좋지만 말이다. 

협력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것 말고도 이 책을 읽으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졌던 예술 분야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저자가 발레를 한 사람이고, 안무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에게 많이 친숙한 감독부터 가수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과 어떻게 협력을 했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만물은 서로 돕는다로 번역되기도 했다)"의 예술계 판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예술계에서 어떻게 협력이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는가만을 말하는 책은 아니다. 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조직생활을 하는 전분야, 그리고 개인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전분야에 해당하는 책이다. 

읽고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무한경쟁이라는 이 세계에서 협력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 속담에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베르베르의 '협동,상호성, 용서'라는 글에도 협동이 결국은 가장 좋은 성과를 나타낸다는 실험결과도 나와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 책은 이 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성과주의에 빠져 협동의 중요성을, 나를 풍요롭고 융성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나와 함께 하는 남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냈기 때문이다. 

'남'이라는 글자를 자세히 보면 '나'라는 글자 밑에 'ㅁ'이 있다. 경쟁을 우선시 한다면 이 'ㅁ'이 나를 끌어내리는 존재로 다가오게 되고, 협력을 우선시 한다면 이 'ㅁ'은 나를 받쳐주는 나를 좀더 돋보이게 하는 존재로 다가오게 된다.  

이렇듯 나와 남이라는 말을 해석함으로써 협력의 중요성을 우리말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남을 또다른 나로 볼 때 그 때는 1+1이 2가 아니라, 3도 5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남을 닫힌 존재로 보지 않고 열린 존재로 볼 때 나를 잃지 않고 더 큰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잘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한 구절, '예술이란 환상과 현실의 협력이다. 그리고 현실이란 언제나 문제투성이기 마련이다.' 

예술이란 말을 교육이란 말로, 정치란 말로, 경영이란 말로 바꾸어도 이 말은 유용하다. 환상을 꿈, 희망이라고 한다면 늘 무엇은 꿈과 현실의 협력이지 않겠는가. 더 나은 세상을, 더 나은 나를 추구하는 그러한 모습. 그것은 바로 협력에서 나온다. 여럿이 한 호흡, 그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을 위한 디자인 - 개정판
빅터 파파넥 지음, 현용순 외 옮김 / 미진사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자인 하면 그냥 포장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포장 하면 상품의 실용성과는 상관없이 보기 좋게만 만든다는 의미가 떠오르고, 결국 디자인이란 말은 긍정적이 면보다는 상품성을 내세운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기 쉬운 말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벗어나게 해주는 책이 있다. 바로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 원래 제목인 영어를 보면 진실한 세계를 위한 디자인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진짜 세상, 진실한 세상이란 바로 인간을 위한 세상이라고 보면 이 번역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 처음에는 인간을 위해 어떤 디자인을 하지? 그런 디자인이 가능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디자인이란 말을 좁은 의미로만 해석하고 있는 편협한 생각 때문이다. 

디자인을 세상을 디자인 한다고 보면, 세상을 어떻게 디자인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대량생산의 신화, 폐물화에 대한 신화, 대중들의 욕구라는 신화, 디자이너의 통제능력 부족 신화, 더 이상 품질은 중요하지 않다는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파파넥의 주장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러한 신화에서 우리가 벗어나서 제3세계를 위한 디자인, 지적 장애인, 장애인, 불구자를 위한 교육과 훈련 장비의 디자인, 의료, 수술, 치과, 병원 장비를 위한 디자인, 실험 연구를 위한 디자인, 한계 상황 하의 인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시스템 디자인, 획기적인 발상의 디자인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그가 관심을 지니고 있는 분야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이 물신주의 시대에 물질적 궁핍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 라디오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깡통라디오를 보더라도 그의 디자인 원칙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그는 시혜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디자이너의 개입은 절제되어야 하고 최소화되어야 하며 민감하여야 한다고 하여, 최종적인 디자인은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 그 사회-문화에 맞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함께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디자인이라는 특별한 분야에 국한시켜서는 안되고, 통합의 관점에서 디자인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데서 더 잘 나타난다.   

여러 학문을 통합적으로 배운 사람이라야 사회를 위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2000년대에 접어든 지금에도 유효하다고 본다. 

파편화된 전공을 한 학생보다는  이것 저것 통합적인 전공 공부를 한 학생이 더 가능성이 있다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팀을 이뤄 일을 할 때, 더 잘 된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나라 대학이 갈수록 파편화되고, 자신의 전문분야만을 추구하고 있는 현실에서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굳이 이 책을 디자인에 관한 책이라고만 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이 시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어떤 삶을 살아야 인간을 위한(여기서 인간을 위한이란 말은 다른 존재를 지배하고 인간만을 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 이외의 존재와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 진정 인간을 위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삶을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렇다. 눈을 한 곳으로만 향하지 말고, 주위 여러 곳으로 향하면,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렇게 나에게 다가오는 존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 삶은 더더욱 풍성해 질 수 있다.  

단지 디자인이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멋진 디자이너, 파파넥, 이런 사람이 많아지길, 그리고 이런 이론에 동감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과 디자인의 교감 : 비터 파파넥
조영식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빅터 파파넥.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누구지? 역시 녹색평론은 내게 지금껏 알지 못했던 사실, 또는 사람, 생각 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당장 궁금하다. 디자이너라는데, 어떤 디자인을 했는지, 그는 무엇을 추구하는지, 녹색평론에 실린 짧은 글로는 다 알 수가 없다. 검색을 해 본다. 그의 저서가 죽 뜬다. 처음부터 그가 쓴 책을 읽기에는 왠지 망설여진다. 그렇담,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 책자를 먼저 보자는 생각이 든다. 어떤 책이 좋을까? 제목이 맘에 든다. 인간과 디자인의 교감이라.. 괜찮을 듯 싶다. 그래서 책을 집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 1. 1960-70년대 새마을 운동. 세상에 새마을이란 이름으로 전통 가옥을 모두 부수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그것도 초록, 빨강 등의 색칠을 해서 마을을 한 눈에 띄게 만들었다. 한 눈에 띈다기보다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연에서 이질적인 모습으로 떨어져 나온 건축물이 되고 만다. 이게 산업화를 이룬 마을 디자인이었다. 

생각2. 피맛골이 사라졌다. 종로의 양반들, 왕들의 행차가 있을 때마다 땅에 엎드려야 했던 백성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말을 피해다니는 길을 만들고, 그곳에 자신들의 삶터를 만들었던 곳.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곳이,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구나는 감탄을 자아내던 그곳이 없어졌다. 개발을 한다는 도시 디자인이었다. 

생각3. 북촌 한옥마을을 재개발한다고 했었다. 서울에 이렇게 멋있는 한옥들이 남아있는데, 이를 또 개발한다고? 아직도 우리는 먼 과거의 개발 망령에 시달리고 있단 말인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러 관광객들이 오지 않는가. 그런데 개발이라니, 북촌에 살고 있는 한 외국인이 개발 반대 운동을 했다. 한국에서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발해야지 개발해야지 하는데, 외국인이,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왜 개발하냐며 반대운동을 한다. 결국 북촌은 지금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생각4. 개발 열풍으로 콘크리트 밑으로 감춰졌던 청계천이 복원되었다. 아니 재개발되었다. 본래의 청계천을 드러내지 않고, 그 위에 인공 하천을 만들었다. 물도 자연적인 물이 아니라, 전기로 끌어다 쓰는 물이다. 엄청난 물 소비와 전기 소비를 하는 인공하천이 만들어졌고, 이를 청계천의 성공적인 복원이라고 자랑한다. 또 하나의 인공하천을, 정말로 도시다운, 전통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하천을 만들어 놓고 자랑스러워 한다. 콘크리트 하천, 멋진 디자인이다! 

생각5. 어느 유명 호텔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신문, 텔레비전에 오르내리고, 국회에서도 이 일이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전통 복장인 한복이 우리나라 호텔에서 출입금지 복장이 되다니, 이건 전통문화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모습을 떠나, 전통을 부정하는, 우리 전통 복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복장이라고 전세계에 공표를 하는 행위다. 전통을 살리되, 현대 감각에 맞게 개선한다는 그런 취지의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데, 한글 옷부터, 개량 한복까지 이런 취지의 복장이 많이 나오고 있는 지금,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결국 그 호텔은 사과를 했다. 잘못했다고, 잘못 전해진 것 같다고..

조영식이 쓴 파파넥에 관한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그는 전통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하려고 했고, 가난하고 소외받는 계층을 위한 디자인을 하려고 했다. 또한 그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생태디자인을 하려고도 했다. 이 책은 이런 그와 하는 가상인터뷰 형식으로 쓰여졌다.  

이 가상 인터뷰 중에 한국의 디자인에 대한 질문이 있고, 파파넥의 대답이 있었다. 물론 조영식의 생각이겠지만, 그리고 파파넥이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아서였겠지만, 일본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의 디자인은 잘 모른다고 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아마도 파파넥이 앞에 든 생각 다섯 가지를 직접 목격했다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디자인에는 정신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하는데,이 정신은 전통, 생태, 사회-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디자이너는 디자인에 관한 기술만을 배우지 말고,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을 함께 배워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우리나라의 이 다섯 가지 일을 디자인의 해악 중의 해악으로 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지금 우리나라는 전통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또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는 파파넥의 말대로 정신이 들어있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말이고, 그래야만 제대로 된 디자인을 하고, 디자이너로서의 책임도 다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실천하는 디자이너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그림을 통해, 그가 디자인한 작품들을, 좋다고 여겨지는 작품들과 반생태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이 책은, 파파넥의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저자 조영식이 자신의 생각으로 재해석해서 가상 인터뷰로 풀어가고 있어 읽기에도 편하고, 부분 부분 생각할 거리도 많아서 좋다.  

작고 읽기 편하지만, 작은만큼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더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읽는 동안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코퍼스웨이트의 "핸드메이드 라이프"란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즐거움과 같은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이제석이란 우리나라 광고인도 생각이 나고, 그가 상업광고에서 공익광고로 옮겨가고 있는데, 어쩌면 이 파파넥의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비슷한 관점에서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