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여행자 - 신경과 의사, 예술의 도시에서 뇌를 보다
김종성 지음, 경연미 그림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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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대 신경과 김종성교수님의 전작 <춤추는 뇌>를 읽은 바 있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운 책을 내셨다는 말씀을 듣고서 기대가 컸습니다. <춤추는 뇌>는 일반인을 위한 책이면서도 뇌에 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다뤄야 했기 때문에 일반인이 이해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4607547). 이번 책이 <뇌과학 여행자>라는 제목을 달고 있어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점이 많아 여전히 신비한 세계에 속하는 우리의 뇌를 탐색해 들어가는 내용이 아닐까 추측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김교수님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뇌의학을 전공하다보니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많았고, 해외여행에 나설 때마다 그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 거리를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셨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감히 여행기를 쓰겠다는 내 모습은 마치 말라빠진 조랑말 위에 올라타 기사 흉내를 내는 돈키호테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법이며, 나 역시 신경과 의하의 독특한 취향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여행 중에도 나의 눈을 오래 붙잡은 대상은 역시 뇌질환과 관련된 것들이었으니 말이다.(6쪽)” 아무래도 관심이 많은 분야에 시선이 더 가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해외여행을 적지 않게 다녔습니다만, 방문일정을 빠듯하게 잡고 또 방문목적에 매달리다 보면 방문한 지역을 둘러보려는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은 탓인지 김교수님의 열정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뇌과학 여행자>에는 ‘아폴리네르와 미라보 다리를 걷다’는 제목으로 파리에서 만나는 예술가들의 신경질환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풍차에 돌진하는 돈키호테’라는 제목으로는 스페인에서 만나는 신대륙발견과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신경질환을, ‘도스토예프스키, 끝없는 이야기’에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면서 러시아의 문학가와 예술가의 신경질환을, ‘헨델의 메시아’에서는 런던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음악가들의 족적을 따라가면서, ‘히틀러가 뮌헨에 남긴 것’에서는 히틀러가 앓은 신경질환을,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작가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경질환을, 북경에 초대받았을 때는 마오쩌뚱의 신경질환을 중심으로, 마지막으로 프랑스 프로방스를 방문하였을 때는 역시 이 지방출신 예술가의 신경질환에 관하여 추론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해외에 가신 목적이 단순하게 놀러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활동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춤추는 뇌>를 읽으면서도 놀랐던 바 있습니다만, <뇌과학여행자>에서도 김교수님이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예가 상당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특히 그런 지식을 적절한 자리에 잘 버무려서 읽을 수 있도록 한 글솜씨가 더욱 발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시면 제 생각에 동의하실거라 생각합니다. “10월 초, 파리의 맑은 공기가 나뭇잎을 가을빛으로 물들인다. 밤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의 잎 가장자리는 이미 진한 갈색으로 물들어 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호수에는 오리들이 놀고 있다. 갑자기 가슴이 저려온다. 파리의 가을이 너무 아름다워서일까?(47쪽)” 사실 저 역시 해외출장에 나설 때면 노트북을 메고 가서 하루 일정뿐 아니라 그날 느꼈던 점들을 소상하게 기록하고는 있습니다만, 그것들이 누군가에게 읽힐만한 수준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제 삶의 흔적을 남겨두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아폴리네르, 모파상, 마네, 피카소 등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는데 화두는 매독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예술가들 뿐 아니라 사료계인사들을 괴롭힌 질병입니다. 이 병은 특히 뇌신경계를 침범하여 치매를 비롯한 다양한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고급스러운 병이었는데, 이들에 대한 질병의 기록이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간혹 과거 유명인사의 사인을 추측하는 내용이 뉴스를 타고 전해지곤 합니다만, 그것은 단순한 가십거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그런 질환들은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고 그들은 이미 역사 아니면 추억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다만 질병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당시 질병으로 고통받은 그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어떠했는지 등에 관한 일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김교수님 덕분에 그동안 원인을 찾지 못하던 제 술버릇을 고칠 수 있는 보너스까지 챙길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돈키호테의 수면장애에 대한 설명부분입니다. “돈키호테가 한 손에 검을 쥐고 마치 적군과 싸우듯이 마구 휘두르는 와중에도 돈키호테의 눈은 계속 감겨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 자는 중이었고 꿈속에서 거인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81쪽)” 렘수면이 진행되는 동안 ‘렘수면 장애’환자는 팔다리를 마구 휘두르거나 소리를 지른다고 합니다. 제가 술이 조금 과한 날에는 자는 동안 심한 잠고대를 한다고 아내가 주의를 주고 있는데, 평소 무의식수준으로 눌려 있던 그 무엇인가가 음주로 인하여 억눌림이 풀리면서 의식으로 튀어 오르는 모양입니다. 최근 들어 금주를 결심한 일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할 때는 현지에서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과정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찾아볼 것들을 정리하여 일정에 잘 짜 맞추도록 계획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재미있습니다. 물론 계획한 것과 현지에서 마주치는 상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방문하는 곳에서 보다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해외여행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식견을 넓히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하여 책으로 써내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는 김종성교수님의 남다름에 감탄하게 됩니다.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는 색다른 면에서의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될 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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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란 무엇인가 태학산문선 102
심노숭 지음, 김영진 옮김 / 태학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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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문학을 다룬 책을 몇 차례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한문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울림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정민, 안대희님께서 태학산문선 발간사에서 “옛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그때 그들이 했던 고민은 지금 우리와 무관한 것일까? 혹 그들의 글쓰기에서 지금 우리의 문제에 접근하는 실마리를 열 수는 없을까?(4쪽)”라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을 것 같습니다. 두 분은 진정한 의미의 ‘옛날’이란 언제나 살아있는 ‘지금’일 뿐이므로 옛글과의 만남이 우리의 나태해진 정신과 무뎌진 감수성을 일깨우는 가슴 설레는 만남의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심노숭 산문선 <눈물이란 무엇인가>를 읽게 된 동기는 옛사람들이 슬픔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찾아가다가 읽게 된 전송열교수님의 <옛사람들의 눈물>에서 소개하고 있는 심노숭의 ‘눈물이란 무엇인가(淚原)’라는 글의 일부를 읽고 놀랐기 때문에 그 원문을 읽어보고자 해서입니다. 심노숭은 상사(喪事)가 생겨 초빈(草殯)으로부터 시묘(侍墓)에 이르기까지 어떤 때는 한 번 곡하고도 눈물이 나다가 어떤 때는 천백 번 곡해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때가 있음을 기이하게 여겨 그 연유에 따져본 글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장)에 있는 것인가?(51쪽)”라는 의문으로부터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의 의학수준으로 해부학이나 생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심노숭이 찾아들어가는 과정은 다분히 철학적이지만 과학적이기도 합니다. 다만 동양의학이 뇌의 기능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정신이라고 보이는 마음이 뇌가 아니라 심장에 있다고 추정하고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라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마음을 비유하자면 땅이고 눈은 구름이다. 눈물은 그 사이에 있으니 비유하자면 비와 같다.”고 한 점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마르코스와 안토니우스 할아버지>에서 인용하고 있는 멕시코 설화에서 세상을 만든 신들의 꿈인 구름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들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세상을 만든 신들이 자신들로 변했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 구름의 고통이 눈물로 변했다. 일곱 번째 구름은 그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최초의 신들은 일곱이었는데, 일곱 구름은 바로 땅을 위한 빛이 되려고 했던 신들의 바람이고 소망이었던 것이다.(75쪽)”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 눈물이 비가 되었다는 점에서 심노숭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노숭은 기(氣)의 감응으로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므로 “눈물은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또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52쪽)”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멋있는 해석이 아닙니까? 자신이 “제사에 임해서 곡(哭)을 해서 눈물을 흘리면 제를 지냈다고 여겼고 그렇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여겼으며, 때때로 느꺼움이 있어 눈물이 나면 신이 내 곁에 왔구나라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황천길이 멀구나하고 생각했다.(53쪽)”고 하니 조금은 지나침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고인을 생각함에 있어 진심으로 애도하면 뜻이 통하여 눈물이 나온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심노숭이 이처럼 슬픔과 눈물에 대하여 깊이 천착한 것은 “아내를 잃고 너무 슬퍼하는 자는 세상에서 비웃는 까닭에 아내를 잃은 자는 풍속을 두려워하여 그 슬픔을 숨긴다.(17쪽)”던 조선조에서 무려 26제의 시와 23편의 문을 남겨 아내를 애도하였다고 해서 참으로 독특하다고 합니다만, 그만큼 감성이 풍부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심노숭의 산문집을 옮긴 김영진교수님의 해제라고 할 ‘심노숭론-조선 후기 한 문인의 독왕고래(獨往孤來)’를 보면 심노숭은 역대 문인 가운데 소동파와 원진․백거이를 가장 흠모했다고 합니다. 심노숭(沈魯崇)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태등(泰登)으로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7대손이라고 합니다. 부친은 영·정조 연간의 문신이며 정변록(定辨錄)이란 당론서를 남긴 심낙수(沈樂洙)입니다. 1790년 진사가 되었으나 1801년부터 6년간 경상남도 기장에 유배되는 등 정치적 격랑 속에 불우한 장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김영진교수님은 한문으로 쓰여진 심노숭의 산문들 가운데 47편을 골라 우리말로 옮기고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고사 혹은 옛문인에 대한 설명도 각주로 달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책의 말미에는 원문을 붙여 대조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47편의 글은 제1부 도망문, 제2부 인물전과 일화, 제3부 산해필희, 제4부 문예론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의 눈물>에서도 소개드렸습니다만, 도망문(悼亡文)은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는 글입니다. 때로는 형식적으로 짓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는 도망문이 문예문으로의 완성도를 갖추어 갔다고 하는데, 심노숭의 도망문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눈물이란 무엇인가’에서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제사 때나 죽은 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가지고 있는 죽은 이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담아 진실한 감정으로 죽은 이를 기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의 도망문에 담겨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죽은 아내에 대한 심노숭의 절절함은 아내와 이별한 지 24년이 지나 55세라는 만년에 아내의 무덤을 찾아 ‘현감 부임 길에 다시 아내 무덤 앞에 서서’라는 글에서 여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2부 인물전과 일화에서는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기록문으로 들은 이야기에 자신의 생각을 짧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제3부 산해필희(山海筆戱)는 “평생 바둑, 장기 잡희(雜戱) 등을 알지 못하더니 궁하게 지냄에 할 일도 없고 근심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두려워 몸을 움츠리기도 하여 이러한 것을 잊기 위해 한결같이 붓에다 부치미 이 또한 희(戱)일 뿐이다. 산과 바다 사이에 거처가 있어 기록한 것을 ‘산해필희(山海筆戱)’라 이름한다”고 적은 서두처럼 요샛말로 하면 꽁트에 해당하는 글도 있고, 신변잡기에 해당하는 글도 있습니다만, 앞서 2부에서처럼 인물을 평하는데 있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다소 감정이 실린 듯한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대립이 심각하던 시절에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근래 벼슬길의 병폐’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벼슬자리가 특정집단에 의하여 장악되고 있는 점을 과감하게 지적한 것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4부는 요샛말로 평론이 될 것 같습니다. 시, 문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있는데, 예를 들면 “나는 또 시는 마땅히 심력(心力)을 써야지 기력(氣力)을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기력을 쓰면 자취가 남고, 자취가 남으면 중정화평의 도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시작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아우 태첨과 논쟁을 즐긴 것 같습니다. 단원의 속화에 대한 그의 견해도 재미있습니다. “속화(俗畵)는 화가의 화재(畵材) 가운데 가장 하류의 것이다. 이런 까닭에 비록 빼어난 가량을 발휘해도 사람들이 다 천시한다. 하지만 진실로 묘(妙)의 경지에 나갔다면 산수화이든 속화이든 가릴게 무엇이 있는가?”라고 하였으니 예술에 대하여 열려있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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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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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책을 구입해서 읽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김난도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경우도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라는 부제 때문인지 이제 이순(耳順)을 목전에 두고 있는 처지에 굳이 찾아 읽을 것까지 싶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책읽은 핑계로 끌어다대는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을 같이 읽고 공감해보고자 한다는 핑계가 이 책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대학 4학년인 작은 아이가 읽었다 해서 무엇을 느꼈는지 아니면 조언이라도 더해줄 점은 없는지 읽어 보았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구입한 책이 266쇄라는 점과 예스24에 올려진 리뷰가 200개가 넘는 화제작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구심이 들뿐 아니라 오히려 젊은이들을 헷갈리게 하는 점도 적지 않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그대 눈동자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도 없다",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일’이 이끄는 삶, ‘내 일’이 이끄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담겨진 글들의 논지흐름이 일관되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명강의교수라는 출판사의 홍보글이 사실이라면 역시 강의하는 것과 글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 같지 않구나 싶기도 합니다.(혹시 서울대학교 전체 학생들이 강의잘하는 교수를 뽑는 투표를 하게 된 것일까요? 전공분야가 엄청 세분화되어 있어 모든 학생들이 모든 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상대비교평가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삶에 조언을 한다는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 것도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습니다. 나의 조언을 듣고 인생항로를 결정한 사람에게 나는 모종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로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결정적인 힌트를 달라하지만 조언하는 입장에서는 선택 가능한 범위에 대한 장단점을 냉정하게 설명하고 결정은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일 듯싶습니다. 제가 10여년을 근무한 직장을 그만두려 할 적에 역시 선배로부터 조언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배님은 제게 조언하기를 선택가능 영역을 A4용지에 적고, 각각 장단점을 모두 적은 다음 장점과 단점들의 무게를 달아서 추가 기우는 쪽으로 결정하라고 조언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김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했답니다. “한 7~8년 전쯤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과의 2학년 학생이 내게 찾아와 조언을 구했다. 아버지는 강력하게 사법고시를 보라고 요구하는데 본인은 다른 쪽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학생의 뜻에 손을 들어줬다.(241쪽)” 학생의 진로문제는 학생 자신의 문제인 것 맞습니다. 하지만 그가 속해있는 가족, 특히 부모님과 의논해서 최종결정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3자가 되는 것입니다. 김교수님이 내세우고 있는 근거가 과연 그 학생의 진로결정에 결정적으로 타당한 것이었을까요? 그 학생이 결정한 미래에 책임을 지실 수 있습니까?

제가 큰아이의 진로를 두고 금년 초에 크게 대립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소위 스펙쌓는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큰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과에 지원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회적 여건이 좋지 않다고 판단되는 과에서 지원하라는 유혹을 받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병원까지 쫓아가 미래를 설명하고 설득한 끝에 처음에 마음에 두었던 과에 지원을 했고 좋은 성적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전공은 같지 않지만 같은 의학을 전공하고 있으니 현재 상황이나 미래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던 점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상황은 변하기 마련입니다만, 그래도 비교적 변화의 진폭이 크지 않은 분야가 의학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범위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김교수님께서 조교를 지내셨다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의 최고위과정에 입학하려 지원하는 국회의원, 정부 및 각 기관의 3급 이상 공무원, 각군의 장성, 정부 투자기관의 장(長) 및 임원, 언론기관의 고위간부, 사기업체의 장 및 임원, 사회단체 지도자 들 가운데 소위 SKY라는 명문대 출신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262쪽). 즉 사회적으로 성공하는데 학벌이 중요한 요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그 과정에 지원하시는 분들이 필요한 것은 명문대 가운데서도 명문대인 서울대학교의 최고위자과정을 수료했다는 증명과 그 과정을 통하여 얻게 되는 인맥이 필요했던 때문일 것이고, 소위 SKY에 해당하는 명문대학 출신들은 그런 과정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요즘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경험이 중요한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소위 스펙이라는 것을 쌓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한우물을 파야 성공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 준비에 들어갔고 행정대학원에 입학하면서까지 시도한 세 차례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학문의 길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분명 잘 한 일입니다. 다른 대학원생들이 모두 고시에 몰입하고 있으니 성적이 잘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니 크게 자랑할 일도 아닌 듯합니다. USC에 유학하여 행정학을 공부하신 것도 잘 한 일이지만, 돌아와서 전공을 살려 교수의 길을 걷고자 도전했지만 이 역시 좌절로 끝나고 말았고, 다시 방향을 바꾸어 소비자학과교수를 지원하게 된 것은 분명 잘 하신 일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치열하게 머리를 싸맨 흔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특히 수능시험 성적이 잘 나와 진학한 법과대학의 “법학과목이 재미도 없었던 데다 판검사 되는 것이 그다지 탐탁지도 않아서, 주로 술먹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246쪽)”고 한 고백을 읽고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공부에 별다른 고민없이 술로 보내는 동안 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하여 머리를 싸고 공부했지만 낙방한 분이 받은 상처와 고통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10여년을 근무하고서는 다양한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인생행로가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지금까지의 다양한 영역의 경험이 종합되어 좋은 일로 마무리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마치고서,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다.”는 결론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리뷰를 쓸 때, 제목 이야기도 가끔은 합니다만, 아드님께 주셨던 편지에서 인용한 것이네요. 제목이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도 다시 읽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철없던 시절 “이런 증상이 있지 않아?”하면서 건강한 친구들을 몰고가서 환자로 만들던 장난이 생각납니다.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들은 아프지 않습니다. 지극히 건강하단 말씀입니다. 당연히 청춘을 건강하게 청춘을 향유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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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겐 친구가 있잖아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로마편
루카 스파게티 지음, 김은정 옮김, 김민호 그림 / 멜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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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외모의 비밀>에 “음식을 먹는 행위를 이처럼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묘사한 것처럼 우리 역시 입데 들어가는 음식들에 마음을 두변 이를 더욱 즐기게 되어 만족감도 높아진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침 같이 근무하는 동료의 책장에서 본 기억이 있어 빌려 보았습니다만, <먹고 기도하고 가랑하라>에 등장하는 루카 스파게티가 쓴 속편 격으로 ‘너에게 친구가 있잖아’라는 부제가 달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로마편>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첫편을 아직 보지 못했으니 비교할 수 없겠습니다만, 루카 스파게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로마편>을 읽으면서 ‘그래 바로 이거야!’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되었습니다.  

 

루카 스파게티는 1970년 로마에서 태어났으며 성(姓)이 정말 스파게티랍니다. 2003년 9월, 로마를 찾아온 미국 여류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와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완전히 인생역전이 되고 말았다는데, 그 이유는 길버트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이 바로 그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인지도가 높아져 이런 저런 덕을 보게 되었고, 길버트와의 만남을 루카의 시각으로 정리하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로마편>를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루카는 재미있는 로마인이면서 동시에 글재주도 참 대단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로마편>에 자신의 성장과정을 ‘로마여 이 밤을 망치지 말아다오’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와 함께 미국대륙을 동서로 왕복 횡단하는 과정을 담은 ’미국에 간 로마 남자‘에 담고, 그리고 엘리자베스 길버트와 만나 겪은 로마이야기를 ’로마에 온 미국 여자‘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훅 끌린 부분은 바로 첫 번째 장에 해당되는 ‘로마여 이 밤을 망치지 말아다오’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요즘도 TV에서 방영하는 ‘걸어서 세계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살고 있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서 지역축제가 열린다고 하면 쫓아가서 같이 즐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외국을 방문할 때 가장 답답한 것은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 예를 들면 지역문화, 토속음식을 잘하는 식당, 축제, 명승지 등등에 대한 정보가 사실을 콕 짚어 정리된 자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지역을 백배로 즐기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루카는 로마에 가면 적어도 이런 것들은 즐겨야 된다는 것들을 콕집어내서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모든 로마인이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품고 있는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대해 깨닫고 그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는 도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루카 스파게티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어릴 적부터 로마를 특별하게 생각했다.”는 마무리를 읽으면서 루카라는 젊은이의 인간성을 알게 되는 느낌입니다.

한번 더 놀라는 것은 70년생이라는데 그의 혼을 끌어당긴 음악들이 16년이나 나이차이가 나는 저와 매우 흡사하다는 점입니다. 즉 제가 젊었을 적에 즐겨듣던 음악들을 이 친구는 초등학교에 다닐때부터 빠져들었다는 것인데 정말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친구가 ‘미국에 간 로마 남자’에 적어놓은 미국방문기인데 아무리 겁나는 것없는 젊은이라고 해도, 동서횡단철도인 암트랙으로 동부에서 서부까지 그리고 장거리 노선버스인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서부에서 다시 동부로 횡단을 하는 경험은 저도 미국에 있을 때 꼭해보고 싶었지만 끝내 해보지 못한 것이었고, 또 한가지 뉴욕 양키스 경기를 운동장에 가서 보았다는데, 제 경우는 꼭 가보고 싶었던 미네소타 트윈스의 야구,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미식축구,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농구경기는 물론이고 미네소타 스타스의 하키경기도 꼭 보고싶었지만, 그 역시 마음뿐이어서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는 고백을 드립니다.

아마도 저와 이 청년의 차이는 “나는 언제나 화끈한 낙관주의자이다. 되는 일이 하나 없을 때도 컵에 반이-주로 포도주-차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컵은 안보고 포도주만 보는 낙관주의자임을 자칭한다.(98쪽)”라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청년이 동서로 왕복하면서 횡단하면서 구경하는 미국의 도시들에 대한 기록은 아마도 제가 곳곳을 방문하면서 적어두었던 기행문보다도 더 간단한 것은 아마도 충분한 준비없이 한 여행이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미국에서 여행을 떠날 때는 적어도 한달 전부터 방문지역에 대한 관광정보에서부터 방문경로 등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모아 여행계획을 짜야 성공적으로 여행을 마칠 수 있고, 또 그렇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암트랙과 그레이하운드 탑승기가 놀라웠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감동은 없었는데 세 번째 부분에서 또다시 새로운 감동을 얻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태리 남성의 기질에 대한 이러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만, 루카 스파게티가 ‘믿거나 말거나’라는 제목으로 적은 프롤로그에서 “인생은 알 수 없고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 이것을 리즈가 내게 가르쳐주었다. 또 그녀는 세월에도, 먼 거리에도, 변하지 않는 진정한 우정의 가치를 가르쳐주었다. 그 우정이란 그녀와 내가 여러번 말해왔듯이 ‘A different kind of love(또 다른 종류의 사랑)이다.(12쪽)”라고 적은 부분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탈리아 남성이 여성과 우정을 쌓을 수 있다고?”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었고, 그런 관계로 지내고 있다는 결론을 얻고서 놀랐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버릇입니다. 143쪽에 나오는 캐롤라이나 채플힐은 아마도 노스캐롤라이나의 주도 덜햄과 붙어 있는 도시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캐롤라이나주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구분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로마를 방문할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읽어서 찾아볼 곳을 챙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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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죽이기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15
전은강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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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은 1994년작 영화 <마누라죽이기>에서 결혼 5년차 부부의 갈등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봉수(박중훈)와 소영(최진실)은 죽고 못할 것 같던 신혼의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사사건건 부딪히는데, 특히 봉수는 매사에 철저하기만 한 소영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부부는 같은 영화사에서 사장과 기획자로 일하고 있지만 영화제작에 관한 결정은 소영이 좌지우지하고 있어 더욱 무기력해진 봉수에게 영화배우 혜리(엄정화)가 접근하자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더구나 혜리가 봉수에게 소영과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자고 요구하자 이혼에 절대로 응할 리 없는 소영의 성격을 잘 아는 봉수는 고심 끝에 마누라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소영을 죽이기 위하여 온갖 꼼수를 쓰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나자 급기야는 킬러(최종원)를 고용하게 된다는 코믹 영화입니다.

전은강 장편소설 <아내죽이기>를 손에 들면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은 고 최진실에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마누라죽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봉수는 결국 마누라를 죽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만, <아내죽이기>는 어떨가 궁금해집니다.

소설의 얼개는 남자주인공의 직업이 강력사건을 뒤쫓는 형사라는 점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중심이 되는 스토리라인은 아내가 자신이 잡아들여 처벌을 받도록 한 성범죄자와 바람이 나서 끈질지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자신의 판단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은 아내와 이혼을 하는 것은 범죄자에게 굴복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내는 범죄자와의 전쟁에 몰입하느라 자신에게 소홀한 아내와 친정의 어려운 사정에 냉담한 남편에게 점점 지쳐가다가 재력도 있고 성적매력도 많은 경수에게 빠져들게 된다는 설정인데, 스토리의 전개를 보면 경수가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형사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문학평론가 하응백님이 “범죄는 늘 일어난다. 사소한 오해와 탐욕과 질투와 집착 때문에. 그 최후의 마지노선을 넘는 순간 살인이 일어난다.”라고 추천평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의 남자주인공은 강력사건의 현장을 오랫동안 누비고 다닌 경험을 결국은 자신을 옭매 들어오는 아내와 경수를 한꺼번에 단죄하는데 사용하고 마는데, 동료 형사들 역시 완전범죄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에서 범죄의 냄새를 맡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내죽이기>는 남자주인공 형사가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에 매달리는 중간중간에 발생하는 강력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끼워 넣고 있는데, 그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주위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법테두리 안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슬쩍 비치는 등 간단하지만은 않은 구조를 엮고 있습니다. 형사로서의 직업에 투철한 남자주인공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작가가 스토리를 여는 사건으로 알콜중독자의 사망과 관련하여 아들을 정신질환자로 모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가 지능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했고 자신을 정신질환자로 몰고 있다고 주장하는 아들을 다루고 있고, 결말에 가서는 아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아내는 장치를 둔 것은 아주 치밀한 구성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소설가 살인사건에서 소설 속에 15쪽 분량의 소설을 두고 있는데, 소설을 이해하기 위하여 남자소설가와 섹스를 마다하지 않고 소설을 이해하려드는 양인혜라는 인물을 통하여 소설을 어떻게 해부하여 읽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 또한 작가의 독특한 발상이라 여겨집니다. 결국 양인혜의 소설분석을 통하여 소설가를 죽인 범인을 검거하는 개가를 올린다는 마무리가 됩니다. 사건추적을 통하여 가해자 혹은 피의자의 심리가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정리해보면 작가는 형사도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형사로서는 유능하지만 남편으로서는 최악인 남자도, 참을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다.”는 평론가 하응백님의 지적대로 범죄를 예방하고 단죄하는 형사도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설정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초반부터 아내의 배신에 대하여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공공연하게 밝히면서 ”다만 그녀를 보내고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그녀의 끝없는 배신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114쪽)“는 독백은 스스로를 기만하기 위한 자기최면에 불과할 것입니다.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을 다시 인용합니다. “정말 사랑했다면 아무리 싫어하고 아무리 미워해도 죽여서는 안됐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주길 바라야 했어요.(587쪽)” 그렇습니다. 정말 아내를 사랑했다면 아내를 놓아주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경수는 주인공을 떠나온 아내를 결국은 버리고 말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때 가서 다시 안아주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집중해서 읽었습니다만, 옥의 티를 한군데 밖에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187쪽 아래에서 4번째 줄, ‘유착배우자’는 ‘유책배우자’일 것 같습니다. 결론은 치명적 사랑을 그린 소설입니다만 주인공이 다루는 사건들이 읽는 재미를 줄 뿐 아니라 아내의 배신에 대한 주인공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어 흥미진진한 게임을 들여다 보는 느낌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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