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 내 인생의 전환점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BN 정치부 강상구 기자님이 쓴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색다른 점을 느꼈습니다. 저자는 손자병법을 처음 읽은 것이 패기만만하던 20대 후반이던 때라서 손자병법을 통하여 발굴해낸 ‘싸움의 기술’ 혹은 ‘승리의 비법’을 통하여 세상을 향한 싸움을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손자병법을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정해진 과정을 따라가는 것으로 인생이 결정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자가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마흔이 되어 손자병법을 다시 읽어보면서 젊었을 때 눈에 띄었던 기술이나 비법이 아니라 그의 철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으면서 이제 고희를 앞에 두고 손자병법을 처음 읽는 저는 어떨까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고 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싸움이라고 할 정도의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해서 <손자병법>을 읽어두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세상은 예전보다 훨씬 커졌고 나는 부쩍 작아져 있었다. 사회에서의 지위는 높아졌지만 말은 조심스러워졌다. 어릴 적 그토록 쉽게 거부했던 또는 당당하게 논쟁을 벌였던 상사의 지시에 더 이상 토달지 않게 됐고, 후배들에게는 지시보다는 부탁을 하게 됐다.”고 바뀐 사회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일하는 곳의 독특한 분위기는 젊어서는 윗분의 지시에 토를 단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제가 그 나이가 되니 분위기가 바뀌어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70년대 초반 학번들은 ‘낀세대’라고 자조하는 경우가 많은지 모릅니다.

머리말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남의 밥그릇 빼앗기를 논하기 전에 내 밥그릇 빼앗기기 않을 궁리를 해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가 아닌가”하는 부분입니다. 밥그릇 싸움에 주목하는 이유는 2000년 의약분업정책도입과 관련하여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오랫동안 이어져 오는 와중에 마치 밥그릇을 빼앗기기 않으려는 의료계의 저항으로 포장되어 매도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던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안전한 일반의약품을 슈퍼에서도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 의료계의 입장을 의료계와 약계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시켜 왜곡하고 있는 것은 특정단체의 전략에 별생각 없이 말려들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는 환자들이 병원에 올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 밥그릇을 내주는 꼴이지만, 의료계에서는 국민편의를 고려하여 정책도입에 찬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전쟁이라면 국가 간의 군사적 갈등 이외에도 다양한 갈등구조를 싸움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면, 손자병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다양한 싸움의 기술 혹은 전략은 ‘나의 강점으로 상대의 약점을 치는 것(109쪽)’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상대를 꼭 굴복시키는 것 말고 상대를 품어 안는 접근이야말로 손자의 온전한 천하를 다투는 법(61쪽), 즉 싸움에서 이기면 적의 지갑은 내 것이 되기 때문에 싸음을 하는 동안 내 돈도 아껴야 할 뿐 아니라 적의 돈도 축나지 않도록 해야 승리로 얻는 과실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자는 <손자병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서 삼국사기, 난중일기 등 우리 사료를 인용하여 독자가 손자병법의 요결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을 꼭 짚고 있습니다. 다만, 책읽기를 마치면서 다소 아쉬웠던 점은 <손자병법>을 잘 해석하고 요약하고 있어 이해가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만, 소제목 아래 인용하고 있는 <손자병법>의 요체를 활자체만 달리할 것이 아니라 색조를 달리해서 저자의 해석과 구별이 되었더라면 하는 점과, 몇 구절의 인용이 반복된 점은 저자의 시각에서 보면 강조하는 의미로 보입니다만, 읽는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반복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68쪽의 경상우병사와 진주목사의 품계와 관련된 인용, 286쪽 마한왕 관련 사항 등 같이 일부 사료들은 사실관계가 조금은 분명하지 않은 점도 있어 읽으면서 혼란을 겪은 점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6쪽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 책의 순서가 <손자병법>의 원문과 동일하게 구성하였다고 밝히는 것과 후세에 와서는 원래의 순서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인용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는 말씀을 사족으로 덧붙입니다.

생활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는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협력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자가 맺음말을 통하여 전하는, “<손자병법>은 싸움의 기술을 가츠친다. 그 가르침에는 ‘싸움의 기본은 속임수’라는 치사한 내용도 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의 밑바닥에는 경쟁자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인정하는 철학이 숨어 있다. ( … ) 즉 얼핏 보면 싸움의 기술을 담고 있는 것이라 보기 쉬운 <손자병법>은 ‘서로에 대한 존중’을 전하고 있는 것”이란 깨달음이라는 저자의 메시지에 공감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철수 사용설명서>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럼 <영희 사용설명서>도 같이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늘에 실 따라간다.’고 철수하면 반사적으로 영희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철수-영희 이야기를 들어온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은 모 케이블 TV방송의 인기프로그램 <남녀탐구생활>에서처럼 같은 사안에 대한 남녀의 시각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기대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첫 장을 펼쳐 읽으면서 영희 사용 설명서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오늘의 작가상을 선정한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루저 문학의 최고 극단”, “루저를 다룬 새로운 작품이 더 이상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란 평과 함께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는 전언처럼 우리시대의 젊은이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독특한 구성으로 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장편소설이라는 분류를 달고 있지만, 마치 가전제품 박스를 풀었을 때 발견되는 제품사용설명서-사실은 사용후기까지 친절하게 덧붙이는 사용설명서는 본적이 없습니다만-의 구조를 차용한 철수의 시각에서 바라본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구성을 소설류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요즘 젊은이들의 트렌드와 동떨어진 보수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주인공 철수와 동갑내기인 큰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머릿속에서 비교해가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결혼적령기에 접어들고 있는 큰 아이는 제짝을 찾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결국은 중매라는 절차를 통한 결혼시장에서 짝을 얻게 되는 상황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보니 저 역시 중매로 결혼을 했으니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이 럭비공 튀듯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시각대로 철수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자신이 처한 상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분석결과를 토대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점입니다. 이것도 요즘 젊은 세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분명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자신의 스펙을 업그레이드해서 시장에 내놓는 적극적인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요즘의 트렌드라고 한다면 철수의 대응은 자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설명서를 업그레이드해보겠다는 정도의 지극히 소심함의 극치라고 보여지는 것은 기성세대의 안타까움일까요?

다시 부모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철수의 부모나 누나는 철수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읽기나 했는지 의심되는 대목은, 팔랑귀처럼 누군가의 꼬임에 따라 학원, 개인교습 등등을 시켜보고는 느려터진 철수의 학업성취도에 조기실망하고 집어치우는 행태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할 때 여러 차례 해주었던 말이 있습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공부를-학교공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열심히 해야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칭찬과 격려를 먹고 쑥쑥 자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보니 훌쩍 커져있더라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자라는 패턴은 아이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을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철수아버님이 “쓸모없이 태어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46쪽)”라고 소심하게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지만 조금은 압박하는 수준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전석순 작가님은 우선은 상품설명서를 치밀하게 쪼개보았음이 틀림없습니다. “사용하기 전에”에서 “먼저 철수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글머리를 열고 있는데, 이 말은 <철수사용설명서>를 읽기로 한 것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으로도 읽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주인공이 처한 상황으로 독자를 몰아가는 다른 소설과는 달리 “제품 규격 및 사양”을 통하여 우리의 주인공 철수를 소개하는 특별한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뿐만 아니라 상품 Q&A, 사용후기 등을 모드에 따라서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는 점도 독특합니다. 철수라는 제품을 사용하는데 있어 주의해야 할 점들을 준비하기, 사용하기, 관리하기, 주의하기 등으로 나누어 두었는데, 우리의 삶 자체가 지나치게 기계화 상품화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작가의 문제제기로 읽혀집니다.

어떻든 사용설명서를 업그레이드해가면 자신이 어떤 제품인지 명료해질 것이라는 철수의 생각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210쪽). 즉 사용설명서란 제품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인데 철수라는 제품은 본인도 어떤 기능을 가진 제품인지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만 오작동으로 인하여 몸에 열이 나는 동안 철수는 추웠는데 설명서가 업그레이드되면서 몸 안이 따듯해지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희망이 보인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즈음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청년실업, 대학등록금 등등의 문제는 과거에 대학정원을 마구 늘릴 때부터 예측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청년실업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와중에 소위 3D업종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외국으로부터 인력을 수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볼 때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든 철수 부모와는 다른 시각에서 아이들을 봐야되는구나 하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는 말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 죽음을 죽이다 - 생명 연장의 비밀을 찾아서
조너던 와이너 지음, 한세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몇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제목을 정하는 일이 책을 쓰는 일만큼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는 책을 읽어왔다 생각을 하는데, 이 책의 제목 <과학, 죽음을 죽이다>만큼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기가 막힐 정도로 간명하고도 명쾌하게 드러내는 제목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장수학연구의 전망을 살피는 제목으로 죽음을 죽여 장수의 꿈을 이룬다는 제목은 촌철살인의 묘의 극치라 생각합니다.

원저의 제목은 <Long for this world>는 'not be long for this world' 즉 ‘죽어가다’, ‘오래가지 않다’로 번역하는 관용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2010년 쏘냐 정이 처녀작으로 발표한 미국과 한국의 작은 마을에 나뉘어 살고 있는 한국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소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정도의 의미가 담긴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이언스(The Sciences)』지의 기자 겸 편집자로 활동한 바 있고 컬럼비아대학교 언론학 대학원에서 과학글쓰기를 가르치는 조너던 와이너 교수는 이 시대의 가장 주목받는 과학저술가로 지목되고 있으며 퓰리처상을 비롯한 다수의 도서상을 수상한 경력에 걸맞게 장수학에 대한 전망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와이너교수는 인간이 불명의 삶을 구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케이브리지대학교 노화이론가 오브리 데비드 니콜라스 드 그레이(Aubrey David Nicholas Jasper de Grey)와 노화연구의 현주소를 따라가면서 연구성과와 앞으로의 전망 등에 대한 대화를 기본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와이너는 오브리교수가 인간이 앞으로 500년을 살 거라고 예측했다. 그러고는 다시 천 년을 살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의미는 그가 영원을 암시하는 것이며, “오브리는 앞으로 50년, 빠르면 15년 안에 인간이 이렇게 새로운 수명을 누릴 거라고 내다보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12쪽)

오브리의 전망이 일부만 맞아도 스튜어드 올샨스키박사와 스티븐 어스태드박사 사이에 걸려 있는 세기의 내기는 어스태드박사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싱거운 게임이 될 것 같습니다. 내기는 2000년 텍사스의대 노화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스티븐 어스태드박사와 인구학자인 스튜어드 제이 올샨스키박사가 5억달러를 건 내기는 2150년에 끝나게 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최장수 인류인 프랑스의 장 칼망 할머니의 기록 122세를 뛰어넘어 150세를 기록하는 인류가 출현할 것이라는 쪽에 어스태드박사는 걸었다는 것입니다. 스튜어드 올샨스키 박사의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5226340>와 스티븐 어스태드박사의 <인간은 왜 늙는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4065245>를 읽어보시면 인간의 노화연구에 대하여 시야를 더 넓게 가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와이너교수는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20세 전후였던 선사시대 인류의 기대여명이 이제는 80세를 넘어서게된 이유를 추적하고 있고, 오브리의 이론에 따라 인간의 불멸화를 이룰 수 있는 연구의 핵심부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는 인간은 자신의 복제품인 자손을 낳고 이들이 자립해서 살 수 있을 때까지 전력을 다해서 보육하고나면 노화과정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데 중점을 두다 보니 자신의 몸에 생긴 하자를 보수하고 수리할 겨를이 없어 노화에 빠지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50여년 안에 중대한 정신적 충격이나 대학살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한 개인이 사실상 영원히 사는 것이 가능해진다.(143쪽)”는 로날드 클라츠의 말이 현실화 될까요?

오브리교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였는데 유전학을 전공하는 아델레이드 카펜터와 운명적 만남을 계기로 노화연구에 열정을 쏱게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이론노화학자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노화에 관한 이론을 설계하고 관련 분야의 실험을 하는 과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통하여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는 실험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드리가 찾아서 차단하려고 하는 노화에 간여하는 일곱 가지 치명적 요소를 들고 있습니다.(177쪽) 그리고 일곱 가지 가운데 일곱 번째 세포핵의 유전자 안에 축적되는 변이 때문에 발생하는 암세포를 차단하는 방법을 빼놓고는 여섯 가지는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거의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답니다.

정리를 해보면, 와이너교수는 “제1부 피닉스, 불멸에 대한 꿈”에서 영생을 추구해온 인간의 꿈을 살펴보고, “제2부 히드라, 끊임없는 재생”에서는 노화를 막기 위한 이론과 연구성과를 추적해 불멸의 가능성을 짚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목한 부분은 오히려 “제3부 생명 연장의 비밀을 찾아서”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좋아, 괴짜 오드리교수의 연구가 드디어 성공해서 인간이 영생할 비밀의 문을 열었단 말이지. 그래서 어쩔건데?”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대는 부분입니다. 연구성과는 당연히 모든 인류가 같이 향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는 수백년을 살고 누구는 여전히 수 십 년 밖에 살 수 없는 현실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까요? 영화 <바이센테니얼맨; http://blog.joinsmsn.com/yang412/4112614>이 생각납니다. 영생할 수 있는 로봇이 사랑했던 여인이 죽고 없는 세상에서의 삶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뒤따라 작동을 멈춘다는 결말이 슬프고도 공감되었습니다.

그리고 와이너교수도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영생을 추구하는 인간은 대체적으로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려는 독재적 성향을 가진 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까요? “만약 과거 제국의 황제들이 영원히 살 수 있었다면 우리는 지구상 거의 어디서도 여전히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302쪽)”고 한 와이너교수의 지적에 공감하며, 이들 독재자들이 세계를 장악하기 위하여 벌이는 전쟁으로 지구는 조용한 날이 없을 것이며, 종국에는 그 독재자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죽지 않는 인간이 늘어남에 따라 지구는 포화상태가 될 것이며, 또한 영생을 얻은 인간이 자손을 퍼뜨리는데 관심이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젊은 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태를 초래하여 결국에는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은퇴라는 단어를 잊고 연구에 매몰되어 살던 영국 국립의학연구원의 피터 메더워의 팀에서 같이 일했던 생물학자 마틴 래프의 말에 공감합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앞으로 500세까지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해준다면 글쎄요, 나는 아주 비참한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 내 인생은 아주 좋았습니다.  (…)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구요? 모든 단계를 사랑하는 것, 좋은 운을 얻는 것, 충분히 건강할 것, 즐겁게 살아갈 것, 그리고 항상 다음 단계를 고대하는 것이죠.(300쪽)”

번역서를 읽을 때 책을 옮긴 분의 느낌이 책읽기에 참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 영생을 얻게 된다는 내용을 다룬 책에 대한 번역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ㅇㅇ개소리 2018-02-04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저의 제목은 <Long for this world>는 ‘not be long for this world‘ 즉 ‘죽어가다’, ‘오래가지 않다’로 번역하는 관용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2010년 쏘냐 정이 처녀작으로 발표한 미국과 한국의 작은 마을에 나뉘어 살고 있는 한국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소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정도의 의미가 담긴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long이 갈망하다 이런 뜻이 있어요.

윤진명 2018-02-0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렇군요, 공감합니다.

조와너 2018-02-04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아요!
 
제인 구달의 생명 사랑 십계명
제인 구달.마크 베코프 지음, 최재천.이상임 옮김 / 바다출판사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인 구달의 생명사랑 십계명>은 지난 해 예스24 다락방 페스티벌 행사에서 같이 했던 기부 이벤트를 통해서 구입한 책입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1858730). 오랫동안 책상머리에 두고 눈팅만 해오다가 이번에 드디어 완독에 들어갔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3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구달 박사는 "타잔을 읽으면서 타잔의 애인인 제인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아프리카 밀림을 동경했다고 하는데, 저 역시 제인하면 타잔의 애인이 먼저 떠오른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57년부터 아프리카 케냐에서 시작한 침팬지 연구는 1960년 여름에부터는 탄자니아 곰베로 이어졌고, 1965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동물행동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후 탄자니아로 돌아와, 1975년에 설립한 제인 구달 연구소를 통하여 야생 침팬지에 대한 연구에 몰입하였다고 합니다.

구달 박사는 야생동물에 대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하기 위하여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있는데, 1996년에는 우리 나라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최재천 교수의 말씀에 따르면 한국에 영장류연구소가 세워지면 손수 침팬지를 데려오겠다고 약속을 하셨다(25쪽)고 하는데, 제가 2004년부터 추진하던 영장류연구소가 퇴직하면서 표류하면서 결국은 사람들의 관심을 잃고 말았던 일이 생각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구달 박사는 서문을 통하여 “우리가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른 여러 생물들에게 좀 더 윤리적인 태도를 갖고 자연 세계를 가까이 느끼자는 내용(8쪽)”으로 이 책의 공저자인 마크 베코프 박사와 함께 제안하고 있는 “열 가지 계명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면, 우리의 관점이 달라질 뿐 아니라,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이 십계명은 간단하지만 그 의미는 심오하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십계명은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며 살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자연 지킴이로서의 우리 역할을 분명히 해 줄 것(21쪽)”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십계명하면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예언자 모세가 떠오릅니다. 기원전 13세기 경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받던 히브리 민중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땅으로 향하는 길에 홍해도 도달했을 때 이집트 병사들이 급박하게 뒤쫓는 절체절명의 순간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그려내던 영화장면도 생각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이르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해서 흔들리는 민중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시나이 산에서 계약 의식(儀式)을 통해 십계명을 받아들던 장면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러면 그 구달과 베코프의 <열 가지 계명>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계명 : 우리가 동물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기뻐하자

두 번째 계명 : 모든 생명을 존중하자

세 번째 계명 : 마음을 열고 겸손히 동물들에게 배우자

네 번째 계명 : 아이들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가르치자

다섯 번째 계명 : 현명한 생명지킴이가 되자

여섯 번째 계명 : 자연의 소리를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자

일곱 번째 계명 : 자연을 해치지 말고 자연으로부터 배우자

여덟 번째 계명 : 우리 믿음에 자신을 갖자

아홉 번째 계명 : 동물과 자연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돕자

열 번째 계명 :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희망을 갖고 살자  

 

열 개의 계명은 통하여 두 저자들이 오랜 세월 동물을 연구하면서 얻게 된 동물에 대한 사랑에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각각의 계명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양한 사례와 연구결과들을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 같이 우리가 미처 모르던 놀라운 사실들도 적지 않습니다(61쪽).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약물개발과정 등에서 사용되는 실험동물이 남용되거나 학대받는 상황에 대한 저자들의 견해에도 관련 분야에 종사했던 경험을 되살려 보면 충문히 공감하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지만, 이런 실험들을 인간세포를 이용하거나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하거나 아니면 자원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동물이라면 어땠을까 한번 상상해보자. 영장류, 개, 돌고래, 박쥐, 비둘기, 혹은 지렁이, 혹은 집게벌레였다면 말이다. 아마도 여러분은 집게벌레가 된 자신을 상상하면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88쪽)”는 저자의 상상이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카프카가 <변신>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듯이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었더니 자신이 벌레로 변신되어 있었다면 아마도 놀라서 숨이 끊어졌을 것 같습니다.

매 계명을 시작하면서 저자들은 계명이 의미하는 바를 짧게 요약하고 있고, 마지막에는 저자들의 희망을 담은 메시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잘 들어나지 않았지만, 검은 색의 글씨는 구달박사가 황록색의 글씨는 베코프박사가 쓴 내용으로 보입니다. 두 분의 말씀이 별 다른 설명이 없이 섞여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다소 연결이 미흡한 부분도 없지 않은 듯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동물사랑을 배우도록 하기 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습니다만, 애완동물에 대하여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저로서는 조금은 덤덤한 느낌이란 말씀을 드립니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전기자동차 등을 이용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주장도 전기생산에는 화석연료도 어느 정도 참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 - 바람 부는 길에서 동문선 현대신서 93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지금 어느 길 앞에 서 있다. 이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는지, 그것은 나도 모른다. 아니, 어디론가 데려가 주기는 할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길이 나를 무언가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리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9쪽)”
일찍이 느림의 미학을 우리에서 설파한 피에르 쌍소의 느림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는 ‘바람부는 길에서’라는 부제처럼 ‘길’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길에 대한 이야기를 앞에 인용한 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 수 있는 삶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어느 날 세상에 태어난 우리네 삶이 바로 인생이라는 먼 여행길을 떠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하는 최희준씨의 노래 하숙생의 가사말이 가슴을 적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쌍소는 다양한 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골 동네길로부터 숲속에 난 작은 오솔길,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 기찻길, 고속도로, 그리고 그 길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을 듣고 있다 보면 바로 내가 그런 길을 걸은 기억이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합니다. 먼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적에는 걸어서 20~30분 걸리는 학교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싶어 자전거를 사달라고 많이 졸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우정, 그리고 오늘날엔 사라져 버린 시골의 들판은 얼마나 자전거와 잘 어울리는가!”라고 시작하는 자전거길에 대한 쌍소의 이야기야말로 저의 청소년기의 바람과 꼭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같이 자전거를 타고 들판으로 동네를 넘나들면서 내달리면서 삶을 공감하는 일이야말로 청춘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낭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2때 던가 어느 일요일에 군산에서 전주까지 42km정도 되는 길을 “자전거로 한 번 갔다 와 볼까?”하는 친구의 바람에 우쭐해서 군산을 출발했지만, 절반인 익산에도 가보지 못하고 되돌아오고 말았는데 돌아오면서 힘이 빠져 헉헉대다가 지나는 자동차에 사고가 날 뻔하기도 한 적도 있습니다.
요즈음은 기차를 타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만, 기차여행, 특히 완행열차에 얽힌 추억은 참 많습니다. 제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차여행은 남원에서 근무할 때 갑자기 쏟아진 눈 때문에 차를 두고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면서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설경이 너무 황홀했을 때입니다. 그리고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Sault Ste Marie에 있는 철도길이 가을철 단풍과 겨울철 설경이 참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보지 못해서 지금도 아쉬운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쌍소는 기찻길의 매력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아름다운 풍경을 해쳐서는 안되고 그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기찻길도 승객에게 큰 위안을 주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가보아야 할 길이기도 하구요.


기찻길과 관련한 쌍소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기찻길 근처에서 밤을 보내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저 역시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나이아가라폭포 근처에서 하루밤을 묵게 되었을 때 바로 옆으로 기찻길이 지나는 것을 모르고 모텔을 정하는 바람에 밤늦게까지 기차가 지날 때마다 잠에서 깨는 바람에 다음날 운전하는데 애를 먹었던 추억도 지금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고속도로에 대한 쌍소의 이미지는 상당히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의 건설 자체가 자연파괴적인데다가 빠른 이동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느림의 미학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과속감시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는 교통순경이 과속을 감시하였기 때문에 위험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운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과속감시카메라가 많아졌다고는 해서가 아니라 과속을 하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바짝 긴장해야 하는 것이 싫어지는 탓에 규정속도를 지키면서 여유를 보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굳이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217쪽)”는 파스칼의 경구를 기억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씽소는 특히 시골길을 예찬하고 있습니다. “흔히 시골길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기복이 심하다. 기복이 많은 길을 걷고 있으면, 지구의 등뼈 위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98쪽)”고 한 비유는 정말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몇 해 전부터 아내와 함께 서울 도심 혹은 인근에 있는 야트막한 산책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쌍소가 말하는 지구의 등뼈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드는 코스가 어디일까 되짚어 보았더니, ‘도시 위의 산책로, 능선’이라는 부제를 달았던 안산근린공원에서 백련사에 이르는 능선길이 딱인 듯합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1872339). 서울의 도심을 굽어보면서 바위산의 능선을 따라가는 코스는 정말 지구의 등뼈를 밟는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산책길을 따라가면서도 더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있습니다만, ‘느림의 미학’을 더 깨우치게 되면 지금보다 더 주위를 살피고 숲을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월든에서도 호수의 새로운 발견이 화두가 되었습니다만, 저 역시 마음속에 호수를 담고 있어서 호수를 발견한 쌍소의 생각에 공감하게 됩니다. “그곳의 산들을 비추어 주고 있는 맑은 호수가 하나 필요했다. 마침 그런 호수를 발견하였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 속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차갑게 얼어버린 깨끗한 몸이 되어 물 속에서 나왔다. 그러자 나를 친절하게 받아 준 이 지구에게 다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39쪽)”라는 쌍소의 말을 듣다보면, 느림의 미학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1954년에 개봉된 <길; La Strada>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명화극장을 통해서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거립니다만, 트렘펫으로 연주되는 애절한 주제가 ‘젤소미나의 테마’는 리노 로타가 작곡한 것으로 듣는 이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스토리는 떠돌이 차력사로 나오는 안소니 퀸이 젤소미나라는 지능이 조금 모자라는 여인을 사서 조수로 데리고 다니다가 써커스단에서 동료와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젤소미나와 헤이지게 되는데 세상을 떠돌아다니다가 젤소미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나는 외톨이라고 절규하면서 후회한다는 스토리라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길’의 의미는 인생의 험한 세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평화롭던 어느 일요일 갑자기 몰아닥친 전쟁을 피해서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를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우리 부모님들이 겪은 것처럼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도 ‘길’은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쌍소 역시 같은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2차 세계대전 기간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해 6월의 40일간. 국가적인 재난의 시간에, 우리들이 기도하고 신음하고 사랑하고, 또 먹고 자기도 했던 곳이 바로 길 위였다.(26쪽)” 아마 우리 부모님들도 같은 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쌍소가 길은 샘이고 빛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우리 부모님들도 길 위에서 보내야 했던 위기의 순간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아 결국은 오늘날의 번영을 이루어내어 우리에게 전해주셨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걷는다. 걸으면서 지평선에 점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라 믿고 있지만, 절대로 지평선에 닿을 순 없을 것이다.(271쪽)”라고 쌍소는 말하고 있습니다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형태로든지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한다면 걷고 걷다보면 언젠가는 생을 마감하는 지평선에 이르게 될 것이니 서두른다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삶을 여유있게 즐기는 태도 역시 중요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