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던 문지방 위에서 읽었을 것이다. 완역판으로 다시 읽으며, 과연 13살 꼬맹이가 줄거리나 제대로 이해했을까 회의적이다. 하물며 저자가 천재라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으리라!

[프랑켄슈타인] 읽은 지 벌써 3주가 흘러가는데, 나는 아직도 일상에서 불쑥불쑥 메리 셸리를 떠올린다. 200여 년 전, 10대 소녀가 소설을 통해 던진 화두가 어떻게 21세기에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지 작가인 메리 셸리에게 탄복한다. 상상하기를 좋아했다는 그녀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몽이라도 꾸었을까, 나 역시 상상한다.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프랑켄슈타인]은 초자연적 소재로 공포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가벼운 내기의 결과로 탄생했다(워낙 유명한 썰이다. 메리 셸리의 남편, 시인 바이런 등 같이 어울리던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하여 공포소설 만들기 내기를 했다는 건). 메리 셸리는 자신이 꿈에서 보았던 영상을 9개월 집필로 살을 붙여 세상에 내놓았다.


'최초의 SF'라는 평가를 받는 이 "위대한" 19세기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는 [위대한 괴물의 탄생]이 알려준다. 이 그림책에서는 태어난 지 11일 만에 어머니를 잃은 메리 셸리의 유년기 삶이 결코 평탄하기 않았으며, 소녀가 그 와중에도 지적인 열망을 풀어내려 노력했음을 보여준다(이는 작품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이나 '월튼 선장'의 지식욕과 탐험정신으로 싱크로된다). 또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아켈레스 건이 도리어 이 재기 발랄한 소녀에게는 범접불가한 창의력을 끌어낸 플러스 요인이었음을 암시한다.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그 우아한 문체가 아름답지만 답답하게 느껴졌다. 황망한 죽음이 자주 발생해 21세기 인간으로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메리 셸리 자체가 평생, 21세기 현대인에게는 생소한 이유의 죽음들(예를 들어, 어머니의 산욕열 등)을 가까운 이로부터 자주 경험해왔기 때문에 그런 설정이 작위적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을 고딕, 공포소설로 분류하기 이전에 철학소설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그 정도로, 19세 소녀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보기에 과히 심오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빛나는 작품이다.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망자의 세계와 소통을 강렬하게 희구해왔을 어린 딸의 염원은 다른 이에게 쉽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어준 것만 같다.



** 메리 셸리는 1700년대 태어난 사람인데도, 교통수단 훨씬 발달한 오늘날 나보다 훨씬 스케일이 크게 논다. 우리 나이로 딱 중2 시점, 반항심 최고조이던 시절 아빠와 의붓엄마가 멀리 떠나보낸 스코틀랜드에서는 광활한 자연과 어울렸고, 더 크게 한 방 가족에게 어퍼컷 날릴 때는 아예 유부남과 국경을 넘어 도망간다. 그림책에서는 우리 나이로 고딩인 메리 셸리가 아내 있는 연상남과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면서도 죄책감이나 불안감은커녕 해방감을 만끽하는 표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나는 아래 페이지를 [위대한 괴물의 탄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페이지로 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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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1-23 0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가장 놀랐던게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니었다는...

200여년전 작품이라기에는 너무 세련된거 같아요~!!

얄라알라 2023-11-23 15:29   좋아요 0 | URL
˝괴물˝이라는 그 존재의 청산유수에 저는 그만 입이 떠억 벌어졌습니다

stella.K 2023-11-23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동에서 나오기 전 것을 가지고 있다가 안 읽어서 중고샵에 판 기억이 있습니다. 얄라님 이리 쓰시니 읽고 싶네요. 올린 그림들 책에 나온 그림인가요? 암튼 좋은데요?
저는 그 문지방 때 뭘 읽었나 모르겠습니다. 어린이 문고본 떼고 어른이나 보는 세로줄 소설책을 읽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나 캐리같은 공포소설 읽으려고하다 실패했네요. ㅋ

얄라알라 2023-11-23 15:31   좋아요 1 | URL
^^ 안녕하세요 Stella k님

[프랑켄슈타인] 읽기 전에 검색 많이 해서 문동 번역으로 택해 읽었어요^^ 추천들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프랑~]읽고 메리 셸리가 궁금해서 책 뒤지다가 결국 그림책으로 갔습니다.

저 그림은 그 그림책에 나오는 건데, 연애 즐거움에 흥분된 표정으로 도망가는 메리 셸리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지 않나요?

yamoo 2023-11-23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프랑켄슈타인 완역본을 읽은 적이 없는데, 얄라님 리뷰를 보니 봐야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구미를 당기는 리뷰 아주 잘 봤습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이 좀 힘들었겠다는 느낌이 있긴 했는데, 진짜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냈네요. 그 어둡고 우울함이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동력이 된듯합니다~^^

얄라알라 2023-11-28 01:14   좋아요 0 | URL
네네 yamoo님께 강렬한 영감을 줄지 모를 작품입니다

저는 작품에서 ‘괴물‘로 불리는 존재의 화려한 언변(?)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19살이 이런 글을 썼다고??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10대 중반 메리 셸리가 얼마나 매력적이었으면 아내 있는 남자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일 수 있었을까? 그런 궁금증도 들고요^^

그럼 좋은 화요일 맞으시기 바랍니다. yamoo님^^
 


2020년 3월 마스크 수급이 불안정하던 때, 신분 증빙용으로 여권 들고 약국에 줄 서 있었던 기억을 꺼내니 친구가 "정말? 정말?"을 연발하며 놀라워하는 걸 보면서,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새삼 확인합니다. 코로나가 확산 일로에 있던 때, 아파트 단지 내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항균력 99.9% 시트지와 '턱스크 혹은 노마스크 주민은 엘리베이터 이용 마시라'는 경고문도 붙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가 확산되던 때는 서울 소재 병원에 입원했다가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거주지역이 탄로(?)났다는 한 모녀가 전국구 뉴스거리가 되었더랬죠. 코로나 확진 사실을 숨기고 과외를 했던 인하대 대학원생은 실형까지 받았고요. QR 코드 확인 없이는 공공장소 출입이 어려워졌기에 홈리스 분들이 (도서관이나 백화점에 비치된) 정수기를 이용 못해 물조차 마시기 어려웠다는 인터뷰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 터널을 지나는 와중에 너도나도 '포스트코로나'를 예측했지요. 드디어 그 터널을 지나온 2023년 시점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특히 저는 코로나가 개인 및 공동체적 차원에서 정신 건강에 미친 영향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포스트코로나 #팬데믹 #마스크


위 키워드로 검색하면 아찔할 정도로 많은 신간이 쏟아집니다. 시류를 파악하는 데 부지런한 저자와 발 빠른 출판사들 덕분이지요. 책이 워낙 많아서, 고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으로 고른 이유는 지은이의 약력 때문이었습니다. 정수근 교수는 연세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존스홉킨스대학교를 거친 심리학 박사입니다. 네임벨류에 넙죽하는 사대주의적 사고법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자의 전문성이 '코로나 시대 정신건강'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다뤄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저자는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봄, 즉 약 6개월 안팎의 기간 동안 [팬데믹 브레인]을 집필했다고 후기에서 밝힙니다. 또한 본인이 코로나바이러스 전문가가 아니므로 바이러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거나, 최신자료를 활용하다보니 정식으로 학술지로 출간되지 않은 연구들에도 기댔다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 편집을 야박하게 했다면 230쪽을 150쪽으로 충분히 줄일 수 있을 본문은, ""코로나는 우리의 뇌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라는 부제를 Q&A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1, 2, 3부로 구성된 책의 얼개를 가볍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1부 "코로나는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

1부 "코로나는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인류는 '역사상 최대 규모 사회적 고립 실험' 중이라는 전제하에 팬데믹을 겪은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서술합니다. 저자는 감염 후유증으로 섬망, 브레인 포그, 그리고 인지저하증을 언급하고, 사회적 고립의 결과로 인지능력이 감소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심리학자인 만큼 심리학 실험 결과들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나 축소가 해마(인지능력과 관련)의 축소로 연결된다는 실험, 코로나로 인한 스킨십 부재 혹은 감소가 뇌의 체감각 기회를 감소시켜 인지능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무서운 연구결과도 언급합니다. 특히, 소위 "코로나 베이비"의 인지능력 저하에 대한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기 까지 합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2011~2019년 사이 태어난 아기들 IQ 98~107인데 반해서,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태어난 아기들 IQ 평균은 86, 2021년생 아기들 아이큐 평균은 78.9 였다고 합니다. (뭣이 중한디? 심리학자는 역시 '인지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구나를 느끼게 했던 1부 였습니다)

2부 "전 지구적 방역 현장이 된 우리의 일상"


2부에서는 "전 지구적 방역 현장이 된 우리의 일상"이라는 타이틀로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끌 이야기들을 카드뉴스 수준으로 나열합니다. 예를 들어, 줌 피로(Zoom Fatigue)의 원인이나, "마기꾼"의 비밀(마스크의 인식방해 효과), 마스크와 언어습득 능력의 상관관계 등등 이제는 상식이 되어 버린 익숙한 화두들이 각각 소챕터를 이루는 구성입니다.

저는 2부를 읽다 여러 차례, 책을 덮었는데요.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종종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백신접종 후유증의 개인편차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믿고 기대하느냐에 따라 후유증을 심하게 혹은 약하게 겪도록 만들 수 있다"(135)고 주장합니다. 출판사측에서는 친절하게도 저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우리가 예측하고 기대하는 만큼 아프다"라는 소제목을 달아 주었지만 저는 고개 갸우뚱 했습니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협조적인 사람일수록 작업기억용량이 크다는 주장도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해당 주장을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리학 문외한이라 "작업 기억 용량"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중장기적 손익 계산을 더 잘하는 사람이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더 협조적이라는 주장으로 윗 글을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작업 기억용량"만으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자발적 협조성을 설명하기는 부족한데요. 반례를 들자면, 외부로부터의 시선, 즉 문화적 압력이 강한 한국과 일본에서 유럽과 미국에 비해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 지키는 데 철저했습니다. 

3부 "펜데믹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

3부는 "팬데믹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제목에 담긴 낙관적 뉘앙스 그대로 인간이 팬데믹을 잘 이겨내리라는 데 저자가 한 표를 던집니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자여서 그런지, 흥미롭게도 그 재난 극복의 힘을 "인간 뇌의 가소성"에서 찾습니다. 즉, 심리한 문외한이자 평범한 독자로서 제가 보기에 그 관점은 1부와 2부에서 내내 보이는 전지구적 차원의 재난에 대한 개인화된 해석과 해법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정수근은 팬데믹 이겨내는 해법으로, 종교 활동 등 사회적 교류와 지지 높이기, 감정 조절력 높이기, 공포 영화를 즐겨주지, 꿀잠 자기 등 지극히 개인화된 차원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 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앞서 말했던 QR 코드가 없어 공공시설의 정수기 사용을 못했던 홈리스분에게 공포 영화를 즐겨서 회복 탄력을 높이거나 꿀잠 자라는 해법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저자 정수근 교수는 코로나 시기와 현재에도 활발하게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충북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저자의 최근 이력을 살펴보았는데, 아쉽게도 코로나 팬데믹과 관련한 심리 문제를 다룬 글은 없더라고요. 저는 저자가 2024년쯤에 [팬데믹 브레인] 후속판을 전문가의 관점에서 다시 내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직 정수근 교수만 제시할 수 있는 화두와 날카로운 분석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팬데믹 브레인]이 코로나19의 한가운데서 잠정적인 썰 위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한 걸음 멀어져서 차분하게 분석한 내용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팬데믹 브레인]을 읽으며, 오늘날의 미디어가 전문가적 지식이라는 것을 얼마나 빠르고 널리 대중화시키는지, 전문가적 지식이 얼마나 평준화되고 있는지 느꼈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에서 제시된 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SNS인풀루언서가 발행하는 가쉽거리 포스팅이나 뉴스에서 많이 읽어왔거든요. 이 점은 흥미롭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지난 주, 충청북도의 한 사찰에서 찍어 온 사진입니다. 물이 깨끗하지 않았고, 음용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없는데도 기꺼이 바가지를 들어 물을 드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코로나 시절이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광경입니다.


다시 한번,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과 망각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코로나와 정신건강에 관한 다른 글을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좋은 자료 아시는 분들은 댓글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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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1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8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회학자 윤여일, 1990년대론






1. 90년대 규정
■ 단수가 아닌 복수plurality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이질적.시간성들이 교차하고 혼재하고 갈등.
■ 90년대 언제부터?
: 1987년, 1991년에 주목! 
: 대비법, 단절론의 유행_ 1980s 대항문화 vs. 1990s 문화주의
: 1999년 밀레니엄 신드롬

2. 문학
■1980s 군부정부의.언론기본법으로 비판언론탄압받고 잡지 폐간됨.
■ ˝문학동네˝ 1994 창간, ‘투사-사상가-선각자로서 작가‘에서 시장의 관심을 받는작가로
■ 문단권력논쟁
: 문언유착_ 조선일보와 문학동네
: 크게 보면 비단 문학계 뿐 아니라.학계, 문화계, 정치권, 언론계 등 여러 영역.내.권력의 문제

04. 사상
■1980년대 ‘불온서적‘ 사회과학서
■ 포스트모더니즘.등장
■지적.주체성의 문제, 탈식민화
■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분기하는.사상계: 키워드는#타자#욕망#감각#몸#해체#개성#개별자

05. 문화
■ 소비대중문화의 출현과 확산
: 대중문화지의.범람.그.자체가.특징적인.대중문화현상


『비평과 전망』은 창간 이후 출판자본을 갖춘 대표적 문학지 문학과 사회」,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와 그 편집위원들을 ‘문단권력‘으로 지목해 줄기차게 비판했다. 이들만이 아니라민음사, 실천문학사, 세계사 등이 발간하는 당시 문학지는 주식회사인 출판사와 공생관계에 있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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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9-30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90년대가 정말 잡지의 르네상스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잡지라는 매체가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문단권력의 특징 중의 하나는 자신
들은 절대 권력이 아니라고 부인하
는 게 아니겠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몽실언니]를 도돌이표로 반복해 읽으면서, 불과 70여 년 전 우리 사회에서 쓰이던 어휘, 정서, 인간관계의 스킬 등에 크게 이질감을 느끼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물질문화의 변화 속도에 비해 정서적 측면의 변화속도는 당연히 더 느릴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내가 [몽실언니] 인물들의 정서적 반응과 인간관계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두려움도 느꼈다. 21세기, 2~3배 빠르게 재생하기의 속도로 내달리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 앞으로 나 역시 이해받지 못하고 변화를 파악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크다.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한 권 더 찾아 읽었다. 일부러 6*25 전쟁을 배경 삼은 작품으로 골랐다. 추천사에 반가운 존함이 보인다. "보리" 윤구병 선생님(사장님^^)께서 출판사 식구분들께 권정생 선생님 작품을 그림책으로 내보자고 제안하시어 세상에 나온 책이다.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작가 권정생을 이런 방식으로 추모하고 애정 하시는 윤구병 선생님의 마음이 각별하게 느껴졌다. (아쉽게도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권정생 선생님께서 영면하셨다고 한다)


영혼이 되어 산천을 떠도는 어린이 곰이와 북군 병사의 전쟁 회상담이 담담하게 펼쳐지기에 더욱 처연하게 아픔이 전해지는 이야기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일러스트레이터 이담 작가님의 그림으로 그 정서가 더 진하게 피어오른다.

우리는 못나게시리 그 오누이끼리 싸운 거야. 호랑이한테 서로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누나는 동생을 호랑이에게 떼다밀고 동생은 누나를 떼다밀고........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아저씬 누구랑 전쟁을 하셨어요?

곰이가 물었습니다.

-국군하고 싸웠지.

-국군은 어떤 사람들이었어요?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야.

-어느 나라를 지키는 사람인데요?

-이름만 다르지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야.

-똑같다니요?

-다 같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들이니까.....

- ........

- 다만 나는 북쪽에서 살았고, 그들은 남쪽에 살았다는 것밖에 다른 게 없었어.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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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읽은 지 며칠 지났거나 실물 책이 옆에 없을 때, 리뷰 쓰기 망설여집니다. 기억에 의존해서 작가나 작품을 곡해한 리뷰를 남길까 봐 두려운 거죠. 소설 장르가 더욱 그러한데, [소금 아이]가 지금 제게 그런 망설임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읽은 지는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이희영 작가를 오해한 글을 쓰게 될까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겠죠. [소금 아이]를 읽기 전 '맑음'이었던 제 기분은 소설을 다 읽은 후 급격히 심란해졌습니다. 방어할 틈도 없이 명치를 세게 가격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책 읽기 전만 해도 발랄해 보였던 작가의 실물 사진조차 음험해 보였습니다. 솔직히 무서웠죠. 동시에 작가에게 미안했습니다. 첩보원을 주인공 삼은 소설을 썼다거나 살인자의 수법을 자세히 묘사했다고 작가가 그 인물들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독자로서 당연한 상식이죠. 하지만,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에 이어 [소금 아이]를 나란히 읽은 제게는 두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음울함을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청소년을 주 대상 삼은 두 소설이 생소할 분들을 위해 가볍게 소개 드리자면, [페인트]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저출산 한국 정부가 입양아를 키우면 월급제로 돈도 주고 연금도 주는 제도를 운용한다는 설정으로 전개됩니다. 당연히 입양되는 아이들은 입양자들 대다수가 돈 때문에 자신을 데려간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가족애愛가 아닌 '너 좋고 나 좋고' 전략으로서 모르는 타인과 맺어집니다. 부모에게 버려진 주인공 Janu301은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1월, January에 버려졌기에 자신의 이름이 제누라는 것만 알뿐. 흥미롭게도 소설 [페인트]의 어느 페이지에서도 Janu301은 부모에 대한 애증이나 그리움을 전혀 내비치지 않습니다. 자칫 소시오패스처럼 느껴질 정도로 차갑게 자기 앞가림을 잘하면서 독립적으로 성장하지요.


Janu301 ● 李水

이희영의 최신작 [소금 아이]에서도 주인공 "이수"는 아버지를 모릅니다. 아버지를 궁금해하지도 않죠. 게다가 출생의 비밀이란 게 얼마나 허접한지 듣고 나서는 차라리 귀를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였죠. 주민센터에서 출산장려금이라도 탈 심산으로 신생아 등록을 하러 갔던 어머니가 마침 보았던 달력에서 "수요일의 水"자를 보았기 때문에 이름이 "이수"가 되었죠. 이수는 부모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원망도 애증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페인트] 중반부에서 주인공 제누는 자식을 해하는 권력욕에 취한 원숭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 자식이 커서 자기 자리를 위협할까 두려워하는 원숭이지요. [소금 아이]에서 아래 세대의 주인공인 이수는 처단의 방식으로 단죄합니다. 작가는 피와 피비린내가 난무하는 이 청소년 소설 [소금 아이]를 자신의 노트북 폴더에만 고이 모셔놓으려 했었답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유년기가 '회색, 그중에서도 검은색이 많이 섞인 회색'이었고 그런 유년기를 자식에게 되풀이시키고 싶지 않아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페인트]와 [소금 아이]를 나란히 읽다 보니, 작가가 빵 부스러기 흘리는 헨젤처럼 소설이라는 분신을 통해 상처를 조금씩 드러내고 흘림으로써 자신을 치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잘못 이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미리 작가에게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읽기엔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있었지만 작가가 치열하게 써 내려간 [소금 아이]가 분명, 저며진 심장이 소금으로 절여진 청소년들에게 공감해 주는 목소리로 다가갈 거란 확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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