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무기를 모두 반출하는 대신 종전협정에 서명하는 북미간의 마지막 회담이 열리던 북한의 한 호텔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북측 최고 존엄을 가장 근거리에서 모시는 호위총국장의 주도로 일어난 사건의 배경에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회담장에 중재자로 참여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세 정상이 납치되어 비밀리에 개발한 북한의 핵잠수함 백두호에 감금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잠수함 안팎의 노력이 동시에 진행된다.
같은 스틸레인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내용상 서로 이어진다는 게 아니나, 남과 북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해석을 말한다) 전편과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주연인 정우성과 곽도원의 진영이 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떠올라서 재미있었던 부분이다. 그리고 정우성 같은 대통령이라면(외모와 사고관을 두루 포함해서) 당장 다음 대선에 나와도 뽑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뭐 잘 생긴 배우가 선거에서 승리하는 예는 많이 있기도 하니까.)
영화 외적인 잡설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 보면, 확실히 잘 만든 영화다. 정치와 외교가 가지고 있는 복잡성을 재미까지 섞어서 이렇게 그려내면 상업 영화로서는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전편이 비밀 작전을 중심에 둔 첩보물의 성격이 좀 더 강했다면, 이번엔 확실히 외교라는 요소가 들어가서 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어느 정도 현실 인물들의 성격까지 반영시키면서 몰입감도 높였고.
중국을 견제하기 원하는 미국은 일본을 대리전으로 몰아넣고자 하지만, 또 일본은 중국 대신 한국과의 싸움으로 방향을 돌려 자국의 이익을 얻고자 한다. 여기에 북한의 일부 강성파들이 호응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한미중일의 물고 물리는 입장 차와 정치적, 실리적 계산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이 순진해 보일 정도다. 물론 순치 관계의 혈맹 운운하며 중국이 자신들을 전적으로 지원해줄 것이라는 대책 없는 판단은 처음부터 허깨비 같은 것이었고, 결국 그 가짜 비전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방향은 다르지만 이 주장과 묘하게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어디선가 잔뜩 본 것 같기도...)
얼마 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분석해 둔 책을 읽으면서 외교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 적이 있다. 국내 문제만 두고도 입장이 천지차이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하물며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어디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진 패를 모두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국가의 운명을 가를 판단을 내리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격언처럼, 외교는 단순한 기대나 경험으로 적당히 눙칠 수 없는 일이다.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통해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일이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또 그 복잡한 입장들 사이에서 창의적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한 게 외교라는 게 아닌가 싶다. 꽉 막힌 관계 속에 있는 지금 가장 필요한 태도도 바로 그런 것일 테고.
영화 속에서 본 평화협정이 현실에서 체결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물론 어디 기회가 한 번만 있을까. 애초에 우리의 힘과 의지만으로 될 일이 아니기도 했고.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지. 그리고 이런 노력은 단지 정부의 담당자들만이 아니라, 좀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영화 속 정우성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