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3 레볼루션 - [할인행사]
래리 워쇼스키 외 감독, 키아누 리브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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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부터영화는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말한다인류가 현실이라고 보고 있는 것들은 일종의 환상이고진짜는 그 너머에 있으며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존재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영화의 주제처럼 보였다.


1편의 말미에서 주인공 네오는 비로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는 눈을 얻게 된다이제 그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그런 네오를 능가할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이런 분위기는 2편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져서엄청난 능력을 갖게 된 스미스 요원조차도 그저 물량공세만 할 수 있었을 뿐 네오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영화의 말미에서 네오는 그 눈을 잃는다조금은 충격적일 수도 있는 장면이었는데감독들은 오히려 그렇게 눈을 잃은 네오가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사실 이 부분은 이제 어떤 논리적 개연성보다는 일종의 상상력의 영역으로 들어간다이 장면에서 그는 매트릭스 속 세계가 아니라 실제 세계에 속해 있었고시력을 잃은 후 빛과 같은 모습으로 사물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명백히 불가능한 일이니까.





흥미로운 건 그렇게 눈을 잃은 네오가 기계들의 군주 격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마음(기계에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지만)을 움직이고결국 인류를 구했다는 점이다어쩌면 눈을 잃음으로써그는 다른 것이 아닌 가장 진실한 것만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온갖 것들이 우리의 눈을 유혹하고그렇게 시선을 뺏김과 동시에 우리의 마음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을 보면서때로 눈을 감는 게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바울이 말한 것처럼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사는 사람들이니까(고후 4:18).

 




인간 vs 기계.


영화의 세계관은 인간과 기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이미 1, 2, 3편을 통해서 충분히 알려진 내용이지만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는 감독들이 만든 프리퀄 애니메이션인 애니매트릭스를 보면 좀 더 자세히 나온다.

 

좀 더 편한 삶을 위해 만들었던 로봇 중 하나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면서 인간들은 관련 모델 전부를 폐기하기로 결정한다많은 로봇들이 증오의 대상이 되어 파괴되었고간신히 피한 로봇들은 외딴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우는데 태생적인 장점 때문에 급속히 발전을 한다이후 인간들과 정식으로 교류를 시도하지만 이에 위협을 느낀 인간들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되는데이 과정에서 멍청한 인간들은 자기들을 파괴하는 무기까지 사용해버렸고결국 살아남은 로봇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


결국 영화 속 인간들이 처한 상황은그들이 자신들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대했던 로봇들이 일종의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반격한 결과였다특히나 영화 속 배경이 그토록 어두웠던 건기계들이 태양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를 차단하겠다고 인간들이 하늘에 뿌린 검은 구름 때문이었다영화 후반부에서 레오와 트리니티가 탄 전함이 그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서 만난 밝은 세상은 그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건데생각해 보면 우리도 주변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차별하고 멸시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어리석은 존재는 영화 속에만 있지 않겠다 싶다차별의 대상은 우리보다 약해서 학대를 받아도 반격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일 텐데그들이 언제까지나 우리보다 아래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일지도 모른다.


 




열흘 만에 세 편의 영화를 모두 봤다조금은 빠듯했는데왜 1편이 가장 유명했는지를 알 것 같은 느낌도 들고사실 2, 3편은 1편에서 벌여 놓은 신박한 이야기를익숙한 방식으로 수습하고 있다는 느낌이제 4편을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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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2 리로디드
워너브라더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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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인(目的因).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변화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네 가지 원인을 제시했는데그 중 하나가 목적인이다쉽게 설명하면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사과의 씨앗 속에는 이미 사과나무가 되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씨앗은 땅에 심기면 그 정해진 목적을 향해 변화의 과정을 시작한다.


모든 씨앗은 정해진 목적을 향해서만 변화한다예를 들어 감나무의 씨앗은 사과나무로 변할 수 없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씨앗이 사과나무나 감나무로 발전하는 건 아니다(일부는 채 나무로 자라기 전에 여러 이유로 사라진다). 다만 그것이 정상적으로 발전할 경우 애초의 목적인을 따라 가게 된다는 의미다.


매트릭스의 이 두 번째 편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 ‘목적이다네오 일행은 오라클의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예언을 따라 인간을 착취하는 프로그램인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간다전편에서 매트릭스의 본질을 깨닫고 특별한 능력을 얻은 네오가 있었기에그가 시스템 안의 적들을 종횡무진 무찌르면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런데 영화는 좀 의외의 방향으로 진행된다네오는 생각보다 적들을 쉽게 물리치지 못하고그가 아무리 뭔가를 하려고 애써도 좀처럼 정해진 결과를 뒤바꾸지 못하는 것만 같다그리고 여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목적(이유)’그는 스스로 뭔가를 선택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지만 실은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만 찾을 수 있을 뿐이라는 말을 듣는다사과 씨는 아무리 해도 포도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자유의지의 부정?


심지어 영화 후반에는 그렇게 변화를 위해 애쓰는 네오라는 존재 자체가 일종의 프로그래밍이라는 설정까지 등장한다네오에게 감정이입을 한 채로 이 지점까지 온 관객은 약간 당황스러운 부분이기도 한데애초에 한 편의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후속편 3편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전개시켜갈지...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순서대로 일어나고 있을 뿐이고(선택은 이미 이뤄졌고), 우리는 그 과정의 이유를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은 매트릭스 시스템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생각인 듯하다그리고 이건 정확히 현대의 과학주의적 유물론자들이 믿고 있는 교리이기도 하고모든 것을 물질 내에서만 설명하려고 하다보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결과적으로 부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영화 속에서 이런 명제 자체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대표적으로 전편에서 네오를 추적하며 집요하게 괴롭혔던 스미스 요원의 달라진 모습인데네오에게 패하고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취한 경험(데이터)를 시스템에 넘겨주고 소스코드 사이로 사라졌어야 할 그가 시스템의 논리를 거부한 채 네오를 쫓아다니고 있다는 것네오와 마찬가지로 스미스 요원 역시 시스템의 이질적인 존재가 된 건데시스템 설계자로 보이는 아키텍처는 이 모든 걸 일종의 프로그램 버그로 취급하려고 한다(보통 이렇게 적을 깔보는 건 사망 플래그의 하나다).


자유의지란 개념은 그리 간단하게 부정될 수 있는 게 아니다그건 단순히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인과론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꽤 잘 맞는 한 가지 설명이지만양자역학의 시대에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다는 식의 생각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오히려 고집스럽게 인과론에 목을 매고 있는 사람들의 설명을 듣다보면과도한 견강부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기복제.


개인적으로는 이번 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스미스 요원의 끝없는 자기복제 능력이었다시스템의 프로토콜을 거부한 채 원한을 품는다는 설정 자체가이미 그가 단순한 프로그램을 넘어섰다는 의미처럼(마치 인격을 획득한 것처럼보이기도 하지만근본적으로 그는 단순히 자기를 복제해 수를 늘리는 바이러스나 암세포 정도의 존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인간은 그렇게 단순히 자기복제를 능사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요새는 그런 자기복제만 남은 바이러스 수준의 본능만 남은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되는 것 같다그게 끝없는 권력욕이든다른 사람에 대한 지배욕이든 세상을 오직 혼자만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이다당연히 이런 이들이 많아지면그런 사회나 조직은 무너지기 마련이다암세포가 주변세포들을 끊임없이 삼켜 자기를 확장하면 사람이 죽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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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4편의 개봉을 앞두고오랜만에 앞선 세 편을 복습해 보기로 했다정확히 말하면 1편은 몇 번이나 다시 봤지만, 2, 3편은 본 적이 없었다. 1편 기준으로 나온 지 20년이 넘는 영화인데지금 보니 액션이라든지 영상미 쪽에서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야깃거리가 나오는 걸 보면 명작은 명작인 듯.

 


매트릭스와 기독교.


영화는 매우 의도적으로그리고 노골적으로 기독교의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주요 등장 인물 중 하나는 삼위일체(트리니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자신들을 시온으로 이끌 수 있는 구원자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영화의 초반을 채우고이제 나타난 구원자가 인류를 구해내기 위한 싸움을 하는 이야기가 후반을 채운다.


이 과정에서 가룟 유다의 역할을 하는 사이퍼도 존재하고죽었던 네오가 살아나면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빼박이다그리고 네오를 중심으로 한 이 모험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적인 가치로 믿음이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측면도 있고.


물론 이런 면은 감독의 기독교에 대한 호의적 관점을 말해주는 건 아닐 것이다아마도 C. S. 루이스가 말했던인류 문화 전변에 퍼져있는 보편적 구원 신화의 한 영향이라고 보는 게 맞을 터(마치 공산주의 신화가 기독교와 유사한 것처럼). 그리고 사실 잘 뜯어보면 기독교적 서술과는 다른 측면도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네오는 구원자로 성장해 간다이건 초기 기독교 이단 중 하나인 양자설과 비슷해 보인다또 그의 각성의 핵심 요소는 깨달음인데세상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그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는(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설명은 또 다른 초기 기독교 이단이었던 영지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매트릭스와 유심론.


현실은 가짜혹은 거짓이고진실과 진리의 세계는 저 밖에 있다는 관념론적 관점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플라톤이 그 선구자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니까이 작품의 핵심에도 바로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지금 우리가 진짜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은 사실 착각혹은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환상일 뿐이라는.

 

언뜻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 부합되지 않는 말인 것처럼 보인다아무튼 누군가 우리를 때리면 아프고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고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행복해지는 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니까물론 그 모든 것이 뇌의 특정한 부분을 자극하기만 하면 실제로 일어나지 않더라도 얼마든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게 마음일 뿐이라는 생각은 비단 무슨 선불교 같은데서 던질만한 화두만이 아니다최근에는 이런 생각에 가상현실이라는 소재가 더해지면서 꽤나 과학적으로 포장되고 있기도 하고흥미롭게도 마음의 존재를 부정하는 뇌과학 연구자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물론 이쪽의 경우 마음이란 용어보다는 뇌 내 작용이라는 단어를 좀 더 선호하겠지만.


조금 다른 측면에서이런 지루해 보일 것만 같은 철학적 내용을 흥미롭게 영화로 담아내는 게 바로 재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회피.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제안한다파란 약을 먹으면 이 세상이 가상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지금처럼 살 수 있지만빨간 약을 먹으면 현실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레오는 빨간 약을 먹고 모험에 뛰어들지만진실을 찾아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쉬울 리만은 없다영화 속에서도 사이퍼 같은 인물은 차라리 진실에 눈을 감고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했으니까.


이상을 말하고진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던져지는 말이 있다. “어차피 세상은 안 바뀐다는 것현실의 권력을 가진 이들은 너무나 강해 보이고이런 기득권에 도전을 하는 이들은 대개 핍박을 받거나 별 영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사실이긴 하다.은 대개 핍박을 받거나 별 영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영화 속 네오와 그의 동료들은 변화를 회피하지 않았고결국 작은 성과를 얻어낸다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성공을 똑같이 경험하기는 힘들지 모르지만이런 도전이 우리 삶을 더 나은 이끌어 온 것도 사실이니까적어도 회피하지 않고 도전하는 일들을 향해 초를 치지는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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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자정과 정오하루 두 번씩 다른 사람이 된다는 설정은 한효주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뷰티 인사이드와 비슷했다영화 후반 강이안 역을 맡은 윤계상이 대 다수로 벌이는 총격전맨몸 결투신은 현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조금 더 과장하면 존 윅” 시리즈의 시그니쳐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고.


영화의 시작부터 쉴 새 없이 사람이 바뀌는데 그 정체나 이유가 불분명해서 영화의 중반까지 약간은 답답한 느낌을 준다또 사람이 변하는 장면에서는 윤계상과 그가 입은 새로운 사람 역을 맡은 배우들이 서로 교체되면서 이런 혼란을 더욱 심하게 만들고감독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면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관객에게 좀 더 일찍 이해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지 않았을까.


물론 앞서 언급한 비교가 되는 영화들과 차이점도 존재한다. “뷰티 인사이드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주인공의 외형이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설정이었다면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몸이 바뀌는 게 아니라 12시간 마다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었고액션신에서는 그 분위기나 구성이 비슷하다는 의미지 상대적으로 조금은 덜 민첩하고 둔탁하다.

 





어떻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설정인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 건지 설명이 없다.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말 그대로 주인공 자신이 다른 사람의 외형을 취하게 된다는 설정이었으니 그 인물들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이다그런데 이 영화에서 주인공 강이안이 (영혼이든 뭐든들어갔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건과 관련된 실제 인물들이기에그들의 몸에 들어간 강이안은 자신의 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인 체할 수 있는 특별한 이점을 누리게 된다그것도 그 몸이 12시간 안에 죽지만 않으면 (그 이후에 죽더라도얼마든 다른 사람으로 깨어날 수 있기도 하고.


문제는 이게 어떤 매커니즘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영화 속 잠시 언급되는 신종 마약이 한 가능성인데설명에 따르면 아주 환각 작용이 강해서 몸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그런데 이게 말 그대로 수사적 표현이지실제로 몸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마약이 존재한다고 관객에게 설명하려던 것이었던가그것도 12시간이 될 때마다 몸을 바꿀 수 있는?


요컨대 설정은 있는데 설명이 없는 부분이었고이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였기에 전체가 헐거워지는 느낌이다애초에 영화가 심령강신술빙의 같은 걸 다룬다고 했던 것도 아니지 않았나.

 





빠른 전개?


12시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더구나 그 시간 동안 새로운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그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엔 더더욱 짧다덕분에 영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전개된다한 몸에 조금 익숙해질까 싶으면 곧바로 정신을 잃고 새로운 몸에 들어가는 주인공을 볼 수 있다.


오락 영화에서 적당한 속도감은 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영화가 느슨해지는 것을 막기도 할 뿐만 아니라충분히 세밀하지 못한 부분도 적당히 가려주기도 하니까다만 이 영화의 그런 속도감을 계속 줄이는 캐릭터가 있었으니임지연이 연기한 문진아라는 인물이다.

 

설정 상 국가정보원을 패러디한 안보정보원이라는 기관의 요원이면서 강이안과 커플이었고그가 사라지자 홀로 이안을 찾아나서는 모양인데무슨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렇데 대책 없이 다짜고짜 여기저기를 찌르고 다니기만 하는지이건 정보를 이렇게 흘려줄 테니 날 고생시켜주시오 라고 떠벌리려는 건지.


영화 말미 클래이맥스 격투신에서도애초에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근력까지 떨어지는 상태로 덜컥 잡혀 인질이 되어버리고이안의 행동을 방해하기만 하는 느낌이다그리고 문진아의 존재로 인해영화 내내 뛰어다니는 강이안의 목적도 범죄 소탕보단 연인구출로 급선회해 버리고 말이다. “아저씨나 존 윅에서 왜 주인공이 솔로로 나오는지를 짐작하게 만드는 부분이랄까오해하지 말자여성 캐릭터의 존재나 등장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이런 식으로만 묘사되어 극의 속도감을 늦추는 게 아쉽다는 말.


 

그래도 대진운이 괜찮은지 제법 흥행하고 있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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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등장이다물론 머조리티나 마이너리티라는 개념 자체가 상황에 따라 변하긴 하니까여기서 말하는 소수자란 서구사회를 배경으로 한다동양계 캐릭터들이 자주 보이는데중국계 여성 외모의 세르시와 (당연히한국계 남성인 길가메시그리고 인도계 남성 외향의 킨고(킨고역의 쿠마일 난지아니는 파키스탄 출신)까지 무려 셋이나 있다.

 

뭐 선사 시대부터 지구에 와서 사람들을 지켜주었다는 설정 상문명의 기원이 죄다 동양에 몰려있는 인류 역사를 고려해 볼 때 그들의 외형이 동양적이라는 게 그리 어색한 부분은 아닐 것 같다서양문명의 시작인 그리스 문명이 시작될 즈음이미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문명은 3천년이나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인종만이 아니다팀의 블레인을 맡고 있는 파스토스는 흑인에다 게이(동성 배우자와어찌어찌 아들까지 두고 세 남자가 함께 살고 있다)이다또 마카리라는 캐릭터 역시 흑인이면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는 설정(마카리 역의 배우 로런 리들로프는 실제로도 청각장애인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계 첫 마블 히어로였던 마동석보다도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히어로라는 캐릭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이번 작품에서는 그저 빠른 속도가 주로 보였지만이후 다른 매력을 보여줄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


다만 의도적으로 뭔가를 일부러 우겨넣었다는 감상도 적지 않게 든다소위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가치를 보여주려고 애쓰다보니 일어난 결과인 것 같기도 하고하나의 신념이 올바름이라는 가치를 독점하려고 할 땐그게 어느 진영이든 뭔가를 파괴하게 되는 건 필연적인 결과일지도관객들이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은 것도 이런 차원이 아닐까 싶다.

 





유물론적 사고방식.(여기서부터 스포 주의)


영화는 이터널스가 인간들을 공격하는 데비안츠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처럼 보인다그리고 그런 이터널스를 지구로 보낸 것은 셀레스티얼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창조자)였다그런데 영화가 점점 진행되면서셀레스티얼의 좀 더 큰 계획이 서서히 드러나고이터널스 멤버들 사이에도 편이 갈린다. ‘시빌 워가 너무 빨리 나타났달까.


셀레스티얼은 지구를 일종의 배양기로 삼아 지적 생명체들을 증식시키고그들을 양분으로 삼아 새로운 셀레스티얼을 탄생시킨다는 것이 과정에서 지구와 인류는 완전히 파괴되지만새롭게 탄생한 셀레스티얼이 새로운 은하계와 생명들을 창조해낸다는 설정이다일부 이터널스는 이런 계획에 반감을 느끼고 명령을 거부한 채새로운 셀레스티얼(이름이 바벨론 창조설화에도 등장하는 티아매트를 떠올리게 한다)의 탄생을 막는다.


사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은 자연의 순환이다흔히 낭만적으로 자연의 순수함과 평화로움 운운하지만실제로 자연은 먹고 먹히며 끊임없는 파괴와 새로운 생산이 이루어지는 전쟁터에 가깝다문제는 이런 현실을 인간을 비롯한 지적 생명체가 나아갈 기준이상향으로까지 끌어올리느냐아니면 인류는 좀 다른 기준과 윤리를 따라 살아야 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유물론적 사고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전자를 선택해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결론이다하지만 이터널스의 일부 멤버들이 그랬듯우리는 이런 결정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사랑도 호르몬의 작동 차원으로낙태를 자연의 품질관리로식민 지배를 더 우월한 문명의 진화론적 행동으로 여기는(이 모든 건 크리스토퍼 히친스나 리차드 도킨스가 실제로 책에서 사용한 표현이다유물론을 품고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말.





 

복잡난잡?


새로운 등장인물이 워낙에 많아서 그런지 영화가 복잡한 느낌이다영화는 굉장히 묵직한 철학적 주제(위에서 언급한)를 담고 있고그로 인한 캐릭터들의 고민이 중심이 되는데 이런 캐릭터의 입체성이 그리 잘 묘사되는 것 같지도 않다무조건 시키면 해야 한다는 이카리스의 주장은 단순 그 자체고일부는 중2병에 걸린 듯한 캐릭터를 보여줄 뿐이라 매력이 떨어진다.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기에 많은 걸 새로 소개하고 설명하느라 어느 정도 어려움은 있었겠지만소위 마블 영화의 강점인 적당한 유머가 섞인확실한 액션과 볼꺼리라는 측면을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대신 넓은 화면을 채우는 풍경들은 인상적이었지만이게 마블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 바라는 포인트일까 싶고.


기대했던 것만큼 마동석의 분량이 많지도 않다우리나라 영화에 출연한 마동석의 캐릭터는 대체로 엄청난 하드웨어+반전이라고 느껴질 만큼 스윗하거나 섬세한 성격인데이번 영화에서도 딱 그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좀 더 묘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싶었지만워낙에 많은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묻힌 감도 있고물론 그 와중에도 존재감은 보였지만너무 이른 퇴장을 맞이했으니...


개봉 첫날 영화관을 나오면서 ‘7점까지는 못 주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는데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이즈음 경쟁이 될 만한 영화가 많지 않았던 탓인지예매율은 1위를 차지하고 있다지만재밌다는 얘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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