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리커버 특별판)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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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나의 경험담이다. 


유튜브를 보면, 순식간에 1 ~2 시간이 지나간다. 홈에 나온 동영상만 시청할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동영상 시청하는 옆에 관련 동영상 리스트가 나오고, 하단에 댓글도 있고, 심지어 동영상 끝난 후에도 관련 동영상이 화면에 나온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을 시청하도록 해야 하니 제목은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내용은 보잘것 없는데, 제목은 마치 엄청난 사건인 것처럼 낚시질이 많다. 도움을 받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목적을 가지고 유튜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시간 보내기 용도로 유튜브를 시작한다면, 아무 의미 없이 계속 유투브를 돌아다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페이스북에 글을 쓰지 않는다. 물론,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사진과 글을 올릴 때마다 계속 신경이 쓰인다. 누군가의 댓글, 좋아요는 그냥 내 만족일 뿐이다. 내 만족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 확인하고 싶어 하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행동이 문제이다. 물론, SNS에서 유명해져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의 콘텐츠가 없는 상태에서 신변잡기에 불과한 사진이나 글은 아무 생산성이 없다. 자기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올리기 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음식, 장소, 취미, 구입한 물품, 애완동물만 올릴 뿐이다. 게임을 좋아해서 네이버 카페 하나를 주요 이용하는데, 어쩌다 한 번 이곳에 글을 써도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이 쓰인다.


이 책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에 따른 부작용을 소개한다. 뇌의 뉴런, 시냅스, 해마 등을 설명하면서, 많은 사회과학 실험 결과를 통해 저자의 생각을 펼친다. 저자가 언급한 부작용의 예제 중 하나는 전자책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이 2009년, 한국은 2011년에 출판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전자책이 앞으로 대세를 이룰 것이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출판 형태, 독서 방식,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뀐다는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전자책은 종이책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책은 더 나은 읽기의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종이에 검은색 잉크로 찍힌 문자들은 깜밖이는 스크린 위에 여러 개의 픽셀로 만들어진 문자보다 읽기가 편하다. 온라인에서는 잠시만 읽어도 눈에 피로를 느끼지만 책으로는 수집 장 또는 수백 장을 읽어도 끄떡없다.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는 일도 간편하고,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의 말을 빌리자면 더 직관적이다. 가상 페이지와 비교해 진짜 책장은 더욱 빠르고 유연하게 넘길 수 있다. 또한 책 모서리에 메모를 할 수도 있고 감명 깊게 읽은 부분에 밑줄을 칠 수도 있다. 책 앞면에 저자의 사인을 받을 수도 있다. 책을 다 읽으면 책꽂이에 꽂아 빈 공간을 채울 수도 있고, 친구에게 빌려줄 수도 있다. (P.151)



나는 전자책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이런 내가 종이책의 장점을 이야기하면, 형평성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독서는 시각, 촉각, 후각을 동반하는 행위이고, 이는 종이책이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활자를 읽고, 손으로 책을 느끼고, 종이의 냄새를 맡는 행위가 책을 읽는 동안의 사고, 상상력과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 스티브 존슨은 새로운 킨들로 전자책을 읽자마자 "디지털 영역으로의 책의 이동은 단순히 잉크를 픽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읽고 쓰고 책을 판매하는 방식을 상당 수준 바꿀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킨들이 손끝에서 책의 세상을 확장할 수 있고, 웹 페이지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검색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이 디지털 기기는 그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책을 읽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인 다른 세상, 즉 저자의 사고 속 세계에 완전히 젖어드는 것을 잃게 될 것이 두려웠다. 우리는 점차 잡지와 신문을 읽는 데 이용하고 있는 방식, 즉 정신의 일부는 이곳에 두고 또 다른 일부는 다른 곳에 두는 방식을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P.156)



구글은 2002년부터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스캔해서 전자 도서관에 만들고, 구글 북서치를 통해 순식간에 검색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진행했고, 2009년에 저작권 문제로 제동이 걸렸지만, 이 꿈을 버렸는지는 모른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 수많은 책을 검색하고, 필요한 내용을 바로 찾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감각을 느끼고, 온전히 한 권의 책에 빠져서 상상하며 생각을 할 수 있는 일련의 행위를 절대 구글 북서치가 대신할 수는 없다. 구글 북서치 뿐만이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구글에 대한 이미지는 선보다 악에 가깝다. 



독서에 더 많은 효율성을 부여하려는 구글의 노력에 숨겨진 역설은 우선 이 같은 노력이 책의 기술이 독서(그리고 우리의 사고)에 가져다준 다른 종류의 효율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서를 해석하는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킴으로써 양피지나 종이에 쓰여진 글은 우리가 더 깊이 있는 독자가 되도록, 집중을 기울이도록, 그리고 의미 해석에 우리 뇌의 힘을 기울이도록 했다.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글을 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문서를 재빨리 해독할 수 있겠지만(오히려 예전보다 더 빨리 읽는다) 문서가 함축한 바에 대한 깊고 사적인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또 다른 관련 정보의 조각으로 그리고 또 그다음, 또 그다음 조작을 향해 서둘러 달려든다. 이 '연관 콘텐츠'에 대한 노상 채굴은 의미 해석을 위한 느린 발굴을 대체하고 있다. (P.244)



한 번쯤 자신의 SNS, 유투브, TV 시청, 게임 플레이 등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남들이 하기 때문에 나도 하는 것이 아니고, 나만의 콘텐츠가 있는지,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뇌가 이것들에 적응하면서 나를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2020.6.28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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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8-27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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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버리기 기술 -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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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끄기의 기술'로 유명해진 마크 맨슨의 두 번째 책이다. 원제가 'Everything is F*ucked : A Book about Hope"이다. 저자는 더 나은 것을 희망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그냥 더 나아지라고 한다. 대체 이게 뭔 말인가? 


인생에 대한 선택과 방향을 결정하는 뇌는 생각 뇌인가? 감정 뇌일까? 인간은 항상 생각과 감정이 서로 반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식을 만드는 뇌가 운전을 담당하고,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뇌가 옆에서 계속 유혹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감정 뇌가 운전을 담당하고, 생각 뇌는 옆에서 조언을 줄 뿐 큰 힘이 안된다고 한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사실 감정이 나의 행동을 제어한다는 말이다.


생각 뇌는 사건 사이에 수평적 관계(동일성, 대조, 원인과 결과 등)를 만드는 반면, 감정 뇌는 계층적 관계(좋음과 나쁨, 바람직함과 그렇지 않음, 도덕적 우월함과 월등감)를 만든다. 생각 뇌는 이것들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생각하고, 감정 뇌는 어떤 것이 더 좋은지를 생각한다. 생각 뇌는 상황이 어떠한지를 결정하고, 감정 뇌는 상황이 어떠해야 햐는지를 결정한다. (P.86)


감정 뇌는 반증이 수두룩해도 현실을 왜곡해서 자신의 문제와 고통은 이 세상에서 특별하고 독특한 것이라고 믿게 한다.  인간이 이런 수준의 자아도취를 붙박이로 갖춰야 하는 이유는 자아도취가 불편한 진실을 막아 주는 최종 방어선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형편없고 인생은 극도로 힘들며 예측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완전히 길을 잃지는 않더라도 인생을 대충 산다. 만약 자신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거짓된 믿음, 뭔가 비범하다는 착각이 없다면, 우리는 제일 가까운 다리에서 줄지어 다이빙을 할 것이다. 이런 자아도취적 망상이 전혀 없다면, 자신의 특별함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 기만이 없다면, 우리는 희망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P.94)


감정이 생각보다 엄청난 힘으로 나를 통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나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고, 나를 존재시키는 것도 감정이기 때문에 감정을 무시할 수 없다. 감정은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내가 감정을 통제하는지, 감정이 나를 통제하는지 무엇이 먼저인지 혼란스럽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가 아닌가? 명상을 통해 객관적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내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존재는 무엇인가? 내가 느낄 수 있는 존재는 내가 아닌가? 내 머리로 답을 찾을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종교를 시작하는 6단계 프로그램을 알려준다. 누구나 종교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종교를 부흥시키고, 권력과 돈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종교에 쉽게 빠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어야지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교회도 안 다니고, 절도 안 다니고, 사원도 안 다니는데 무슨 말일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종교는 영적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의 이념 종교가 있고, 스포츠, 정치, 팬덤 등의 대인 관계 종교가 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아무리 외쳐봤자 이념 종교와 대인 관계 종교가 존재하기 때문에 산  속에 들어가 혼자 자급자족을 하지 않는 한 종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희망을 품어 보았자 결국 종교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칸트가 말한 인간성 공식은 인간의 모든 바람직한 행위를 기술하는 단 하나의 규칙이다. 인간성 공식은 희망에 의존하지 않고, 종교적인 초자연적 믿음이 전혀 없다. 인간성 공식은 정직, 용기, 겸손 등이다. 도덕적 직관이다.


칸트는 세상을 개선할 유일한 논리적 방법은 자신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성장하고 더 도적으로 되는 것, 즉 매순간 자신과 타인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겠다는 단순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정직하라. 자신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말라. 책임을 회피하거나 두려움에 무릎 끓지 말라. 솔직하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라. 종족적 충동이나 희망을 주는 속임수에 굴복하지 말라. 왜냐하면 미래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매 순간 당신이 하는 선택만이 있다. (P.221)


저자는 행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행복 추구는 자멸적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잘 산다는 건 고통을 피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이유로 고통받는 걸 의미한다.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고, 고통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말이 왠지 무슨 종교 강령같이 들리지만, 쉬운 예가 있다. 운동과 육체 노동을 통해 몸을 망가뜨리면 근육이 생기고, 골밀도가 높아지며, 혈액 순환이 잘되고, 엉덩이가 빵빵해진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고통을 피하면 몸이 약해진다. 


고통은 삶의 보편 상수이므로 고통을 통해 성장할 기회는 삶 속에 늘 있다. 고통을 마비시키지 않으면, 고통으로부터 눈길을 돌리지만 않으면 된다. 고통을 맞이하고 그 안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고통은 모든 가치의 근원이다. 고통에 무감각해지면 세상에 존재하는 중요한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다. 고통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장 확고히 지키는 가치관과 믿음이 되는 도덕적 간극을 열어 준다. 어떤 목적을 위해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부정하면 삶 속에서 목적을 느끼는 능력을 완전히 부정하게 된다. (P.269)


유일하게 진정한 형태의 자유, 유일하게 윤리적인 형태의 자유는 자기 제한을 거친 것이다. 이것은 삶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선택할 특권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서 포기할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자유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자유다. 오락은 일시적이고 쾌락은 지속되지 않는다. 다양성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하지만, 기꺼이 희생하려는 것, 기꺼이 포기하려는 것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P. 292)


결론적으로 희망을 버리고,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보편 타당한 인간성을 추구하며, 고통을 담대하게 받아들어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원하는 것을 할 생각보다는 기꺼이 포기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유를 추구하라고 한다. 

희망은 꿈꾸기 어려우니 스트레스 없이 희망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방법이 궁금해서 이 책을 찾은 사람들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거 같다. 책장에 있는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이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자기 제어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저자는 휴대전화, 이메일, 인스타그램을 강박적으로 확인하지 말고, 좋아하지 않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정주행하지 말고, 즐겁지 않은 파티와 행사 초대는 거절하고, 남들에게 말하기 위한 여행을 하지 말라고 한다. 더 많이 경험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강박적 행동을 탈피하라고 한다. 


복잡한 것을 다 잊고, 그냥 2가지 질문을 항상 나에게 해보면 어떨까 한다. 지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지금 하는 행동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가? 더 쉽게 말하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자가 될 것이다. 


2019.12.20 Ex. Libris. HJK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던 시대에 등장한 과학 혁명은 세상을 바꿔 놓았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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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못하는 사람들 - 무엇이 당신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검색하게 만드는가
애덤 알터 지음, 홍지수 옮김 / 부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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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특정 행동이나 정신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쓴 책은 재미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로 인해 일종의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접할 때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테크놀로지 시대의 새로운 재앙이라고 표현한 행위 중독에 대해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가 미처 중독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사실 중독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행위 중독에 관여하는 요소를 통해 행위 중독이 뭔지 파악해 보자.


행위 중독에 관여하는 요소는 모두 여섯 가지다.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목표, 뿌리치기 어렵고 예측 불가능한 긍정적인 피드백,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는 느낌,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더 어려워지는 과제, 해소하고 싶지만 풀리지 않는 미결 상태, 그리고 강한 인간관계다. (P.23)


여기까지 읽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여섯 가지를 보면, 왠지 자기계발을 해야 할 때 필요한 요소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독은 어떤 행위가 주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클 때만 그 행위는 중독성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중독은 해롭고 떨쳐 버리기 힘든 경험에 대한 깊은 애착이고, 행위 중독은 단기적으로는 심리적 욕구를 채워 줌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보면 심각한 해를 끼치는 어떤 행위를 거부할 수 없을 때 발생하다는 것이다. 즉, 개인마다 자기계발로 자신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이 큰 것인지, 아니면 순간의 심리적 욕구만 채우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손해인 것인지 판단하고, 자기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구분을 해서 행위 중독으로 판단될 소지가 있는 행동들이 무엇인지 알아보면 자기가 행위 중독인지를 판단할 때 도움을 준다. 


이 책에서 행위 중독이라고 부를만한 범주를 5개 정도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목표 중독이다. 

목표가 있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슨 중독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적절한 선을 지키며 세운 목표는 직관적 판단이 가능하다. 한정된 시간과 열정을 어떻게 써야 할 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목표가 우격다짐으로 우리 삶을 파고든다. 소셜 미디어에 계정을 만들고 나면 곧 팔로어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좋아요'를 몇 개나 받았는지 확인하게 된다. 이메일 계정을 만들면 수신함에 읽지 않은 메일을 절대 남겨 놓으면 안 된다. 피트니스 스마트워치를 착용하면 날마다 특정한 수만큼 발걸음을 떼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비디오 게임을 하면 지금까지 달성한 최고 점수를 갱신해야 직성이 풀린다. (P.149)


장기적인 관점에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목표를 본인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정해야 한다. 그리고, 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지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요즘 하루에 만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주 중에 평균적으로 8천 보 정도 걷는데, 퇴근 후 집에 오면서 나머지 2천 보를 어떻게 채울까 고민한다. 어느 날 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다. 식사 준비해 놓았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듣는 순간 2천 보 더 걸어야 하는데, 전화한 와이프에게 짜증이 났다. 

주말에 하루 만보 걷기를 실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2만 보를 걸어볼까 하다가 만 7 천보 정도에서 멈추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는 이유는 건강에 도움을 주기 위함인데, 너무 목표에 집중하니 목적을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피드백 중독이다.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가지고 어떻게 게이머의 돈을 착취할까?


대개 알고리듬은 수수방관하면서 기계가 무작위로 결과를 뱉어 내게 내버려 두지만, 게이머가 고통스러운 지점에 다다르면 그때는 개입한다. "결과가 형편없다고 감지하면 Bar, 버찌, Bar가 나오는 대신 '땡그랑' 소리가 나면서 세 개 모두 Bar가 나오게 됩니다. Bar 세 개면 잭팟이죠." 이때 따는 돈은 이 게이머가 지금까지 계속 잃은 돈에서 조금씩 모아 둔 '마케팅 보너스 자금'이다. (P.169)


결국, 게이머는 자신의 돈을 받으면서 잭팟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도전을 한다. 또, 다시 잭팟이 터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출장으로 라스베이거스를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약 100달러 정도를 가지고 슬롯머신을 했는데, 중간중간 잭팟이 터지기는 했지만, 결국 시간이 흘러 모두 탕진하고, 빈손으로 나왔다. 중간에 본전보다 많이 벌기도 했지만, 100달러 더 벌었다고 그만 두기가 절대 쉽지 않았다.


레고, 플레이 모빌, 책 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레고 카페, 플레이 모빌 카페, 인스타그램, 알라딘 서재 등 여기저기 글을 올린다. 누군가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거나 조회 수가 올라가는 것을 매일 확인하는 나 자신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까지의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면, 이건 분명 중독이다. 


세 번째는 향상 중독이다.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떤 능력이냐는 것이 중요하다.


안타까운 실패는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하리라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중략> 안타까운 실패는 성공에 가까이 다가갔으므로 시간과 노력을 들일 만하다는 신호기 때문이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연습하면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그런 신호가 무의미할 때가 있다. 특히 게임이 순전히 운에 좌우될 때 그렇다. <중략> 잭팟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지만 안타까운 실패와 분명한 실패는 사실 아무 차이도 없다. 둘 다 앞으로 잭팟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거나 낮다고 해석할 수 있는 신호가 아니다. (P.225)


네 번째는 미결 중독이다. 

예전에 <빙의>라는 한국 드라마를 우연히 접한 적이 있다. 주말에 우연히 이 드라마를 접하고, 주말에 전편을 모두 봤다. 넷플릭스는 한 에피소드가 끝난 후 5초 후에 자동으로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기 때문에 한 에피소드에서 끊긴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계속 볼 수밖에 없었다. 하루 10시간 넘게 드라마만 본 기억이 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결말이 너무 거지 같아서 끝까지 본 것을 후회했다. 눈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다섯 번째는 관계 중독이다.


2015년 50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거닌 열여덟 살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SNS 스타 에세나 오닐은 인스타그램에 올린 자신의 화려한 사진 뒤에 숨은 진실을 폭로했다. <중략>

"진짜 인생이 아니다. 복부가 멋있게 보이게 하려고 비슷한 자세로 100장 넘게 찍었다. 그날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으라고 동생에게 소리를 질렀다. 목표 달성" <중략>

오닐은 마지막 포스팅에서 이렇게 말했다. "10대 시절 대부분을 소셜 미디어, 다른 사람들의 인정, 사회적 지위, 외모에 중독된 채 보냈다. 소셜 미디어는 억지로 꾸며 낸 이미지와 편집한 영상을 평가해 서로 등급을 매긴다. 사회적 인정, 좋아요, 검증, 많은 팔로어가 판단 근거가 된다. 자기도취적인 완벽하게 조작된 평가다." (P.270)


어떤 사람들은 5가지 유형의 중독을 읽고, 나하고 상관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뭐 이 정도를 중독이라고 부르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행위 중독을 판단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본인이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뭐라 할 자격이 있겠는가? 하지만, 만약 본인이 뭔가 개선하고 바꾸고 싶다면, 이제 어떻게 해독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딸아이가 있기 때문에 유아 매체 소비에 대한 다음의 내용이 별로 도움이 안 되지만, 아직 어린 자녀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 이 책에 나와 있는 3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부모는 자녀가 화면 세계에서 보는 것과 실제 세계에서 하는 체험을 연관 짓게끔 도와야 한다.

2.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수동적으로 지켜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 즉, 아이들이 행위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부모와 소통하게끔 도와주는 컨텐츠가 훨씬 낫다.

3. 시청 시간은 언제나 기기 자체보다 콘텐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식사를 하기 위해 무작정 아이에게 콘텐츠를 보여주고 관심을 끊는 것보다 콘텐츠에 나오는 내용을 직접 해보거나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는 소통이 중요하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의 행위 중독 몇 가지를 고쳐보기로 했다.

자기 전에 잭 코크 한 잔씩 마셨다. 뭔가 하루를 마감했고, 수고했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알려주고 싶고, 왠지 잠이 더 잘 올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침에 뭔가 개운하지 않고, 내 몸에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스 두히그는 <습관의 힘>에서 습관은 신호, 루틴, 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나쁜 습관이나 행동을 촉발하는 신호가 있을 때 그 행동을 하고, 결과로 어떤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해당 습관이나 행동을 계속한다는 뜻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수고했다고 내 자신에게 말하고 싶을 때(신호) 잭 코크 한 잔을 마시는 것(나쁜 루틴)이 아니고, 팔굽혀 펴기나 일기 쓰기 또는 명상(좋은 루틴) 등을 한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보상) 생각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주의 전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침대 옆에 두지 않고, 알람 시계를 이용하기로 한 것과 넷플릭스를 볼 때 한 에피소드를 다 보지 않고, 궁금증을 유발하기 전까지만 보기로 한 것들은 '환경 설계'라는 방법을 활용한 것이다. 

미드 <브레이크 베드>에서 주인공이 사막에서 마약을 제조하다가 차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결국 주인공이 온갖 고초를 겪고 온 후에 무사히 돌아온다. 그런데, 암 치료 결과가 호전되었다는 병원 결과를 듣게 되는데.. 이제 다음 에피소드가 궁금해진다. 주인공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암으로 죽을 것이라 생각해서 마약을 제조했는데 이제 어떻게 할까? 만약, 사막에서 무사히 돌아온다는 부분까지만 보고, 넷플릭스를 껐다면, 그 다음 에피소드는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 설계'를 통해 넷플릭스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부분을 회피할 수 있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우리 모두의 나아갈 방향이다. 


중독 체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대개 문화적 요인에 좌우된다. 우리 문화가 일과 게임과 기기 화면에서 자유로운 시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시간을 누리는 환경을 조정한다면 우리와 우리 자녀들도 행위 중독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라면 우리는 기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마주보며 직접 소통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유대감의 불빛은 기기 화면의 불빛이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것이다. (P. 385)


본인이 중독인지 한 번 판단한 후 중독이라고 생각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2019.11.2 Ex. Libris HJK


2010년 1월 애플의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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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의 정치학 - 왜 진보 언론조차 노무현·문재인을 공격하는가?
조기숙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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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9 ~ 2019.9.9


참으로 엄청난 시간이었던 거 같다.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임명될 때까지 1달 동안 온 국민이 법무부 장관 조국이 아니고, 그의 아내와 딸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언론에서 다루어졌던 온갖 범죄에 대해서 모두 다 잊혔고, 여전히 험한을 앞세워 한국을 공격하는 일본에 대해서도 잊혔다. 

이제까지 법무부 장관을 누가 했는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황교안이 법무부 장관을 했다는 것도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 그런데, 왜 온 나라가 법무부 장관 하나로 이렇게 난리 법석일까?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이점에 대해서 여기에서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무엇인가를 판단하기 전에 팩트 체크를 하는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지인이 조국을 반대한다고 하기에 이유를 물어보니 6등급이라는 낮은 실력으로 어떻게 대학교를 갔는지 모르겠다고 답변을 했다. 그래서, 어떤 6등급이냐고 물어보니 뭔지 몰랐다. 그저 6등급만 기억할 뿐이다. 언론에서 이렇게 프레임을 씌우니 그저 6등급이면 낮은데 뭐가 잘못한 것이겠지 하고 자기 판단을 해버린다.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다 보니 자신의 생각은 안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저 맹목적으로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들. 상식적 사고와 합리적 추론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난다. 


그런데, 문득 왜 모든 언론이 100만 건이 넘는 기사를 엄청나게 뿌려내면서 한쪽만 일방적으로 공격할까? 진보라고 혼자 자위하는 언론이나 보수를 대변하는 언론이나 모두 한 방향으로 기사를 쓰고, 보도를 한다. 한 매체에서 단독이라고 쓰면, 다른 매체는 확인도 안 하고, 그냥 확대 해석해서 자기 마음대로 결론을 낸다. 마치 온 나라의 언론이 조국 가족을 피해자로 삼아 조국을 왕따시키는 모습이다. 심지어 언론뿐만이 아니고, 검찰 또한 이에 동참하고 있다는 일부 추측도 이야기되고 있다. 조사 중인 피의자 사실 유출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근거에 기반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이제까지 어떻게 왕따가 이루어졌고, 가해자가 누구였는지, 그들이 왜 특정 정치 세력을 이렇게 심하게 왕따를 시켰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수를 대변하는 우파(우리나라에 우파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와 구좌파(아직도 좌파가 빨갱이라고 외치는 사람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본인의 무지를 알기 전까지.)가 기득권 세력이 되어서 신좌파를 대변하려고 하는 정치세력을 집요하게 공격한 것이다. 

본인들은 진보주의자라고 외치는 세력도 기득권 세력 중의 하나일뿐이다. 개인주의/탈권위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신좌파를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신좌파(진보적 자유주의라고도 부른다.)는 공공성을 추구하면서 세계화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좌파의 시각으로는 구좌파와 우파가 권위주의적이란 면에서 차이가 없다. 신좌파는 좌우를 모두 부정하기에 탈권위주의적이고, 탈물질주의적이며, 탈이념적이다. 문화적으로 리버럴하고, 경제적으로는 실용적이며,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치 지식도 많다. 부당한 권위를 부정하지만 대인 신뢰가 높고 기부도 잘 한다. 정치적 의사 표현이 적극적이라 시위와 항의에도 적극 참여하며, 유머를 즐기고 정치를 문화의 영역으로 승화시킨다.(p329)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하고, 상식적 사고와 합리적 추론을 기반으로 사회 현상을 판단하고자 하는 지성인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2019.09.15 Ex. Libris. HJK



해가 바뀌고 2017년에 접어들어서도 탄핵 정국의 급물살은 이어졌지만, 대선 후보 지지도의 최고봉은 끄떡없이 자리를 지켰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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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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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읽었습니다. 해외 출장을 갈 때 한 권의 책을 가져가서 읽는 것이 목표입니다. 중국 출장 갈 때는 <인어가 잠든 집>을 읽었고, 이번에 미국 출장 갈 때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읽었습니다. 미국은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소설보다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책을 가지고 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저자 중의 한 명이 바로 유발 하라리입니다. 쉽지 않은 내용을 알기 쉽게 서술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본인이 주장하는 바를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저는 그의 생각과 주장에  많은 공감을 합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현재 지구라는 행성에서 벌어지는 많은 현상을 살펴보고, 앞으로 발생 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가에 대한 책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인류를 위협하는 3가지 문제는 핵 전쟁, 생태계 파괴, 기술적 파괴입니다. 꼭 핵은 아니더라도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한순간 공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를 계속 파괴해 왔고, 임계점을 넘는 순간 더 이상 지구의 생태계는 유지될 수 없다고 합니다. 평균 기온이 2도만 올라가도 엄청난 재앙이 닥쳐올 것이고, 지구 어느 곳에 살아도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생명기술, 정보기술 혁명으로 인해 AI 알고리듬이 세상을 지배하고, 많은 직업이 없어지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불안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합니다. 데이터를 소유한 회사 또는 정부가 개인을 감시하고,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22세기, 아니 21세기 후반부에 어떤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지난 세기 동안 기술은 우리를 우리 몸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우리는 우리가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을 잃어왔다. 대신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중략> 스위스에 사는 사촌과 이야기하기는 어느 때보다 쉬워졌는데 아침 식사를 할 때 남편과 대화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눈은 끊임없이 나 대신 스마트폰에 가 있다. (P.141)


외식을 하기 위해 식당에 가면, 온 가족이 대화 없이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풍경을 자주 접합니다. 저도 무의적으로 하다가 깜짝 놀라고, 얼른 스마트폰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그나마 SNS를 많이 안 합니다. 인스타그램도 계정만 있지 호기심 때문에 이제까지 5개 정도 포스팅 했을 정도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가 올린 포스팅을 얼마나 사람들이 읽고, 좋아요를 했는지 끊임없이 쳐다보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럽 문명이 인권과 민주주의, 평등, 자유의 가치에 의해 규정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발칸반도의 작은 구석에서 마지못해 일어난 실험이었고, 겨우 200년을 살아남았다. 지난 25세기 동안 유럽 문명을 규정한 것이 민주주의와 인권이었다면, 스파르타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십자군과 신대륙 정복자, 종교 재판과 노예무역,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히틀러와 스탈린은 다 뭐란 말인가? 이들은 모두 외래 문명에서 온 침입자들인가? (P.151)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제국 주의,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자유민주주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끊임없이 갈등을 조장하는 종교나 민족주의가 답일까요? 전 세계 글로벌 시장경제가 핵 전쟁을 막고,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제 한 개인이, 한 집단이,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설 만큼 세상은 복잡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아무리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서 재활용을 해도 미국에서 모든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한 태평양에 있는 쓰레기 섬을 없앨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자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합니다. 모든 호모 사피엔스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허구입니다. 실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저자는 명상을 통한 하나의 방안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욕망이 단지 뉴런을 통한 생화학적인 과정일 뿐일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우리 밖의 세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단계는 쉽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우리가 통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과정은 더 어렵다. 궁극에는 우리의 욕망, 심지어 이런 욕망에 대한 반응까지 우리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중략) 인간은 보통 자신의 욕망에 너무 큰 중요성을 부여한 나머지 이 욕망에 따라 온 세상을 지배하고 조성하려 애쓴다. 자신의 열망을 추구하느라 달에도 날아가고,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전 생태계까지 불안정하게 만든다. (P.454)


이 책에는 한국 독자를 위한 7문 7답이 실려 있습니다. 꼭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책을 포함해서 내가 쓴 모든 책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이 허구와 실체의 차이를 분간해서 결코 허구의 이야기를 실체로 오인하지 않고, 허구적인 것을 위해 실재하는 것들을 해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실체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이 고통을 느끼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P.484)


민족이나 종교, 기업, 돈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적인 것입니다. 1931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다는 것은 허구입니다. 일본도 허구이고, 중국도 허구입니다. 실체는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라는 허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공짜로 무언가를 얻는 경우 당신이 상품이다" 이것은 뉴스 시장에서 너무나 분명한 진실입니다. (중략) 공짜라는 이유로 자신의 주의를 포기하는 대신 낮은 품질의 정보를 얻는 것은 정신 나간 짓입니다. 고품질의 음식과 옷과 자동차에 기꺼이 제값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면, 왜 고품질의 정보에는 돈을 내지 않으려는 걸까요? (P.493)


왜 조중동을 비롯한 각종 신문이나 잡지가 기득권 세력에 매달릴까요? 그들을 위해 광고를 해서 그들에게 돈을 받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해도 돈 버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고품질의 정보에 돈을 내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공짜로 얻는 정보를 의심할 수 있는 의식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허구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겠죠. 


2019.06.01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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