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바이스 시즌 1

1990년대, 일본 최대 신문사 메이지 신문에 합격한 1호 외국인 기자 제이크의 이야기다.


한낮 도쿄의 거리에서 칼에 찔려 눈을 뜬 채 죽은 남자의 시신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죽음으로 간 사람들이 야쿠자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 취재를 하려고 하지만 신문사의 선배 및 간부들과 경찰들은 사건을 은폐 축소 하려고 한다.


단서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일본의 첫 외국인 신문기자 제이크. 외국인에게 폐쇄적인 일본 사람들과 일본 경찰의 비협조적인 행태에 지쳐갈 무렵


만나게 되는 강력계 카타기리 형사. 제이크는 카타기리의 도움으로 도쿄라는 거미줄 같은 도심지의 어두운 얼굴을 드러내는데.


미국과 일본의 공동제작 도쿄 바이스는 HBO가 맡았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실제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 최초의 외국인 기자 제이크 아델 스타인이 12년 동안 근무했던 이야기를 지필 한 회고록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정말 재미있다. 묵직한 분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제이크 역의 방탄의 엄청난 팬 안셀 엘고트는 이 역할을 위해 미친것처럼 노력을 하지 않았나 싶다. 1990년 대의 일본 문화를 비롯해서 일어를 유창하게 해야 한다.


이 시리즈에 나오는 외국 배우들은 일본어를 잘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고 있다. 그 외 키쿠치 린코, 이토 히데야키, 카사마츠 쇼를 비롯해서 와타나베 캔 역시 영어로도 탁월한 대사 전달을 한다. 이들 대부분이 할리우드 영화에 다수 출연을 했다. 마이클 만이 감독을 맡음으로 제작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22년에 시즌 1이 끝나고 시즌 2까지 나왔다.


몰입감이 쩐다고 할 수밖에 없는 도쿄 바이스는 1990년대 일본 최대 라이벌 야쿠자 조직의 갈등이 촉발하는 긴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인이 아닌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어를 일본인만큼 하면서 일본기자로 활동하는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본이라는 사회를 여실히 보여준다.


화려한 불빛을 도쿄거리 그 뒤에 감춰진 어두운 단면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도쿄 바이스 시즌1은 기대이상으로 빠져들게 된다. 잔인한 고어적인 장면이 많지 않음에도 어둡고 묵직하고 끈적한 분위기를 이끌고 가는 도쿄 바이스 시즌1이었다.      


https://youtu.be/HbbHMz6cQ8w

https://youtu.be/HbbHMz6cQ8w?si=jA2GKdK2OWb2G0-t




도쿄 바이스 시즌 2

매 회마다 긴장하고 보기는 근래에 들어 처음이다. 도쿄 바이스 2가 제발 끝나지 않길 바라면서 봤다. 미국에서 만든 일본의 90년대 이야기, 정확하게는 일본을 움직이는 거대 야쿠자의 세계를 파헤치는 메이지 신문사의 최초 외국인 기자의 이야기다.


일단 여기 나오는 모든 배우들이 여러 나라 말을 한다. 시즌 2에서는 우리나라 배우 현리가 아주 매력적으로 나온다. 현리는 일본어,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니까 보는데 몰입이 된다. 현리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도 픽업되었고, 얼마 전 열도를 뒤집어 놓은 채종엽이 나오는 아이 러브 유에서도 비중 있는 역으로 나왔다.


신문기자 제이크의 선임 기자로 나오는 키쿠치 린코는 드라마 속에서 한국인이다. 한국인 2세? 아무튼 그렇다. 그래서 조현병 같은 남동생과 사는데 한국말로 대화를 한다. 키쿠치 린코는 이 드라마 속에서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한다. 키쿠치는 기생수 영화 버전의 신이치 역의 소메타니 쇼타의 아내인데 12살인가 10살인가 많다 TMI.


도쿄 바이스 시즌 2는 시즌 1보다 확실히 더 긴장감이 넘친다. 매회마다 그런데 사건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연출을 기가 막히게 잘했다. 야쿠자들 역시 다른 야쿠자 영화나 드라마보다 현실적이다. 붕 떠 있지 않다.


야쿠자의 최고 보스 토자와 역의 타니다 아유미는 정말 야쿠자의 피가 흐르는 것만 같다. 시즌 2에서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누굴 믿어야 할지, 그리고 누가 당할지 안 돼! 하면서 보게 된다.


90년대 야쿠자의 마수는 일본 정부 총리까지 뻗치게 된다. 그러니 경찰 수뇌부, 신문사의 높은 직책들도 믿을 수가 없다. 야쿠자 식의 칼빵과 칼부림으로 피가 난자하는 영상이 거의 없음에도 야쿠자가 지니는 무게와 공포를 표현하니까 더 빠져든다.


안셀 엘고트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보다 보면 주인공이 따로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제이크를 도와주는 카타기리 역의 와타나베가 주인공처럼 보이면서, 야쿠자 조직이었다가 우두머리로 올라오는 사토 역의 카사마츠 쇼가 정말 매력적으로 나온다. 야쿠자 조직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 보여주는데 인간미를 배척하는 쪽과 인간미를 받아들이는 쪽의 대립 속에서 연기를 하는데 정말 잘한다. 사토가 주인공처럼 보이가도 한다.


또 다른 외국인 주인공 사만다 역의 레이철 켈러가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 토자와의 연인으로 나오는 이토 아유미는 시즌 1에서는 비중에 약했지만 시즌 2로 넘어오면서 주인공 같은 비중이 된다. 시즌 3에서 활약이 기대되는데 아마 죽을 것 같은 예감.


이토 아유미는 아게하로 나왔을 때 대단했다. 이와이 슌지의 SF 판타지 영화 [스왈로우테일 버터 플라이]에서 애벌레로 나오는데 이 영화가 정말 나의 마음을 후려갈겼었다.


아무튼 시즌 1에서 자신의 병을 속이고 다 죽어가던 최고의 빌런 토자와가 시즌 2에서 아주 건강하게 나타난다. 그가 건강을 되찾는데 일본의 장관, 대사관, 미국의 의사, 출국 관리국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었다. 그가 건강하게 살아 돌아옴으로 완전히 판이 바뀌며 미궁이 되어 버린 일본의 90년대.


https://youtu.be/Ua5JiHDgk9o?si=jL-RR-tzNoVlPmzV




댓글부대

댓글부대와 도쿄 바이스를 보면서 기자와 기래기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영화 속 기자는 발로 뛰어다니며 취재를 한다. 그래서 위협을 받기도 하고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불이익에 처맞기도 한다.


하지만 올바른 기사 한 줄을 낼 수 있다면 위험도 감수하고 뛰어든다. 마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의사들처럼 신념을 가지고 불나방이 되어 불 속으로 달려든다.


그러나,


현실 속 기래기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복붙 하여 기사를 낸다. 고작 하는 거라곤 거기에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붙여서 올려 클릭질 장사를 한다.


일전에 일본의 겨드랑이 초밥이 열 배는 비싸다는 기사를 온 언론이 너도나도 낸 적이 있었다. 한 언론의 기래기가 이런 기사를 올리면 다른 언론사 기래기들이 너도나도 우르르 따라서 기사를 낸다. 근데 이 기사는 일본에서 낸 것이 아니라 홍콩 발이었다.


무엇보다 홍콩에서 낸 기사는 2016년도에 실린 기사다. 2016년 홍콩 기사를 복붙 하여 마치 요즘 그렇다는 식으로 기사를 내어 클릭질 장사를 했다. 지금 겨드랑이 초밥이라고 치면 죽 나올 것이다.


댓글부대는 영화도 좋지만 원작 소설로 읽으면 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된다. 영화보다는, 속이 부글부글 거리며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에 확 빠져들 수 있는 건 소설 쪽이라 생각된다. 또 소설은 10년 전의 이야기라, 그 당시에는 정부 쪽에서 댓글부대를 돈을 줘가며 운영을 하지 않았나. 댓글부대 알바 집 앞에서 대치를 하고, 대치하는 동안 그 안에서 증거를 없애기도 한 사실을 우리는 다 봤다.


댓글부대뿐 아니라 무슨무슨 부대, 아줌마부대, 태극기부대 같은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맨 밑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들은 그저 단순하게 움직일 뿐이지만 체계화되어 있다. 이렇게 조직적으로 운영을 하는데 돈이 든다. 자본이 많이 들기 때문에 여러 경로를 거쳐 이런 부대들이 움직인다.


댓글부대가 무서운 이유는 작금의 시대에는 댓글로 사람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도 한 사람을 매몰시켜 죽음으로 모는 건 댓글이 최고다. 자극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자극에 자극을 더하면 그 어떤 총알보다 강력한 무기가 된다.


주진우 라이브쇼에서 정유라 기사 낸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거 취재해 보니 기사와 다르던데?라고 하니 기자는 정유라 소셜에서 하는 말을 복붙 해서 올렸다고, 그래서 자신은 잘 모른다고. 그게 무슨 기자냐.


자극에 미쳐있고 클릭질에 미쳐있고 누군가 공격하는데 미쳐있는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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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안노 히데야키의 [신 고리자]의 1940년대 버전 같다. 이 영화는 고지라에 초점이 맞춰있지 않고 고지라에 대처하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있다.

[신 고지라]와 [고지라 마이너스 원] 두 영화에서 고지라를 소거하고 핵폭탄으로 바꾸면 이야기는 훨씬 쉬워진다. 안노 히데야키의 [신 고지라]는 현시대에 일본이 핵공격을 받았을 때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국민과 대외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할리우드의 고질라처럼 볼거리에 치중하지 않고 현실을 파고들어 직시하게 만든 영화가 [신 고지라]였다. 개인적으로 [신 고지라]는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 [고지라 마이너스 원]은 1940년대 패전이 된 일본을 그리고 있다. 그 트라우마를 좀 바꿔보고자 일본을 미학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고지라를 끝내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물론 마지막 장면을 보면 고지라는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고지라를 소거하면 일본에 핵폭탄을 투여한 나라를 이긴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패전 후 패망의 일본을 늘 그려왔는데 이렇게 트라우마를 영화 속에서 극복하니 일본인들은 와,하며 좋아할 것이다.

영화 속 자살특공대였던 코이치가 타던 전투기 신데(이름이 그런 식이다)? 인가 그 전투기를 타고 고지라를 죽이러 가는데 영화 속에서 리키(범죄 3)가 이 전투기는 B29를 막기 위한 용도로 개발된 전투기라는 말을 한다. 다들 잘 알겠지만 B29는 핵폭탄을 싣고 갔던 비행기다. 지난해 영화계를 휩쓴 오펜하이머가 만든 핵폭탄을 싣는데, B29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과 개발이 핵폭탄을 만드는 비용의 열 배는 넘게 들었다.

핵폭탄 투하 계획에는 원래 아인슈타인도 들어가 있었다. 과학자들은 결과가 어떻든 그저 연구를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데 과학자들이 어쩌면 제일 비과학적이라고 한다. 무슨 말이냐면 과학자는 보통 평생에 걸쳐 연구를 하는데 20년 이상 하던 연구가 그건 잘못된 것이고 이게 맞는 거라며 새로운 논문이 나오면 자신을 부정하기 싫어서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보통 그렇다고 한다.

아무튼 과학자들은 일본에 투하하는 핵폭탄을 만드는 것에 열정을 불태웠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그 결과가 노인과 아이들, 여자들도 모두 흔적도 없이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 계획에서 빠지게 된다.

아무튼 이 영화는 일본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영화 적으로 어떻게든 한 번 뒤집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영화다. 한국 영화 블로그들이나 영화 리뷰어들이 일본에서 상을 잔뜩 받은 영화라고 이 영화를 띄워주는 식의 글이 많은데 참 이상한 일이다. 안노 히데야키의 [신 고지라]처럼 현 일본 정부의 폐부를 찌르는 이야기를 고지라에 빗대어서 비틀어서 보여주는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이 든다.

전쟁이란 그렇다. 영화 속 코이치도 정부에 속아서 나라에 충성하라고 훈련을 받았지만 결국 전쟁은 부모도 여자도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만드는 몹쓸 것이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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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라는 건 참 어렵고,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애매하다. 특히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는 특별함과 동시에 속박과도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관계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그 사람과 싫든 좋든 가까이 있어야 한다. 학교, 교실, 군대, 회사, 동네, 사무실, 학원 그리고 가족.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는 인간관계라는 말이 성립되기 애매하다. 멀리 있는 사람과는 인간관계가 복잡할 필요가 없다. 복잡하고 난해한 인간관계는 늘 나와 밀접하게 붙어있는 사람들이다.


세 자매 중 첫째와 막내는 부산 영도 본가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둘째는 서울에서 방송국 작가로 일하다가 아버지 제사로 인해 고향으로 온다.


회사에 간 첫째, 학교에 간 막내 대신 둘째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엄마는 자주 깜빡깜빡한다. 그러다가 엄마가 일하는 도시락 공장에서 실수로 불을 내고 만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지만 그 기회로 엄마의 치매 초기라는 걸 알게 된다.


너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언니에게 말하지만 언니는 퉁명스럽고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옆에서 잘해드리고 요양원이라는 말을 꺼낸다. 둘째는 그런 언니가 이해되지 않아서 요양원에 엄마를 보내지 말고 간병인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관계를 이어주지 못한다. 모두가 일을 하고 와서 간병인 가고 난 후 누가 엄마를 밤새도록 캐어할 것이며,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같은 현재에 닥친 문제들. 관계에 있어서 나 하나만 생각할 수 없고 가족이라고 해서 어설프게 아는 척해서도 안 된다. 힘들다, 이 놈의 관계라는 건 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을까.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 이름 하나코는 어릴 때 부산으로 와서 60년 동안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못했다. 외할머니에게서 온 편지는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의사가 써준 편지.


엄마는 자기 때문에 싸우는 딸들에게 마지막으로 교토에 가고 싶다고 한다. 이 영화는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떠들썩하지 않는다. 치매가 천천히 인간의 뇌를 파먹듯, 영화는 조용하고 천천히 하지만 깊게 현실의 문제, 가족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죽고 못 살았던 내 새끼는 나중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 나를 떠난다. 형제자매는 피로 이어져 모든 걸 나누며 이해하는 관계일 것 같지만, 피로 이어졌다는 이유로 서로가 서로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기도 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편하면서 어렵고 이상한 관계. 인간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 그런 존재가 모여 있다. 그러니 이상하고 또 이상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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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슴슴한 도다리국을 먹었는데 고요함이 입 안으로 확 들어오는 느낌. 도다리 매운탕만 먹었는데, 온통 축제 같은 분위기라 도다리의 맛은 뒷전이고 뻘건 양념 맛이 후려쳤는데 이렇게 고요한 맛이 묵직하게 입안을 채우다니, 너무 맛있는 거였다.


이 독립영화 ‘은하수’를 보고 나니 슴슴한 도다리 국을 먹은 느낌이다. 이런 영화라면 양팔을 벌려 격하게 환영하고 싶다.


영화는 가타를 잃어버려 그 기타를 찾으러 다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나이가 많은 인디밴드 3인조 혼성 ‘은하수’는 자신들의 노래를 알아주는 곳을 찾으러 다니지만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는 곳은 없다. 버스킹을 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맏형 동은은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집을 나와 펜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곳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최호섭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두고 간, 사인이 된 그 기타를 아르바이트 비로 기타를 구입한다. 그 기타는 자신의 심장과도 같다.


하지만 그 기타는 어쩌다가 당근으로 팔려 나가고, 기타가 바뀌고, 다시 사채업자에게로 갔다가 어떤 할머니에게로 간다.


모두가 기타에 얽힌 사연이 하나씩 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에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고 싶고, 누군가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과거를 청산하고 노래를 만들어 주고 싶다. 또 다른 누군가는 30년 전에 실종된 기타를 치던 아들을 위해 기타를 준비한다.


기타라는 게 악기 중에서 가장 접하기 쉽다. 하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작은 오케스트라의 음을 낸다. 기타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은하수는 노래를 부른다. 가사 중에 ‘우주 속 작은 빛이라도 의미가 있어’라는 부분은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지만 먼지가 하찮지 존재는 하찮지가 않다.


이 영화에 카메오로 나오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노브레인의 이성우, 플라워의 고유진, 김현정과 박선주 등 마지막에는 최호섭도 나온다. 재미있었다.


영화의 유머를 장착한 대사도 겉돌지 않고 웃음이 나온다. 이 영화는 확고한 진실보다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이 훨씬 낫다고 말하는 것 같다. 밴드 은하수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아주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 [은하수]였다.


고해형이 연기도, 게임도 잘하는데 노래까지 잘 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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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가 대만, 중국 등 영화제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어 티켓이 없어서 난리라고 한다. 파묘의 가장 큰 매력은 ‘공포’가 강력하다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초석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다.


중화권 공포영화들도 꽤나 무섭고 공포가 가득한 영화가 많다. 그러나 파묘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공포의 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파묘가 보는 이들에게 공포를 준 건 영화 속 도깨비불이나 원흉이었던 사무라이 귀신이 아니다.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들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화림이 툭툭 하는 말투에서, 빙의 들린 윤봉길의 눈빛,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김상덕의 표정과 고영근의 달라지는 동작에서 굉장한 공포를 보았기 때문이다.


얼굴을 덜덜 떨며 빙의 들려 목이 꺾이는 박지용을 보는 김상덕, 최민식의 엄청난 연기에서 우리는 그만 공포가 몸을 덮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화림, 김고은의 평소 같은 말투로 툭툭 던지는데 그 안에서 소름이 돋았다. 이도현이 빙의되어 신들린 연기를 펼칠 때에도 공포가 화면을 뚫고 쏟아져 나왔다.


영화 속 공포를 주는 대상이 보통 공포영화의 주체가 되는 귀신인 경우가 많지만 파묘에서는 주체의 대상보다 피상적인 대상들이 공포를 느끼는 과정을 통해 보는 이들까지 공포를 주인공들과 함께 느끼는 체험을 한다.


작금에는 주체가 되는 공포의 대상이 포효하는 공포에 둔감해졌다. 영화가 세상에 도래한 이루 공포영화는 영화의 한 장르로 입지를 돈독하게 굳혔다. 하지만 공포영화는 한계에 돌입했다. 공포 마니아들은 어지간한 공포물에 공포를 느끼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공포물이 나오면 좀비나 드라큘라 또는 제이슨이나 프레디 같은 대상이 주인공인 영화에서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던 필이 그 어떤 무서운 대상을 대동하지 않도고 극한의 공포를 주었고, 아리 에스터의 유전에서 처음 느끼는 공포를, 미드 소마에서는 대낮이 밤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는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를 우리가 동시공체로 느꼈기 때문이다.


파묘 역시 배우들의 힘이다. 과연 최민식, 유해진이야, 같은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장재현 감독의 이전 작들을 봐도 그런 면모가 면밀히 보인다. 주인공들에게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하는 말투, 대사, 심리에서 우리는 압도당하는 공포를 실감했던 것이다.


특수 분장이나 그래픽으로 중무장한 공포물은 앞으로는 공포보다는 징그러운 쪽으로 갈 것이다. 눈을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징그러우면 공포와 연결이 될 수는 있으나 즉각적인 공포의 범주는 아니다. 징그러움이 이어지면 공포가 될 수 있다. 일본 만화 ‘식량인류’을 보면 그렇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와서 배양하듯 살을 찌워서 어떤 존재의 먹이로 준다. 각종 호르몬제와 약물을 투여하여 이가 다 빠지고 몸이 문들어지는데도 가슴을 계속 커지고 성욕만 남아서 섹스를 갈구하고 아이를 계속 낳는다. 원작을 보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징그러움의 연속이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너무 공포스럽다. 아주 무섭다.


즉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바로 인간이다. 특히 어제까지 나의 곁에 있던 사람이 오늘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어제의 온화한 내가 오늘 공포의 내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공포를 주는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라는 걸 우리는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있다.



식량인류 몇 장면




마이클 패스밴더가 나홍진 감독과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포착 됐다.

어떤 공포물이 탄생할까. 기대를 해본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크리드포스트 https://blog.naver.com/rlqhstyle/22342490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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