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세 편으로 이루어진 독립영화. 세 편 모두가 살뜰하게 재미있다. 요런 영화들이 한국 영화의 장점 같다.

영화를 통해 사랑을 알아가는 세 편의 영화 첫 영화는 마치 우디 알렌의 초기 작품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주인공은 나이트클럽에서 만나서 영화 보러 가자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일하는 중국집으로 가서 그녀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내용이다. 우디 알렌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두 번째 독립영화는 영화학도, 종사자들이 보면 흠뻑 빠져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찍고자 하는 초짜 감독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 영화를 하려는 게 아니다 너는 감독을 하고 싶은 거야. 이 대사는 영화뿐 아니라 작가, 화가에게 전부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프레임 속의 세계, 그게 현실인지 영화인지. 그리고 그 모습을 또 프레임 속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프레임 밖에서 보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속 사람들은 진짜 관계일까 영화 속 관계일까.

세 번째 영화는 구교환과 이옥섭 감독 두 사람의 우당탕탕 알콩달콩의 실제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구교환은 구교환으로 나오고 임성미가 이옥섭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연기를 너무 잘해.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주조연들이 전부 연기가 좋다. 박혁권이 나오는데 얼굴이 나오지 않아서 너무 웃겨.

여백이 기분 좋게 틈을 메꿔주는 것 같은 영화다. 서투른 자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멋지고 거짓 없이 사랑에 몸을 던지는지.

영화는 세 편인데 감독은 네 명.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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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독이 그렇듯이 존 카펜터 역시 초기 작품은 수작이다. 어쩜 이렇게 표현을 잘 했을까 싶다.

경찰서로 달려드는 갱단들은 그야말로 오직 신념 하나만 있는 좀비떼처럼 보인다. 창문을 넘고, 벽을 뚫고, 방해물을 지나 경찰서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좀비떼 같은 이 모습은 이후 많은 영화에서 오마주를 한 것 같다.

갱단들이 사람을 죽이는데 망설임 없는 것도,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 모습도 좀비와 흡사하다. 좀비 영화에서 가장 쓸모없는 감정이 좀비로 변한 가족에게 향한 마음이다.

영화 초반에 한 여자아이가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잘 못 샀다며 다시 가는데 거기서 갱단을 만나는데 바로 아이에게 총을 쏴 버린다. 갱단은 좀비처럼 아이고 어른이고 가리지 않고 죽여 버린다. 존 카펜터 감독이 그냥 가감 없이 연출을 해 버렸는데 그래서 갱단의 존재가 더욱 좀비처럼 보였다.

고전 서부극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존 카펜터의 두 번째 작품이다. 갱단들은 대사도 없고 무표정으로 몰려다니며 경찰서에 닫힌 사람들을 죽이려 든다. 경찰서 건물의 모든 전화선을 끊어 놓고, 이사 문제로 전기는 새벽에 끊어지기로 되어 있는 엉망진창인 상황.

자본을 들이지 않고 이토록 기가 막히도록 잘 뽑아낸 연출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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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다. 지독한 공허. 트래비스는 전쟁 참전 후 공허가 몸속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와 허무를 채우고 불면을 쌓아 놓는다. 이 공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고 깊어져 몇 날 며칠을 잠들지 못한다.

영화는 트래비스가 잠을 못 자는 걸 보여주지 않지만 기가 막히게 불면으로 트래비스가 점점 변해가는 걸 보여준다.

트래비스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깊고 큰 공허는 저기 보이는 밤의 쓰레기 인간들도 있을 텐데 왜 나만 이렇게 힘이 들까.

공허는 많은 것들을 불러온다. 용기를 불러오기도 하고, 사랑을 불러오기도 하고, 망상을, 객기를 그리고 광기와 정의를 불러온다.

공허는 외로움을 불러온다. 상실과 결락이 동시에 비가 되어 택시 차창에 부딪힌다. 그럴 때 흐르는 재즈만이 트래비스의 씁쓸한 친구가 되어 준다.

공허가 불러온 사회에 대한 울분은 아이리스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으로 집중된다. 트래비스는 이제 공허가 전해주는 이 광기가 혈관을 타고 도는 게 느껴진다. 아이리스를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다가온 베시를 무시하는 트래비스를 보면서 쓸쓸하고 고독한 소외된 자들을 떠올렸다. 76년작이고 트래비스는 영화 속에서 26살이다.

열패와 낙오 그리고 외로움과 세상 그 너머 무엇인가에 대한 원망과, 생각과 현실의 괴리로 힘들어하는 트래비스가 이해된다면 내 처지가 트래비스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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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한데 아름답고, 딱해 보이는데 자유로워 보인다. 상상 속의 동물, 인터넷 세계에서나 가능한 개닭, 개돼지, 개오리를 탄생시킨 가여운 것들이여.

프랑켄슈타인의 여성 버전. 이 영화의 장르를 말하라면 엠마 스톤이라 하겠다. 엠마 스톤이 엠마 스톤한 영화. 벨라가 벨라가 되는 이야기.

만삭의 몸으로 죽어버린 벨라는 벨라의 아이의 뇌를 벨라에게 이식시킴으로 다시 태어난 벨라가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 벨라식 사랑은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며 우아하지 않고 추잡하고 드러내는 사랑이지만 벨라의 사랑에는 거짓은 없다.

벨라가 가여운 것일까 벨라를 둘러싼 사람들이 가여운 것들일까.

사랑을 찾아 그렇게 벨라의 모험이 시작되는데, 빠져드는 색감과 황홀한 미장센. 초현실의 감각으로 그려 놓은 미술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모험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벨라는 벨라만의 특별한 성장을 한다. 인간을 알아간다. 벨라는 벨라 자신을 알아간다. 흑백에서 서서히 컬러를 찾아간다.

벨라의 눈을 통해서 보는 세상을 우리도 같이 느낀다. 이상주의는 무너지기 쉽지만 현실주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벨라는 알아간다. 그게 세상이다. 종교의 거짓에 넘어가지 마라. 세상은 치욕과 공포, 슬픔이 있는 곳이다.

유아기처럼 의성어 의태어나 뱉어내던 벨라가 후반에는 성장하여 대사가 몹시 철학적이 된다. 몹시 야하며 아주 잔인한 장면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도발로 다가온 ‘가여운 것들’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 랍스터를 볼 때보다 더 홀딱 빠져서 보게 된 영화.

근래에 인간을 이토록 잘 드러낸 영화가 있었나 할 정도로 재미있게 본 ‘가여운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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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하고픈데 친구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면 이상하지만 질투와 미움, 원망이 먼저 든다. 그러다 보면 미묘한 감정이 서로 어긋나서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고 서로 자기 힘든 것을 알아달라고 다투다 격하게 된다.

왜 다른 사람하고 있을 때는 신나고 즐거우면서 어째서 나와 있을 땐 늘 힘들어 보이는지. 그런 모습조차 너무 싫어. 그게 네가 너무 좋아서 너무 싫은 거야. 조금만 좋아하면 되는데 너무 좋아하니까 다른 아이와 있을 때 더 즐거우면 나는 짜증이 난단 말이야.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너를 향해 있는데 너는 왜 다른 사람과 있을 때 그렇게 행복해 보이냐고.

세미에게 하연은 친구 그 이상의 관계이자 설명이 불가능한 관계다. 아니 서로에게 그랬다. 여고생들은 친구가 세상에서 나보다 더 지켜주고픈 존재니까. 그런 친구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고 돌아오지 못했다. 나의 모든 날들이 오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뿌연 봄날의 솜사탕 같은 햇살은 눈으로는 잘 보이는데 만지려고 하면 만질 수 없는 것처럼 친구는 그런 햇살이 되었다. 너무 부드러워 닿으면 부서지는.

한 발 떨어져 생각하면 너무 아무 일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그 티끌 같은 일에 안간힘을 쓰고 덤비고 달려들고 울고불고했을까. 꿈까지 같이 꿀 수 있는 나의 사랑 나의 친구. 어쩌다가 그런 친구에게 나만 알아달라고 그랬던 걸까.

누군가는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그 누군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도 흉터로 남아 있는 거지.

우리가 같이 놀던 너의 방, 우리 아지트 카페, 동네 놀이터 이 모든 게 그대로인데 네가 없으니 그저 부드러운 카스텔라 같아서 건드리면 그대로 부드럽게 녹아 없어질 것 같아.

하나와 엘리스가 떠오르는 영상미, 사실은 은유와 메타포로 곳곳에 숨겨 놨고, 연기도 잘 하지만 감독으로도 손색이 없는 조현철 감독의 작품으로 [다음 소희]의 김시은과 박혜수는 정말 여고생 같다. 찐따로 카메오 출연한 박정민은 정말 찐따 같았던, 보고 나면 눈앞이 영화 영상 같아 보이는 영화 ‘너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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