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시골마을.

두 시간 넘게 버스를 기다리는 한 청년.

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한 대 온다. 청년은 버스에 올라탄다. 이 험난한 시골길의 대형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는 20대 젊은 여성이다.


청년은 버스에 오르며 두 시간을 기다렸다고 젊은 여성의 기사에게 말하지만 멋쩍게 한 번 웃고는 기사는 시큰둥하다. 버스에는 시골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가득 앉아 있다. 청년은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렇게 버스가 시골길을 터덜터덜 가는데 저 앞에서 다친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보인다. 버스가 멈추고 그들을 버스에 태우자마자 강도로 돌변해서 승객들의 돈을 뺏는다. 승객들은 순박해서 반항을 하거나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한다. 승객 중 한 명이 강도에게 돈을 주지 않으려 하다가 강도에게 맞아서 피가 난다.


강도들은 버스에서 내리려다가 운전기사가 젊은 여성이라는 걸 알고 끌고 내려가서 겁탈하려고 한다. 기사는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버스에 탄 남자들은 그저 멀뚱멀뚱 보기만 한다. 순박한 얼굴 표정에서 나만 다치지 않으면 기사가 당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얼굴이다.


강도들은 여성 기사를 끌고 내려가서 겁탈을 한다. 승객들은 그저 그 모습을 멀뚱히 보기만 할 뿐이다. 가장 늦게 올라탔던 청년이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느냐며 버스에서 내려 강도들에게 달려들다가 칼에 찔려 다리에 피가 나서 쓰러지고 만다.


성폭행을 하고 강도들은 가버리고 여성 운전자가 만신창이 되어 버스에 오른다. 오르면서 버스에 탄 사람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본다. 승객들은 여성 운전자의 시선을 피하기만 할 뿐 더 큰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안도하는 얼굴이다. 여성 기사는 한참을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운전석에 앉는다.


그때 청년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버스에 타려고 한다. 그런데 여성 운전자가 타지 말라고 화를 낸다. 청년은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은 나뿐인데 왜 나만 버스에 태워주지 않느냐고 한다. 여성 운전자는 화가 나서 버스의 문을 그대로 닫아 버린다. 청년은 태워달라고 하지만 여성 운전자는 창문으로 청년을 가방을 던져준 후 버스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난다.


황당한 청년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시골길을 가다가 어떤 차에 히치하이킹을 해서 간다. 얼마쯤 갔을까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청년은 내려서 본다. 거기 가서 보니 아까 그 버스가 절벽으로 떨어져 모두가 사망하고 말았다.




이 단편 영화는 1998년 8월 중국의 지방 신문에 보도된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11분짜리 단편 영화를 보면 잘 알겠지만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다. 전 세계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생물 1위가 모기, 2위가 인간이라고.


요즘 공포영화가 많이 나오는데 귀신? 좀비? 뱀파이어? 괴물? 유령은 장난 수준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잔인하다. 요즘 아기들 버리고 파묻고 냉장고에 넣고 봤지. 영화 풀버전은 유튜브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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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카’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로 세 편의 단편 영화로 이루어진 영화가 ‘우연과 상상’이다. 이 영화(들)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말 마법 같은 영화다. 세 편 전부 등장인물도 한두 명이 전부다. 특별한 사건이나 액션 없이 그저 주인공들이 대화를 나눌 뿐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사를 들으면 상상을 하게 된다. 눈으로 영화를 좇지만 상상 속에서 또 다른 영화를 만들어낸다. ‘비 포 선 셋’ 시리즈처럼 내내 대화만 하는데 뭐야? 내 마음이 왜 이러지? 하게 된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의 가능성을 믿고, 문을 열어둔 채 상상은 우연이 되고 다시 한번 마음을 털어놓는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 올해 들어 본 영화 중에는 이 영화 ‘우연과 상상’이 제일 좋았다.


이 영화의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10분 미만 짜리 단편 영화를 자신은 만들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재미있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간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 너무나 깊고 깊게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총 세 편으로 이루어진 ‘우연과 상상’은 처음에 두 번째 영화 ‘문은 열어둔 채로’를 먼저 만들고, 1년 뒤에 처음 시작하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던 장편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를 촬영하던 도중 코로나가 터졌다. 그렇게 시간을 거쳐 세 번째 영화 ’다시 한번'을 만들었다.


마지막 영화 '다시 한번'은 두 사람의 마음이 하는 말, 내내 숨기고 있었던 말이 내내 잔상이 되어 내가 어딜 가든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나츠코는 20년 만에 미야기 현의 미야기 여고 동창회가 열리는 곳에 참석을 한다. 그러나 재미도 없고 기억나는 친구도 거의 없다. 나츠코는 찾고 싶은 친구가 있었지만 그 친구는 나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다시 도쿄로 가기 위해 센다이 역으로 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나츠코는 반대쪽에서 내려오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을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을 한다. 상대방 여성도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타고 올라오고 나츠코는 다시 내려가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너무나 반가운 동창. 만나고 싶었던 친구를 이렇게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나츠코는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길 바랐지만 친구는 택배 때문에 집으로 가자고 한다. 두 사람은 고교의 일을 이야기하며 집으로 간다. 집을 둘러보던 나츠코는 친구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친구는 생각을 하다가 나츠코에게 되묻는다. 나츠코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때 친구가 나츠코에게 미안하지만 실은 너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나의 이름이 기억나는지 묻는다. 황당한 나츠코는 친구의 이름을 말하지만 친구는 그 이름도 아니며, 우리는 같은 여고를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나츠코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두 사람은 고교 때 서로 친하게 지낸 친구가 되어 준다. 나츠코는 아야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아야가 아닌 코바야시에게 덤덤하게 말한다.


"말해야 할걸 못 한 나한테 화가 났어. 내가 하지 못한 말.

네가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 난 시부야 중심가에 있었어. 하마사키 아유미의 노래가 흘렀고 유행 차림 소녀들이 시끄럽게 떠들었어.

하지만 네 목소리는 아주 또렷이 들렸어. 아주 단호한 목소리였어. 혼자 힘든 시간을 견디다 전화했다는 게 느껴졌어.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어.

뭔가 말하면 너를 더 힘들게 할 것만 같았어. 그래서 전화를 끊었고 다시는 걸지 않았어.

그때 내가 못 한 말은 난 너만을 사랑했다는 것.

넌 다른 사람이어도 괜찮을 수 있지만 난 네가 아니면 안 돼. 나와 함께 하면 네 인생이 복잡해질 수 있지만 그래도 날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못 했어. 하지만 지금 난 너에게 뭘 원해서 온 게 아니야.

단지 그때 그 말을 못 했다고 전하고 싶었어.

널 힘들게 하더라도 말했어야 했어. 그 고통이 우리 인생에 필요하단 걸 깨달았거든. 지금 네 인생에도 조금은 나와 같은 구멍이 생겼을 테니까.

그래서 왔어.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분명 있을 거야. 이젠 그걸 채울 수 없지만 나에게도 그게 있단 걸 전하려고 왔어.

그 구멍을 통해 우린 지금도 연결돼 있을지도 몰라. 그걸 말하려고 왔어"


하마구치의 이전 작품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상처를 받으려면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세번 째 단편 ’다시 한번'은 그때 비록 네가 힘들지라도 말해야 할 건 말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고통이 필요하다는 걸 지내면서 깨달았다는 것. 하지 못한 말을 그대로 둔 채 시간이 흐르면 서로에게 점점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은 공백이 들어차게 되어서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이 세 편은 기가 막히게 하루키의 소설 같다.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농도 있는 대화가 소설을 읽는 기분을 준다. 정말 마법 같은 언어가 밀도 있게 시간을 채워 나간다. 아아 영화를 보면서 상상하게 만드는 아주 기묘한 마법을 부리는 감독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나에게는 좋았던 영화 ‘우연과 상상’이었다. 와 씨 영화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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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시로 간 처녀’는 81년 작품으로 김수용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수용 감독은 우리나라 문예 영화의 거장이라 불렸다. 이 영화의 각본을 김승옥이 썼다. ‘도시로 간 처녀’ 이전에 김승옥과 김수용 감독이 만나서 작품을 만들었던 건 64년에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안개’였다.


영화 ‘안개’가 소설만큼 재미있는 건 김승옥이 직접 각본을 썼기 때문이다. 이때 재미있는 일화가 김수용 감독이 김승옥에게 제발 쉽게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김승옥이 한국문단에 등장하자 그야말로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그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대중 소설은 무협소설과 민담 설화에 가까운 소설이었는데 김승옥이 문단에 등장하자마자 모국어의 폭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피츠제럴드 같은 직유와 은유, 그리고 구조가 너무나 완벽하게 이루어진 문장이 사람들의 염통을 후려쳤던 것이다.


김승옥이 등장했을 때의 일화 중 하나는, 지금 한국의 대문호 격인 소설가 김훈,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 소설가도 우리나라 거의 1대 문인이었다. 김훈이 꼬꼬마 16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버지 김광주의 방에 아버지 후배들, 즉 문인들이 모여서 심각한 얼굴들을 한 채 이야기 중이었다. 이야기 즉슨 읽어봤냐? 괴물이 등단을 했어! 였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훈에게 막걸리를 받아오게 해서 김광주와 문인들이 마시면서 이제 우리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같은 이야기를 밤새 했다고 한다.


김훈은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당시 최고의 소설이 황석영의 장길산이었다. 장길산은 한국일보에 74년부터 84년까지 매일 연재된 소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황석영이 매일 소설을 연재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 도망을 쳤다. 도망을 쳐도 어느 지역에서 그날그날 쓴 소설을 우편으로 동봉해서 신문사에 보냈는데 그날은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신문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사람들이 연재가 끊어져 난리가 났다. 그래서 도망간 황석영을 잡으러 간 사람이 담당 편집기자인 김훈이었다.


아무튼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세상에 나온 이후 한국 문단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상상의 도시, 무진의 명산물 안개를 여귀가 뿜어낸 입김 같다고 표현을 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안개를 이만큼 표현한 소설 속 미문이 없다. 소설 속의 여귀는 영화 ‘안개’ 속에서 마녀로 대신 나온다.


김승옥의 문장 속 세계관을 나타내는 언어는 지금도 유효하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 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 무진기행]


소설 속 ‘조’가 영화에는 조한수로 나온다. 두 사람은 세무서장이 된 조의 집으로 가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숙, 하인숙을 만나게 된다. 영화에서 하인숙을 연기한 배우는 윤정희다. 아주 어린 모습의 윤정희는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문 예쁜 얼굴의 배우다.


이 무진기행은 세 번 영화가 되었다. 67년에 한 번, 76년, 87년에도 만들어졌다. 윤정희는 두 번 하인숙으로 열연했다.


안개가 재미있는 이유 중 또 하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이제 고인이 된 신성일과 윤정희가 주인공으로 나오며 소설 속의 문체를 영화적 문채로 절묘하게 녹아냈다. 김승옥의 각본과 김수용 감독의 연출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런 김승옥과 김수용이 다시 한번 영화를 만든 것이 ‘도시로 간 처녀’였다. 이 영화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사회고발 영화의 시초였다. 이 영화는 그 당시 버스 안내양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다. 돈을 삥땅 하는 일 때문에 알몸수색을 하는 문제가 당시에 있었는데 김승옥은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며 버스 안내양들을 취재하여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부당한 대우와 모욕감 때문에 유지인이 투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난리가 났다. 김수용 이전의 영화에서는 누가 봐도 마네킹이 절벽 같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연출을 했는데, 김수용은 실제로 유지인이 투신하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을 한 것이다.


이 영화는 33일 밖에 상영하지 못했다. 실제 일어나는 사회고발 영화이기에 기득권이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영화는 몇 번이나 삭제를 하고 또 당해서 나오게 되었지만 군사정권 시대라 마음껏 상영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였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바보들의 행진의 히로인 영자의 이영옥의 모습과 금보라의 풋풋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다른 의미의 재미다) 건 이 영화가 상영되고 지금까지 시간이 몇십 년이 흘렀는데 조직이나, 단체,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여전하고 그들을 지금 이 더운 태양 아래서 농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가사의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핍박당하고 죽음을 각오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순수함을 지키려 하고 진실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는 것 역시 예나 지금이나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 유지인, 극 중 문희는 투신을 하지만 살아난다. 희망을 주며 끝이 나지만 해피엔딩이 말할 수는 없다. 김수용 감독은 2005년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무슨 사회성이냐, 폭로 항변 메시지는 접어두고 좋은 세상 만날 때까지 사랑하고 정사하고 눈물 짜는 영화나 찍자”라고 했다.


김승옥 소설가가 광주민주화항쟁의 충격으로 절필을 선언했을 때 이어령 박사가 붙잡아서 호텔에 던져 놓고 장편 소설을 계속 쓰게 했는데 그 소설이 ‘서울의 달빛’이었다. 그런데 김승옥은 끝끝내 소설을 다 쓰지 못하고 절필을 하고 만다.


그래서 ‘서울의 달빛 0장’으로 단편 소설이 되었다. 만약 장편으로 이어졌다면 1장, 2장 주욱 이어졌을 것이다. 김승옥의 단편 소설들은 읽고 또 읽었지만 너무 재미있다. 김승옥의 소설 속에는 위트와 유머가 살아있다. 이후 김승옥의 몸에 풍이 와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2014년인가 순천에서는 무진기행 50주년 행사를 하기도 했다. 김승옥 소설가도 41년 생이시니까,,,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얼마나 무진, 즉 순천의 자랑이었냐 하면 응사, 응답하라 1994에서 순천의 해태와 여수의 학생이 술집에서 서로 더 대단한 도시라고 싸운다. 비행장이 있니 없니, 백화점이 있니 없니. 그러다가 밀리게 된 해태가 그런다. 김승옥! 무진기행! 우린 무진기행이 있는디. 정말 멋진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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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 사람은 오직 너뿐. 너의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너의 입술을 훔쳤다. 괴물이란 다른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모두가 우리를 괴물이라 해도 여름의 뜨거운 빛을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때로는 확실한 진실보다 희미한 가능성이 더 나을지도 몰라. 우리는 괴물이니까 우리 서로 열심히 사랑하자. 사랑이 없는 사람은 많아도 사랑이 많은 괴물은 우리뿐이야. 너를 알게 된 후 나의 피와 뼈와 살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어. 딸기는 빨간데 딸기우유는 하얀색이다. 그래, 우리는 딸기우유를 먹으며 딸기보다 더 맛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여름의 정점에 부는 바람은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 하는 사이 한 계절의 여름은 짧게 지나 저만치 후퇴해 버리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여름의 그 감촉과 냄새는 마음 한 편의 야들야들한 추억이 되었다.

딸기우유, 트레이시 에민, 휴대용 시디 플레이어, 신해철, 웸, 011 애니폰 등이 배경이 되었던 최은영 단편소설 원작 '그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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쥰페이는 새로운 곤충을 채집하여 곤충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일이 목표가 되었다. 생물이 전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모래사막 속에서 끝까지 살아서 생존하는 곤충은 적응력,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말이다. 매일 반복되는 학교 업무에 지쳐가던 쥰페이는 척박한 곳에서도 살아가는 곤충을 채집하러 사구가 많은 바닷가로 간다. 모래 때문에 벌레가 전혀 살 것 같지 않은데 모래 속에서 살아가는 곤충을 찾아낸다.


모래는 생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쉴틈도 없이 흘러 다닌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말이다. 매일 반복된 생활 속에서 어딘가에 매달려 있기만 할 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한다면 이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혼자서는 절대 움직일 수 없는 모래가 움직이는 모습은 쥰페이를 점점 흥분 속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때, 누군가 와서 말을 건다. 무슨 조사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저는 곤충채집을 합니다. 아? 그래요? 정부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군요. 정부요? 아닙니다, 저는 학교 선생입니다. 아, 그렇군요, 선생님이시군요.


마을 사람은 쥰페이에게 막차가 끊겼으니 원한다면 묵을 곳을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마을 사람의 안내를 받고 간 곳은 기묘한 집이었다. 넓은 모래 구덩이 안에 붙어 있는 집은 곧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잘 도 버티고 있었다. 마을 사람의 말을 듣고 하룻밤만 마을에서 묵기로 한다. 묵을 집은 거대한 모래 구덩이를 줄로 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있는 민박 집이었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살고 있고 전등도 하나뿐이다. 여자는 30대로 보이는 여자였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다.


그날 저녁 쥰페이는 여자에게 식사를 제공받는데 여자는 큰 우산을 쥰페이 머리 위에 대어 준다. 모래가 떨어져요. 모래는 온 집에 떨어졌고 지내는 게 만만찮았다. 쥰페이는 날이 밝는 대로 마을을 나가기로 한다. 그런데 여자는 기묘한 말을 한다. 첫날에는 누구나 적응을 하지 못해요. 쥰페이는 내일 나갈 텐데 왜 그런 말을 하죠? 묻지만 여자는 밤에 일을 한다.


여자는 밤새 모래를 퍼 내는 일을 했다. 모래를 퍼내고 또 퍼내고 계속 퍼낸다. 오로지 모래를 퍼내는 일만 한다. 모래는 마치 여자를 속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밤이 되면 모래가 계속 쌓이기 때문에 밤새도록 모래를 퍼내는 것만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를 이런 곳에 붙잡아 놓고 이런 일을 매일 시킨다는 것에 쥰페이는 화가 났고 아무렇지 않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 여자에게도 화가 났다.


아침에 쥰페이가 눈을 뜨니 밤새 모래를 퍼내는 일을 하고 발가벗고 잠들어 있는 여자. 쥰페이는 옷을 입고 집을 나가려는데 사다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곳에 갇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다리를 치운 마을 사람들은 쥰페이를 모래사막 한가운데 여자와 함께 가둬둔 것이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모래 속에서 발버둥 치는 곤충이 된 셈이다.


쥰페이는 한낮에 모래 구덩이 위를 올라가려다 일사병에 걸리기도 하고, 여자를 미끼로 마을 사람들을 협박하기도 했으며, 탈출을 위해 여자에게 협조를 하기도 했다. 쥰페이는 여자와 함께 매일 비슷하고 반복된 일을 하며 지낸다.


왜 이곳을 나갈 생각을 안 하나요? 쥰페이가 묻는다. 이곳에서 나가면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여자는 그렇게 말을 한다. 두 사람은 모래 때문에 옷을 벗고 잠들어야 했고 같이 잠을 자는 관계가 된다.


그러다가 쥰페이는 탈출에 성공을 한다. 마을 사람들을 들개를 대동하여 쥰페이를 잡으러 오고 쥰페이는 마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달려 보지만 푹푹 빠지는 모래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그러다가 결국 모래 늪에 빠져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결국 다시 여자 곁으로 돌아온 쥰페이.


여자를 보며 실패했다고 말한다. 여자는 쥰페이를 보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여기서 순조롭게 성공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배급받던 물을 내려주지 않는다. 쥰페이는 목이 말라 미치려고 한다. 결국 물을 담아 두었던 통에 깔린 물에 젖은 모래를 먹다가 구토를 한다.


쥰페이는 절망에 빠진다. 하루만 있고자 했던 곳에서 일주일, 몇 달이 흘렀다. 여자와는 살을 맞대며 이 반복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작은 희망고문을 한다. 쥰페이는 탈출을 하기 위해 모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나무통을 넣고 까마귀 미끼를 넣는다. 까마귀가 걸려들면 구해 달라는 편지를 써  다리에 묶어 날려 보낼 셈이다. 그런데 확인해 본 통에는 까마귀는 잡혀 있지 않고 맑은 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모래가 물을 만들었다. 이 방법을 좀 더 연구하면 마을에도 물을 많이 마실 수 있고 이렇게 고립되어 노예가 되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유수장치에 관한 일지를 매일 기록한다. 탈출은 더 후에 해도 된다. 굳이 오늘 바로 탈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이 유수 장치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들이 이 마을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자와 함께 부업을 하여 여자가 원하는 라디오를 구입하는 것이다. 비로소 작은 희망을 찾은 쥰페이.


여자는 잠들어 눈을 뜨기가 무섭다. 옆에 쥰페이가 없을까 봐. 그러다가 여자가 아이를 갖게 되고 배가 아파 마을 사람들이 여자를 병원으로 옮기면서 사다리를 걷어 가지 않았다. 쥰페이는 탈출할 기회가 와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때 쥰페이는 생각한다. 자유가 뭔지, 순응하고 복종하는 게 뭔지.


복종은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의해서 처절하게 매달리는 게 복종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삶에 복종당하는 게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다. 하루가 일 년이 될 줄 몰랐던 쥰페이는 7년이나 모래 속에 가둔 곤충처럼 지낸다. 하지만 자유로워 모든 것이 반복의 불확실한 7년 전의 진실보다, 흔들림이 많아도 가능성이 있는 희미한 그림자 쪽을 택한 쥰페이는 모래 속의 여자와 함께 살아간다. 미끼이자 인질이자 동반자인 여자는 모래와 같다.


정부는 7년이나 나타나지 않은 쥰페이를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이름을 올린다. 쥰페이는 곤충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려 했지만 실종자로 이름이 올라가는 아이러니가 된다. 인간의 삶이란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모른다.


아베 코보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너무나 재미있게 볼 영화다. 소설 속에서 쥰페이의 바깥세상은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라고 했다. 기묘하게 불편하고 기묘하게 설득되다가 기묘하게 공감을 원한다면, 최고의 소설을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봐도 좋을 ‘모래의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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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24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런 상황에 처한 인간의 행동패턴을 살펴볼 수 있네요. 그럼에도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빠삐옹, 모래사막이라는 현실에 빠져 적절히 그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쥰페이. 어떤 삶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란 생각이 드네요.

교관 2023-06-25 12:19   좋아요 0 | URL
너무 좋은 댓글입니다. 선택 앞에서는 늘 불안하고 겁이나고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