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사냥비 오는 날 화면에서 독수리 한마리가가파른 암벽에서 노는 산양 한 마리를 낚아챘다산양은 들어 올려지지 않으려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는데아찔한 암벽과 돌밭을 내달리며목에 발톱을 박은독수리를 내동댕이치고 발로 밟고달리는 것이었다독수리와 산양을 따라온 다른 산양 한 마리는허공에다 뿔만 주억거리고배가 고픈 독수리는 끝내 발톱을 놓아주지 않는데마치 산양이 독수리를 사냥하는 것 같아다른 산양한 마리는 따라가며 독수리의 날개를받아버리려 하고독수리의 날개를먹지도 않는 독수리를 - P32
몇 차례나 암벽과 돌밭에 내동댕이쳐진독수리는 크게 다쳤는지발톱을 놓아버리고쓰러졌는데문득 예전에 독수리에 쫓기다 목을 잡히자,그냥 천길 낭떠러지 위에서같이 뛰어내린 산양이 생각났다독수리 보다 무거운 산양이 생각났다같이 뛰어내릴 게 나도 필요한데그것이 세계든 인간이든자본주의든 - P33
팔월의 배롱나무절 입구 집 입구 아파트 입구에 배롱나무 심은 뜻을나는 모른다팔월에 붉은 꽃이라니, 중얼거리며 드나들 뿐다만 배롱나무 거죽을 한 꺼풀 벗긴 듯한 미끈한 몸을기억할 뿐이다역병도 벌레도 곰팡이도 배롱나무를 통과한 뒤 온다나는 배롱나무 아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소주 한병을 마신 일이 있다어지러운 눈으로 배롱나무 꽃잎들을 깨문 적이 있다배롱나무 미끈한 몸에서 미끄러져본 일이 있다고대 생물처럼검고 조그만 벌레처럼 - P42
외부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것은 ‘별들의 궤도를 바꿀 수‘도 있다. 예수는 "믿음이 산을 옮긴다"고 했고, 오스카 와일드는 "자연은 예술을 모방한다"고 했다. 동일한 동시성의 방식으로, 별들은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통제한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운명은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무의식이란 어쩌면 하늘과 모든 별자리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것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로마인은 집을 나설 때 ‘무의식적‘으로 비틀거리면 그날 하려던 일을그만두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동시‘라는 개념의 한 예로 용은 볼프강 파울리"와 함께 펴낸 ‘자연의 해석과 정신‘이라는책에서 이것에 대해 논의했다. - P161
영혼불멸에 대한 증거는 이성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합리적으로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내일은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이성으로만 이해하기에 세상은 너무 불확실해졌습니다. 비합리적인 출처에서 나온 사고를 가진 인도인들은 이제 서양의 합리적인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며 조금씩 그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서양은 비논리적인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공산주의, 국가 권력의 성장과 개인 노예제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것이 여전한 진리입니다. 모든 것은 한낮 창조물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연은 예술을 모방한다"고 했습니다. 자연이 무의식적인 의지를 따른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옳습니다. 주변 환경에 맞게 몸 색깔을 바꾸는 도마뱀부터 당대의 유행과 특정 시기의 이상적 아름다움에 따라 몸매를 가꾸는 여성에 이르기까지.. - P167
건 이렇습니다." 헤세가 말했다. "인도는 상징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상징을 생활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책 싯다르타가 인도에서 출간되기까지 20년이 걸린 것입니다. 힌두어, 벵골어, 그리고 다른인도어로 번역된 지도 얼마 안 됩니다. 그리고 내 작품은 상징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인도인들이 그렇게 외면하는 것이 나는 일종의 ‘정신적 자기만족‘으로 보입니다. 거기엔 어떤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특히 모든 낯선 것이 금방 동화되어버리는 일본과 비교가 됩니다. 이런 ‘정신적 자기만족‘은 필수적인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지요.""그렇습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인도는 억겁창생 가운데 순환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힌두 작가들은 아직도 경전의 전통 안에서 작업하고 있지요. 그들은 과거에 그들 민족의 집단 무의식에 빠져 있어서 글쓰기는 그들에게 의례같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작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는 성직자라 할 수 있습니다.""그것이 바로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헤세가 대답했다. "불교는 이지적이어서 상상의 세계를 부정합니다. - P40
붉어진 눈을 씻다가 뜨면, 물속 정거장으로 드는 기차거울 속 내가 없어서 벗어던진 옷이 지루하다봉제선 하나 없는 물속은 무엇이 드나들어도 그만사막을 모르는 꽃은 선인장을 조금 들뜨게 할 뿐블라인드를 흔들 수 있다면 무엇이든공구통에 넣고 꺼내 쓸 날이 올 것이다부어 곱은 손을 뜨거운 물에 불려 깨우고신기루와 오로라 사이 내일로 출근한다 - P37
귤은 껍질까지 둥글고아이 두엇 물어 오느라 잇몸에 그믐을 들인 여자가몸일으키며 가랑잎처럼웃는 병상에엉덩이 디밀고 앉아나는 봉지 귤을 까고봉변에 놀란 도마뱀 꼬리처럼 툭툭 끊기는 말들가늘게 떨리는 손바닥에노랗게 가른 귤 조각이나 건넨다시린 일이 귀밑머리에 쌓였는지 간밤의 잔설들암은, 아무렴귤은 껍질만으로도 여전히 향기롭고 둥글더라, 끄덕이면마주 끄덕이는 누이부끄러이 더덕꽃 낯으로 그늘진앞섶아이 셔, 나는 돌아앉아 흐렸다 - P66
수염을 다 뽑고 주머니를 덜고강을 만나면 쇠붙이를 버리고 첫 물결에 발목을 내주고돌아갈 일 따위는 아예 없도록바누비누로 가요 우리각진 모서리를 지난 뒤에나 알아채서되돌아보면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둥글어지는 곳아이들인 국민이 아기로 늙어 가는바누비누물방울 하나에 세계가 들어앉아 있지요 - P99
시인의 길은 영웅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험난해서, 강인하고 의기양양하며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갖추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지난날 시민들은 근사했고 모든 교과서는 그들에 대한 찬사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현재 실제로 시인들은 미움을 받고 있으며, 아마도선생들은, 바로 훌륭하고 자유분방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과 위대한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을, 애초부터 막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교육 받고 고용된 자들일 것이다. - P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