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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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도서관이라는 유용한 존재를 알게 된 후

 첫 책으로 <모든 요일의 여행>(김민철 저)을 읽고(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꽤 있어 리뷰를 쓰기 위해 대출기한을 연장해 두었었는데 '유효기간이 경과되었다'면서 책이 열리지 않는다.. 뭐지),

 두번째 책으로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혜민 저)을 골랐으나

 한 꼭지 읽은 후 "우와, 내 취향 전혀 아니야!" 하며 반납하고,

 다시 고른 책이 나폴리4부작 중 1부에 해당한다는 <나의 눈부신 친구>였다.

 

 '나폴리4부작'이라는 시리즈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화자인 레누(엘리나 그레코)와 그녀의 친구 릴라(라파엘라 체룰로) 사이의 우정과  두 소녀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1부인 이 책에서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레누의 고등학교 시절까지)를 다루었고, 2부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는 청년기를 다룬다고 한다. 이 책이 66세가 된 레누가 릴라의 아들로부터 그녀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걸 생각하면, 이 시리즈는 두 소녀의 거의 일평생을 서술하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레누와 릴라라는 두 소녀의 캐릭터가 매우 뚜렷하고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져 독자가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릴라는 유감없이 천재성을 드러내는 비범한 소녀이고 레누는 똑똑한 편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축에 속하는 소녀로, 두 사람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아 보인다(<데미안>이 떠오르기도 한다). 레누는 늘 릴라를 의식하고 릴라를 좇고 싶어하며 그녀로부터 정신 깊은 곳까지 영향을 받는 반면, 릴라는 레누를 개의치 않고 자신의 뜻대로만 사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화자가 레누여서 더욱 그렇게 보일 뿐, 자세히 살펴보면 릴라에게도 레누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소설 후반부에서 '너는 나의 눈부신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레누가 아니라 릴라다.

 

 또한 작가는 이 두 소녀의 성장담에서 한 마을에서 복작대며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들에 관해 묘사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는다. 이탈리아 이름이 익숙치 않고 비슷비슷한 이름들이 있어 많이 헷갈릴까 걱정했으나, 의외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누가 누구인지 파악이 되어 '등장인물 소개'란을 되짚어 봐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작가의 인물 묘사가 그만큼 생생하다는 증거다.

 

 성장담 뒤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비극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를 배경으로 하며, 산업화 과정에서 '검은 돈'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모습이 관찰된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대립의 양상은 크게 구세대(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신세대(종전 후의 세대) 사이의 갈등,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구세대는 그 시대의 악을 대표하는 듯한 '돈 아킬레'라는 인물을 무조건적으로 증오하고 그 증오는 신세대에게도 이어지지만, 돈 아킬레를 살해한 사람의 자녀들과 돈 아킬레의 자녀들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짐으로써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한편 부유층을 대표하는 솔라라 집안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감정과 태도는 더 복합적인데, 그들을 비난하고 꺼려했던 사람들도 결국 그 부에 편승하고픈 욕구를 감추지 못한다.

 또한 구세대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남성이 아무렇지 않게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사소한 다툼이 큰 폭력으로 나아가는 마을의 전근대적 모습을 대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신세대 중 일부는 그러한 구세대의 관습을 그대로 물려받은 반면, 레누를 비롯한 일부 신세대들은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점잖은' '신사적인' '문화적인' 지성인의 모습에 눈을 뜨게 된다. 책 속에서 '사투리'와 '표준어'를 구분하는 서술이 자주 나오는 것도 '부(富)' 외에 '지성'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계급의 탄생을 말해주는 것 같다(번역본이라 사투리와 표준어의 구분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1부의 마지막은 비록 집이 가난하여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지성으로는 누구보다 탁월했던 릴라가 지성면에서 퇴보하고 아름다움과 부(富)를 얻어낸 반면, 레누는 끝없는 노력에 의해 고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상태에서 끝나면서, 릴라의 선택이 비극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두 소녀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너무나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소녀의 우정이 어떻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을까? 2부의 이야기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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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영어책 한권 외워봤니?
김민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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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지에서 놀랍게도 전권 무료대여 이벤트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 스무살이 넘어 독학으로 통번역사가 되었다는 사실과 구체적인 공부방법 안내가 독자로 하여금 조기유학, 영어유치원 등에 대한 맹목에서 탈피하여 지금부터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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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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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었던 <침묵의 봄>을 떠올리게 하는 기사를 읽었다.
경향신문에서 시리즈로 기획한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 세번째 인물 ‘반다나 시바‘와의 인터뷰 기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761102&sid1=00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763152&sid1=001

과학자로서 농부이자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풀뿌리민주주의, 에코페미니즘을 주창하면서 유기농사를 통해 지구를 살리려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침묵의 봄>에서 말한 화학물질의 공격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의 문장은 그가 ˝올바른 행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란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고 해야 함에도 하지 않을 때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인용한 인도경전의 글귀다. 인상적인 주장이어서 줄을 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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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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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중에서.

 

<침묵의 봄>이 맞이한 당시의 문화적 기상도를 기억하기란, 또 의지 확고한 지은이에게 퍼부은 분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환경오염을 초래한 화학 살충제의 오용으로 우리 자신이 서서히 독극물에 중독되고 있다는 카슨의 주장은 오늘날에는 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1962년 <침묵의 봄>이 출간될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카슨은 새로운 부가 등장하고 사회적 순종이 강조되던 시기에 이 글을 썼다. 냉전으로 인해 의심과 불관용이 극도에 이른 시대였다. 화학 산업은 전후 기술 발전의 최대 수혜자였고 국가의 부를 이끈 중요한 견인차 중 하나였다. DDT는 농업에서 각종 해충을 박멸했고 해충으로 인한 전염병을 막아 주었다. 핵폭탄이 미국의 군사적 주적을 완전히 격멸했듯이 살충제는 인간과 자연 사이 힘의 균형을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빳빳하게 풀 먹인 흰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일하는 화학자들은 신에 필적하는 지혜를 가졌으리라 대중은 기대했으며 또 확신했다. 화학자들의 연구는 대단한 혜택을 가져다줄 것으로 여겨졌다. 전후 미국 사회에서 과학은 신이었고 또 그 과학은 남성 위주의 영역이었다. (13~14쪽)

 

나는 언제나 과학이 싫었다. 실은, 너무나 무지하여 두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에는 필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해야할 암기만 했고,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졸업 후에도 과학 서적은 통 읽어본 기억이 없다. 몇 해 전에 이르러서야 '좀 알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관심을 가져보려 하였으나, 지금껏 읽은 책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정도일까.

<침묵의 봄>을 수식하는 '환경학 최고의 고전'이라는 말은 나와 같은 과학울렁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선뜻 집어들기 힘들게 만든다. 그러나 레이첼 카슨이 얼마나 친절하고 조곤조곤 글을 썼는지 알게 되면, 두려움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그녀는 전문가들과 논쟁하자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널리 경고하고자 한 것이고, 그 목적에 부합하게 글을 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수질오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것은 지하수의 광범위한 오염이다. 어디에서든 물에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은 결국 모든 수자원을 위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연의 구성 요소들이 각기 폐쇄적으로 분리되어 작동한다면 이렇게 지구상의 수자원 전체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없을 것이다. 땅에 떨어진 비는 토양과 암석에 난 구멍과 틈을 따라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마침내 모든 틈을 물로 채운다. 그러다 언덕 밑에 이르러서는 다시 솟아오르고 골짜기 밑으로 더 깊게 가라앉아 지표 밑을 따라 어두운 바다로 흐른다. 지하수는 느리게는 1년에 50피트(약 15미터), 빠르게는 하루에 0.1마일(약 161미터) 정도의 속도로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수로를 따라 흐르다가 지표 위 샘으로 분출하거나 우물에 고여 들어 솟아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냇물이나 강으로 유입된다. 비가 강으로 직접 내리거나 지면을 따라 바로 시냇물로 흘러드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흐르는 물은 대부분 지하수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수 오염은 모든 물의 오염을 의미하는 것이다. (66~67쪽)

 

어떤 물이든, 물에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관하여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위와 같은 글을 읽어보면,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마음이 들 것이다.

 

300쪽 가량의 이 책에서 카슨은 풍부한 사례를 들어 화학물질 살포의 위험성을 알린다. 추상적이고 난해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사례 위주라는 것이 이 책의 가독성을 더욱 높이고, 경각심을 갖게 한다. 읽다 보면, 아 너무나 내가 환경에 관심이 없었구나... 그 무관심은 독이 되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런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가? 아마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우리의 왜곡된 균형감각에 놀랄 것이다. 지성을 갖춘 인간이 원치 않는 몇 종류의 곤충을 없애기 위해 자연환경 전부를 오염시키고 그 자신까지 질병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길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저지른 일이다. 더구나 우리가 그 이유를 살피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일은 계속되고 있다. 농산물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살충제 사용이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생산 과다'가 아닌가? 미국에서는 경작지를 줄이고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농부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정도다. (33쪽)

 

 

DDT의 무해성에 관한 신화는 전쟁 중 수천만 명의 군인, 피난민, 포로들의 몸에서 이를 박멸하는 데 처음 사용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44~45쪽)

 

화학자들이 새로운 살충제를 고안해내는 속도가 유독물질의 영향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를 훨씬 앞지르기 때문에, 디엘드린이 우리 몸속에 어떻게 축적되고 분배되며 배출되는지 그 일반적인 지식에는 허점이 많다. 인간의 몸속에 오랫동안 화학물질이 축적된 것은 확실한데, 휴화산처럼 잠잠히 있다가 비축한 지질을 소모하는 생리학적 스트레스 상황이 닥치면 갑자기 그 작용에 가속이 붙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펼쳐온 말라리아 박멸 캠페인의 아픈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운 사실이 있다. 말라리아 박멸을 위해 DDT 대신 디엘드린을 사용하는 순간부터(말라리아모기가 DDT에 면역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역 담당자들이 중독을 일으켰다. 관련된 사람의 절반 이상이(사업에 따라 다르지만) 발작을 일으켰고 그중 몇 명은 사망했다. 디엘드린에 노출된 뒤 4개월 동안 발작이 계속된 사람도 있었다. (49~50쪽)

 

 

인간이 자신의 기원을 망각하고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순간, 물은 다른 자원과 더불어 무관심의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 (63쪽)

 

 

어떤 일을 계획할 때에는 그 주변 역사와 풍토를 고려해야만 한다. 자연 식생은 그 환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생물이 벌이는 상호작용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경관을 갖추게 되었는지, 왜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마치 활짝 펼쳐진 책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펼쳐진 쪽조차 읽지 않는다. (88쪽)

 

 

카슨은 생태계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 전체의 작용을 살펴야 함에도, 한두 종류의 해충을 없애겠다고 생태계 전체를 파괴시켜 버리는 무지의 악에 관하여 맹렬히 비난한다.

 

 

화학약품이 토양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면 약품에 중독된 장수풍뎅이의 애벌레들이 대지 표면으로 기어 나와 며칠간 머무른다. 이 애벌레들은 새에게 매력적인 먹이다. 방제가 이루어진 지 2주일 동안 이미 죽엇거나 마구 죽어가는 곤충들이 자주 발견되었다. 이런 곤충이 조류의 개체 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축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빠귀, 찌르레기, 들종다리, 구관조, 꿩 등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생물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개똥지빠귀는 '거의 절멸'했다고 한다. 비가 내린 다음에는 죽은 지렁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마도 개똥지빠귀는 이런 지렁이를 먹었을 것이다. 다른 새들 역시 마찬가지로, 한때는 큰 혜택을 주던 비가 독극물을 새들의 세계로 인도하는 사악한 세력, 파멸의 중계자가 되어 버렸다. (119쪽)

 

 

우리를 성가시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생물이라고 생각되면 '박멸하는' 습성이 점점 더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러면서 새들은 독극물의 부수적인 목표가 아닌 직접적인 목표가 되어버렸다. 농부들은 달갑지 않은 새를 쫓기 위해 파라티온 같은 치명적인 화학물질을 살포한다. (152쪽)

 

농부들은 그 결과에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독극물에 희생된 동물 목록에 6만 5000마리의 찌르레기류가 새로 포함되었다. 미처 기록되지 않은 동물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파라티온은 찌르레기뿐 아니라 모든 생물을 함께 죽이는 물질이다. 강가 저지대를 돌아다니긴 해도 옥수수밭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토끼, 너구리, 주머니쥐가 그들의 안위는커녕 존재조차 모르는 재판관이자 배심원에 의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153쪽)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잔물결이 일듯이, 유독물질의 연쇄 작용을 일으켜 죽음의 물결을 퍼뜨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한쪽 접시에는 딱정벌레들이 갉아먹은 나뭇잎을 올려놓고, 다른 쪽 접시에는 유독성 살충제가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몽둥이에 스러져간 새들의 잔해와 다양한 빛깔의 가련한 깃털들을 올려놓은 채 저울질한 사람은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하늘을 나는 새들의 부드러운 날개가 모두 사라져버린 황폐한 세상이 되더라도 벌레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설령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가 결정을 내릴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우리가 잠시 권력을 맡긴 관리들이다. 이들은 아름다움과 자연의 질서가 깊고도 엄연한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잠깐 소홀한 틈을 타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153~154쪽)

 

 

생태 환경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농게는 다른 종으로 쉽게 대치될 수 없다. 이 게는 많은 동물의 먹이가 된다. 해안에 사는 너구리도 이 게를 먹고살며 갈색뜸부기처럼 습지에 서식하는 새나 해변에 서식하는 새, 심지어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도 마찬가지다. DDT가 뿌려진 한 뉴저지의 염습지에서는 몇 주 만에 웃음갈매기가 평소보다 85퍼센트나 감소했는데, 그 원인은 살충제가 뿌려지고 난 뒤 충분한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된 때문으로 짐작된다. 습지의 농게는 다른 이유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능한 청소부 역할을 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굴을 파서 습지 진흙에 공기를 통하게 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 많은 낚시꾼은 그것을 미끼로 사용한다. (176쪽)

 

문제는 우리가 천적 구실을 하는 동물을 모두 죽인 후에야 비로소 그 동물이 맡고 있던 조절 기능을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277쪽)

 동식물 집단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열쇠는 영국의 생태학자 찰스 엘턴(Charles Elton)이 말한 '종 다양성 유지'에 있다. (143쪽)

 

 

특히 카슨이 강하게 비난한 1957년 불개미 방제 계획을 보면,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쉽게 환경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에 들어온 뒤 40여 년 동안 불개미는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개미가 가장 많이 퍼진 주에서도 그저 1피트(약 30센티미터)가 넘는 큰 집이나 흙무더기를 만드는 성가신 존재로 여겨졌을 뿐이다. 이런 흙무더기는 농기구를 사용할 때 방해가 되었다. 그러나 불개미가 20개 주요 해충 목록에 포함된 것은 겨우 2개 주뿐이었고, 그나마 목록의 거의 마지막에 등장할 정도였다. 관리들이나 일반인 모두 불개미가 농작물이나 가축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치명적인 위력을 지닌 화학약품의 개발과 함께 불개미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갑작스럽게 변했다. 1957년 미국 농무부는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캠페인에 착수했다. 정부간행물과 영화 등에서 불개미가 갑자기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되어 남부 농업의 파괴자이자 조류, 가축, 인간들을 죽이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 후 엄청난 규모의 방제 계획이 발표되었다. 피해를 입었다는 주 정부들의 협조를 받아 연방 정부가 9개 주에서 2000만 에이커에 살충제를 뿌리는 것이었다.

 (...)

 '노다지'의 수혜자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은 맹렬히 그리고 당연히 불개미 퇴치 계획을 비난했다. 이 계획은 충분치 못한 준비와 서투른 시행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며 해충 방제에 관한 극히 해로운 실험인 동시에 막대한 비용과 다른 동물들의 죽음, 농무부에 대한 신뢰 추락이라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한 실험이었다. 이런 일에 엄청난 정부 예산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188~189쪽)

 

 

그러므로 카슨은 소비자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화학물질이 너무나 쉽게 유통되고 사용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잡초를 없애는 화학물질은 그 주요 성분이나 특징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상표를 달고 팔린다. 여기에 클로르데인이나 디엘드린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려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아주 작은 글씨로 적힌 성분 분석표를 읽어야 한다. 공구상이나 원예용품점에서 볼 수 있는 살충제 설명서에는 이런 물질을 다루거나 뿌릴 때 생기는 위험에 관해 아무런 말도 없다. 대신 아버지와 아들이 잔디밭에 살충제 뿌릴 준비를 하고, 어린아이들은 개와 함께 잔디밭에서 뒹굴고 있는 행복한 가족이 등장할 뿐이다. (206쪽)

 

 

또한 정부에서 절충안과 같이 내놓는 '화학 잔류물 안전 기준', 즉 잔류 허용량을 정하여 이를 초과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보아 유통을 허가하여 주는 제도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한다.

 

'잔류 허용량 기준' 제정은 결국 농부와 가공업자들에게 생산 비용 절감이라는 혜택을 주기 위해 많은 사람이 먹는 음식에 독성 화학물질 사용을 허가하는 일과 다름없다. 동시에 시민들이 섭취하는 화학물질이 위험 수준이 아님을 확신시켜주는 정책기관을 만들어 그 유지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려는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 사용되는 농약의 양과 독성 정도를 고려할 때, 이런 임무를 수행하자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데 국회의원 중 그런 비용 지출을 승인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없다. 결국 지독히도 운이 없는 시민들은 화학물질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이 본인인데도 잘못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기관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하고 있다. (211~212쪽)

 

미국의 수질오염 전문가들은 세제야말로 상수원의 심각한 오염원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방법은 없다. 또 모든 세제를 발암물질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세제가 소화기 내벽에 작용하거나 화학물질에 좀더 민감하도록 조직을 변화시켜 유독물질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상황을 만들 수는 있다. 이렇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암을 유발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누가 이런 모든 상황을 예견하고 조절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이 복잡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발암물질의 '안전 허용량'을 인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발암물질은 전혀 검출되지 않아야 정상이 아닐까? (268쪽)

 

 

금주령이 내려졌던 미국에서 술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화학물질로 만든 가짜 술이 유통된 결과 발생한 끔찍한 피해 - 이것이 현재에도 발생하기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중국에서는 계란도 가짜로 만든다는데...

 

금주령이 내려졌던 193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은 앞으로 닥쳐올 세상에 대한 불길한 징조인 듯했다. 살충제는 아니지만 유기인산계에 속한 물질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법적으로 주류 제조가 금지되자 사람들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다른 화학물질을 찾아 나섰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메이카산 생강이었다. 하지만 <미국약전>에 따른 구입비가 너무 비싸자, 주류밀매업자들은 이것을 대신할 유사물을 만들어냈다. 이 계획은 상당히 성공적이어서 필요한 화학 검사를 통과했고, 정부의 검사자들조차 속을 정도였다. 여기에 제대로 맛을 내기 위해 트라이오르토클레실 인산염이라는 물질을 첨가했다. 이 화학물질은 파라티온이나 그 계열의 물질들처럼 콜린에스테라제를 파괴한다. 주류밀매업자들이 만든 가짜 술을 마신 1만 5000여 명이 '생강성 신경마비'라는 다리 근육 경련으로 고생했고, 결국 영구불구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신경마비에 이어서 신경초가 파괴되고 마침내는 척수전각세포가 변질된 것이다. (224~245쪽)

 

 

더 큰 문제는 화학물질의 부정적 효과는 몇 십 년이 지나서야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습기 피해나 산업재해 문제도 이런 이유로 더 해결이 어려운 것 아닌가.. 과학자들의 꾸준하고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악성질환은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징후가 나타나려면 그 희생자의 생애 상당 부분을 관찰해야 한다. 1920년대 초반 도로표지판에 형광 도료를 칠하던 여성근로자들은 페인트 붓을 입에 댈 때마다 도료에 포함되어 있던 라듐을 조금씩 흡수하게 되었다. 그중 몇 명에게서 15년 이상 지난 뒤 골육종이 발견되었다. 작업장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될 경우 그 잠복기는 15~30년, 또는 그 이상이다. (255쪽)

 

 

카슨은 화학물질을 계속하여 사용하는 것은 결국 내성을 지닌 해충을 번식시켜 더 강한 화학물질을 사용하게 하는 결과가 될 뿐이라면서, 그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곤충 방제 사업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첫 번째는 정말 효과적인 곤충 방제는 인간이 아닌 자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자연계에는 고유한 '환경 저항'이 존재해서 특정 종마다 개체수가 일정하게 조절되는데, 이는 지상에 첫 생명체가 등장한 이후 게속 그래왔다. 먹이, 기상과 기후 조건, 경쟁 상대나 포식종 등이 모두 '환경 저항'의 중요한 요소이다. 곤충학적자인 로버트 메트컬프(Robert Metcalf)는 "이 세상이 곤충으로 뒤덮이지 않게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곤충들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학약품은 인간의 친구든 적이든 구분하지 않고 모든 곤충을 없애버린다.

 두 번째는 환경 저항이 약해지면 종족을 재생산하려는 폭발적인 힘이 발휘된다는 사실이다. (275쪽)

 

곤충의 저항에 대한 이해가 서서히 진보하고 있지만 곤충의 저항은 그렇지 않다. DDT가 등장하기 전인 1945년 기존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된 곤충은 12종 정도였다. 그런데 새로운 유기화학물질이 등장해 널리 사용된 1960년대에 이르자 화학물질에 내성을 지닌 곤충이 137종으로 급증했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은 없다. (293쪽)

 

 

마지막으로 카슨은 화학물질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적(그러면서도 오히려 화학물질보다 비용도 더 저렴하다) 곤충 방제 방법도 밝히고 있다.

새로운 방식 - 1. 수컷 불임화

                   2. 곤충이 만드는 여러 물질을 모방해서 해충에 대응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것

                   3. 곤충이 소리를 탐지하고 이에 반응하는 능력을 이용하는 것

                   4. 미생물을 이용한 방제법

 

포식동물과 피식동물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생명계라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넓은 그물 가운데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한다면 자연은 자신의 방식에 따라 견제와 균형이라는 복잡하고 훌륭한 시스템을 가동해 삼림을 해충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321쪽)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네안데르탈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으로, 자연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응용곤충학자들의 사고와 실행 방식을 보면 마치 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그렇게 원시적 수준의 과학이 현대적이고 끔직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 곤충을 향해 겨누었다고 생각하는 무기가 사실은 이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325쪽)

 

 

우리는 대체 무슨 권리로 이 아름다운 지구를 더럽히고 있는가... 의식도 하지 못할 만큼 많은 화학제품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현대에서 당장 환경을 위한 많은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의식은 가질 수 있을 정도의 환경 감수성과 약간의 지식을 갖추고, 할 수 있는 한에서 하나씩이라도 실천해 나가보면 어떨까?

 

"인간은 도자기 진열실에 들어간 코끼리처럼 자연을 짓밟고 있다." (103쪽. C.J.브리예르)

살아 있는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묵인하는 우리가 과연 인간으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 있을까? (126쪽)

 

 

 

이 책을 읽고 수많은 화학물질이 급 찝찝해진 임산부인 나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친환경 세제(베이킹소다, 과탄산수소, 구연산)를 사용한 각종 청소방법을 조금씩이라도 이용하고, 천연섬유탈취제도 만들어보려 한다. 약간의 귀찮음만 감수하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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