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퀴어 정체성의 백가쟁명 : 비규범적인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실존


1. 젠더 × 섹슈얼리티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딱 분리되어 정의될 수 없다. "남성/여성, 동성애/이성애의 이분법만으로는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250쪽)

 "더욱이 퀴어인 사람은 젠더나 섹슈얼리티 어느 한쪽만 퀴어하지 않다." (253쪽) "엄밀히 말해 젠더퀴어는 젠더 정체성만 퀴어한 게 아니다. 어떤 이의 젠더 정체성이 남/여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젠더 규범에 들어맞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섹슈얼리티 또한 동성애/이성애의 구분에 들어맞을 수가 없다."(257쪽) 


 수술이나 호르몬 조치를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여성'이나 '남성'(물론 상대방의 성별도 정확히 규정할 수 없겠지만)을 사랑할 떄 그 사람은 이성애를 하고 있는 건가, 동성애를 하고 있는 건가?  - 258쪽


 젠더는 스스로의 성정체성, 섹슈얼리티는 어떤 성에게 성욕을 느끼느냐에 따른 분류 정도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이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처음 알려준 건, <LGBT+ 첫걸음>이었다. 


 이 책의 앞 절반 정도는 정말 흥미로웠고, 뒤 절반 정도는 어지러웠다. 너무 많은 용어들이 나와서 스펙트럼을 장식했다. 내 굳어있는 의식을 깨우기에는 좋은 책이었지만 일일이 용어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그저 이렇게 많은 정체성이 있을 수 있고 이분법이 딱 들어맞는 규범적 인간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용어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 누군가가 그의 정체성을 낯선 용어로 소개했을 때 그말 그대로 받아들여야 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것만으로 만족한다.










2. 성 정체성, 성적 지향을 다시 사유하기 


세즈윅이 보기에 가장 중요하게 비판해야 할 문제점은, 여기 깔린 전제들에 어긋나는 수많은 차이가 침묵을 강요받고 뭉뚱그려지고 깔아뭉개지는 과정을 거쳐 '성 정체성'이 이음매 없이 매끈하고 일관된 하나의 통일체로 조직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세즈윅은 『벽장의 인식론』에서 동성애/이성애 이분법이 근대 서구의 사유와 문화의 토대로 자리매김해왔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동성애/이성애 이분법이 불변의 진리라는 뜻이 아니다. 동성애와 이성애를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고 대립시키는 구도는 '생물학적 성별'로 간주되는 여성/남성 위치를 토대 삼아 이 이분법에 어긋나는 수많은 차이를 밋밋하게 밀어버리고 말끔하게 봉합함으로써 구축된다는 점을 폭로하려는 것이다.  - 263쪽


3. 퀴어 정체성의 백가쟁명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각주(38)에 나온다. 바로 셜록과 왓슨의 관계!! 셜록 홈즈, 특히 BBC 드라마 <셜록>에서 셜록과 왓슨의 '브로맨스'가 은근히 인기의 비결이라는 건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퀴어 서사로 논의되는 줄은 몰랐다. 어, 그러니까 내 짧은 생각으로는 '브로맨스'라는 걸 현실적인 '퀴어'와 연결을 짓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셜록은 사람 자체에 성적 욕망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왓슨과의 관계를 동성애적 끌림의 관계로 보는 해석에도, 이 둘의 관계를 퀴어베이팅으로 활용하려는 해석에도 완벽히 포획되지 않으면서 섹슈얼리티를 인간의 본능으로 단정하는 유성애적 사고관 자체를 어느 정도 낯설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고 말한다. (303쪽)

 아, 갑자기 셜록 다시 보고싶네... ㅜㅜ 


시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이 젠더 이분법은 물론이요, LGBT 이름들만 가지고 따지기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감각을 정체성으로 포착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지역에서 사용하거나 인터넷에 올리고 그걸 또 다른 이들이 건너 듣고 공유하거나 수정하며 발전시켜 온 귀납적 언어이다. 따라서 이런 이름들을 명확한 단 하나의 기원이나 사전적 정의에 고정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정체성이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대신에, 어떤 역사적 국면에서 어떻게 이런 정체성이 하나의 성 정체성으로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탐구하는 쪽이 좀 더 생산적일 것이다.  - 284쪽


4. 일인칭으로 이야기하기 


 개개인의 경험을 담은 "서사"가 중요하고, 그 "서사"를 담은 "어떤 이름이 나의 구명줄로 받아들여지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일인칭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진정성 투쟁과 이어지는 본질주의와는 다르고, 개개인의 역사를 중시하는 작업이다. 


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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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퀴어이론 페이퍼.. 아이고 앞 내용 다 까먹겠네... 


3. 수행성: 우리는 어떻게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저항하는가

 3) "불가피하게 불순한 자원으로부터 미래를 만들어내는 어려운 노동"

  (1) 브리콜라주, 혹은 improvisation의 실천


   "젠더는 행위다doing" = "젠더는 규제의 장면 안에서 일어나는 a practice of improvisation이다"

   -> 위 영어 해석에 관해, 한글번역판 <젠더 허물기>에는 '즉흥적 실천'이라고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improvisation'의 동사형 'improvise'에는 '임시변통으로 뭐든 있는 것을 끌어다 처리하다(만들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브리콜라주bricolage'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당해 보인다고 한다.


  ※ 브리콜라주가 무엇인가? 찾아보니, 네이버 지식백과에 이렇게 나온다.

접힌 부분 펼치기 ▼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신화()와 의식()으로 대  표되는 부족사회의 지적 활동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용어.

브리콜라주는 원래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 또는 '수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말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가 현대인의 논리적 사고와는 판이한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묘사하기 위해 이 개념을 도입했다. 그에 의하면 원시사회의 문화제작자인 브리콜뢰르(bricoleur)는 한정된 자료와 도구로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임시변통에 능통한 사람이다. 이와 정반대되는 인물형은 현대의 엔지니어(engineer)이다. 그는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기계에 대해 정확한 개념과 설계도를 가지고 시작하며, 또 철저하게 청사진을 이용하여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브리콜라주 [Bricolage]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펼친 부분 접기 ▲


 어려워 보이지만, 저자의 이 설명을 보면 감이 잡힐 것 같다.


 (...) 우리를 둘러싼 권력 구조의 제약 안에서 일단 구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젠더를 수행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내가 접할 수 있는 한정된 자원으로 나를 특정 젠더 정체성으로 설명하더라도, 내가 입수할 수 있는 다른 자원이 더 많아진다면, 권력 구조에 균열을 내는 집단적 실천이 더 늘어간다면, 몇 년 뒤에 나의 젠더 정체성은 다른 이름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206쪽

 

 위 글을 읽으니 이 책이 생각난다.

 주제독서를 시작하면서 초반에 읽은 책인데, 아니 이렇게 많은 젠더들이 존재해?? 하고 깜짝 놀랄 만큼 이미 이름 붙여진 젠더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이중에 나는 어느 정도에 위치하고 있을까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다른 이름'으로 설명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갈 것이다.












   (2) 불법 점유의 언어


     버틀러가 사용한 '불법 점유usurpation의 언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저자의 설명을 통해 내가 나름대로 이해한 바는,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자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규범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이 점에서 '불순한 자원'), 규범적 언어를 불법적으로, 즉 허락받지 못한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데이빗 라이머의 예를 든다. 지난 페이퍼에서도 썼던 이야기인데, 데이빗 라이머는 지정성별이 남성이었으나 생후 8개월 경 포경 수술을 하다가 의료사고로 음경이 거의 불타버렸고, 의사의 권유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나 14세 무렵 정체성 혼란으로 다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참으로 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이다. 이 책에서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내내 의료진의 관찰 대상으로서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옷을 벗어 성기 발달 정도를 내보이라는 요구를 받거나 그의 쌍둥이 남자 형제와 유상 성행위를 강요당한 적도 있었다(209,210쪽)는 내용이 나와 더욱 안타깝다.ㅜㅜ 


    저자는 "트랜스섹슈얼이 자신의 성별을 재지정하기 위해 의료 조치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불법 점유의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적는다. (211쪽) 

   이 성별 재지정은 법원에 신청해서 허가를 받을 수 있는데, 그 허가요건에 대해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원의 결정이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성기 형성 수술을 받았을 것을 요구하거나, 전환할 성에 관해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관습적인 모습으로 살아왔음(그러니까 FTM은 어릴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하고 칼싸움을 즐겨했고, MTF는 인형을 좋아하고 소꿉놀이를 즐겼어야 하는 것이다...)을 밝혀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성별 재지정을 원하는 트랜스섹슈얼로서는 성별이분법이 요구하는 바를 따를 수밖에 없고, 그것은 "트랜스섹슈얼의 의료 조치는 자신의 생존이 그 규범에 달려 있는 사람들이 규범의 틈새를 가로지르며 어떻게든 자신을 '살아도 되는' 존재로 설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협상의 과정"(212,213쪽)이라는 것이다.


문득 얼마 읽지 못한 채 놓아둔 <보이지 않는 잉크>의 이 부분이 떠오른다.


  억압적인 언어는 폭력을 반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폭력 그 자체입니다. 지식의 한계를 반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식을 제한합니다.  - 28쪽 












   (3) 수행적 모순

     

    이 개념 설명을 위해 버틀러는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라는 대담집에서 2006년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미등록 이주자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미국 국가를 멕시코 국가와 함께 스페인어로 노래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고 한다.(215쪽)












   '수행성'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래 인용글을 보자. 


버틀러에 따르면 아렌트는 인간이 온전히 인간다움을 간직하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의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① 삶의 터전을 가질 권리, ② 권리를 가질 권리, ③ 자유를 가질 권리. 이 권리들은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식의 권리가 아니다. 버틀러는 이 권리 개념들을 수행성과 연결시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자유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요청하는 행위에 앞서서 존재하지 않는다. [...] 오직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자유가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를 요청하고 선언한다고 해서 바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행위는 자유가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유를 실행한다.   - 216쪽


    '모순'의 의미에 관해서는 아래 인용글을 보자. 


물론 미국 국가를 스페인어로 부르는 행동을 그 자체로 완전히 전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또 다른 민족주의로 귀결될 위험, 약간의 다양성들을 첨가한 뒤 다시 동질성을 확인하는 식의 다원주의로 귀결될 위험, 다시금 그저 다른 방식의 종속에 지나지 않을 위험. 그러나 여기엔 이러한 위험과 그 위험을 넘어설 가능성이 항시 공존한다는 모순이 있다. 버틀러는 바로 이 모순이 정치를 추동시킨다고 주장한다. (...) 권리에서 배제된 이들의 권리 요구는 지배적인 언어를 손상시키고 권력관계를 고쳐 쓸 수도 있다. 이러한 수행적 모순이 없다면 정치적 저항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 217쪽



4. 비판이란 무엇인가


비판이란 "삶의 다른 양식들이 가능해지도록, 삶을 규제하는 용어들이 무엇인지를 심문하는" 실천이다.  - 222쪽


2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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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행성: 우리는 어떻게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저항하는가

 2) 규범과 '나'의 관계: 행위성을 재개념화하기

  (1) 수행성 1: 반복과 인용을 통한 권력의 재생산


   버틀러가 수행성 개념을 만든 첫 번째 목적은 규범 권력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193쪽) 

   사람 혹은 행위에 권위를 부여하거나 빼앗는 기능을 하는 문장, 혹은 당장은 아니라도 말을 통해 상대의 행동을 직간접적으로 유도하거나 통제하는 식으로 말에 어떤 힘이 실리는 문장이 수행문인 것이다.(194쪽)


  '수행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드는 생활밀착형 예를 보자: 

  

  주로 아버지가 어머니나 딸 앞에서 "목이 마르네", "반찬이 짜네" 따위의 혼잣말을 다 들리게 구시렁거릴 때나, 한국의 부모들이 자주 애용하는 레퍼토리인 "네가 내 말 안 들을 거면 나는 뭐 하러 자식을 낳았나, 내가 죽어야지"처럼 수동 공격을 통해 상대의 행동을 조종하는 식의 문장도 수행문에 속한다.  - 194쪽 


 바로 와 닿지 않나요? ㅋㅋ 


여기서 수행성 개념은 인간 주체의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담론에 의해 규제되고 속박되는 바로 그 현상들을 생산해내는 담론의 힘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서 오는가? 버틀러는 우리를 규제하고 단속하는 권력의 힘이 바로 지속적인 반복과 인용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 195쪽


 위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드는 생활밀착형 예를 보자: 


 "여자는 원래 그래야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 '원래'가 무슨 뜻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대개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 '그냥 원래 그래' 이 말이 통용되는 순간이야말로 권력이 가장 크게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권력이 가장 효과적이 되는 순간은 권력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은폐되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 196쪽


 또한 버틀러의 이러한 반복과 인용을 통한 규범의 힘에 관한 주장이 이 규범에 순응하는 이들의 윤리적 책임을 면제하는 뜻이 아니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오히려 버틀러는 우리가 완벽히 수동도 능동도 아니고 완벽히 억압도 자율도 아닌 상태에서 태어날 때부터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주체로 형성하는 권력 구조와 타자와의 관계 구조 안에서 살아간다면, 바로 그러한 조건 속에서 우리의 행위에 윤리적 책임을 질 수 있고 져야 한다고 본다.  - 198쪽 

 뭔가 멋있어.. 버틀러... 


 

  (2) 수행성 2: 다르게 반복하기


    위에서 말한 수행성이라는 것, 반복과 인용을 통해 규범이 재생산된다는 사실 자체로부터, "수행성이 열어주는 두 번째 차원, 전복적 차원"이 발생한다고 한다.


특정한 위치에만 동일시해야 한다는 요구, 나아가 그러한 동일시가 반복되어야 한다는 요구 속에는 반복에 실패할 가능성, 반복이 실패하리라는 위협이 계속 있는 것이다.  - 199쪽, <Bodies that matter>에서 저자가 인용한 부분 


  이러한 전복적 차원을 보여주는 예로 저자는 여성의 참정권 투쟁을 든다. '시민' 또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반복과 인용을 거듭하는 가운데, 그 개념에 여성을 포함시킴으로써 기존에 백인 남성들만이 전유하던 '시민''인간'이라는 보편적 용어의 의미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나만은 권력에서 완전히 초월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환상을 붙들고 있기보다는 권력을 전복적으로 재배치하는 작업, 즉 기존의 범주들을 불법으로 점유하고 재배치함으로써 다시는 그 범주들이 당연시될 수 없도록 트러블을 일으키는 작업이 훨씬 더 교활하고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 201쪽 

음, 그래서 '젠더트러블'인 모양이다. 


좋아, 2장의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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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7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7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10-07 22: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괭님 넘 대단하세요. 느무느무 어려운걸요. 강도 높은 이해와 집중과 인내가 필요해 보이는 책입니다.^^;;

독서괭 2021-10-07 23:28   좋아요 1 | URL
제가 중요한 부분(이라 쓰고 어려운 부분이라 읽음)을 주로 발췌해서 그렇고 저자의 예시를 보듯이 생활밀착형 예시를 많이 제시해줘서 막상 읽으면 뭔가 알 것 같아..! 라는 느낌이 듭니다. 착각이겠지만요 ㅋㅋ
 


3. 수행성: 우리는 어떻게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저항하는가

 1) 규범과 젠더의 관계 


버틀러는 '젠더'라는 용어를 남성성/여성성 이분법과 떼어놓아야만 이 이분법이 '젠더'라는 개념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의미와 실존과 실천의 가능성을 "어떻게 고갈시켜 버리는지"를 폭로하고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 179쪽 

(...)

그러나 이런 논의를 '규범으로서의 젠더' 대 '마냥 자유로운 젠더'의 대립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시중의 버틀러 개론서 중 이런 해석을 하는 텍스트도 있으나 이는 결코 버틀러의 주장이 아니다.  -180, 181쪽


  모든 젠더 규범을 부정한다는 식으로 버틀러의 이론이 많이 오해되는 모양이다. 저자는 결코 그것이 아니라고 조곤조곤 설명한다. 누구도 젠더 규범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러한 규범은 변할 수 있고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세상을 가늠하고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인식틀(인식 가능성의 매트릭스) 없이, 그런 인식틀과 아무런 관계를 밎지 않고서 살아갈 수는 없다.(...)

둘째, 우리가 그 어떤 인식틀과도 전혀 관계 맺지 않고선 살 수 없을지라도, 중요한 건 그런 인식틀, 젠더 규범, 규제적 이상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3쪽


 2) 규범과 '나'의 관계: 행위성을 재개념화하기


젠더 규범에 대한 버틀러의 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논의가 전통적으로 권력을 이해해온 방식인 억압/자율의 이분법적 대립 자체를 문제시한다는 점부터 이해해야 한다. 이는 주체과 권력에 대한 미셸 푸코의 관점을 따른 것이다. 푸코는 주체 형성 과정을 '주체화/종속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이 용어는 권력에 의해 종속되는 과정과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동시에 담아낸다.  - 187쪽


  푸코.. 푸코 자꾸 나오네.. 하지만 이 주체에 대한 논의가 뭔지, 주디스 버틀러의 <bodies that matter>에 나온 부분으로 저자가 인용한 아래 부분을 보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담론의 배후에 서서 담론을 통해 의지나 결단력을 실행하는 '나'란 건 없다. 반대로, '나'는 오직 불리어지고, 이름 붙여지고, 알튀세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호명됨으로써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적 구성은 '나'에 앞서 일어난다. (...) 역설적으로 사회적 인식/인정의 담론적 조건은 주체의 형성보다 앞서고 그것을 조건 짓는다. 즉 인식/인정은 주체에게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188쪽

  

 저자는 억압과 자율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근대적 관점으로는 "성폭력이나 성노동을 비롯해 '온전히 네 선택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행위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190쪽)고 하면서, 유독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만 '선택'의 이유를 묻고 '선택'의 책임을 지라고 엄격하게 요구한다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다수자들의 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많은 성소수자들이 "본질성"을 들고 나오지만, 역으로 "진정성"을 증명하라는 소모적 싸움에 휘말릴 뿐이라고 한다.  

 => 이래서 버틀러가 주장하는 것이 "수행성performativity" 논의라는 것. 이 '수행성'이라는 개념이 퀴어이론 전반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므로 별표별표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수행성이 공모와 전복 두 차원을 다 아우르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즉 한편으로는 규범이 어떤 식으로 우리를 조건짓고 규범 권력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설명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 어떻게 우리가 규범 안에서 그 규범에 맞서는 행위를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수행성 개념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 193쪽 


193쪽 중간, 괄호 안. 여기까지 온 독자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독려하는 저자의 개그..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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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1-10-01 17:0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ㅋㅋ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네요~ 산책 수준이 아닌데요? 마라톤이네요! 독서괭님 힘내세요^^

독서괭 2021-10-01 17:23   좋아요 6 | URL
네 저자가 자기 반려견 산책 데리고 나갔다가 산을 탔다는 이야기로 이 책이 시작합니다.. ㅋㅋㅋ 응원 감사합니다! 제가 발췌하지 않은 부분에 생활밀착형 예시가 많이 있어서 직접 읽어보시면 이해가 더 잘 되실 거예요^^

공쟝쟝 2021-10-02 0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집에는 못간대 ㅋㅋㅋ 푸코 하이 😭

독서괭 2021-10-03 00:25   좋아요 1 | URL
중도포기하려는 독자들 뒷덜미를 잡는 “못 간다~!! “ㅋㅋㅋ
 


2. 젠더는 규범이다

 3) 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불온한 커넥션


버틀러는 <물질화되는 몸>에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정신분석의 남성성/여성성에 관한 논의를 분석하면서 남/여 이원론과 강제적 이성애의 이 긴밀한 공조를 짚어낸다. 플라톤이 코라에 관해 논한 대목은 물질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이론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여성은 물질, 남성은 정신'이고 여성은 남성을 위한 그릇(다 담아주고 포용하고 수용하는)으로서만 존재한다는 젠더 편견을 진리인 양 포장한 것이었다. (...) 남성 중심적 이론들은 이 관점을 계승해왔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에서 성별이란 처벌의 위협 하에 수취될 수 있는 상징적 위치인데, 이때 남자들에게 가장 큰 처벌의 위협은 거세 위협으로 나타난다. 여자는 자를 페니스가 없으므로 처벌에서 자유로워야 할 텐데도 거세를 둘러싼 이 남성 중심적 서사에서 여자는 이미 처벌당한 존재로 여겨진다. 기분 나쁘게도 남자를 위해 여자는 '쟤처럼 되면 안 된다'의 그 '쟤' 역할을 맡는다. (...) 그다음엔 항상 남성이 삽입하는 위치에 있고 여성이 삽입 당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깨는 존재들인 '여성화된 호모femminized fag'와 '남근화된 부치phallusized butch'가 두 번째 처벌의 형상으로 내세워진다. (...) 결국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화된 위치는,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위협 하에 강제되는 이성애적 매트릭스를 통해 보장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커넥션은 반드시 '섹스와 젠더는 같고, 동일시는 같은 성에게, 욕망은 다른 성에게'라는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규칙만이 옳고 이 규칙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병리적이라는 주장이 정신분석을 포함한 온갖 이론을 통해 전파되어왔다.   - 170, 171쪽


 그 '쟤' 역할.. 남성 중심 서사를 읽을 때 묘하게 불쾌한 기분을 이 한 줄로 표현해줬다 ㅋㅋ 

 오늘은 바빠서 10쪽 읽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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