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마치고 H 언니와 C커플과 이디야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C와 함께 살 때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갔었는데 올해는 그러고보니 거의 6개월만에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만에) 갔군. 일단 싸다는 게 미덕. C커플은 예매해놓은 영화가 있어 먼저 가고 나와 언니는 매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지난 10월 말에 결혼한 언니의 남편 C오라버니는 공대로 유명한 H대를 나와 L모 전자를 다니다가 1년도 못되어 그만두고, 거의 3년간을 백수로 지냈다. 백수로 지내는 남자친구와 결혼시키지 못하는 부모님 때문에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취업의 문턱은 점점 높아져갔다. 결국 C오라버니가 백수인 상태로 언니는 결혼을 하게 됐고, 부모님은 그래도 C오라버니가 멀쩡한 대학을 나와 멀쩡한 회사를 다니던 녀석이니 곧 번듯한 직장에 취직을 해 딸 고생은 시키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결혼 후 C오빠가 선택한 일은 가스배달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는 당연히 거기가 C오빠가 머무를 직장이라 생각지 않았고, 그냥 잠시 생활을 위해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언니와 얘기해보니 C오빠는 그 일을 매우 즐겁게 하고 있단다. 다시 사무실로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머리 쓰는 일보다 몸 쓰는 일이 편하다며 C오빠는 그 일을 계속 할 생각이란다. 말은 못하지만 속터지는 건 언니. 언니는 일산에 있는 약국에 매니저로 있기 때문에 현재 언니의 수입도 오빠의 수입도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뭐 둘이 번 돈을 합하면 샐러리맨 하나 월급 정도는 나와 지금은 두 명의 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치만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는 동안 언니가 일을 쉬게 될 경우의 생활이 당장 막막하고, 아기에게 들어가는 돈 역시 감당키가 어렵다는 것. 게다가 착한 언니는 여전히 처녀 때부터 지금까지 친정에 남아 있는 빚을 계속 갚고 있는 상황이니, 좀 더 생활이 빠듯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결국 티격태격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서로 마음만 상하니, 일단은 하고 싶다는 일을 존중해주고 있다고, 하지만 앞으로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언니는 얘기했다.

C오빠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특히나 오빠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보통 이상으로 받았었나보다. 게다가 지난 3년을 백수로 지내며 받았던 스트레스도 엄청났을테니, 그 취업 전쟁에 다시 뛰어드는 것이 두려운 것도 이해가 된다. 그치만 역시나 난 자꾸만 H언니의 입장에서 현실을 생각하게 되고, C오빠가 안쓰러우면서도 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가 안정, 안정,을 외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결혼을 하게 되면 한 사람 정도는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자로 살고 싶은 욕심은 없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인색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생활에 여유가 사라지게 되면 마음의 여유도 함께 사라진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꿈이 돈을 적게 버는 일과 연관이 돼 있다면 나는 그냥 내가 돈을 꾸준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 돈 적게 버는 일의 범주는 우습지만 -_-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일,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일, 뭐 이런 것들이었다. 가스배달이라는 직업은 아예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이런 당황이 더 당황스러운 건 내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지 않다고 갖은 착한 척을 하면서도 몸을 쓰는 일,을 멀쩡한 대학 나온 사람이 하는 건 상식적이지 못한 일이라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생판 남이거나, 친구의 친구의 사촌언니의 남편이라면 그냥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거지,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닌, 내가 좋아하는 언니의 남편, 나와도 친한 누군가,의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뭔가 모순적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오빠의 앞길을 또 마냥 응원만 하지는 못하겠는 나,는 일하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사람 눈치볼 필요 없고, 종일 운전하며 배달 대기중 남는 시간엔 책도 보고, 신문도 읽는 지금이 좋다는 오빠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오빠가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전히 변함이 없다. 미안하지만 그렇다. 아, 정말 어쩔 수 없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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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25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C오빠는 부양가족이 하나 더 생겨버리면 다른 생각을 가질지 몰라요.^^

웽스북스 2007-12-25 21:41   좋아요 0 | URL
어째 좀 슬프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랬음 좋겠어요

깐따삐야 2007-12-25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의견에 많은 부분 공감하는 바. 돈을 좀 못 벌어도 어떤 면에서건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C오빠라는 분 같은 경우엔 아내의 노고라든가, 2세를 위한 준비라든가. 그런 걸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간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모르지만 누군들 좋아서 힘든 직장 다니며 고생하나요. 스스로 선택해서 결혼했고 홀몸이 아닌 이상 좀더 안정된 생활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야죠. 부부끼리 탁 터놓고 솔직한 대화가 필요한 것 같아 보여요. (신구 아저씨도 아니면서 또또 남의 일에 열내고 앉았네.-_-)

Mephistopheles 2007-12-25 21:37   좋아요 0 | URL
확실히 깐따삐야님은 게맛 만큼은 확실히 아실 것 같아요.=3=3=3=3

웽스북스 2007-12-25 21:44   좋아요 0 | URL
언니에게도 대화해보라고 얘기했는데, 아무래도 쉽지는 않은가봐요- 그저 지금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C오빠가 뭔가 속으로 꿍꿍이가 있는 거길 바라고 있는데, 잘 모르겠네요 ㅠ_ㅠ

충청도의 게맛은 어떻던가요? ㅎㅎ

깐따삐야 2007-12-25 21:54   좋아요 0 | URL
음. 그렇다면 본인도 유예기간을 두는 건지도? 몸을 마구 움직이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기도 하니깐. 어쨌거나 잘됐으면 좋겠다.

충청도의 게맛은 끝내줘요! 아앙~ 간장게장+양념게장+호박게국지가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며 허기진 배를 희롱하네욤.

마늘빵 2007-12-25 22:01   좋아요 0 | URL
간장게장은 못먹지만 양념게장은 게눈감추듯 먹어치울수 있는데 -_- 쓰읍.

깐따삐야 2007-12-25 22:08   좋아요 0 | URL
대체 그 맛있는 간장게장을 왜 못 먹는다는 건지.(또또 먹는 이야기에 광분하기 시작)

마늘빵 2007-12-25 22:29   좋아요 0 | URL
간장게장은 너무 짜요. -_- 양념게장은 쓰읍. 아 먹고싶다. 고기먹으러갈 때 나오는 양념게장은 항상 두 그릇씩 뚝딱 해치우는데 좀 많이 먹고 싶다아.

웽스북스 2007-12-25 22:45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 모르겠어요- 실은 저도 그냥은 잘 이해가 안되거든요- 내가 그냥 커피집에서 서빙이나 하고 싶다는 거랑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고 말이죠- 근데 호박 게국지는 뭔가요? 이름만 봐도 맛있겠다 ㅋㅋ

아프님 // 간장 게장이 짜니까 밥도둑인 거죠 괜히 밥도둑이겠어요- 잘하는 데 가서 먹으면 맛있는데 저도 잘 못먹긴 해요- (일딴 비싸고!) ㅋㅋ

깐따삐야 2007-12-25 22:53   좋아요 0 | URL
아프님- 간장게장 게딱지에 따순 밥 넣고 솔솔 비벼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양념게장도 물론 맛나죠. 근데 금방 무쳐먹어야 제맛인 양념게장은 반짝하는 양념맛이구요. 깊고 담백한 맛은 역시나 간장게장이죠. 배고파라.-_-

웬디양님- 호박게국지는요. 제 고향에서 겨울에 잘해먹는 음식인데요. 배추와 무, 늙은호박, 간장게장 국물로 김치를 담근 다음 여기에 게다리 등을 찢어서 같이 넣어주고요. 김치가 다 익은 후, 쌀뜨물을 붓고 찌개로 끓여먹으면 세상 모르고 맛있습니다요. 배고파. 흑!

웽스북스 2007-12-25 22:54   좋아요 0 | URL
ㅋㅋ역시 떠올렸을 때 침을 꼴깍 하게 되는 녀석은 간장게장인게죠 ㅋㅋ 어 근데 이거 쓰니까 호박 게국지에 대한 덧글 첨부가 ㅋㅋ 세상 모르고 맛있다니 아, 정말 맛있겠다. 깐따삐야님 끓일 줄도 알아요?

깐따삐야 2007-12-25 23:06   좋아요 0 | URL
히히.^^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아요. 그리고 고향에서 떠나온 후로는 예전처럼 호박게국지 잘 안해먹어요. 엄마 말씀으론 이 동네는 내륙이라 그런가. 싱싱한 해산물이 안 보인다고. 고향의 큰댁에선 지금도 게장이니 게국지니 열심히 담그시는 모양인데 말이죠. 배고파. 배고파. 어뜩해.-_-;;

웽스북스 2007-12-25 23:09   좋아요 0 | URL
아 고향은 지금 그 도시가 아닌 거군요-
씨오빠 얘기하다가 왜 먹는 얘기로 넘어갔는지 거슬러 올라가보니
이게 다 메피님 때문이로군요 흥흥 ㅋㅋㅋ

배고파요 책임져요 메피님

마늘빵 2007-12-26 01:09   좋아요 0 | URL
그건 머여요. 호박게국지. 그것두 먹어보고 싶다. 맛있겠다. 게는 다 좋아하는데.

웽스북스 2007-12-26 01:11   좋아요 0 | URL
간장게장을 안좋아하므로 무효
호박게국지는 정말 맛있겠죠 ^-^

마늘빵 2007-12-2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으로서 씨오빠가 어떤지보다는 저는 그 분의 개인적인 행보가 남달라보여요. 아직 내가 '가정'의 범주에서 생각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_- 언니분이 이 부분에 있어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근데 그 문제가지고 다툼의 조짐이 보일거 같다면... 둘이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을거 같아욤.

웽스북스 2007-12-25 22:46   좋아요 0 | URL
남다르죠 정말 남다르긴 하죠- 언니가 이 부분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게 문제이고, 당분간은 언니도 지켜보자는 입장이에요- 둘다 참 좋은 사람들이고, 서로 많이 좋아해서, 일단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오빠도 언니가 수입의 일부분을 여전히 친정에 보내는 거에 대해 관대하고요 ^^ 우리모두 신구가 되고 있는 사건 ㅋㅋ

순오기 2007-12-25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갑을 지낸 시아버님이 첫딸을 낳은 내게 행복한 가정을 위해선 건강, 경제, 사랑 순서로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땐 왜 경제가 먼저일까 알지 못했는데, 살면서 '경제'가 얼마나 중요하지 뼛속까지 느낍니다. 경제가 받쳐주지 않으면 사랑이 아닌 가정까지 깨고 싶을 정도로... 한번 나락으로 떨어진 가정경제는 되살리기 쉽지 않아요. 가장의 경제적인 힘, 필수조건입니다!

웽스북스 2007-12-25 22:57   좋아요 0 | URL
순진한 소리를 종종 해대는 제게 주변 결혼하신 분들께서 해주시곤 하는 말씀과 비슷한 이야기이에요- 그게 결정요인이 되서는 안되지만, 절대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살면서 현실을 알아가는 거죠- 참.

바람돌이 2007-12-2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문제네요. 저정도로 직장생활에 스트레스가 심했다면 아마 돌아가기 힘들거예요. 제가 옛날에 알던 사람이 증권회사에서 초고속 승진으로 아주 잘 나갈때 때려치워버리더라구요. 그리곤 한 말이 다시는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직업 안가진다였어요. 그러고는 이민가버렸어요. 절실하게 싫다면 그건 누구도 어쩔수 없죠. 그런데 사는게 그리 단순하지 않으니... 다행히 두분이 다 좋은 분들이라니 아마 둘이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을거예요.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말예요.

웽스북스 2007-12-26 00:5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언니한테 스트레스 받아서 병나는 것보다는 건강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은 했어요- 참 남의 일에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좋은 결론이 나기를 바라야죠 뭐

Mephistopheles 2007-12-2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놈의 "게"때문에..."게"때문에..!!

웽스북스 2007-12-26 01:27   좋아요 0 | URL
그럼 간장게장 사주시는 겁니까? ㅋㅋ

깐따삐야 2007-12-26 01:43   좋아요 0 | URL
저도 사주세요, 메피님! ㅋㅋ

마늘빵 2007-12-26 09:00   좋아요 0 | URL
나두나두

웽스북스 2007-12-26 09:46   좋아요 0 | URL
멤버는 결성됐고, 장소는, 신사동 어떠십니까? 막이러고 ㅋㅋㅋ

Mephistopheles 2007-12-26 11:53   좋아요 0 | URL
글쎄 애인부터들 만드시라니까요..^^

깐따삐야 2007-12-26 12:12   좋아요 0 | URL
정말 애인 만들어서 델구 가기만 하면 사주시는 거죠? 어렵지 않아요. 약속 안 지키시기만 해봐요!!

마늘빵 2007-12-26 14:51   좋아요 0 | URL
그럼 나도 일일 애인 만들어야지.
 



1

크리스마스다. 퇴근길 강남역을 빠져나와 사당까지 오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사람들은 물밀듯이 꾸역꾸역 강남역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고, 그곳이 그저 일터일 뿐인 나는 교회로 가기 위해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가고 있었다. 지하철 역사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는 분이 있다. 내려가며 들으니, 전하는 내용은 그리 바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날, 처절히 외면당하는 복음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하지만 나 역시 군중이 되어 내려간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원래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특별한 행사를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다음날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고 바로 태안으로 떠나자는 계획을 짰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렵게 되버렸다. 대신 요란하고 사치스런 행사는 없이(원래도 가난한 교회라 그런 건 없지만), 오늘은 그냥 모든 성도들이 모여 한 해의 감사의 이유를 나누고, 내일은 조촐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나가 한 해를 정리한다. 나는 나의 감사의 제목들이, 참, 가족들이 다 있는 대중 앞에서, 특히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말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들이어서, 결국 진짜 감사의 이유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엄마의 감사의 이유를 나의 감사의 이유로 치환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시나 예리한 목사님은 내가 오늘도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것을 캐치해낸다. 역시 신비주의가 유행이라며 -_- 내가 이런 데서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걸 보면 목사님도 날 절대 신비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으실텐데, 역시나 내게 나의 이야기를 대중 앞에서 털어놓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이야기이거니와, 올 한 해, 내가 조금 바뀌었다 해도,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차마 그 자리에서 할 수가 없었다.

2

목사님은 갖은 칭찬의 수식어들을 붙여주시며 사람들을 앞으로 부르셨는데, 나를 부르시며 매우 합리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시니컬하게 잘 따지는 성격이라는 얘기다. 좀 원리에 어긋나는 것들에 대해 공동의회,같은 시간에 손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1년에 한번이지만, 워낙 조용한 동의와 제청이 주로 이루어지는 편인지라 한번 얘기하면 오래 각인이 되나보다. -_- 그래놓고는 며느리삼고 싶다는 농담을 하셨는데, 나는 도무지 왜 내가 좋다는 사람보다 며느리 삼고 싶다는 사람들이 더 많은지 ㅋㅋ 아무래도 50대 스타일인가보다. 일단 눈이 좀 침침해진 다음에 ㅋㅋ 목사님의 아들은 5살 어린 M, 군대에 가 있기에 자리에 없어서 망정이지, 있었으면 제 아버지에게 얼마나 불만을 표했을까. ㅋㅋㅋ

우리 모두 웃으며 넘기고 심지어 나는 그 앞에서도 목사님께 반항을 하다가 들어왔다는 거. (목사님, 제가 올해는 3년 째 사역-찬양단 싱어, 아동부 교사-좀 바꿔달라고 했는데, 또 그대로 넣으셨더라고요? 막 이러고 ㅋ) 암튼 다 까먹고 고등부 아그들이랑 수다를 떨다가 돌아왔는데(아...! 수준이 맞다니 -_-) 집에 오니 엄마가 심각하게 묻는다. 선아야, 목사님은 왜 그런 얘기를 하셨을까? / 무슨 얘기? / 너 며느리 삼는다고 / 헉, 엄마 그거 심각하게 생각한거야? / 응. 엄마는 M도 좋고 목사님도 좋은데 사모님 때문에,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너는 어떠니? -_-

아무래도 내년에는 누구든 없어도 있다고 뻥이라도 쳐야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올 한 해 갖다 붙여진 사람만 해도 몇명인지. 무슨 자석 인형도 아니고 이젠 핏덩이 군인아가한테까지 갖다 붙여지다니 ㅠ_ㅠ

3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잖아- 라고 아동부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마다 나는 조금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크리스마스가 진짜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어린시절 선생님들한테 살짝 배신감 같은 걸 느끼기도 했는데, 정작 내가 그짓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얘들아 예수님은 12월 25일에 태어나신 건 아니야. 그러니까 정확히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생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날을 그냥 기억하는 거야"라고 얘기하기엔 추후 파장이 예상되기에, 나는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고 만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태어난 실제 그 날짜가 아니라도 일년에 한번,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의 마음에 대해 묵상할 수 있는 날이기에, 충분히 의미 있다. 꼭 그 날이 아니더라도, 1년에 한 번쯤 그 의미를 깊이 되새겨볼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4

퇴근길 지하철, 시사인을 읽고 있는 내게 어떤 할아버지가 다가오신다. 풍선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였는데, 그 풍선은 파란 매직으로 쓴 알 수 없는 한자들이 가득했다. 할아버지는 풍선을 선반위에 올려놓으시고는 나에게 와서 다른 사람들은 러브러브, 연예인에나 관심이 있는데 학생은 이렇게 시사 잡지를 읽고 있는 걸 보니, 세상사에 대한 관심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며 마구마구 칭찬을 해주신다. 꼭 이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해달라고 하신다. 나는 그냥 잡지를 읽었을 뿐인데... 민망해진 나는 예, 예, 하고 다시 잡지를 읽었다. 당황스럽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세상사에 대한 나의 관심이 보통을 넘는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할지에 대한 그림도 막연하다. 그럼에도 기분이 좋은 이유는, 오늘은 굳이 퀴즈로 낼 필요가 없을 거다.


* 어제(24일) 쓰다가 잠든 글이어서, 시점이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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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2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길거리 자극적인 문구로 시행되는 표교는 오히려 반기독교적인 정서만 부추길 뿐일텐데요..가끔 전 그런 분들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안티크리스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2.대체 2번항목에서 몇번이나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까요..ㅋㅋ
3.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냥 쉬는 날, 술 마쉬는 날, 마음껏 타락하는 날이 되버렸나 봅니다. 어찌보면 함꼐 할 가족이나 사람이 없는 슬픈 현실이기도 하지만요.
4. 또 학생!

웽스북스 2007-12-25 19:59   좋아요 0 | URL
1.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또 그렇게 생각할 수 만은 없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참 어렵죠
2. 물론 고맙죠 ㅋㅋ 다섯살 연하인데 흐흐흐흐 그치만 진짜 심각하게 고려한 우리 엄마도 너무 웃겨요 ㅋㅋ
3. 크리스마스가 그런 기념일 같은 날이 되버린 연유도 실은 제게 매우 궁금한 일이긴 하답니다. 역사적인 계기가 있는 걸까요? ㅋ
4. 하지만 또 눈 침침한 노인분이시라는 거, 그래도 아무래도, 로또라도 한장 사봐야 할까봐요 ㅋㅋㅋ

깐따삐야 2007-12-2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난 알아요. 사실은 웬디양님도 나처럼 내성적이라는 걸.
2 나도 주로 40대 이상한테 어필해 왔어요. 연령이 높아질수록 더 열광적이네 그냥.-_-
3 어제 엘프라는 영화 보니깐 사람들의 믿음에너지가 떨어져서 산타클로스가 썰매를 못 끈다나봐요. 그 말 듣는데 왜케 짠해지던지.
4 할머니나 할아버지 말고 훈훈한 청년이 다가왔으면 더욱 따숩은 크리스마스 이브 되시겠사와요.^^

웽스북스 2007-12-25 21:48   좋아요 0 | URL
1. 나도~~ 알아요!! 깐따삐야님도 나처럼 낯도 심히 가린다는데, 아무도 믿지않는다는 그 사실을 이제는 나도 알 수가 알 수가 있어요
2. 이것봐이것봐 도플갱어 진짜 맞나봐요 ㅋㅋ
3. 근데 썰매는 루돌프가 끌지 않나요? ;;
4. 훈훈한 청년이 다가왔다면 저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아요- 도를 아십니까? ㅋㅋㅋ

깐따삐야 2007-12-25 22:00   좋아요 0 | URL
1 태지 오라버님의 이 밤이 깊어가지만-이 문득 떠오르는 밤이에요.-_-
2 혹시 밥 잘먹고 일 잘하게 생겼어요?
3 엘프 보니깐 눈썰매에 엔진도 장착되어 있더라구요. 센트럴파크에 엔진 떨어뜨려서 한참을 찾고 그러던데. 루돌프들은 그냥 디테일인가봐요.
4 도는 나중에 알고 먼저 서로 알아가면 안될까욤? 도망가겠다.ㅋㅋ

웽스북스 2007-12-25 23:11   좋아요 0 | URL
1. 얼마전에 서태지 10주년 앨범 낸거 보면서 추억에 젖어 옛 노래들을 좀 들었는데 재발견되는 노래들이 몇곡있더군요- 중학생의 감성으로는 잘 몰랐던 것들.
2. 빙고~
3. 루돌프들이 백수가 됐겠군요
4. ㅋㅋㅋㅋㅋㅋㅋㅋ 깐따삐야님 이거 진짜 웃겨요

마늘빵 2007-12-25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보니 연상연하 커플들이 많더라구요. 아직은 기껏해야 4-5살 정도가 최고치인데, 앞으로 10년까지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도. 흐흐. (근데 목사님 아들은 5살이잖아!)

전에 제가 고등학교 때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하교 후에 혼자 책을 보고 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어떤 할아버지가 와서 막 이런저런 정치 이야기를 하고,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웬디양님이 지하철에서 받은 비슷한 말을 들은거 같아요. 근데 전 그게 무슨 말인지 거의 못알아들었었어요. -_- 너무 어려운 말을 하셔서.

웽스북스 2007-12-25 23:12   좋아요 0 | URL
와 주변에 4-5살 차이나는 사람도 있군요- 저는 연하가 싫은 건 아닌데, M군은 친동생보다 더 친동생같은 동생이지요 ㅎㅎ

그 시절엔 아프님이 진짜 고등학생이었으니 '학생' 해도 감흥이 없었을 것 같은데요? ㅋㅋ 혹시 그 할아버지 풍선을 들고 있었나요? ㅋㅋ
 
루시드 폴 - 3집 국경의 밤
루시드 폴 (Lucid Fall)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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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사랑하지않을수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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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2-25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그저 그런가 싶다가 들으면 들을수록 땡기던데요. ㅎㅎ

웽스북스 2007-12-25 01:28   좋아요 0 | URL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만 새로운 곡들을 재발견해요- 아, 근데 올해의 음반이라고 선물로 들고 나갔어요 다시 사야되요 ㅠㅠ
 
[에쌤] 자유자재 변형책장 - 월넛
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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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깔끔하고 보기 좋아요- 다만 맞물리는 책장라인에는 뒷판이 없어요 (사진상 흰색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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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활용옥편 - 4판, 전면개정판
이병관 자원집필 / 두산동아(참고서)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얇고 가볍고 찾기 편해요! 다만 가끔 없는 한자는 있다는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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