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대리의 집은 수원이라 종종 함께 퇴근한다. 이 사람이랑 한 1년 정도 말을 안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다시 관계가 급 개선되고 있다. 다행이다. D대리는 우리 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여성성을 키우고 있는데, 그래서 D대리와 수다를 떨면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상하게 자꾸만 D대리 앞에서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모드가 된다. ㅋㅋㅋ 정말이지 우리는 D언니라고 부른다. ㅋㅋㅋ

연봉 협상의 계절이다. 원래 이번 주로 예정돼 있었는데, 회사 내부적으로 조율해야할 것들이 좀 많아 연기가 된 상태이다. 애써 초연하려 하지만, 신경쓰이긴 한다. 솔직히 금액적인 부분에 신경이 쓰이기보다는, 나에 대한 회사의 평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평가 따위 중요치 않다고 쿨하게 말하고 싶지만, 중요한가보다. 은근히 신경쓰이고 궁금한 걸 보면.

나보다 입사가 3개월 늦어 애매하게 기수가 바뀌어 나보다 연차가 낮아져버린 D대리와 연봉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이 사람이 내 연봉을 알고 있다는 거다. 웃으며 날리는 한마디에 뜨끔, 하며 매우 깜짝 놀란 사건. 게다가 D대리는 동기들과 연봉 공유를 해서 어느 정도 연봉이 오르는지에 대한 정보도 꿰고 있다고 한다. 나는 매우 심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하나도 모른다. 누가 연봉을 얼마나 받는지. 대략적인 인상폭이 어느 정도고,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의 인상률을 적용 받았다는 정도만 알지 남들의 연봉에 대해서 관심만 있을 뿐 딱히 알려고는 하지 않았다. (차마 관심도 없었고, 라고는 못쓰겠고) 그냥 재무이사님이 동기들끼리 연봉 공유는 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그리고 원래 그런 건 비밀스러운 거니까, 나는 그냥 아무에게도 말하지도 않았고, 내가 누구의 연봉도 알지 못하듯, 아무도 내 연봉이 얼마인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예의상 서로의 연봉에 대해 묻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건 서로에게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 혹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문제니까 궁금해도 참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연봉이 얼마였는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하나도 모르는데 ㅜㅜ 내가 너무 순진했다. 억울해 억울해 정말 ㅜㅜ 이사님이 그런거 말하지 말랬는데 왜말해요!!!!! 라고 항변했다가 초무시를 당하고 말았다. 으흑. 그렇다고 해도 동기도 없고 술도 잘 안마시는 내가 알 방법이라고는 없구나. 아 완전 손해보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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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13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사특한 사주들이 옌 이거만 줘도 군말없이 일하니까..라는 마인드가 존재하긴 합니다. 이때 다른 직원들과의 연봉비교를 하게 대면 덩말덩말 기분 더러워지죠.

웽스북스 2008-02-13 01:29   좋아요 0 | URL
문제는 아직까지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에요 앞으로도 모를 것 같고 말이죠- 다른 사람이 나의 연봉도 모른다는 전제 하에서, 나도 남의 연봉을 모르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아요 정말.

Mephistopheles 2008-02-13 01:31   좋아요 0 | URL
손해라고 볼 수 있어요. 사회생활 성장 척도가 직책과 연봉인데.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나보다 연봉이 많을 이유가 하등 없는 사람이 나보다 연봉이 높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참 기분 거시기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그 수준만큼 유지해주지 않으면 그만 두겠다라고 했던 적도 있었어요.

웽스북스 2008-02-13 01:57   좋아요 0 | URL
상대의 연봉 수준을 통한 협상의 기준과 관련된 손해를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평균 인상률 정도는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거든요- 다만 누군가는 나를 편견어린 시선, 즉 자기보다 연봉이 높은, 혹은 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구 봤을테고 거기서 오는 2,3차 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교묘히 말하지 않으며 나를 판단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정말 정신적 손해.

깐따삐야 2008-02-13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막 짜증이 밀려오는 거죠. 야동 청년 D언니는 남자치고 쓸데없이 수다스럽군요. -_-

Mephistopheles 2008-02-13 01:15   좋아요 0 | URL
이로써 야동청년 D대리와 깐따삐야님을 연결해볼라고 했을지도 모를 생각을 단 1%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을 웬디양님의 생각이 드디어 0%대에 진입하게 되었군요..호호호

웽스북스 2008-02-13 01:34   좋아요 0 | URL
얘기하다보니 D대리 욕한것처럼 되버렸네 ㅎㅎ 그런 건 아니에요. 요즘 사이 좋은데...ㅋㅋ 원망한다면 그저 홀로 순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스스로나 원망해야지요. D대리님 좋아요- 이렇게 편안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남자, 아니 여자도 흔치 않아요, 특히 직장 동료로는 ㅎㅎ

보석 2008-02-1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웬디님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살았는데..저도 순진했나봐요;;

웽스북스 2008-02-13 16:31   좋아요 0 | URL
우리도 순진걸스 뭐 이런거 결성해볼까요?
아, 걸스에서 돌 날아오려나?

다락방 2008-02-1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싫어요 웬디양님.
물론 남의 연봉 모르는게 속편하다, 로 일갈할 수 있지만 그쪽에서 내 연봉을 알고있다면 문제가 달라지죠. 연봉앞에서, 그리고 사랑앞에서. 우리는 쿨해져션 안되는거예욧!
손해보는 느낌인데요, 정말.
그리고 저도 깐따삐야님 처럼 막 짜증이 밀려와요.
저도 비밀 잘 지키는데, 도대체 말하지 말라는걸 왜들 말하고 다니는 거래욧!! 버럭!

웽스북스 2008-02-13 16:31   좋아요 0 | URL
길건너오셔서 다들 혼내주고 가세요 다락방님 ^_^
D대리한테 명단 작성해놓으라고 할게요 ㅋㅋㅋ

다락방 2008-02-14 08:29   좋아요 0 | URL
진짜 다들 발차기 한번 날려줄까요? 슈퍼킥!!

antitheme 2008-02-1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솔직히 제 연봉도 제대로 기억 못하고 살아요.

웽스북스 2008-02-19 01:21   좋아요 0 | URL
전 연봉은 기억하는데요- 월급이 얼마인지 기억을 못해요 -_-
 

남대문이 불타 사라진 일에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이렇게 다함께 격분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남대문이 소중한 문화재인 건 맞지만, 남대문이 국보 1호라 해서 우리 나라의 수많은 다른 문화재들보다 탁월하게 훌륭하거나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운하 건설을 가장 큰 공약으로 내세운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다. 남대문만큼이나 소중한, 수없이 많은 문화재들을 '고의로'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이야기를 너무 당연한 듯 한 사람을 지지했던 국민들이니, 그리고 그 옆에 어떻게든 땅한뙈기 장만해 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즐비한 곳이니, 사람들이 남대문 앞에서 이렇게까지 황망해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나보다. 문화재는 괜찮고, 남대문은 안된다는 사고는 어디서 왔는지, 대운하 착공 뒤 사라지게 될 문화재 하나 하나에 이렇게 가슴 아픈 마음을 과연 가져줄 것인지 의문이다. 순위 매기기에 의한 상징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대운하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환경이지만,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크게 대두됐던 이유도 환경이지만, 자신이 살지 않을, 미래세계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니, 그래서 크게 개의치 않고 추진하려 하던 사람들이니 이제부터라도 부디 과거(문화재)가 좀 발목을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남대문이 보기 좋게, 아름다운 형태로 복원되는 것에는 사실 큰 관심이 없다. 그래봐야 이미 원형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 더 화려하고, 더 아름답게 복원한다 하더라도 이미 불타버린 남대문이 이전의 가치와 동일한 가치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것들을 계기로, 대운하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힘이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던 그의 추진력에 제동이 걸리길 바랄 따름이다. 운하에 쓸려 없어질 문화재들도 남대문처럼 소중한 문화재라는 걸 이제라도 깨달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대운하 사업에 반대해 주길, 그래서 대운하 사업이 부디 중단되길 바란다. 적어도 내게, 아니 앞으로의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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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1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 역시 운하를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가 환경이며 둘째가 경제성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리 광분하는 이유는 일종의 어설픈 노스텔지어가 아닐까 라고도 생각도 들어요. 어쩌면 죄진 놈이 성낸다..일지도 모르겠고요..^^

웽스북스 2008-02-13 00: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러니 서로 니탓 네탓 하고 있는 거겠죠? 도무지 내탓은 별로 없더라는

해적오리 2008-02-1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동감....

웽스북스 2008-02-13 00:08   좋아요 0 | URL
역시 감은 겨울에 먹는 감이 맛있다구요? (민망해서 이런 딴청을, 앗 딴청님!) ㅋㅋ

L.SHIN 2008-02-1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힘 있고 멋진 말이로고~

웽스북스 2008-02-13 00:08   좋아요 0 | URL
흐흐 에쓰님 저 방금 스트레칭 했어요 ^_^

L.SHIN 2008-02-13 11:01   좋아요 0 | URL
오오~ 앞으로 1주일만 계속 해 보는겁니다.
그럼 그 후부터는 스트레칭도 습관이 되고, 숙면도 할 수 있고~^^

웽스북스 2008-02-13 16:34   좋아요 0 | URL
흐흐 3주 플랜 따라서 해보려구요 ^_^
오늘 아침에 벌떡! 일어났어요 약발 너무 잘받는다니까요 ㅋㅋ

바람돌이 2008-02-1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솔직히 남대문의 붕괴에 이렇게까지 여론이 들끓을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어요. 어쩌면 tv의 힘일지도 모르겠네요. 대운하가 건설되면 소리소문없이 문화재들이 파괴되고 사라지겠지만 숭례문의 붕괴는 실시간으로 스펙트컬한 영상으로 생중계되었잖아요. 그 힘도 크겠죠. 님의 말대로 남대문의 붕괴가 대운하에 제동을 걸수 있다면 진정 남대문은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할 수도 있겠죠.

웽스북스 2008-02-13 00:09   좋아요 0 | URL
영상의 힘도 역시 무시하지는 못하겠네요- 저는 그 시간에 TV를 안보고 있어서, 미처 그 부분은 생각지 못했어요-

깐따삐야 2008-02-1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잘 썼다. 정말! 추천 팍팍 날려야 할 페이퍼에요!

웽스북스 2008-02-13 00:12   좋아요 0 | URL
그럼 곶감 2개 주세요 ^_^
(추천 하나보다 곶감이 더 좋은 단순 웬디)

깐따삐야 2008-02-13 00:21   좋아요 0 | URL
2개로는 한참 부족하죠. 근데 곶감은 너무 먹으면 변비에 걸린다는. ㅋㅋㅋㅋ

웽스북스 2008-02-13 00:24   좋아요 0 | URL
으흡, 정말요? -_- ㅋㅋ
난 2개만 먹을래요

다락방 2008-02-13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웬디양님.
국민들이 '대운하'때문에 그분을 대통령으로 뽑은것도 아니구요, '문화재를 고의로 없애겠다'는 말 때문에 뽑은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여전히 대운하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크구요.
남대문이 다른 문화재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국민들이 격분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른 문화재보다 더 자주 보이고, 더 친근한 것이었잖아요. 그리고 그것이 파괴되어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중계가 됐구요. 이 나라의 대통령을 어떻게 뽑아놨든, 그 장면을 보고 서운하고 속상한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지는데요, 저는.


웽스북스 2008-02-13 00:17   좋아요 0 | URL
그 말 때문에 뽑았다는 게 아니라, 그게 제 1 공약인 사람을, 게다가 추진력까지 넘쳐나서 그걸 할 게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사람을 뽑았다는 말이었어요- 남대문이 다른 문화재보다 더 소중하다는 게 아니라, 다른 문화재들도 남대문만큼 소중하다는 이야기였구요. 그것두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여러개잖아요. 서운하고 속상해하는 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구, 그것 만큼 다른 문화재들을 향한 속상한 마음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속상해하고 광분해할 다른 에너지들을, 현재 남아있으나 고의로 수장될 수도 있는 문화재들에게 쏟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었구요. ^_^ 남대문은 이미 사라진 거구,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은 지켜야겠지요. 지금보니 글을 너무 띄엄띄엄 써서 곡해의 소지들이 있네요- 회사에서 몰래 써서 그래요 ㅋㅋ

대운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너무 무력해요. 그분의 추진력 앞에서요. 이러다 정말 운하를 팔 것 같아서 너무너무 걱정되거든요 ;;

순오기 2008-02-13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숭례문의 전사가 대운하 발목이라도 꽉 잡고 늘어졌으면... 간절히 바랍니다!ㅠㅠ

웽스북스 2008-02-13 16:32   좋아요 0 | URL
발못 도끼로 찍고 피 철철 흘리면서 대운하 팔 것 같아 걱정이지요 ㅜㅜ

라주미힌 2008-02-13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수강산이 국보1호죠... ㅎㅎ

웽스북스 2008-02-13 16:32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님 말씀이 정답입니다. 역시 한마디로 축약하는 저 능력에 저는 오늘도 감탄이에요 ^-^

보석 2008-02-1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없이 사라지고 있을 수많은 문화재에 애도.

웽스북스 2008-02-13 16:34   좋아요 0 | URL
묵념......
 

 
   
  재혼 가정 자녀의 성씨 변경은 과거에 비하면 대단한 진보이긴 하지만 바뀐 성이 아이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진짜 바꿔야 할 것은 한 가정 안에 다른 성씨의 공존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의 편견이다 (중략)

성을 바꾸어야만 아이가 보호될 만큼 이혼에 대한 편견이 깊다는 얘기다. 부모 이혼으로 인한 아이의 고통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배가된다. 한 가정 안에 두 가지 성이 공존하는 문화라면 굳이 아이 성을 바꿀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까 궁여지책으로 아이 성씨 개명을 하는 것이다.

시사인 22호 성씨개명 권하는 사회 (남재일) 中
 
   


나를 유독 예뻐하던 이모의 결혼식날 나는 이모의 결혼식장에 갈 수 없었다. 결혼식장에 갈 수 없는 이모의 딸 Y가 우리 집에 와 있었고, 나는 그날 Y를 보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얼굴을 기억 못하는 나이지만, 예전 이모의 남편 얼굴은 가끔 기억이 난다. 호리호리한 큰 키에, 허여멀건허니 잘생긴 얼굴, 그리고 갈색빛 나던 곱슬머리. 당시 나는 어렸기에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둘은 식을 올리지 않고 살림을 차렸고 Y를 낳았고, 몇 년 정도를 같이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모의 남편은 이모를 떠났다. 어린 내게 그 이유는 누구도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가 기억하기에도, 어쩐지 그 사람은 이모에게 정착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았었다.

몇년 후, 이모는 그 사람과는 정 반대의, 지금 이모부를 만났다. 살집 있는 몸에 키도 크지 않고, 얼굴은 동글동글하고 까맣고, 인상은 살짝 사나운! Y는 언젠가 언니, 우리 아빠는 싸이를 좀 닮은 것 같아,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만 큭 하고 웃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이모부는 결혼한 적이 없었고, 이모는 결혼 경험이 있기에 사실 그것만 해도 이모는 시댁에서 꽤 많이 흉을 잡혔을 게다. 그래서 이모는 보수적인 시어머니께 아이가 있다는 말은 하지 못했었나보다. 그래서 Y는 제 엄마의 결혼식장에 갈 수 없었다.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Y가 어려도, 눈치가 빤한 아이인데 저를 보며 얘가 참 불쌍하다고 안타까워하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어리지는 않았었다.

이모가 좀 더 현명했더라면, 아이가 있다고 말을 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싶었다. 시댁에는 아이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으며, 사람들에게는 재혼 사실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Y에게는 원래 Y의 성인 윤,이 아닌 새 이모부의 성인 강,을 붙여줬다. Y가 이모부를 친아빠로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뒤에는 아마 타자의 시선,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받는 편견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게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려보지 못한 나는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나는 그 시선들이 이모에게 주었을 상처보다는 Y가 살면서 받아온 상처가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이모는 Y가 어려서 모를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애들이 제일 먼저 알아듣는 말이 자기의 이름이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몰랐을 리 없다. 아마 Y는 꽤 어린 나이부터 철이 들어 있었을 거다. 굳이 따져 묻지 않았던 걸 보면. 그렇지만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이름이 바뀌는 과정에서 오는 상처와 영향들은 분명 있었을게다. Y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때부터 이모는 6년간 매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갔다. 사정을 설명하고, 그러니 학교에서 얘를 강Y로 불러달라고. 아이들에게도 강Y로 얘기해 달라고 매년 그렇게 찾아가 이야기했다. 엄마와 나는 이 끝이 보이는 거짓말을 나중에 도무지 이모가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러는지, 옆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모는 정말 간절히 호주제가 폐지되기를 기다렸고, Y가 중학교에 갈 때까지도 폐지되지 않자 결국에는 이모도 Y도 거의 눈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이 됐다. 서로가 알고 있지만, 서로 굳이 묻지 않는 지경. Y는 자기 친구들이 다 하는 버디버디도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가 없었고, 싸이월드 미니홈피도 자기 이름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본인의 이름으로 된 미니홈피를 갖게 되면 분명 강Y로 알고 있는 친구들이 이유를 물을 테니까. 그럼 자신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난감했을테니까. 그냥 이모의 이름으로 미니홈피를 만들고, 이모의 이름으로 버디버디를 했다.

이런 상황 하나 하나에 맞닥뜨릴 때마다, 윤Y로 알고 있는 중학교 친구들과 강Y로 알고 있는 초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난감함을 겪을 때마다, Y의 마음이 어땠을지. 가끔 Y가 지나치게 눈치를 본다던가, 지나치게 어른들을 떠본다던가, 혹은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행동할 때, 나는 그간 Y가 받아왔을 상처가 Y에게 미쳤을 영향들이 보이는 것만 같아 그만 속상해지고 만다. 그렇지만 나도 어른들의 뜻을 따라, Y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무력한 언니. 언젠가 Y와 TV를 보려 리모콘을 돌리다가 나온, '엄마 나는 왜 아빠와 성이 달라?' 라는 특집드라마에 당황해 슬그머니 채널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제 아빠의 존재를 궁금해할 게 분명할 Y에게, 그래도 너가 이렇게 유독 예쁘고, 하얗고, 다리가 긴 건 너희 친아빠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라고 말해줄 수도 없었던. (그랬다간 이모한테 맞을지도 -_0)

이제 호주제가 폐지되고, 드디어 Y는 공식적으로 강,이라는 성을 갖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부터 Y가 느껴왔을 속상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못했을 거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인성에 깊숙히 미쳤을지도 모르는 영향들이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성이 바뀌었을 뿐이다. 어쩌면 다시 윤Y로 알고 있는 중학교 친구들에게 강Y임을 알리는 과정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모의 속을 참 많이도 썩인 Y로 인해 이모 가정은 작년 한 해 참 다사다난했었다. Y가 그렇게 된 데에, 가정의 영향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조심스레 말하자면, 아마도 있을 것이다. 부모가 이혼한 아이들은 엇나간다,라는 사회적 편견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회적 편견이 아이의 엇나감에 선행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이모가 Y의 문제 앞에 좀 더 열려 있었다면, 사회적 편견 앞에 좀 더 당당했다면, Y가 받았을 상처를 좀 더 완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팔이 안으로 굽는 이모 조카니까, 아예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우리 이모도 이런 맘고생 몸고생 해가며 그렇게 매년 애 학교 쫓아다니며 힘들어하지 않았을텐데, 우리 Y도 좀 더 예쁘고 당당하게 자랐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든다. 성을 바꿔주는 사회가 아니라, 성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위에 살짝 옮겨둔 시사인의 칼럼이 마음에 착 감겨왔다. 역시 사람은 자신과 연관된 문제 앞에 더 마음을 쏟을 수 밖에 없나보다.

다행히 다사다난했던 이모 가족 일은 잘 마무리가 된 올 해, 명절에 이모 가족을 만나 함께 훌라를 하며 (-_- 어무이) 나는 앞으로는 이모의 가족이 그저 무탈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제 제 자리를 찾아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 Y의 마음이 부디 올곧게 자라나길, 발레도 하고 싶고, 스튜어디스도 하고 싶고, 간호사도 하고 싶다는 Y가 당분간 계속 이렇게 행복하게 꿈꾸길, 정말 간절히 바랐다. (어째 마무리가 너무 마무리스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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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1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이들의 그늘은 100%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차 저차 어찌되었던 어른들은 자신의 욕심으로 아이들의 그늘을 만들어주곤 해요. 암튼 Y의 앞에 다른 아이들보다 더 밝은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웽스북스 2008-02-12 00:21   좋아요 0 | URL
100%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향이 매우 큰 건 사실이죠- 그치만 우리 이모니까 저는 표현이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는 거죠-

Mephistopheles 2008-02-12 00:41   좋아요 0 | URL
마자요..저도 어쩌면 가까운 피붙이가 그와 같은 상황이라면 속으로만 되뇌일지도 모를 일이죠.^^ (근데 왠지 막 퍼부을 것 같은 예감도 들어요..^^)

웽스북스 2008-02-12 01:0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 역할은 저보다는 저희 엄마가 하셨겠죠 전 그럴 군번이 아니어서 ;; ㅎㅎ

푸하 2008-02-12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엄마가 와서 '오늘은 내가 안놀아줘도 되니?' 라고 물어보고 가신다. 어제 3시간 밖에 못잔 피곤한 나는 '응 오늘은 괜찮아, 다음에 내가 또 조를게', 라고 답했다. 엄마는 '열심히 졸라야 놀아줄 거야' 라며 거만한 표정으로 가신다."(웬디양님이 쓴, 긴 연휴만큼 길어진 수다에서...)
문득 이구절이 생각났어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태도가 불가능할 바에야 소심하기보단 거만한게 훨씬 좋다.라구요.
생각지 못하고 주목하지 못한 면들을 보게 해준 값진 글이에요.

웽스북스 2008-02-12 01:15   좋아요 0 | URL
흐흐 그런데 푸하님, 실은 우리 엄마도 소심해요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안놀아줘도 되니?'라는 대사가 가능하지요 ^_^

제 글이 또 다른 제 글을 연상시키고, 이런 거 재밌네요
글이라기엔 좀 부끄럽지만 말이죠 ㅎㅎ

암튼 그렇게 말씀이라도 해 주셔서 참 고마워요 푸하님 ^^

보석 2008-02-12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주제가 폐지되어 다행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웽스북스 2008-02-12 01:17   좋아요 0 | URL
네, 실은 저도 단순한 사람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저 칼럼을 읽는 순간 이모네 가족이 생각나서 그냥 끄적여봤답니다

2008-02-12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2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2-1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같아요.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었어요.

웽스북스 2008-02-12 20:34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이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었다니, 전 그냥 고맙네요 ^_^

고현정 2009-07-15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남일같지 않아요,,저 역시 같은 일로 깊은 가슴앓이를 하고 있으니까요,,그 본인한텐 아무 잘못도없이 시시때때로 겪어나가야할 보이지않는 무거운 족쇄가 될수도 있죠,나와 너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에서 때론 편리를 위해 때론 진실을 위해 때론 상황에 따라 바꾸고 바뀌어야할 순서들에 가장 중요한것 가장 위하는 그 실체가 되는 건 무엇일까요,그 조카분한테 늘 꼬리표처럼 아마 주홍글씨가 되어 맴맴따라 다니는 이름과 성과 아버지와 부모의 과거들까지 혼자 떠안고 살어야하는데,조금이라도 상처덜받고 살아갈수 있는 사회가 올까요,,
그냥 외국나가 살지 그랬어요,,,
 

   
 


또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졸린데 꾹 참고 일어나곤 하는 걸까,
아니면 늘 나만큼 졸립진 않을 걸까.

2007년 12월
황인숙

리스본행 야간열차 저자의 말 中

 
   



나도 정말 궁금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든 게 내가 좀 과한 건지
이렇게 나처럼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든 사람이 그래도 세계의 한 1/3 정도는 되는지

일어나기가 정말 정말 힘든데,
내가 참을성이 약한 건지, 아니면 정말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많이 힘들어서
나 정도 힘들면 다른 사람들은 휴가라도 내는데
내가 꾹 참고 일어나는 건지
나는 정말 궁금하고 헷갈렸거든

전자라면 엄살이고, 후자라면 무식한 건데
나는 엄살쟁이인지 무식쟁이인지.


암튼 자신이 엄살쟁이인지 무식쟁이인지도 모르는
나같은 누군가가
한 명 더 존재한다는 사실에
게다가 심지어 나처럼 이런 걸 궁금해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에 
괜히 위로받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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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1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히 웬디양님의 취침시간을 살펴 BOA요=3=3=3

웽스북스 2008-02-11 22:01   좋아요 0 | URL
크크 이말 나올 줄 알았어요- 음 근데요, 제가 늦게 자긴 하지만, 또 그만큼 늦게 일어나거든요? 7시 30분에 일어나니까, 5시간 이상은 꼭 자는편인데, 남들도 다 그만큼 자고 살잖아요 ㅜㅜ

웽스북스 2008-02-11 22:07   좋아요 0 | URL
근데근데,
그래서 메피님은 아침에 힘들어요 안힘들어요????

Mephistopheles 2008-02-11 22:30   좋아요 0 | URL
그거야 당연히 "알면 다쳐" 죠..호호호

깐따삐야 2008-02-11 22:52   좋아요 0 | URL
메피님도 힘드시죠? 힘들거야. 그나저나 맨날 알면 다친대. 다쳐도 좋으니 알게 해주세요. 이젠 아주 이판사판이야.

웽스북스 2008-02-11 23:34   좋아요 0 | URL
나는 궁금한게 많아서, 정말이지 그냥 좀 다치고 아는 게 낫다니까요 만날 말해도 안알려주시고, 메피님도 힘드시죠? 힘들거야. 22222

Mephistopheles 2008-02-11 23:46   좋아요 0 | URL
전.혀.요.

웽스북스 2008-02-11 23:48   좋아요 0 | URL
아 역시 세상은 불공평해 불공평해 ㅠㅜ
나도 조금 자고도 거뜬한 무쇠체력이 될래요
(어찌 무쇠체력은 저멀리에 있는데 무쇠체격인지 ㅜㅜ)

Mephistopheles 2008-02-12 00:21   좋아요 0 | URL
"낫" 하나만 들면 다 해결됩니다.

웽스북스 2008-02-12 20:34   좋아요 0 | URL
로케트 주먹 하면 안될까요?

L.SHIN 2008-02-11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 경험엔 말이죠.
하나. 우리가 밤형이라서 그런거에요. 아침에 저혈압이라 못 일어나죠.
반면에 새벽까지 잠은 왜 그렇게 안 오는지. 밤 9시부터 '이야, 이제 시작해볼까' 이니까.
둘. 자기 전에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요가 동작을 15분 정도 하고 일주일 지나면서부터는
신기하게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더군요. 물론, 새벽까지 서재놀이하면 말짱 꽝~
셋. 저는 오늘부터 핸드폰 전원을 꺼두고 아날로그 알람 시계만 켜 놓고 자려고 합니다.
오우~ 안 그래도 종일 컴퓨터에서 쏘아주는 자외선인지 하는 놈과 부비부비하는데.
잘 때 만이라도 자연인(?)으로 돌아가려고 말이죠.(웃음)

웽스북스 2008-02-11 23:35   좋아요 0 | URL
오호호호 에쓰님 에쓰님
나 스트레칭 책 사거나 요가 끊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거이거 텔레파시가 통했나봐요 ㅋㅋ

잘 때라도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마인드는, 매우 훌륭한데요? 흐흣 ^-^ (하지만, 아날로그 시계가 없어요 흑)

L.SHIN 2008-02-12 10:07   좋아요 0 | URL
커헉...어제 실험(?)해 본 세 번째 '아날로그 알람'의 참혹한 결과를
말씀해 드리죠. ㅡ.,ㅡ....
말한대로 핸드폰 전원을 꺼두고 알람을 맞춰놓고 잤습니다.
6시 30분, '삐익~~~!!!! 퍽퍽퍽~!!!' 하는 엄청난 굉음에 깜짝 놀라
강시처럼 벌떡 일어나 끄고 나서 잠시 정신이 나갔었죠.
그 알람 시계는 엄청난 메가 사운드를 자랑하는 기차 시계였다는 걸...
잊었던 겝니다. 그리고 다시 쓰러져 퍼질러 잤는데...늦게 일어났..=_=

혹시, 아날로그 알람 시계를 사실 생각이라면, 저렇게 심장 벌렁벌렁하는
것은 피해주세요~ ㅋㅋ

웽스북스 2008-02-12 20:35   좋아요 0 | URL
아이쿠, 이거 너무 부작용인데요?
그런데 전 굳이 굉음을 자랑하는 시계가 아니어도 꼭 다시 쓰러져요 ㅜㅜ

L.SHIN 2008-02-12 22:01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역시 우리는 '알 낳고 무관심한 닭' 알람 시계를 사야겠군요.
혹시, 아세요? 이 녀석 말이죠~ 알 5개 낳아놓고 꽥꽥꽤 울어댄데요.
그런데 알람을 끄는 버튼은 없답니다. =_= 그러니까 멈추게 하려면..
어디로 굴러가 버렸는지 모를 알 5개를 찾아서 순서대로 넣어야 꺼진다는..
잠이 깰 수 밖에 없겠죠.ㅋㅋㅋ

깐따삐야 2008-02-1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습관인 것 같아요. 나도 잠으로 보내는 밤 시간이 아까웠는데 산에 다녀온 날은 12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야겠더라구요. 그런 날은 몸이 노곤해서 저절로 잠을 불러와요. 그래도 생각할 게 있거나 긴장할 일이 있으면 잠이 달아나기도 하지만. 12시~2시 사이엔 숙면을 취해야 피부가 고와진다는데 최근에 그 시간에 잠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으니 원. -_-

웽스북스 2008-02-11 23: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12시에서 2시 사이가 가장 왕성한 시간인데 말이죠
저는 2시 전에는 잠도 잘 안와요
최근 몇달 사이에 1시 전에 잔 건 손으로 셀 수도 있어요

프레이야 2008-02-12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일 2시는 넘어야 자요. 어젠 과음ㅋㅋ을 했는지 지금 속이 쓰리고
알딸딸하네요. 와인으로다가.. 자작을.. 그래도 별로 아침이 힘들진 않네요.
저같은 경우는 다 마음에서 오는 문제같아요.^^

웽스북스 2008-02-12 20:36   좋아요 0 | URL
어떤 마음을 먹으면 될까요?
나는 힘들지 않다 나는 힘들지 않다 하면 되나요?

부디 가르쳐주세요 네?

프레이야 2008-02-13 10:27   좋아요 0 | URL
ㅋㅋ 하기싫은일 안하기..
해야할수밖에 없다면 좋아할 이유를 우짜든동 만들어내기^^

웽스북스 2008-02-13 16:37   좋아요 0 | URL
지금 저에게는 50% 정도만 가능한 마인드컨트롤이에요 ^_^
좋아할 이유조차 만들기가 힘든 일들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요

무스탕 2008-02-12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인간 하나입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새벽에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기똥차게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난단 말입니다?! ^^;;
20년을 두고 그렇게 새벽에 나가야 하는 일을 할때면 어김없이 일어나져요. 어쩔땐 먼저 일어나서 알람을 꺼버리는 만행도 저지르지요..
(여기서 말하는 새벽이 비록 남들에게는 새벽이 아닐지라도 내게는 새벽이라 이겁니다...)
혜경님 말씀대로 맘먹는 문제 같아요.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 책임감.. 그런거..

웽스북스 2008-02-12 20:37   좋아요 0 | URL
흐흐흐 저도 막 토요일날 오늘 되게 일찍 일어났잖아, 하면 그거 9시 반이잖아요 ㅎㅎㅎ 나에게는 새벽

저도 가끔 진짜 눈물나게 급박할 때는 일어나지긴 해요- 회사를 가야 한다는 내 마음이 그럼 그렇게 절박한 건 아닌가?

마노아 2008-02-1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기상시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알람 울리면 벌떡 일어나요. 일어날 땐 괜찮은데 나중에 피곤해 하죠6^^

웽스북스 2008-02-12 20:4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정말 알람도 잘 못들어요 ㅜ_ㅜ 토욜이나 이럴 때도 안끄고 자서 그냥 울리는데, 그 때는 정말 세상 모르고 잔다는 ㅋㅋ
 


1

설 연휴의 끝자락이다. 실은 놀만큼 놀았으니 양심이 있다면 내일 회사 당연히 가야지, 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회사에 가겠지만 오늘밤은 아마 늦게까지 꽤 잠들기 싫을 것 같다. (라고 말하지만 실은 어제 3시간밖에 못자서 일찍 자야 할듯 ㅜㅜ)

맨날 보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 책을 읽는 건 명절 전용이다. 지난 추석 때는 김우창 전집을 읽겠다고 옥편 껴안고 씨름하다가 졸고 졸고 결국 1권도 다 못읽었고, 이번 설 때는 저 프로이트와의 대화를 읽겠다고 하긴 했는데 전기장판이 나를 너무 안락하게 만들어준 관계로 보다 잠들고 보다 잠들고 하다가 또 결국 다 못읽었다. 하튼 연휴 땐 그냥 쉬지, 왜 본인에게 계속 숙제를 내주는 것 같은 심정으로 연휴를 맞이하는지, 그래서 다 하지도 못하고 결국 자책하고, 그거 하느라 다른 것도 못하고 하는지 원. 귀한 연휴의 나쁜 주인이다 정말.

2

설 당일 저녁에는 목사님 댁에 다녀왔다. 이모네 가족이 집에 온다고 해서 침대에 누워 기다리다가 사모님의 문자를 받았는데, 글쎄, 12월에 입대한 M이 온다는 것이다. 아직 100일도 안된 신참이 어찌 나올까 싶어 처음에는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었는데, 깜짝 놀래켜 주자고, 얼른 오라고 하시는 바람에 급하게 선물세트 하나 챙겨 목사님 댁으로 택시를 타고 날아갔으나, 얼마 전 이사하신 목사님 댁을 못찾고 엄하게 헤매다가 결국 M과 거의 동시에, 아니 살짝 늦게 도착해 버린 사건. 놀래주기는 커녕, M의 친가 외가 할머니와 이모, 작은아빠 등 모든 친척들이 모여 있고, 모두의 시선은 M에게 쏠려 있는 엄한 상황에 나는 살짝 꿔다논 보릿자루 모드. 이 무슨 분위기인가 싶어 민망한 가운데 M의 동생 B의 방으로 얼른 들어가 침대에 엎어지며, 어머 얘야 나는 그냥 M얼굴 한번 보자고 온 건데, 이 무슨 분위기니, 민망하구나, 라며 넋두리를. ㅋㅋ B도 군복을 입고 온 제 오빠가 영 어색한지 말을 못붙인다. M이 군대에 갈 때 친동생인 B보다 더 많이 울었던 사촌동생 E도 역시나 어색해 죽는다. 우리 여기서 어색 시스터즈 놀이나 하고 있을까? ㅎㅎ

세배를 마친 M과 저녁을 먹으며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는데, 오마낫, 애가 12KG이나 빠졌다. 성악을 하는 애라 배가 많이 나와 있었는데, 완전 평면 배가 되었구나. 얼굴은 윤곽이 생겼다. 모든 친척들이 M과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나는 굳이 M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어차피 M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까. M은 참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이다. 나에게도 M은 참 귀하고 특별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M을 특별하게 여기는 그 마음, 그 기대감에 부응하는 게 M은 조금 버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들일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은 한정돼 있으니 말이다. 암튼 그 귀하고 특별하게 여겨지는,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M의 성정은 군대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듯 해 좋아보였다. 좋은 사람 옆에 결국은 좋은 사람이 모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여러 사람을 통해 믿게 되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3

꽃보다 아름다워 실천편,이라며 어제는 효도놀이를 했다. 어제의 효도놀이의 메인 컨셉은 "엄마가 나랑 놀아줬으면 좋겠어" 였다. 맨날 엄마의 놀아줘, 라는 말에 생색내며 놀아주거나 혹은 안놀아주어 엄마를 삐지게 만들거나 했었는데, 어제는 내가 막 놀아달라고 졸랐다. 햄버거를 먹고 싶어 죽겠다며, 엄마랑 같이 나가서 먹고 싶다고, 내가 엄마랑 잘 놀아주니까, 내가 엄마가 필요할 때는 엄마가 나랑 좀 놀아줬으면 좋겠다고 막 조르고(아, 오해 없길, 엄마는 새우버거를 엄청 좋아하신다), 저녁에는 내가 훌라가 너무 하고 싶다고 엄마가 나랑 몇판만 좀 해달라고 조르고. 그러면서 중간 중간 엄마가 하고 싶다는 것도 이것저것 같이 해주고.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V 또 니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엄마가 해줘야지, 막 이러시면서, 흐흐. 12시에 훌라를 하다가 G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언니가 설에 뭐했냐기에 나는 훌라를 100판 정도 했다고 말했다. 언니는 내가 늘 오백개, 백만번, 이런 말을 하듯 과장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난 정말 100판 정도를 했다 -_-V 그냥 고스톱을 배울까? -_-

밤에는 효도놀이 완성본이라고, 훌라를 마치자마자 또 엄마 아빠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드리는데, 새벽 2시가 되서야 효도놀이가 끝났다. 아, 정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뭐든 적당히 하면 좋은데, 하튼 꼭 벼락치기로 하고 나가 떨어진다는 -_-

4

엄마아빠의 다리를 주물러드리느라 안방에 상주하면서, 집에 단 하나 TV를 처음 봤는데, 와우, 이거 완전 좋구나. 미처 몰랐다. 보고 싶던 드라마들을 이렇게 다 볼 수 있다니. 이론적으로 알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만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어제는 재작년에 무지 재밌게 봤던 스윙걸스를 보고 오늘은 메피님이 추천해 주신 녹차의 맛을 보고 나서 올드미스다이어리를 몇편 봤다. 안그래도 다시 보고 싶은 게 좀 있었는데 흐흐. 우리 지피디랑 미자씨 정민씨 나오는 부분만 돌려가면서 봤다. 할머님들, 우현삼촌 죄송해요. (제가 할머님들이랑 우현삼촌도 진짜 좋아하긴 했는데, 없는 시간에 콤팩트하게 보느라 어쩔 수 없었어요) 한달만 시범으로 설치한 거라 며칠 있다가 가져간다는데 진작 알았으면 아마 시간 많이 죽였을듯 -_- ㅋㅋ 실은 회사 때문에 몇 달 후에 메가 TV를 달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계속 보고 싶어하는 아빠를 만류해 일단 철수(?)하라고 시켰으나, 그 유혹 꽤나 달콤하구나. 정말 TV의 패러다임이 앞으로 많이 변하겠구나 싶다.

5

가족의 구박이 끝이라고 생각했건만, 그 이후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손님이 있었으니, 명절 기간동안 집안에서 구박을 받았던 교회 집사님들의 조카, 혹은 도련님(?) 구제의 압박이라고 해야 하나? 이것도 하필, 교회에 미혼 성인 여성이 딱 4명인데 (그나마 한명은 작년에 시집가서 4명 남고) 2명은 스무살 스물 한살이고, 1명은 내 페이퍼에 자주 등장하는 C양인데, 교회 동기인 T와 열심히 연애중이니 내가 유일한 타겟이 되버린 사건이다. -_- 암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그분들도 집에서 구박이 장난이 아니었겠구나. 이제 타인의 고통까지 읽히는 지경이라니 하하. 암튼 명절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로 피곤한 날이기도 한가보다. 미혼은 미혼대로, 기혼은 기혼대로.

6

방금 엄마가 와서 '오늘은 내가 안놀아줘도 되니?' 라고 물어보고 가신다. 어제 3시간 밖에 못잔 피곤한 나는 '응 오늘은 괜찮아, 다음에 내가 또 조를게', 라고 답했다. 엄마는 '열심히 졸라야 놀아줄 거야' 라며 거만한 표정으로 가신다. 아, 역시 나의 효도는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하다. 이래서 사랑은 내리사랑만한 것이 없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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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1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1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08-02-11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그러세요. 저같은 부료뇨 쩍팔리게시리!
웬디님의 따뜻함이 더 널리널리 퍼지고 더 많은 따뜻함 받으시길 기대하면서 한해 맞이합니다.

웽스북스 2008-02-11 21:33   좋아요 0 | URL
왜그러세요 산사춘님,
저는 산사춘님이 본인의 이름만큼이나 달콤하고 마음에 착! 감기는 효녀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걸요

보석 2008-02-1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부료뇨 추가요!
웬디님 어머님은 좋으시겠어요.^^

웽스북스 2008-02-11 21:34   좋아요 0 | URL
보석님, 효도를 놀이로 일삼는다는 건, 일상이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에요 ;
오늘은 일상 모드, 밥먹고 갈래? 아니? 빵이라도 먹을래? 아니?
이걸루 돌아왔어요 ㅠㅜ

전호인 2008-02-1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한해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이 쭈우욱 함께 하길 바랍니다.

웽스북스 2008-02-11 21: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전호인님!
쭈우욱~

깐따삐야 2008-02-1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오늘 월요병이 아니라 연휴병 증상은 없었는가 몰겠네요.
2 헉... 12킬로! 나도 군대를 다녀오는 편이 더 빠를까. -_-
3 웬디양님 정말 귀엽고 살가운 딸내미에요. 나도 좀 배워야 할텐데.
4 요즘 나는 '세종대왕'이 재밌더라구요. 하지만 김상경은 세종대왕 이미지가 절대 아니라는. 주인공인 김상경 빼곤 다 재밌으니 원.
5 부지런히 일 하고도 구박 받는 나는 벌써 시집을 온 기분이 들기도 해요.
6 웬디양님 어머니는 웬소녀야 웬소녀. 너무 귀여우세요. 아웅~ ㅋㅋ

웽스북스 2008-02-11 21:37   좋아요 0 | URL
1. 아침에 출근하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2. 제대할 때 되면 도로 찌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하더라구요
3. 위에서도 말했지만, 저건 일상이 아니고요...쿨럭...
4. 아 정말요? 난 김상경 좋은데, 만원짜리 아저씨랑은 좀 안닮긴 했네요
5. 시집간 새색시들한테 그런말 하면 혼날지도 몰라요~
6. ㅋㅋㅋ 웬소녀, 너무 웃겨요, 진짜 나이 50에 웬 소녀?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