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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 가정 자녀의 성씨 변경은 과거에 비하면 대단한 진보이긴 하지만 바뀐 성이 아이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진짜 바꿔야 할 것은 한 가정 안에 다른 성씨의 공존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의 편견이다 (중략)
성을 바꾸어야만 아이가 보호될 만큼 이혼에 대한 편견이 깊다는 얘기다. 부모 이혼으로 인한 아이의 고통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배가된다. 한 가정 안에 두 가지 성이 공존하는 문화라면 굳이 아이 성을 바꿀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까 궁여지책으로 아이 성씨 개명을 하는 것이다.
시사인 22호 성씨개명 권하는 사회 (남재일)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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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유독 예뻐하던 이모의 결혼식날 나는 이모의 결혼식장에 갈 수 없었다. 결혼식장에 갈 수 없는 이모의 딸 Y가 우리 집에 와 있었고, 나는 그날 Y를 보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얼굴을 기억 못하는 나이지만, 예전 이모의 남편 얼굴은 가끔 기억이 난다. 호리호리한 큰 키에, 허여멀건허니 잘생긴 얼굴, 그리고 갈색빛 나던 곱슬머리. 당시 나는 어렸기에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둘은 식을 올리지 않고 살림을 차렸고 Y를 낳았고, 몇 년 정도를 같이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모의 남편은 이모를 떠났다. 어린 내게 그 이유는 누구도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가 기억하기에도, 어쩐지 그 사람은 이모에게 정착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았었다.
몇년 후, 이모는 그 사람과는 정 반대의, 지금 이모부를 만났다. 살집 있는 몸에 키도 크지 않고, 얼굴은 동글동글하고 까맣고, 인상은 살짝 사나운! Y는 언젠가 언니, 우리 아빠는 싸이를 좀 닮은 것 같아,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만 큭 하고 웃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이모부는 결혼한 적이 없었고, 이모는 결혼 경험이 있기에 사실 그것만 해도 이모는 시댁에서 꽤 많이 흉을 잡혔을 게다. 그래서 이모는 보수적인 시어머니께 아이가 있다는 말은 하지 못했었나보다. 그래서 Y는 제 엄마의 결혼식장에 갈 수 없었다.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Y가 어려도, 눈치가 빤한 아이인데 저를 보며 얘가 참 불쌍하다고 안타까워하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어리지는 않았었다.
이모가 좀 더 현명했더라면, 아이가 있다고 말을 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싶었다. 시댁에는 아이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으며, 사람들에게는 재혼 사실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Y에게는 원래 Y의 성인 윤,이 아닌 새 이모부의 성인 강,을 붙여줬다. Y가 이모부를 친아빠로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뒤에는 아마 타자의 시선,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받는 편견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게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려보지 못한 나는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나는 그 시선들이 이모에게 주었을 상처보다는 Y가 살면서 받아온 상처가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이모는 Y가 어려서 모를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애들이 제일 먼저 알아듣는 말이 자기의 이름이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몰랐을 리 없다. 아마 Y는 꽤 어린 나이부터 철이 들어 있었을 거다. 굳이 따져 묻지 않았던 걸 보면. 그렇지만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이름이 바뀌는 과정에서 오는 상처와 영향들은 분명 있었을게다. Y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때부터 이모는 6년간 매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갔다. 사정을 설명하고, 그러니 학교에서 얘를 강Y로 불러달라고. 아이들에게도 강Y로 얘기해 달라고 매년 그렇게 찾아가 이야기했다. 엄마와 나는 이 끝이 보이는 거짓말을 나중에 도무지 이모가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러는지, 옆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모는 정말 간절히 호주제가 폐지되기를 기다렸고, Y가 중학교에 갈 때까지도 폐지되지 않자 결국에는 이모도 Y도 거의 눈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이 됐다. 서로가 알고 있지만, 서로 굳이 묻지 않는 지경. Y는 자기 친구들이 다 하는 버디버디도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가 없었고, 싸이월드 미니홈피도 자기 이름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본인의 이름으로 된 미니홈피를 갖게 되면 분명 강Y로 알고 있는 친구들이 이유를 물을 테니까. 그럼 자신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난감했을테니까. 그냥 이모의 이름으로 미니홈피를 만들고, 이모의 이름으로 버디버디를 했다.
이런 상황 하나 하나에 맞닥뜨릴 때마다, 윤Y로 알고 있는 중학교 친구들과 강Y로 알고 있는 초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난감함을 겪을 때마다, Y의 마음이 어땠을지. 가끔 Y가 지나치게 눈치를 본다던가, 지나치게 어른들을 떠본다던가, 혹은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행동할 때, 나는 그간 Y가 받아왔을 상처가 Y에게 미쳤을 영향들이 보이는 것만 같아 그만 속상해지고 만다. 그렇지만 나도 어른들의 뜻을 따라, Y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무력한 언니. 언젠가 Y와 TV를 보려 리모콘을 돌리다가 나온, '엄마 나는 왜 아빠와 성이 달라?' 라는 특집드라마에 당황해 슬그머니 채널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제 아빠의 존재를 궁금해할 게 분명할 Y에게, 그래도 너가 이렇게 유독 예쁘고, 하얗고, 다리가 긴 건 너희 친아빠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라고 말해줄 수도 없었던. (그랬다간 이모한테 맞을지도 -_0)
이제 호주제가 폐지되고, 드디어 Y는 공식적으로 강,이라는 성을 갖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부터 Y가 느껴왔을 속상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못했을 거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인성에 깊숙히 미쳤을지도 모르는 영향들이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성이 바뀌었을 뿐이다. 어쩌면 다시 윤Y로 알고 있는 중학교 친구들에게 강Y임을 알리는 과정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모의 속을 참 많이도 썩인 Y로 인해 이모 가정은 작년 한 해 참 다사다난했었다. Y가 그렇게 된 데에, 가정의 영향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조심스레 말하자면, 아마도 있을 것이다. 부모가 이혼한 아이들은 엇나간다,라는 사회적 편견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회적 편견이 아이의 엇나감에 선행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이모가 Y의 문제 앞에 좀 더 열려 있었다면, 사회적 편견 앞에 좀 더 당당했다면, Y가 받았을 상처를 좀 더 완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팔이 안으로 굽는 이모 조카니까, 아예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우리 이모도 이런 맘고생 몸고생 해가며 그렇게 매년 애 학교 쫓아다니며 힘들어하지 않았을텐데, 우리 Y도 좀 더 예쁘고 당당하게 자랐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든다. 성을 바꿔주는 사회가 아니라, 성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위에 살짝 옮겨둔 시사인의 칼럼이 마음에 착 감겨왔다. 역시 사람은 자신과 연관된 문제 앞에 더 마음을 쏟을 수 밖에 없나보다.
다행히 다사다난했던 이모 가족 일은 잘 마무리가 된 올 해, 명절에 이모 가족을 만나 함께 훌라를 하며 (-_- 어무이) 나는 앞으로는 이모의 가족이 그저 무탈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제 제 자리를 찾아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 Y의 마음이 부디 올곧게 자라나길, 발레도 하고 싶고, 스튜어디스도 하고 싶고, 간호사도 하고 싶다는 Y가 당분간 계속 이렇게 행복하게 꿈꾸길, 정말 간절히 바랐다. (어째 마무리가 너무 마무리스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