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식의 언어 - 국어학자가 차려낸 밥상 인문학 음식의 언어
한성우 지음 / 어크로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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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늘 가져왔던 생각중 하나가 '말의 주인은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것' 이라는 명제이다. 그러나 말에 대한 연구의 결과는 정작 말의 주인은 이해하기 어렵고, 말에 대한 교육은 말의 젊은 주인들조차도 따분해 한다. 이러한 연구와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의 주인이 소외되는 상황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말의 참된 주인과 함께 호흡하고, 일상에서 늘 접하는 말에서 시작해 그 뜻을 되새겨 그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심란한 일들이 많아 추리소설도 SF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니

한성우의 밥과 말에 대한 글이 조단조단 서두름없이 차분하여 마음의 정돈에 도움을 받았다.

먹고 사는 것을 빼고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기본적인 삶에 대한 성찰이 쉬운말로 편안하였다.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하는 문법이라니. 새삼 웃음이 나온다.

그러게. 문법에 맞지 않다해도 우리는 늘 짜장면이라 불렀고, 왜냐하면 짜장면이니까.

자장면으로 애써 발음하는 뉴스 앵커들이 웃기다 생각했었지.

현실과 떼어놓고 학문의 영역으로 가두려 한다고 가둬지는 말과 글이 아니다.

 

쉽게 당연하게 사용하는 밥과 죽과 국과 면에 대하여, 그리고 밥과 죽과 국과 면을 먹는 사람들에 대하여

최근 유행하는 먹방 프로그램보다 순하지만 다채로운 우리 음식 이야기

소화잘되는 죽처럼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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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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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경현의 추천사 말미에

이제 시오노 나나미에서 콜린 매컬로의 수준으로 한단계 더 도약할 때가 아닌가!

의미 심장하다.

제국주의 로마를 찬양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이야기는 그 주관적 해석의 수준이 역사라하기 어려웠다.

잘 만들어진 소설의 로마판 다이제스트 정도

다만 신자유주의시대 로마를 찬양하는 것은 CEO들이 읽어야 하는 기본소양의 책인 것처럼 소개되고

천민자본주의 대한민국의 CEO들이 읽는다기 보다는 CEO가 되고 싶어도 절대 될수 없는 자들의 자기위안 처럼 보였다.

인문학으로 폼내는 한길사가 잔뜩 출판해 돈벌길래 더욱 빈정상했었어.

시류에 영합하는 것과 인문학은 어울리지 않거든

제국주의와 인문학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시오노 나나미에서 콜린 매컬로의 수준으로 도약은 콜린의 몫이 아니라, 대한민국 독자들의 몫이라서

그럼에도 굳이 시오노 나나미의 수준을 언급한 김경현이 재밌다.

그러니 콜린 매컬로의 로마는 적어도 고증과 사실에 입각한 소설이길 기대하게 된다.

 

 

2.

재밌다.

오래간만에 몰입해서 휘리릭 책장을 넘긴 역사소설이다.

 

영웅을 좋아하는 것은 유럽 사람들에게 오래된 전통이다.

최초의 서사시 호메로스도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고

플루타르크를 비롯해, 유독 로마는 영웅으로 기억되는 시대이기도 하지.

카이사르, 마리우스, 술라... 캐릭터가 선명하다.  

기원전 1세기 쯤의 로마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따라가기에 어렵지 않은 평이한 문장의 서술도 좋고

유연하면서도 지혜로운 카이사르와 성실하고 똑똑한 마리우스가 양지 바른 동네 사람이라면

술라는 진흙탕 고인 음지의 사람

그래서 궁금한것은 예정된 술라의 변신과 배신이다.

전체 로마 역사의 흐름과 어떻게 잘 버무려 전개될지는 좀 더 두고봐야 알겠네.

 

콜린의 로마가 취향에 맞는 독자라면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서브로사 시리즈도 추천한다.

콜린의 로마가 공식적인 기록에 의한 정사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덧붙였다면

스티븐의 로마서브로사 시리즈는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로마의 뒷골목을 생생하게 그린다.

둘다 기원전 1세기의 로마다.

콜린의 카이사르, 술라, 크라수스와 스티븐의 카이사르, 술라, 크라수스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덤이다.

 

기원전 1세기 로마. 귀족에 의한 공화정이 무너지고 평민들을 앞세운 제정으로의 격변기는

그 자체로 소설이 될 만큼 극적인 모양이다.

엉뚱하게 최근 읽은 중국인 이야기의 영웅들이 떠오르더라.

그러게. 인간의 역사 만큼 재밌는 이야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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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하우스의 비극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8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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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금가지의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와 포와로 셀렉션은 내용보다 먼저 멋진 표지로 눈을 유혹한다. 

필적할 만한 시리즈는 열린책들에서 내 놓은 조르주 심농 시리즈 정도일 것이다. 

사실 추리소설은 2류도 하니고 3류로 취급하면서 책의 모양새와 편집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똑같은 황금가지라도 크리스티 전집의 표지는 정말 최악이라고 할 만하다. 

어떻게 그렇게 일관되게 어둡고 칙칙하게 만드니. 

물론 아주 오래동안 표지가 문제가 아니었지. 

번역의 오류로 악명을 떨치면서도 동서미스터리 북스는 추리소설 매니아들에게 늘 환영받았고 

편집의 답답함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해문의 미스터리는 단비 같았어. 

두 시리즈 모두 지금도 좋아.


이제 이렇게 어엿하고 예쁜 크리스티 시리즈를 보면서,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 

조카에게 행복의 맛이라고 큰소리치며 선물해 버렸지. 

예쁜 표지를 보며, 그동안 억울하게 천대받다가 이제야 마땅한 대접을 받는 친구를 보듯 새삼 기분이 좋아 서론이 길었다.



2. 

언제봐도 좋은 크리스티

세상의 모든 추리소설은 크리스티로 부터 나왔다고 생각하는대, 코지미스터리는 특히 그렇다.


푸와로가 늙었다. 

은퇴를 선언하고 사건 의뢰를 받지 않지만, 늘 그렇듯이 연로한 푸와로에게도 사건은 찾아온다. 

푸와로와 헤이스팅스의 핑퐁같은 대화가 늘어 재밌네. 이 양반들이 나이들어 만담을 하는 구먼. 


"제발, 제발, 헤이스팅스. 가르마 좀 옆으로 타지 말고 가운데로 타라구! 좌우대칭이 돼서 얼마나 보기 좋겠나. 그리고 구렛나룻을 기르려거든 제대로 좀 길러. 내 것처럼 아름답게."

소름끼치는 상상을 억누른 채 나는 포아로가 내민 쪽지를 홱 낚아채 방을 나섰다. 


빵 터졌다. 포와로가 헤이스팅스에게 헤어스타일과 수염에 대한 잔소리를 하다니. 

엄청 튀면서 촌스러운 패션 감각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포와로가 젊잖은 신사 헤이스팅스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푸아로가 나이들어 여성호르몬이 늘어난 모양이야. 재밌어. 


크리스티 스러운 작품이고 크리스티 스럽다고 할 만한 반전의 마무리 

사실 현대작가가 이런 마무리를 했다면 반칙이라고 하겠지만, 크리스티니까. 

오래되어 익숙한 친구와 주말에 수다를 떠는 것은 늘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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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감옥
찰스 스트로스 지음, 김창규 옮김 / 아작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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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는 영국 출신 SF작가다. 

문장도 좋고, 스토리 텔링도 좋고, 철학도 좋다. 

27세기의 상상력도 좋고, 21세기 결혼한 여성이 되어 갇힌 유리감옥을 표현하는 부분도 좋다. 

27세기의 미래에 대한 사상력은 사실 SF소설의 역사적 기반으로 일정 유통되는 공식이랄까. 

경향성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선배들의 상상력에 하나씩 보태며 납득가능한 세밀화를 그릴 수 있다. 

오히려 21세기 결혼한 여성이라는 유리 감옥이 27세기의 상식적인 인류가 보기에 얼마나 황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인지 

21세기 결혼한 여성이라는 지위 그 자체가 유리감옥에 갇힌 죄인과 같다는 것을, 참으로 구석구석 시시콜콜 잘 그린다. 

그리하여 효과적으로 답답하다. 

아, 그녀는 이 감옥을 어떻게 버틸까. 

그녀는 이 감옥에서 탈출 할 수 있을까. 

21세에서 결혼한 여성으로 살고 있는 나는 27세기에서 온 그녀의 답답함을 절감한다.

아, 나는 이 감옥을 어떻게 버틸까. 

나는 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아니. 난 지금 여기서 빠져나간다는 얘기를 하는 거야."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덫에 갇힌 동물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조재론적인 황량함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이럴때면 우리가 현실 속 균열을 임시로 가리기 위해 몸 둘레에 두르고 있던 거짓말의 고치가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리고, 아주 추악한 무언가를 직시하게 된다. 제니스에게도 그런 벌레가 있었다. 


SF의 세계는 보통 기계가 극도로 발달한 세계이고 기계와 인간의 불화를 다루며 인간의 존재를 탐구한다. 

보통 문장은 의도적으로 건조하거나 차가운 경우가 많은대 

찰스의 문장은 촉촉하다. 이 점도 좋다. 

가끔 매우 시적인 SF도 있고,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는 최고 였다. 

필립과 다르게 찰스도 좋다. 

뭐랄까. 삶을 관통하는 직관이 느껴지는 문장들, 한 문장이 길지 않고 짧게 끊어서 한문장에 하나씩 정확하게 표현한다. 

읽기 수월하고, 그러나 짧은 문장들을 숙고해서 신중하게 쓴 느낌 

구성도 좋고, 퍼즐을 맞추듯이 하나씩 전체 그림을 완성해 가는 

다만 너무 길다. 

굳이 탱크였던 시절과 과거의 이야기들을 그렇게 구구절절이 

그냥 현재를 설명하는 개연성을 맞추는 정도만 하지 

과거의 설명이 길어질 때마다 27세기 시스템과 기술을 설명하느라, 반복해서 난해해지고 

전체 스토리와 떠서 늘어진다. 뒤로 갈수록 가독성이 떨어지고 지루하다.

그래도 더 번역된 것이 있나 찾아서 찰스를 읽어 보려고. 

21세기 결혼한 여성의 답답함을 절묘하게 서술해 준것 만으로도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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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 미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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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유명한 잭 리처 시리즈 

집도 휴대폰도, 가방도 없이 미국 전역을 떠도는 잭, 독특한 지위의 사람이다.  

탐정도 경찰도 FBI 특수요원도 아니고 물론 법의관도 아니고 첨단시대의 보헤미안이라니.

집도 휴대폰도 가방도 없이 여행을 하지만, 아마도 돈은 넉넉한 모양이야. 홈리스는 아니거든. 

추적자를 몇번 시도했다가 지루해서 실패했는대 

이번에는 재밌었다. 


마더레스트. 이 마을에서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2. 

잭 리처 캐릭터의 가장 특이한 점은 그가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딱 죽기직전에 적들을 교란하여 상황을 반전시킨다. 

총을 쏘면서 세발의 총으로 세명을 쏴 죽이면서 그 사이에 4페이지의 생각을 한다. ^^;

총을 집어드는 각도, 킬러들의 위치, 탄환이 속도, 상대의 움직임. 

총을 세번 쏘는 순간은 찰라의 순간이다. 탕탕탕. 

이 순간을 위해 4페이지의 리처의 생각을 읽으라는 거다. 

독자들에게 이런 요구는 사실 무리하다. 

실제 저런 순간에는 생각을 안하지는 않겠지만, 생각이라기 보다는 숙련된 감각으로 움직여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리처는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독자들을 피곤하게 한다. 심지어 탕탕탕의 순간에도. 

이게 리처의 매력이다. 


체격좋고, 몸도 좋고, 생각을 엄청 많이 하는 떠돌이 잭 

댓가를 바라는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대로 어느 곳에도 묶이지 않고 다니다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올인하여 물러서지 않고 해결한다. 


말보다 생각이 많은 하드보일드라니. 

지루하기도 한 그의 생각을 따라 읽으며 거 참, 독특하네. 반복해서 중얼거리다가 

마더스 레스트, 마을 이름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세상에 이럴수가. 정말 딱 맞는 표현이지 뭔가. 

지루한 리처의 생각을 더듬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처와 장의 관계도 적절해서 마음에 든다. 

질척질척함도 가증스러운 밀당도없다.

쿨하고 뜨겁게 섹스하고, 서로 염려하고. 물론 리처는 천상 마초지만 장의 조언을 못이기는척 따르기도한다.  

좋네. 깔끔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결말. 궁금했던 앞부분의 호기심을 모두 보상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리 차일드의 문장은 어쩌면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건조하고 차가운가. 

사랑도 싸움도 열정도 모두 차갑고 허무하다. 

그렇게 다시 길을 떠난다. 

그래서 또 찾아 읽게 되나봐. 현대인들의 외롭고 고독한 정서와 잘 맞나봐. 



3. 

마이클은 무쾌감증이다. 

스스로 느끼는 행복수치가 최저 0, 최고 0 인 상태. 이런 병이 정말 있을까?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늘 우울하다니. 기쁜일이 있어도 우울하다니. 


장의 폰이 추적된다는걸 알면서 왜 켜는 걸까. 

잭은 주도면밀하고 위험을 경계하는 동물적 감각이 있으며 매우 논리적으로 최악을 상정해서 계획을 세우는 캐릭터인대

킬러들에게 추적되는 폰을 켜다니. 이런 대목은 긴장을 떨어뜨린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최근 유행하는 크라임스릴러에 비하면 촘촘한 전개가 느리다. 

떠돌아다니는 상황 설정의 독특함 때문인지, 스토리의 전개는 매우 시시콜콜 리얼하게 구성한다. 

스토리텔링이 단단해. 호기심을 유발하는 구성도 좋고. 

잭은 하드보일드 탐정의 후예다. 필립 말로나 루 아처의 분위기. 

말이 많지는 않지만 과묵하지는 않다. 해야 할 말은 직설적으로 쿨하게 해서 시원한 스타일

재미붙이고 잭 리처 시리즈를 읽어볼 생각이다. 

근면성실한 영국 소설의 전통을 따르는 미국식 하드보일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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