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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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라라, 블랑카, 알바. 트루에바 가문의 여성들. 겁나 부자집 여자들 얘기다. 

영험한 능력을 지닌 클라라는 미래를 예언하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 하기도 하고

그러나 돈많은 부르주아 트루에바 가문의 권력과 고상함은 모두 가난한 사람의 등가죽을 벗기는 착취로 부터 나온다.

젊어 한때 가난했던 트루에바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해서 그의 착취가 정당화 되는 것도 아니고. 


이사벨의 영혼의 집이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살아온 여성3대에 대한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이유다. 

클라라와 블랑카와 알바는 그래서 현실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공중을 부유하는 유령들 처럼 보인다. 


먹고사는것을 위한 호구지책이 뭔지 모르는 채 자고나면 당연히 먹을것이 넘치는 애들의 삶과 

호구지책을 마련하기위해 쫓기듯이 노동해야 하는 사람의 삶은 서로 이해되기 어렵다. 

역사가 부잣집 애들의 삶으로 대표된다면, 

2000년대의 대한민국은 삼성과 현대를 비롯한 재벌애들의 삶으로 대표된다는 말이잖아.

너무 돈이 많아서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갑질하며 물의를 일으키는 애들이 시대를 대표한다면 

빈정상한다. 그냥 돈만 많이 갖고 살아라. 뭘 시대를 대표 씩이나.  


그냥 재밌는 소설이라고 하면 동의한다. 재밌다. 

그녀의 소설이 트루에바 가문의 여성 3대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사를 보여준다고 하면 과하다. 

상위 1%의 엄청 부자집 여자들 3대일 뿐. 

트루에바가 강간하는 그많은 소작인의 딸들과 

심지어 임금도 받지 못하며 입에 풀칠하기 위해 트루에바 집안을 위해 일해야 했던 그많은 사람들이 

클라라와 블랑카, 알바로 현대사가 대표된다는것에 동의하겠는가 말이다.  

라틴아메리카의 현대를 살아간 수많은 가난한 여성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그녀들의 지위를 소설에서조차 뺐는것은 염치없다. 



2.

그런 면에서 가장 이해가 쉬운 전형적인 인물은 에스테반 트루에바다. 

성실하고 잔인하여 포악하고 외로운 부르주아 

자수성가해서 돈많은 천박한 독재자 

적어도 에스테판 트루에바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는 광산에서 일해 금맥을 찾아 부자가 되어 황무지 농장을 개간하고 일꾼들을 착취하여 

한번도 노동해보지 않은 가족들이 가치를 모르는 돈을 펑펑 써도 점점 더 부자가 된다. 

농장 소작인의 어린딸들을 납치하여 강간하고 바로 잊어버리며 욕망을 충족하고 

마침내는 정계에 진출하여 반복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투표함이 개봉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투표함에 손 댈 수 없게 되는날, 우리는 완전히 끝장나게 되어 있소!"

이문장을 읽고 빵 터졌다.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하는것이 우리나라만 그런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해도 트루에바의 솔직함을 박근혜는 흉내도 못낼걸. 

재밌다. 


투표함이 개봉되기 전에 못된 것들이 투표함에 손 대지 못하게 해야 할텐데 

음..... 내 생각에 이미 여러번 투표함에 손 댔던 것들은 앞으로도 자주 투표함에 손 댈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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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은 따뜻하다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쥘리 마로 지음, 정혜용 옮김 / 미메시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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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미메시스의 만화책을 좋아한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그림과 글들


이번에는 동성애 이야기다. 

어떤 파란색일까 궁금하며 책을 읽었다. 클레망틴과 엠마의 사랑이야기. 

푸른색 컬이 자연스러운 클레망틴 과 엠마를 쥘리가 사랑한다. 

선에 색에 애정에 가득하다. 


동성연애를 한다는 것은 그런 성적 취향을 스스로 인정하기 위해 삶의 기반이 다 뒤흔들리고, 오해와 편견이 너무 많아서 

소심한 연애조차 생을 건 도박이 되어버리는 

"우정과 사랑의 욕망 사이에 엄격하게 그어놓은 불변의 경계란 존재하지 않아."

발랑탱. 고민하는 클렘에게 의젓하게 충고해주는 이런 속 깊은 남자친구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네. 


프랑스는 철학이나 소설보다 만화가 좋은것 같아. 

철학이나 소설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말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여, 말장난이 많아 당췌 못알아 듣겠는대  

만화는 말이 절제되니, 말과 말 사이의 여백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자유롭고 풍요롭다.



2.  

내 모든 감각이 마비된 것 같다. 내핏줄 속에 빛이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그래 사랑은 이런 느낌이다. 이런 사랑이야기 좋아. 


엠마에게서 나는 향기가 내 심장을 움켜 쥐었다. 

나의 모든 세포가 그녀에게 뛰어들기를 원했지만, 난 꼼짝도 못하고 그저 서 있었다. 

함께 보낸 두시간 동안 세상에는 우리 단 둘이었다. 이제 나로서는 그 어떤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를 다시 보는것 말고는.

엠마의 시선에 깃든 파란색의 광막함 속에 빠져들고, 그녀의 품안에 푹 안기는 것 말고는.


클렘이 병으로 죽은 후 그녀의 유언대로, 그녀의 집에가서 클렘이 남긴 일기장을 넘기는 엠마에게 클렘의 아버지는 화를낸다. 

"우리 애를 완전히 망쳐놓은 이 변태성욕자가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지 알수가 없군!"

저녁식사는 중단되고 문을 쾅 닫고나와 클렘의 일기장이 기다리는 방으로 가서 문을 닫으며 엠마는 중얼거린다.  

정말이지 네 아버지가 슬픔을 표출하는 방식은 아주 이상하구나.


푸른 엠마. 

디테일도 스토리도 선도 색도, 모두 좋다. 

"사랑하는데 내가 왜 수치스러워야 하지?"

엠마의 아픈 질문에 나는 답하지 못하였으나

클렘, 끔찍한 건 말이야. 석유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인종청소를 해대는 거지.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게 아니야. 

아, 정말 발랑탱 이남자 대사도 끝내준다. 

부드럽고 따뜻한 발랑탱이 클렘을 위로한다. 


핏줄속에 빛이 돌아다니는, 사랑이 예쁘다. 

찬비 그치니, 가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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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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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콩 소설 처음인대, 묵직하고 재밌다. 이정도면 최고다. 

마이클 코넬리를 읽으면서 참 영리한 작가라고 생각했는대 

느낌은 많이 다르지만 찬 호께이, 이 사람도 참 영리한 작가다. 


영국의 식민지. 

영국 여왕에게 충성하는 공무원들이 있던, 중국인들의 나라.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 많은 공무원이 이민 가부렀다네. 

참 이상한 나라였던 셈이다. 영국이 중국에게 빼앗아 가지고 있던 동안 말이다. 


홍콩은 정말 괴상한 식민지였다. 점령한 사람은 점점 현지화하고 점령당한 사람은 갈수록 외래인을 닮아간다. 

영국인들이 특별히 폭력적으로 수탈하고 착취한다는 느낌은 없다. 
책을 덮을 때 쯤 처음본 홍콩이 매우 친근해진다. 

2014년 부터 1967년으로 서슬러 올라가며 홍콩을 보여준다. 

연작을 읽는 매력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즐길 뿐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맞춰지는 큰 그림을 완성해가는 재미도 있다. 

보통은 시간순으로 어릴때부터 나이들어 가는것을 보여주는대 

독특하게 관전둬가 죽는것으로 시작해서 역순으로 에피소드가 더해질수록 점점 더 젊어진다. 

먼저 본 에피소드의 의미를 뒤편 에피소드에서 깨달아 지는것 

이것 참 묘미가 있다. 


이 시대는 이렇게나 괴상했다. 나는 매일 형과 내가 어디선가 폭탄이 터져 죽을까 걱정하고, 치안은 나날이 나빠지고, 정부는 전복될 위기였으며, 사회는 마비되고, 도시는 전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그런일이 없는 것처럼 집주인 아저씨를 대신해 가게를 보고, '좌파 폭도' 이웃과 아침인사를 나눈다음 '파시스트' 경찰에게 음료를 판매한다. 라디오에서는 좌파가 사회의 안녕을 헤친다고 침튀기며 욕을 해댄다. 친중국 신문사는 영국과 홍콩의 군대, 경찰들이 애국조직을 박해한다고 통정하게 비판한다. 양측은 모두 자신들이 정의라고 주장하는데 민중들은 속수무책으로 강권과 촉력에 유린당하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 시리즈. 1967년의 홍콩을 말해주는 '나'가 누군지 알았던 순간의 놀라움이라니. 



2. 

시리즈가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더 재밌어진다. 

첫번째 이야기 좀 과하다는 생각이었고, 두번째 이야기는 설정이 억지스럽다는 느낌.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이 사건을 해결한다거나, 열두살된 아이가 아빠의 원수를 갚기위해 연애인이 되려고 한다거나 


세번째 시리즈를 보면 관전둬 이사람은 아무도 모르는걸 혼자서 번쩍번쩍 알아맞히는 천재다. 

다만 동양스타일의 명탐정은 잘난 척 하지 않는다. 가만히, 조용히 오히려 적당히 물러서며 해결한다. 

신뢰가 가는 스타일이다. 

 

네번째 '테미스의 천칭' 부터는 정말 재밌다.

퇴근하고 엄청 피곤한 상태에서 읽었는대도 몰입이 잘된다. 

스번텐 형제를 쫒는것과 경찰조직 내부의 미묘한 경쟁, 배신자, 사랑과 질투 

복잡할 수 있는 여러 줄기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스토리안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자연스럽다. 재밌어.


본격이라는 표현을 쓰는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들은 독자들과 게임을 한다는걸 강조하고 

트릭의 방식, 혹은 스토리속에 심리적으로 숨기는 방식으로 어쨌거나 공정한 게임을 추구하지만 

사실 독자 입장에서 트릭이 밝혀진순간 공정하다고 인정하면서 머리를 탁치며 눈이 밝아지는 느낌일때는 거의없다. 

'테미스의 천칭'은 시간순서대로 스번성 일당을 소통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리얼하게 보여주고 

마지막에 관전둬가 진상을 밝히는 순간, 오래간만에 감탄했다. 

짧은 분량의 에피소드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대도 억지스럽지 않고 사기당했다는 느낌없이 

관전둬의 해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아! 감탄하고 말았다. 대박.


"샤오밍. 사건 수사는 관례를 고수하면서 할 수있는 일이 아니야. 경찰조직에는 발전도 없이 세월을 보내면서 메뉴얼대로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조직의 기강을 세우려면 상급자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게 철칙이지만, 이것만은 기억해야 해. 경찰의 진정한 임무는 시민을 보호하는 일이라느 것. 제도가 무고한 시민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정의르 표방하지 못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한 근거를 내세워서 경직된 제도에 대항해야 하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소설의 시작부분에 관전둬가 하는 이 상식적인 말이 무슨뜻인지. 

아무 생각없이 읽어 넘긴 저 상식적인 말이 관전둬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의 삶이 어떻게 바뀐것인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알게된다. 대박. 


새로운 작가의 발견은 늘 설레인다. 

또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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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케이크 살인사건 한나 스웬슨 시리즈 10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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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휴가를 즐기기에 한나시리즈 만큼 적당한 책이 또 있을까. 

오래간만에 느긋하게 누워, 엎드려, TV 보는 틈틈이 한나와 모이쉐를 봤다. 


그녀는 흰머리 한 올 없이 완벽한 스타일의 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은 레이크 에덴 미용실의 주인인 버티 스트롭이 한번도 그녀의 머리를 손질해 복 적이 없다고 한것을 봐서 분명히 가발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미용실이 딱 하나밖에 없는 조그만 시골 마을, 호텔도 하나 있고 

이 마을의 주민들은 서로서로 오랜 친구이기도 하고, 적이기도 하고 

아줌마들이 모여서 시시콜콜 어떤 수다를 떠는지

게다가 사실 그 가벼운듯한 수다에 세상사는 이치가 모두 들어있다고 조앤이 유쾌하게 자랑한다. 이 점이 좋아.

보통 여자들의 수다는 쓸데없는 일이거나, 경박하거나, 무식하거나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조앤은 밝고 경쾌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긍정한다. 


로맨스에 약간의 추리가 섞인 조앤의 달달한 코지 미스터리의 힘은 바로 저 평범한 여자들을 긍정하는 것이다. 

세상 모두 쉽게 무시하는 아줌마의 힘이라고나 할까. 



2. 

거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신체적 특징인 문신을 확인하는 대목에서 빵 터졌다. 

거스의 누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거스의 몸에 특이 점이 없다고 진술해 난감해지는대 

온동네 여자들이 남몰래 한명씩 한나에게 와서 은밀한 곳에 있는 거스의 문신 이야기를 하며 

자기가 어떻게 우연히 그 은밀한 곳의 문신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게 됐는지 말한다. 

심지어 핑크공주같은 한나의 엄마 스웬슨 여사까지! 푸하하하하. 

그들이 모두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중대한 정보를 경찰인 마이크에게가 아니라 

과자가게 주인여자 한나에게 말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말이다. 푸하하하하. 


글쎄. 그렇대두. 어깨 힘 꽉 주는 남자들의 전문직이 여성들의 아마추어 수다에 공공연하게 무너진 레이크에덴, 

한나네 마을이다. 재밌어. 



3. 

보통 한여자가 두 남자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경우 

그녀는 헤프거나, 머리가 비었거나, 돈을 밝히거나 혹은 이 세가지가 모두 다거나,

주로 안좋은 쪽으로 해석되고 그래서 어둡고 벌받아 마땅한 여성인듯이 표현되는대 

한나의 장점은 그녀가 매우 밝고 씩씩하고 생활력 강하고 착한 교과서적인 캔디 이미지라는 거다. 


오히려 그녀의 예쁜 여동생 안드레아가 이라이자 형인대 그녀도 한나와 사이가 좋고 

한걸음 더 나가 가장 공주파인 한나의 엄마는 사실 할머니다. 

보통 전통적인 문학의 관습을 깨는 파격이다. 


못생겼든 예쁘든 외모와 상관없이 여성들이 모두 사이가 좋은 동지적 관계라는 것이 이시리즈의 남다른 점이고 

성실하고 빵굽는것에 유능한 소박한 한나가 잘난 남자 노먼과 마이크 사이에서 밀땅을 끝없이 하고 

심지어 세번째 남자를 향해 달려가면서 마지막 장면이 끝난다. 

이래서 통쾌한거야. 


보통 두남자에게 추파를 던지면 팜므파탈의 마녀이거나 남자 인생을 망치는 섹쉬한 백치여야 하는데 

평범한 외모의 고지식하고 씩씩한 여자가 두 남자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줄다리기 하니 재밌다. 

주요인물 중에 마초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것도 좋고.


쿨하고 깔끔한 로맨스와 미스터리의 결합이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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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희망 2015-09-04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한나에게 세번째 남자가 생겨났나요? 한때 열심히 모아가며 읽었는데... 사실 읽다보니 추리보다 빵이 더 땡기더라는.... 계속 나오고 있었네요... 한번 다시 읽어 봐야겠네요.

팥쥐만세 2015-09-04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뭐랄까. 세번째 남자는 썸타는 중. ^^;
 
여왕벌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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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도 참. 여왕벌이라니.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미인을 말한다. 

사실 나라를 흥하게 하는 권력도 나라를 말아먹을 권력도 모두 남자에게 있다. 

나라를 흥하게 하는 왕의 조력자 여인들에 대해서 역사책들은 의도적으로 까먹거나 생략하기 일쑤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꼭 나라를 말아먹은 책임을 여자한테 돌릴때 경국지색이라는 말을 쓴다. 

흥한 나라에는 못생긴 여자만 있었을 리도 없고 

나라를 망해먹을 정도로 잘생긴 남자를 표현하는 단어는 없거든 

치세의 공은 잘난 남자의 것이고 챙기면서, 난세의 책임은 사악한 여성, 심지어 그녀의 아름다움에 전가하다니.

치사한 남자들.


이번에도 모든 살인사건의 근원이 도모코의 아름다움 때문인냥 서술한다. 


그녀는 아무생각없이 남자를 응시한다. 아무 생가없이 눈썹을 찌푸리고 아무 생각없이 미소 짓는다. 그리고 악의 없이 뺨을 붉히고 한숨을 쉰다. 하지만 표정이 변할 때마다 영혼이 전율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 

도모코 쟁탈전을 벌이는 남자들의 욕망과 탐욕이 문제가 아니라 

도모코의 아름다움이 필연적으로 파괴적인 욕망을 부른다는 거지. 


그녀 앞으로 많은 남자의 피가 흐를 것이다...... 아아, 일단 그녀를 보면 그 불길한 문구를 부정할 수 없으리라.

그가 아름다우면 여자들에게 사기치기 쉬울뿐이다. 남자의 인물값이란 바람피우는 재능으로 뭇남성의 부러움을 살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아름다움은 남자의 피를 부른다고. 참. 


세이시는 단한번도 남성의 잘생김. 남자의 눈빛이나 미소, 한숨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늘 여성의 서늘한 아름다움은 뭔가 불길하다고 쓰더니, 이번에는 아예 일벌들을 잡아먹는 여왕벌이다. 

남자들의 욕망을 잘 표현하는 세이시다. 

 


2. 

그러나, 못말리는 마초 세이시를 나는 기꺼이 용서하고, 좋아한다. 


아. 혹시 그때 다이도지 도모코가 열리지 않는 방에 있는 피로물든 월금 이야기를 했다면 이 사건은 좀 더 빨리 해결되었으련만. 그리고 또 이제부터 이야기할 갖가지 참극은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세이시 특유의 과장된 이런 말투도 나는 좋아한다. 

뭐랄까. 티비에서본 옛날 무성영화시대 변사의 말투랄까. 

이제는 익숙한 세이시 표의 과장된 문장들과 여전히 촌스런 복장의 긴다이치가 반갑다.  


이리하여 배우는 모였다. 

지금 이 식당에 있는 사람들 외에 다몬 렌타로라는 이름의 괴청년과 렌타로에게 변장을 간파 당한 이상한 노인까지. 호텔 쇼라이소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요기를 머금고 있었다. 

배경과 인물설명이 이제 끝났다고 변사 세이시가 독자들을 준비시키는 문장이다. 

다음 순서는 시체가 등장할 터이고, 여러명의 용의자가 의혹을 살 것이고 

명탐정 긴다이키가 여기저기 들쑤시며 이사람 저사람 질문하는 사이 줄줄이 사람이 죽어나가고 나면 

그때서야 코스케는 사건을 풀어주겠지. 


이미 범인이 누군지 처음 살인사건이 벌어졌을때부터 알았지만 마지막 수수께끼 하나를 풀기위해 

줄줄이 사람들이 죽어나가도록 입다물고 있었다는 식의

책을 읽는 독자들의 속터지게 하는 긴다이치 특유의 살인방조가 이번에는 없네, 생각하며 웃었다. 헤헤헤. 

세이시의 독자들은 이미 이 게임의 법칙에 익숙하다. 나두.  



3. 

일찍이 크리스티를 읽으며 깨달은 것은 추리소설 작자와 두뇌싸움을 너무 진지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 

가장 간단하게 범인을 맞추는 방법은 가장 알리바이가 확실한 사람을 찍으면 된다는 것

왜냐하면 작가들은 반전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기꺼이 속아주는것이 오히려 즐겁다.

얼마나 참신한 이야기 속에 그럴듯한 인과가 엮이느냐의 문제. 

개성적인 인물이라면 더 좋고. 


일본식 고전 추리소설을 즐기며 술술 책장이 잘 넘어간다. 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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