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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해드립니다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평점 :
1.
엘릭시르의 미스터리책장 시리즈는 추리소설 리스트에서 언급될만한 고전 혹은 검증된 작품들을 내놓는대
지금까지의 경험은 좋지 않았다.
대체로 번역이 서툴러서 몰입을 방해하고 약간 어설프다는 느낌 그런데
아, 이번에는 좋다.
원체 유연하고 깔끔해서 좋아하는 거장 블록이라 빌려왔더니, 재밌다.
이킬러, 켈러 맘에 들어, 라고 쓰면서 킬러가 맘에 들다니, 마음 한구석에서 저항이 있다. ^^;
책을 펴면 차례 뒷장에 '에번 헌터에게 바침'이라고 적혀있다.
87분서의 에드 맥베인은 블록 만큼이나 재미있는 작가인대 블록이 헌터에게 헌정하는 책이라니 읽기 전부터 호감 급 상승
2.
첫번재 단편부터 인상적이다. 솔저라 부르면 대답함
켈러가 의뢰받은 잉글먼을 죽이러 시골마을 로즈버그에 간다.
낯선 시골마을에서 식당에 가소, 부동산 가격도 확인하며 이 마을에 정착하는 상상을 한다.
잉글먼에게 접근하고 둘이 솔직하게 속 얘기도 하고
그리고 깔끔하게, 단번에, 능숙하게 죽인다.
킬러가 매우 유능한 전문직 종사자처럼, 그러면서 한편 매우 인간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철학적 동의여부를 떠나 킬러가 거대한 도시 뉴욕의 고독한 셀러리맨 처럼 느껴지는 것은
로렌스가 워낙 시시콜콜 세부적인 디테일을 리얼하게 묘사하기 때문이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문장들 때문이다.
"이 일을 생업으로 삼을 작정은 아니었어"
어느날 오후 공원에서 넬슨에게 말했다.
넬슨은 오스트레일리안 캐틀 도그다. 양떼들을 돌보도록 개향된 품종의 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직업인 켈러가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외롭게 살며, 개에게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은 잘 어울린다.
사람보다 개가 더 신뢰하기 쉽다는 것도 동의한다.
사람은 단칼에 죽이면서, 개의 눈빛에 공감하는 남자.
출장간 켈러가 집으로 전화하며 전화벨 소리를 듣고 귀를 쫑끗 세우는 넬슨을 상상하며
개와 모종의 영적인 접촉을 쌓고 있다고 합리화 한다. 스스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전화를 한다.
켈러를 잘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켈러. 자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 개를 키우기 시작한 건 시작에 불과했어. 다음에는 고래를 구하고 있겠지. 길 잃은 동물들을 데려오고 말이야. 조심해."
의뢰인을 중계해주는 회사의 안내직원 도트의 통찰력이다.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자기들은.
그런데, 아마도 톱니바퀴의 하나처럼 일하는 현대의 셀러리맨들은 모두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개를 산책시키고 화분에 물을 줍니다.
이런 직업이 진짜 있는걸까. 진짜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넬슨을 키우기 시작하니 불가피하게 장기출장 갔을때 봐줄 '사람'과의 관계가 생기고
그녀 앤드리아는 가난하고 쿨하고 정직하고 착해 보인다. 둘의 러브라인 조차 어쩌면 이렇게 개와 인간의 관계같을까.
각각의 단편이 이어지는 연작이다.
켈러가 소개되고 그의 직업과 일상이 이어진다.
킬러라는 직업으로 사람을 죽이러 다니며 발생할 수도 있는 상상초월의 황당한 상황들도 재밌고
무엇보다 시니컬하게 비트는 문장이 적절해서 재밌다.
"표준 몸무게를 이십킬로그램은 초과한 주제에 여기서 맨홀 뚜껑만한 스테이크를 밀어넣더군요. 소금은 반 통을 쳐서요. 이 사람들은 얼마나 급한 겁니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뇌졸증이나 관상동맥으로 끝나게 생겼는데."
블록 스러운 이런 대사 말이다.
그는 맥라런던이 권하는 총을 샀다. 이 지방에는 '냉각기간'이라는 것이 있었다. 처음 방문했을때 총을 고르고 서류를 작성한 뒤 나흘 후에 다시 찾아가 구입하는 제도였다.
맥라런던이 물었다.
"성질이 급하십니까? 집에 가는길에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경찰에게 촐을 쏴대고 싶어요?"
"그럴것 같진 않군요."
"그러면 편법을 써보죠. 이 서류의 날짜를 며칠 앞당기면 손님은 이미 냉각기를 보낸게 됩니다. 내 보기에 손님은 충분히 냉정해 보이는 군요."
어느 나라든지 사람이 뭘 살때 서류를 작성하고 냉각기간을 거쳐야 살 수 있는 물건이 총 말고 또 있을까?
냉각기간을 거친다는 건, 왠만하면 사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실제 이 기간에 생각해보고 안 살 사람이 있기는 한걸까?
애초에 총기의 매매와 소유를 허가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어쨌거나 블록의 문장은 재밌다.
각각의 단편들이 모두 좋고, 은퇴할려고 마음먹은 켈러가 왜 다시 킬러를 성실히 하게 되는지의 스토리조차 설득력있다.
그래 사람은 이렇게 사소한 이유가 중요하기 때문에 때려치고 싶은 직장을 평생 다니게 되기도 한다.
재밌다.
씨리즈가 더 있다니, 엘릭시르가 계속 번역해 주실 바란다. 켈러가 더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