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33006133225002.jpg)
씨네코아가 바뀐 스폰지하우스에서는 지금 일본인디영화페스티벌을 하고 있다. 토요일에 <녹차의 맛>과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두 편을 볼 계획이었으나,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고 나니 오후 2시 상영시간에 맞추기가 어려워 <녹차의 맛>은 포기. 이제 못 보면 DVD도 구하기 힘들 텐데, 언제 보려구. 역시 게으름이 생활의 가장 큰 적이다.
설마 사람이 많을까 싶어서 예매도 하지 않았다. 아트큐브도 아니고, 스폰지하우스는 제법 좌석도 많잖아? 이대 앞에서 쇼핑하고 교보에서 놀다가 걸어서 스폰지하우스에 도착한 시각은 6시 30분. 영화 시작 20분 전이다. 이런, 앞에서 두 번 째 밖에는 자리가 남아있지 않단다. 사람들을, 아니면 TV를 너무 무시했던 게야. (<거북이…>는 TV 영화프로그램에서 소개했다.) 그나마 볼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 쩝.
제목도 희한한 이 영화, 과연 인디영화답다. 어찌나 웃었는지, 한 주일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린 듯 하다.
23세의 주부 스즈메는 해외 근무 나간 남편이 사다 놓은 거북군에게 먹이를 주는 것 외엔 딱히 할 일도 삶의 보람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태어날 때부터의 친구 쿠자쿠가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활기차게 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게 존재감 없이 살다가 순간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던 찰나, 우연히 찾아낸 스파이 모집 광고가 떠오른다. 그래, 스파이가 되는 거야!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스파이가 되어 버린 스즈메. 이제부터 할 일은? 가능한한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살기.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주제에 어떻게 하면 평범하게 보일까를 고민하다니?
‘평범하게 사는 스파이’ 노릇은 그래도 스즈메의 생활을 바꿔준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레고 흥분되고 무언가 굉장한 사건이 앞날에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투명 인간 같던 스즈메는 점점 뚜렷해진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건 누구나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게 아닐까. 별다른 큰 일이 없어도 재미있게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게 가능하다고.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스즈메만 빼고) 범상치 않다. 꽤나 고집 있는 배관공, 이상한 춤을 추는 미용실 아저씨, 해외 여행을 일삼는 숨은 고수 두부 가게 아저씨, 바로 옆 모나카 가게 아저씨, 어중간한 맛의 라면을 만들면서 가장 맛난 에스프레소를 후식으로 내 놓는 라면 가게 아저씨, 한 성깔하는 악기점 아저씨, 스즈메의 아버지와 이웃집 아저씨, 스파이 부부, 공안요원들, 쿠자쿠 등등.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 많은 독특한 캐릭터를 비벼 넣어 새콤달콤한 비빔국수 같은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박수를. 아니 푸하하 터지는 박장대소를.
스파이 부인이 처음 했고, 나중에 스즈메가 따라하는 “휏휏휏휏” 하는 웃음소리는 중독성이 있다.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뒷자리에서 누군가 그렇게 웃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돌아와서도 나 역시 그렇게 웃고 있었다. 당분간은 그리 웃을 것이다. “휏휏휏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