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이야기

 막부 시대 천황이 머물던 간사이 지방에 비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작은 도시 에도가 어떻게 현재의 도쿄라는 코스모폴리탄적 대도시로 변화해왔는지에 관한 생활/문화사. 단순히 도시의 외양 혹은 지리적 변화를 서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에도를 살았던 서민들의 문화가 어떠했는지, 그것을 새로운 도쿄의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화시켰는지, 구체적이고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에도의 중심이라고 할 시타마치 지역에서 시작하여 점점 넓어지는 도쿄의 시가와 더불어 변모해가는 지역적 정서랄까 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마치 한 인간이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는, 도쿄는 이런 역사와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다.

 

 어느 미친 사내의 5년만의 외출

 하하. 다 읽자마자 애인에게 읽으라고 건넸다. 상당히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
 멋부리고 무게잡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꼬질하고 비굴하고 자존심도 뭣도 없는데다 영악하면서도 바보같은 이 미친 사내의 삶에 대한 태도는 (특히 결말 부분에서) 일정 부분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다소 엉성한 구성을 보면 작가의 고백대로 '삘' 받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는 걸 알겠다. 전부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겠지만, 작가라면 또 이런 작품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데르수 우잘라

 어떤 분이 이 책을 읽고 울지 않았느냐고 물으셨다. 내 대답은 No.
 이 책은 기본적으로 시호테 알린(우리가 알고 있는 연해주) 지역의 탐사기이다. 군인이자 학자인 아르세니예프는 글솜씨도 좋고 사물/대상을 보는 눈도 좋다. 그가 설명하는 시호테 알린 지역의 풍광과 데르수 우잘라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나는 내내 웃었다. 탐사기를 이만큼 재미있게 쓸 수 있다는 건 확실히 훌륭한 능력이다.
 데르수 우잘라의 비극적인 결말에 관해서는, 책을 읽고난 당시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건 이미 100년 전에 일어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이제 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건이 지구상에 한두번 있은 것도 아니라고. 그러니 그것에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앞에서 말한, 아르세니예프가 보여주는 자연과 데르수의 모습을 기억하고 가슴에 담는 편이 낫다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호텔 르완다>를 보고 나서, 이 책이 떠올랐다. 이 사건은 데르수 우잘라의 비극적 결말의 반복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의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던 나는 왜 영화를 보면서는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까. 더 많은 사람이 죽어서? 불과 1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서? 활자가 아니라 영상이라서?
 한달이 지난 지금은 이 책을 언급하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한국전쟁

 한국전쟁의 원인부터 전쟁 중 일어난 여러 의문에 가득한 사건들까지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읽다보면 자칫 '다 아는 내용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한국전쟁에 관한 여러 팩트를 확인하고 시각을 넓히는데 유용하다.

 

 

 사볼따 사건의 진실

 <어느 미친 사내...>가 재미있어서 선택한,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작품.
 <어느 미친 사내...>가 우스꽝스러운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 가깝다면, 이 작품은 보다 정치적(政治的)이고 냉정한 추리소설이다.
 시간과 장소를 이리저리 뛰어 넘는 퍼즐같은 구조는 읽다보면 금방 익숙해지면서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재미를 잃어버리기에 딱이다.

 

 펭귄의 우울

 우울증 걸린 펭귄과 함께 사는 외로운 사나이가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조문(弔文)을 작성한다니. 설정만으로도 흥미롭다. 
 정치와 사회를 과감하게 풍자하고 추리소설과 판타지, 순문학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온 작가(알라딘 소개)라더니, 과연, 사회주의가 붕괴한 러시아(우크라이나였나? 아무튼)의 우울을 이만큼 그릴 수 있을까 싶다. 우울하지만 스스로를 동정하거나 체념하지는 않는다. 알싸한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작가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과의 쫓고 쫓기는 대립이 시종일관 궁금증과 긴장을 자아내어 소설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원제를 알 수 없으나 영역판의 <죽음과 펭귄>보다는 <펭귄의 우울>이 훨씬 잘 어울린다. 

 

 전쟁과 사회

 한국전쟁에 관해 동일한 팩트를 얘기해도 박태균과는 시각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크게 피난, 점령, 학살로 나뉘어 있는데, 4장 4절의 "학살의 정치사회학"이야말로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인 듯 하다. <한국전쟁>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 앞부분을 그다지 긴장감 없이 읽고 있다가 이 부분에 이르러서 정신이 확 들었다.
 전에도 얘기한 적 있지만, 이런 책은 좀 강제적으로라도 사람들에게 읽게 하면 안될까.

 

 도쿄 로망 산뽀

 일본인들도 알기 어려운 도쿄의 문화 아지트 30곳에 대한 소개서.
 곧 있을 도쿄 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은 몇 곳을 골랐다. 
 장기간 체류하는 사람들에게 더 유용할 법한 책. 
 

 

9월까지 72권. 역시 올해 100권은 무리야 무리~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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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10-10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중 제가 본 책은 없구만요. 역시 이 세상엔 사람보다 책이 더 많아요. ^^
그래도 보고 싶은 책들은 있네요. 저 한국전쟁 두권은 사놓고 옆지기만 열심히 보고 저는 쌓아놓기만.... ㅠ.ㅠ

urblue 2006-10-1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님, '독서'가 생략된거죠 뭘. ㅎㅎ

돌이님, 그 두 권은 상당히 훌륭한 책들입니다. 곧 보실 수 있었으면 하네요.

urblue 2006-10-1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왜 최소 3권일까요? 2권인 듯한데...

urblue 2006-10-11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헛갈릴 때도 있는 거죠. ㅎㅎ
바람구두님이 쓴 리뷰나 페이퍼가 있으면야 당연히 땡스투...하나..? 할걸요, 아마.

미완성 2006-10-1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맨아래책은...어디서 많이 보던...-_-;;

urblue 2006-10-1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님께 땡스투했어요. ^^

urblue 2006-10-1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니 뭐,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이 세상엔 사람보다 책이 더 많으니까, 한 권도 없어도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요..? ^^;

2006-10-11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3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水巖 > 간송미술관 추사특별전


15-29일 간송미술관 추사특별전


추사 김정희(金正喜ㆍ1786-1856)의 150주기를 맞아 곳곳에서 추사 전시가 한창이다.

우리 문화유산의 보물 창고로 불리는 성북동의 간송미술관도 올 가을 정기전시(10.15-29)를 '추사150주기기념특별전'으로 꾸며 추사 전시 대열에 합류했지만 내용은 차별성이 있다.

추사의 청년기부터 말년까지 추사체의 형성과 변모, 완성 과정을 훑어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글씨는 물론 추사가 그린 문인화, '글로벌'한 예술인이었던 추사의 영향을 받아들인 국내와 중국 예술인들의 작품까지 100여점이 한꺼번에 전시되기 때문이다.

추사와 관련된 자료나 기록, 후대의 해설이나 연구 업적 등은 제외하고 오롯이 작품만을 모은 이번 전시는 사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간송의 올 봄 정기전에 이어 또다시 공개되는 '명선(茗禪ㆍ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은 현존하는 추사 글씨 중 가장 큰 글씨로 꼽힌다. 추사가 초의 선사가 보내준 차를 받고 감격해 써준 대형 예서(隸書) 휘호다.

추사의 또다른 대형 예서 '사야(史野ㆍ세련되고 조야한 멋)', 71세로 사망하기 두세달전 절필 직전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서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ㆍ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나물,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도 대표적인 전시품이다.

이들 이외에도 추사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30대 중반에 쓴 대형 행서, 간찰첩 형식으로 된 작은 글씨 등 서법을 넘나들며 붓을 자유자재로 놀린 추사 글씨의모든 것을 보여주는 대표작들이 나온다.

추사가 스물넷에 만나 스승으로 삼았던 중국의 금석학자 옹방강(翁方綱ㆍ1733-1818)이나 제자 섭지선, 왕여한 등의 글씨와 그림을 통해서는 스승을 뛰어넘은 추사의 독창성을, 추사와 벗하면서 평생 추사를 모방한 권돈인(1783-1859), 신위(1769-1847)의 작품에서는 추사가 당대 조선 문화예술계에 드리웠던 큰그늘을 짐작할 수 있다.

글씨 이외에 사군자 중에서도 특히 난(蘭)을 즐겨 그렸던 추사의 '난맹첩(蘭盟帖)'도 23면 중 10면이 공개된다. 세한도를 연상시키는 갈필로 슥슥 그린 문인화 '고사소요(高士逍遙)'도 볼거리다.

어려서 추사의 문하에 들어갔던 제자 이한철(1808-1880)이 추사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그리기 전에 원본으로 그렸던 '완당선생초상'도 간송의 수장고에서 나와 따스한 미소를 뽐낸다.

1972년 간송미술관의 제2회 정기전에서 추사 김정희전을 처음 연 뒤 30여년간 간송미술관에 몸담으며 추사를 연구한 최완수 연구실장은 추사 글씨의 아름다움은 서투름, 즉 졸박한 맛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최실장은 "추사는 글씨를 그림으로 생각하고 썼지 글로 생각하고 쓴 것이 아니다"라며 "추사는 난초 그림도 늘 '예서 쓰듯 난을 치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최실장은 "추사를 직접 사사한 조희룡이나 허련 등은 추사를 방불케하는 작품을남겼지만 그 후대에는 추사의 본모습을 따르지 못했다. 이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언뜻보면 서투르게 쓴 듯한 추사의 글씨에는 과거 서예사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금석학에 대한 공부내용이 녹아있어 이를 따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추사 작품은 겸재 정선의 작품과 함께 간송미술관의 대표적인 수집품이다. 최실장은 "간송 전형필 선생은 추사보다 120년뒤에 태어난 같은 병오(丙午)생으로 평생을 바쳐 추사와 주변 인물의 작품과 주변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했다"고 말했다. ☎02-760-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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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소리는, 최근 TV를 틀 때마다 들을 수 있다.
도대체 전어란 생선이 얼마나 맛있는 것이냐, 하는 궁금증. 동해안 바닷가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전어를 먹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건 대체 어디서 잡히는 물고기인고?) 

며칠 전부터 전어를 먹어보겠다고 퇴근 길에 시장을 들렀다. 근데...전어가 안 보인다. 생선 이름과 원산지를 적은 푯말이 생선 박스에 붙어 있는데, '전어'라고 쓴 건 어디에도 안 보이는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횟집 가서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사람들 와글와글한 틈에서 기다렸다 주인에게 물어보기도 귀찮고.  

어제도 시장에 들렀다. 어쩐 일인지 생선 가게에 손님이 하나도 없다. 뭘 찾느냐고 주인 아주머니가 대번에 묻는다. '전어 있어요?' 엇, 저게 전어였어? TV에서 보던 거랑 좀 다른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놈으로 3마리를 샀다. 구이용은 좀 큰 게 낫다나.

그릴에 10분 가량 구웠다. 기대에 차서 한 조각 뜯어내 먹었다. 음..음?
이거, 청어랑 비슷한 맛이잖아? 이게 뭘 그리 맛나다고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와?
난 등푸른 생선의 껍질 바로 안쪽에 붙은 거무튀튀한 부분은 싫어해서 다 벗겨내는데, 이 전어란 놈도 비슷하다.
살은 고소한 맛은 있긴 하지만 기름기가 너무 많고.
에이, 이게 뭐냐~
나도 애인도 왠지 속은 기분. 쩝.

 



사진은 네이버 퀸셀프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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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9-2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저도 딱히. 왜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숯불이나 연탄불에 직화하면 더 맛있겠죠?
기름기가 많은 생선이니.
(자리가 다소 뜬금없지만, 결혼 축하드려요. 왜 생선구이 이야기 밑에--;)

Mephistopheles 2006-09-28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탄불에 굽게 되면 고소한 맛이 한층 살아난답니다..
아마도 그 전어 굽는 냄새는 숯불이나 연달불로 구웠을 때 나는 냄새라고
추정됩니다..^^

클리오 2006-09-2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어를 자주 먹는 고장인데.. 저도 그 속담 이해를 잘 못해요. 가을 전어는 쌀 서말이랑도 안바꾼다는 말이 있는 걸로 봐서는 아마 가을에 기름진 생선이라 못먹던 시절 이야기아닐까 싶기도 하고. 저도 뼈 많은 생선은 딱 질색이라서요. 이 고장에서는, 주로 회를 쳐서 야채랑 무쳐 회무침으로 잘 먹는데, 차라리 그게 더 나아요..

바람돌이 2006-09-2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과 약간 다른 남쪽인 이곳에서는 주로 회로 먹습니다. 올해 전어회가 너무 비싸서 난리입니다. 구이는 옛적에 주로 연탄불에 구워먹었던게 제일 맛있었던 것 같은데 뭐 별로 먹을 것도 없고 저는 별로 안좋아합니다. 전어는 그저 회로 먹는것이..... ^^

2006-09-29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6-10-10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전어는 바싹 노릇하게 구워서 머리부터 아작아작 뼈채로 먹으면 상당 맛있던데요. 살 발라 먹기엔 가시 많고 먹을것도 없지만, 이렇게 통째 먹기엔 적당한 사이즈와 맛을 같고 있더라구요. 회는 꼬소하구요. 근데 거의 전어 계절 끝난거 아닌가 싶네요.

urblue 2006-10-1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생선 머리는 못 먹어요. -_-;;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페라'라는 걸 봤다.

간간이 뮤지컬은 보러 다녀도 오페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번 '한러교류축제'의 공연작이 얼마 전 읽은 니콜라이 레스코프 원작의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였기에 호기심이 발동했다고나 할까.

 

 

 

 

쇼스타코비치가 쓴 오페라로, 1934년 초연 이후 200회 이상 공연되는 대인기를 누렸다고 하는데, 1936년 이 작품을 본 스탈린이 중간에 자리를 떠 버리자 이후에 공연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9월 23일 토요일 저녁, 공연장 성남아트센터로 향했다.

공연장 입구는 한산했다. 인기있는 뮤지컬의 경우 공연 시작 30분 전쯤이면 로비가 관객들로 꽉 차기 마련인데, 이쪽은 이거, 객석이 텅텅 비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였다. 입장해보니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기저기 빈 좌석이 꽤 눈에 띄었다. 물론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돈 내고 표를 끊었는지 몹시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중간 휴식 시간 이후에 앞 자리가 텅 비어 버려 좀 놀랐다. 역시 돈 안 낸 사람들인게야.)

관람 총평을 말하자면, '기대 이상'이라고 해야겠다. 사실 이 공연이 아주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오페라가 어느 정도는 지루할 것이라는 내 예상이 제법 빗나갔으므로 어쨌거나 '기대 이상'이 된다.

이 날 주인공 카테리나 역할을 맡은 카린 그리고리안은 이 오페라단의 대표 가수는 아니라고 한다. 22일과 24일에 공연한 스베틀라나 소즈다텔레바가 사실상의 주인공. 하지만 보지 않았으니 역시 비교 불가. 카린 그리고리안의 연기와 노래는 나름 훌륭했다. 자리가 좀 멀어 표정까지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지루한 일상에 몸부림치다 하인과 눈이 맞고, 그에게 집착하는 귀부인의 모습은 충분히 표현했다.

남자주인공 세르게이 역할의 가수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음색도 평범하고. 극 전개 상 윗옷을 자주 벗어던지고 맨살을 드러내는데 배가 좀 나왔단 말이지. 이런 바람둥이 역할이라면 좀 더 몸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

원작에선 비중이 작은 시아버지 보리스의 역할이 조금 더 커졌다. 기 보다 많이 바뀌었다. 젊었을 적 좀 놀았던 이 할아버지는 세르게이만 아니었으면 며느리의 방에 뛰어들었을, 늙은 난봉꾼에 가깝다.

농가가 배경이었던 원작에 비해 무대는 기계실 같이 꾸며져 있다. 이 배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바뀌지 않는데, 3막까지는 꽤 괜찮았지만 4막에서는 좀 바꿔주었으면 어떨까 싶다. 일꾼들은 검정색의 가죽 앞치마를 입고 등장하는데 훨씬 투박하고 거친 느낌을 준다. 그런 가운데 붉은 드레스를 입은 카테리나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사진에 보이는, 일꾼(죄수)들이 앉은 의자는 카테리나의 결혼식 장면에서는 흰색 비닐커버가 씌워진 채 만찬 장면을 표현한다. 커버를 벗겨내고 순식간에 감옥 장면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가 꽤 괜찮다.

4막에서 등장하는 카테리나의 연적 소네트카는 카테리나가 1막에서 입었던 붉은 드레스를 입고 나온다. 물론 유형을 가는 사람들이 붉은 드레스나 웨딩 드레스를 입을 리 만무지만, 세르게이를 중심으로 예전 카테리나의 자리를 꿰 찬 소네트카를 대비하여 표현한 것은 인상적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오페라를 만들때부터의 문제인지, 이번 공연의 각색 혹은 번역의 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내 보기에 꽤 중대한 오류는 아기에 관한 것이다. 카테리나는 세르게이의 아이를 갖는데, 극 중 전혀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아기 인형을 치마 속에서 꺼내 분질러버리는 장면이 나왔다. 내용을 모르고 보는 관객이라면 어안이 벙벙할 듯. 하긴, 그 장면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 원작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카테리나와 세르게이가 유형을 떠나는 것도, 카테리나가 연적 소네트카와 함께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성 싶다. 원래 노래 가사가 그런지 번역이 엉망인지 알 수 없으나 제대로 표현을 못 해 준데다가 번역의 화면이 무대랑 맞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었으니. 이런 진행상의 실수는 없어야 하는 거 아닌지.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의외로 흥겹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더라.

2시간이 넘는 공연이 지루한 줄을 몰랐다. 오히려 좀 더 가까이에서 배우들의 표정까지 볼 수 있었으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았다. 다른 오페라를 또 보게 될 지(너무 비싸서 말이지!) 모르겠지만 오페라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경험이긴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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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9-2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사람들은 오페라간 발레건 너무 클래식한것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urblue 2006-09-2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한 게 자랑하기에 "뽀대"가 더 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ㅎㅎ

sooninara 2006-09-26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단체관람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 보고는 안가게 되네요.
뮤지컬이 대세라서 ...
위의 사진만 보면 뮤지컬 같은 분위기예요.

urblue 2006-09-26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페라 단체 관람이라니, 엄청 럭셔리 고등학교 아닙니까~
 
 전출처 : 水巖 > 프랑스 사진전 2편


사진의 종주국 … 눈길 끄는 프랑스 사진전 2편 [중앙일보]
예술가들의 일상
끌레그가 잡은 피카소·달리·장 꼭도
눈에 익은 명장면
브레송·호니 등이 찍은 20세기 걸작들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요즘 국내 미술계에 프랑스의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전시가 속속 기획되고 있다. 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사진이라는 장르가 처음 생겨났고, 이후 걸출한 사진작가를 배출한 사진 종주국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전시 두 편이 나란히 문을 연다.


아기를 품에 안고는 해맑은 미소를 짓는 파블로 피카소, 기타 연주를 들으며 알 듯 모를 듯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 살바도르 달리…. 20세기 예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피카소.달리.장 꼭도 인물사진전'(28일부터 10월 24일까지.김영섭사진화랑.02-733-6331)은 프랑스의 유명 사진작가 루시앙 끌레그의 렌즈에 비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전시다. 끌레그는 아를르국제사진축제를 세운 장본인으로 주로 누드사진 작업을 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는 특이하게도 그가 친하게 지냈던 예술가인 피카소, 달리, 장 꼭도 세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며 촬영한 작품들이다. 이들은 모두 예술이라는 끈으로 연결됐다. 끌레그는 피카소와 40년간 우정을 나눴다. 피카소는 끌레그를 더 큰 무대로 진출하도록 힘을 북돋아주었고, 아방가르드 시인인 장 꼭도와 만남을 주선해 몇몇 작업에서 협업을 하기도 했다. 30여 점의 사진 속에서 자화상을 그리는 장 꼭도, 퍼포먼스를 벌이며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달리를 보다 보면 어느새 인간미 넘치는 예술가의 또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사진전문갤러리인 갤러리 뤼미에르가 선보이는 '프랑스 사진명작 전'(10월 29일까지.02-517-2134)은 프랑스에서 한창 사진으로 주가가 올랐던 1900년대 초반부터 1950년대까지의 작품들이다. 작품 모두 갤러리 뤼미에르의 소장품들이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윌리 호니.만 레이.유진 아제 등 이름만 들어도-아니 이름은 모르더라도 작품은 눈에 익은- 친숙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와인병을 끼고 걸어가는 소년(브레송), 바게뜨 빵을 옆구리에 끼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아이(윌리 호니) 등 가족과 이웃의 일상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 유진 아제는 텅 빈 파리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1930년대 파리가 도시 전체를 리노베이션 하면서 시민이 모두 도시를 떠난 후 건물만 덩그러니 남은 파리는 생경한 느낌을 준다.

이외에도 기록상 한점만 남아있다는 윌리 호니의 '와인재배자, 지롱드'(웨이트리스가 와인을 따라주는 장면 사진)도 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작품은 현재 9000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박지영 기자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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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9-2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