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의 유명한 선거 캠페인 슬로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는 이제 워낙 여기저기서 차용되어 좀 식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못 찾고 변죽만 울리는 이들에게 "바보야"라고 일갈해 주는 이 구호만큼 명쾌한 구호도 흔치 않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차용해 봤다.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 물론 여기서 바보는 2mb 다.(아, 쓰고 보니 이 인간에겐 바보란 표현도 너무 우아하다.)

이 문장에는 두 가지 질문이 뒤따른다. 첫째, 왜 바보인가, 그리고 둘째, 왜 민주주의인가. 사실 첫번째 질문에 대해 답하는건 입만 아픈 일이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행동들은 그가 단 한 번도 철학적으로 사고해본 적이 없는 인간이라는걸 보여준다. 그의 행동들은 즉흥적이고 이득이 되는 방향을 찾는 본능적 감각에 지배된다. 이는 당면한 위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무언가를 쟁취하는 경쟁에서는 탁월한 장점이 되겠지만(그의 소위 말하는 '성공신화'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 정수를 보여준다),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짚어내어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은 0 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는 바보다.

보 다 중요한 질문은 두번째다. 왜 민주주의인가. 사실 이 두번째 질문이야말로 보수 언론과 정치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해 준다. 그들에겐, 민주주의는 과거완료형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해하는 민주주의는 20여년 전, 독재냐 민주주의냐라는 질문의 수준에서 그대로 멈춰 있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이 물러나고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되었으니 민주주의의 역사는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은 거기서 멈췄다. 백 번 양보해서, 그 땐 그걸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강산도 두 번 바뀔 세월이 흘렀다. 불완전하나마 20여년 간의 경험은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를 잔뜩 높여놓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독재 상태와 비교해서 이해하지 않는다. 이제 민주주의는 보다 근본적인 의미를 지향해 간다. 그래서 문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이라고 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2008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두 가지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첫째는, 선거를 통해 적법하게 선출한 '민주' 정부가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지도 않고, 국민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는 현상, 즉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 혹은 실패이다. 국민은 권력을 가지고 스스로 행사한다고 '정의'되나, 실제 권력은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거리의 정치로 나서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또 하나의 실패는 민주주의가 더 이상 고삐 풀린 시장을 통제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되는 순산 우리는 우리가 더 이상 그 소고기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걸 잘 알고 있다. 이 실패는 신자유주의라는 맥락에서 따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문제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여부를 넘어섰다. 촛불 시위가 계속되고 경찰의 강경진압이 반복되고 여론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면, 정부는 아마도 미국과의 갈등을 최소화 하는 한도 내에서 일정 정도 물러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계속된 시위에 지친 국민들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애당초 민의와 동떨어진 저들은 조만간 다시 폭주를 시작할테고(아마도 대운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은 또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할 테니까. 그러지 않으려면, 우리는 또 다시 국민과 이미 유리된 저 강부자 정부가 국민 앞에 알아서 기는 ‘기적’을 기대해야 한다. 근데, 저 바보들한테 뭘 기대하란 말인가.

해서, 우리는 저 바보들에게 정확히 일러줘야 한다. 문제는 민주주의라고 말이다. 선거라는 간헐적 이벤트로 형식적으로 획득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끊임없이 국민들로부터 재신임 받는 보다 진일보한 민주주의라고. 사실, 대의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는 결코 저들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 아니다. 자금력과 조직력으로 무장한 기득권 세력은 손쉽게 선거의 이슈와 쟁점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해 나간다. 게다가 거대 정당들은 밥그릇 싸움을 할지언정 결국 과두 지배 체제를 구성하는 동료들일 뿐 아닌가. 따라서, 선거라는 프레임에 우리의 정치 활동의 한계를 지어버리는 대신, 우리는 더 직접적인 통제 수단을 요구해야 한다. 임기 중 언제든지 선출직 공무원들을 견제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의 도입 등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민주주의의 방안들을 찾을 때다. 거대 사회에서는 직접 민주주의는 불가능 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겐 네트워크가 있지 않은가. 이번 촛불 시위는 그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번 촛불 시위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고, 많은 과제를 남겼다. 어떻게 폭주하는 행정부를 제어할 것인가, 어떻게 의회를 대의 민주주의의 실질적 중추로 기능하게 만들 것인가, 공권력의 폭력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막을 것인가, 그리고 시장의 독재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어느 하나 쉽지 않고 깊은 고민과 실천을 요구하는 사안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사태 덕분에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문제들을 극복해나갈 힘들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이다. 촛불은 희망이다. 당신들이 바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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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6-04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걸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로 바꾸고 싶었어요~.
암튼 저와 생각이 통해서 기쁜 이윤 뭘까요?
오늘 영화를 봤는데 코미디를 보면서 울었어요.
정말 코미디죠!!!ㅠㅠ

turnleft 2008-06-04 03:36   좋아요 0 | URL
요즘 웃는게 웃는게 아니죠.. ㅡ.ㅜ

hnine 2008-06-0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너머의 그 무엇까지 보시는군요. 말씀하시는 뜻을 알 것 같습니다.
무거운 주제이지요...

turnleft 2008-06-05 03:48   좋아요 0 | URL
제 짧은 소견으로 적은 글이니 꼭 저러자는건 아니구요.. ^^;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때면, 사안을 넘어서 비젼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는게 항상 안타까워요. 그런게 바로 지식인들의 죽음이겠죠.

가시장미 2008-06-0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 있음 같이 촛불시위갈텐데... 이융.. 멀리 있어서 아쉬워용~ :)

turnleft 2008-06-05 03: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거리에서 만나야 하는데 이리 온라인에서만.. -_-

마노아 2008-06-0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요새 어찌 지내시나 소식 궁금했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문득, 좌회전님의 컴 바탕화면은 무엇일까 궁금해졌어요. 그곳에서도 촛불을 밝혀주셔요^^

turnleft 2008-06-05 03:52   좋아요 0 | URL
제 컴 바탕화면은 여전히 처음 윈도우 깔렸을 때의 그 바탕화면..;; 이런거 바꾸는걸 워낙 귀찮아해서요 ^^; 직업 특성 상 바탕화면을 볼 일이 거의 없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랄까;;

마노아 2008-06-05 20:36   좋아요 0 | URL
앗, 질문을 잘못 했군요. 익스창 첫 화면이 뭐냐고 물어보려던 거였는데^^ㅋ

turnleft 2008-06-06 05:43   좋아요 0 | URL
익스창 첫 화면은 빈 화면이요;;
흑, 뭔가 뽀대 나는 화면이라고 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ㅠ_ㅠ

프레이야 2008-07-0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쓰신 날로부터 한 달이 지나 점점 더 '바보'라는 말이 실감되는
시점에서 뒤늦게 이 글을 읽게 되었네요.
턴님의 진중한 생각 잘 읽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여긴 날이 무척 화창해요.^^

turnleft 2008-07-08 04:10   좋아요 0 | URL
솔직히 이 정도로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습니다.
덕분에 요즘은 생각이 많아지네요. 고민해 볼만한 화두가 많으니 나름 즐겁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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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05-28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거 할래요 ^^

turnleft 2008-05-29 04:13   좋아요 0 | URL
어여 하세요 ^^
 

우리는 저마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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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8-05-16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병화 시인의 '길'이 연상되는 길이군요.

turnleft 2008-05-17 03:09   좋아요 0 | URL
읽어본 적이 없는 시로군요.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치니 2008-05-16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인가요? 고향 시리즈는 이제 막을 내렸나보네요.
월말에 미국 출장길이 있어서, 저 길을 보니 마음이 심난. ㅠㅠ

turnleft 2008-05-17 03:11   좋아요 0 | URL
고향 시리즈는 언젠가 다시 삘 받으면 그 때.. ㅎㅎ
미국 출장 어디로 가시는데요? 도시에만 계시면 저런 길 볼 일 없으니 안심(?)하셔도 될거에요;;

춤추는인생. 2008-05-19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길이 내앞에 운명처럼 파여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아리고
그것이 내발길이 데려온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때 있지만
내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아침엔 안개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도 가지 않을수 없던길.


도종환 [가지 않을수 없던길]중에서

제가 가장 힘들때 많이 울면서 읽었던 시거든요. 요즘은 잘 읽지 않지만, 턴님의 사진을 보니 문득 아침에 이 시가 생각나네요

turnleft 2008-05-20 03:57   좋아요 0 | URL
"내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저는 이 문구가 가슴에 남네요.

2008-05-19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0 0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8-05-23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키아누 리 추녀님 ㅋㅋㅋㅋㅋ

turnleft 2008-05-24 02: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졸리님. 우리 이제 같은 헐리웃 주민이 되는건가요? 호홋~
 



은근히 수선스러워지는 마당 한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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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5-14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턴님 댁 마당 참 멋지다. 부모님의 손길이 느껴져요~.^^
목련은 저리 처절하게 졌지만 다른 꽃들의 품에 그나마 아늑해 보이네요~.
그러고보면 꽃도 사람도, 모두 누군가가 필요해요...

turnleft 2008-05-15 04:02   좋아요 0 | URL
구석의 목련 꽃잎을 눈치채시다니 예리하시군요!!
마지막 문장은.. 음.. 저에게 압력을 넣는 제 친누나와 비슷하시군요 ㅡ.ㅜ

hnine 2008-05-1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섯번 째 사진을 접하고 나니,
음...그 고향의 여름은 어떨까, 가을은 어떨까, 겨울도 멋있겠군...이러고 있답니다.

turnleft 2008-05-15 04:09   좋아요 0 | URL
4계절 모두 나름의 맛이 있죠. 근데 제 기억엔 전에 hnine 님 동네도 눈 왔을 때 엄청 멋있었던 사진을 봤던 것 같은데.. ^^
 



生의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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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8-05-1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사이 한국에서는 생의 수난이랍니다.
언젠가 한 번 '찰나의 기록展'을 열어도 좋겠습니다.

turnleft 2008-05-14 02: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해지는 뉴스가 하나같이 다 흉흉하더군요. 삶의 기본인 의식주 문제도 이리 쉽지가 않으니..
전시회는 먼 훗날 언젠가 한 번은 열지 않을까 싶네요. 아직은 스스로 만족을 못 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