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당연히) 제가 질문지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합니다. 이번에도 그냥 혼자 인터뷰를 진행할까 했습니다만.
왠지 독식하는 듯한 기분. 맛있는 걸 혼자 등 돌리고 먹는 기분. 영화평론가 정성일이라니 말입니다.

당신이 영화 순혈주의자-영성주의자이건, 혹은 그 반대편이건간에 마음 속에 질문 하나쯤은 품고 있을법한 분이니까요.
최소한 그라면 다른 입장, 다른 포지션이더라도 '대화'가 가능할 듯한 기대감. 그건 갈수록 만나기 힘들어지는 미덕이니까.
마치 프로야구 김성근 감독에게 Q&A가 주어지자 모두가 '야구'에 대해 물었던 것처럼.

질문은 13일까지 모집합니다. 모든 질문을 다 전달해 드리지는 못할 겁니다. 미리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p.s: 광고말씀.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의 표지는 영화 알파빌의 한 장면이죠. 저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이미 구입하신 분들은 책을 먼저 읽었다는 이점이 있으니(;;), 뒤늦게 이 책을 찾아오신 분들을 위해 저 두 권을 합친 <정성일 영화평론집 세트>용 경품을 마련했습니다. <언젠가..>의 표지 포스터인데요, 정성일 님의 싸인이 첨가돼 있습니다. 저도 알파빌 좋아해서 정말 갖고 싶습니다. 이미 구입하신 분들께서는 (역시 이미 구입한) 저같은 기분일까요.; 수량 한정이며, 알라딘 단독입니다. 뒤늦게 찾아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이벤트는 다음주쯤 시작할 예정입니다.

p.s2: 추신이 더 길었지만 추신 때문에 쓴 글은 아니고 그냥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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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2010-09-0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진지하고 심원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사유'가 아니라 '감각'에 방점이 찍히는 것 같아서 안 느껴도 되는 이상한 죄의식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요. 이건 제가 골수에 사무친 인문학도라서(는 절대 아닐 것 같고)
감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유가 가능한 지, 가능하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하네요.

어영부영 2010-09-0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추신: 포스터는 안부럽네요 훙! 이쁜여배우가 나오는 포스터따위,

Tomek 2010-09-1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 질문.
『필사의 탐독』중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에 관한 질문입니다. 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비디오로, 그리고 DVD로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끝에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기원합니다.”라는 자막에 대해서 선생님은 장문의 글을 쓰셨습니다. 저는 모든 영화를 다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 장면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면(정확히는 자막)은 제게 기괴한 쇼크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극장에서 그리고 비디오로 본 <해안선>에는 이 자막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지만, DVD에는 이 자막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자막이 김기덕 감독의 의도 하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제작사에서 임의로 뺀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일부러 DVD의 음성해설과 부가영상까지 모두 챙겨보았지만, 이 자막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었습니다. 물론 이 자막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이렇게 되면 영화의 판본이 어느 것이 최종본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만약, <해안선>에서 마지막 자막의 누락이 김기덕 감독의 최종 판본이라면, 선생님은 그 자막에 대한 생각을 철회하실 것인지요? 그리고 영화에 대한 최종 판본이란, 결국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요?

두 번째 질문.
트위터에 대한 질문입니다. 제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트위터에서 영화 이야기를 할 때, 선생님은 예외 없이 두 편씩 비교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시>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엉클 분미>, 그리고 최근의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물론 이런 글쓰기는 선생님의 오랜 전통(?)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에게 비교를 통한 영화 읽기 혹은 생각하기는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탄식.
바다출판사는 먼저 책을 산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를 진행하라! 진행하라!

치니 2010-09-1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것이 없고 흥미 위주로만 세상을 살다보니 더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뭔진 알겠는데 그걸 참 어렵게 풀어 썼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좀 있었어요. 글에 대해서도 영화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처럼, 어렵더라도 이해가 좀 안되더라도 자신이 쓰고 싶은대로 쓰고, 그걸 따라오는 건 독자의 몫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아니면 정성일 선생님 본인은 정작 어디가 어렵다는 건지 당최 모르시다보니 그렇게 된 걸 수도 있겠지만요 ㅠ)

2010-09-12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런던도 인생도 만만치 않아

<런던 일러스트 수업>의 두 저자, 일러스트레이터 먼지mungi & 써니sunni 인터뷰



인터뷰를 몇 번 해 봤지만, 동시에 두 사람을 인터뷰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네, 저자가 두 명이었죠.

나름 놀라운 인터뷰였습니다. 질문이 던져지면 두 분이 서로 논쟁과 토론을 거듭하며 자체 진행을 해 나가는 편리한 방식이었죠(;;). 편집 과정에서 제거된 "아니 내 생각엔",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아", "(갑자기 저를 보며)근데 있잖아요" 등등이 수십 개  있었습니다. 그만큼 거침없고 자유로운 인터뷰였죠. 가끔은 받아적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쏟아져 나왔지만, 그보다는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이런 친구들이 있다면 참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누님들이셔서 친구먹자는 얘기는 못했습니다)

보시죠. 서로 다른 두 분의, 두 개의 런던입니다. 혹 여러분이 떠나고 싶을 때, 누구에 맞추어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한번 보세요. 아참, 본문 일러스트는 써니/먼지님 꺼니깐 막 퍼가시면 안됩니다~

-예술MD 최원호





써니와 먼지는 달라요


알라딘- 안녕하세요 알라딘입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써니- 출판사에서 일했었어요. 디자인 파트도 했고, 아트디렉팅도 했고요. 신인 작가들도 발굴하고, 책도 기획하고, 저도 같이 작업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회사 그만두고 영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그림책 <검은 사자>를 냈어요. 이제 다음 책도 준비하고, 전시랑 책 표지작업도 하고 있어요.

먼지- 인터넷에 만화를 연재했었거든요. 웹툰요. 그러다가 카툰북을 냈고, 말아먹었고(웃음) 한참이나 그 상태로만 있다가(웃음) 영국에 갔어요. 애니메이션 과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같이 했고요. 그러다 우연히 표지 일러스트 작업을 맡았는데, 하나 하고 나니 계속 의뢰가 들어와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무심코 던진 행운에 개구리가 맞는달까(웃음).


  
먼지님(왼쪽)과 써니님(오른쪽). 아무리 봐도 동안 콤비.



알라딘- 일과 유학이라는 긴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데요. 지금의 자기 모습에는 만족하시나요?

써니- 지금이 얼만큼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전 안좋은 것보다 좋은 것들에 더 집중해요. 행복주의자라고 할까. 물론 영국에 있을 때도 불만이나 불안한 점들이 있었어요. 거기에 빠져서 살 수도 있었죠. 그런데 거기 빠져들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요.

먼지- 저 분은 인상 자체가 벌써 여유로와 보이시잖아요(웃음). 알아서 호감을 불러 일으키는(웃음). 자신감도 있어보이고.

써니- (웃음) 생각해보면 언제나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있잖아요. 작업이든 취미든, 그런 다른 것들에 주의를 돌리면 부정적인 생각이나 고민을 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단점보다는 좋았던 걸 기억하는 편이에요. 회사 다닐 때도 그랬고, 영국에서도 결국 모든 과정이 내가 원하는 작업을 위해 하나씩 쌓아온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먼지- 그런데 언니 그림은 안그렇잖아요. 완전 우울하고(웃음). 사람들은 자기 인생이랑 다른 그림을 그려요. 자신이 느껴보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동경이랄까, 매력을 느낀달까. 그래서 제 그림은 밝아요(웃음).

알라딘- 그럼 먼지님은 상대적으로 비관적인 편이신가요?

먼지- 기본적으로는... 과거는 그게 힘들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재밌는 기억으로 남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현실을 보고 있으면 늘 힘들고, 이런저런 작업 다 해보고 싶은데 아무도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고 그래요. 지금도 표지 일러스트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프리랜서는 힘들거든요. 제가 버는 돈을 연봉으로 치면...(웃음)

써니- (먼지에게) 그래도 좋은 점들도 있지 않아?

먼지-
아, 있어요. 유학 다녀오고 나니 알바생 취급 안한다는 거(웃음). 그런 게 좀 있거든요. 하청받는 느낌이랄까. 유학 다녀와서는 책도 냈고, 첫 책이 잘 돼서 좋았죠. 이거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돼! 했는데 다음 책이 안 나가고(웃음) 하면서 왔다갔다 해요.

써니- 이 친구가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먼지- 그게, 잘 됐을 때는 주변에서 막 이것저것 해 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잘 안 되면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안해요. 그러면 왠지 망한 것 같고 부족한 것들만 보이고 그래요. 나 좀 예뻐해주지.

알라딘- 그거 진심으로 안타깝네요. 그런데 두 분 정말 다르시군요.;

먼지&써니-
네 그래서 사람들이 재밌대요.


    
Sunni(왼쪽) & Mungi(오른쪽) in London



유학을 앞둔 두 가지 자세


알라딘- 영국에 가기로 확정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써니- 원래 가볍게 다녀올 생각이었어요. 출장 다녀오듯이요. 마음 편히 공부하고 그림 그리고 와야지라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걱정같은 것도 없었고요.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문제였달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다들 아쉬움도 느끼고 걱정도 하는데 저는 아무 두려움도 없었거든요. 제가 원래 겁이 좀 없어요.

먼지- 저는 20대일 때는 아무 두려움도 없었는데(웃음) 서른 즈음이 되면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생겼어요. 언제든지 어떤 일이 터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하고싶은 일이 아니라 사건들이 터지는 거예요. 영국에도 가자마자 별별 일로 엄청 고생했잖아요(웃음). 그런 걸 대비해서 계속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하려고 해요. 걱정이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네거티브하달까.

써니- 그러고보니 얘가 이 책의 처음 컨셉트에 대해서도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웃음) 그런데 그런 성격 때문에 준비성이 참 좋아요. 이런저런 일에 다 대비를 하는 거죠. 만약의 사태를 다 떠올려 놓는 거예요.

먼지- 제가, 남들이 보기에는 막 아무렇게나 하는 것 같지만요. 혼자서 시뮬레이션을 많이 돌려요. 예상 상황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생각만큼 안되면 괴로워요. 사람들도 제가 20대일 때는 막 잘해주더니, 그 시절 지나니까 나한테 잘해달라고만 하고(웃음).



불친절해서 매력적인(?) 영국 

알라딘- 왠지 이렇게 다른 두 분이면, 영국에서 느낀 것도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특징은 뭐가 있었나요?


써니- 어떻게 보면 정말로 가르쳐주는 건 없어요.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런 가르침 같은 게 없어요. 한 친구한테 얘길 해 줬더니 그 친구는 막 뭐라고 하더라구요. 대체 뭘 가르치냐고.

먼지- 아 그게 무슨 말이냐면요. 스킬을 절대로 안 가르쳐준다는 거예요. MA과정이 그래서 어려워요. 우리나라처럼 툴 사용법 가르쳐주고 하는 게 없어요. 자기가 다 알아서 해야 돼요.

써니- 숙제 내주는 건 딱 하나예요. 프로젝트. 주제를 내 주고 나면 학생들이 전부 알아서 해야 해요. 그 완성도가 유학 생활의 모든 것이에요.

먼지- 미국이랑 그런 점에서 달라요. 미국은 커리큘럼이 아주 꼼꼼하게 짜여져 있어요. 이거 하는 법, 저거 쓰는 법에 대해서 수업이 다 있구요.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수업마다 다 가르쳐 주고요.

써니- 미국에서 배우게 되면 학생들한테 하나 이상의 스킬을 만들어 줘요. 포토샵이든 아날로그 페인팅이든 그 분야에서 어떤 툴을 노련하게 다루게 만들어 주거든요.

먼지- 영국은 반대로 큰 틀만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학생들은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제약이 없어요. 그게 자유일 수도 있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요. MA 1년 과정은 짧다면 아주 짧은데, 그 안에 최대한 빨리 적응해야 돼요. 그래서 유학오기 전에 실무를 하던 친구들이 잘 해요. 공부만 하다 온 친구들은 바뀐 시스템에 적응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알라딘- 성격이나 성향은 적응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요?

먼지- 그런 것들도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성격보다는 태도가 중요해요. 유학 목적이 중요하거든요. 학벌에 목적을 두면 그냥 졸업만 해도 돼요. 실제로 그것 때문에 오는 친구들도 꽤 있어요. 그런데 자기가 뭔가 이뤄야 할 목적이 있으면 거기에 모든 걸 쏟아야 돼요. 나이가 있는 유학생들이 그런 걸 잘 하죠. 목적을 갖고 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알라딘- 목적의식이 가장 중요한 거겠네요.

먼지-
(잠시 고민) 사실은 돈이 제일 중요해요. 그게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요. 유학을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돈 문제가 많고요. 한국에서 뭘 배우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이면서 배우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과제를 메꾸기만 하면 안돼요. 그 과제가 나한테 뭘 만들어 줄건가를 늘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알라딘-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게 가장 문제라는 거죠?

먼지- 현실적으로 말하면 중퇴가 최악이에요. 돈은 돈대로 날아가고, 한국에서는 졸업장도 없으니 자리잡기도 힘들어요. 미처 다 배우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써니-
그 모든 걸, 유학 온 자기자신이 스스로 찾아내야 돼요.

먼지- 영국식의 막강한 단점이기도 하죠.

써니- 맞아요. 자기자신에 대해 많이 알아둬야 해요. 계속 시야를 넓혀야 하고요. 영국에선 일러스트의 응용 범위가 유독 넓어요. 데이빗 슈링글리만 봐도 그래요. 얼핏 보면 낙서같고 장난 같은 일러스트인데 영국에서는 다들 알아주거든요. 경계인이 인정받는 구조예요. 다양성이 존중받고 창의력에 대해 개방적이에요.

먼지-
영국은 주류 미디어가 특히 보수적인 편이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발전할 여지가 있고, 거기서 스타도 생기고 그래요. 언더에서 시작해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어요.

알라딘- 영국이 개방적인 문화 시스템을 갖고 있나봐요?

먼지- 네, 근데 작아서...(웃음)

써니-
시장이 작은 건 어쩔 수 없어요. 특히 어린이 쪽이 그래요. 그런데 잠시 프랑스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거긴 완전 다른 세상이었어요. 그림책 독자 중에 성인들이 아주 많고, 어릴 때부터 일러스트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나이 들어 다시 작가가 되는 식의, 아름다움이 재생산되는 시스템이 거기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어요. 영국은 일러스트의 실험성에는 열려 있지만, 자국 작품 위주로 돌아가는데다가 분야가 딱 나뉘어 있어요. 왠만한 작품은 번역도 잘 안 해요. 시장이 좁은데 그게 프라이드하고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음, 프랑스가 더 나은가? (웃음)



프랑스가 더 나은가? (농담)


먼지-
대신 영국은 미디어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의 위력이 커요. 마치 일본에서 만화가 사회 전체에 퍼져있는 거랑 비슷해요. 그 사회의 사고방식에 스며들어 있달까? 말은 안하지만 생활 속에서 느끼고 있는 거예요. 영국에서 공부하다 보면 그게 느껴져요. 불친절함의 매력이죠(웃음). 말없이 직접 보여주는 스타일이니까, 옆에서 도와주는 것 없고, 대신 뭐라고 하지도 않는.



남다른 영국에서 살아남는 두 가지 방법


알라딘- 그 자유 말인데요. 적응 못하는 사람들이 꽤 될 것 같은데, 책에는 나오지 않거든요.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되나요? 유학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걸까요?

먼지- 음, 모든 건 결과가 말해줘요. 과제도 결과가 말해주고요. 다 끝났을 때, 뭘 갖고 왔느냐가 중요해요. 조기유학 1세대 출신의 사회인들 설문을 봤어요. 그 중에서 70%가 유학을 잘 갔다고 생각했더라고요. 투자비용 대비해서 이득을 봤다고. 그런데 그 설문에는 진짜 실패한 사람들은 없다고 봐요. 실패한 사람들이 설문에 참여할 리가 없잖아요. 결국 자기가 마지막 결과를 직접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그게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려면 그때까지 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써니-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과정이 즐거우면 의미가 있다고 봐요. 학교에서 1등했다고 해서 그게 뭔가를 보장해주지는 않거든요. 유학이라는 과정 전체를 통틀어서 느끼고 배운 게 있으면 가치가 있어요. 결과에만 연연하면 정말 나중에 '진짜 결과'가 필요할 때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공부가 아닌 유학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독립이에요. 도와줄 사람은 물론이고 푸념을 들어줄 친구들조차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까요. 거기서는 혼자 이겨내야 돼요. 그것만으로도 배우는 거예요. 작은 문제 하나하나를 극복하고 이겨나가는 거예요. 그 매 과정마다 더 성장하느냐 아니면 무너지느냐의 갈림길이 되는 거죠.




갈림길들. 혹은 창문들.



알라딘- '런던 일러스트'와 '유학'에 대해 할 말이 정말 많으셨네요(웃음).

먼지- 네 그게, 원래는 학교의 프로젝트 소개를 하는 책으로 만들 계획이었어요. 사람들이 각자 프로젝트를 할 때도 도움이 될 수 있고, 한국에서도 그런 수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써니- 그런데 제가 그러지 말자고 했어요. 프로젝트 위주로만 보여주면 모자란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커리큘럼만 가지고 보여줄 수 없는 게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과정 전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먼지- 사실 혼자 작업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그냥 '이런 게 있으니까 해 보세요'만 가지고는 힘들어요. 호기심으로 해 보는 작업이 아니라, 열심히 작업하다 보면 어떤 전환점이 올 때가 있거든요? 그때 어떤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발견하라, 무엇이든



미래는 일러스트의 것이다!

알라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들께, 혹은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 여러분께 덕담 한마디.

먼지-
개인적인 희망인데요. 일러스트랑 관련된 책들은 주로 전공자들이 봐요. 그런데 전공자들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재밌어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취미로 그림 그리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그 중에서 특히 일러스트가 인기가 좋고요. 책 표지에 이렇게 일러스트를 많이 쓰는 나라가 없어요. 그 외에도 문화 전반에서 이렇게 일러스트가 많이 쓰이는 나라는 드물 거예요. 아마 디자인이나 각종 시각적 작업에서 기본 토대처럼 여겨질 때가 오지 않을까 해요. 잘 될 거예요(웃음).

써니- 일러스트 왕국이 되면 좋겠어요(웃음). 일본만 해도 성인들에게서 만화가 어떤 원초적인 호응을 받잖아요. 어릴 때부터 봐 와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림책이랑 일러스트, 그리고 다른 시각 예술들도 그렇게 서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보고, 그러고 나서 더 많이 만들고 그렸으면 좋겠어요. 좀 더 세상이 아름다워지는거죠(웃음). 그리고 그렇게 더 아름다워진 곳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커 갔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그렇게 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 같아요. 앞으로 더 커 나갈 거예요.

알라딘- 희망하시는 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긴 시간동안 인터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광고말씀: 저자와의 만남 행사가 있습니다. 9/6까지 신청 가능해요. <여기>를 클릭하시면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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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4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4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년이 사람을 죽이는 책을 어째서 추천하게 되었는가... 마지막 추천도서.


청소년 추천도서 이벤트 바로 가기입니다.



MD추천



푸른 불꽃
  / 기시 유스케 지음 / 이선희 옮김 / 창해


  이번 추천 시리즈의 마지막은 가장 망설였던 책으로 선택했다. 청소년이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라서다. 우발적인 범행도 아니고 완전범죄를 노려 치밀한 계획 하에 사람을 죽였다. 요즘 어지간한 소재들이 청소년 소설로 잘 나오고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 치밀한 살인극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권하기에는 좀 망설여졌다. 그러나 그 망설임이야말로 추천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 슈이치는 사람을 죽였다. 그런데 이 17세의 고교생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불량 청소년이라고는 부를 수 없다. 자전거 타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가족을 사랑한다. 여자친구도 있고 학교에서도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을 죽였으므로, 원인-문제를 찾아야 한다. 슈이치의 문제는 가족을 너무 사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점점 불행해져가는 자신의 가족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아차릴 정도로 똑똑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소중한 엄마와 여동생을 괴롭히는, 술주정과 폭력을 일삼는 엄마의 전남편을 어떡할 것인가. 그럭저럭 행복했던 가족은 이제 완전히 파괴되기 직전인데 세상에서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심지어 법도 경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 틀리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남자에게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본들 아무런 위안도 얻을 수 없을 것이었다. 여차저차 해서 천신만고 끝에 폭력죄로 감옥에 간들, 길어야 몇 년 뒤에는 더 악랄해져서 돌아올 것이었다.

  자,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아직 가진 사람은 당신 뿐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다. 심지어 당신조차 그와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이 물음은 다른 식으로도 가능하다. '이제, 정의란 무엇인가.'
 
  물론 슈이치의 선택은 결코 이해받을 수 없다. 죽어 싼 인간이 있는 것과 그 인간을 죽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작가는 이 소년의 눈높이로 글을 쓰지만, 결코 그에게 동화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작가 자신조차 판단할 수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대체 뭘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질문은 후회의 다른 말일 뿐이다. 과거에는 만약이라는 게 없다. 돌이킬 수도 없다. 비극은 목을 죄어 들어온다. 당연히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진다.

  <푸른 불꽃>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살다보면 사방이 벽으로만 둘러싸인 듯한 날이 분명히 온다는 거다. 결코 답이 없을 것 같고,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니가 나쁜 사람 아니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헤쳐 나가라는 소리가 아니다. 슈이치가 그 증인이다. 나는 이 책을 말하면서 '그러니까 이렇게 하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다만 그런 출구 없는 현실과 맞딱드렸을 때, 일단은 포기하지 말고 이를 악다물고 버텨달라고 말하고 싶다. 잘잘못은 세상이 정해준다(늘 옳지도 않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땅히 한 일에 책임을 지고, 혹 억울하더라도 일단 계속 버티는 것이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저렇게 하면 다 잘 될 거라는 얘기는 거짓말이다. 사실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딱히 해줄 말이 없어서 미안하다. 현실은 일종의 계급사회다. 계급은 경제력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현실반경을 정의한다. 묘수도 기적도 없는 세상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소년소녀들은 어딘가에 부딪힐 것이다. 나는 그 벽을 둘러싼 수많은 전략들 중에 뭐가 좋은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앞에서 주저앉지만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엄마의 전남편을 죽이기 전에, 그래도 이 가족을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자각하던 순간의 슈이치는 마치 갑작스레 터져나온 폭죽처럼 빛났다. 푸른 불꽃은 결국 모든 걸 태워버렸지만, 그 발화하는 순간만큼은 더없이 아름다웠던 것이다. 불꽃이 되지는 말고 그 불꽃의 색깔만 기억해두자.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둘러싸고,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순간의 소년을. 이 책을 읽게 될 소년소녀들이 그것만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청소년MD 최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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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예술MD 2010-08-2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는 20일 자정을 기점으로 종료됩니다.

aida 2010-08-20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추천글이라 그런가 왠지 더 감동적이네요.ㅎ
드디어 대장정을 마치셨군요. 애쓰셨습니다. 또 축하드리고요.ㅋ
덕분에 그동안 좋은 책들 많이 접했고 또 꽤 샀습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0-08-23 09:08   좋아요 0 | URL
네, 출근하고보니 마치 당연히 있어야 할 스케쥴이 하나 사라진 듯한 느낌이네요.
많이 보아주시고 많이 구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체오페르 2010-08-2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몇일 이런 주제와 질문을 던지는 책들을 보다보니 마음이 싱숭생숭 하네요.^^;
이런 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이군요?
청소년은 넘어섰지만ㅋ 저도 덕분에 즐겁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MD님^^

외국소설/예술MD 2010-08-23 09:08   좋아요 0 | URL
잘 보셨나요 ^^;
그것만으로 충분하네요 저에게는요. 아마 칼 세이건 본좌님 때문이었을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ㅎ

치니 2010-08-20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이야 다르지만 이 글을 읽자니 구스반산트의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가 생각나요. 아들이 열일곱이 되어 그 영화를 최근에 봤는데, 제 인생의 영화 리스트에 올리던 걸요. ^-^ 그렇다고 애가 누굴 그렇게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라 믿어요. 당연히 푸른 불꽃만 기억하겠지요.

다락방 2010-08-20 16:50   좋아요 0 | URL
파라노이드 파크 말씀하시는 거지요 치니님. 파크, 파라노이드 파크. 저 그 영화 포스터만으로 일단 좋아하기 시작해서 혼자 극장 가서 본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 본 성인 1人

니나 2010-08-20 16:53   좋아요 0 | URL
이히. 나도요 나도. 미로 스페이스에서 봤어요.
그 영화의 스케이트 보드 타는 푸른빛 장면들이 왠지 푸른 불꽃이라는 제목과 잘 겹쳐져요...

오늘 글은 진짜 더 울컥, 하네요. 당일배송은 이미 오고 있는데... 보관함으로 가자 아가야...

치니 2010-08-20 17:16   좋아요 0 | URL
<파라노이드>는 <파라노이드 파크>로 일단 수정했고요, (고마와요 다락방님)
아이 참 최원호 피디님이 이렇게 우리끼리 노는 거 다 보고 있을텐데, 왠지 수줍. ㅋㅋㅋ

다락방 2010-08-20 17:31   좋아요 0 | URL
아 치니님. 최원호 엠디님 말씀하시는거죠? 피디에서 또 빵 터졌어요. 아 나 자꾸 이런거 말해줘서 치니님이 나 미워하겠다. 그치만 파라노이드 파크로 말해주라는 건 니나님이 시킨거에요. ㅠㅠ

니나 2010-08-20 17:52   좋아요 0 | URL
아, 시켰...다...라고도 할 수 있지만
파라노이드 파크, 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망설였..더여... ㅠㅠ

치니 2010-08-22 15:42   좋아요 0 | URL
ㅋㅋㅋ 피디님이라고 쓴 건 그냥 놔둘래요. 왠지 피디님 포스인 최원호 엠디님이기에. 이힛, 저의 실수로 여러분들이 즐거우신 거 같기도 하고.

외국소설/예술MD 2010-08-23 09:11   좋아요 0 | URL
네 뭐 피디면 어떻고 엔엘이면 어떻습니까.. 엠디보다는 피디가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요;
저도 구스 반 산트 좋아합니다. 특히 엘리펀트요.

다락방 2010-08-2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삶과 선택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든 함부로 단정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위에 쓰신것처럼 우리는 종종 "대체 뭘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라는 질문을 곧잘 맞닥뜨리니까요. 너라면 다른 어떤 선택을 하겠니? 라고 했을때 과연 옳고 현명한 대답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나 역시도, 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면요?

묵직할 것 같아서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루체오페르 2010-08-20 19:43   좋아요 0 | URL
옷 다락방님~
제가 위의 댓글을 쓰게 한 책과 주제가 담긴 페이퍼를 주신 장본인(?) 등장이시군요.ㅎㅎ

외국소설/예술MD 2010-08-23 09:19   좋아요 0 | URL
단언하건대,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으므로, 명백한 오류가 아닌 이상 누구도 타인의 선택을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가끔은 명백한 오류를 저질러서 그걸 지적하는 것임에도 '내 선택이니 가만 있으라'며 당당한 사람들도 있더군요. 그럴 때는 좀 안타깝습니다. 물론 이건 소수 상황이죠. 근데 소수 상황이 더 골때리는 것 같습니다.

그 외 대부분은 다락방님의 말씀과 비슷합니다. 사람은 미래를 볼 수 없으니 조언은 마치 도박처럼 이루어지죠. 맞으면 좋고, 아님 말고... 조언과 예언의 기만효과에 대해서는 이번 추천 시리즈 중에 '생각의 오류'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아니면 반값 세일 중인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 도 좋아요.
 

잘 사는 것과 멋지게 사는 것의 차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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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추천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로버트 카파 지음 / 우태정 옮김 / 필맥


  표지는 이미 유명한 사진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실감나게 재현되었던 곳, 노르망디의 오마하 비치다. 실제로 거의 초 단위로 사람들이 쓰러졌던 곳이다. 너무 위험해서 아무도 지원하지 못했던 그곳에 유일하게 촬영 지원한 사진기자가 이 사진을 찍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카파라고 한다.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고 죽을 때까지,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바꿔 말하면 폼이 났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삶을 한번쯤 꿈꾸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힘을 겨루는 전쟁터를 헤쳐 나가는 치열함. 카메라 한 대 울러메고 전 세계를 방랑하는 고독함. 뜨거운 사랑과 가슴아픈 이별. 그는 좀 귀염상의 외모만 제외하면 문자 그대로 이상형의 마초였다. 단 하나의 꿈, 사진에 대한 열망 하나로 영화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던 남자.

  카파가 직접 쓴 이 책에서 청소년들이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그 '간지'의 그림자다. 그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포기한 것들보다 그가 가지고자 한 것들을 살펴보는 게 빠르겠다. 카파는 사진과 전쟁 외의 모든 것들을, 심지어 사랑까지도 포기했다. 아무 괴로움 없이 그러했던가? 아니다. 이 책에서 2차대전을 돌아보는 카파는 계속 괴로워한다. 이제는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도 없었던 것이다. 모든 폼나는 인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완벽한 삶도, 행복에 영영 젖을 수 있는 삶도 없다. 그러니까 꿈이란, 달성하는 순간 모든 시름을 잊게 되는 시험이 아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선택을 믿어야 하는 끊임없는 흔들림의 연속이다. 꿈은 목표가 아니라 태도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그런 고민은 꿈이 없이 살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잃어버릴까봐 두려워 가지지 않는다는 망설임이 그 대상이다. 꿈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여러모로 낫다. 단지 그 꿈은 '합격하셨으니 이제 인생 피셨습니다'가 아니라 영원한 고민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예방접종이다. 무엇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청소년MD 최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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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ong 2010-08-20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떻게 살아도 인생은 어려운 것인가 봅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0-08-23 09:2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치니 2010-08-2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은 목표가 아니라 태도다' - 오!

외국소설/예술MD 2010-08-23 09:20   좋아요 0 | URL
사실 저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왜 삶은 계속될까? 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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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알파
/ 아시나노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


  이 책 속의 인류는 아주 천천히 멸망해가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구 온난화나 환경 오염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문명 자체도 그 재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쇠퇴하게 시작했다. 그러니까 소멸이니 종말 같은 단어가 (좀 과장해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 만화는 엄연히 세계 종말에 관한 이야기다. '카페 알파'가 있는 일본만 해도 점점 솟아오르는 바다 때문에 작아지는 중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조용하다. 뿐만 아니라 평화롭다. 안드로이드인 주인공에게 카페를 맡겨놓고 잠시 떠난 주인장(인간)은 몇 년째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니까. 혹 돌아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원래 모든 것은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니까. 슬프겠지만, 그래도 카페는 문을 열 것이다.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살도록 만들어진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의 슬픔이 끊임없이 반짝이는 별밤 같다.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해서 헤어짐의 별빛이 더 많이 깜빡이지는 않는다. 그 나름의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많은 생물들은 여전히 태어나고, 그녀와 같은 안드로이드들 중 몇몇은 수백 년에 걸쳐 지구를 여행할 테니까. 그러니 때로 슬퍼하더라도, 기쁨보다 더 슬플 수는 없다. 사라진 만큼 태어난다. 헤어진 만큼 만난다. 오랜 세월동안 카페를 지키고 있는 그녀는 그런 지혜를 터득했다. 시간이 가져다준 지혜를.

  조금 다른 꽃이 피더라도, 겨울이 점점 따뜻해지더라도, 영원히 봄은 되풀이되고 마음은 들뜬다.

  이 작품의 교훈은 딱히 없다. 세월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곧 추억으로 변할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때로 슬프더라도 천천히 일어나서 다시 내일을 맞는' 만화다. 시간을 죽이는 게 아니라 시간을 잘 보내는 법, 그러니까 시간을 잘 마중하고 전송하는 법에 대한 만화다. 말하자면 <카페 알파>는 훈훈하고 소박한 에피소드로 가득찬, 재미있는, 작은 불교 경전이다. 그러니 청소년들에게'도' 권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쉽고 재미있다.


*이미 전 14권으로 완간된 만화이나, 현재 개정 소장판으로 1권이 재출간되었음. 추후 개정판으로 계속 나올 예정.



-청소년MD 최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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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18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 때로 슬퍼하더라도, 기쁨보다 더 슬플 수는 없다. 사라진 만큼 태어난다. 헤어진 만큼 만난다.'
이 멋진 만화에 이 멋진 추천사라니. 아낌 없는 추천!

외국소설/예술MD 2010-08-19 14:20   좋아요 0 | URL
담당엠디님이 오셨군요 ㅎ.. 이거 왠지 부끄럽네요;;;

치니 2010-08-19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오늘부터 우리는> 이후로 이렇게 전권을 소장해야 하는 만화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으리라 결심했건만! ㅠ

외국소설/예술MD 2010-08-19 14:21   좋아요 0 | URL
어쩐지 죄송합니다; 왠지 죄송하네요; 막 눈이 가게 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