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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별처럼 많은 작가의 별처럼 많은 저작들
읽어 갈수록 부족한 나의 독서를 깨닫게 된다.
내용이나 목차를 잘 살피지 않고
제목과 표지에 흔쾌히 '낚이는' 편이라
나는 정세랑 작가의 이 책이 환경에세이인가?
새와 나무들이 표지 디자인이니 아마도 그렇겠지. 싶었다.
^^;
제국주의적으로 출발한 박물관들이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구성부터가 역사와 문명의 일그러진 부분을 그대로 담고 있어 불편해질 때가 있다. 아시아의 박물관에 서양 유물이 풍부한 경우는 잘 없다. 반면 서구에선 어딜 가나 아시아 유물이 풍부하다. 이런 포함과 불포함의 관계들을 생각하면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동양이 근대화의 정신없는 급물살에 휩쓸려 있던 시기에 서양은 상대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모으고, 분류하고, 정리했다. 세계는 그런 식으로 만난 것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포함당하며...... 이 마음속의 요철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쓸 수밖에 없을 듯싶다.(p.69)
숙소는 친절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필요한 게 있으면 마을버스를 타고 잠깐 네덜란드에 다녀오라고 했다.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말았다. 두 나라 사이를 마을버스가 오간다는 것에도 놀랐고, 고작 20분 거리라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아헨에선 네덜란드도 벨기에도 지척이었고 국경은 열려 있었다.
그리하여 짐을 풀자마자 별로 크지도 않은 마을버스를 타고 네덜란드 발스로 향했다. 슈퍼마켓에 가기 위해. 마을버스에서는 이제부터 네덜란드라고 방송을 해주기는 했지만 심상하게 들렸고 국경은 도로에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을 뿐인 데다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p170~171)
"독일어는 좀 배웠어?"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물어와서 열심히 배운 단어들을 대답했다.
"아인강, 아우스강(입구, 출구)!"
"헤렌, 다멘(남녀 화장실 표기)!"
"아인스, 츠바이, 드라이(1, 2, 3)!"
"추스(작별 인사)!"
너무나 관광객 독일어였던지 횡단보도를 앞서 건너던 아주머니가 뒤돌아보며 폭소했다. 그 아주머니는 횡단보도를 다 건건 다음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얼마냐 있을 거냐고 깔깔 웃으며.
"나는 네덜란드 사람이에요. 아헨에 잠시 뭘 사러 왔어요. 이 근처에 가볼 만한 데를 좀 알려줄게요."(p.178~179)
"드라이란덴푼트(Drielandenpunt)?"
영어로 치면 스리 랜드 포인트인 것 같았다. B와 S가 나를 끌고 경계석으로 향했다. 무엇의 경계인가 했더니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세 나라의 국경이 한 점에서 만나는 꼭짓점을 표시하고 있었다.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그 전날, 유연한 국경이 재밌다고 말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야말로 가장 유연한 곳에 데려다준 것이었다. 네 살, 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경계석 근처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 걸음 딛을 때마다 발밑의 나라가 바뀌었다. 뒤로 국기가 꽃혀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군인이 없었다.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공원이었다.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신이 난 채 어린이들과 경계석을 빙빙 돌았다. 내 격한 반응에 B 자매는 만족한 듯했다. 한 걸음마다 벨기에였다가 네덜란드, 네덜란드 였다가 독일, 독일이었다가 벨기에...... 뭐라 할 수 없이 멋진 경험이었다.(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