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 기린 덕후 소녀가 기린 박사가 되기까지의 치열하고도 행복한 여정
군지 메구 지음, 이재화 옮김, 최형선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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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기린의 ‘8번째 목뼈‘ 발견은 많은 사람의 호평을 받아 박사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예로운 상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수상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기린이 죽지 않아야 할텐데.‘라고 생각했다. 해부 때문에 수상식에 불참하고 싶지는 않았다. 괜찮을까.

수상식 전까지는 신세를 진 분들을 찾아뵙고 옷을 새로 맞추는 등 바쁜 와중에도 평온하고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겨울도 다 끝나 가고 날씨도 따뜻해졌으니 걱정할 필요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과학박물관의 가와다 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수상식 일주일 전이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로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 것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가와다 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린이 온다네.˝

다음 날 나는 늘 입던 운동복 차림으로 과학박물관 지하 해부실에 갔다. 눈앞에는 다마동물공원에서 사육하던 ‘산고‘라는 이름의 암컷 기린이 누워 있었다. 전체적으로 하얗고 귀여운 개체로, 나보다 10살 어린 17살이었다.(p.209~210)

- 포유류는 7개의 경추를 갖고 있다. 인용문에 작은 따옴표로 묶은 ‘8번째 목뼈‘라 함은 실은 제1흉추를 의미한다. 저자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기린이 목을 움직일 때는 경추뿐만 아니라 제1흉추까지 움직인다.˝(p194)는 간결한 사실을 전달한다. 전공자가 아닌 이가 너무나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글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 저자가 기린을 좋아하게 된 어린시절부터, 기린의 사체를 해부하여(무려 30여 마리나)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이야기. 학문하는 이의 자세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진부한(!) 교훈은, 초심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내 연구 이야기를 들은 어떤 우주 물리학자 선생님에게서 평생 잊지 못할 멋진 말을 들었다. ˝아주 재밌는 발표였어요. 군지 씨 이야기를 듣고서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올랐어요. 아인슈타인은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로 ‘내 성공의 비결을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쭉 아이의 마음을 한 채 살았다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군지 씨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채 어른이 돼서 행복하네요.˝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겠다거나 이 세상을 구할 연구를 하겠다는 고상한 뜻을 품고서 연구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을 추구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내 인생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틀림없이 앞으로 노력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행복한 것은 분명히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채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p.2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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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4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가족 모두 행복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ヾ( *・ω・) °・ 🎁
`し( つ つ━✩* .+°
(/しーJ
 
이별의 재구성 -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창비시선 306
안현미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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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 -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박혜진 외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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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시인 김수영이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다. 1921년에 태어나 1968년에 사망한 그는 요절한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 번도 늙어 본 적 없고 한 번도 낡아 본 적 없다고 기억되는 사람. 그의 이른 죽음이 그를 계속 살게 하는 건 아닐 것이나 젊음 그 자체로 박제된 그는 지금까지도 '기괴한 청년'의 상징이 되었다. 1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의 언어가 100년 후에도 현대적 감각으로 읽힌다는 사실이야말로 사건일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도구만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는 사유 그 자체이기도 해서 어떤 유행보다 더 빨리 소모되고 교체된다. 그럼에도 기어코 소모되거나 교체되지 않는 작가를 우리는 문호라 부른다. '김수영'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p.11~12)

- 민음사에서 나온 책들이 표지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민음사의 책들을 만든 이 열 명이 쓴 책 만드는 이야기다. 표지에 나온 책만큼 두껍지 않고 오히려 너무 얇아서 놀랐다. (뭔가 더 내밀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와야 되는데, 원고가 끝나버리고 마치 계주 선수처럼 다음 저자에게 지면을 넘긴다)

- 인용문은 편집자 박혜진이 쓴 「김수영의 편집자」첫머리 일부다. 잘 다져진 한 문단의 글을 여러번 읽어본다. 김수영에 대한 저자의 마음이 읽힌다. '한 번도 낡아본 적 없는' 김수영을 읽고 싶어지는 새벽이다. 다시 읽지 않고서는,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을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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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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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많은 작가의 별처럼 많은 저작들
읽어 갈수록 부족한 나의 독서를 깨닫게 된다.

내용이나 목차를 잘 살피지 않고
제목과 표지에 흔쾌히 '낚이는' 편이라
나는 정세랑 작가의 이 책이 환경에세이인가?
새와 나무들이 표지 디자인이니 아마도 그렇겠지. 싶었다.

^^;

제국주의적으로 출발한 박물관들이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구성부터가 역사와 문명의 일그러진 부분을 그대로 담고 있어 불편해질 때가 있다. 아시아의 박물관에 서양 유물이 풍부한 경우는 잘 없다. 반면 서구에선 어딜 가나 아시아 유물이 풍부하다. 이런 포함과 불포함의 관계들을 생각하면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동양이 근대화의 정신없는 급물살에 휩쓸려 있던 시기에 서양은 상대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모으고, 분류하고, 정리했다. 세계는 그런 식으로 만난 것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포함당하며...... 이 마음속의 요철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쓸 수밖에 없을 듯싶다.(p.69)

숙소는 친절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필요한 게 있으면 마을버스를 타고 잠깐 네덜란드에 다녀오라고 했다.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말았다. 두 나라 사이를 마을버스가 오간다는 것에도 놀랐고, 고작 20분 거리라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아헨에선 네덜란드도 벨기에도 지척이었고 국경은 열려 있었다.

그리하여 짐을 풀자마자 별로 크지도 않은 마을버스를 타고 네덜란드 발스로 향했다. 슈퍼마켓에 가기 위해. 마을버스에서는 이제부터 네덜란드라고 방송을 해주기는 했지만 심상하게 들렸고 국경은 도로에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을 뿐인 데다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p170~171)

"독일어는 좀 배웠어?"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물어와서 열심히 배운 단어들을 대답했다.
"아인강, 아우스강(입구, 출구)!"
"헤렌, 다멘(남녀 화장실 표기)!"
"아인스, 츠바이, 드라이(1, 2, 3)!"
"추스(작별 인사)!"
너무나 관광객 독일어였던지 횡단보도를 앞서 건너던 아주머니가 뒤돌아보며 폭소했다. 그 아주머니는 횡단보도를 다 건건 다음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얼마냐 있을 거냐고 깔깔 웃으며.
"나는 네덜란드 사람이에요. 아헨에 잠시 뭘 사러 왔어요. 이 근처에 가볼 만한 데를 좀 알려줄게요."(p.178~179)

"드라이란덴푼트(Drielandenpunt)?"
영어로 치면 스리 랜드 포인트인 것 같았다. B와 S가 나를 끌고 경계석으로 향했다. 무엇의 경계인가 했더니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세 나라의 국경이 한 점에서 만나는 꼭짓점을 표시하고 있었다.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그 전날, 유연한 국경이 재밌다고 말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야말로 가장 유연한 곳에 데려다준 것이었다. 네 살, 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경계석 근처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 걸음 딛을 때마다 발밑의 나라가 바뀌었다. 뒤로 국기가 꽃혀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군인이 없었다.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공원이었다.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신이 난 채 어린이들과 경계석을 빙빙 돌았다. 내 격한 반응에 B 자매는 만족한 듯했다. 한 걸음마다 벨기에였다가 네덜란드, 네덜란드 였다가 독일, 독일이었다가 벨기에...... 뭐라 할 수 없이 멋진 경험이었다.(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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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16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날님 2021년 서재의 달인 추카 합니다 ^ㅅ^

mini74 2021-12-16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축허드립니다 ~

쎄인트saint 2021-12-16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스텔라 2021-12-16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
행복한 연말 되세요^^

새파랑 2021-12-16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달인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12-16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과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1-12-16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2021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봄날의 언어 2021-12-16 21: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많은 댓글이 달려있는줄 몰랐습니다. 올해 쉬면서 책 많이 읽는 삶을 추구했는데 2019년에 이어서 두번째네요. 감사합니다 모두들 ^^

월천예진 2021-12-16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러블리땡 2021-12-17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21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 김용택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555
김용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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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별



우리 집 서쪽 하늘로 달이 가고 있다 그 속에, 별도 데
려간다 별들은 하늘에서, 어느 날은 다르고 어느 날은 또
다르다 나는 그 다른 날들의 별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추억해내 행복해하고, 무엇인가를 기억해내놓고 개구리
처럼 멀리 뛰며 괴로워한다 생각해보면 별이 없었던 하
늘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마음을 달래 별 아래 놓아둔
다 아침 별들은 슬픔이 가득 찰 때까지 눈을 감지 않는다
(p.13)



꿈을 생시로 잇다



달빛으로 시를 썼다
달빛이 견디기 힘들면 가만가만 집을 나와
달이 그려준 산그늘까지 걸어가
생각을 접어주고
발자국을 거두며 돌아왔다
가난하고 가난하여서
하나하나가 일일이 다 귀찮니 않았다
꿈속에서도 시를 쓰다 잠이 깨면
연필이 손에 꼭 쥐여져 있어서
꿈을 생시로 잇기도 하였다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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